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은 갈등을 유발하고 드라마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다. 각종 악역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금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이하<역적>), <완벽한 아내><귓속말>에 등장하는 악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역들은 조금 특별하다. ‘사이코 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로 주인공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큰 위력을 가진 캐릭터들이기에 그렇다. 사실상 세 드라마 모두 악역의 힘으로 밀어 붙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역적>-가장 강력한 적, 사이코 패스 연산군

 

 

 


<역적>은 삼사 월화 드라마 중 가장 스토리의 결이 매끄럽다. 사극이지만 시의성을 반영하여 권력에 대항하는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정을 파고드는 부분이다. 영웅이 되어가는 홍길동(윤균상 분)은 백성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살리고자하고 그런 백성들의 반란을 폭동으로 여기는 연산군(김지석 분)은 절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으로 대표되며 절대 악으로 묘사된다.

 

 

 


그동안 연산군은 수많은 드라마에서 되풀이되어온 캐릭터다.  폐비 윤 씨의 사사,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등 드라마를 수놓을 수 있는 극적인 사건들이 충분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김지석의 연산군은 광폭한 폭군으로 수없이 묘사되었던 연산군의 계보를 잇고 있지만, 단순히 어떤 계기로 인해 폭군이 되었다기 보다는 애초에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이코 패스’ 기질이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인간 사냥’을 통해 홍길동의 몸을 부수는 연산군의 표정에는 죄책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을 사냥하며 짐승취급하는 연산군의 모습은 그의 내면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서늘하고 소름끼치는 감정표현으로 김지석은 악역임에도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놀이 취급 할 만큼의 사이코 패스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위치가 무너질까 두려워 초조한 왕의 심리가 극적으로 표현되며 김지석의 연산군은 드라마 후반부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완벽한 아내>-막장으로 달리는 스토리 안에서도 소름끼치는 ‘사이코’

 

 

 


이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이 왜 <완벽한 아내>인지 조차 모호한 스토리로 뒷심을 잃어버렸지만, 이은희 역할을 연기하는 조여정만큼은 끝까지 연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이은희는 극 초반부터 웃음을 가장하고 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로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조여정은 이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주인공 심재복(고소영 분)의 이혼에 기뻐하며 혼자 웃으며 춤을 추거나, 웃음 뒤에 언뜻 보이는 서늘한 무표정은 이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표현해 낸 것이었다.이은희의 정체를 숨기면서도 그 캐릭터가 안에 숨겨진 정상적이지 않은 자아를 표현해 내는데 조여정은 더할나위 없는 적역이었다.

 

 

 


이은희는 주인공 심재복 보다 훨씬 더 주목도가 높은 캐릭터다. 이은희가 벌이는 사건이 이 드라마에 가장 큰 중심 축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갈수록 정신병원에 심재복과 이은희를 가두며 다소 어이없는 전개로 흘러간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안에서도 조여정은 소름끼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불안한 정신상태로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며 즐거워 하는 ‘사이코’ 캐릭터는 <완벽한 아내>의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귓속말>-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이코’

 

 

 


이보영, 이상윤 주연에 박경수 작가가 집필하여 화제가 된 <귓속말>은 작가의 색채가 짙게 배어 나오지만 전작들에 비해 부족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사건은 사건의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터지지만 반복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긴장감은 오히려 줄어든다. 사건을 터뜨리는 부분에서 강약 조절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탓이다.

 

 

 


특히 이보영이 연기하는 신영주 캐릭터에는 오류가 많다.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불치병까지 걸린 마당에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너무 앞뒤없이 사건에 덤벼드는 탓에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만다. 뚜렷한 대책이나 계획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여자 주인공의 행동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은 악역 캐릭터인 강정일(권율 분)과 최일환(김갑수 분)이다. 강정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물로,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빼앗기자 점차 괴물이 되어간다. 어떻게 보면 사랑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저지른 악행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모습은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

 

 

 


그러나 악역 악역의 심리와 고뇌를 놓치지 않는 스토리 라인 덕분에 ‘섹시한 악역’으로서 평가받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강정일을 연기하는 권율 역시, 이 드라마로 그동안의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연기 변신을 인정받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두 드라마에서 보다 감정적으로 절제된 캐릭터지만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욱 주목받는 악역이다.

 

 


그 뒤에 있는 절대 악 최일환은 <귓속말>에서 가장 큰 사건을 만들어 내는 최종보스격 악의 축이다. 최일환은 신영주의 아버지 사건을 조작한데 이어서 이제는 강정일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강유택(김홍파 분)마저 살해했다.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그의 캐릭터가 주는 무게감은 드라마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강정일이 괴물이라면 최일환은 악마에 비견된다. 김갑수의 뛰어난 명불허전 연기력은 캐릭터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며 절대권력을 가진 가장 강력한 벽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표현해 낸다.

