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이 여전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고현정의 하차 이 후에 춘추와 비담, 유신 등 그 동안 덕만파로 편입되어 있던 인물들이 속속 자신의 '야욕' 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 타이틀롤인 이요원의 연기는 여전히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무난하기는 하지만 극을 이끌어 가기에는 엄청나게 역부족이다.




너무나도 평범하고, 너무나도 단순한 이요원의 '연기'


이 드라마의 히로인은 누가 뭐래도 고현정이었다. 50회라는 긴 분량을 전체적으로 아우른 고현정의 연기력과 캐릭터의 매력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악역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주연 그 자체에 훨씬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꾸미고 차례차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나가는 모습은 주인공보다 훨씬 더 막강한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현정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캐릭터의 분량이 많은 덕도 있고 행동 패턴에 시청자들의 감정을 움직게 하는 요소가 다분히 포함된 덕도 있지만 그보다는 고현정 자체가 뿜어내는 아우라, 그리고 일명 '눈썹 연기' 라고 불리는 디테일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력에 힘입은 바 컸다. 

 
고현정은 '미실'이라는 여자를 그 어떤 연기자도 대신 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성있고 뚜렷하게 표현해 내었다. 때로는 마음속에 독을 품은채 보이는 온화한 미소로 시청자들을 섬뜩하게 했고 때로는 "이것이 미실의 사람들이다." 며 죽은 왕 앞에서 소리치는 권력에의 탐욕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이 감정을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처절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을 역할이었다. 


50회 이상 드라마의 '흐름' 이 미실 중심으로 편제되면서 타이틀롤이었던 이요원은 미실의 그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현정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 덕만 캐릭터 자체가 미실보다 임팩트가 약했던 탓도 있었지만 이요원에게는 캐릭터에 대한 치열한 연구가 고현정만큼 보이지 않는다. 고현정이 엄청난 화면 장악력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상황과 대사, 상대 배역에 따라 목소리 톤과 표정을 바꿔가며 맛깔나게 연기한 것과 달리 이요원의 연기는 너무나 '평면적' 이어서 느낌을 살리지 못한다.


사실 이요원은 결혼하고 나서야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특이케이스다. 그 이전까지 이요원은 특별한 재능이나 성과를 보여준 일이 없었고 단지 가능성있는 여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이요원이 결혼과 함께 공백기를 갖은 후 컴백을 하자 톱 배우들이 받는 대우를 받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미지 메이킹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극에서는 '이미지' 로만 승부를 볼 수 없다.


현대극에서는 이요원 특유의 평범한 연기력이 무난하다고 보여질 수 있지만 사극 연기는 현대극과 다르다. 다소 과장된 연기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요원은 현대극에서나 사극에서나 변화하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문제인 것은 극 중 신분이 화랑이든, 공주든, 여왕이든간에 대사톤이나 캐릭터 색깔자체도 동일선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는 점점 진화하고 성장하는데 그 역할을 맡은 이요원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캐릭터 내부의 성장동력까지 완전히 죽어버리고 있다. 


게다가 이요원은 가장 기본적인 대사처리나 발성 역시 고현정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다. 이요원은 대사를 칠 때 "네/그렇습니다/미실은/다른 것을 준비할 겁니다/" 로 딱딱 끊어 읽어 상당히 어색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배우 나름대로 캐릭터의 단호함과 당당함을 연출하려고 하는 일종의 설정인지 몰라도 가족과 다름 없는 춘추나 유신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대사를 이런 식으로 쳐버리니 인간적인 매력은 없고 기계적인 느낌만이 강하게 난다. 




