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누구도 성공한 인생이라 부르지 않는 주인공들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간다 해도 그 누구도 백화점 안내원, 해충 박멸회사 말단 직원을 두고 우러러 보지는 않으니까. 그들의 꿈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고동만(박서준 분)은 어릴 적 태권도 유망주로 태권도 국가 대표를 꿈꿨고, 최애라(김지원 분)는 여전히 아나운서가 꿈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이제 스펙도 없는 29살의 그들에게는 태권도도, 아나운서도 도무지 가능할 것 같은 꿈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 가슴 속에 숨어있던 열정이 꿈틀 거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박살나 볼 각오를 하고 다시 한 번 도전을 한다. ‘흙수저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멀기만 한 꿈, 그러나 젊음이 무기다.

 

 

 


그들의 무기는 젊다는 것 하나.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29살이라는 나이는 아직도 한창 때지만, 더 이상 세상은 그들을 젊게만 보지 않는다. 불가능한 꿈을 꾸지 말고 돈이나 벌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는 세상의 벽 앞에서 그들은 상처입고, 아파하고, 또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 쯤 실패해 봐도 좋을, 젊음이란 무기로 배짱을 부린다.

 

 

 

 

그들의 청춘이 재벌이나 천재성으로 덧칠해진 특별한 것이 아니기에, <쌈마이웨이>는 오히려 특별해진다. 드라마의 판타지를 이끌어 내는 수단인 ‘완벽남’은 이야기 속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청춘들이 있다. 수십번 넘어지고 눈물 흘리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내일을 준비하는 청춘이.

 

 

 


그런 청춘의 이야기 속 로맨스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화려한 데이트나 꿀같은 달콤한 밀어들로 채워지는 대신, 툭툭 내뱉는 독한 단어들과 직설화법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있는 정이 느껴질 때, 그런 단어들은 오히려 더욱 달콤하게 들린다. 옥상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해도, 그 소박한 데이트는 오히려 화려한 데이트보다 정감 있게 다가온다. 영화 한편을 위해 영화관을 통째로 빌리거나, 화려한 파티에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 따위가 없이도, 츄리닝(트레이닝복이 아니다)을 입은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쌈마이웨이>는 청춘의 단면을 정면돌파한다. 에둘러서 표현하지 않고, 취직도 어렵고 삶은 팍팍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현실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내일이 있고 꿈이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쌈마이웨이>는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판타지를 오히려 극대화 한다. 결국 고동만은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어 주목받고 최애라는 국내 최초 이종격투기 아나운서가 된다. 모두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꿈을 이룬다. 꿈을 꾸는 자들에게는 미래가 열려 있고, 그 미래를 여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청춘의 시련을 위해 등장한 설정들, 마무리가 아쉽다.

 

 


<쌈마이웨이>속 청춘들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들이 로맨스와 꿈을 쉽게 완성시키면 재미가 없는 까닭이다. 일단 남자 주인공의 전 여자친구인 박혜란(이엘리야)는 과거에도 수없이 고동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며 고동만을 흔든 여자다. 그는 재벌가와 이혼을 한 후 다시 고동만을 찾는다. 최애라는 겨우 마음을 연 남자가 사실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한다. 또한 아나운서 시험을 위해 향한 시험장에서 면접관에게 스펙에 대한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고동만은 처음 경기에서 과거 경쟁자였던 김탁수(김건우 분)가 섭외한 파이터에게 치욕스러울 정도로 처참하게 깨진다. 이들이 원하는 결과는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 최애라를 쫒아다니며 괴롭혔던 선배는 장경구(강기동 분)는 어떤 의도에선지 다시 나타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체불명의 집주인 황복희(진희경 분)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여자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들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이지만 드라마가 할 이야기의 초점은 빗나가고 만다.

