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남들이 자기 좋을대로 옷입겠다는데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상이 '트렌드 세터'라고 일컬어지는 인물이라면 한 번쯤 더 관심이 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연예계에서 패션은 중요한 화두가 된지 오래다. 시상식이라도 있을라치면 워스트와 베스트가 어김없이 올라오고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G-dragon은 패션을 주도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스타일만은 인정받을만 할른지도 모른다. 그런 화두의 중심에 서있는 그이기에 '패셔니스타' '트렌드 세터'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요즘 권지용의 스타일은 '패션 테러리스트'쪽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내가 단지 패션에 문외한인 평범한 일반인일 뿐이라서 인가. 

출처-사진속

 '트렌드 세터', 그 모호한 기준.


 솔직히 말해 너무나도 특이하긴 하다. 금발로 염색한 파마머리 -일명 모짜르트 머리-에 독특하다 못해 난해하기까지 한 패션.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뭔가 눈에 확 띄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다 똑같은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독특하면서도 자신을 잘 표현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그냥 독특하기만 한 사람도 있는데 권지용은 후자쪽이다. 


 대다수가 권지용에게 '멋지다'고 하는데 혼자서 '아니오'를 외치는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을때, 거의 모든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권지용 스타일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약간 과장도 섞인 농담에 가까웠지만 남자친구가 빅뱅스타일을 그대로 흉내낸다면 헤어지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권지용은 아직도 트렌드 리더다. 허나 그의 스타일은 그의 절대적인 인기에 의해 지지를 받는 것 같다. 권지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도 현존하는 가수중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가수 중 한명인 것 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있어서 그의 스타일은 하나의 소비문화다. 그들은 그의 패션을 찬양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그들이 선보인 패션이 독특했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실 빅뱅이 보여준 하이탑이나 스키니진, 체크 스카프는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템들은 사실 빅뱅이 아니라도 유행하고 있었거나 유행할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이 '빅뱅 스타일'로 명명됨에 따라 왠지 쓰기에 민망해진 아이템도 몇가지 있다. 특히 스카프같은 경우 '빅뱅 스카프'라는 이름으로 너무 알려져 버려서 비슷한 스카프만 해도 '빅뱅 따라했네'라는 말을 듣는 바람에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더이상 하지 못하고 묵혀둔 것도 있을 지경이다.  소심한 성격 탓이겠지만 말이다. 


 이번 권지용의 컨셉도 일반인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물론 독특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식의 스타일로 거리를 걸어다니거나 친구라도 만날라 치면 엄청난 시선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친구들은 엄청나게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는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다. 독특한 무대 의상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가수들이 입은 옷에 비해 멋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는 좀 어렵다. 좋게말하면 독특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이상하기까지 하다. 그가 연예인임을 감안하고 봐도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패셔니스타'로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 기준점은 대체 어디 있을까. '패셔니 스타'라고 불릴려면 적어도 대부분, "멋지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패션은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을 몇 %나 만족시키고 있는 것일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패션은 그 사람의 개성이므로 누가 함부로 지적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고 싶은것은 '패셔니스타'와 '패션 테러리스트'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꼭 나누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적어도 나의 이 막눈으로 바라 봤을때, 권지용의 의상은 '테러리스트'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패셔니스타'라는 말도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도 왠지 거부감이 든다. 어떤 객관적인 지표라기 보다는 그 사람의 이미지와 인기, 또 다른 여러가지 외부 조건에 의해서 너무 많이 좌우되는 말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때로는 패셔니스타도 별로 패셔너블하지 않고 트렌드가 될 것 같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나온다. 꼭 권지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스타들이 정말 별로인 옷을 입어도 "역시 패셔니스타"라면서 찬양받는 것은 왠지 모르게 좀 우습기까지 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5년쯤 지나면 저런 옷을 시도 했다는 것 자체가 창피해 질 수도 있다. 물론 5년정도 지나면 대부분의 옷이 촌스러워 진다지만 오드리 햅번이나 마린린 먼로 같은 스타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세련된 스타일로 끊임없이 회자되지 않는가. 몇 십년 후에도 최고일 수 있는, 따라하고 싶은 스타일. 그것이 진정한 패셔니스타의 조건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뭐, 본인이 만족하고 '패셔니스타'라는 명칭까지 얻었는데 뭘 안다고  그리 말이 많냐고 따진다면 할말이 없지만.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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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명 2010.02.23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ㅅㅂ놈 2010.02.23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친년아 니나챙겨입어 ㅅㅂㅋ

