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은 광해군을 소재로 차승원 이연희 김재원등의 화제성있는 배우들과 서강준등의 주목받는 신예들을 캐스팅해 대작 드라마의 기운을 뿜으며 초반부터 화제 몰이에 성공했다. 그 결과 2회만에 <화정>은 월화극 시청률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SBS의 <풍문으로 들었소>가 상승세를 타며 다시 <화정>은 1위 자리를 내주었고, 본격적으로 정명공주역을 맡은 이연희가 등장하며 겨우 시청률 1위를 탈환했지만 0.1%차이에 불과해 엎치락 뒷치락 하는 상황이다.
시청률이 생각보다 실망스럽다는 점을 제외하고라도 <화정>의 내용 자체를 살펴보면, 기대작이었던 만큼 실망감도 큰 작품이다. 차승원은 <삼시세끼>라는 예능으로 호감도가 최상에 달한 시점에서 <화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1, 2회부터 ‘차줌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예능 속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광해군에 몰입한 차승원의 연기력에 탄복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화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역사 왜곡의 문제를 걸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화정>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광해군과 정명공주다. 그러나 작가가 좀 더 포커스를 맞추는 쪽은 정명공주의 스토리다. <화정>에서 정명공주는 일본에 노예로 끌려가 광산에서 일한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정명공주는 광해군이 폐모시킨 인목대비의 딸로, 인조반정 전까지는 공주로서는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때역시 궁안에서 살았던 임물로 ‘공주’의 신분으로 노예생활을 했다는 설정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뛰어넘어, 정명공주가 과연 재평가를 받을만한 인물인지에 관한 성찰 역시 필요하다. 역사에 따르면 정명공주는 이미 혼처가 정해진 정혼자와 혼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나중에는 백성들의 원망을 들을정도로 200칸 기와집에서 초호화 생활을 영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마디로 인조반정 전까지 인목대비의 폐위로 공주 신분을 잃었으나, 이후 공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삶을 마감한 인물인 것이다.
정명공주에게 과연 극적인 스토리가 있느냐도 문제지만 그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지나치게 현실과 다르게 만드는 것 또한 바람직 하지 못하다. 정명공주에게는 딱히 얻을 교훈도, 업적도 없다. 이를 무시하고 그가 대단한 역경을 딛고 자신의 힘으로 홀로선 여성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과연 옳은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광해군(차승원 분)이 폭군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역사에 의해 평가절하 된 임금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임금 중 하나다. 그러나 <화정>에서는 광해군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견지한다.
광해군은 영의정인 한음 이덕형(이성민 분)이 자신에게 반발하자 그를 살해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덕형은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유배 보내는 일 때문에 대립각을 세운후 탄핵되기는 했어도 살해 당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는 병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광해군이 병으로 죽은 것으로 꾸민다는 설정은 광해군은 물론, 이덕형의 죽음을 모욕하는 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결말로 향하는 과정은 창조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엄연한 사실을 바꾸고 왜곡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물론 사극 역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고 인물을 재구성하는 팩션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실제 있었던 명백한 사실을 바꾸면서 인물들을 망가뜨리려거든 차라리 ‘창작 사극’으로 방향을 잡는 편이 낳았다.
역사를 바탕으로 상에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거나 사료가 부족한 인물의 삶을 창조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만 실제 인물을 그리면서도 그 인물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 것은 작가의 역사관 부족이고 역량 부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뼈대는 유지하면서도 살을 붙이고 바꾸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되지만 그 뼈대 자체를 깨부수고 아예 모든 설정을 바꾸려거든 굳이 광해군이라는 실존 인물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크나큰 재미가 창출 되었느냐 하는 지점에서도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정도 역사를 바꿨으면 그 이상의 재미를 창출해야 하는데 신파조의 대사와 예상이 가능한 스토리 라인 선상에서 화정은 특별한 기운을 발산하지도 못하고 있다. 걸출한 배우들을 데려다가 이정도의 역사왜곡과 평범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삼시세끼>로 얻은 차승원의 호감도마저 깎아내리는 무리수 속에 <화정>이 어느정도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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