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과 서정희가 연예계에서 쫓기다시피 떠난 이후 그들의 모습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그러나 연예인으로서가 아니었다. 서세원은 어느샌가 개신교의 목사로서 우리 앞에 돌아왔다. 이런 서세원의 목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듯 서정희 역시 아침 프로그램에 나와서 교회와 집을 공개하며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이른바 '성직'활동이 결국 연예 활동을 위한 발판이 아니냐는 추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세원 교회의 홍보와 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교회라는 성스러운 존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누가봐도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성직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보여주기 식' 자기 홍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들의 인정이 아닌, 자신들의 입으로 만들어진 '우리는 이만큼 건실하다'는 이미지, 왜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잘못한 사람을 무조건 매장시키는 일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과거를 무조건 무시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서세원은 조폭등의 심각한 문제에 연루되어 각종 루머에 휩싸이며 도망치듯 연예계를 떠났다. 서세원의 어두운 과거는 목사 연수 몇 개월로 희석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잘못을 서세원은 저질렀고 심각한 회개와 반성, 그리고 진정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만이 서세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면죄부는 그러나 그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서세원의 행동은 그 자신이 목사가 됨에 따라 "나 이만큼 청렴하고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자화자찬 하는 꼴이 되고야 말았다.


 진정으로 인정을 받으려거든 바로 그 교회의 신도들로부터, 아니면 주변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먼저 획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입으로 "교회는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헌금은 단체로 기부 된다" "적자운영이다"라는 말을 꺼냄으로써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가 목사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는 다음에 생각할 문제더라도 자신이 앞장서서 하는 '나는 깨끗한 사람'이라는 홍보는 정치인들의 이미지 메이킹 수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굉장히 수가 뻔히 보이는 계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진정으로 개척교회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건실한 목사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세원은 처음부터 청담동이라는 자리에 꽤나 화려한 교회 내부를 가지고 시작할 능력이 된 데다가 방송출연이라는 홍보도 덤으로 얻었다.


 진정으로 교회를 위하고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고 싶었다면 굳이 이런식으로 교회에 대한 홍보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잡지 인터뷰에 방송 출연, 게다가 그의 부인인 서정희 마저 팔을 걷고 나서서 "교회가 적자다" 라는 식의 말을 할 필요까진 없다.



 교회가 적자기는 하지만 여전히 서세원과 서정희 부부가 공개한 집을 보면 왠만한 사람이 꿈도 꾸지 못할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뿐인가. 자녀들은 외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다. 그들의 학비만도 수억원에 달할 터인데 그런 책임을 져줄 수 있는 재력이 그들에겐 아직도 있는 것이다. 교회가 적자 운영이라도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 그것이 물론 잘못은 아니지만 교회 운영이 정말 깊은 신앙심이 바탕이 된 깨끗한 결과라기 보다는 그들의 이미지를 청렴하고 깨끗이 만들어 줄 단 하나의 출구는 아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교회를 홍보하고 이미지를 새로고침 하는 것은 상당한 오류다. 대중들은 이부분에서 상당한 괴리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아직 그들의 목사 자격 논란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나 이만큼 깨끗해요"라고 외치는 경우라면 그들의 입장을 한 번쯤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세원은 또한 '신의 뜻이라면' 자신이 연예계 활동을 복귀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선택에 관한 문제까지 신의 이름을 빌리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일이다. 신의 뜻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뜻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교회를 홍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려하고 깔끔한 교회와 집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듯 보여주고 "예전에 연예계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눈물짓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대조적이라 실소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행복하지 않았다던 연예계 생활을 이용하여 그렇게 화려한 집과 교회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얻고 방송에 나와 홍보까지 할 여력을 얻은 그들은 이미 그 연예계 생활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의 교회는 엄청난 홍보효과를 얻었을 테고 서세원의 목사로서의 입지도 점점 높아져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신의 뜻이라면' 목사직을 그만 둘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진실되지 못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그들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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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edtop.tistory.com BlogIcon 더공 2012.03.14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교회가 적자다"라는 기사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식탁 두개만 팔아도 시골에 교회 하나 짓겠다!!"

