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여성조차 반할만큼 멋진 여성을 일컫는 ‘걸크러쉬’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우리 사회에 ‘강한 여성’에 대한 환상이 자리잡은 것을 넘어 새로운 여성상으로서 발돋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순하고 가녀리고 유약한 것들이 여성들을 대변한다고 여겨졌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말을 직설적으로 내뱉고 각종 운동에 능하며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듬직하기까지한 여성상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센언니’라는 애칭이 생겨날 정도로 강한 여성에 대한 열망이 생겼고, 그런 이미지를 소비하는 수요도 늘어났다. 서인영은 ‘센언니’의 이미지로 살아남은 스타중 하나였다. 서인영의 화법은 직설적이다. 싫은 것은 싫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한다. 자신의 취향이 뚜렷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물질적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옛날에는 ‘된장녀’ 쯤으로 비하당했던 자기 과시적 소비 여성의 이미지를 ‘신상녀’라는 이름으로 탈바꿈 시켜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했던 것이 바로 서인영이었다.
서인영은 한 켤레당 수십,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구두를 수백켤래 가지고 있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새로나온 제품을 뜻하는 ‘신상’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으며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어필한다.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당시, 서인영의 웨딩사진에는 수십켤레의 구두를 늘어 놓고 포즈를 취하는 서인영과 크라운제이의 모습이 담겼다. 서인영은 “내가 마음대로 내 물건을 사는 것이 뭐가 문제냐”라는 식의 이미지를 고수했고, 대중도 그에 호응했다. 그의 소비는 당당한 것이 되고 그의 직설적 화법은 ‘쿨’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서인영의 신상녀 이미지는 그리 오래 소비되지 못했다. 연예인 서인영으로서 킬힐 이상의 매력 포인트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가수로서의 이미지로도 예능인으로서의 이미지로도 ‘신상녀’ 이상은 서인영에게 없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은 더 늘어났고, 그들은 서인영보다 더 독보적으로 자신들의 캐릭터를 어필했다. 그들은 심지어 재밌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제시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나 지금 할말있어요”라며 불만을 랩으로 터뜨리는 장면은 해당 프로그램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 동시에 제시의 캐릭터를 확고히 했다. 제시의 뛰어난 랩실력은 물론 그 캐릭터를 유지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러나 서인영은 그런 ‘결정적인 캐릭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를테면 이효리가 가수로서의 성공을 넘어 예능에서의 솔직하고 화끈한 캐릭터로서 어필한 것과는 다른 모양새였던 것이다. 이효리는 재치있는 말솜씨와 능청스러운 행동으로 각종 예능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서인영에게는 그런 파급력이 없었다. 그 이유는 모든 예능이 ‘신상’을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뷰티 프로그램에서는 서인영이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여타 예능에서의 활용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고 당당한 것은 좋았지만 그 이미지는 새로운 옷이나 구두 뒤에 숨어 있었다. 서인영은 신상녀 이미지를 바탕으로 각종 예능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신상녀의 이미지를 뛰어넘은 보편적인 캐릭터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가수로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대중은 서인영을 추앙하지 않았고 TV는 서인영을 원하지 않았다.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서인영은 침체기를 걸었다.
그런 서인영을 다시 화제의 연장선상에 올린 것은 바로 크라운제이와의 재결합이었다. 과거 <우결>커플이 시간이 흘러 다시 가상 결혼 프로그램인 <님과 함께-최고의 사랑>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꽤나 그럴싸한 홍보전략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재결합은 그다지 대중 소구력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서인영은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신상녀였지만, 이젠 센언니의 의미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이제 센언니는 단순히 직설적이고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뛰어넘어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불만 없이 자신의 몫을 해내는 알파걸로서 소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진짜사나이>의 이시영이 그렇다. 남자 출연자들보다 때로는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결코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털털한 모습으로 용기를 복돋아주는 이시영은 <진짜사나이>이후 <삼대천왕>의 고정 자리를 꿰차는 등, 예능으로 소비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서인영의 ‘신상’은 이미 과거에 그 이미지의 확장이 불가함을 증명했다. 그 이미지가 다시 소비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도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서인영의 ‘직설화법’은 걸크러쉬라는 단어보다는 본인위주의 푸념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강했다. 재치있는 한마디가 아니라 꼭 자신의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직설’은 결코 ‘센언니’로서 소비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욕설논란에 휘말린 것은 치명타다. 어느정도 콘셉트로 여겨질 수 있는 그의 이미지자체가 실제 서인영의 성격과 합일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콘셉트로서는 어느정도 용납이 가능해도 실제 모습으로서의 아집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욕설을 내뱉으며 ‘폭발할 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서인영의 모습은 그의 지금까지의 활동에서 보여줬던 모습마저 곡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소속사는 이에 대해 ‘감정적 태도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예원의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위기를 모면하려는 변명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대응은 최선이었다. 그러나 이 사과는 스태프 중 하나가 썼다는 서인영의 ‘갑질 논란’ 글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과조차 서인영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서인영이 직접 논란에 대해 말했어도 사실 결과는 달라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서인영에게는 낙인이 찍혔다. ‘센언니’가 아닌 ‘못된 언니’는 돌팔매질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