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제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대종상이 파행으로 치닫은 가운데 청룡영화제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종상의 파국이 얼마 안 있어 열린 청룡상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일단 수상 후보 대부분이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청룡영화제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당연히 배우들이 참석하는 줄 알았던 시상식에 주요 후보들이 대거 참석하지 않았고, 시상식의 백미라고 할 있는 남우·여우주연상 배우들 조차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촌극이었다. 대리 수상조차 수상자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올라가서 친분은 없지만 잘 전해드리겠다’ ‘민망하다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시상식을 여는 의미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참가자에게만 상을 주겠다는 그들의 아집은 철회되었지만, 철회되지 않았더라면 더욱 우스운 꼴이 나고 말았을 것이었다. 주연상 시상은 아예 할 수 조차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청룡 영화상에 대부분의 스타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종상과는 다르게 청룡이 배우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위를 획득했다는 뜻에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청룡상은 조선일보라는 거대 스폰서에 의해 운영된다. 대종상이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서로간의 이익분쟁으로 치닫았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청룡상은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이라는 구심점이 존재했다. 이 안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는 존재하겠지만, 거대 자본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훨씬 더 탄탄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청룡은 그런 장점을 살려 청룡영화제의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한다. 수상후보들을 선정하고 가장 공정한 상을 수여한다는 이미지는 청룡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다. 그들은 이런 이미지를 의외의 수상을 통해 만들어냈다. 작년 영화 독립영화 <한공주>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의 눈물이 감동적이었던 까닭은 천우희가 유명배우도 아니었고 <한공주>가 엄청난 흥행을 한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흥행성이나 유명세에 흔들리지 않고 상을 수여한다는 이미지를 청룡영화제는 은연중에 획득했다.

 

 

 

이 밖에도 황정민의 숟가락 소감은 화제가 되며 각종 패러디와 광고에까지 활용되었고 2000년 이미연, 2001년 장진영, 2004년 이나영등 신선하고 파격적이지만 흥행성적이나 인기에 상관없는 수상 결과를 발표하여 화제몰이를 했다. 그만큼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청룡영화상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을 준다는 자체보다도 그 상이 얼마나 공정성 있는 결과로 결정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어떤 파급력이 있는지에 관한 지점을 짚어낸 것이다. 실제로 공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훌륭한 역할을 해낸 것이 바로 김혜수였다. 김혜수는 청룡영화제의 진행을 22년간이나 맡았다. 이제 청룡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예전부터 김혜수가 청룡영화제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등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였고 안정적이고 재치 있는 진행은 늘 호평을 받았다.

 

 

 

천우희가 수상을 하고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여 같이 눈물을 흘리거나 영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등은 그에 대한 호감도로 이어졌고 나아가 청룡영화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혜수와 함께 청룡영화제의 진행을 맡았던 정준호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김혜수는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다 본다며 그의 준비성과 성실함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청룡영화제 역시 이정현이라는 의외의 수상결과가 있었다.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인 유아인의 남우 주연상 역시 공감이 갔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한 이정현의 수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심지어 이정현은 가수로서 더 성공했던 배우다. 역대 영화제들은 유독 가수 출신 후보들에게 박한 평가를 내렸다. 가수 출신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엄정화의 상복이 유독 시상식에서만큼은 꽤 오랫동안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보면 그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정현의 수상은 독립영화와 가수 출신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거스른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파격과 전진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수상 결과가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김혜수가 던진 한마디는 귀에 꽂힌다. “참 상 잘주죠?”. 시청자들이 시상식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상을 잘 주는 시상식. 그래서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는 시상식. 바로 그런 시상식을 원한다. 그 가운데서 22년간 청룡의 안주인 자리를 지켜온 김혜수가 인정한 청룡의 시상법은 대종상과 비교되어 확실한 우위를 점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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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천사의 유혹] 이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혹자는 [천사의 유혹] 의 대성공을 의외라고 평가하긴 하지만 불륜과 복수라는 만고 불변의 흥행 소재를 사용해 실패한 드라마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구성은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불편하다. 고작 복수극을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하는걸까.