 

 

 


 

끝으로 갈수록 악역들의 개과천선은 너무 허무하게 이루어진다. 백설희(송하윤 분)을 괴롭히던 남자친구 김주만(안재홍 분)의 어머니는 그 둘이 헤어졌다는 소식에 마음 아파하며 백설희에게 과거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하고, “예전의 장경구가 아니”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던 장경구는 갑자기 따돌림 당하던 딸의 모습을 보며 반성한 후,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타난 정의의 사도가 된다. 마지막회에 가서 풀어지는 황복희와 최애라의 모녀 상봉 역시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여기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잘 팔리는 백설희의 매실액 역시 갑작스러운 전개다. 그동안 뜸을 들인 것에 비하면 허무하다고 할 정도다.

 

 

 


뿌려졌던 ‘떡밥’들을 주워담기 위해 마무리 한 설정들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 급조된 느낌마저 들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악역이나 출생의 비밀은 이야기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이런 속도의 마무리라면 이야기는 굳이 16부작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8회 정도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대의 청춘에게 전해진 메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청춘들의 똘기’로 희망을 전하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똘기 한 번 안 부려봤으면 네가 MC가 되고, 내가 파이터가 되고, 백사장이 CEO가 됐겠냐.”며 “못먹어도 고! 사고쳐야 노다지도 터진다.”고 외치는 청춘들은 더 이상 흙수저가 아니다. 그들의 과거는 비루했을지라도, 그들의 꿈은 비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결국 ‘남들 뭐 먹고 사는지 안 궁금하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메이져다.’고 외칠 수 있는 청춘의 한 장면은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그런 메시지 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진다.

 

 

 


삶 속에는 좌절도 있고 절망도 있고 고난과 역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 속에서도 남아있는 것은 꿈과 희망이다. 어떤 이들의 꿈과 희망도 결코 무가치 하지 않다는 메시지 속에서 <쌈마이웨이>는 또 다른 방식의 청춘 로맨스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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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쌈, 마이웨이>(이하<쌈마이>)는 로맨틱 코미디다.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을 쌓아 나가는 알콩달콩한 과정을 달콤하고 쌉쌀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가 다른 로맨스와 다른 점은, 주인공 중 누구도 재벌이 아니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 주인공과 시청자들을 홀리기 위해 나타난 백마탄 왕자님(이라고 쓰고 재벌이라 읽는다)은 이 드라마에 없다. 그렇다고 출중한 능력을 갖춘 실장님도 없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도 없다. 그런데 이 드라마, 왜 이렇게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일까.

 

 

 


<쌈마이>의 독특한 분위기, 어디서 왔을까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고동만(박서준 분)과 여자 주인공 최애라(김지원 분)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다. 서로 욕설을 비롯해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편한 사이인 동시에 서로가 살아온 인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다. 왜 서로를 보면 갑자기 가슴이 떨리는지, 왜 서로가 그렇게 애틋하고 걱정되는지 그들은 그들의 감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쌈마이>는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없다’는 명제를 활용해 오랜 친구였던 두 사람이 점차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톡톡 튀는 젊은 터치로 보여준다. 그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서로를 위해 작은 배려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하다. 사실 내용을 따져 보자면 친구였던 두 사람이 연인의 감정에 가까워지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인데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청춘’에 대한 시선을 끼워넣는다. 그 시선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연애의 판타지 속에서도 현실에 발을 딛게 만드는 특별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력서에 쓰지 못하는 청춘의 삶 , 청춘의 마음을 울리다


 

 

<쌈마이> 8회에서 최애라는 평생 꿈이었던 아나운서 시험에 면접을 보게 된다. 이미 29살의 나이. 아나운서를 준비하기엔 늦었지만, 서류 합격만으로도 애라의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옷도 사고 머리도 바꾸며 면접을 준비한 애라는 긴장된 가슴을 누르기 위해 청심환까지 먹어가며 면접장에 선다. 그러나 면접이 끝날 때까지 면접관 누구도 애라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질문 없냐”는 마지막 면접관의 말에 애라는 “저한테 질문을 안 주셨는데요.” 라고 물어봐야 하는 처지다. 

