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d1c9944be3f9d4b7d1f25b59a7f71
모르겠다. 진짜 잘 모르겠다.


시작은 '두고보자' 였다. 지난 일주일간 연예계를 정신없이 헤집어 놨던 그 책임을, 오늘 다시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작은 '두고보자' 였는데 끝은 '미안하다' 였다.


이번 주 내내 '죽일 놈, 살릴 놈' 했던 그 사람. 아니, 그 가수가 우리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마음을 또 한 번 흔들어 놨다. 그 가수가.

 


지난 한 주, 연예계는 [나는 가수다] 파문으로 온통 도배됐다. 말 그대로 폭풍우가 몰아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수많은 사건들이 [나는 가수다] 하나에서 터졌다. 김건모의 재도전으로 촉발 된 논란은 결국 김영희 PD 하차, 제작진 교체, 김건모 자진사퇴, 방송 중단 등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여러 네티즌들이 의견을 피력하며 논란이 증폭됐고, 여기에 기성 가수들이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연예계가 [나가수] 논쟁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한 언론에서는 [나는 가수다]의 현 상태를 '뇌사'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사태가 절박했단 이야기다. 그런 상태에서 MBC가 내린 결정은 [나는 가수다] 165분 확대 편성 방송, 그리고 한 달간의 잠정적 휴식기였다. 김영희 PD 체제의 마지막 [나가수]가 165분간 여과없이 방송을 타게 된 것이다. 무수히 많은 소문과 루머, 논란 속에서 방송 되는 165분간의 [나가수]가 어떤 결과를 어떻게 불러올 지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나는 가수다] '시즌 1'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미션은 서로의 노래 바꿔 부르기. 두 번째 순서로 경연무대에 올라간 김건모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진지한 걸 싫어해서 뭐든 가볍게 하고 싶다던 국민가수는 거기 없었다. 대신 누구보다 바짝 긴장한 채, 시청자들에게 고개를 푹 숙여 사과하는 한 명의 외로운 가수만 거기 있었다. '두고보자'가 '미안하다'로 바뀐 건 아마 그 때였던 것 같다. 형언할 수 없는 고민과 고뇌의 흔적이 느껴져서.


그렇게 터질듯한 긴장감과 떨리는 분위기로 시작한 김건모의 [You are my lady]는 지난 주 장난스럽게 립스틱을 바르던 김건모의 무대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열창했고,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여유롭고 웃음기 넘치던, 그래서 때론 너무 경박해 보이기도, 너무 쉬워 보이기도 했던 김건모가 스스로 '힘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불렀다. 이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가수의 위상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내가 김건모의 노래에 더 큰 감동을 받았던 이유는 그의 '떨리는 손' 때문이었다. 그가 데뷔할 때부터 20년 가까이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무대를 봐 왔지만 그런 모습은 내 생전 처음이었다. 내 기억속의 김건모는 언제나 여유롭고 자신만만했다. 어느 대학 축제에서 기기 고장으로 반주가 안 나오자 무반주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던 김건모였다. 그만큼 그는 어느 무대에 툭 던져놓아도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흥얼흥얼 쉽게 노래를 부를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간 그가 발표한 앨범과 노래에는 혁신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해왔던만큼 딱 그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수준이 안타까웠다. 이미지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미웠다. 그러나 대중의 혹평과 상관없이 그는 여전히 장난스러웠고, 가벼웠으며, 여유 넘쳤다. 하긴 대중의 평가를 받아들이기엔 김건모라는 브랜드의 클래스가 너무 견고했다.


그랬던 그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재도전 파문이 터지고 난 뒤 바로 열린 경연이었으니 그가 느낀 긴장감은 아마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마이크를 꽉 쥔 손이 하염없이 떨리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해졌다. 지난 시간 그에게 너무 가혹했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몇 년간 별 볼일 없는 그의 앨범에 실망했고 [나는 가수다] 파문으로 또 한번 고개를 돌렸던 그 마음이 한 순간 사그라져 버렸다.


김건모의 노래를 듣는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가 부르는 노래 하나에만 푹 빠져버렸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갑자기 멈췄다가 노래가 끝나는 순간 깨어나는 그 느낌. 그 흔치 않은 느낌을 김건모의 목소리에서, 김건모의 떨리는 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축복이다.