미실과 비담은 있는데 선덕여왕은 없는 이상한 드라마


물론 이요원의 연기가 빛났던 부분도 몇 장면있다. 그러나 그것은 52회에 걸친 대장정의 기간 동안 극히 일부분이었을 뿐, 그동안 이요원의 연기가 극 전체를 아우른다거나, 무게 중심을 확실히 잡는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임팩트 있게 뇌리에 박힌다거나 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그저 '무난' 할 뿐이다. 허나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은 대작사극의 주인공이 그저 '무난' 하고 '평범' 할 뿐 이라면 그 배우는 낙제점이다. 타이틀롤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게 할만큼의 포스를 보여줘야 한다.


고현정이 없는 지금 [선덕여왕] 의 중심은 단연 이요원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요원이 극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자 힘의 원천으로만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이요원의 연기와 캐릭터에서 별다른 매력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주조연인 비담에게 집중하고 있다. 지금의 [선덕여왕] 은 제목만 '선덕여왕' 일 뿐 50회 짜리 [선덕여왕-미실새주] 를 끝내고 번외편인 [선덕여왕-비담의 난] 을 시작하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주조연이 주연의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이요원의 연기가 너무나 단선적, 단편적, 무변화 한 밍숭맹숭한 연기이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을 보고 두고두고 아쉬운 것은 미실 고현정, 비담 김남길 등 덕만과 대립하는 연기자들은 너무나도 환상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200% 뽑아내는데 주인공인 이요원은 덕만 캐릭터의 100%도 끌어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해칠만큼 고생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주인공으로서 책임감을 다해 연기하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주인공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자라면 누구나 고생하고, 누구나 힘들어한다.


"나 힘들어요" "나 고생해요" 라고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연기력과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제발 남은 10회라도 비담, 유신, 춘추 등이 주인공이 아닌 온전히 '덕만' 에게 집중하고, 덕만의 편이 되어 선덕여왕을 응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절제하지 말고 폭발하는 연기를 펼쳐라, 이요원이여!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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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고 있다.


마치 마지막 회를 두고 달려가는 듯 [선덕여왕] 49회는 여태껏 방송했던 에피 중에 가장 레전드 급의 수준을 보여줬다.


특히 "미실을 죽여라" 라는 진흥제의 칙서를 둘러 싼 미실과 비담의 심리적 갈등은 그야말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쯤에서 궁금해진다. 왜 미실은 진흥제의 '칙서' 를 불태우지 않고 보관했던 것일까. 대체 왜.




미실이 진흥제의 '칙서' 를 버리지 않았던 이유


사실 "미실을 죽여라" 라고 쓰여져 있는 진흥제의 칙서는 미실의 위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칼날과 같은 존재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권위를 유지하는 미실이지만 그 위엄이 사실은 진흥제의 칙서를 날조하고 위조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죽은 진흥제의 한마디에 천하의 미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흥제의 칙서야말로 미실로서는 반드시 불태워 없애야 하는 1급 기밀 문서다. 진흥제의 칙서가 세상에 알려지는 그 순간 미실의 '운명' 도 끝장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실은 진흥제의 '칙서' 를 고이 간직했다. 불태워 없애버리기는 커녕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곳에 신줏단자 모시듯 모셔놨다. 진흥제에 대한 단순한 연민 혹은 죄책감 때문에 그러했을까. 어쩌면 일말의 양심이 작용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론 성이 안 찬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그녀가 고작 '양심' 때문에 칙서를 모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녀가 칙서를 버리지 않았던 첫번째 이유는 설원을 비롯한 측근들의 안위에 있었다.


진흥제의 칙서에는 "설원에게 부탁하기를, 미실을 죽여라." 라고 쓰여져 있다. 그런데 설원은 미실의 가장 첫번째 가는 측근이다. 미실은 반란을 일으킬 때 실패했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죽음이 곧 설원의 죽음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는 미실은 칙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설원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뚫어놓고자 했다. 즉, 반란이 실패했을 경우 설원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김으로서 설원에게 반란의 수괴를 죽였다는 '공' 을 실어주고자 한 것이다.