그래서 지금 [천사의 유혹] 이 보고 배워야 할 꽤나 괜찮은 '복수극' 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청춘의 덫 : 복수극의 명작


복수극의 원형을 말하라고 한다면 드라마 [청춘의 덫]을 빼놓을 수 없다. 1979년 이정길, 이효춘, 박근형, 김영애 주연으로 처음 TV에 방송됐던 이 드라마는 같은 해 박근형, 한진희, 유지인, 원미경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됐고 그 인기에 힘입어 소설로도 출간됐다. 20여년 동안 세간에 회자되어 오던 이 복수극이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추고 다시 TV에 등장한 것은 1999년 [청춘의 덫] 리메이크 판을 통해서였다.


당시 [미술관 옆 동물원] 등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심은하와 전광렬, 유호정, 이종원 등이 출연한 이 드라마는 5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1999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그 이름을 올렸다.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옛 남자를 몰락시키기 위해 복수극을 벌인다는 내용의 [청춘의 덫] 은 "당신 부숴버릴거야." 라는 심은하의 절규로 더욱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79년 방영 이후, [청춘의 덫] 의 기본 얼개는 복수극의 전형이 된다.





에미 : 잔혹 복수극의 역사를 창조하다


1985년 극장에 걸렸던 영화 [에미] 는 지금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복수극으로 회자된다. 드라마 작가로 유명한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쓰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여배우 전혜성과 윤여정의 신 들린 듯한 연기로 그 해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전혜성은 파격적 연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당시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내용의 줄거리는 인신매매 당한 딸(전혜성)을 찾아나선 한 어머니(윤여정)의 이야기로 딸을 유괴하여 죽인 인신매매범들을 어머니가 색출하여 차례차례 죽인다는 내용이다.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고, 염산을 뿌리며, 이불을 덮어씌우고 칼로 난자하는 등의 장면은 훗날 잔혹한 복수극의 원형을 마련하며 박찬욱 등에게 강한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적 완성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서슴없이 건드렸다는데 의의가 있는 복수극이라고 하겠다.



인어아가씨 : 막장 복수극의 시작


[보고 또 보고][하늘이시여] 의 히트 작가 임성한의 빅히트 드라마다. 장서희가 주연을 맡았고, 복수의 대상은 한혜숙과 박근형이었다.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배우와 결혼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방송작가가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인어아가씨] 는 일일극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긴박한 스토리 전개와 스릴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드라마다.


연장에 관련해서 스스로 쌓은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워낙 인기가 좋았던 탓에 대만, 베트남 등지에도 수출되는 등 장서희를 한류스타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여주인공 '은아리영' 을 연기했던 장서희는 병을 깨고 자해를 하고, 아버지와 바람난 여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등 복수에 미친 듯한 신들린 연기를 선보여 그해 MBC 연기대상 5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올드보이 : 박찬욱 복수 3부작의 최고 히트작


이제는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영화 [올드보이] 역시 파격적인 복수극으로 악명과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다. 잔혹성도 잔혹성이지만 폐쇄적 공포와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는 듯한 박찬욱 특유의 연출력은 '복수' 로 얼룩져 있는 [올드보이] 의 처절함을 더욱 배가시켰다. [올드보이] 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복수극이 됐다.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친 최민식과 냉철한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유지태의 연기 대결도 볼만했고, 근친상간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사용하여 복수극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흥분과 스릴을 이끌어 냈다는 점도 [올드보이] 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박찬욱 복수 3부작 중 가장 빛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린로즈 : 국내 스릴러 복수 드라마의 시작


[그린로즈] 는 여러모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제작 환경이 열악한 시점에 스타트를 끊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고수라는 건실한 배우의 열연과 이다해 특유의 청순미가 빛났던 이 작품은 [청춘의 덫] 류의 불륜 복수극에서 벗어나 스릴러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연출, 극본, 연기 3박자가 고루 들어 맞은 작품이라는 소리다.


[그린로즈] 이 후에 한국 복수극은 [청춘의 덫] 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불륜 복수극과 다른 종류의 스릴러 복수극이 여러 편 만들어 지면서 장르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린로즈]-[부활]-[마왕] 등으로 이어지는 스릴러 복수극이 바로 그 주류라 하겠다.




친절한 금자씨 : 21세기 에미


박찬욱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친절한 금자씨] 역시 복수극을 거론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호평과 혹평도 극명하게 엇갈렸던 영화였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는 이 영화가 85년도 제작됐던 영화 [에미] 의 전형성을 21세기 식으로 비꼬아 새로운 장르적 변주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박찬욱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당시 [대장금] 열풍으로 전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이영애가 '금자씨' 역을 맡았고, 복수의 대상은 [올드보이] 에서 열연한 최민식이 연기했다. 이 외에도 신하균, 강혜정 등 박찬욱 사단의 까메오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이기도 하다.