 

 

 


주연보다 주목받는 악역, 공통점이 있다.

 

 

 


지금 주목받고 있는 악역들은 단순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감정을 쏟아내며 악행과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악역이 아닌,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감정을 포기한 캐릭터들이다. 자신들이 잘못을 하지만 그 잘못이 실제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남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없으며 자신이 처한 고통은 참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 성격의 캐릭터들이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악역들이 드라마 안에서 주목받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의 인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그들에게 현실적인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생활에 마주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드라마 안에서 존재하는 무지막지한 ‘사이코’ 캐릭터들은 ‘역할’로서 각인될 수 있다. 그런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배우들에 대한 찬사 역시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대한 놀라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악역에 힘을 지나치게 실어준 나머지 스토리 구조상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 주인공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붕괴역시 일어날 수 있다. 주목받는 악역을 만들어 내는 것 보다 그 캐릭터를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잘 공존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드라마에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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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배드엔딩이나 열린결말도 해피엔딩일 수 있다. 그 결말이 그 작품에 꼭 필요한 형태로 그려졌다면 대중은 언제든지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만족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인 엔딩이 해피엔딩이라고 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이 만족할만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대중예술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끝 차이로 명작과 망작이 나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즈인더트랩(이하<치인트>)>가 이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목에서 삐걱대고 있다. 시청자는 물론, 원작자 심지어 주연배우까지 이 작품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초반 호응을 얻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이제 <치인트>는 단 2회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 아무리 이 2회가 공들여 만들어졌다 해도 지금까지 받아온 실망감이 채워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심지어 <치인트>의 원작자인 순끼는 웹툰의 결말을 공유하며 결말을 다르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입장을 밝히며 드라마 제작팀이 그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글을 남겼다. 결말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가 웹툰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드라마 <치인트>는 웹툰의 엑기스를 뽑아 만든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서브를 맡은 백인호(서강준 분)의 분량이 이유없이 지나치게 늘어나며 주연인 유정(박해진 분)의 분량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아예 까메오 수준으로 줄어든 분량에 유정의 캐릭터는 제대로 설명될 수 없었고 무대는 백인호와 홍설(김고은 분)의 관계로 중심이 옮겨갔다.

 

 


 

유정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고 그의 상황에 동조하게 만들어진 웹툰과 달리, 드라마는 백인호 주인공 만들기에 치중했다. 결국 결말로 다가갈수록 연출의 심각한 결함은 극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시청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드라마 내용에 공감이 가지 않고 원작을 훼손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이는 주연배우 박해진과 이윤정 PD의 불화설로까지 번지며 실망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유일한 희망은 남은 2회다. 그러나 과연 결말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껏 진행시켜온 억지 로맨스와 이해 할 수 없는 분량의 배치, 그리고 캐릭터 설정의 오류를 뒤집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이 상황에서 ‘해피엔딩’이 되더라도 그게 과연 진정한 의미의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제작진의 심각한 실책이고 능력부족이다.

 

 

 


