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제작진과 배우 모두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특히 여주인공 오영 역의 송혜교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미모 뿐 아니라 연기력까지 재평가 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송혜교의 라이벌 격인 전지현과 김태희 또한 이에 질세라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단 사실이다. 바야흐로 태혜지 시대의 부활이라 할 만하다.

 

 

 

 

 

2000년대 초중반을 수놓은 태혜지 시대

 

 

1990년대가 최진실과 김희선의 쌍두마차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누가 뭐래도 김태희-송혜교-전지현로 대표되는 트로이카의 시대였다. 선발주자는 송혜교였다. SBS 일일시트콤 <순풍 산부인과>로 대중의 눈도장을 받은 그는 2000<가을동화>를 시작으로 <수호천사><호텔리어><올인><풀하우스>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자타공인 여의도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로 굳건히 자리매김한다.

 

 

전지현 또한 지지 않았다. 1999SBS <해피투게더>에서 상큼한 마스크와 신선한 연기로 주목받은 뒤 2000년 영화 <시월애>2001<엽기적인 그녀>에 출연하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로는 이례적으로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엄청난 흥행을 거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전지현은 동년배 여배우 중 가장 오묘하면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스타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될 수 있었다.

 

 

마지막 주자는 김태희였다. 2003SBS 드라마 <스크린>으로 연기자 신고식을 치룬 그는 <천국의 계단><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을 거치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완벽한 외모와 몸매에 명문대 출신이라는 메리트가 더해지면서 김태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손꼽히게 된다. 비록 송혜교, 전지현보다 데뷔는 다소 늦었지만 단기간 내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단숨에 이들과 비슷한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면서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구축했고, 미모와 인기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만큼 박빙의 대결을 펼쳤다. 특히 이 세 여배우는 화장품, 의류, 통신, 아파트, 가전 등 여배우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CF들을 독식하다시피 하며 CF 시장을 삼등분했다.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광고계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것이다. 본격적인 태혜지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태혜지 시대 역시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오르며 따가운 눈총을 받은데다가, 흥행력 마저 현저히 떨어지며 커리어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는 곧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광고계에서의 영향력 약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었다신민아 같은 다크호스가 나타나 판을 흔들고 '피겨 여왕' 김연아가 각종 CF를 섭렵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부활한 태혜지’, CF퀸 넘어 배우로

 

 

태혜지의 상품성이 근간부터 의심 받기 시작하면서 결국 태혜지 시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상품성 제고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짐으로써 더 이상 안일한 자세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들로서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된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이들 세 사람 모두 위기를 맞이하면서 배우 본연의 업무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단 사실이다. 한 두 개의 CF 계약에 연연하는 대신 배우로서 착실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한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연예인으로서 오랜 인기를 누리며 사랑 받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배우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진리를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12년을 기점으로 태혜지 시대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전지현의 재기는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신비주의 이미지 마케팅으로 본의 아니게 대중과 멀어졌던 그는 2012년 영화 <도둑들>에서 상큼하고 섹시한 매력의 예니콜로 분해 그동안의 부진을 한방에 만회했다. 결혼과 함께 인간적이고 친근한 매력을 갖춘 스타로 거듭난 것 또한 매우 의미 있는 변화다. 이 덕분에 그는 잠시 부진했던 CF 시장에서 다시 한 번 만개하고 있다.

 

 

오랜 시간 작품성 있는 영화에 몰두하며 배우 타이틀을 얻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송혜교 역시 2013<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완벽한 명예회복을 했다. 절정의 미모와 뛰어난 패션 감각을 과시하며 뭇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로 떠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층 깊어지고 절제된 연기력으로 배우 송혜교의 존재감을 만방에 과시했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은 송혜교의 연기에 내가 졌다. 오영 캐릭터의 성과는 오로지 송혜교의 차지다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김태희 또한 의미 있는 도전에 나섰다. 2011MBC <마이 프린세스>를 통해 첫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하며 호평을 이끌어 낸 그는 2013SBS 새 월화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통해 첫 사극 연기에 도전한다. 장희빈의 파란만장한 삶을 연기하는 만큼 그동안의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예정이다. 전작인 <야왕>25%라는 높은 시청률로 종영해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또한 고무적이다.

 

 

이처럼 30대에 접어든 태혜지는 나름의 방법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배우로서, 스타로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실패할 때도 있었고 성공할 때도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한 곳을 향해 내달리는 이들의 집중력은 분명 박수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제 이들은 단순한 CF 스타가 아니라 작품을 책임질만한 무게감 있는 여배우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혜지 시대의 부활이 반가운 이유다.

 

 

과연 태혜지는 끝까지 배우의 본분을 잃지 않고, 스타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며 오랜 시간 대중의 곁에 머무를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이 연예계의 소중한 자산들이라는 것, 그리고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혜지를 사랑하는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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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4월 드라마 대전이 개막됐다. 각 방송사가 자존심을 걸고 준비한 새로운 드라마들이 대거 등장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작품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 뜨거운 만큼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존의 편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변칙편성이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변칙 편성

 

 

시청률은 작품의 성패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잣대 중 하나다. 방송사 입장에선 시청률이 높을수록 광고를 많이 팔고, 그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 현재 방송 시장에 시청률만 높으면 만사 OK라는 시청률 지상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식 이하의 변칙 편성이 자행되는 원인도 이와 결코 무관치 않다.