개와 늑대의 시간 : 누아르 복수극의 시작


배우 이준기는 [개와 늑대의 시간] 전과 후로 나뉘어진다. [개늑시] 전의 이준기가 [왕의 남자] 에 갇힌 꽃미남 배우에 불과했다면 [개늑시] 는 이준기라는 배우를 완성시키고 성장시킨 작품이다. 더 나아가 이 드라마는 복수라는 진부한 소재를 누아르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작품성 측면에서도 크나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이준기가 [개늑시] 를 만난 것은 운명이자 대단한 행운이다.


[개늑시] 는 비록 30~4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던 실험성과 도전의식으로만 평가해도 100점 만점에 100점을 넘고도 남는 작품이었다. [개늑시] 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시간 날 때 찾아보기를.




태양의 여자 : 클리셰의 반란


[태양의 여자] 는 '뻔한'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 선악의 극명한 대립, 여기에 삼각관계까지. 아주 익숙한 설정들이 여러가지로 짬뽕됐다. 척 하면 삼천리, 안 봐도 비디오다. 악녀 김지수는 죗값을 치룰테고, 그녀에 의해 갖은 고생 다한 이하나는 꿋꿋하고도 행복하게 아주 잘 살거다. 마치 "옛날 옛날에~" 로 시작해서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는 전형적인 동화적 플롯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느낌이 다르다. 온갖 '조악한 소재' 가 뒤범벅 된 이 드라마가 엽기가 아니라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발휘했고 인간군상의 모난 대립 속에서 치열한 삶의 집착을 보여줬다. 자극적일 것만 같았던 소재들이 사실은 주제가 아니라 '군더더기' 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태양의 여자] 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클리셰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매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법이다. [태양의 여자] 는 클리셰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90년대 감성을 2000년대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양의 여자] 만큼 우왕좌왕 하지 않고,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거침없이 끝을 향해 달려갔던 드라마도 드물었다. 적어도 [태양의 여자] 는 낡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세련됐고, 유려했다.


위에서 거론한 작품 뿐 아니라 부활, 마왕, 신의 저울, 복수는 나의 것, 세븐데이즈, 오로라 공주 등 [천사의 유혹]이 보고 배워야 할 복수극은 무궁무진하다. 매년 한 두편씩 TV와 스크린에 등장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복수극이 [천사의 유혹]처럼 싸이코 드라마로 전락하지 말고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통해 식상하지 않은 고전적 장르로 자리매김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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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최대 축제인 제 30회 [청룡영화제] 가 무사히 끝났다.


김명민과 하지원이 [내사랑 내곁에] 로 주연상을 독식한 가운데 대체로 납득할 만한 사람들이 상을 받아서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다운 면모를 보여준 듯 하다.


그러나 제 30회 [청룡영화제] 를 빛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청룡의 여인' 김혜수다.





우리나라 영화 시상식은 [대종상][청룡상][대영상][춘사영화제] 등 수많은 시상식이 있지만 여기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이 하나 있다. 바로 여배우들의 '마론인형' 같은 모습이다. 그녀들은 언제 어디서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모나리자 같은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앉아있다. 행여나 카메라에 얼굴이 비칠 때면 고개를 약간 숙이며 쑥쓰러워 하거나 온화한 미소를 더욱 환하게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박제된 모습은 사회자가 농담을 하든, 가수가 나와서 춤을 추든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 김혜수만큼은 '항상' 다르다. 그녀는 어디에 있든 빛이 난다. 여유롭고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스타다. 하희라가 평했던 것처럼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스타의 향기' 가 난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며 모든 일에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일 줄 아는 배우다. 특히 시상식에서 김혜수는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시상식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가수가 나오면 환호를 하고, 사회자가 농담을 하면 호탕하게 웃어보일 줄 안다. 그건 자신이 사회를 보는 [청룡영화제]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청룡영화제] 의 초대가수는 신승훈, 2PM, 박진영이었다. 그 중 박진영은 첫 컴백무대를 [청룡영화제] 에서 가지면서 [대종상] 의 브아걸이 그랬던 것처럼 객석으로 내려가 배우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반응은 브아걸 때만큼 나쁘지 않았다. 워낙 박진영이 노련한 가수이다보니 분위기를 잘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박진영의 곁에서 어색한 미소를 띈채 박수만치는 여배우들의 모습은 다소 아쉬웠다. 물론 그 상황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거라곤 박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추어만 취해 주더라도 훨씬 시상식이 빛날텐데 하는 안타까움은 두고두고 남았다.


