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는 역시 강력했다. ‘시청률의 여왕’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건재했던 것이다. 초반 부진한 시청률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는 동시간대 1위를 거머쥐며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이 기세라면 20%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물론 김수현 작가 브랜드에 비해서는 살짝 아쉬운 수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수현이라는 전제를 놓고 봤을 때 가능한 평가다. <세결여>가 결국에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결여>가 처음 시청률이 부진했던 이유는  담담하게 결혼을 관조하는 듯한 김수현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지 못했고 다소 감정을 이입하기에는 힘든 주인공이 공감가지 않았던 탓이다.

 

 

주인공인 오은수(이지아)는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원하는 탓에 다소 이기적으로 비춰졌다. 지금도 오은수 캐릭터는 완벽한 호감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재혼한 남편인 김준구(하석진)의 외도로 이혼을 감행하는 오은수는 이해는 되지만 감정이입은 되지 않는다. 오은수는 여전히 자신의 행복만을 최 우선순위에 두고 있고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낸다.

 

 

작가는 오은수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김준구의 생동을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가지만 그건 김준구라는 캐릭터에 대한 비호감을 양산할지언정 주인공에 대한 동정론으로 이어지게 하지는 못한다. 지금의 사건만 놓고 보면 김준구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동안 오은수가 보여준 이기적인 행동의 연속은 그의 불행을 오히려 당연한 결과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공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작가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전형성’이었다. 정태원(송창의)와 재혼한 채린(손여은)은 초반에는 부잣집 가정에서 자라난 여성스럽고 조신한 양갓집 규수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지금 채린의 캐릭터는 처음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었다. 그는 앞과 뒤가 다르고 자신의 기분 내키는 대로 아이를 학대하는 전형적인 계모 스타일로 변모한 것이다.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가정부 임실댁(허진)은 채린과 채린의 시어머니 최여사(김용림)의 이해 되지 않는 행동에 때때로 촌철살인을 날리며 시청자들의 속을 긁어주고 있다.

 

 

임실댁의 촌철살인이 통할 수 있는 이유는 채린과 최여사 캐릭터가 시청자들이 마음놓고 미워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감이 거세질수록 갈등은 증폭되고 시청포인트는 늘어난다. 주인공인 오은수가 시청자들이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것과는 반대로 전형적인 악역으로 설정된 인물들 덕분에 드라마는 활기를 찾았다.

 

 

 

얄미운 계모와 독특한 가정부 캐릭터는 그동안 김수현 드라마는 물론, 수많은 드라마에서 되풀이된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 덕분에 시청률은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것은 극의 중심이자 제목인 오은수의 행보가 아니라 채린의 이중적인 행태가 일벌백계 당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런 시청자들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채린의 뒷통수에 일격을 날리는 시누이를 투입하는 등, 그 욕구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시청포인트가 옮겨지며 주인공은 오히려 임실댁이라는 웃지못할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다시 한 번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은 결국 끝까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김수현 작가의 관록만은 빛났다. 시청률이 부진하다는 초반의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청포인트를 하나 둘 늘려가며 새로운 시청자들을 유입했고 결국은 동시간대 1위라는 기록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세결여> 김수현 작가의 관록으로 좋은 시청률을 거두는데 성공한 지금도 여전이 조금은 아쉬운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과 결국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가 끝까지 전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결여>는 김수현 작가의 이름값은 틀림없이 해 냈지만 김수현 작가의 역량이 100% 발휘된 작품은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다시 한 번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끈 김수현 작가의 능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주인공이 사라진’ 드라마의 전개가 아쉬운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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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가 1968년 데뷔 후 무려 45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인물들 간의 팽팽한 기 싸움을 기반으로 한 그의 ‘대사의 힘’은 일순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항상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드라마계의 혁명을 일으키면서도 앞뒤 상황 없는 막장 구조를 배제하고 나름의 개연성을 갖춘 드라마를 집필한 그의 필력은 그의 최고의 전성기가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그가 아직도 최고의 작가 타이틀을 고수하는 이유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역시 김수현 드라마라는 꼬리표를 단 채, 다른 작가들에 비교할 수 없는 화제성을 모으며 10%가 넘는 호쾌한 시작을 알렸다. 서태지와의 결혼 스캔들로 숨겨왔던 과거가  드러난 이지아라는 문제적 인물을 캐스팅한 것도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김수현 드라마는 언제나 그랬듯, 배우가 아닌 작가의 작품이었던 까닭이다.