그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과 수많은 질타들을 '노래' 하나로 간단히 제압해버렸다. 적어도 그가 노래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할 정도로 가히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다. 지난 주 겪었던 모든 역경을 한 방에 설욕했다. 육중했다. 무거웠다. 숨이 턱 막힐 만큼 강하고 셌다. 그만큼 국민가수의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떤 무대에서도 떨지 않았던 -심지어 대통령 앞에서도 여유로웠던- 국민가수의 한 없이 떨리는 손을 봤다. 대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무대 위에서 한없이 외로워지는, 노래하면서 한없이 서글퍼지는, 그를 봤다. 김건모의 그런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오늘 [나는 가수다]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어쩌면 [나는 가수다]가 그에게는 아주 씁쓸한 경험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데뷔 이 후, 이렇게 욕을 먹은 것도 처음인데다가 논란의 중심에서 자진 사퇴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오늘 그의 무대를 본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의 김건모를 '재도전 파문'의 주인공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가슴에 울림을 주는 노래, 그리고 한없이 떨리는 아름다운 손. 오히려 그 두가지로 김건모를 추억하고 기억하지 않을까.


김건모는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가수다]가 가수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이야기 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한 아주 소중한 프로그램이라는 말 또한 덧붙였다. 근 20년동안 변하지 않았던 국민가수 김건모가 단 4주만에 변하기 시작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국민가수의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떨리는 손이 너무 간절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김건모는 오늘에서야 김건모만의 음악과 김건모만의 무대로 지난 한 주간의 '긴 악몽'에서 깨어났다. 미워하기에는 노래를 너무 잘하는 사람.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 차갑게 식어버리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평가의 영역을 넘어선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노래 불러야 할 사람. 그런 사람, 김건모.


그는 가수다. 어쩔 수 없이 노래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그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들의 '국민가수'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가수] 논란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결국 [나가수]의 수장인 김영희 PD가 일선에서 퇴진하는 것으로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출연 가수들은 김PD의 퇴진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향후 사태를 지켜보고 거취를 결정하겠다"며 소속사 긴급회의에 들어간 상태이고, MBC 예능국 역시 김PD 퇴진 후폭풍을 정면으로 맞는 모양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말 그대로 '엉망진창'에 '아비규환'인 꼴인데, 이런 식으로 가다가 과연 이 프로그램이 처음 견지했던 목표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든다.

 


[나는 가수다]의 기획의도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신선했다. '7명의 가수들을 무대에 올리고 평가단의 평가를 받아 꼴찌를 탈락시킨다.' 게다가 출연하는 가수는 무려 김건모, 이소라, 박정현, 윤도현, 백지영, 정엽, 김범수다. 이 얼마나 놀라운 기획인가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음악성이라면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가수들이 자신의 무대를 걸고 서바이벌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기획은 처음부터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특히 공개적으로 [나는 가수다] 출범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람이 가수 조영남이었다. [나가수] 제작에 대한 대중의 열화와 같은 관심과 환호와 달리 조영남은 "가수들 노래를 갖고 점수를 매겨서 떨어뜨리는 것은 덜 돼 먹은 생각" 이라면서 "노래 잘 하는 가수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선의가 있다고 해도 이런 프로그램은 예술에 대한 모독" 이라고 혹평했다.


조영남은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의 기획 자체가 미스컨셉션이라고 본것이다. 서바이벌 형식의 부작용이 오히려 프로그램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선의'보다 훨신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는 [나가수] 자체를 '예술에의 모독'이라고 표현햇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발언은 [나가수] 제작을 찬성하는 시청자들과 평론가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샀다. 조영남의 혹평은 부작용을 너무 크게 확대 해석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 의견의 일관된 골자였다.


대중문화 평론가 정덕현의 "[나는 가수다]가 가진 서바이벌 형식은 이미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순위 음악 프로그램에서 늘 가수들이 겪었던 일들이다."라며 조영남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성가수들이라고 해서 탈락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기성가수들은 탈락조차 시킬 수 없는 성스러운 권위의 존재들인가.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특권의식인가." 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당시 대부분의 시청자들 역시 정덕현의 의견을 지지했다. [나는 가수다]의 서바이벌 기획 자체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좋은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는 인정할 만하고, 무엇보다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가수들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는 것이 다수 시청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방송 3주 만에 조영남의 우려는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됐다. '국민가수' 김건모의 충격적인 탈락에 후배 가수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서 재도전 논란이 불거졌고, 이 와중에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틀과 룰이 망가진 것이다. 게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김영희 PD가 2선으로 물러나자 전반적인 구도마저 흔들리고 있다. 덧붙여 출연 가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양상을 보이며, [나는 가수다] 논란의 재도전 논란을 넘어서 '존폐 논란'으로 확산 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가수]의 거창한 기획 의도 역시 무참히 상처 받고 있다. 국민가수 김건모는 일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평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이소라 역시 프로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으며 자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재도전에 동의했던 후배 가수들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고, 앞장서서 재도전 운운했던 김제동은 천하의 몹쓸 놈으로 격하됐다. 가수들의 '빛나는 모습'을 담겠다던 기획의도와 달리 평탄히 노래 잘 부르던 김건모, 이소라 같은 가수들이 구설과 논란 속에 타격만을 입고 있는 것이다.