비록 설원이 미실의 최측근이었다고 할지라도 미실을 죽이고 반란을 제압하는 공을 세운다면 덕만의 입장으로서 설원을 처단하는 것은 힘들어진다. 게다가 "미실을 죽이라" 고 했던 진흥제의 칙서를 보고 미실을 죽였다고 한다면 설원을 처단할 수 있는 명분은 더더욱 힘을 잃게 된다. 말 그대로 설원은 반란의 수괴를 제거한, 그것도 모자라 진흥제의 유언을 충실히 따른 '진흥제의 충신' 이 되기 때문이다. 진흥제의 충신이 된 그를 제거하는 것은 진흥제를 부정하는 것, 그렇기에 덕만은 절대로 설원을 벌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미실의 난' 의 책임은 미실과 그 측근들이 모두 끌려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미실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가 된다. 자신 홀로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미실의 모습은 측근과 가문을 보전하고 훗날을 기약하려는 노회한 정객의 노련함을 보여준다. 즉, 미실은 죽되 미실의 가문과 측근들은 살아남게 함으로써 덕만이 온전히 신국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처절하고도 치열한 정치력의 발로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칙서를 남겨 둔 두번째 이유는 바로 '비담' 에게 있다.


설원이 미실에게 "왜 그 칙서를 남겨 두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미실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담입니다." 왜 그녀는 그 때에 비담을 거론했을까. 칙서를 남겨두는 근본적인 이유가 비담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말인데, 과연 칙서와 비담은 어떠한 관계에 있길래 그녀는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제작진은 이 부분을 훗날 일어날 '비담의 난' 의 복선으로 강하게 깔아놓고 있는 듯 하다. 미실은 "미실을 죽여라" 라고 했던 진흥제의 칙서가 자신 뿐만 아니라 비담 자체에게도 상당한 부담감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고, 이 칙서의 내용이 비담에게 알려질 때에 비담이 받을 충격 또한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폐위 된 아버지와 제거대상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운명, 그의 말 그대로 "항상 방해만 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비담에게 황제의 칙서는 말 그대로 심리적 사형선고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미실은 자신이 죽게 됨으로써 비담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역이용 해 덕만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를 기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49회 방송분에서 비담은 친어머니를 죽이라는 칙서를 자신의 주인인 덕만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비담은 미실을 찾아가 "나를 왜 청유 보내셨습니까?" 라고 물었고 "그건...니가 방해가 됐기 때문이다." 라며 간접적으로 아들을 제거하지 않으려 했던 친어머니의 모성애를 확인한다. 그 순간, 비담이 직면했던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어미의 처참한 모습과 그 어미의 운명을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이었다.


비정하고 매몰찼던 어미는 칙서를 통해 아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한다." 는 절망과 복수심을 선사했다. 칙서의 내용이 발견되는 그 순간, 나 뿐만 아니러 너 또한 무너진다는 것을 은연 중에 확인시키면서 그녀는 죽는 그 순간에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아들 '비담' 에게 모든 운명을 물려주게 됐다. 결국 비담의 입장으로선 진흥제의 뜻을 따르는 덕만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케 된 것이고 이는 곧 '비담의 난' 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실이 살아있을 때 끈끈하고 공고한 것처럼 보였던 덕만의 내부 결속이 오히려 미실이 죽는 그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녀가 칙서를 남겨둔 세번째 이유는 바로 '미실' 자신에게 있다.


40년 동안 신국을 통치하면서도 그녀는 칙서를 버리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공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에 두었다. 그렇게 위험한 물건을 꽁꽁 싸매 놓은 것도 아니고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에 두었다는 것은 '완전무결' 해 보이는 미실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심지어 그녀는 그 칙서를 설원에게 맡기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자신이 보관하기도 하면서 수시로 자신의 곁에 두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번째로 칙서를 설원에게 맡기는 등의 행동을 통해 미실의 최측근인 설원의 충성을 확실히 보장받으려고 했다는 것, 두번째로 칙서를 자신이 보관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곁에 두고자 했던 것은 그 칙서의 내용을 되새김질 하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는 결의를 다지고자 했다는 것이다.


