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 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에 개연성 있는 스토리 전개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던 [찬란한 유산] 은 마지막 회에 등장인물들 하나하나를 세심히 조명하며 [찬유] 다운 해피엔딩으로 극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전히 '불행' 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끝끝내 구원받지 못한 인물, 바로 김미숙이 연기한 백성희다.






[찬란한 유산] 의 마지막회에서 등장인물 대부분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 장숙자 사장(반효정)은 평생의 숙원인 사원 아파트를 시작으로 사원주주제를 실현함으로써 진정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어냈고, 선우환(이승기)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진정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남자로 재탄생했다.


그 뿐인가. 고은성(한효주)과 박준세(배수빈)은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찬 도약의 발걸음을 시작했고 철부지 선우정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으니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해피엔드를 맞이한 셈이다. 심지어 유승미(문채원)까지도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진정 평화로운 행복을 누리게 되질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불행해 보였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백성희(김미숙)다. 혹자는 그녀가 꽃집을 운영하며 딸 승미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백성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던 삶은 그런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껏 백성희는 [찬란한 유산] 의 모든 '비밀' 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이었다. 남편이 죽자마자 양딸과 아들을 내쫒은 것도, 길을 잃어버린 은우를 고아원에 갖다 버린 것도, 보험금을 가로채고도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 한 것도, 장숙자를 대표 이사 자리에서 내쫓으려고 한 것도 모두 그녀가 저지른 악행이었다.


그녀가 끊임없이 악행을 저질렀던 이유는 그녀 스스로 매번 악다구니처럼 질러댄 것처럼 "돈" 때문에, 그리고 딸 "승미" 때문이었다. 돈을 지키기 위해, 딸을 지키기 위해 백성희는 매번 거짓말을 쳤고 그 거짓말을 포장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쳤다. 그녀의 운명이 파멸로 치달을 때에도 특유의 당당함과 뻔뻔스러움을 잃지 않았던 데에는 그녀가 끝끝내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회에서 그녀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토록 갈구하고 욕망했던 돈은 휴지조각처럼 사라졌고, 애지중지 했던 딸에게는 "엄마가 왜 내 엄마야!" 라는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돈이 사라지고 딸의 운명을 사지로 몰고 갔음을 깨닸는 순간 백성희는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던 자존심을 완전히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살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살시도까지 했던 이유는 그녀 삶의 가치가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자살시도는 딸 승미의 만류로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순간 백성희는 '죽은 것' 과 마찬가지인 사람이 됐다.


[찬란한 유산] 마지막회에서 백성희는 고평중에게 "승미 때문에 살아줘야 한다." 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곧 백성희라는 인격체가 완전히 죽어버렸다는 즉, 딸 승미가 원하기 때문에 살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이 말은 "자신이 원했던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 그게 바로 지옥이다." 라는 장숙자 사장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한 마디로 백성희는 끝끝내 행복해 질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백성희가 마지막 회에서 보여줬던 표정은 황량함과 쓸쓸함 그 자체였다. 승미가 거짓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것에 반해 백성희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욕망을 채워나갈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 그녀의 모습은 인간 백성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녀가 얼마나 지독히도 처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를 날 것 그대로로 보여줬다.


감정적이고 정열적이었던 여자. 황량하고 천박하고 쓸쓸했던 여자. 우울하고 차갑고 모든 것에 냉소적이었던 여자. 좌절과 실패에 허우적대며 스스로를 처량하게 만들었던 여자. 그리고 끝끝내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에 웃음 짓고,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고 있을 때 홀로 어두운 터널에 갇힌 듯 외로워 보였던 그녀의 얼굴에는 구원받지 못한 한 인간에 대한 지독한 연민이 서려있었다.


아름다운 키스씬으로 무난한 마무리를 보여준 [찬란한 유산] 의 마지막 회에서 왜 이리도 지독하게 백성희의 얼굴만이 선명히 기억에 남는 것일까. 그녀 자신조차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나만큼은 그녀를 용서해 줘야 할 것 같다. 이제 그만 제발 '편해' 지라고.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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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ankook 2009.07.27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2. 2009.08.06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구경꾼 2009.09.19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극적으로 남에게 절망을 주는 쓰레기같은 이상을 옹호할 필요는 없지요.... 글이 아무리 평탄해도 사고방식이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글이 거칠지만... 틀리지 않기에...당당하게 적을수는 있씁니다... 그 이상이 정말 편했냐도 의심스럽고... 사서 고생하면서 남에게 피해만 준셈이 될텐데... 정신감정까지 필요한 수준입니다.... 제대로 된 정신병자는 병원밥이나 축내지만.. 그런 정신병은 남의 인생을 축냅니다...