  4. 어이털림ㅋ 2010.02.23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레이디가가 병신임? ㅋ

  5. 2010.02.23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지금만나 당장만나

  6. 패션니스타 2010.02.23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는눈이 참 뭐같네요
    님이 바로 패션 테러리스트아닌가요?
    모든 사람이 인정한 패셔니스타인데 뭔소리야ㅡㅡ
    옷못입으면 권지용 보고 배우십시요 엄한 사람 잡지말고

  7. TOK 2010.02.23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자 사람들은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거니까요,
    그리고 지드래곤은 솔직히 말해서, 패션계에 영향을 많이 줬잖아요^^?저는 그닥 패션 테러리스트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뭐, 각자의 생각이 다르지만요...

    (그리고 뭐, 이 게시글에서 게이같다, 하는건 좀 삼가해주셨으면 해요. 이 게시글은 패션에 관한 게시글인데 왜 여기서 게이같다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네요 ㅠㅠ... 그런 말은 삼가해주세요. 모두들 둥글게 둥글게 ^^ 팬 여러분도 너무 흥분하지 마시구요 ^^~!)

  8. 지용이 보고배워라 2010.02.23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할말이없네요
    패션에 대해 공부좀 하십시요
    허 참 내가다 쪽팔리네

  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0.02.23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패션태러리스트 따라하는 사람이 넘처나는 세상인데.
    괜히 유행이 유행이 아니잖아요?
    시내로 나가보세요. 권지용 따라 입는 사람이 얼마나 넘처나는지.
    권지용이 유행시킨 패션부터 공부하던가.
    그리고 권지용이 매번 잘 입을 수도 없잖아요.
    이상하게 입을때마다 아 패션 터러리스트네 라고 합니까.

  10. 근데 2010.02.2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글쓴이님도 댓글이랑 글이랑 모순이 조금 있는 것 같네요.
    댓글엔 권지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반이 권지용에 관련된 내용이니 만큼 글쓴이 생각도 그런 쪽인 것 같네요. 글쓴이가 마냥 이 글을 잘 썼다고 볼 수 없을 듯.

  11. 뭐지. 2010.02.23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게 무대의상이죠;;; 연예인직업상 어쩔 수 없죠, 튀어보여야하고.
    무대 의상이랑 구별도 못하나요. 차라리 저 사진을 가져오기 전에 그냥 권지용 사복 의상을 가져오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12. 솔직히말해서 2010.02.23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님들의 생각엔 지용이 옷이 이상하다곤 해서 테러리스트라고 막말하는건 아닌듯 싶네요

  13. 이봐 2010.02.23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만의 개성이 잇는건데 그것가지고 태러리스트라고 하는건 아니지 지용군이 엄청 튀고 엄청레이디가가 처럼 화려하고 입고다니는것도아니고 난 개인적으로 지용이 보고 배우고있습니다 외국에서도 인정한 패셔니스타인데

  14. dlkjsa 2010.02.23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옷을입든 권지용 자유임 권지용이 자기입으로 자기는 트렌드세터다 이렇게 말한것도 아니고 이렇게 불리워진거임 솔직히 객관적으로 봣을때 권지용 옷잘입는거죠...이글은 너무 주관적인듯.....트랜드리포트필?이란 전문디자이너들이 나오는 방송에서도 권지용 옷잘입는다고 어린나이에 저정도로 잘입기 힘들다고 하던데;; 그리고 권지용이 정말 패션 테러리스트라면 그 권지용이 유행시킨 많은 스타일들은요?권지용이 유행시킨 아이템이 한두개도 아니고 참;;

  15. 파마하지말지그랬어.... 2010.03.07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머리 볶지만않앗어도 디게 이뻤는데...............
    금발만 한건 디게 이쁘던데..
    베이비펌이나 살짝웨이브만 주면 이뻤을텐데...