    ^^

    • 시애틀 2012.03.1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원아,
      이제 정신 좀 차려라 이 못된 놈아!
      그게 교회냐 선술집이냐
      조명 좀 줄이고 악기나 몇개 세워두면 디너쑈 하기
      안성마춤이겠구나.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너희들의
      수작에 이용당하실 것 같으냐?
      어리석은 것들, 감히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2. 서브머린 2012.03.15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진실씨의 전남편 조성민도 친권싸움에서 참패한 직후인 2009년 여름에 비슷한 짓을 했었죠. 이근안이나 서세원보다도 더 질나쁜 사건이 바로 조성민의 기독교 어린이 야구영성캠프입니다. 다행히 그일은 보기드물게 기독교 내부에서 스캔들이 터져서 내부자정으로 끝났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A7%84%EC%8B%A4%EC%9D%98_%EC%A3%BD%EC%9D%8C#.EC.B9.9C.EA.B6.8C_.EB.85.BC.EB.9E.80_.EC.9D.B4.ED.9B.84




 코미디언 서세원이 목사로서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세원은 한 때 [서세원 쇼]의 성공으로 가장 잘나가는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공뒤에는 온갖 추잡하고 불결한 추문과 뒷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방송가에서 PD와 방송관계자들에게 영화 홍보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와 더불어 그가 받은 투자금이 투자금이 깨끗한 돈이 아니라 조직 폭력단의 돈을 끌어들인 것이라는 의혹도 받았다. 말하자면 검은 돈을 돈세탁 해주는 과정에 서세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뿐이 아니다. 서세원은 연예인 성상납 의혹까지 꼬리를 물며 재난에 가까운 스캔들에 휘말렸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목사 안수를 받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서세원, 과연 그는 목사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모두가 목사가 될 수 있는 현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재단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닐까.


 
 무릇 목사란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깨끗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요새 몇 몇 목사들의 행동을 보면 도저히 존경하기 힘든,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많이 저지르고는 한다. 기독교의 이미지가 몇년 새 최악으로 치닫은 것 또한 그들의 이기주의와 본인 제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서세원이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 목사의 현 시점을 보여준다. 물론 과거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 교리일 것이다. 하지만 서세원이 과연 진정으로 회개하고 남들을 위해서 살려고 목사가 되었는가에 관한 의문은 강하게 남는다.


 서세원이 목사가 되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느정도 홍보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서세원의 교회는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이 벌써부터 대중들 사이에는 생겨나고 있다. 뿐인가? 서세원의 교회는 땅 값 비싸기로 유명한 청담동에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지만 청담동에 그런 교회를 지으려거든 상당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청담동이 강북보다 더 월세가 싸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그 정도의 교회를 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감안해 볼 때 그의 종교활동에 의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독교 협회가 서세원을 목사로 인정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목사가 될 자격이 있고 남들을 위해서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서라기 보다는 그가 교회를 하나 더 만들 능력이 되고 유명한 인물로서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이 목사를 하는 이유는 결코 돈 때문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자신은 집회를 가도 전혀 돈을 받지 않고 교통비도 직접 내며 헌금도 선교단체로 직접 간다고 이야기 했다.


 물론 이 말이 사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서세원이 직접 할 말은 아니었다. 서세원이 진정으로 목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대중으로 부터 인정받는 길이다. 꾸준히 봉사하고 자신을 낮추고 진정 교회에서 계속 좋은 일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 자신이 아닌, 대중이 그를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스스로 자신이 하는 좋은 일을 떠벌리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 것임을 그는 알아야 했다. 


 서세원은 목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조용히 그 일을 시작했어야 했다. 정말 밑바닥 부터 하나하나 사람들을 모으고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로서 처음부터 시작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까 말까였다. 하지만 서세원은 처음부터 청담동에, 처음부터 방송출연에 보통 목사들이 할 수 없는 화려한 일들까지 이뤄가면서 자신의 성직이 마치 커리어인양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방송 출연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과 밑밥으로 성직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서세원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반성하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싶었다면 지금 그의 성직을 방송에서, 또는 여성지에서 그렇게 크게 떠벌리고 자랑했을까 하는 의문만 강하게 남는다. 



