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누구도 성공한 인생이라 부르지 않는 주인공들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간다 해도 그 누구도 백화점 안내원, 해충 박멸회사 말단 직원을 두고 우러러 보지는 않으니까. 그들의 꿈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고동만(박서준 분)은 어릴 적 태권도 유망주로 태권도 국가 대표를 꿈꿨고, 최애라(김지원 분)는 여전히 아나운서가 꿈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이제 스펙도 없는 29살의 그들에게는 태권도도, 아나운서도 도무지 가능할 것 같은 꿈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 가슴 속에 숨어있던 열정이 꿈틀 거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박살나 볼 각오를 하고 다시 한 번 도전을 한다. ‘흙수저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멀기만 한 꿈, 그러나 젊음이 무기다.

 

 

 


그들의 무기는 젊다는 것 하나.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29살이라는 나이는 아직도 한창 때지만, 더 이상 세상은 그들을 젊게만 보지 않는다. 불가능한 꿈을 꾸지 말고 돈이나 벌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는 세상의 벽 앞에서 그들은 상처입고, 아파하고, 또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 쯤 실패해 봐도 좋을, 젊음이란 무기로 배짱을 부린다.

 

 

 

 

그들의 청춘이 재벌이나 천재성으로 덧칠해진 특별한 것이 아니기에, <쌈마이웨이>는 오히려 특별해진다. 드라마의 판타지를 이끌어 내는 수단인 ‘완벽남’은 이야기 속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청춘들이 있다. 수십번 넘어지고 눈물 흘리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내일을 준비하는 청춘이.

 

 

 


그런 청춘의 이야기 속 로맨스는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화려한 데이트나 꿀같은 달콤한 밀어들로 채워지는 대신, 툭툭 내뱉는 독한 단어들과 직설화법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있는 정이 느껴질 때, 그런 단어들은 오히려 더욱 달콤하게 들린다. 옥상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해도, 그 소박한 데이트는 오히려 화려한 데이트보다 정감 있게 다가온다. 영화 한편을 위해 영화관을 통째로 빌리거나, 화려한 파티에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 따위가 없이도, 츄리닝(트레이닝복이 아니다)을 입은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쌈마이웨이>는 청춘의 단면을 정면돌파한다. 에둘러서 표현하지 않고, 취직도 어렵고 삶은 팍팍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현실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내일이 있고 꿈이 있고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쌈마이웨이>는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판타지를 오히려 극대화 한다. 결국 고동만은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어 주목받고 최애라는 국내 최초 이종격투기 아나운서가 된다. 모두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꿈을 이룬다. 꿈을 꾸는 자들에게는 미래가 열려 있고, 그 미래를 여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청춘의 시련을 위해 등장한 설정들, 마무리가 아쉽다.

 

 


<쌈마이웨이>속 청춘들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들이 로맨스와 꿈을 쉽게 완성시키면 재미가 없는 까닭이다. 일단 남자 주인공의 전 여자친구인 박혜란(이엘리야)는 과거에도 수없이 고동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며 고동만을 흔든 여자다. 그는 재벌가와 이혼을 한 후 다시 고동만을 찾는다. 최애라는 겨우 마음을 연 남자가 사실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한다. 또한 아나운서 시험을 위해 향한 시험장에서 면접관에게 스펙에 대한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고동만은 처음 경기에서 과거 경쟁자였던 김탁수(김건우 분)가 섭외한 파이터에게 치욕스러울 정도로 처참하게 깨진다. 이들이 원하는 결과는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 최애라를 쫒아다니며 괴롭혔던 선배는 장경구(강기동 분)는 어떤 의도에선지 다시 나타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체불명의 집주인 황복희(진희경 분)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여자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들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이지만 드라마가 할 이야기의 초점은 빗나가고 만다.

 

 

 


 

끝으로 갈수록 악역들의 개과천선은 너무 허무하게 이루어진다. 백설희(송하윤 분)을 괴롭히던 남자친구 김주만(안재홍 분)의 어머니는 그 둘이 헤어졌다는 소식에 마음 아파하며 백설희에게 과거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하고, “예전의 장경구가 아니”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던 장경구는 갑자기 따돌림 당하던 딸의 모습을 보며 반성한 후,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타난 정의의 사도가 된다. 마지막회에 가서 풀어지는 황복희와 최애라의 모녀 상봉 역시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여기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잘 팔리는 백설희의 매실액 역시 갑작스러운 전개다. 그동안 뜸을 들인 것에 비하면 허무하다고 할 정도다.