과정이 아름답지 못하면 결말도 아름다울 수 없다. <응답하라 1988(이하<응팔>)>역시 마지막으로 갈수록 지지부진한 남편찾기와 다소 뜬금없는 전개로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다. 그나마 <응팔>은 가족애라는 따듯함이 있었기에 다른 드라마들 보다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간에서 길을 잃어버린 드라마는 <치인트>나 <응팔>이 전부가 아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는 갑자기 타이틀롤인 임산옥(고두심 분)이 암이 걸리는 강수를 택했지만, 그동안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자녀들의 캐릭터를 수습하는데는 실패했다. 따듯하고 청량한 가족드라마가 아니라 중간 중간 막장으로 치닫는 내용 덕택에 주인공의 죽음은 감동적이기 보다는 억지스러웠다. 자녀들이 뉘우치고 회개하는 모습마저 별 감흥이 없었다면 그 드라마가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이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던 <가족끼리 왜이래>를 교묘히 따라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시달려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그 이야기를 그리는 과정에 설득력이 업었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없기로는 <내 딸, 금사월(이하 <금사월>)>을 따라갈 드라마는 없다. 시청자들은 이미 <금사월>을 어느정도 막장이라는 전제하에 시청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제가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는 중구난방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금사월(백진희 분)과 강찬빈(윤현빈 분)의 캐릭터 붕괴다. 그들은 중심 로맨스를 책임지고 있지만 오히려 악역보다 더 비호감으로 전락한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신득예(전인화 분)의 복수에 동정하지 않는 금사월은 도무지 착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답답하여 차라리 악녀처럼 묘사가 되고 강찬빈역시 아버지 강만후(손창민 분)의 모든 악행을 알고도 덮는 다소 파렴치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작가는 금사월이 한 모든 행동이 사실은 연기였으며 신득예를 돕기 위한 계획이었던 것처럼 스토리를 전환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신득예를 향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질고 독한 말을 쏟아낸 것은 물론, 강찬빈과 신접살림까지 차리고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까지 방영된 마당에 갑작스런 이런 변화는 어이없을 정도로 개연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사월>역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피엔딩’을 맞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마지막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웃으며 끝난다 해서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다. 그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갈 때만이 시청자들의 환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각종 잡음과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작품 자체의 퀄리티가 저하될 수준의 내용전개를 보인 후, 갑작스런 해피엔딩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은 전혀 반갑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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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 금사월(이하<금사월>)><왔다! 장보리>의 시즌 2라고 불려도 좋을만큼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같은 작가가 집필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라도 출생의 비밀, 뒤바뀐 운명, 악녀, 복수등 소재의 유사성이 강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사월>은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남다른 김순옥 작가의 극본은 대놓고 막장을 추구하지만 그 안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개를 보이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전작 <왔다! 장보리>와 다른 결정적인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악녀의 존재감이다.

 

 

 

<왔다! 장보리>는 악역 연민정 (이유리 분)을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민정은 모든 사건의 갈등을 일으켰고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섰다. 답답한 주인공 장보리(오연서 분)보다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분출해내는 연민정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 연말 대상시상식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상을 수상할만큼 연민정의 존재감은 컸다. 이는 단순히 연민정의 캐릭터 자체가 강력했다기 보다는 개연성 없는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연기한 배우 이유리의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고 봐야 옳다.

 

 

 

<금사월>의 악역인 오혜(박세영 분)의 악행 역시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 2의 연민정을 재현하기에 박세영의 연기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순옥 작가의 극본 속에서 악역의 악행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단순히 타고나길 못되게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의 것을 탐내고, 질투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런 악행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되어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만 그 연기에 매력을 더하는 것은 온전히 연기자의 몫이다. 잘못하면 단순히 드라마의 소도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연기자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악역으로 스타가 되느냐, 단순히 악랄한 역할을 맡았다는 필모그래피 한줄이 더해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최초로 악역을 맡은 박세영은 아직까지 연민정에 비하면 그 주목도가 낮다.

 

 

그래서 연민정 하나만으로도 모든 드라마의 갈등구조가 형성 가능했던 <왔다! 장보리>와는 달리, <금사월>은 다른 악역들을 배치해 놓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강만후(손창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기도 서슴지 않고 신득예(전인화)와 결혼해 그의 인생마저 뒤흔들어 놓은 장본인인 것이다. 드디어 그는 악녀 오혜상과 손을 잡고 주인공 죽이기에 나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큰 분노를 일으키는 인물은 따로 있다. 그는 바로 금사월(백진희 분)의 친아버지인 오민호(박상원). 그는 오혜상의 계략으로 오혜상을 친딸로 알고 살아간다. 그덕택에 진짜 친딸인 금사월을 대놓고 차별하는 인물이다. 사실 이 인물이 실질적인 악역보다 더 악랄해 보이는 까닭은 그가 강만후와는 반대되는 캐릭터로 좋은 인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만후는 한눈에도 악인이지만 이 인물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으로 포장하며 사실은 누구보다 천박한 감정을 드러내는 위선을 떨고 있다.

 

 

 

200년된 소나무가 없어진 것에 대해 다짜고짜 금사월을 의심하다가도 금사월이 소나무를 찾아오자 어깨를 감싸안으며 칭찬하는 장면은 이 인물의 이중성을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아무리 계략에 빠졌다고는 하나, 소나무 사건이 금사월의 자작극이라고 믿어버리는 모습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이 친딸이라고 믿고 있는 오혜상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이해심이 넘치지만, 20년간 착한 딸의 역할을 다 해온 금사월에게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중성은 이 인물에게 동정의 여지마저 앗아간다.