 성직이란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서 이용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안과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이 교회가 아닌가. 아직도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서세원의 목사로의 변신은 그래서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목사 안수만 받는다면 누구나 성직자가 될수 있나. 어떤 엄격한 기준과 잣대도 없이 기독교의 이익을 위해 목사가  되게 하는 행태가 어찌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목사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 몇년간은 그 사람을 지켜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세원은 방송말미에 "방송 출연도 하나님이 시키면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방송출연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은 역시 그가 그런 일을 염두해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런 일에까지 신을 끌어들이는 목사의 말이 과연 신뢰가 갈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은 당장 중지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든다. 만약 서세원이 진정으로 목사의 길을 가길 원한다면 그것은 그가 짊어져야 할 몫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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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ctober1017 2012.03.10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으로 댓글이라는 걸 달아보게 만들었습니다..기사를읽고 정말 다시는 교회에가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화가나려합니다

  2. 지나 2012.03.11 0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면 서세원씨는 다시는 방송에 출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것 역시 너무 가혹한거 아닌지.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한번 찍히면 갱생의 길(?)을 절대로 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3. 많은 생각 2012.03.11 0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든 하나님이아니라 인간을 믿으면 실망을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교회를 가면 반드시 회의를 느낌니다. 목사 장로 집사도 엄연한 인간이기때문이죠. 숨쉬어야하고 자식들 학교보내야하고 자야하고 성욕도있고...하나님이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셨고 모든것에는 이유가있습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기준으로 둔 믿음으로 살아야지 목사를 섬기거나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서세원씨가 진정한 목사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심판할만큼 깨끗하진 못합니다.

    • 음 이해를못하신듯 2012.03.12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에 내요을 잘 읽어보세요 '다시는 방송 출연을 하지말라'가 아니고 지금 서세원씨가 성직자로 목사로 방송에 나온거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거잖아요. 저는 이내용이 정말 공감이 가는내용인데 서세원씨가 방송 은퇴? 하시는데에는 안좋은 얘기 때문인데 그 소문들이 진짜 소문이라도 방송에 나와서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게 보기에 안좋게 보인다는 거죠 내용에서도 나와 있지만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을때는 밑바닥이라 하면 이상하지만 처음부터 천천히 봉사도 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알아줄때가 있다는거죠 이해가 안되시면 다시한번 읽으시고 댓글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 음 이해를못하신듯 2012.03.12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열심히 남겻는데 밑에다 남겻네 .....

  4. 많은 생각 2012.03.11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든 하나님이아니라 인간을 믿으면 실망을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교회를 가면 반드시 회의를 느낌니다. 목사 장로 집사도 엄연한 인간이기때문이죠. 숨쉬어야하고 자식들 학교보내야하고 자야하고 성욕도있고...하나님이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셨고 모든것에는 이유가있습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기준으로 둔 믿음으로 살아야지 목사를 섬기거나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서세원씨가 진정한 목사인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심판할만큼 깨끗하진 못합니다.

    • 고양이 2012.03.11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똥을 보고 저건 하나님만이 '똥'인지 아닌지 아신단말인가요? 헐~~인간은 그 정도 판단도 못하는 식충버러지군요.
      끔찍한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목사 안수를 받았죠.
      내가 그들을 하나님 판단없이 똥으로 분류하는것은 신앙활동을 하고 싶으면 가장 낮은곳에서 하세요. 왜 목사직을 받습니까? 그냥 봉사자가 되어 남을 돕고 열심히 기도하고하면 안됩니까? 꼭 '짱'이 되어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십습니까? 그러니까 아직도 정신머리가 썩은 똥이라는 겁니다.

    • 김군 2012.03.12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_- 역시나 기독교인들의 앞뒤 꽉 막힌 생각들을 그대로 보여주시는군요...

      사람이 아닌 무슨 프로그래밍된 로봇을 보는것 같네요 답답해

    • 레드 2012.03.14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말에 동감.....
      진정 합당한 자라면 쓰실것이고
      아니면 내려놓게 하실것입니다.

    • 레드 2012.03.14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말에 동감.....
      진정 합당한 자라면 쓰실것이고
      아니면 내려놓게 하실것입니다.

  5. 호호 2012.03.11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 둘을 지칭하는 말이예요.
    개신교라 해주세용^^

  6. 천사 2012.03.12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사님이 되는것이 그냥되는 줄 아세요? 모르는 소리하시니 참으로 답답하군요~방송에 나~오든 안 나~오든 먼말씀들이 그리도 많으신지..에휴~
    우리가 이야기 할 몫은 아니지요...뜻이 있으신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하나님이 하실일~
    또한 타인들을 가슴아프게 하시면 안돼요..
    목사님이 되기도 힘들지만 그런 과정을 말 많은 분들은 이겨 낼수있는지요..할수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 받으시고 목사님길로 가시죠?...
    왜그리 배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은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7. 한심한ㅉㅉ 2012.03.13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싫타 말두필요없다

  8. 태공 2012.03.16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연히 한번 찍히면 매장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덕적으로 조금 이나마 깨끗해 지고
    그래야 책임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걸 알게 해야 합니다.