 

 

 


 

한 면접관은 차갑게 말한다. “여긴 다 시간이 금인 사람들이라서. 우리 시간 뺏고 싶으면 25번 시간을 먼저 채워 왔어야지. 저 친구들이 유학가고 대학원가고 해외 봉사가고 그럴 때, 25번은 뭐했어요?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는 거죠.” 라고. 면접관들은 최애라라는 이름 석자를 부르지 않고 25번이라는 면접 번호를 부른다. 그들에게 그들은 번호로 매겨진 평가 대상일 뿐이다.


 

 

 

면접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초라한 대학 졸업장과 아르바이트 경험, 혹은 백화점 직원으로 일한 경력 따위가 아니다. 그들은 이력서에서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것을 보기를 기대한다. 수많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발군의 한 명을 뽑으려면 그만큼 합리적인 평가기준도 없다. 


 

 

 

그러나 “저는…돈 벌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애라의 한 마디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생각해 보면 유학, 대학원, 해외 봉사 모두 누군가에는 사치다. 당장 학자금 대출을 갚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춘에게 ‘너는 왜 유학도, 대학원도 봉사도 하지 않았니.’라고 묻는 것만큼 불합리한 일도 없다. 합리적인 평가를 가장한 불합리함에 그러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적어도 면접장에서 만큼은 ‘스펙’을 쌓지 못한 것은 핑계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돈을 벌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유학이나 대학원을 가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스펙을 쌓는 일은 누군가의,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유한 집안의 도움이 있을 때 훨씬 더 유리하다. 외국에 나가는 것도, 공부를 더 하는 것도 모두 큰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남들은 그 돈을 쓸 때, 애라는 열심히 돈을 벌었다. 돈을 벌었다는 애라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면접관들은 ‘돈을 버는 일에 대한 숭고함’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저 화려한 이력을 볼 뿐이고 그 이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숨겨진 집안의 스펙이라는 것 따위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면접을 본 다른 사람이 한 눈에도 부유해 보이는 차를 타고 마중 나온 엄마에게 달려갈 때, 씁쓸하게 웃던 애라의 나래이션이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없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보다 늦게 자는데도 시간이 없었다.

누구보다 빡세게 살았는데, 개뿔도 모르는 이력서 나부랭이가 꼭 내 모든 시간을 아는 척 하는 것 같아서 분해서, 짜증나서….

 

 

 


 

애라의 나래이션은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난한 청춘은 원하는 꿈을 골라 꿀 수도 없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동안 뭐했냐”는 차가운 일갈  뿐이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가 되는 것은 그만큼 뒤에서 지원을 해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이력서 한 줄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애라의 아픔은 단순히 게으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너무 불합리한 출발선에 대한 것이다.

 

 

 


 

처절한 현실 속 판타지는 극대화된다


 

 

 

이런 현실이 이 드라마에는 전반적으로 녹아 있다. 남자 주인공 고동만 역시, 태권도 국가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였으나, 태권도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꿈을 잃게 되는 남자 주인공은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목격했던 ‘범접 불가 재벌 2세’와는 그 결부터 다르다. 그러나 뒤늦게 격투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남자 주인공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처럼 꿈을 포기하고 별볼일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픈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쌈마이>는 청춘의 현실을 드라마에 녹였다. 그러나 로맨스만큼은 철저하게 판타지다. 이 양극단의 두 분위기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현실보다는 판타지다. 드라마는 철저히 판타지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를 끌어 들일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경기를 마치고 동만이 걱정돼 울고 있는 애라에게 다가가 “우는 것도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 주인공의 한 마디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엄청난 울림이 있다. 그만큼 설레는 포인트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는 얘기다.