칙서의 내용으로만 따지자면 미실은 절대로 신국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더 나아가 살아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미실은 살아 남았고, 40년간 신국을 통치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았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권력에 집착했던 그녀는 "미실을 죽이라" 고 했던 칙서를 읽고 또 읽으며 삶에 대한 집착과 권력에의 욕망을 더 키워나갔을 것이다. 미실은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인 칙서를 통해 삶에 대한 결의를 다졌을 뿐 아니라 설원과 같은 최측근의 충성심까지 동시에 얻어내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실제로 설원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 칙서를 그에게 맡겼던 미실은 반란을 일으키며 칙서를 다시 돌려 받는다. 미실에 대한 설원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칙서를 활용했던 그녀가 반란으로 자신의 운명을 내 던질 때는 반대로 본인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금 칙서를 받아든 것이다. 결국 칙서는 그녀가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정반대로 증명했던 물건, 그녀가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물건이었다.





칙서에 대한 여러가지 의미를 간직한 채 미실은 [선덕여왕] 50회를 끝으로 파란만장한 삶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선덕여왕] 50회가 마치 '마지막 회' 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미실이 지금껏 겪어왔던 처절한 정치 인생과 그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웠던 패기에 시청자들이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이었고, 진골이었으며, 가장 존경했던 진흥제에게까지 버림받았던 비운의 여성이었지만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지금껏 극을 이끌어 온 그녀의 카리스마는 [선덕여왕] 이 끝나더라도 아마 대중에게 강렬히 남아 있을 것이다.


확고한 정치 철학과 비전, 어떻게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이 신국의 여걸은 그 삶이 도덕적으로 옳았든, 옳지 않았든간에 충분히 존경받고 인정받을만 하다. 미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여황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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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의 시청률이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


덕만의 각성 이 후, 스토리가 탄력을 받은데다가 미실과 덕만의 한판 승부가 가시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개성이 점차 살아나는 가운데 [선덕여왕] 의 주인공들을 보다보면 '삼국지' 의 인물들이 오버랩된다. 과연 [선덕여왕] 의 주인공들은 삼국지의 누구와 닮아 있을까.




유비 vs 덕만


[삼국지] 의 유비는 천한 돗자리 장수로 시작해 촉나라의 황제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왔다. 조조만큼 머리가 비상한 것도, 손권만큼 선대의 자산이 두터웠던 것도 아니었으나 그가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데에는 제갈량, 방통, 마량,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의 황제 중 가장 무능했으면서도 백성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유비의 존재감은 조조조차 '반드시 제거' 해야 하는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유비가 성공할 수 있었던데에는 헌제의 황숙이라는 '한 황숙' 의 타이틀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캐릭터였다.


유비와 마찬가지로 최근 각성한 덕만에게 뿜어져 나오는 힘의 원천은 황실의 공주라는 타이틀과 미실이 말한 것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 때문이다. 덕만은 알천, 유신, 비담 등을 차례로 포섭하여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으며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절대권력 미실을 제거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거행한다. 덕만 자체의 능력은 미실에 비해 그리 뛰어난 것이 아니나 사람을 끌어당기고 사람을 사용하는 인덕과 매력은 여왕으로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인 셈이다.


게다가 덕만은 '하늘의 뜻' 을 이어받았다는 명목 아래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신라를 집어삼키겠다는 야망은 황실의 공주라는 정통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를 보면 '유황숙' 이라는 칭호를 즐겨 듣길 좋아했던 유비의 정통성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조조 vs 미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이라는 말은 조조를 상징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다. 그는 허자장의 말처럼 간악한 영웅이었다. 필요에 따라 사람을 적재적소에 썼고, 수많은 현자들과 장군들을 거느리며 위세를 떨쳤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가려 썼고,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는 가차없이 제거했다. 치밀한 전략으로 삼국 중 가장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으나 때때로 냉정하고 차가운 그의 이미지 때문에 그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악역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을 가려쓰는 조맹덕의 '카리스마' 는 여전히 치명적이지만 매력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선덕여왕] 에서 조조와 같은 인물이 바로 미실이다. 미실은 정적인 김서현 가문조차 포용할 정도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미래에 장애가 되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아들과 동생조차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냉혹한 성품을 지닌 여인이기도 하다. 하늘의 뜻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백성들을 현혹하는 짓까지도 서슴지 않으면서도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자신의 재능을 만천하에 떨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조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조운 vs 김유신