그런데 '사건' 은 여기서 터졌다.


박진영이 객석의 여배우들을 지나 MC석의 김혜수에게 다가가자 김혜수는 기다렸다는 듯 박진영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충분히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정도로 센스 있는 댄스를 선보인 김혜수의 '부비부비' 는 일순간 박진영의 무대 뿐 아니라 [청룡영화제] 자체를 환하게 빛나게 만들었다.


조신하게 앉아 웃음 짓는 후배 여배우들과 달리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간직한 채 상황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상당히 신선했고 굉장히 놀라웠다. 수많은 예쁜 인형 속에서 아주 괜찮은 사람을 직면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나면 신나는대로 몸을 흔들고, 웃긴 이야기가 있으면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하고, 상황이 어색해지면 센스있는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청룡영화제] 속 김혜수야말로 배우 혹은 스타 이전에 인간적으로 참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20여년간 김혜수라는 배우를 지탱해 온 근간이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유로움이었다면 그녀의 이미지야말로 진정 만들어지거나 꾸며진 것이 아닌 김혜수 본연의 인간미인 셈이다.


지금의 김혜수는 이미 대중의 '비평' 을 일정부분 뛰어넘은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근간에는 '스타' 김혜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드러내도 절대 고갈되지 않는 '인간' 김혜수의 매력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비부비를 할 수 있다. 누구나 웃긴 이야기에 호탕하게 웃으며 박수와 환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여배우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녀들에게는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혜수도 여배우다. 여배우라면 이미지도 지켜야 하고, 매사에 조심을 하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김혜수는 애써 자신을 포장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 하면서 주위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겉치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앉아있는 의도적인 예의바름,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어색함 대신 그녀는 '김혜수' 의 솔직하고 당당한 감정과 모습을 선택했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빛나게 만들 줄 아는 것은 김혜수의 대단한 강점이다.


20대 여배우들의 젊음을 뛰어 넘어 김혜수의 완숙미가 시상식에서 비춰지는 짧은 시간 속에서 빛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들의 예상을 깨면서도 그들과 '소통'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김혜수의 '부비부비' 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 김혜수. 스타 김혜수. 그리고 인간 김혜수. 이 당당하고 멋드러진 여배우가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청룡의 여인' 으로 빛날 수 있기를, 포장하거나 가식 떨지 않고 끝까지 자유로운 스타이자 인간으로서 대중 곁에 남을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바래본다. 오늘 진정한 [청룡] 의 주인공은 김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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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화인과 영화 단체'가 개최하는 영화제라는 홍보 프레이즈를 가진 대종상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아직도 메이져 방송사에서 방영될 정도이고 그 오랜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권위있는 시상식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몇몇 시상식 결과에 '의외성'이 보인다.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놀라움을 선사하기위한 대종상측의 작전이 아니었나 싶다. 시상식도 하나의 '깜짝 쇼'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결과에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만도 아니다. 몰아주기식 수상도 없었고 특정 영화를 띄우기 위한 불편한 공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재미는 있었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너무 다양하게 줄려다 보니 정작 받을 거라고 예상했던 영화들이 줄줄이 미끌어 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나눠주기'식 방식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의외의 장면이었다. 바로 '축하공연' 무대였다.




 브아걸이 나오지 말았어야 할 무대?


  영화제의 축하무대가 그 '의미'를 갖기란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지만 이 것은 그들의 '섭외방식'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유명했던 영화의 OST를 메들리 해 부른다거나 아니면 배우가 함께 하는 무대등을 꾸며도 좋을터다. 물론 이런 시도가 몇몇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충분하지는 못하다. 결국 그들은 '인기가수'위주의 섭외라는 쉬운 길을 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니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다. 영화제에서가 아니면 듣기 힘든 노래가 아니라 가요프로그램에서, 길거리에서, MP3에서 수백번씩은 들었음직한 노래가 흘러나올 때, 영화제의 구성 자체가 식상해 지는 느낌마져 든다. 브아걸이 영화제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무대를 꾸며서 보여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트곡 이상을 부르지 못한 브아걸은 시상식에서 여전히 식상했다. 여기서 식상했다는 말은, 예전과 똑같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 초대가수를 불렀으면 그 가수에 대한 호불호가 어떻든 간에 일단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예의다. 장나라 정도를 제외하고 모든 배우들이 한결같이 짜기라도 한 것 처럼 무표정, 무반응으로 일관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도 그 유명한 [아브라카다브라]라는 노래를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인데 살짝 어깨를 흔들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따라부르며 같이 즐기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그 신나는 댄스곡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는 것은 '너는 춤추는 가수, 나는 고상한 배우'라는 무언의 무시를 던지는 것 같아 보이기 까지 했다.


