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 나는 가수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28 [나가수] 국민가수의 '떨리는 손', 우리를 감동시키다. (2)
  2. 2011.03.25 김건모와 신승훈,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 (116)

588d1c9944be3f9d4b7d1f25b59a7f71
모르겠다. 진짜 잘 모르겠다.


시작은 '두고보자' 였다. 지난 일주일간 연예계를 정신없이 헤집어 놨던 그 책임을, 오늘 다시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작은 '두고보자' 였는데 끝은 '미안하다' 였다.


이번 주 내내 '죽일 놈, 살릴 놈' 했던 그 사람. 아니, 그 가수가 우리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마음을 또 한 번 흔들어 놨다. 그 가수가.

 


지난 한 주, 연예계는 [나는 가수다] 파문으로 온통 도배됐다. 말 그대로 폭풍우가 몰아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수많은 사건들이 [나는 가수다] 하나에서 터졌다. 김건모의 재도전으로 촉발 된 논란은 결국 김영희 PD 하차, 제작진 교체, 김건모 자진사퇴, 방송 중단 등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여러 네티즌들이 의견을 피력하며 논란이 증폭됐고, 여기에 기성 가수들이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연예계가 [나가수] 논쟁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한 언론에서는 [나는 가수다]의 현 상태를 '뇌사'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사태가 절박했단 이야기다. 그런 상태에서 MBC가 내린 결정은 [나는 가수다] 165분 확대 편성 방송, 그리고 한 달간의 잠정적 휴식기였다. 김영희 PD 체제의 마지막 [나가수]가 165분간 여과없이 방송을 타게 된 것이다. 무수히 많은 소문과 루머, 논란 속에서 방송 되는 165분간의 [나가수]가 어떤 결과를 어떻게 불러올 지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가수다] '시즌 1'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미션은 서로의 노래 바꿔 부르기. 두 번째 순서로 경연무대에 올라간 김건모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진지한 걸 싫어해서 뭐든 가볍게 하고 싶다던 국민가수는 거기 없었다. 대신 누구보다 바짝 긴장한 채, 시청자들에게 고개를 푹 숙여 사과하는 한 명의 외로운 가수만 거기 있었다. '두고보자'가 '미안하다'로 바뀐 건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형언할 수 없는 고민과 고뇌의 흔적이 느껴져서.


그렇게 터질듯한 긴장감과 떨리는 분위기로 시작한 김건모의 [You are my lady]는 지난 주 장난스럽게 립스틱을 바르던 김건모의 무대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열창했고,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여유롭고 웃음기 넘치던, 그래서 때론 너무 경박해 보이기도, 너무 쉬워 보이기도 했던 김건모가 스스로 '힘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불렀다. 이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가수의 위상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내가 김건모의 노래에 더 큰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그의 '떨리는 손' 때문이었다. 그가 데뷔할 때부터 20년 가까이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무대를 봐 왔지만 그런 모습은 내 생전 처음이었다. 내 기억속의 김건모는 언제나 여유롭고 자신만만했다. 어느 대학 축제에서 기기 고장으로 반주가 안 나오자 무반주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던 김건모였다. 그만큼 그는 어느 무대에 툭 던져놓아도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흥얼흥얼 쉽게 노래를 부를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간 그가 발표한 앨범과 노래에는 혁신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해왔던만큼 딱 그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수준이 안타까웠다. 이미지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미웠다. 그러나 대중의 혹평과 상관없이 그는 여전히 장난스러웠고, 가벼웠으며, 여유 넘쳤다. 하긴 대중의 평가를 받아들이기엔 김건모라는 브랜드의 클래스가 너무 견고했다.


그랬던 그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재도전 파문이 터지고 난 뒤 바로 열린 경연이었으니 그가 느낀 긴장감은 아마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마이크를 꽉 쥔 손이 하염없이 떨리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해졌다. 지난 시간 그에게 너무 가혹했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몇 년간 별 볼일 없는 그의 앨범에 실망했고 [나는 가수다] 파문으로 또 한번 고개를 돌렸던 그 마음이 한 순간 사그라져 버렸다.


김건모의 노래를 듣는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가 부르는 노래 하나에만 푹 빠져버렸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갑자기 멈췄다가 노래가 끝나는 순간 깨어나는 그 느낌. 그 흔치 않은 느낌을 김건모의 목소리에서, 김건모의 떨리는 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축복이다.


그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과 수많은 질타들을 '노래' 하나로 간단히 제압해버렸다. 적어도 그가 노래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정도로 가히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다. 지난 주 겪었던 모든 역경을 한 방에 설욕했다. 육중했다. 무거웠다. 숨이 턱 막힐 만큼 강하고 셌다. 그만큼 국민가수의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떤 무대에서도 떨지 않았던 -심지어 대통령 앞에서도 여유로웠던- 국민가수의 한 없이 떨리는 손을 봤다. 대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무대 위에서 한없이 외로워지는, 노래하면서 한없이 서글퍼지는, 그를 봤다. 김건모의 그런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오늘 [나는 가수다]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어쩌면 [나는 가수다]가 그에게는 아주 씁쓸한 경험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데뷔 이 후, 이렇게 욕을 먹은 것도 처음인데다가 논란의 중심에서 자진 사퇴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오늘 그의 무대를 본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의 김건모를 '재도전 파문'의 주인공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가슴에 울림을 주는 노래, 그리고 한없이 떨리는 아름다운 손. 오히려 그 두가지로 김건모를 추억하고 기억하지 않을까.