유비와 제갈공명의 평생의 '보디가드' 이자 촉나라 오호장군 중 하나인 조운은 강인한 뚝심으로 주군을 섬긴 충신으로 유명하다. 위나라 군사들의 사이를 뚫고 아두를 구해온 일화는 유명하며 관우, 장비 등이 죽은 뒤에도 촉나라 노장으로서 자존심을 지킨 그는 뚝심과 끈기를 지닌 남자로 상징된다. 여러 주인을 섬겼으나 유비를 만난 뒤에는 '목숨' 까지 바칠 정도로 무식한 열정을 지닌 그의 모습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장군들 중 가장 매력적이다.


덕만을 사모하며 그녀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김유신의 모습은 조자룡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조자룡이 그랬던 것처럼 김유신 역시 덕만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버리지 않으며, 어떤 위험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담대함을 보여준다. 비록 [선덕여왕] 의 유신랑은 삼국지의 조자룡만큼 매력적이지는 못하지만 그의 뚝심과 끈기는 조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빛나는 가치이기도 하다. 서서히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유신이 보다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유 vs 미생


이유는 '폭군' 동탁의 두뇌역할을 했던 동탁의 최측근 가신이었다. 동탁에게 여포를 데려다 준 것도, 낙양을 불태운 것도, 권력을 장악한 동탁의 독재가 계속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바로 이유였다. 그는 무식하고 무모한 동탁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악독하고 탐욕스러운데다 재능의 한계까지 있었으나 화웅, 여포 등의 인물들을 뽑아 주군을 보필하고 적재적소에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이유만한 인물도 드물었다.


미실의 동생 미생 역시 이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생은 미실의 카리스마를 보좌하고, 미실의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 헛점투성이에다가 다소 촐랑거리는 성격이지만 미생이 끝까지 미실의 곁에 남을 수 있는 것은 땅 속에서 부처상을 끄집어내는 권모술수와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캐치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은 이유만큼 탐욕스러운데다가 여자까지 밝히는 호색한이지만 미실과는 어떤 식으로든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다.





방통 vs 천명


'복룡이나 봉추 중 한명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 는 사마휘의 평은 봉추 방통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인지 알게 한다. 못생기고 험악스러운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에 버금가는 지적수준을 가지고 있어 삼국지 최고의 현자 중 한명으로 추앙되고 있는 그는 말년에 주군인 유비를 대신해 낙봉파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아까운 생을 마감한다. 제갈량조차 "하늘도 무심토다!" 라고 탄식할 정도로 그의 죽음은 안타까웠다.


최근 [선덕여왕] 에서 장렬히 최후를 마친 천명공주의 삶 역시 방통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천명과 방통의 삶을 완전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유비 대신 죽음을 선택한 방통과 덕만 대신 죽임을 당한 천명의 모습은 묘하게 오버랩 된다. 유비는 방통의 죽음을 통해서 그토록 원하던 익주를 얻었고, 덕만은 천명의 죽음을 통해서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 이라는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으니 방통과 천명의 삶과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가지게 된 셈이다.