 

 

 

마냥 구질구질하고 처절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며 마음을 주고 받는 친구인 듯 연인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김지원과 박서준이라는 예쁘고 멋있는 배우들에 의해 달콤한 환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환상은 현실이라는 무게와 적절하게 결합되어 무게 중심을 잘 잡는다. 두 사람이 처한 현실에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만, 그 현실이 있기에 두 사람의 연애는 훨씬 더 가슴을 붕 뜨게 만든다.

 

 

 


 

이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그들의 로맨스를 지지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커플들의 로맨스는 누구에게나 판타지지만, 그 판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구름위에 떠 있는 비현실적인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흙수저들을 이용해 진정성을 확보한 <쌈마이>의 영민함이 돋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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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이하<태후>)는 사실상 판타지에 근거해 만들어 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어느 군인도 전시 상황에 직접적으로 파병되지 않는다. 봉사나 의료등 원조 활동은 할 수 있어도 사람이 살고 죽는 상황에 투입되는 병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태후>의 배경이 된 우르크의 실질적 모델인 이라크에 한국군이 파병되기는 했으나 의료와 복구활동을 지원한 것이었다. 군 안에서 군인이 죽고 사는 문제는 전시상황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유시진(송중기 분)처럼 미국과 연합해 작전을 수행한다 해도 그들과 함께 전투 병력에 투입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국군과 미국군은 지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이었던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 분)과 친분관계가 있었다는 설정은 판타지에 가깝다.

 

 

 

 

대위를 헬기로 직접 데려온다거나 목숨을 담보하는 비밀공작원 같은 일을 군인에게 수행하게 한다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로 한국군의 상황이 과장되어 있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상의 판트지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여심을 흔들어야 하고, 보통의 평범한 군인으로는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다소 판타지에 근거해 있더라도 애국심을 기반으로 하여 나라를 위한 위험 인무에 투입되는 군인이라는 설정을 만들어 낸 것은 확실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여 다소 황당무계한 군인의 설정 자체를 설득력 있게 만들려고 한 흔적도 엿보인다. 일단 상황 자체가 판타지이기 때문에 군인 이라는 직업도 사실상 작가의 재창조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가 전체적인 완성도 역시 높은 드라마냐 하는 문제에는 쉽사리 그렇다는 대답을 내리기 힘들다. 총알을 수차례 맞고 피범벅이 되어 심정지까지 온 환자가 몇 번의 심폐소생술로 눈을 뜬 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돌아다니는 모습은 판타지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 리얼리티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리얼리티는 꼭 현실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정한 바운더리나 설정자체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드라마의 개연성이고 리얼리티다. 예를들어 외계인이나 초능력자 혹은 불사신이라는 설정이면 심정지 후 바로 살아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유시진은 현실에 없는 군인 캐릭터기는 하지만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 인간은 심정지 후, 아무렇지도 않게 작전을 수행할 만큼 강하지 않다. 의료 지식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의료진이 아닌 일반들마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상황 설정은 명백한 '드라마의 리얼리티' 위반이다.현실에 없는 우르크라는 지역, 그리고 현실에 없는 군인 캐릭터등은 작가의 상상력의 영역으로 치부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의료진의 자문마저 제대로 구하지 않는 어설픈 설정은 명백한 연출과 대본의 오류라 할만하다.

 

 

 

 