  9. 물댄동산 2012.04.03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새벽기도하며 정말 믿음의표준이라고 까지 할정도로 순수한믿음이라고 책까지 쓰고하더니
    남편이 조폭 마누라라는 영화를 만들어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고 하더니 망했다고 했습니다
    지금에와서 목사가 됐다고 하더니 아직 교회가 시작하는 단게라아직은 적자라고 쓰여있는 것을 봤습니다 언제흑자로 만들것인지 궁금하군요 사업체 하나 차리셨는지 적자 흑자 라니요
    말은 그마음에서 나오는것이지요 ...




『 하얀 천으로 쇼 윈도를 뒤 덮으려 한 듯 파격적이고 세련된 디자인, 주변의 많은 의상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한 패션샵에 미모의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한참동안 의상실의 이름을 쳐다 보던 이 여성은 한숨을 한번 푹 쉬고 의상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꿈나라에 온 듯 하얀색으로 가득 한 의상실 내부를 보고 여성은 짧은 감탄을 내 질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접하지도 입어보지도 못 한 순백의 옷들, 그리고 그 옷들 사이에 서 있는 젊은 남성의 디자이너.


한동안 옷들을 매만지며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했던 젊은 남성은 이내 여성을 알아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걸어왔다. 얼핏 봐도 180cm가 넘는 듯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와 상대방을 제압하는 카리스마에 여성은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 곳, 의상실 디자이너신가요?" 여성이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젊은 남성이 은은한 미소로 대꾸했다.


그 은은한 미소에 여성 역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수줍게 이야기했다.


"저 엄앵란인데요, 여기 있는 옷들을 입고 싶어서요."


그렇게 소공동의 작은 의상실, '살롱 앙드레' 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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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假縫을 거쳐 모든 바느질과 손질을 마치고 着衣室의 커튼 뒤에서 그 옷의 임자에 의해 처음으로 몸에 걸쳐지는 순간 의상은 生命性을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막 피어날 듯하면서도 그 꽃잎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봉오리를 들여다볼 때와 같이 期待와 不安이 뒤섞인 야릇한 설레임이 가슴에 술렁대는 것도 이런 때의 일이다. 디자인의 意圖가 충분히 살아 있을까. 옷감의 質과 色의 뉴앙스가 그 임자의 개성에 잘 조화돼 있을까 등등….’』


1966년 [신동아] 2월 호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위와 같다. 소설의 한 토막처럼 여배우 엄앵란을 만났고,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패션쇼를 한 앙드레 김은 60년대 한국 패션계에 파란을 일으킨 희대의 기린아였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문화권력' 이었다. 앙드레 김을 설명하기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냈다' 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앙드레 김은 선망과 경의의 대상이었다.

 
신문과 잡지, 극히 제한 된 뉴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60년대의 앙드레 김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45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로 앙드레 김을 떠올리고, '가장 친숙한 디자이너' 로 앙드레김을 받아 들인다. 제한 된 미디어의 통제가 사라진 21세기의 최첨단 시대에 4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사랑 받은 대중문화인은, 문화평론가 손상익의 말처럼 "앙드레김 밖에는 없다."


그러나 40여년을 디자이너로 살아 온 앙드레 김의 뒷면에는 또한 무수한 '그림자' 가 존재한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의 지적처럼 "앙드레김의 성공은 패션계 내부가 아니라 연예계에서 이루어졌고", 앙드레 김을 범접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로 만든 것 역시 극히 제한되고 통제 된 상태에서 강력한 권력을 향유했던 한국 언론의 '힘' 이었다. 그래서 앙드레 김의 성공에는 한국 대표 디자이너의 자랑스러움 뿐 아니라 스타를 만들어내고 죽이는 언론의 음흉스러움이 함께 공존한다.