 

 

최근 MBC325일 월화 드라마 <마의>를 끝내고 나서도 이튿날인 26일 이어 41, 2월에도 후속작을 방송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41일에는 <2013 MBC 드라마 빅3 스페셜>을 방송 예정이고, 2일에는 특선영화 <차형사>가 편성되어 있다. 새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의 첫 주 방송을 SBS <야왕>의 마지막 주 방송과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야왕>의 마지막 회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큰 만큼, 무리하게 경쟁하느니 차라리 방송을 한 주 미루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러한 변칙 편성은 비단 MBC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13, SBS<그 겨울, 바람이 분다>1, 2회를 연속 방송 해 논란을 일으켰다. SBS 측은 드라마의 촘촘한 구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했지만 같은 날 시작한 <아이리스2>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순 없었다. 방송사끼리 합의한 드라마 72분 룰을 일방적으로 깨버린 것 또한 문제였다.

 

 

당시 이강현 KBS 드라마 국장은 업계 상도 상 이건 아니다. 룰이 쉽게 무너지고 깨지면서 자괴감이 들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나 KBS 역시 <그 겨울, 바람이 분다>2회를 견제하기 위해 본래 편성된 <추적 60>을 특선영화 <고지전>으로 갑작스럽게 교체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SBS의 변칙 편성 전략에 똑 같은 방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SBSMBC <해를 품은 달>의 마지막 주 방송을 피해 <옥탑방 왕세자> 첫 방송을 한 주 미뤘었고, KBS<적도의 남자> 첫 방송을 무려 3주나 연기하는 무리수를 둬 시청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바 있다. 초반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자존심도, 정체성도 모두 포기한 수준 낮은 경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로 승부하는 환경 정착돼야

 

 

방송사가 서로 눈치를 보며 변칙 편성을 자행하는 동안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쪽은 애꿎은 시청자들이다. 수익 올리기에만 급급한 방송사들로 인해 시청자의 볼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방송은 시청자가 주인이라는 말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다. 방송사 스스로 지금껏 쌓아올린 믿음과 신뢰를 무참히 무너뜨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방송사는 공급자이고, 시청자는 소비자다. 공급 자체가 소비로 인해 존재할 수 있다면 공급자는 언제나 소비자의 만족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좇는 근시안적 경영 대신 보다 넓고 멀리 보는 안목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경쟁작을 의식한 무분별한 변칙 편성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불만만 키우고, 각 방송사 간의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하는 최악의 전략일 뿐이다.

 

 

이제라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내실이다. 작품만 좋다면 시청자들은 언제라도 볼 준비가 되어 있다. 작년 한 해 큰 호평을 받은 SBS <추적자>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콘텐츠 그 자체로 승부를 볼 각오를 해야지 이런 저런 핑계 대며 반칙과 편법을 당연하게 자행하는 건 너무 비겁한 행동이다. 지상파 방송이 지니고 있는 권위와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1~2% 시청률에 희비가 엇갈리는 작금의 방송 환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을 핑계로 잘못된 관행까지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선 안 된다. 느리지만 꿋꿋이 옳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려는 노력이 선행될 때에만 오늘보다 더 진보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방송사와 제작진, 시청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건 더 이상 거부하기 힘든 시대적 요구다.

 

 

이런 상황에서 망가져 버린 ‘72분 룰의 복원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20083사 드라마 국장이 합의한 대로 확대 편성, 드라마 연장, 연속 방송, 무분별한 결방 등을 자제하고 드라마 편수를 조정해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구두 합의에서 한 발 자국 더 나아가 이를 법제화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공정한 규칙은 공정한 경쟁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만족할만한 좋은 작품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도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시청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자리 잡아야 작품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사명감과 자존심을 지키며 작업을 할 수 있고, 변칙 편성 같은 꼼수 역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제 문제 해결의 공은 각 방송사에게로 넘어갔다. 과연 그들은 처절한 자기 성찰과 혁신 의지로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시청률 지상주의가 아닌 시청자 지상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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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2>의 시청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경쟁작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5% 이사 뒤쳐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시간대 꼴찌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200억 대작답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에 편성을 내준 KBS도 많이 놀란 눈치다. 그러나 지금 가장 당황하고 있을 사람은 아마 연출을 맡은 표민수 PD일 것이다.

