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이 때,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영웅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타나서 불합리한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하고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도 뭔가 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직접 나서기엔 세상은 너무 험난하고 삶은 치열하지만, 정의롭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누군가라면 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실 그런 영웅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지금 자신 앞에 닥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힘이 가장 주효하다. 물론 역량을 펼칠 환경이 주어지는 것도 중요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주체적인 힘을 무시하고 극복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직접 스스로의 영웅이 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일상에 치인 나머지 그런 에너지를 쏟기에는 너무 지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나마 TV나 영화속 영웅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나도 쉽게 해내는 그들의 능력 속에서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대개 영웅은 출중한 능력을 바탕으로 남들과 다른 강직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고 절대 영웅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영웅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신개념 캐릭터다.

 

 

 

 

 

 

 

드라마 <김과장>속 김성룡(남궁민 분)의 꿈은 소박(?)하다. 10억을 모아 덴마크로 가는 것. 이유는 덴마크가 부정부패 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한 나라로의 이민을 꿈꾸는 김성룡이 돈을 축적하는 방식은 오히려 부정부패와 가깝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자금을 몰래 빼돌려 돈을 모은다. 그러나 결코 걸릴 정도는 아니다. 야금야금 티가 안날 정도로 몇 년에 걸쳐 모은 돈은 기껏해여 2억 정도다. 그가 회계를 맡은 회사는 한번도 세무조사를 받지 않을만큼 김성룡은 회계의 천재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도 그는 소심하다. 한 탕을 노리지도 않고, 일확천금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약간의 돈을 횡령하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공감의 포인트가 생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숱한 천재들을 마주한 우리다. 그러나 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도 저 정도밖에 활용을 못하는 캐릭터라니. 몸을 사리고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는 확실히 우리의 삶에 조금더 맞닿아있다. 천재라고 아예 동떨어진 세상에서 온 것같은 느낌을 주기 보다는 불법은 저지르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별 탈없이 사는 것이 목표고 결국에는 다른 나라로 떠나 안위를 찾으려는 속물근성은 어쩌면 그다지 보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비범한 능력을 최대한 평범하게 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정의감 따위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역시 평소대로 횡령을 하기 위해 입사한 TQ그룹에서 그는 의도치않게 의인義人이 되고야만다. 길바닥에 미끄러져 사람을 구한 것은 그의 이미지를 확정짓는다.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는 영웅대접을 받지만 얼떨떨하기만 하다. 그런 그가 TQ그룹의 비리와 마주치는 것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그런 불합리한 회사에서 ‘잘리고’ 싶다. 그러나 그를 쓰다 버리고 싶어하는 회사는 그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다니기 싫은 회사에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성룡의 피곤하고 비통한 표정은 폭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폭소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기에 우스운 것이다.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김성룡을 진정한 의인으로 만든다. 김성룡은 무서울 것이 없다. 회사에서 ‘잘리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제약이 없다. TQ그룹에 있는 불합리함을 마음껏 파헤치고 목소리를 높여도 그는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김성룡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정한 의인으로서 거듭난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유는 그가 천재적인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다. 그저 그가 회사에서 무서워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살던 그가 비범해지는 지점은 그래서 통쾌하다. 김성룡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직장에서 잘려서는 안되는 처지에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희망이 되어주는 것은 오히려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초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삶을 한 번쯤은 꿈꾼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어디서나 당당한 자신을 만나고 싶은 꿈. 평범한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고자 했던 평범한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원래 대단했던 주인공들의 활약보다 더욱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의 성공이 곧 평범한 직장인들의 로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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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너무나 뻔해 보였다. 남궁민, 남상미가 주연을 맡은 <김과장>은 이영애, 송승헌이 나선 <사임당-빛의 일기>(이하 <사임당>)보다 약체로 평가되었다. 이영애가 무려 13년만에 선택한 드라마라는 것도 그랬지만, 사전 제작 후, 방송시기를 조율하면서 수 년간이나 홍보에 열을 올린 드라마였기에 더욱 분위기는 <사임당>쪽으로 향했다. 이영애를 한류스타로 만든 <대장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며 사임당 첫 회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갔다.