 

 

그리하여 김수현은 그동안 그의 드라마 속에서 언제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윤여정, 이승연등 스캔들에 휘말린 여배우들을 적극 활용하며 그들의 복귀를 도왔고 그들 역시 김수현 드라마로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세결여>의 시청률이 하락했다. 물론 김수현 드라마의 저력은 앞부분 보다 뒤로 갈수록 발휘되는 경향이 짙다. 그동안 그의 드라마들은 인물들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후반부 지점에서 의례히 시청률이 폭발하고는 했다. 그러나 <세결여>에 출욘허는 배우 이지아의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다. 주로 조연을 맡았던 다른 '문제적 인물'들과는 달리 여주인공으로서 시작했던 그가 좀처럼 호감 캐릭터로 변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김수현 작가의 노림수가 있다. 이지아가 연기하는 ‘오은수’ 캐릭터를 활용해 언니인 오현수(엄지원분)과 갈등상황이 초래되고 자신의 친딸을 되찾으려는 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전남편은 물론, 현재 남편, 그리고 나아가 시댁과의 갈등도 생겨난다. 한마디로 오은수는 주요 갈등의 구심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주인공에 대한 공감도에 있다.

 

 

24일 방영된 <세결여> 6회에서는 오은수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아직 젊다. 다시는 남자 안만나고 늙어 죽을 수는 없다. 좋은 짝을 좋은 짝과 같이 여자로서 살고 싶어하면 안되는것이냐. 나는 옛날 엄마가 아니다.” 엄마의 행복과 인생이 중요함으로 자신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대사다. 물론 그 말에 틀린 부분은 없다. 딸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어머니상은 결코 현대적이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다. 부모의 인생역시 중요하다는 점, 엄마도 여자라는 점에서 이지아의 대사는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낼만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지아는 공감은커녕 여성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사실 이런 장면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이치고는 말투와 행동이 전혀 아이 같지 않은 김수현 드라마 특유의 아역 설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는 아이와 대화를 할 때 거의 성인 수준의 말투를 구사하고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은 버거운 이야기를 해도 아이는 흐트러짐 없이 이해한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지만 아이는 그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도 말 뜻은 모두 이해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나 그런 작은 어색함 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부르짖으며 그동안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 있다.

 

 

오은수는 그동안 이상하리만큼 욕심을 부렸다. 아이가 아빠와 살고 싶다고 하는데도 자신이 키우겠다는 고집을 부린 것은 모정으로서 이해한다고 쳐도 그런 아이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전혀 희생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제 3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기심에 불과하다. 자신이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데 전 남편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이고 아이도 원한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빠한테 맡기는 게 옳다. 자신이 아이를 떼어놓을 때 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무조건 자기가 맡겠다는 오은수의 행동에  아이에 대한 배려는 없다.

 

 

 더군다나 지금 오은수는 시댁의 반대로 아이를 키우지 못해 아이를 친정에 맡겨놓은 상태다. 아무리 자신의 모친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한다고 치더라도 자신의 억지 때문에 얼떨결에 아이를 떠맡아야 하는 엄마에 대한 배려 역시 없다. 자신의 행복은 부르짖으면서도 나이든 엄마는 당연히 ‘엄마니까’ 아이를 맡아줘야 한다는 식이다. 같은 여자인 엄마의 노년의 안락함은 빼앗아도 되지만, 젊은 자신은 희생할 수 없다는 태도는 역설에 불과하다.

 

 

 

아이역시 그 안에서 행복하지 않다. 아이는 아빠한테 가겠다며 울고 떼쓰고 그로 인해 오은수의 언니인 오현수와의 갈등도 초래되었다. 오은수의 이해할 수 없는 집착에 “욕심부리지 말고 아빠한테 보내라.”고 말하는 오현수의 일침이 속 시원한 이유다. 그러나 그 속시원함을 위해 공감가지 않는 주인공을 보고 있는 것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곤욕이다. 억지를 쓰면서도 그럴만한 이유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설명되어야 하는데 오은수는 오로지 억지뿐이다. 누가 봐도 더 나은 상황이 있고 자신의 이기심만 아니라면 서로가 더 편해질 수 있음에도 오은수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시청자역시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러니 주인공이 아무리 공감 가는 대사를 해도 그 말에 공감을 해주기 힘든 상황이 전개된다. 이지아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하지 않는 것은 덤이다. 애초에 조연이 아닌 주연 캐릭터라면 시청자들이 조금이라도 동화될 수 있는 포인트가 존재해야 했다. 그러나 오은수에게는 그게 없다.

 

 

이는 모두 현재 남편인 김준구(하석진분)과의 갈등과 이혼의 구실을 만들기 위한 전초전임에는 분명하다. 나중에는 이 모든 사건들이 갈등을 폭발시키기위한 밑그림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들 속에서 이지아는 결코 여주인공으로서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까닭에 시청자들은 아직까지 이지아를 제대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김수현 드라마로 야심찬 복귀를 선언한 배우에게 결코 플러스라고만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지아의 캐릭터를 전복시켜 그를 다시 호감형 배우로 만드는 것은 상당히 힘든 작업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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