 

 

 


뿌려졌던 ‘떡밥’들을 주워담기 위해 마무리 한 설정들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 급조된 느낌마저 들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악역이나 출생의 비밀은 이야기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이런 속도의 마무리라면 이야기는 굳이 16부작으로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8회 정도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대의 청춘에게 전해진 메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청춘들의 똘기’로 희망을 전하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똘기 한 번 안 부려봤으면 네가 MC가 되고, 내가 파이터가 되고, 백사장이 CEO가 됐겠냐.”며 “못먹어도 고! 사고쳐야 노다지도 터진다.”고 외치는 청춘들은 더 이상 흙수저가 아니다. 그들의 과거는 비루했을지라도, 그들의 꿈은 비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결국 ‘남들 뭐 먹고 사는지 안 궁금하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메이져다.’고 외칠 수 있는 청춘의 한 장면은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그런 메시지 만큼은 분명하게 전해진다.

 

 

 


삶 속에는 좌절도 있고 절망도 있고 고난과 역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 속에서도 남아있는 것은 꿈과 희망이다. 어떤 이들의 꿈과 희망도 결코 무가치 하지 않다는 메시지 속에서 <쌈마이웨이>는 또 다른 방식의 청춘 로맨스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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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쌈, 마이웨이>(이하<쌈마이>)는 로맨틱 코미디다.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을 쌓아 나가는 알콩달콩한 과정을 달콤하고 쌉쌀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가 다른 로맨스와 다른 점은, 주인공 중 누구도 재벌이 아니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 주인공과 시청자들을 홀리기 위해 나타난 백마탄 왕자님(이라고 쓰고 재벌이라 읽는다)은 이 드라마에 없다. 그렇다고 출중한 능력을 갖춘 실장님도 없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도 없다. 그런데 이 드라마, 왜 이렇게 가슴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일까.

 

 

 


<쌈마이>의 독특한 분위기, 어디서 왔을까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고동만(박서준 분)과 여자 주인공 최애라(김지원 분)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다. 서로 욕설을 비롯해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편한 사이인 동시에 서로가 살아온 인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다. 왜 서로를 보면 갑자기 가슴이 떨리는지, 왜 서로가 그렇게 애틋하고 걱정되는지 그들은 그들의 감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쌈마이>는 ‘남녀 사이에는 친구가 없다’는 명제를 활용해 오랜 친구였던 두 사람이 점차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톡톡 튀는 젊은 터치로 보여준다. 그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서로를 위해 작은 배려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하다. 사실 내용을 따져 보자면 친구였던 두 사람이 연인의 감정에 가까워지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인데 이 드라마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데 ‘청춘’에 대한 시선을 끼워넣는다. 그 시선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연애의 판타지 속에서도 현실에 발을 딛게 만드는 특별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력서에 쓰지 못하는 청춘의 삶 , 청춘의 마음을 울리다


 

 

<쌈마이> 8회에서 최애라는 평생 꿈이었던 아나운서 시험에 면접을 보게 된다. 이미 29살의 나이. 아나운서를 준비하기엔 늦었지만, 서류 합격만으로도 애라의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옷도 사고 머리도 바꾸며 면접을 준비한 애라는 긴장된 가슴을 누르기 위해 청심환까지 먹어가며 면접장에 선다. 그러나 면접이 끝날 때까지 면접관 누구도 애라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질문 없냐”는 마지막 면접관의 말에 애라는 “저한테 질문을 안 주셨는데요.” 라고 물어봐야 하는 처지다. 

 

 

 


 

한 면접관은 차갑게 말한다. “여긴 다 시간이 금인 사람들이라서. 우리 시간 뺏고 싶으면 25번 시간을 먼저 채워 왔어야지. 저 친구들이 유학가고 대학원가고 해외 봉사가고 그럴 때, 25번은 뭐했어요?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스펙으로 증명하는 거죠.” 라고. 면접관들은 최애라라는 이름 석자를 부르지 않고 25번이라는 면접 번호를 부른다. 그들에게 그들은 번호로 매겨진 평가 대상일 뿐이다.