  16. 권지용 빅뱅팬 절대 아님 2010.03.13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옷에 이름갖다붙이고 이건 어떤패션이고 이건 틀렸고 하는거 자체가 말이안됨
    그냥 취향만있을뿐 정답은없죠
    옷은 입기 나름 패션은 자기 기준나름 입니다

    뭐따라했다 뭐했다 말들이 많지만
    그런면에서 권지용은 새로운 시도하면서 틀을깨는걸 보여준
    좋은예라고 보셨으면 좋겠네요

  17. ㅋㅋ 2010.05.09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지용 욕하기 전에 내스탈이나 보자ㅋㅋㅋㅋ

  18. ㅡㅠㅡ 2010.05.09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그래도 빅뱅스타일 누구나 한번쯤은 따라해본 그런st아님?ㅋㅋ 아글구 따라하는게 쪽인거지 권지용이 옷 못입는다는거는 아니지않음?ㅋㅋㅋㅋㅋㅋㅋ 윗분이 정석ㅋㅋ 그래 욕하기전에 니 옷입는꼴이나보자ㅋㅋ

  19. 헑ㅈㄹ이고 2010.08.13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옷스탈봅시다컴온

  20. Favicon of https://gdloveu.tistory.com BlogIcon 셸라임 2021.02.19 2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자빠졌네

  21. 익명 2021.02.19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하얀 천으로 쇼 윈도를 뒤 덮으려 한 듯 파격적이고 세련된 디자인, 주변의 많은 의상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한 패션샵에 미모의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한참동안 의상실의 이름을 쳐다 보던 이 여성은 한숨을 한번 푹 쉬고 의상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꿈나라에 온 듯 하얀색으로 가득 한 의상실 내부를 보고 여성은 짧은 감탄을 내 질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접하지도 입어보지도 못 한 순백의 옷들, 그리고 그 옷들 사이에 서 있는 젊은 남성의 디자이너.


한동안 옷들을 매만지며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했던 젊은 남성은 이내 여성을 알아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걸어왔다. 얼핏 봐도 180cm가 넘는 듯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와 상대방을 제압하는 카리스마에 여성은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 곳, 의상실 디자이너신가요?" 여성이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젊은 남성이 은은한 미소로 대꾸했다.


그 은은한 미소에 여성 역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수줍게 이야기했다.


"저 엄앵란인데요, 여기 있는 옷들을 입고 싶어서요."


그렇게 소공동의 작은 의상실, '살롱 앙드레' 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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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假縫을 거쳐 모든 바느질과 손질을 마치고 着衣室의 커튼 뒤에서 그 옷의 임자에 의해 처음으로 몸에 걸쳐지는 순간 의상은 生命性을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막 피어날 듯하면서도 그 꽃잎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봉오리를 들여다볼 때와 같이 期待와 不安이 뒤섞인 야릇한 설레임이 가슴에 술렁대는 것도 이런 때의 일이다. 디자인의 意圖가 충분히 살아 있을까. 옷감의 質과 色의 뉴앙스가 그 임자의 개성에 잘 조화돼 있을까 등등….’』


1966년 [신동아] 2월 호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위와 같다. 소설의 한 토막처럼 여배우 엄앵란을 만났고,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패션쇼를 한 앙드레 김은 60년대 한국 패션계에 파란을 일으킨 희대의 기린아였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문화권력' 이었다. 앙드레 김을 설명하기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냈다' 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앙드레 김은 선망과 경의의 대상이었다.

 
신문과 잡지, 극히 제한 된 뉴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60년대의 앙드레 김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45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로 앙드레 김을 떠올리고, '가장 친숙한 디자이너' 로 앙드레김을 받아 들인다. 제한 된 미디어의 통제가 사라진 21세기의 최첨단 시대에 4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사랑 받은 대중문화인은, 문화평론가 손상익의 말처럼 "앙드레김 밖에는 없다."


그러나 40여년을 디자이너로 살아 온 앙드레 김의 뒷면에는 또한 무수한 '그림자' 가 존재한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의 지적처럼 "앙드레김의 성공은 패션계 내부가 아니라 연예계에서 이루어졌고", 앙드레 김을 범접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로 만든 것 역시 극히 제한되고 통제 된 상태에서 강력한 권력을 향유했던 한국 언론의 '힘' 이었다. 그래서 앙드레 김의 성공에는 한국 대표 디자이너의 자랑스러움 뿐 아니라 스타를 만들어내고 죽이는 언론의 음흉스러움이 함께 공존한다.


