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가 종편에서 드라마를 쓴다.
제목마저 김수현 스럽다. [무자식이 상팔자]. 그 누가 뭐래도 김수현이 가지는 필력과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어떤 사람들은 김수현의 드라마를 오만과 독선, 아집의 결정체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김수현만큼 드라마의 틀을 정립한 사람은 없었다.
김수현은 그 이름 자체로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김수현에게 주어진 '언어의 마술사-언어의 말장난이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시청률의 여왕' 이라는 타이틀은 그동안 무시할 수 없는 드라마 작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수현 덕분에 작가들의 힘이 세지고 커졌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런 김수현이 종편행을 택하면서 또 "방송쟁이 중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방송 종사자들의 일터가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라며 “시청률이란 숫자에 오매불망하는 사람도 아니고, ‘종편에서 볼만한 가족드라마 한편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말이 왠지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였을까.

김수현의 종편행의 이유, 원고료가 가장 크다!
물론 종편행을 무조건 덮어놓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금의 논리가 아직 유효한 가운데 종편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드라마 작가나 배우를 유혹하는데 당해낼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해 보라. 회사에서도 그러하지 않은가. 거래처나 손님을 가려서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기업이라고 무조건 안하겠다는 것은 이 시대에 말이 안되는 행위다.
배우들이나 작가들에게 그렇게 높은 도덕관념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외려 상당히 속물적인 일이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해도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불이익을 감당해야 한다는 시선. 그 시선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현의 종편행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김수현의 원고료는 회당 50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는데 종편에서는 스타 작가와 인기 스타들을 영입하기 위해 고료나 출연료를 상향 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현이 종편을 선택했을 당시 1억에 가까운 고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물론 다소 과장된 수치일 수 있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김수현의 고료는 5000만원+a 일 것으로 예측이 된다.
물론 그렇게까지 원고료를 주겠다는데 마다할 일은 아니다. 특히나 김수현 작가는 명실공히 드라마계 최고의 히트메이커다. 출세작인 [새엄마]로 시작해 [강남가족][안녕][수선화][청춘의 덫][사랑과 진실][사랑과 야망][모래성][사랑이 뭐길래][목욕탕집 남자들][불꽃][내사랑 누굴까][완전한 사랑][부모님 전상서][내 남자의 여자][엄마가 뿔났다][인생은 아름다워]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집필한 대부분의 드라마는 엄청난 흥행 신화를 써내려 왔다.

이 때문에 김수현의 드라마는 언제나 흥행을 보증하는 방송사의 절대반지였다. 내놨다하면 20%는 기본이요, 30%는 일상이라 할 정도로 시청률 면에서는 걱정이 없었다. 특히 김 작가는 주말가족극 뿐 아니라 미니시리즈에서도 능통했다. 88년 [모래성], 99년 [청춘의 덫], 2000년 [불꽃], 2003년 [완전한 사랑], 2008년 [내남자의 여자] 등은 예외없이 30~4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당해년도 최고 히트작으로 기록됐다.
이런 절대적인 시청률 수치를 바탕으로 김수현은 당대의 드라마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방송사 사장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막강한 문화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 그녀는 80년대에 이미 억대 원고료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2010년도부터 회당 5000만원이라는 초특급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시놉시스 없이도 드라마 편성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요, 원하는 시간대를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고, 연출자부터 배우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전반을 관장하는 전권 부여 역시 김수현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글자 하나하나에 혼을 실은 듯 튀어나오는 촌철살인의 대사와 마치 옆에 서 있는 듯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은 그대로 한국 드라마의 전형이 됐고, 한국 드라마의 상징이 됐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도, 만들지도 못했던 캐릭터들이 김수현의 손에서 나오는 순간 폭발적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을 우리는 다양한 배우들을 통해 지난 40년간 지켜봤다. 천재적인 필력과 재능은 김수현 드라마를 한 두번 왔다갔다 하는 시청률 표만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했고 이는 김수현의 드라마가 일정 수준의 '클래스' 를 가졌다는 의미를 지녔다. 드라마 작가 중 클래스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문화 평론가 조지영의 말처럼 "오직 김수현" 뿐이다.