 심지어 미료는 내려오기까지 하며 분위기를 띄워보려 노력한듯 한데, 그 장면에서 배우들은 외면하는 느낌마져 주었다.


 이건 무슨 태도란 말인가. 그들 수준에 맞는 가수가 나와야 박수를 쳐주겠다는 무언의 압박인가? 그렇다면 그들 수준에 맞는 가수란 대체 뭐란 말인가. 미료는 넘어지기 까지 했는데 이는 어쩌면 배우들의 너무 싸늘한 반응이 민망해서 무대로 빨리 올라가다가 생긴 일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브아걸은 그 자리를 축하하러 온 '손님'이다. 그런데 배우들 대부분이 그 곳에서 '앉아있기 싫은데 억지로 앉아있는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은 보기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거면 축하가수를 왜 불렀나 싶다. 그냥 '영화인들이 만들고 영화인들이 준비한' 축제답게 자기들끼리 즐기다 끝날 일이지 말이다. 


 어쨌든 대종상 시상식에서 축하가수를 고를 때는 아주 심사숙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축하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는 시상식에서 가수들을 민망하게 만들지 않으려거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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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원이 대종상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화제다. [해운대]는 무려 100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했을 뿐더러 무려 아홉 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기에 이같은 사실은 정말 의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원의 여우 주연상 후보에서 제외된 것이 의아스럽자 화살은 다른데로 날아갔다. 바로 아직 개봉도 하기 전의 영화인 [하늘과 바다]에 출연한 장나라에게로 말이다. 


 그러자 장나라의 아버지인 주호성은 '적절한 후보 선정을 거친 결과며 비리는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의혹의 눈길은 아직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하늘과 바다]의 대종상 후보 노미네이트로 장나라는 잃는 것이 많을까, 얻는 것이 많을까. 




 장나라에게 불똥튄 하지원 후보 탈락


 일단 솔직히 말해서 하지원이 [해운대]나 [내 사랑 내 곁에]를 통해서 보여준 연기가 '대단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대종상은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에게도 수상의 영광을 안긴 전례가 있다. 굳이 하지원에게 상을 안기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라 대종상 측은 '의외의 연기'라며 호평을 받았던 [박쥐]의 김옥빈과 코믹스러운 연기를 잘 소화했던 [7급 공무원]의 김하늘도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키면서 그 논란을 더 가중 시켰다.


 물론 이들이 대종상의 후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을 제치고 내년 대종상 시상식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후보에 오른 것은 정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대종상에 심사기준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장나라의 연기가 후보에서 제외된 후보들 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장나라 '여우 주연상 후보 노미네이트'는 그것이 정당하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를 떠나서 장나라의 이미지에는 도움이 될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영화를 알리는 데는 꽤나 좋은 효과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런 잡음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하는데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문제다. 무려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이라는 주요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에 대한 검증이 대중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고 그것은 일견, 어떤 의혹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하는 심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결과로 인해 장나라마저 비호감스러운 느낌으로 다가 오는 것 만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장나라가 후보에 오른 것과 하지원이 떨어진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그래도 장나라의 후보지명은 너무나도 '의외'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정당했다 하더라도 후보 출품을 조금 더 늦췄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렇게 성급히 후보작으로 출품한 것도 홍보에 그 목적이 다소나마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이런 감정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결국 장나라는 영화를 인정받는 방법밖에는 그 돌파구가 없다고 하겠다. 그동안 장나라가 솔직히 말해, 연기력으로 인정 받은 케이스라고 보기는 어려운 시점에서 무리를 해서까지 작품을 출품하고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간 것에 대한 해답으로 '좋은 작품'을 선보이지 못하면 이것은 대종상의 권위에까지 문제가 생길만한 일로 계속 오점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나라가 [하늘과 바다]로 평단과 관객의 호응을 모두 이끌어 내서 대종상의 권위와 본인의 이미지까지 실추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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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의 유혹] 이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혹자는 [아내의 유혹] 의 대성공을 의외라고 평가하긴 하지만 불륜과 복수라는 만고 불변의 흥행 소재를 사용해 실패한 드라마는 거의 없다.