앙드레 김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 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 쪽에서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게 경탄과 찬사, 존경과 경외를 보내고 한 쪽에서는 그를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 연예인, 무대 의상 디자이너라며 폄하하고 지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렬해지는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들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고 섞이면 잿빛이 되어 버리는 흑과 백이다. 그러나 앙드레 김은 그 가운데에 살아있다. 선망과 증오, 찬탄과 폄하의 양면성에서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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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다 vs '디자이너' 가 아니다


"앙드레김이라는 한 특출한 문화인은 한국을 ‘양장 소비국’에서 ‘패션 생산국’의 지위에 올려놓는데 일조했을 뿐 만 아니라, 미국의 LA같은 대표적인 ‘서구도시’에마저 ‘앙드레김의 날’을 선포하게 하는 등 우리 대중문화 가치의 범 지구촌화에도 성공했다." 는 손상익의 평가와 청문회 직후 한 비평가가 휘갈리 듯 독설을 내뿜은 "봉남킴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라는 평가는 모순적이게도 동전의 양면인 동시에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앙드레 김은 한국 대표 디자이너였다. 부정할 수 없는 이 '법칙' 에 '아니다' 라고 반기를 드는 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엄앵란의 드레스나 김희선의 드레스나 변함 없이 한결 같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거세 되어 버린 디자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년 전 인터넷 상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질 정도로 격렬했던 '앙드레 김 논쟁' 의 본질은 앙드레 김이 고수하고 있는 패션 디자인이 큰 변화 없이 지겨울 정도로 일관 되는데에서 파생된 문제였다.


사실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는 것은 극소수의 모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대단한 영광' 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류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로 손 꼽히는 가브리엘 샤넬이나 크리스찬 디올의 옷은 돈만 있다면 누구나 입고 다닐 수 있다. 앙드레 김의 의상이 무대 위 모델들만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의상이라면 샤넬 디자인의 의상은 말 그대로 그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 을 충실히 반영한 시대적 트렌드다. '앙드레 김은 패션 디자이너다.' 라는 명제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의 시각도 바로 여기에 머물러 있다. 앙드레 김의 패션은 한 마디로 '무대의상' 에 가까운 극대화 된 과장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남킴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라는 비평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온다.


『 패션 디자이너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며, 봉남이 형처럼 연예인과 일부 사모님들을 위해 파티옷, 결혼식옷과 같은 조명발받는 공주옷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의상디자이너라 해야 옳다.』


그러나 이 앙드레 김의 충실한 '일관성' 은 다른 쪽에서는 완전히 상반 되게 해석된다. 철저히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문화' 의 본질이 결국 동시대 사람들이 폭 넓게 수용 가능한 '일관성' 에 그 거취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진정한 '패션' 이다. 마치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몇 세기를 뛰어 넘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듯, 앙드레 김의 의상도 실제로 45년이라는 '반세기' 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이러한 특수한 '일관성' 의 개념을 "패션이 아닌 예술" 이라 정의한다.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의상이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저히 해석될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인 동시에 일반적인 패션씬 안에서의 비교나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패션 산업 안에서의 옷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만 앙드레 김의 옷은 트렌드나 취향과 상관 없이 '사고 싶어 하는 사람' 들에게만 개방 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앙드레 김의 옷이 소비되는 방식은 기존의 패션 산업이 받아들이고 있는 '공급과 수요' 의 법칙을 무시해 버린 일종의 예술품 거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재밌게도 앙드레김이 디자이너냐 아니냐 하는 격렬한 논의는 각자의 논점에서 보자면 모두 틀리지 않다. 앙드레 김을 디자이너로 보지 않는 쪽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수 있는 옷, 그것이 바로 패션이다' 라는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시대를 초월해 거래되고 인정할 수 있는 옷, 그것이 바로 패션이다' 라는 잣대를 세워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은 결국 자신의 옷을 한 번도 상품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앙드레 김과 거대한 시장 속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패션 산업의 현실이 부딪히는 어쩔 수 없는 파열음이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은 자신을 둘러 싼 수많은 논쟁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신동아> 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에 대한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어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 하지만 앙드레김의 의상은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비싼 옷 아닙니까? 그래서 앙드레김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도 앙드레김 옷을 보거나 입어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예술가,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입는 옷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의상 디자이너지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하지만요, 무대의상이라는 게 나쁜가요? 조수미씨 정경화씨도 콘서트장에서 저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지요. 조수미씨가 입은 옷 기억하세요? 물론 그것은 제가 협찬해 드린 거구요. 그 옷을 입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이탈리아·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의 큰 무대들에 안 서본 곳이 없어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섰다면 그것이 곧 문화 아닌가요?