조영남이 [나가수]에 근본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서바이벌 형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작용이 가수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이 우려는 그대로 적중했다. [나가수] 논란이 터진 직후 네티즌들 사이에서 "꼴찌를 탈락시키는 시스템이 아닌 1등을 졸업시키는 시스템으로 변모해야 한다" 는 의견이 나온 것도 바로 서바이벌 형식의 부작용을 최소화 시키고자 하는 자정작용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정덕현은 [나는 가수다]의 시스템 자체가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시스템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했으나 근본적인 차이점은 간과하고 있었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 달리 [나가수]의 시스템은 1등이 아닌 '꼴찌'에 집중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탈락으로 이어지는 충격적 수순의 일환이라는 점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시스템은 지금의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에 부딪혀 있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이 프로그램 자체가 이미 미스컨셉션" 이라고 운을 뗀 뒤, "이미 자기 세계를 가진 예술가들 데려다 놓고 누굴 떨어뜨린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서바이벌 게임이 적용될 만한 영역에서 벗어나, 그 프레임을 적합하지 않은 영역에 옮겨 놓은 것 자체가 문제고, 그러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이라고 덧 붙였다. 이는 프로그램 시작 전 조영남이 던진 근본적인 우려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나는 가수다]는 PD와 가수들의 순수한 기획의도와 출연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바이벌 형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휩쓸려 좌충우돌 하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PD는 2선으로 후퇴했고, 가수들은 데뷔 이래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있으며, 대중 역시 그들의 음악이나 무대가 이닌 '재도전 논란'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음악과 무대는 뒷전이고 서바이벌 자체만 이슈가 되는 현 상황은 [나가수]의 기획의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정한 '아이러니'다.


TV-가수-대중 모두 '잘해보자'고 시작했던 [나가수]는 결국 방송 3주만에 프로그램 포맷 자체를 전폭적으로 변경해야 하는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과연 [나가수]는 지금의 논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기획의도대로 멋진 가수들의 멋진 '음악'만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안타까운 것 한 가지는 현 상황의 타개책이 딱히 분명히 보이질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가수들 역시 노래에만 집중하기엔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조영남이 옳았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는 가수다]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전적으로 김영희 CP의 판단미스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번 '재도전 사태'는 [나는 가수다]의 정체성을 뿌리채 뒤 흔든 최악의 한 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논란에 가장 큰 '욕'을 먹는 사람은 누가뭐래도 김건모다. 전성기 이후에 가장 오랜시간, 그리고 가장 크게 이슈를 불러일으킨 사건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네티즌들의 실망감과 짜증이 '재도전 논란'의 주인공인 김건모에게 완전히 옮겨 붙은 격이다.


그런데 이것 좀 이상하다. 비난의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너무 강하고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나치게 혹독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든다.




물론 네티즌들의 마음은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가수다]를 시청하면서 김건모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김건모의 충격적 탈락,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면서 나온 '재도전 수순'이 프로그램의 판을 단번에 흔들어 버릴 정도로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500인의 평가단과 TV 앞의 시청자들을 완전히 배제한 '그들만의 리그'는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고, 그 재도전 수순을 받아들이는 김건모의 태도 역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건모는 시종일관 자신이 탈락을 한 이유를 "립스틱 때문인가봐..."라며 한탄했고, 재도전 수순을 밟을 때에는 "후배들이 간절히 원하니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 변명했다. 탈락의 이유와 재도전의 명분을 모두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돌리는 패착을 저지른 것이다. 허나 어쨌든 립스틱 퍼포먼스를 보인 것도, 재도전을 선택한 것도 김건모 자신이다. 그렇다면 김건모는 최소한 변명같은 주절거림은 하지 않았어야 옳다. 그것이 김건모가 최소한 시청자들에게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방법이었다.