작년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막을 내린 [조강지처 클럽] 역시 넓은 측면에서 보자면 바람 난 남편에서 복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아니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복수극' 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그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청춘의 덫 : 복수극의 명작


복수극의 원형을 말하라고 한다면 드라마 [청춘의 덫]을 빼놓을 수 없다. 1979년 이정길, 이효춘, 박근형, 김영애 주연으로 처음 TV에 방송됐던 이 드라마는 같은 해 박근형, 한진희, 유지인, 원미경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됐고 그 인기에 힘입어 소설로도 출간됐다. 20여년 동안 세간에 회자되어 오던 이 복수극이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추고 다시 TV에 등장한 것은 1999년 [청춘의 덫] 리메이크 판을 통해서였다.


당시 [미술관 옆 동물원] 등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심은하와 전광렬, 유호정, 이종원 등이 출연한 이 드라마는 5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1999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그 이름을 올렸다.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옛 남자를 몰락시키기 위해 복수극을 벌인다는 내용의 [청춘의 덫] 은 "당신 부숴버릴거야." 라는 심은하의 절규로 더욱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79년 방영 이후, [청춘의 덫] 의 기본 얼개는 복수극의 전형이 된다.



에미 : 잔혹 복수극의 역사를 창조하다


1985년 극장에 걸렸던 영화 [에미] 는 지금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복수극으로 회자된다. 드라마 작가로 유명한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쓰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여배우 전혜성과 윤여정의 신 들린 듯한 연기로 그 해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전혜성은 파격적 연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당시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내용의 줄거리는 인신매매 당한 딸(전혜성)을 찾아나선 한 어머니(윤여정)의 이야기로 딸을 유괴하여 죽인 인신매매범들을 어머니가 색출하여 차례차례 죽인다는 내용이다.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고, 염산을 뿌리며, 이불을 덮어씌우고 칼로 난자하는 등의 장면은 훗날 잔혹한 복수극의 원형을 마련하며 박찬욱 등에게 강한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적 완성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서슴없이 건드렸다는데 의의가 있는 복수극이라고 하겠다.



인어아가씨 : 막장 복수극의 시작


[보고 또 보고][하늘이시여] 의 히트 작가 임성한의 빅히트 드라마다. 장서희가 주연을 맡았고, 복수의 대상은 한혜숙과 박근형이었다.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배우와 결혼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방송작가가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인어아가씨] 는 일일극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긴박한 스토리 전개와 스릴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드라마다.


연장에 관련해서 스스로 쌓은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워낙 인기가 좋았던 탓에 대만, 베트남 등지에도 수출되는 등 장서희를 한류스타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여주인공 '은아리영' 을 연기했던 장서희는 병을 깨고 자해를 하고, 아버지와 바람난 여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등 복수에 미친 듯한 신들린 연기를 선보여 그해 MBC 연기대상 5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올드보이 : 박찬욱 복수 3부작의 최고 히트작


이제는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영화 [올드보이] 역시 파격적인 복수극으로 악명과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다. 잔혹성도 잔혹성이지만 폐쇄적 공포와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는 듯한 박찬욱 특유의 연출력은 '복수' 로 얼룩져 있는 [올드보이] 의 처절함을 더욱 배가시켰다. [올드보이] 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복수극이 됐다.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친 최민식과 냉철한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유지태의 연기 대결도 볼만했고, 근친상간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사용하여 복수극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흥분과 스릴을 이끌어 냈다는 점도 [올드보이] 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박찬욱 복수 3부작 중 가장 빛나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린로즈 : 국내 스릴러 복수 드라마의 시작


[그린로즈] 는 여러모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제작 환경이 열악한 시점에 스타트를 끊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고수라는 건실한 배우의 열연과 이다해 특유의 청순미가 빛났던 이 작품은 [청춘의 덫] 류의 불륜 복수극에서 벗어나 스릴러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연출, 극본, 연기 3박자가 고루 들어 맞은 작품이라는 소리다.