 

 

감성적 멜로가 주특기였던 그는 도대체 왜 <아이리스2>를 선택한 것일까. 그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대한민국 대표 작가주의 감독표민수

 

 

대한민국 드라마 PD를 통틀어 작가주의라는 네 글자가 표민수만큼 어울리는 이도 아마 드물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자기 색깔이 확실하고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연출자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터치로 유려하게 펼쳐내는 연출력은 가히 일품이고 방송이 금기시 하는 소재로 사람과 삶을 진지하게 반추하는 솜씨 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런 표민수에게 드라마작가 노희경은 좋은 벗이자 믿음직한 파트너였다. 1996년 배우 나문희의 소개로 한 커피숍에서 처음 노희경을 만났을 때, 표민수가 던진 첫 마디는 우리 에이즈 합시다였다. ‘남편이 만약 에이즈에 걸렸다면 부인은 그와 잘 수 있을까라는 그의 질문에 충격을 느낀 노희경은 결국 최수종-유호정 주연의 KBS 베스트극장 <아직은 사랑할 시간>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15년 지기 표민수-노희경 콤비의 탄생이었다.

 

 

이 후, 표민수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표민수표 드라마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불륜이란 자극적 소재를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그려낸 미니시리즈 입봉작 <거짓말>(‘97)을 시작으로 동성애자의 사랑을 편견 없이 바라본 <슬픈유혹>(’99), 힘겨운 삶 속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바보같은 사랑>(2000), 원조교제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작 <푸른 안개>(2001)까지 그가 만든 작품 대부분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천착이 공존하고 있다.

 

 

당시 표민수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은 결코 가볍거나 평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의 온갖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할 정도로 절절했고, 그만큼 불편했다. 극단의 상황 속에서 발휘되는 인간애를 표민수는 사랑의 본질로 파악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간에 대한 안쓰러움이라고 정의했다. 한눈팔지 않고 멜로드라마만 연출한 이유도 사람은 사랑해도 안쓰럽고, 사랑하면서 행복하다고 해도 안쓰럽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대한 그의 마이너적 감성은 TV 멜로드라마에서도 컬트 현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아주 좋은 예가 됐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그의 작품이 언제나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어도 KBS 시절 표민수는 실험적 작가성과 공격적인 젊은 혈기로 무장한 우리 시대 가장 진보적인연출자였던 것이다.

 

 

 

 

표민수가 <아이리스2>를 선택한 이유

 

 

그러나 2002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이래 표민수의 작품들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치달았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프리랜서 독립 후 첫 작품이었던 <고독>이 처참히 실패하면서 그는 상업성대중성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 시청률과 돈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잔혹한 프리의 세계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표민수는 2004년작 <풀하우스>를 통해 전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옥탑방 고양이>의 민효정 작가와 손을 잡고 만든 이 작품은 청춘스타 송혜교와 정지훈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달달하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연출함으로써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그의 이런 변신은 그동안 표민수표 드라마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상당한 배신감을 안겨다줬다. 표민수가 외부 흥행 때문에 변절했다는 극단적인 반응이 나온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러나 표민수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작가주의 연출이 되고 싶지도, 변절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반박하며 친 대중적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풀하우스>와 비슷한 장르인 <넌 어느 별에서 왔니><커피하우스><넌 내게 반했어> 등을 연달아 발표했고 <인순이는 예쁘다><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통해 외연 확장을 시도했다. 작가주의 감독 표민수는 그곳에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풀하우스> 이 후, 그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참패했고 작품성 면에서도 혹평을 면치 못했다. 특유의 마이너적 감성과 섬세한 터치를 잃어버리며 대중과의 심리적 간극을 좁히는데 실패한 것이다. 상업성과 작품성의 경계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 그의 작품세계는 또렷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리스2>는 표민수에게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전작인 <아이리스>의 명성을 업고 오랜만에 흥행을 노릴 수 있는 기회였던 동시에, 액션물에 주특기인 감성 멜로를 더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전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리스2>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액션 속의 감성과 감성이 끌어내는 액션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 그가 <아이리스2>를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또 다시 실패했다. 남성성이 강한 첩보물의 특성상 그의 멜로는 잘 융화되지 못했고, 자신하던 풍부한 감성 또한 드러나지 않았다.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서 답보 상태고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 역시 냉담하기 그지없다. ‘작가주의를 단호히 거부했던 지난 10년간 표민수의 손에 남은 건 초라한 성적표와 모호해진 정체성이다. 상업적 성공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그의 빛나는 감성을 해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다.

 

 

지금 표민수에게 필요한 것은 초심이다. 노희경에게 에이즈 하자고 말하던 15년 전 표민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남들이 다 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 말고 표민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상업성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이돌 데리고 로맨틱 코미디만 찍지 말고, 인간과 삶을 정교하게 바라보며 대중을 울고 웃기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한다. ‘작가주의하라는 것이 아니다. ‘표민수이름 세 글자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라는 것이다.

 

 

<풀하우스>처럼 가벼우면서 <거짓말>처럼 깊이 있는 드라마를 그에게 요구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누구보다 도드라진 개성을 잃지 않은 채 대중과 교착점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 그에겐 너무 가혹한 일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표민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작가주의와 상업주의의 경계에서 지독하게 방황하고 있는 그가 하루 빨리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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