더 아쉬운 것은 <태후>가 사전제작 드라마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척박하기로 유명하다. 밤샘 촬영은 물론, 생방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촬영기간 등은 언제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일명 '쪽대본'이 난무하게 된다. 쪽대본은 작가가 대본을 미리 완성하지 못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쪽지 형식으로 그때 상황에 맞춰 전달되는 급조한 대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급조한 대본은 작가의 필력이나 상상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나아가 드라마의 질적 저해를 가져오는 없어져야 할 악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쪽대본이 존재할리 없던 '사전제작 드라마'에서 이런 쪽대본 스러운 막장 설정이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다. 충분히 사유할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전개과정이 어설펐다는 것은 문제 자체가 사전제작에 있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설정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스토리의 전반적인 구성이었다. <태후>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사실상 없다. 우르크에서 재난이 일어나고 문제가 생기지만 그 안에서 보이는 휴머니즘이나 전쟁에 대한 상처를 보듬는 드라마는 아니다. 13회에 이르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갑자기 이야기 전개는 북한군과의 스토리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전개가 펼쳐진다.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힘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이 너무 중구난방이다 보니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사실상 모든 사건은 유시진과 강모연(송혜교 분)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이미 그 둘은 사랑을 시작했고 문제는 그들이 사귀고 난 후다. 드라마에서 이미 이루어진 커플의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밀고 당기기를 하는 동안에는 유지될 수 있는 남녀사이의 긴장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극적인 상황자체가 필요하다. 그것이 서울한복판의 총격전이고 유시진의 총상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처리하면서 드라마의 후반부가 어그러지고 있다.

 

 

 

 

그동안 김은숙작가는 스타작가로 군림해 오면서도 마지막이 아쉬운 작가 중 하나기도 했다. <파리의 연인>이나 <시크릿 가든> , 높은 인기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조차 마지막의 마무리가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그 드라마들과는 다르게 사전제작인 <태양의 후예>조차 이런 평가를 듣는다는 것은 드라마 제작 환경 탓이 아닌 역량의 문제다.

 

 

 

 

 

이런 아쉬움은 <태양의 후예>뿐 아니라 <치즈인더트랩>(이하<치인트>)에서도 나타났다. 초반의 재미를 깡그리 앗아간 후반부의 전개는 여타 막장드라마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만큼 시청자들의 야유를 받았다. 기승전결이라는 드라마의 기본적인 구성을 무시한 채, 이야기의 중심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문제점은 도저히 사전제작이라고 보기 힘든 엄청난 오류였다.

 

 

 

 

 

쪽대본으로도 퀄리티가 낮아지고 사전제작으로도 퀄리티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한국 드라마가 가야 할 방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중국자본의 힘을 빌어 <함부로 애틋하게><사임당,허스토리><보보경심:><화랑 더 비기닝>등 사전제작 드라마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사전제작의 퀄리티를 담보할 수 있을까. 물론 <시그널>처럼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환호를 불러일으킨 드라마들도 있다. 사전제작은 분명 한국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전제작 안에서 그만큼의 꼼꼼한 자기 점검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충분히 살리지 않는다면 끝으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드라마의 결말을 보게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님을, 몇몇의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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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전부터 화제를 몰고 온 <태양의 후예(이하 <태후>)>는 첫 회부터 14%라는 높은 시청률로 시작한 후, 방송 단 7회만에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가히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은 물론, 중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제작 드라마의 성공적인 예시를 남기며 놀랄만한 기록을 계속 써내려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태후>의 성공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로맨스 드라마로 흥행불패신화를 써온 김은숙 작가의 극본에 송중기 송혜교라는 톱스타의 캐스팅, 거기다가 해외 로케이션과 사전제작, 재난을 소재로 삼은 스케일까지. 130억을 들인 드라마 답게 모든 것이 블록버스터 급으로 휘몰아쳤다.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류 스타들이 출연하는 블록버스터 멜로. 도저히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첫회부터의 높은 시청률은 이런 관심을 방증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재난을 핑계삼은 로맨스가 그럴듯하다라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과정은 빛의 속도로 전개되지만 맹목적인 남자 주인공의 사랑이 여심을 흔들었다. 강단있고 당찬 여자 주인공 역시 매력적으로 묘사된다. 얼굴만 봐도 황홀한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김은숙 작가의 재기발랄한 터치로 섬세하게 묘사해 냈다. “난 지금이 제일 설레여요. 미인이랑 같이 있는데 불꺼지기 직전.”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되게 보고싶었는데. 무슨 짓을 해도 생각나던데.” 같은 송중기가 아닌 남자가 감히 시도조차 하기 힘든 민망한 대사들의 폭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 민망함을 극복할 만큼의 케미스트리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누구보다 배우를 잘 활용하는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과연 그들이 대사를 하니 부끄럽긴 해도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이미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에게 빠져든 여심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잘생겼고, 체력 좋고, 애국자에다가 한 여자만 보는 완벽한 남자를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재난 로맨스가 아니라 재난을 핑계삼은 로맨스는 그렇게 불타오르고 있고 앞으로도 그 불꽃은 유효할 확률이 높다.