김건모는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가수다]가 가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이야기 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한 아주 소중한 프로그램이라는 말 또한 덧붙였다. 근 20년동안 변하지 않았던 국민가수 김건모가 단 4주만에 변하기 시작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국민가수의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떨리는 손이 너무 간절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김건모는 오늘에서야 김건모만의 음악과 김건모만의 무대로 지난 한 주간의 '긴 악몽'에서 깨어났다. 미워하기에는 노래를 너무 잘하는 사람.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 차갑게 식어버리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평가의 영역을 넘어선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노래 불러야 할 사람. 그런 사람, 김건모.


그는 가수다. 어쩔 수 없이 노래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그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들의 '국민가수'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결국 김건모가 '자진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도전 논란이 일어난 지 4일만의 결정이다. 안타깝고 쓸쓸한 상황이다. 김건모는 [나는 가수다] 출연으로 얻은 것은 하나 없고, 많은 것을 잃었다. 명성에 금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흠결은 하나 늘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국민가수'의 위상을 재확인하려 했던 애초의 목표는 완전히 부서졌음은 물론이고,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한동안 TV 출연이 힘들 정도의 치명상은 분명하다.


이렇듯 초라해진 김건모의 모습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김건모와 함께 '국민가수'로 불렸던 인물, 신승훈이다.


김건모와 신승훈은 90년대를 양분했던 가요계의 진정한 '황제'들이었다. 히트곡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음반 판매량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통합 음반 판매량이 1000만장을 훌쩍 뛰어넘는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육중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고, 어느 거리에서든 그들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가히 '국민가수'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넘치는 재능에 노력과 열정까지 겸비했기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악성에 후척적인 노력이 융합된 이들은 대중을 움직이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사람의 감종을 극한으로 몰고 가며 절절한 감성을 토해내는 신승훈과 댄스와 발라드를 유려하게 넘나들면서 희비극을 모두 소화해 낸 김건모는 대중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개성 넘치는 도드라짐을 간직했다.


프로듀서 김창환의 손에서 만들어 진 이 두 '국민가수'는 대한민국 가요史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물로 성장했다. 수많은 가수들이 반짝 떴다가 명멸해 가는 와중에서도 김건모와 신승훈의 위치는 독보적인 영역을 과시했다. 김건모는 R&B와 팝댄스, 신승훈은 발라드에서 감히 그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창작력과 음악성을 자랑했다. 그들이 내놓은 앨범은 언제나 그 시대 가요계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전선의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들은 금상첨화 격으로 '엔터테이너' 기질까지 갖추고 있었다. 특히 까불까불거리고 가벼우면서도 노래 하나는 기차게 부르는 김건모의 캐릭터는 대중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은 키, 까무잡잡한 피부, 장난끼 어린 표정의 그는 때로는 숨길 수 없는 끼로, 때로는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로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음반판매량이나 인기면에서 비등비등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한 신승훈과 김건모였지만 대중적 친숙도나 친화력은 단연 김건모가 신승훈을 앞서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90년대 후반 'H.O.T-젝스키스-S.E.S-핑클'로 이어지는 막강 라인업을 구축한 1세대 아이돌의 등장과 함께 가요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는 신승훈과 김건모가 아이돌 군단의 추격을 물리치면서 자신들의 '국민가수' 타이틀을 지켜내야만 하는 시대적 과도기에 부딪히고 있음을 의미했다. 급변하는 가요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국민가수 타이틀을 반납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한 때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른바 '신승훈-김건모 탈세 연루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깨끗하고 반듯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던 신승훈과 어린 아이 같은 장난스러움으로 사랑받았던 김건모 모두 '탈세'라는 불법 행위로 입은 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훗날 이 사건은 신승훈, 김건모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으로 종결 됐으나, 그 때는 이미 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후였다.


이 사건 이 후, 이들은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각자 골몰해야 했다. 이 때, 김건모는 예전 대중들이 좋아했던 장난끼 어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성 확보에 골몰했고, 신승훈은 TV 출연 대신 OST 참여, 콘서트 개최 등 TV 이외의 공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의 선택이 그들의 운명을 어떻게 갈라 놓을지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2000년대를 맞이해 김건모가 보여준 행보는 '갈팡질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7집 <미안해요>의 극적인 성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김건모 스스로 토로했듯 그의 앨범은 김창환을 떠남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만을 꾸준히 '소진'하는, 다소 실망스런 퀄리티로 전락해 있었다. 한 때 대한민국에서 흑인 음악을 가장 잘 이해했던 김건모는 슬프게도 그곳에 없었다.