 

 

 

 

여러모로 승기는 <사임당>쪽에 기울어 있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사임당>16.3%의 높은 시청률로 첫회를 시작했다. <김과장>의 첫회는 7.8%에 불과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김과장>이 사임당을 누르고 수목극 1위에 등극한 것이다. 사임당은 첫회 최고 시청률이 무색하게 연속 방영된 2회부터 시청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4회에 이르러서는 12.3%로 하락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점차 오르는 시청률과 점차 떨어지는 시청률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김과장> 공감을 무기로 날아오르다.

 

 

 

 

 

<김과장>은 판타지다. 돈에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주인공 김성룡(남궁민 분)은 한탕을 하기 위해 대기업 TQ그룹에 입사한다. 스펙이 없는 그가 무려 과장의 직위를 달고 회사에 입사하는 것 자체가 판타지다. 물론 그를 쓰고 버리고 싶어하는 음흉한 경영진의 음모가 숨어있기는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돈을 빼돌리려는 계획도 생각처럼 녹록치 않다. 오히려 그는 이제 퇴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퇴사마저 쉽지 않다.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을 해나가야만 하는 지친 김성룡의 표정에서 첫 번째 공감포인트가 있다.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지만 회사를 다녀야만하는 현실은 때로는 무겁게 우리를 짓누른다. 그 현실 속 상황을 <김과장>, 현실적이게는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만들어 유머를 제공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미생>은 아니지만, 정말 그만두고싶은데도 그만둘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웃음이 터지면서도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본의 아니게 불의와 맞서 싸우게 되는 김성룡의 처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리라는 기대감마저 형성하게 한다.

 

 

 

 

 

회사원의 지치고 힘든 일상부터 한탕주의에 물든 모습까지, 남궁민은 이 드라마 안에서 그동안 인정받아왔던 연기력을 다시 한 번 선보인다. 코미디에서 일상연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남궁민의 다채로운 모습은 드라마의 판타지 속에서도 공감대가 짙은 스토리 라인을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보고 있으면 빠져들게 되는 웃음과 회사에 대한 마음을 짚어주는 공감대, 그리고 그 회사에 통쾌한 한방을 날리는 카타르시스까지. 김과장은 흥행작의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내며 시청률 상승 곡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사임당> 공감보다는 억지로 점철된 스토리, 이영애만으로는 부족했다.

 

 

 

 

반면 <사임당>은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으로 과거의 사임당과 현대의 워킹맘의 의미를 연결시키려 했지만, 그 연결 고리는 어딘지모르게 억지스럽다. 굳이 현대와 과거를 교차시키는 구성으로 진행되어야 할 당위성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위기를 겪는 서지윤(이영애 분)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 사연이 과거의 사임당(이영애 분)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다. 현대의 서지윤은 대학교수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시간강사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의 캐릭터의 행동의 동기는 오로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있다. 예술가로서의 재능이나 어머니로서의 자세가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서 사임당을 떠올리기란 어렵다. 그런 그가 교통사고로 과거에서 사임당이 되어 눈을 뜨는 것 자체에 공감을 보내기란 쉽지 않다.

 

 

 

 

 

사임당의 캐릭터 역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다. 사임당의 예술가로서의 영역을 강조하기 위해 극중에서는 무려 살육전이 펼쳐진다. 사임당이 그린 그림을 건네받은 아이의 일가족이 그림 때문에 몰살당한다는 설정이 전개된 것이다. 더욱이 아이의 가족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며 당대 임금인 중종까지 가세한 살육의 현장은 사임당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보다는 민폐 캐릭터의 전형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사임당이 흠모하던 이겸과의 이별로 결론지어진 결말에 안타까워 하는 시청자가 얼마나 있을까.

 

 

 

 

사임당의 아역을 연기한 박혜수의 연기력 또한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말투나 감정 표현 모두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사임당 PD박혜수의 연기력은 재평가 받을것이라는 인터뷰를 했지만, 그 말에 동의하는 시청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당대의 예술가로 사임당을 그리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그 사임당의 업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려면 짜임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김과장>에서 주인공이 영웅혹은 의인이 되어가는 장면에 비해서 <사임당>위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결정적인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스토리부터 연기력까지 총체적인 난국을 보인 <사임당>은 대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점점 비난의 시험대에 오르는 모양새다. 스타 마케팅은 과연 초반에는 효과적이지만 그 후를 책임지는 것은 드라마의 탄탄한 스토리라는 진리가 <김과장><사임당>의 대결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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