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다. 누구도 예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능은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아니다. 그저 한순간 몰입하고 재미를 느끼면 그것으로 예능의 가치는 유효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예능을 보며 웃고 감동하고 설렜던 모든 감정들이 ‘가짜’라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시청자들이 그 장면에 몰입한 그 순간만큼은 시청자들 역시 아낌없는 진짜 감정을 쏟아낸다.

 

 

 


리얼리티 예능은 시청자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을 더욱 ‘진짜 스럽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실제로 출연자들이 고생할수록,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할수록, 서로 주고받는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할수록 화제성과 시청률이 올라간다. 그런 화제성을 담보하기 위해 제작진들은 더 ‘리얼’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그러나 쏟아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연애 리얼리티’ 만큼은 어쩐 일인지 열띤 호응을 얻기가 힘들다. <우리 결혼했어요>(이하<우결>)로 대표되는 연예 리얼리티 예능은 서로의 감정이 진짜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결국 그들은 촬영이 끝나면 제대로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주고받았던 감정들이 결국 진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프로그램 형식에 많은 사람들은 싫증을 느낀다. 제작진들은 끊임없이 두 사람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실제 감정에서 기인한다고 열변을 토하지만 결국 그들은 비즈니스 관계와 계약서로 묶인, 길어야 1년이면 헤어질 시한부 커플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제작진은 '리얼'이라는 전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 리얼이 사라지는 순간 그나마 남은 예능의 가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 귀에 캔디>(이하 <캔디>)는 오히려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확보했다.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서로에게 오히려 더 편하게 다가가게 한다. 반말을 해야하고, 별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그런 지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렇기에 굳이 연애 감정이 아니라도, 그들은 서로에게 ‘힐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상대방의 정보를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준기의 <캔디>는 달랐다. 이준기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감정이 생긴다며 마치 시작되는 연인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1.

“(이태리의 멋진 풍경을 보며)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멋진 곳에 와서 사랑을 맹세하지 않으면 어디서 하겠어? 이루어질 수밖에 없겠네.” (이준기)

“나는 정말 좋은 곳은 아껴두고 있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갈 곳도 있어야 하니까.”

(박민영)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남자도 가능하잖아. 여기 같이 올라오자. 곧 기회가 된다면 같이 올라와주겠니?”(이준기)

 

 


2.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하며)되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울 것 같아” (이준기)

“어 나 되게 섹시하게 생겼는데? 되게 섹시하고 요염하고 뇌쇄적으로 생겼는데?” (박민영)

“너무 흥분해서 (휴대폰 키패드)눌러버렸어. 상상해버렸잖아.” (이준기)

 

 


3.

“근데 이 통화를 만약에 한달 코스로 하게 되면 진짜 연애 할 것 같다.” (이준기)

 

 

 


4.

 “통화를 하는 동안 설렜던 적이 있었어? 나인걸 알아서 좋았어?”(이준기)

 

 

 


5.

 “이번 여행이 끝나면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원래 절실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대. 나한테 절실해줘.” (이준기)

 

 


위의 사례처럼 이준기가 쏟아냈던 달콤한 말들은 시청자는 같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발언들이 모두 ‘가짜’였다니. 적어도 리얼리티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그 감정들이 가짜라고 하더라도 들키지는 말았어야 했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고, 방송이 완벽하게 진짜는 아니라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지만 전혜빈과의 열애를 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린 상황에서 이런 발언들이 마음에 와닿을 리 없었다.

 

 


다시 말해 이런 장면들은 이준기가 ‘열애’를 ‘숨겼기에’ 가능한 장면들이었고, 열애중이라면 그런 장면이 성립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예능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예를 들면 <나 혼자 산다>같은 프로그램에는 룸메이트가 있는 인물이 출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가 사실은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면? 그 때도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논리가 통할까. 마찬가지로 적어도 남녀 관계를 기준으로 제작되는 예능은 서로 ‘솔로’라는 전제일 때 촬영이 가능하다.