앙드레 김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 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 쪽에서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게 경탄과 찬사, 존경과 경외를 보내고 한 쪽에서는 그를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 연예인, 무대 의상 디자이너라며 폄하하고 지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렬해지는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들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고 섞이면 잿빛이 되어 버리는 흑과 백이다. 그러나 앙드레 김은 그 가운데에 살아있다. 선망과 증오, 찬탄과 폄하의 양면성에서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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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다 vs '디자이너' 가 아니다


"앙드레김이라는 한 특출한 문화인은 한국을 ‘양장 소비국’에서 ‘패션 생산국’의 지위에 올려놓는데 일조했을 뿐 만 아니라, 미국의 LA같은 대표적인 ‘서구도시’에마저 ‘앙드레김의 날’을 선포하게 하는 등 우리 대중문화 가치의 범 지구촌화에도 성공했다." 는 손상익의 평가와 청문회 직후 한 비평가가 휘갈리 듯 독설을 내뿜은 "봉남킴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라는 평가는 모순적이게도 동전의 양면인 동시에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앙드레 김은 한국 대표 디자이너였다. 부정할 수 없는 이 '법칙' 에 '아니다' 라고 반기를 드는 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엄앵란의 드레스나 김희선의 드레스나 변함 없이 한결 같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거세 되어 버린 디자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년 전 인터넷 상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질 정도로 격렬했던 '앙드레 김 논쟁' 의 본질은 앙드레 김이 고수하고 있는 패션 디자인이 큰 변화 없이 지겨울 정도로 일관 되는데에서 파생된 문제였다.


사실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는 것은 극소수의 모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대단한 영광' 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류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로 손 꼽히는 가브리엘 샤넬이나 크리스찬 디올의 옷은 돈만 있다면 누구나 입고 다닐 수 있다. 앙드레 김의 의상이 무대 위 모델들만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의상이라면 샤넬 디자인의 의상은 말 그대로 그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 을 충실히 반영한 시대적 트렌드다. '앙드레 김은 패션 디자이너다.' 라는 명제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의 시각도 바로 여기에 머물러 있다. 앙드레 김의 패션은 한 마디로 '무대의상' 에 가까운 극대화 된 과장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남킴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라는 비평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온다.


『 패션 디자이너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며, 봉남이 형처럼 연예인과 일부 사모님들을 위해 파티옷, 결혼식옷과 같은 조명발받는 공주옷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의상디자이너라 해야 옳다.』


그러나 이 앙드레 김의 충실한 '일관성' 은 다른 쪽에서는 완전히 상반 되게 해석된다. 철저히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문화' 의 본질이 결국 동시대 사람들이 폭 넓게 수용 가능한 '일관성' 에 그 거취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진정한 '패션' 이다. 마치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몇 세기를 뛰어 넘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듯, 앙드레 김의 의상도 실제로 45년이라는 '반세기' 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이러한 특수한 '일관성' 의 개념을 "패션이 아닌 예술" 이라 정의한다.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의상이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저히 해석될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인 동시에 일반적인 패션씬 안에서의 비교나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패션 산업 안에서의 옷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만 앙드레 김의 옷은 트렌드나 취향과 상관 없이 '사고 싶어 하는 사람' 들에게만 개방 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앙드레 김의 옷이 소비되는 방식은 기존의 패션 산업이 받아들이고 있는 '공급과 수요' 의 법칙을 무시해 버린 일종의 예술품 거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재밌게도 앙드레김이 디자이너냐 아니냐 하는 격렬한 논의는 각자의 논점에서 보자면 모두 틀리지 않다. 앙드레 김을 디자이너로 보지 않는 쪽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수 있는 옷, 그것이 바로 패션이다' 라는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시대를 초월해 거래되고 인정할 수 있는 옷, 그것이 바로 패션이다' 라는 잣대를 세워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은 결국 자신의 옷을 한 번도 상품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앙드레 김과 거대한 시장 속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패션 산업의 현실이 부딪히는 어쩔 수 없는 파열음이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은 자신을 둘러 싼 수많은 논쟁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신동아> 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에 대한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어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 하지만 앙드레김의 의상은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비싼 옷 아닙니까? 그래서 앙드레김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도 앙드레김 옷을 보거나 입어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예술가,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입는 옷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의상 디자이너지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하지만요, 무대의상이라는 게 나쁜가요? 조수미씨 정경화씨도 콘서트장에서 저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지요. 조수미씨가 입은 옷 기억하세요? 물론 그것은 제가 협찬해 드린 거구요. 그 옷을 입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이탈리아·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의 큰 무대들에 안 서본 곳이 없어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섰다면 그것이 곧 문화 아닌가요?