 

 

 

면접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초라한 대학 졸업장과 아르바이트 경험, 혹은 백화점 직원으로 일한 경력 따위가 아니다. 그들은 이력서에서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것을 보기를 기대한다. 수많은 지원자들 사이에서 발군의 한 명을 뽑으려면 그만큼 합리적인 평가기준도 없다. 


 

 

 

그러나 “저는…돈 벌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애라의 한 마디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생각해 보면 유학, 대학원, 해외 봉사 모두 누군가에는 사치다. 당장 학자금 대출을 갚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청춘에게 ‘너는 왜 유학도, 대학원도 봉사도 하지 않았니.’라고 묻는 것만큼 불합리한 일도 없다. 합리적인 평가를 가장한 불합리함에 그러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적어도 면접장에서 만큼은 ‘스펙’을 쌓지 못한 것은 핑계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돈을 벌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유학이나 대학원을 가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스펙을 쌓는 일은 누군가의,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부유한 집안의 도움이 있을 때 훨씬 더 유리하다. 외국에 나가는 것도, 공부를 더 하는 것도 모두 큰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남들은 그 돈을 쓸 때, 애라는 열심히 돈을 벌었다. 돈을 벌었다는 애라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면접관들은 ‘돈을 버는 일에 대한 숭고함’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그저 화려한 이력을 볼 뿐이고 그 이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숨겨진 집안의 스펙이라는 것 따위는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면접을 본 다른 사람이 한 눈에도 부유해 보이는 차를 타고 마중 나온 엄마에게 달려갈 때, 씁쓸하게 웃던 애라의 나래이션이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없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보다 늦게 자는데도 시간이 없었다.

누구보다 빡세게 살았는데, 개뿔도 모르는 이력서 나부랭이가 꼭 내 모든 시간을 아는 척 하는 것 같아서 분해서, 짜증나서….

 

 

 


 

애라의 나래이션은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난한 청춘은 원하는 꿈을 골라 꿀 수도 없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동안 뭐했냐”는 차가운 일갈  뿐이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가 되는 것은 그만큼 뒤에서 지원을 해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이력서 한 줄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애라의 아픔은 단순히 게으름으로 규정할 수 없는, 너무 불합리한 출발선에 대한 것이다.

 

 

 


 

처절한 현실 속 판타지는 극대화된다


 

 

 

이런 현실이 이 드라마에는 전반적으로 녹아 있다. 남자 주인공 고동만 역시, 태권도 국가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였으나, 태권도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꿈을 잃게 되는 남자 주인공은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목격했던 ‘범접 불가 재벌 2세’와는 그 결부터 다르다. 그러나 뒤늦게 격투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남자 주인공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그처럼 꿈을 포기하고 별볼일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픈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쌈마이>는 청춘의 현실을 드라마에 녹였다. 그러나 로맨스만큼은 철저하게 판타지다. 이 양극단의 두 분위기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현실보다는 판타지다. 드라마는 철저히 판타지여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를 끌어 들일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경기를 마치고 동만이 걱정돼 울고 있는 애라에게 다가가 “우는 것도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 주인공의 한 마디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엄청난 울림이 있다. 그만큼 설레는 포인트에 대한 통찰력이 있다는 얘기다.


 

 

 

마냥 구질구질하고 처절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며 마음을 주고 받는 친구인 듯 연인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김지원과 박서준이라는 예쁘고 멋있는 배우들에 의해 달콤한 환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환상은 현실이라는 무게와 적절하게 결합되어 무게 중심을 잘 잡는다. 두 사람이 처한 현실에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만, 그 현실이 있기에 두 사람의 연애는 훨씬 더 가슴을 붕 뜨게 만든다.

 

 

 


 

이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들은 그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그들의 로맨스를 지지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커플들의 로맨스는 누구에게나 판타지지만, 그 판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구름위에 떠 있는 비현실적인 왕자와 공주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흙수저들을 이용해 진정성을 확보한 <쌈마이>의 영민함이 돋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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