 

 

 

그런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에 눈물을 머금어야 하는 것은 바로 경쟁작들이다. <태후>와 동시간대 방송을 시작한 <돌아와요 아저씨(이하 <돌저씨>)>는 첫 회부터 한자릿수의 시청률을 반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떨어진 5%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돌저씨>가 확실히 시청자들의 호평을 들을만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각각의 사연을 안고 죽음을 맞이한 김영수(김인권)와 한기탁(김수로)이 천국으로 향하던 중 다시 이승으로 떨어져 현세로 역송 체험의 기회를 얻고, 다른 사람 몸에 빙의가 된 채, 자신들의 사연을 풀어 나간다는 내용으로 일본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과 드라마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드라마의 흥미도가 원작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김영수가 빙의한 이해준을 연기하는 정지훈()은 다소 코믹스럽고 과장된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한기탁이 빙의된 한홍난을 연기하는 오연서역시 <왔다! 장보리> <빛나거나 미치거나> 등에서 보여준 연기 이상을 보여주며 오연서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예뻐보이려 하지 않고 망가지는 오연서의 코믹 연기는 확실히 그의 색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한다. 그러나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로맨스와 블록버스터가 결합된 <태후>는 처음부터 끝가지 <돌저씨>에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들어갔다. 시청률 반등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시청률이 주요한 지표가 되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낮은 시청률은 호평으로 이어진다 해도 초라한 퇴장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하 <굿미블>)>의 경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일단 <태후>가 너무 큰 승기를 잡은 후에 방송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굿미블>의 대진운은 좋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첫회가 방송되었을 뿐인 <굿미블>은 한 남자가 복수를 결정하게 되는 과정을 스피디하게 전개시키며 상당한 몰입도를 보여주었다. 사랑스러운 문채원의 연기나 여심을 저격하는 이진욱, 악역을 맡아 호연을 보여준 김강우까지 배우들의 합과 연기 역시 뛰어나다.

 

 

 

그러나 <태후>와 같은 로맨스면서도 <태후>와는 다른 분위기의 복수극인 <굿미블><태후>에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더 큰 화력이 필요하다. 주인공들의 로맨스와 전체적인 내용의 구성이 시청자들의 감정을 사로잡고 흥미를 돋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태후>의 송송 커플을 뛰어넘을 만한 화제성 역시 절실하다.

 

 

 

<태후>의 승기는 예상된 일이었지만 강력해도 너무나 강력하다. 과연 이 불리한 경쟁구도 속에서 <돌저씨><굿미블>이 어떤 드라마로 남을지 그 결과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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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작가는 그동안 그가 썼던 모든 드라마들을 동시간대 1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작가다. 50%가 넘었던 <파리의 연인>부터<프라하의 연인>, <연인>, <온에어>,<시티홀>,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등의 작품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김은숙 고유의 이름을 드높였다.