 [찬란한 유산]의 시청률이 40%가 넘으면서 '찬란한 시청률', '국민드라마'등의 타이틀이 붙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어져 버렸다. 다소 진부한 소재이긴 하지만 그 진부함을 신선하게 풀어내고 특유의 아기자기 하면서도 설레는 분위기를 만든 점도 칭찬해 줄 만 하고 여러 이야기를 녹여내면서도 이야기를 산으로 가지 않게 맥락을 잘 유지한 점도 훌륭했다. 



 그리고, 모든 출연진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승기와 한효주는 물론, 배수빈, 문채원의 주연, 주조연급 연기자들부터 악녀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낸 김미숙까지. 그들은 [찬란한 유산]의 시청률 담보하는 주요 출연진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엄청난 이득을 얻고 있다. 연기력에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주목도도 훨씬 높아졌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그들과 달리 가장 중요한 인물이면서도 관심의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졌던 사람을  조명코자 한다. 바로 [찬란한 유산]의 카리스마 있는 할머니, 반효정이다.






 반효정은 그동안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인물이었다. 가끔씩 시트콤이나 철없는 시어머니 등으로 이미지 변화를 꾀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맞춤한 듯한 역할은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듯한 '독함'으로 대변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느 역할을 연기하든지 간에 그녀에게는 눈빛 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독하디 독한, 또 인정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 같은 할머니로 기억되었다. 


 반효정은 훌륭한 연기자였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이미지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희 역할을 맡은 배우 김미숙이 그동안의 착하고 헌신적인 또는 고상한 단어로 대변되어지던 이미지를 벗어 버린 것 처럼 반효정 역시 [찬란한 유산]으로 그 스펙트럼을 드디어 인정 받고 있다. 


  [찬란한 유산]의 장숙자 역시, 반효정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카리스마'를 굳이 버리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맨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회사 대표이사가 가지고 있을 만한 적당한 독기와 고집을 그대로 내보인다. 손자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할머니는 역시, 기존의 독하디 독한 반효정의 이미지에 그다지 반기를 들지 않는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숙자'는 기존의 반효정,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반효정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자신의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재산을 전혀 낯선 이에게 물려줄 정도의 결단력은 오히려 그의 가족을 위한 것으로 드러나며 결국, 이 카리스마 있는 할머니의 결정으로 철없고 제멋대로인 자신의 가족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이 할머니의 목적은 모두 정의와 선의에 기초한다. 그 만큼 그 할머니가 꾸려온 가족들이 본질적으로 악하지 못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변화이기는 하지만 그가 가진 카리스마가 시청자들에게 희열을 주는 동시에 훈훈함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 역할은 두 가지의 중요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누구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강력한 '힘'과 그 힘을 발휘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따듯함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다정한 뉘앙스. 그 상반되는 성질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이뤄내기란 그다지 녹록치 않은 미션이다. 


 이 할머니가 어느 한 곳에 무게 중심을 조금만 더 두었더라도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균형이 무너질 수 있었다. 준세처럼 따듯하기만 해서도, 백성희처럼 독하기만 해서도 안되는 고난이도의 연기를 풀어가는 이 대 배우의 연기는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어떻게 보면 이 할머니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결국 장숙자 사장의 계획때문에 '유산 상속'이라는 문제가 생기고 남여 주인공은 재회할 수 있었으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묘사될 수 있었다. 이 줄기로 인해서 이야기들이 파생되고 사건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반효정이라는 연기자가 있었기에 그 줄기가 굵고 탄탄할 수 있었다.


 엇나가는 손자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코 회사를 맨손으로 일구어 낸 그 강인함을 버려서는 안 되는 이 '장숙자'라는 인물을 반효정은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처럼 소화하고 있다.  과연 반효정이 아니라면 이 역할을 누가 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찬유]의 숨은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배우는 물론 엄청난 연기력으로 지금까지 TV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그녀의 다양한 스팩트럼을 비로소 이 [찬유]를 통해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는 참 중요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배우가 어떤 역할과 어떤 작품을 만나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그 기회를 잡고 성공으로 이끈 이 대단한 배우에게 그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시청자들에게 희열을 줄 수 있는 연기를 증명해 보인 이 노배우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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