제가요, 화가 중에 운보 김기창, 천경자 선생님 정말 너무너무 존경하는데요, 돈이 없어서 아직 작품은 구입하지 못했지만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돈을 벌어서 꼭 그분들 작품 한점씩 사서 집에 걸어놓는 거에요. 저처럼 그분들 그림을 직접 갖지는 못해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의상도 마찬가지에요. 제 작품을 입지는 못하지만 쇼윈도에서, 패션쇼에서 그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런 옷을 입어보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화 아닌가요?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해요. 왜 꼭 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연예인들이나 입는 옷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송승헌씨 장동건씨 이런 분이 제 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것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그처럼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타들이 제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이 잘못됐나요?”


앙드레김과의 대화는 이 대목에서 잠시 중단됐다. 그는 대답 도중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는 듯 목소리가 떨리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도저히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37년 동안 디자이너로 살아왔는데 또다시 이런 대답을 해야 하다니 지겹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지나치리만큼 예의바르고 손짓 하나하나까지 조심하던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 검은 마스카라로 강조한 눈은 이글이글 분노에 겨웠고 “지겨워! 지겨워”를 외치며 자신의 의상실 안을 서성이는 그는 흡사 성난 황소처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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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 야.


이야기를 확장해 보자. 앙드레 김을 둘러싼 '디자이너 논쟁' 을 벗어나면 그의 '정체' 에 대한 논의는 더더욱 격렬해 진다. 일부에서 앙드레 김을 보는 시각 중 하나는 바로 앙드레 김이 '디자이너' 라기 보다는 '성공한 사업가' 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앙드레 김의 브랜드가 런칭되고, 삼성전자와 가전제품 디자인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앙드레 김의 움직임에선 사업가와 같은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앙드레 김을 '사업가' 의 영역에 넣어 생각해 보면 그가 누구보다 상류층 인사와 가까운 문화 권력이고 올림픽 패션쇼를 4번이나 치뤄 낸 전형적 사교계 인사이며 일년에 두세번씩 치뤄지는 세계 패션쇼 역시 '사업' 의 한 부분으로 평가될 수 있다. 앙드레 김의 패션쇼가 일종의 브랜드 마케팅으로 철저하게 진행되는 전략적 사업이라면 앙드레김이 가지고 있는 사업적 감식안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을 뛰어 넘는 영악하고 영리한 상술에 불과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앙드레 김은 자신의 디자인을 단 한번도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은 지금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사람들에게 소비 된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이다. 상업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상품' 이고 '돈' 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바로 '사업가' 앙드레김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종결된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은 스스로의 '주관' 을 포기해 버리고 패션 사업 시장의 노회한 사업가로 진정 변신을 꾀한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싱겁게 튀어 나온다. '사업' 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돈' 이라는 것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수단적인 가치인데 앙드레 김은 바로 이 부분에서 놀랍도록 '자유' 롭다. 권력과 유명세, 브랜드 확장과 상품은 물질 세계의 문명이 베풀어 준 가장 추악한 축복이지만 앙드레 김은 자신의 의상처럼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 한 자기 세계에서 그 축복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건 앙드레 김이 끝끝내 물질 세계와 타협한 듯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자기 존재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앙드레 김은 90년대 후반까지 강남에 자기 소유의 의상실 하나 가지지 못할 정도로 물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 패션쇼가 1700여회, 올림픽 패션쇼 4회, 상류층 사회와 가장 가까운 대중 문화 인사이자 대통령조차 '영웅' 이라 치켜세웠던 앙드레 김이 데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상실을 전세로 살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한 논쟁이 불과 5년도 안 된 짧은 시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실제 앙드레 김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임에도 사업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특이한 케이스' 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업가' 앙드레김을 살펴보기 이전에 심도 깊게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한다. 앙드레 김이 가전제품, 신용카드의 디자인 계약을 성사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직접 운영이 아닌 단순한 라이센스 계약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앙드레 김이 브랜드 확장을 통해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중학교 때 부터 앙드레 김이 꿈 꿔왔던 이상이 '세계인' 이자 '샤넬을 능가하는 다양한 영역의 한국적 디자인' 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


정신 분석가 정혜신은 "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탐구" 라는 글 속에서 "앙드레김은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의 출연을 두 번씩이나 거절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성공의 잣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아직 자신의 빌딩조차 없는데 성공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밝히는 그의 재산은 의상실이 세든 건물의 전세금, 자신의 아파트, 연구소 설립을 위해 마련해 둔 교외의 작은 땅이 전부란다. 국위선양을 위해 해외 패션쇼에 쏟아부은 에너지나 비용을 아껴서 국내에서 의상실을 여러 개 내고 고객수를 늘리는 데 몰두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 썼던 적이 있다.


