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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0 방송사의 묻지마 개편, 유재석-강호동도 '파리목숨'

 

 

예능계에 때 아닌 칼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다. 각 방송사가 너나 할 것 없이 주중, 주말 예능에 대한 대대적 수술에 들어간 모양새다.

 

 

물론 정리 대상 1순위는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런데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방송사의 개편 시도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미덕사라진 예능계

 

 

신생 예능 프로그램이 확고히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적어도 6개월, 많게는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국민 프로그램이 된 <무한도전>, 1인 토크쇼의 새 장을 열었던 <무릎팍 도사>, 집단 토크쇼의 최전선에 서 있는 <라디오 스타>, 일반인의 고민을 대상으로 월화 최강자로 올라선 <안녕하세요>도 모두 오랜 시간 숙성되고 진화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방송사의 행보에는 이러한 기다림의 미덕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졌다. 짧게는 4, 길게는 8주 만에 신생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없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강호동이 야심차게 론칭한 KBS <달빛 프린스>는 방송 8주 만에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매주 변화를 시도하며 시청자들과 거리감을 좁히고 있었지만 개편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국민 MC 강호동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MBC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심혜진, 황신혜 등 여배우들의 집단 MC 체제로 관심을 받았지만 경쟁작에 비해 시청률이 저조하자 바로 폐지대상 1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출연하는 배우들조차 미처 알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인 폐지 결정이었다. 정준하를 투입하고 포맷을 변경하는 등의 극약처방도 소용이 없었다.

 

 

오랜 시간 공고한 마니아층을 쌓아 오며 저력을 인정받은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시청률이 저조하다 싶으면 윗선에서부터 폐지’ ‘멤버 교체등 극단적인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유재석이든, 강호동이든, 이경규든간에 말 그대로 파리목숨이다.

 

 

작년 아쉬움 속에 끝난 MBC <놀러와>는 그 대표적인 예다. 유재석-김원희 콤비가 장장 8년여간 진행해 온 프로그램이었지만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폐지가 결정됐다. 한창 나름의 시도를 통해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터라 아쉬움이 컸다. KBS <남자의 자격>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여러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남자의 자격>은 여전히 회생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너무 섣부른 결정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폐지 결정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제작진이나, 출연진에게 너무나 일방적으로 통보된다는 사실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처럼 미처 준비 할 새도 없이 프로그램과 이별하는 일이 너무 잦다. <놀러와>처럼 종영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쫓겨나듯 자리를 뜨는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큰 허탈감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방송은 시청자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시청자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시청률이 3%, 4%든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이 있었다면 최소한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주고 정중한 인사를 올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프로그램을 떠나 보내는 시청자도, 프로그램을 떠나는 제작진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

 

 

 

대책 없는 개편, 문제 없나?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묻지마 개편이 별다른 대책이나 후속조처 없이 막무가내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러와>를 폐지시킨 MBC는 한 주 만에 <배우들>을 급조 편성해 방송했고, <배우들>이 부진하자 이번에는 <나는 당신의 대리천사>를 후속 프로그램으로 집어넣었다. 장기적인 안목이나 치밀한 기획은 사라진지 오래다. 시청률이 저조하면 폐지하고, 가능성이 있으면 끌고 가는 주먹구구식 편성만 남았다.

 

 

KBS 역시 마찬가지다. 4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인기를 끈 <남자의 자격>을 폐지하면서 설날 특집쇼로 한 번 방송됐던 <맘마미아>를 후속작으로 선택했다. <붕어빵><아빠 어디가> 등의 가족 예능이 인기를 끌자 이에 편승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묻어가기 행보. 4년 전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아저씨들의 리얼 도전기같은 혁신과 도전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시청률과 수익 창출에만 급급한 방송사의 이러한 행보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건 역시 시청자들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만한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되기 힘들어졌을 뿐 아니라, 방송사 입맛대로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면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예능계는 지금보다 더 깊은 침체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해도 모자랄 마당에 남은 시청자들마저 쫓아내는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들은 예능이 드라마를 능가하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2007년부터 2010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예능계는 <무한도전><12><남자의 자격><패밀리가 떴다><무릎팍 도사><놀러와><라디오 스타><강심장><스타킹>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한데 어우러져 나름의 개성과 색깔을 충분히 드러낸 시기였다. 다른 프로그램들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시청자들을 규합해 낸 것이다. 여기에는 방송사의 뚝심 있는 기다림과 전폭적인 지원이 큰 몫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2의 무한도전, ‘2의 무릎팍 도사도 나오기 힘들다. 도전의식과 모험정신은 거세되고 수익만 좇는 얄팍한 상술이 미덕으로 강요받는 시대에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질리 만무하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리지 못하겠다면 진보와 혁신의 정신만은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기다림의 미덕도, 변화의 의지도 없는 예능계의 미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저 잿빛일 뿐이다.

 

 

현재 예능계는 중차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강 구도가 무너지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며, 기존의 장수 예능이 침체기를 겪는 등 여러 문제점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방송사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하고, 제작진은 최선을 다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묻지마 폐지와 대책 없는 후속 편성을 이제는 그만둬야 할 때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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