제가요, 화가 중에 운보 김기창, 천경자 선생님 정말 너무너무 존경하는데요, 돈이 없어서 아직 작품은 구입하지 못했지만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돈을 벌어서 꼭 그분들 작품 한점씩 사서 집에 걸어놓는 거에요. 저처럼 그분들 그림을 직접 갖지는 못해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의상도 마찬가지에요. 제 작품을 입지는 못하지만 쇼윈도에서, 패션쇼에서 그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런 옷을 입어보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화 아닌가요?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해요. 왜 꼭 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연예인들이나 입는 옷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송승헌씨 장동건씨 이런 분이 제 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것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그처럼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타들이 제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이 잘못됐나요?”


앙드레김과의 대화는 이 대목에서 잠시 중단됐다. 그는 대답 도중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는 듯 목소리가 떨리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도저히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37년 동안 디자이너로 살아왔는데 또다시 이런 대답을 해야 하다니 지겹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지나치리만큼 예의바르고 손짓 하나하나까지 조심하던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 검은 마스카라로 강조한 눈은 이글이글 분노에 겨웠고 “지겨워! 지겨워”를 외치며 자신의 의상실 안을 서성이는 그는 흡사 성난 황소처럼 보였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 야.


이야기를 확장해 보자. 앙드레 김을 둘러싼 '디자이너 논쟁' 을 벗어나면 그의 '정체' 에 대한 논의는 더더욱 격렬해 진다. 일부에서 앙드레 김을 보는 시각 중 하나는 바로 앙드레 김이 '디자이너' 라기 보다는 '성공한 사업가' 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앙드레 김의 브랜드가 런칭되고, 삼성전자와 가전제품 디자인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앙드레 김의 움직임에선 사업가와 같은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앙드레 김을 '사업가' 의 영역에 넣어 생각해 보면 그가 누구보다 상류층 인사와 가까운 문화 권력이고 올림픽 패션쇼를 4번이나 치뤄 낸 전형적 사교계 인사이며 일년에 두세번씩 치뤄지는 세계 패션쇼 역시 '사업' 의 한 부분으로 평가될 수 있다. 앙드레 김의 패션쇼가 일종의 브랜드 마케팅으로 철저하게 진행되는 전략적 사업이라면 앙드레김이 가지고 있는 사업적 감식안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을 뛰어 넘는 영악하고 영리한 상술에 불과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앙드레 김은 자신의 디자인을 단 한번도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은 지금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사람들에게 소비 된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이다. 상업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상품' 이고 '돈' 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바로 '사업가' 앙드레김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종결된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은 스스로의 '주관' 을 포기해 버리고 패션 사업 시장의 노회한 사업가로 진정 변신을 꾀한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싱겁게 튀어 나온다. '사업' 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돈' 이라는 것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수단적인 가치인데 앙드레 김은 바로 이 부분에서 놀랍도록 '자유' 롭다. 권력과 유명세, 브랜드 확장과 상품은 물질 세계의 문명이 베풀어 준 가장 추악한 축복이지만 앙드레 김은 자신의 의상처럼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 한 자기 세계에서 그 축복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건 앙드레 김이 끝끝내 물질 세계와 타협한 듯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자기 존재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앙드레 김은 90년대 후반까지 강남에 자기 소유의 의상실 하나 가지지 못할 정도로 물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 패션쇼가 1700여회, 올림픽 패션쇼 4회, 상류층 사회와 가장 가까운 대중 문화 인사이자 대통령조차 '영웅' 이라 치켜세웠던 앙드레 김이 데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상실을 전세로 살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한 논쟁이 불과 5년도 안 된 짧은 시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실제 앙드레 김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임에도 사업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특이한 케이스' 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업가' 앙드레김을 살펴보기 이전에 심도 깊게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한다. 앙드레 김이 가전제품, 신용카드의 디자인 계약을 성사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직접 운영이 아닌 단순한 라이센스 계약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앙드레 김이 브랜드 확장을 통해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중학교 때 부터 앙드레 김이 꿈 꿔왔던 이상이 '세계인' 이자 '샤넬을 능가하는 다양한 영역의 한국적 디자인' 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


정신 분석가 정혜신은 "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탐구" 라는 글 속에서 "앙드레김은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의 출연을 두 번씩이나 거절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성공의 잣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아직 자신의 빌딩조차 없는데 성공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밝히는 그의 재산은 의상실이 세든 건물의 전세금, 자신의 아파트, 연구소 설립을 위해 마련해 둔 교외의 작은 땅이 전부란다. 국위선양을 위해 해외 패션쇼에 쏟아부은 에너지나 비용을 아껴서 국내에서 의상실을 여러 개 내고 고객수를 늘리는 데 몰두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 썼던 적이 있다.