앙드레 김의 '사업' 은 사업의 가면을 쓴 '꿈의 실현' 이다. 물질세계의 세속적 성향에서 따지자면 그는 성공한 사업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짜 앙드레 김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로는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앙드레 김만이 꿈꿔온 평생의 사업이다. 앙드레 김은 상업화의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상업화의 추악한 이면에는 동조하지 않았고, 상업화의 약점을 세계화와 꿈의 실현이란 대의적 명분으로 초월했다. 70이 넘은 '늙은 사업가' 의 이면에는 여전히 판타스틱한 꿈을 꾸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의 생생한 감성이 펄떡이고 있다.


자, 이제 문화평론가 손상익의 말을 빌려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해 정리해보자.


『 현대의 대중문화는 상업화를 근간으로 하지 않으면 그 어떤 형태도  확산이 쉽지 않으며 세계화는 더더욱 난감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랜드(trend)나 문화코드는 “얼마나 상업화에 성공했는가”라는 기준이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다. 현재 세계 각국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문화 바람도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라거나 영화, 가요, 심지어는 태권도 같은 스포츠의 ‘상업기반’이 대중문화산업형태로 성공적인 뿌리를 내린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앙드레김은 미국의 팝아트 창시자라 불리는 엔디워홀(Andrew Warhola)의 문화정신과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닮아있음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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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은 '연예인' 이야. 그러니까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상관없어.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한가지는 바로 '연예인' 앙드레 김이다. 그 어떤 시상식에도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는 특유의 대중적 성향, 하얀 옷에 체크 목도리를 두르고 만면에 웃음을 띄며 레드카펫을 당당히 걸어가는 쇼맨쉽, 유명 뮤지컬이나 쇼가 개최되면 항상 앞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박수를 치는 앙드레 김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 이전에 유명인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연예인의 이미지를 투영시켰다. 10대의 어린 소녀들이 앙드레 김을 보고 환호를 내지르는 것은 그가 유명 디자이너 때문이 아니라 TV에서 많이 본 '낯 익은' 유명인사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데뷔 이래 앙드레 김은 그 어떤 디자이너 보다도 연예계와 밀착 관계를 유지한 디자이너였다.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는 이야기는 앙드레 김이 일군 신화의 일부분이었으며 장미희부터 김태희까지 시대를 주름잡았던 톱스타들이 앙드레 김 패션쇼에 문전성시를 이루다 못해 넘칠 지경이라는 것도 앙드레 김이 연예계와 떨어질래야 떨어 질 수 없는 대표적 아이콘임을 보여준다. 소위 '문화계 인사' 라는 사람들 중 앙드레 김만큼 연예계의 본성에 근접해 있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유명세' 와 더불어 연예인 같은 앙드레 김의 외모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25년 전부터 화장을 시작했다는 앙드레 김은 70 이 넘는 지금도 짙은 화장과 립스틱을 바르고 번쩍거리는 염색 물감으로 머리를 꽉 채운다. 언제나 하얀 옷을 고집하는 앙드레 김만의 고집은 '환타스틱함, 엘레강스함, 센세이셔널하고 뷰티풀' 을 지향하는 듯 변함 없이 그대로다. 간간히 영어를 섞어가며 느릿느릿 던지는 말투는 줄곧 연예인들의 성대모사 대상이 됐고 그는 유명인이자 연예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희화화 되고 웃어야 하는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변질 되기도 했다.