[그린로즈] 이 후에 한국 복수극은 [청춘의 덫] 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불륜 복수극과 다른 종류의 스릴러 복수극이 여러 편 만들어 지면서 장르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린로즈]-[부활]-[마왕] 등으로 이어지는 스릴러 복수극이 바로 그 주류라 하겠다.



친절한 금자씨 : 21세기 에미


박찬욱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친절한 금자씨] 역시 복수극을 거론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물론 호평과 혹평도 극명하게 엇갈렸던 영화였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는 이 영화가 85년도 제작됐던 영화 [에미] 의 전형성을 21세기 식으로 비꼬아 새로운 장르적 변주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박찬욱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당시 [대장금] 열풍으로 전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이영애가 '금자씨' 역을 맡았고, 복수의 대상은 [올드보이] 에서 열연한 최민식이 연기했다. 이 외에도 신하균, 강혜정 등 박찬욱 사단의 까메오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이기도 하다.




개와 늑대의 시간 : 누아르 복수극의 시작


배우 이준기는 [개와 늑대의 시간] 전과 후로 나뉘어진다. [개늑시] 전의 이준기가 [왕의 남자] 에 갇힌 꽃미남 배우에 불과했다면 [개늑시] 는 이준기라는 배우를 완성시키고 성장시킨 작품이다. 더 나아가 이 드라마는 복수라는 진부한 소재를 누아르라는 장르적 측면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작품성 측면에서도 크나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이준기가 [개늑시] 를 만난 것은 운명이자 대단한 행운이다.


[개늑시] 는 비록 30~4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던 실험성과 도전의식으로만 평가해도 100점 만점에 100점을 넘고도 남는 작품이었다. [개늑시] 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시간 날 때 찾아보기를.




태양의 여자 : 클리셰의 반란


[태양의 여자] 는 '뻔한'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 선악의 극명한 대립, 여기에 삼각관계까지. 아주 익숙한 설정들이 여러가지로 짬뽕됐다. 척 하면 삼천리, 안 봐도 비디오다. 악녀 김지수는 죗값을 치룰테고, 그녀에 의해 갖은 고생 다한 이하나는 꿋꿋하고도 행복하게 아주 잘 살거다. 마치 "옛날 옛날에~" 로 시작해서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는 전형적인 동화적 플롯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느낌이 다르다. 온갖 '조악한 소재' 가 뒤범벅 된 이 드라마가 엽기가 아니라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발휘했고 인간군상의 모난 대립 속에서 치열한 삶의 집착을 보여줬다. 자극적일 것만 같았던 소재들이 사실은 주제가 아니라 '군더더기' 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태양의 여자] 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클리셰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매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법이다. [태양의 여자] 는 클리셰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90년대 감성을 2000년대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태양의 여자] 만큼 우왕좌왕 하지 않고,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거침없이 끝을 향해 달려갔던 드라마가 2008년에 과연 몇이나 되는가? 적어도 [태양의 여자] 는 낡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세련됐고, 유려했다.



아내의 유혹 : 고품격 명품 막장 드라마


[아내의 유혹] 이 누리고 있는 인기는 소재의 덕이 가장 크다. 바로 '불륜' 과 '복수' 다.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에서 불륜과 복수가 그려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청춘의 덫] 이 그랬고, [내 남자의 여자] 가 그랬다. 그 소재의 진부성이야 말해 봤자 입만 아픈 것이지만 [아내의 유혹] 에서 불륜과 복수는 또 다른 차원에서 밀도감 있게 그려진다. 이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성질의 것이다.


복수라는 커다란 주제 의식 하에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조차 드라마틱하게 넘겨 내는 것은 [아내의 유혹] 의 큰 장점이다. 적어도 [아내의 유혹] 의 스토리 전개는 자극적이기는 해도, 황당하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색깔이 확연하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부딪히며 파열음을 내는 가운데 스토리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불륜과 복수라는 진부한 소재를 이 정도로 맛깔나게 바꿔 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이런 별명이 붙는다. '고품격 명품 막장드라마'.


위에서 거론한 작품 뿐 아니라 부활, 마왕, 신의 저울, 복수는 나의 것, 세븐데이즈, 오로라 공주 등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복수극은 다양한 형태로 시청자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매년 한 두편씩 TV와 스크린에 등장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복수극이 정체하지 말고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통해 식상하지 않은 고전적 장르로 자리매김 하길 바란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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