여기에 절제되지 않은 자기관리와 실패한 이미지 메이킹도 김건모의 발목을 잡았다. 김건모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가볍고 까불까불하다. 이는 선천적으로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그의 천성에 기인한 행동이지만, '철들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에게 비호감으로 인식됐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여자 사귀기를 주저 하지 않으며, 무대에서도 장난끼 어린 행동을 스스럼 없이 하는 그의 기행은 사람들에게 주책 맞은 것, 가볍고 무게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는 '변할 생각이 전혀 없는' 김건모와 '국민가수 다운 품격'을 원한 대중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괴리감이었다.


김건모는 끊임없이 대중의 사랑을 갈구했다. 대중이 있어야만 자신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했고,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TV 안하고 공연만 하겠다"며 호언장담 했다가도 금방 다시 TV에 나와 "그 때는 경솔했다" 할 정도로 그는 대중과 부딪히는 걸 즐겼다. 안타까운 것은 김건모의 그런 모습을 대중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여전한 가창력과 여유로운 무대매너에도 불구하고 TV 출연이 낳은 경박스런 이미지와 철저히 소진되어 버린 음악적 태만함은 김건모를 국민가수가 아닌 '애물단지' 혹은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음악적 역량과 상관없이 스타 '김건모'의 커리어에는 이미 심각한 균열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러한 균열 양상은 결국 [나는 가수다] 재도전 논란으로 완전히 폭발했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끝까지 '진지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재도전 논란에 휩싸이며 자신의 위상에 상당한 상처를 남겼다.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에 그가 집중포화를 맞았던 이유는 룰을 무시했다는 원죄 뿐 아니라 그 동안 실패했던 이미지 메이킹, 그리고 외연확장에 성공하지 못한 음악적 역량에 대한 대중의 종합적 '책임추궁'에 기인한 바 컸다.


이에 비해 신승훈은 김건모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TV 대신 공연장과 OST 참여 등으로 눈을 돌렸다. TV 출연으로 얻을 수 있는 대중적 인기 대신 음악적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한 것이다. 그는 한 두번의 예능 게스트 출연을 제외하곤 철저하게 관객 위주의 공연 활동을 고수했고, 이를 통해 신승훈 특유의 색깔과 브랜드를 보전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신승훈 표 발라드의 외연을 확장하는 동시에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김건모가 갈팡질팡하며 음악적 방황을 거듭하는 사이 신승훈은 자신의 주특기인 '발라드' 장르에 올곧게 도전함으로써 '국민가수'의 자존심을 지켰다. 꾸준한 앨범 판매와 당댱한 음악활동은 싱어송라이터로서 그의 존재감을 더욱 단단하게 해줬고 음악적 입지와 깊이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이는 과감히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결단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승훈은 음악 뿐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케이스였다. 그는 점잖고 말끔했던 90년대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 받는 동시에 중견가수로서 가져야 하는 원숙함과 부드러움을 자신의 기본 이미지에 덧 입혔다. 약간의 유머러스함과 진중함이 절묘하게 뒤섞인 그의 모습은 대중이 기대하는 '국민가수'의 자격과 100% 일치했고, 이것이 대중에게 친숙함을 선사했다.


신승훈은 보여줄 것은 보여주면서, 보이지 않을 것은 철저히 보여주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을 일정부분 차용하면서도 친숙한 마스크와 특유의 유머로 대중들의 빈틈을 공략해 견고한 '신승훈 브랜드'를 창출했다. 음악성과 이미지 메이킹 모두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공전략은 그가 멘토로 출연하고 있는 [위대한 탄생]에서 극명하게 증명되고 있다. 첫 방송부터 가장 삼고 싶은 멘토 1위에 등극했던 그는 방송 내내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날카로운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나가수]에서 자충수를 둔 김건모와 달리 그는 평가의 영역에 직접 나가는 것이 아니라 후배를 통해 간접적으로 평가 무대에 오름으로써 자기 브랜드도 지키고, 대중성도 확장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신승훈은 이제 일각의 평가를 뛰어넘은 가요계의 상징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한두 번 넘어지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조차 '역사'이자 '도전'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반대로 김건모는 김창환에게 돌아가기 전이나, 돌아간 후나 여전히 예전의 영광에만 취해 있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가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김건모 브랜드가 자꾸 다운그레이드 된다는 건 상당한 비극이다.


신승훈과 김건모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데뷔해 90년대 가요계를 양분했던 가요계의 황제들이요, 국민가수가 분명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를 맞아 그들이 취했던 대응방식은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았고, 그들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다. 그리고 2011년, 김건모와 신승훈은 또 다시 [나가수]와 [위대한 탄생]으로 명암이 갈리는 운명에 놓여 있다.


김건모는 과연 이번 파문을 뒤로 하고 제대로 된 국민가수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가? 신승훈은 [위대한 탄생]의 성공을 통해 신승훈 브랜드의 외연 확장과 깊이 있는 뮤지션으로의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성공할 수 있을까? 90년대와 2000년대를 나란히 관통하고 있는 엇갈린 운명의 두 '국민가수'가 부디 그 훈명을 고이 보전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