'연예인' 앙드레 김을 말하면 떠 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99년 청문회다. 나는 그 때의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 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조소와 조롱을 섬뜩하리만큼 경험했다.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 이라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회자 되면서 앙드레 김은 한순간 촌스러운 이름을 숨기고 살아 온 가식과 위선의 대상이 됐고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서 처참하게 발가 벗겨 졌다. 당시 <서세원 쇼> 에서 홍석천이 했던 앙드레김 4행시의 폭발적인 반응은 문화적 권력을 해체하고 스스로 그 위에 올라서려 했던 사람들과 그것에 호응한 대중문화의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의 모습은 청문회 자체를 압도할 정도의 화젯거리였다. 앙드레 김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앙드레 김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앙드레 김이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가 사람들에게는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와 함께 앙드레 김의 인기도 동시에 치솟았다. 그러나 앙드레 김도, 사람들도 모두 그 폭발적 관심과 인기가 존경이나 경외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조롱에 불과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 청문회 때부터 앙드레 김은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와 벌거 벗은 임금님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자신의 미의식을 탓해야했던 앙드레 김의 감수성과 스타일이 권위가 무너지자 누구나 놀릴 수 있는 대상이 됐다. 그 청문회를 통해 앙드레 김이 김봉남이 된 것은 단지 다소 촌스러운 그의 본명을 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때 대중들은 수천만원어치 옷을 사는 우아한 마나님들의 뒤에 감춰진 구린 속을 들여다 봤고, 김봉남이 된 앙드레 김은 바로 그 우아한 그들의 세계의 이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동경의 대상이던 상류사회는 순식간에 비아냥의 대상이 됐고, 그들을 위해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더 이상 엘레강스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 반대로 손상익은 이런 앙드레 김에 대한 조롱과 조소에 단호히 반대의 의견을 던진다.


『'앙드레김'이란 우리시대의 아이콘(icon)은, 아무나 무참하게 ‘씹어도 될만한’ 만만한 문화코드(cultural code)가 아니다. 앙드레김 만큼, 밖으로 내보이는 외양(하드웨어)에 못지않게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구비한 문화인도 우리나라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계에서 앙드레김 만큼 자신의 일생을 자신만의 ‘문화코드’로 무장(武裝)할 줄 알며, 수미일관(首尾一貫)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오롯하게 버틴 대중문화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제로 앙드레 김은 자신을 둘러싼 희화화와 조롱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한 바 있다. 신동아의 김현미 기자는 앙드레 김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그러한 조롱까지도 무시해 버리는 듯한 강한 거부의식과 상대조차 하지 않겠다는 꼿꼿한 자존심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저 '연예인' 또는 '연예인 같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앙드레 김이 자신에 관한 세속적 잣대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에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앙드레 김의 인터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던 찰나 "특유의 화장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 라는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앙드레 김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 듯한 기세로 날카롭게 대꾸했다. "세계적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기사 어디에도 그렇게 세련되지 않은 질문은 나와 있지 않다." 라고. 이 한 마디로 앙드레 김은 연예 사업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 인사일 뿐 뼛 속까지 연예인이거나, 연예인化를 지향하고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확인 시켜줬다.


'연예인' 앙드레 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연예 사업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끊임없이 스타들을 출연 시키는 앙드레 김의 쇼 접근법에서 국한 되어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그것을 앙드레 김의 연예인화로 확대 해석하거나 더 나아가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짓 밟아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조영남이 말하지 않았던가. "앙드레 김은 그 누구보다 공연을 사랑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진짜 대중문화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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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존경과 조롱'


『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손에 나 있는 검버섯 뿐이었다. 그건 평생 우아함과 세련함을 강조한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 맞고 투박한 생활인의 손이었다. 소공동의 작은 의상실에서 국내 굴지의 디자이너가 된 지금, 그는 행복할까. 한 손에는 신문을, 한 손에는 따뜻한 차를 준비해 조용히 의자에 앉은 그는 TV 속 자신을 흉내내는 개그맨들의 모습을 보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자신에 관련해 "파리에서 대규모 자선 패션쇼 열어. 전 세계 찬사." 라는 제목이 큼지막히 적힌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쪽에서는 조롱을, 한 쪽에서는 존경을. 한 쪽에서는 희화를, 한 쪽에서는 경외를. 그 두 가지가 모두 양립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 빼곡히 걸려 있는 자신의 옷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평생 자신의 이름이 되고 상징이 됐던 자신만의 옷들, 자신만의 디자인. 그 속에서 그는 마치 40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세기의 대 스타 엄앵란을 만나 우정을 속삭이고 성공을 꿈 꿨던 젊은 날의 초상을. 파리 패션쇼에 처음 자신의 모델들을 올려 보냈던 가슴 떨리는 열정을.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꿈과 열정을 펼쳐 보일 수 있었음을,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려 노력했음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됐어. 난 아직 '젊은 디자이너' 야."


평생을 옷 하나에 매달려 온 늙은 디자이너의 입에선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젊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라고.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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