앙드레 김의 '사업' 은 사업의 가면을 쓴 '꿈의 실현' 이다. 물질세계의 세속적 성향에서 따지자면 그는 성공한 사업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짜 앙드레 김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로는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앙드레 김만이 꿈꿔온 평생의 사업이다. 앙드레 김은 상업화의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상업화의 추악한 이면에는 동조하지 않았고, 상업화의 약점을 세계화와 꿈의 실현이란 대의적 명분으로 초월했다. 70이 넘은 '늙은 사업가' 의 이면에는 여전히 판타스틱한 꿈을 꾸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의 생생한 감성이 펄떡이고 있다.


자, 이제 문화평론가 손상익의 말을 빌려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해 정리해보자.


『 현대의 대중문화는 상업화를 근간으로 하지 않으면 그 어떤 형태도  확산이 쉽지 않으며 세계화는 더더욱 난감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랜드(trend)나 문화코드는 “얼마나 상업화에 성공했는가”라는 기준이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다. 현재 세계 각국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문화 바람도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라거나 영화, 가요, 심지어는 태권도 같은 스포츠의 ‘상업기반’이 대중문화산업형태로 성공적인 뿌리를 내린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앙드레김은 미국의 팝아트 창시자라 불리는 엔디워홀(Andrew Warhola)의 문화정신과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닮아있음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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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은 '연예인' 이야. 그러니까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상관없어.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한가지는 바로 '연예인' 앙드레 김이다. 그 어떤 시상식에도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는 특유의 대중적 성향, 하얀 옷에 체크 목도리를 두르고 만면에 웃음을 띄며 레드카펫을 당당히 걸어가는 쇼맨쉽, 유명 뮤지컬이나 쇼가 개최되면 항상 앞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박수를 치는 앙드레 김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 이전에 유명인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연예인의 이미지를 투영시켰다. 10대의 어린 소녀들이 앙드레 김을 보고 환호를 내지르는 것은 그가 유명 디자이너 때문이 아니라 TV에서 많이 본 '낯 익은' 유명인사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데뷔 이래 앙드레 김은 그 어떤 디자이너 보다도 연예계와 밀착 관계를 유지한 디자이너였다.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는 이야기는 앙드레 김이 일군 신화의 일부분이었으며 장미희부터 김태희까지 시대를 주름잡았던 톱스타들이 앙드레 김 패션쇼에 문전성시를 이루다 못해 넘칠 지경이라는 것도 앙드레 김이 연예계와 떨어질래야 떨어 질 수 없는 대표적 아이콘임을 보여준다. 소위 '문화계 인사' 라는 사람들 중 앙드레 김만큼 연예계의 본성에 근접해 있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유명세' 와 더불어 연예인 같은 앙드레 김의 외모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25년 전부터 화장을 시작했다는 앙드레 김은 70 이 넘는 지금도 짙은 화장과 립스틱을 바르고 번쩍거리는 염색 물감으로 머리를 꽉 채운다. 언제나 하얀 옷을 고집하는 앙드레 김만의 고집은 '환타스틱함, 엘레강스함, 센세이셔널하고 뷰티풀' 을 지향하는 듯 변함 없이 그대로다. 간간히 영어를 섞어가며 느릿느릿 던지는 말투는 줄곧 연예인들의 성대모사 대상이 됐고 그는 유명인이자 연예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희화화 되고 웃어야 하는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변질 되기도 했다.