김수현, 상업주의를 부정하지는 말아야
그러나 '장인' 김수현의 이면엔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업작가' 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김수현 스스로 "드라마작가의 좋은 점? 환금성이죠. 너무 속물적인가?" 라고 대답할 정도로 김수현과 김수현 드라마는 무수한 '돈' 들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 김수현이 누리고 있는 영광과 권력은 모두 돈에서 나왔고, 돈에서 시작했다. 최초의 억대 원고료 작가, 드라마 3편에 33억이라는 파격적 대우를 받는 작가는 국내 드라마 작가 중 김수현이 유일하다. 김수현이 걸어온 길에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 는 찬사와 '드라마를 상품화하고 끝내 자신마저 상품화 시켰다' 는 조롱이 함께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을 넘나들어온 김수현은 그 ‘높낮이’를 스스로, 동시에 방송 시스템 속에서 꾸준히 조절해왔다. KBS를 통해 방영할 때는 홈드라마나 주말드라마로 가족의 소중함을, SBS에서 미니시리즈·특별기획 등을 방영할 때는 불륜 등 극단적인 소재를 채택했다. 그 양날의 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김수현 드라마에 질리지 않게 만들었다.』
방송기자 이상훈의 김수현 분석론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 구절은 상업작가 김수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결국 김수현의 작품은 방송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상업 작품의 냄새를 강하게 띠고 있으며 그것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간에 어쩔 수 없는 돈의 논리로 직결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수현의 드라마를 두고 '고전' 운운하는 것은 사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고전은 고전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인 반면 김수현의 드라마는 '수요와 공급' 이라는 시장의 냉혹한 잣대에서 살아 남은 상업 작품에 더 가깝다. 이는 김수현 드라마의 본질적 한계이자 드라마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는 현실적 문제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수현의 이런 상업주의가 대부부은 통했다 할지라도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김수현 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이름값을 하지 못한 퇴장을 맞은 것 또한 김수현의 절대반지가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님을 증명하는 예가 아닐 수 없다. 뿐인가. 이미 김수현은 종편에서 [아버지가 미안하다]라는 3부작 드라마를 써냈지만 아무리 김수현이라도 종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할수는 없었다.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은 일정한 시청자층을 담보한 공중파 방송의 그늘아래서 성장했다. 김수현이 물론 시청률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맞지만 그것은 콘텐츠가 재밌다면 언제든지 방송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는 시청자층을 담보한 방송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였다는 것이다.
김수현이 간다고 종편 시청률이 널뛰듯 움직일거라는 예상은 섣불리 하기 힘들다. 그것은 이번 [천일의 약속]이나 [아버지가 미안하다] 같은 작품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지 않았는가. 김수현의 특기인 가족극이라는 점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담보하는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 작가의 위치 격상시켰지만...
상업주의는 결코 나쁘다고만 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김수현이 자신의 종편행을 "후배들을 위한 길 개척"정도로 미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현이 간다고 해서 종편이라는 방송사가 드라마 작가들과 배우들의 통로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청률이 안나온다면 "김수현도 어쩔 수 없다"는 평이 따를 것이고 시청률이 잘나온다면 "역시 김수현 정도가 아니면 살릴 수 없다"는 식의 시선이 나올 것이다. 후배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는 선택만이 유효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종편도 살리겠다는 김수현의 '특제 자존심'은 종종 외부 세계와의 소통에서도 잦은 마찰을 보여왔다. 그리고 그 자체가 바로 김수현의 '색깔' 을 대변해 왔다. 각종 평론가, 기자들을 '신뢰할 수 없다. 멋대로들이니까.' 라며 깎아내리며 굴복을 강요한다던가, 예우 차원에서 마찰이 일어나자 "다시는 이 쪽 보고 침도 안 뱉는다." 며 방송사를 '팽' 해 버리는 일을 우리는 김수현에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다소 오만하게 느껴지는 김수현의 이런 성격은 역설적이게도 사실 드라마 작가의 처우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허준][주몽] 등을 집필한 드라마 작가 최완규는 "김수현의 활약으로 작가들이 이 정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 이라며 오랜시간 방송작가협회 쪽 일을 김수현이 도맡아 하면서 판권 문제부터 시작해 작가의 이권에 관련 된 모든 일들을 담판의 형식으로 처리한 건 대단한 업적이라는 평을 남겼다. 영화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우리 쪽에 김수현 같은 작가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 이라는 푸념을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수현 스스로도 "나는 별로 친절한 사람이 못 된다." 고 회고할만큼 김수현의 독특한 자존심은 때론 오만과 독선의 칼날로, 때로는 투쟁과 진보의 업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아쉬운 것은 김수현 드라마의 인간들만큼이나 카랑카랑하고 서슬퍼런 김수현의 존재가 60이 넘은 노작가의 여유와 푸근함 대신 여전히 전쟁터를 진두지휘하는 냉철함만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김수현의 드라마에서 인간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투덜대는 것도 작가 김수현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김수현의 종편행마저 "후배들을 위한 길 개척"이라는 정당화를 할 수 있겠는가. 김수현이 종편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도 아직 미지수지만 종편을 살리는 일이 방송계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방송계의 전반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일인가 하는 점은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이제 그만 솔직해져야!
물론 김수현은 대단한 작가다. 그 긴기간동안 절대권력을 유지해온 작가는 김수현만이 유일하다. 김수현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한 평론가의 말처럼 '속물적 엄숙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작가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 김수현을 폄하시키는 주된 요인은 아닐까. 셰익스피어가 당시에는 상업주의의 대표적 작가였어도 현시대에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는 것처럼 김수현의 드라마 역시 시대를 대변한 한 트렌드로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수현 자신도 자신의 위치를 미화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다. 이제 그만 솔직해지자. "시청률 신경 안쓴다"는 김수현은 시청률 제조기였기 때문에 지금 대우를 받고 김수현 자신 역시 5000만원의 대우를 받으며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또한 종편행 역시 어마어마한 이 원고료가 없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일. "방송쟁이로서 책임감"은 그 다음 문제 아니었을까.
여전히 최고 대우를 받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김수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선택한 일을 다른 것을 위한 것인양, 책임감과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작가의 선량함으로 무장하는 것은 다소 어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