순욱 vs 서리


조조는 순욱을 일컬어 '나의 장자방' 이라고 했다. 그만큼 조조가 성장하는 데 있어 순욱이라는 인물의 역할은 지대했다. 순유, 정욱, 곽가, 유엽, 만총 등 빛나는 조조의 책사 중에서도 다양한 계책과 시기적절한 판단을 내놓는 순욱의 존재감은 조조에게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의 야망이 한나라 재건이 아닌 새나라의 건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욱은 서서히 조조와 의견대립을 보였고, 결국 권력의 주변부로 내몰리는 수모까지 겪게 된다. 결국 위공사건으로 인해 조조에게 '자살권유' 를 받은 순욱은 자살을 함으로써 조조와 영원히 결별한다. 그는 죽음 직전까지도 "조공께서 거병하신 이유를 제대로 아시오!" 라고 충고할 정도로 정도를 걸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삼국지의 순욱과 완전히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선덕여왕] 의 상천관 서리 역시 순욱과 같은 삶을 산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상천관 서리는 미실이 신당을 장악하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천체를 관측하고 천의를 따랐던 그녀는 천의가 미실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주인으로 섬겼다. 허나 그렇게 믿고 따르던 미실이 천의를 거스르고 자신의 야망에 충실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미실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미실의 자살권유로 인해 죽임을 당하던 때에 그녀는 천의를 등진 미실 대신 천의와 맞닿은 덕만을 선택했다. 어쩌면 서리 역시 순욱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미실' 이 아니라 '천의' 즉, 자신이 믿고 있는 하늘의 뜻 그것 뿐이 아니었을까.





위연 vs 비담


위연은 삼국지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인물이다. 몇 차례나 주군을 바꾸며 출세가도를 달렸고, 제갈량의 못마땅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오호장군과 함께 촉나라에서 가장 활약한 인물이기도 했다. 관우, 장비의 죽음 뒤에 제갈량은 하는 수 없이 '능력이 출중' 한 위연을 기용할 수 밖엔 없었으나 훗날 오장원에서 숨을 거둘 때 "위연은 반골의 상이니 내가 죽으면 바로 죽이라" 는 명을 내릴 정도로 그를 경계했다. 삼국지에서 위연은 제갈량이 죽자 촉나라에 반기를 들어 반란을 일으켰다가 마대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비담 역시 위연과 마찬가지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로 태어나 선천적으로 덕만과는 어울릴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그는 운명적으로 덕만과 조우하고, 덕만은 다소 버릇없고 잔인한 그를 '능력이 출중' 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발탁한다. 훗날 선덕여왕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비담의 난' 을 일으켰던 그는 진정한 반골의 상이자 목구멍 속의 바늘이었던 셈이다. 마치 공명이 우려했던 위연의 그것처럼. 





제갈공명 vs 김춘추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은 한 마디로 '운명적' 이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서 비로소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삼국 중 가장 약한 나라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강한 나라이기도 했던 촉나라의 힘의 원천은 제갈공명으로부터 비롯됐다. 유비의 유일한 브레인이자, 촉나라 최고의 현자였던 그는 유비가 황제가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당대 최고의 책사이자 충신이라는 찬사는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이제 조금있으면 등장할 김춘추 역시 덕만에게 있어서는 확실한 '브레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신, 알천, 비담 등 걸출한 무인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략을 구사하고 술수를 활용하는 참모진이 약한 덕만파에게 있어 재기발랄한 춘추의 합류는 덕만이 선덕여왕으로 성장하는데 활력소를 불어 넣을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 제작진이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비밀병기' 김춘추가 덕만의 참모로서 얼마나 활약할 지 기대가 된다.





삼국지 vs 선덕여왕

지금까지 삼국지의 인물들과 [선덕여왕]의 주인공들을 비교해 봤다. 물론 위의 삼국지는 진수의 삼국지가 아니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초로 했음을 알려드리는 바다. 삼국지와 [선덕여왕]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난세를 살아가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사람을 얻기도 하고, 사람을 버리기도 하면서 난세를 평정했던 당대 최고의 영웅들. 그 영웅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며 새삼 고전의 위대함과 드라마의 재미를 동시게 느끼게 된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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