 

 

 

복수를 다짐한 금사월의 친엄마 신득예(전인화 분) 역시 인품으로 따지면 결코 악인 못지 않은 인물이다. 금사월이 자신의 친딸임을 알지 못했을 때는 그를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하며 증오의 눈빛을 숨기지 않더니 친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은 강만후처럼 자신이 가진 것 이외에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좋겠다는 이기적인 태도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그 캐릭터들에게 덧씌워진 비호감적 요소들이 그들 캐릭터가 의도대로 표현되고 있지 못함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캐릭터 소개에 오민호는 가정에서도 바깥에서도 따듯한 인품을 지닌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되어있고, 신득예는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온화하고 반듯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설명이 되어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그 캐릭터 소개가 주는 느낌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오민호의 인품은 위선으로, 신득예의 따듯한 본성은 자기만 아는 이기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들이 사실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흔적을 남기며 그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춰 행동마저 바꾸는 기회주의자로 표현될 뿐이다. 다행히 이야기 전개 구조가 흥미로운탓에 시선은 고정되지만, 주인공 금사월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의 몰아침은 드라마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심각한 결함을 야기한다.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재밌으면 된다는 시청률 지상주의는 가슴 한 편에 아쉬움을 새기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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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시간대 방송되는 일일드라마들이 막장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SBS의 <못난이 주의보>만 제외하고 KBS1의 <지성이면 감천> KBS2의 <루비반지> MBC의 <오로라 공주>까지 모두 경쟁하듯 '막장'스토리를 펼쳐 보이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루비반지>는 교통사고가 난 자매가 성형수술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갖게 된다는 설정을 내세웠고 <지성이면 감천>은 착한 여주인공과 그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라는 전형적인 설정을 통해 드라마 전개를 펼쳤다. <오로라 공주>는 얼핏 막장 요소가 없는듯 하나 스토리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며 뜬금없는 배우 하차, 주인공의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중 KBS2의 <루비반지>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비록 설정 자체에 공감은 가지 않지만 언니의 인생을 빼앗은 동생이라는 소재 안에서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과 <오로라 공주>는 개연성 없고 황당한 전개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이번 주 종영하는 <지성이면 감천>은 시종일관 악녀 이예린(이해인)의 악행으로 시청자를 끌어 모았다. 전통 시청률 텃밭인 KBS1의 일일드라마 답게 시청률은 항상 20% 후반대로 나쁘지 않았으나, 한 때 3~40%를 넘나들었던 시청률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성적이다. 더군다나 악녀 이예린이 회개하는 스토리로 흘러가자 시청률은 더욱 하락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마지막에 눈물 흘리며 용서를 구하면 모두 해결된다는 식의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 온 것은 주인공 최세영(박세영)의 캐릭터가 결코 대중들이 이해할만한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스토리라인 속에서도 그 이야기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세영은 시종일관 이예린에게 당하기만 하는 가운데 단 한 번도 반격을 하지 못했다. 이예린은 주인공인 박세영에게 대놓고 무시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것은 물론, 아나운서인 세영과의 경쟁심에 경연대회에서 지게 만들기 위해 손목을 다치게 하고, 감기약을 몰래 바꿔치기해 방송에서 실수하게 만들며, 취재영상을 가로채고, 꼭 필요한 소품을 망가뜨리는 등의 온갖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질렀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박세영은 이예린을 원망하기는 커녕 용서하고 이해하며 화해했다.

 

 

 

 아무리 착하다지만 아나운서까지 될 정도로 똑똑한 여주인공의 이러한 행동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계속 당하기만 하는 통에 여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은 약해졌다. 이해인에게 당하며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은 착하다기 보다는 바보스러워보이기까지 했다. 급기야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악녀보다 더 밉상"이라며 주인공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오로라 공주>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는 똑똑하고 야무지며 똑부러지는 캐릭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내리는 헛똑똑이다. 남자주인공인 황마마(오창석)와의 결혼은 누가 보더라도 가시밭길. 누나들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살아온 황마마가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로라는 시청자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설설희(서하준)보다 황마마를 택한다. 여자 친구에게 헌신적이고 한 여자만 보며 좋은 시부모님에 재력까지 갖춘 그를 포기하고 황마마에게 갔을 때는 그만한 이유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로라는 단순히 "더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서 오로라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자신에게 잘 해준 남자를 이용만 하고 딴 남자를 선택한 오로라는 시청자들에게 미움을 받는 캐릭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집에 들어가서도 할 말 다 하는 오로라는 똑똑하기 보다는 처세술을 모르는 철부지 같아 보였다. 결국 황마마의 누나들에게 시집살이 당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여주인공 입장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오로라가 고생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그를 안타깝게 여기기 보다는 '오로라는 당해도 싸다'는 시누이들의 입장에 선다.

 

 

 결국 <오로라 공주>는 <루비 반지>에 시청률이 따라 잡히며 동시간대 2위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고액의 원고료를 받는 임성한 작가의 이름값이 무색한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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