 

 

김은숙 작가의 장점은 본인 스스로 말했듯, 평범한 내용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능력에 있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왕자님 판타지를 자극하는 순정만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김은숙 작가는 그들의 캐릭터에 독특한 개성을 불어 넣을 줄 알고 통통튀는 대사로 장면 장면을 집중하게 만들 줄 안다. 대중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첫 회가 방영된 <상속자들> 역시 김은숙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직 초반일 뿐이지만 러브라인과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재벌남과 가난한 여자라는 공식에 그들이

 

 

맞게 될 험난한 고난과 역경조차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자들>이 기대되는 것은 요새 ‘핫’하다는 청춘스타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캐릭터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필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속자들>의 첫 회는 생각보다 지나치게 평범했다.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캔디형 캐릭터에 직설적이고 할 말 다하는 특징을 더했지만 여주인공은 <시크릿 가든>의 액션배우, 길라임(하지원)보다 매력적이지 못하고 전형적인 재벌남에 상처를 가진 남자 주인공은 틀에 박힌 캐릭터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2회가 기대될 정도의 흡입력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를 꼽자면 그들의 극중 나이다. 극중 인물들은 이제 겨우 18살. 고등학생의 탈을 썼다. 그러나 배우들이 그 정도 나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박신혜나 크리스탈, 박형식 정도는 몰라도 주인공인 이민호만 해도 20대 중후반인 나이다. 고등학생의 풋풋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우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결코 철없는 고등학생으로 보이기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최원영, 윤손하등의 젊은 배우들이 벌써 고등학생의 부모님 역할을 맡은 것 역시 감각적이기 보다는 어색해 보인다. 그들은 잘 봐줘도 그들의 삼촌, 이모 벌 이상의 비주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꽃보다 남자>에 이어서 다시 고등학생을 맡았고 김우빈 역시 <학교2013(이하 학교)>에 이어 다시 고등학생 역할을 맡았다. 그들의 외모가 그 시점에서 현저히 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작품들과 <상속자들>속의 설득력은 차이가 있다. <꽃보다 남자>나 <학교>같은 경우, 아예 고등학교가 주 무대였다. 고등학교 속이라는 전제와 배경이 깔렸을 때, 그들의 실제 나이는 캐릭터 속에 좀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다. 그러나 <상속자들>속의 김탄(이민호)나 최영도(김우빈), 여주인공인 차은상(박신혜)까지 그들이 고등학생이어야 하는 당위성은 찾기 힘들다. 교복이나 학교는 등장하지 않았고 그들의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해 방학이라는 전제를 내세웠다. 방학에도 보충수업을 나가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은 그곳에 없었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표현하는 무대는 학교가 아니다. 굳이 학교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캘리포니아에 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아몬드를 실컷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같은 감각적인 김은숙 작가의 대사톤은 도저히 18살의 그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들이 대학생인 설정이 나았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18살에는 18살의 고민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뛰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든 캔디의 엄마는 통장에 800만원이나 가지고 있는 재벌집의 가사도우미다. 굳이 여주인공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 성인이 되기도 전에 미국으로 도피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설정이 필요했을까 싶어지는 지점이다. 그것은 드라마의 대사처럼 ‘너 고등학생 맞냐?’라는 의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고등학생이라는 배경이 별로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 우겨넣은 고등학생이라는 설정은 장면 장면을 튀게 만들 뿐이었다. 실제로 김우빈의 반항심을 표현하기 위해 넣은 왕따 장면은 김우빈의 나이가 실제 고등학생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것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아무리 부인해도 <상속자들>은 미국 드라마 <가십걸>이나 <the O.C>같은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의 고등학교와 한국의 고등학교는 그 본질 자체가 다르다. 더군다나 미국 드라마 속에서도 고등학교는 중요한 무대로 등장한다. 그들이 10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학교 속에서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설정을 통해 좀 더 그럴 듯한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이 비록 현실은 아닐지라도 ‘고등학생’이라면 고등학생의 느낌이 드라마 안에서 충분히 표현되어야 한다. <상속자들>은 그걸 놓쳤다. 결국 그들의 나이는 그들의 이미 성숙해져 버린 얼굴과 행동덕분에 오히려 어색한 설정이 되고 말았다. 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그것은 앞으로 그들이 보여줄 세계가 그들의 나이를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흥미로울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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