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tv<별난 며느리>는 대놓고 B급 정서를 표방한다. 고급스러운 화면이 아니라, 날것의 느낌을 강조하고 때때로 자막이 등장하는 화면은 진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여주인공은 방귀를 뀌어대고 춤추다 술상을 뒤집어엎으며 닭똥밭에서 구르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은 바로 가벼운 웃음의 향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엄연히 월화 드라마이지만 드라마보다는 시트콤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부담없이 시청할 수 있으며, 매회 빵빵 터지는 웃음 코드를 가장 중요한 흥행코드로 사용한다. <미세스 캅><화정>의 시청률을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웰메이드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굴욕을 받았던 전작 <너를 기억해>보다는 시청률 면에서 선방중이다.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드라마의 성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아직 극은 초반으로 시청률 반등의 기회도 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미미한 관심으로 출발했다. 걸그룹 시스타 출신의 다솜은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경험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배우로서의 입지는 없었고, 연기력 또한 잘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대중을 사로잡을만한 대작도 아니었던 탓에, <별난 며느리>에 쏟아진 것은 처음부터 기대보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그러나 다솜은 이 드라마에서만큼은 제 역할을 분명히 해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다소 진부하고 과장된 면이 분명 있다. 특히 시어머니들의 꽉 막힌 사고방식은 이 드라마의 불쾌지수를 올리는 일등공신이다. 다솜은 그 와중에 여주인공으로서 이 드라마의 청량제 역할을 분명히 해낸다. 절박한 상황에 있지만 대책없이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구심점에 섰다.

 

 

 

다솜의 연기력은 드라마에 무리없이 녹아든다. 이 드라마가 제대로 된 정극이었다면 다소 어색했을 장면들도 시트콤 느낌을 살려 오버 액션으로 이해된다. 다솜은 이 와중에 걸그룹의 정체성을 버리고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다솜은 여배우로서 연기력을 최초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다솜의 이런 연기는 과거 <지붕 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을 연상케 한다. 황정음은 당시 그룹 슈가 출신으로 연기자 변신을 꾀했지만 그를 배우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배우라기보다는 <우리 결혼했어요>로 기회를 얻은 신데렐라 정도로 보였고, 연기를 하는 그를 호감으로 보는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가벼운 시트콤의 분위기는 황정음에 대한 선입견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황정음은 웃음을 매개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망가짐을 두려워 하지 않고 소화하며 재평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 후, 황정음은 <자이언트> <내 마음이 들리니> <골든타임> <돈의 화신> <비밀> <킬미 힐미>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명실공히 주연급 여배우로 성장해 나가는데 성공했다. 이런 과정에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 시발점이 되는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기회를 성공으로 바꾼 것은 황정음의 연기력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주목받을 수 있는 시트콤이라는 기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황정음도 없었다.

 

 

 

다솜 역시 그 때의 황정음과 다르지 않다. 다솜의 연기자 변신은 사실 대중에게 있어서 그다지 긍정적인 기대를 하게 만드는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별난 며느리>의 회차가 진행될수록 다솜에게 쏟아지는 것은 악평에서 호평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별난 며느리><미세스 캅>은 몰라도 <화정>의 시청률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다면 다솜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애초에 기대되지 않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은 성공으로도 커다란 재평가를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후 다솜이 이렇게 얻은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별난 며느리>는 다솜이 연기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솜이 다음 작품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느냐가 더 큰 문제다. <별난 며느리>는 시트콤에 가깝고, 정극에서 다솜의 매력은 아직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난 며느리> 이후 다솜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과연 또 하나의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의 탄생일지, 아니면 단 하나의 작품만이 전부인 아이돌이 될지, 다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그 미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다솜은 <별난 며느리>의 출연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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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은 노골적이다. 돌리고 순화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 매를 맞는 편을 택한다. ‘암세포는 생명’이라는 대사나 ‘사람 팔자가 정해져 있다’는 식의 운명론은 임성한이 마음대로 등장인물을 죽음이나 이민으로 하차시키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런 임성한이 작정하고 칭찬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압구정 백야>에 출연중인 육선지(백옥담 분)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며 수많은 기사를 양산해 냈다. 임성한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대단한 논란 거리였다.

 

 

 

육선지를 연기하는 배우 백옥담은 임성한 작가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백옥담은 2007년 <아현동 마님>으로 데뷔한 이래 임성한 작품으로 데뷔한 이래 임성한 작품에만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백옥담의 커리어에서 ‘임성한’이라는 이름을 지우면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특혜였다. 물론 캐스팅 작업이 단순한 오디션이나 실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한 작가의 작품에만 출연하는 연기자에 대한 무조건 적인 신뢰는 그 연기자 스스로 쌓은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혈연 관계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특혜는 <압구정 백야>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작품속에서 임성한은 대놓고 백옥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런 얼굴이 질리지 않는다.’ ‘탕웨이를 닮았다’ ‘몸매가 뛰어나다.’ ‘(육선지가 입은) 웨딩드레스가 어디 것이냐.’ 등등도 모자라 ‘그녀는 예뻤다’나 ‘위 아래’를 배경음악으로 춤까지 추게 만들었다.

 

 

 

임성한 작품의 여성들은 대체로 불행하다. 주인공이면 집안이 망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거나 복수를 꿈꾸는 독기를 품어야 하고 조연이면 사랑을 얻지 못해 불행하다. 그러나 백옥담만은 예외다. <압구정 백야>의 육선지는 모든 것을 가졌다. 사랑도, 미모도, 몸매도, 재력도.

 

 

 

단순히 이런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앞뒤 없이 죽어가거나 갑작스러운 하차 압박에 시달릴 때도 백옥담만은 이런 맥락에서 자유롭다는 것에 있다. 작가의 ‘데스노트’를 유일하게 피해가는 백옥담에게 주어진 것은 일종의 편애다. 자신의 드라마의 맥락을 고려해 적절하게 백옥담에게 맞는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에 의해 백옥담을 무조건적으로 행복해야만 하는 캐릭터로 변모시킨 것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 자체가 부자연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도 이 캐릭터는 모든 부자연 스러움의 역풍을 피해가기에 더욱 부자연스러움이 부각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백옥담에게 주어진 칭찬 역시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탕웨이를 닮았다’거나 ‘질리지 않는 얼굴’이라는 찬사는 백옥담 자체에 쏟아지는 칭찬이다. 이런 칭찬이 캐릭터 설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그 연기자 자체를 띄우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이런 장면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백옥담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을만한 연기나 외모를 두루 갖춘 배우였다면 이런 임성한식 칭찬들이 유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청자들의 뇌리속에 백옥담은 단순히 임성한 조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배우에게 쏟아진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고난 외모나 두뇌에 대한 칭찬은 오히려 아이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도 있고 너무 지나친 극찬은 일종의 강요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성한의 조카사랑은 시청자들에게 하는 일종의 강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강요된 칭찬으로 실소를 내뱉는 시청자들이 언제까지 임성한 드라마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 대답이 궁금해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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