허나 김건모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 탈락의 이유도 '립스틱 퍼포먼스 때문에' 였고, 재도전의 이유도 '후배들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 이건 너무 비겁하고 치졸하다. 이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이 전파를 타자 시청자들이 '폭발' 했다. 20년차 가수의 책임감 없는 행동에 네티즌들은 매몰차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이건 아마 김건모도, [나는 가수다] 제작진과 출연지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 3회가 끝나자 인터넷은 '김건모 때리기'에 집중됐다. 각종 패러디가 쏟아졌고, 따끔한 충고와 비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가 사장되고, [나는 가수다] 논란만 살아 숨쉬었다. 그리고 이 논란은 방송된지 3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시청자와 네티즌들의 분노가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네티즌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는 커녕 점점 심화되고 있다. 특히 김건모에 대한 분노 표출 양상이 그렇다. 패러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비평이 비판을 넘어서 비난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고, 각종 루머로 얼룩지고 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금 무서워 질 정도로 혹독하고 잔인한데가 보인다. 이러다가는 [나는 가수다] 재도전 논란이 가수 김건모에 대한 '재신임' 분위기로 흐르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방송 종료 직후 김건모에 대한 비평은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준 태도와 자질 논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김건모의 과거 MBC 음악프로 출연 보이콧 사건이 현 상황위에 덧붙여졌고, 가수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커리어와 역량이 조롱과 비판의 대상으로 변질됐다. 여기에 각종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나는 가수다] 재도전 논란은 논란의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언어폭력' 혹은 '김건모 죽이기 게임' 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한 블로거는 김건모의 이번 사건을 두고 "김건모는 가수로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이 혹평에 동의를 한 네티즌들도 꽤 많았다는 것이다. 허나 고작 이 사건 하나로 가수 김건모가 '모든 것'을 잃을 정도라는 건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너무 자극적이고, 심하게 잔인하며, 쓸데없이 심각하고, 형편없이 날카로운, 비평 아닌 비난에 불과하다.


김건모가 이번 사건에 대처를 잘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 그의 커리어가 완전히 부정당하거나, 가수로서 그가 걸어온 20년 역사가 와장창 무너치고 상처받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김건모라는 가수가 너무 크다. 그가 남긴 족적과 업적은 너무 넓고 깊다. 작가 김수현의 말처럼 떨어지든 붙든 김건모는 어찌됐든 김건모다. 이번 사건 하나로 그의 존재가 완전히 폄하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그는 오롯이 열정과 재능으로 20년 가요계를 헤쳐온 인물이며, 그 누구보다도 노래 잘하고 음악을 즐기는 가수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한 책임은 분명히 있고 또한 20년차 가수답지 않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가볍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즐길수 있을만큼 꽉 차있다.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준 무대가 가수 김건모가 보여줄 수 있는 무대의 전부가 아니듯, [나는 가수다]의 실망스러운 김건모가 가수 김건모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국민가수' 김건모가 그동안 쌓아 올린 커리어와 음악적 도전에 대한 존중이다. 이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만 [나는 가수다] 논란에 있어서 김건모가 보여준 무대 매너나 태도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과 애정어린 충고가 나올 수 있다. 만약 이 자체를 부정해 버린다면, 그건 '너 죽고 나 살자' 식 천박한 이슈몰이와 다를 바 없다.


이 쯤에서 생각해 봐야한다. 과연 이번 [나는 가수다] 논란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이유가 [나는 가수다]의 폐지와 김건모의 가요계 은퇴를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 아닐 것이다. 대부분 시청자들이 그렇겠지만 아무도 [나는 가수다]가 폐지되고, 제작진이 물러나며, 김건모가 가수로서 모든 것을 잃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지금의 논란과 비판은 [나는 가수다]가 정체성을 찾아 제대로 된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고, 김건모가 국민가수로서 자존심과 명예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애정어린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판의 목적과 바람에 충실해야 한다. 곁가지를 붙여 쓸데없는 비판 거리를 만들고,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변질되서는 안 된다. 비판이 게임이 되고, 비난이 오락거리가 되며, '김건모 죽이기'가 웃음거리가 되면 될수록 [나는 가수다] 측도, 김건모도, 그리고 우리 대중들도 상처만 받을 뿐이다.


김건모는 잘못했다. 그러나 그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김건모는 경솔했다. 그러나 가수 김건모가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김건모는 비겁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와해될 정도로 비겁했던 것도 아니다. 무엇을 위해 비판을 하고, 무엇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가수다] 첫 회, 이소라의 멘트처럼 '국민가수'의 칭호를 얻는 가수는 흔치않다. 그러나 김건모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가수다. 언론 뿐 아니라 전문가들, 대중들도 20년간 그를 '국민가수'로 인정하고 불러왔다. 그렇다면 혼낼 땐 혼내더라도 20년간 우리 곁에서 즐겁게 노래 불렀던 국민가수의 자존심을 깔아 뭉개지는 말자. 이건 너무 잔인하고 혹독하다. 이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기엔 국민가수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누가 뭐래도 어쨌든, 김건모는 '김건모'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