'연예인' 앙드레 김을 말하면 떠 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99년 청문회다. 나는 그 때의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 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조소와 조롱을 섬뜩하리만큼 경험했다.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 이라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회자 되면서 앙드레 김은 한순간 촌스러운 이름을 숨기고 살아 온 가식과 위선의 대상이 됐고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서 처참하게 발가 벗겨 졌다. 당시 <서세원 쇼> 에서 홍석천이 했던 앙드레김 4행시의 폭발적인 반응은 문화적 권력을 해체하고 스스로 그 위에 올라서려 했던 사람들과 그것에 호응한 대중문화의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의 모습은 청문회 자체를 압도할 정도의 화젯거리였다. 앙드레 김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앙드레 김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앙드레 김이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가 사람들에게는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와 함께 앙드레 김의 인기도 동시에 치솟았다. 그러나 앙드레 김도, 사람들도 모두 그 폭발적 관심과 인기가 존경이나 경외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조롱에 불과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 청문회 때부터 앙드레 김은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와 벌거 벗은 임금님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자신의 미의식을 탓해야했던 앙드레 김의 감수성과 스타일이 권위가 무너지자 누구나 놀릴 수 있는 대상이 됐다. 그 청문회를 통해 앙드레 김이 김봉남이 된 것은 단지 다소 촌스러운 그의 본명을 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때 대중들은 수천만원어치 옷을 사는 우아한 마나님들의 뒤에 감춰진 구린 속을 들여다 봤고, 김봉남이 된 앙드레 김은 바로 그 우아한 그들의 세계의 이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동경의 대상이던 상류사회는 순식간에 비아냥의 대상이 됐고, 그들을 위해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더 이상 엘레강스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 반대로 손상익은 이런 앙드레 김에 대한 조롱과 조소에 단호히 반대의 의견을 던진다.


『'앙드레김'이란 우리시대의 아이콘(icon)은, 아무나 무참하게 ‘씹어도 될만한’ 만만한 문화코드(cultural code)가 아니다. 앙드레김 만큼, 밖으로 내보이는 외양(하드웨어)에 못지않게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구비한 문화인도 우리나라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계에서 앙드레김 만큼 자신의 일생을 자신만의 ‘문화코드’로 무장(武裝)할 줄 알며, 수미일관(首尾一貫)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오롯하게 버틴 대중문화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제로 앙드레 김은 자신을 둘러싼 희화화와 조롱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한 바 있다. 신동아의 김현미 기자는 앙드레 김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그러한 조롱까지도 무시해 버리는 듯한 강한 거부의식과 상대조차 하지 않겠다는 꼿꼿한 자존심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저 '연예인' 또는 '연예인 같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앙드레 김이 자신에 관한 세속적 잣대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에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앙드레 김의 인터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던 찰나 "특유의 화장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 라는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앙드레 김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 듯한 기세로 날카롭게 대꾸했다. "세계적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기사 어디에도 그렇게 세련되지 않은 질문은 나와 있지 않다." 라고. 이 한 마디로 앙드레 김은 연예 사업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 인사일 뿐 뼛 속까지 연예인이거나, 연예인化를 지향하고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확인 시켜줬다.


'연예인' 앙드레 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연예 사업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끊임없이 스타들을 출연 시키는 앙드레 김의 쇼 접근법에서 국한 되어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그것을 앙드레 김의 연예인화로 확대 해석하거나 더 나아가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짓 밟아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조영남이 말하지 않았던가. "앙드레 김은 그 누구보다 공연을 사랑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진짜 대중문화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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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존경과 조롱'


『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손에 나 있는 검버섯 뿐이었다. 그건 평생 우아함과 세련함을 강조한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 맞고 투박한 생활인의 손이었다. 소공동의 작은 의상실에서 국내 굴지의 디자이너가 된 지금, 그는 행복할까. 한 손에는 신문을, 한 손에는 따뜻한 차를 준비해 조용히 의자에 앉은 그는 TV 속 자신을 흉내내는 개그맨들의 모습을 보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자신에 관련해 "파리에서 대규모 자선 패션쇼 열어. 전 세계 찬사." 라는 제목이 큼지막히 적힌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쪽에서는 조롱을, 한 쪽에서는 존경을. 한 쪽에서는 희화를, 한 쪽에서는 경외를. 그 두 가지가 모두 양립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 빼곡히 걸려 있는 자신의 옷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평생 자신의 이름이 되고 상징이 됐던 자신만의 옷들, 자신만의 디자인. 그 속에서 그는 마치 40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세기의 대 스타 엄앵란을 만나 우정을 속삭이고 성공을 꿈 꿨던 젊은 날의 초상을. 파리 패션쇼에 처음 자신의 모델들을 올려 보냈던 가슴 떨리는 열정을.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꿈과 열정을 펼쳐 보일 수 있었음을,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려 노력했음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됐어. 난 아직 '젊은 디자이너' 야."


평생을 옷 하나에 매달려 온 늙은 디자이너의 입에선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젊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라고.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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