 

 

 


<우결>촬영당시 열애설이 불거졌던 오연서나 김소은 역시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 했던 것 역시 그런 기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연서는 처음에는 열애를 인정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결국 나중에 열애를 부인했지만 오연서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고, 김소은은 열애를 처음부터 부인했지만 그 후에 집중도는 현격히 떨어진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열애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애 중임에도 ‘연애 리얼버라이어티’에 출연하는 것만큼은 자중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예능의 전제 조건을 무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거짓이라는 전제가 깔린 드라마나 연극이 아니라 ‘리얼’을 강조하려면 시청자에게 그 정도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

 

 

 


이준기가 더욱 아쉬운 것은 <캔디>는 두 사람의 관계가 꼭 ‘연인 같은’ 관계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캔디>같은 프로그램에 여자친구가 있으면서도 출연한 것 까지는 넘어간다고 해도 충분히 서로의 관계를 보다 담백하고 깔끔하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굳이 ‘연인 사이의 감정’을 주고 받으려는 느낌을 줘야 했을까.

 

 

 


결국 <내 귀의 캔디>는 이준기와 박민영의 화제성에 힘입어 편성하려던 ‘비하인드 스페셜 방송’을 “예의가 아니다”며 취소했다. 드라마도 아닌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소위 ‘썸을 타는’ 상황까지 이해해 줄 정도로 이준기와 전혜빈의 사이가 쿨한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을 거절할 수도, 혹은 프로그램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었던 이준기에게 실망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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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의 <삼시세끼>는 또다시 10%가 넘는 시청률로 성공적인 귀환을 알렸다. 나PD의 전작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이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것을 두고 <삼시세끼>의 흥행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또다시 <삼시세끼>를 선택했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동성임에도 묘하게 부부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손호준과 남주혁은 형제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예능에 적용해 밥을 먹고 그 삼시세끼를 때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고즈넉한 분위기로 잡아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삼시세끼>에는 웃음 포인트가 없다. 다만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속에서 주고 받는 감정과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모이면 생겨나는 관계망을 가족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내고 그 가족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낸 것만으로도 <삼시세끼>는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이전의 <삼시세끼> 시리즈를 통해 차줌마, 참바다 등의 캐릭터를 이미 만들어 놓은 차승원과 유해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그러나 독설도 자극도 없는 <삼시세끼>가 또다시 성공이라는 이름을 거머쥔 것은 단순히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빚어내는 ‘편안한’ 분위 때문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차승원에게 손석희는 이런 말을 한다. “<삼시세끼> 속 차승원은 좋은 사람 같다.”. ‘좋은 사람’은 <삼시세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메뉴를 선정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차승원과 그 과정을 묵묵히 돕는 유해진.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손호준과 남주혁은 모두 ‘좋은사람’으로 묘사된다. 어느 누구 하나 반항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좋은 사람들의 끼니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예능에는 의미가 생겼다. 바로 ‘힐링’이라는 의미다.

 

 

 

현대인의 각박하고 바쁜 삶 속에서 힐링은 꽤 영향력 있는 화두가 되었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예능 역시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조용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예능역시 그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TVN이 새롭게 선보인 예능인 <내 귀의 캔디> 역시 힐링이라는 화두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중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성과의 통화를 통해 설레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얼핏 그동안 답습해 왔던 가상 연애 프로그램의 변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생각보다 진솔하게 와 닿는다. 서장훈의 ‘캔디’였던 윤세아가 흘린 눈물은 그들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주고받는 대화가 오히려 더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그들이 진정으로 감정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화면상에는 그런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사실이다. 삶이란 생각보다 간단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참으로 복잡해 보인다. 마음 속에 상처와 아픔이 있어도 섣불리 내보일 수가 없다. 핸드폰 전화번호 목록을 아무리 뒤적여 봐도 내 마음을 토로할 사람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친한 사람들은 있지만,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어색하고 민망한 나의 진짜 속마음은 오히려 상대방의 정체를 모를 때, 더 쉽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마음을 연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를 구하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그런 상황에서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이 따듯한 위로를 건네고 자신의 아픔도 이야기 해 주며 나에게 공감해 준다. 그것은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설렘보단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에게 받는 위로. 그런 위로가 때로는 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따듯한 위로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 것만으로도 예능의 가치가 생겨난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예능은 이제 단순히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따듯한 위로를 건네는 방식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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