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모았던 [타짜] 와 [에덴의 동쪽] 의 맞대결이 생각보다 싱겁게 결판이 난 가운데, 월화드라마 왕좌를 둘러 싸고 다시 한 번 치열한 삼파전이 벌어질 예정이다.
[에덴의 동쪽] 이 낡은 드라마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전개를 보이는 와중에 드디어 2008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그들이 사는 세상] 이 방영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의 등장과 함께 '바짝' 긴장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에덴의 동쪽] 이 됐다. 상승동력을 잃어버린 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에덴의 동쪽] 이 초반 제압을 하지 못한다면 예상 외로 판도가 쉽게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의 위용은 얼핏 봐도 [에덴의 동쪽] 에 필적할 만 하다. 작가, 연출, 배우 삼박자가 '초호화' 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월화드라마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KBS의 파격적인 물량공세가 쏟아지기 시작한다면 대중의 관심은 집중될 수 밖에 없다. 25%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시청자층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에덴의 동쪽] 이 [그들이 사는 세상] 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이 드라마에 톱스타 '송혜교' 가 출연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 하다. 송혜교가 누군가. 90년대 김희선 이 후, 마지막으로 탄생한 TV 브라운관의 신데렐라다. 나오는 드라마마다 30~40% 시청률을 올렸고, 출연하는 작품마다 화제가 됐다. [가을동화][수호천사][호텔리어][올인][풀하우스] 등등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드라마로 성장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재밌게도 [에덴의 동쪽] 의 송승헌과 [그들이 사는 세상] 의 송혜교는 2000년 [가을동화]에서 찰떡궁합 호흡을 맞춘 과거가 있다. [가을동화] 는 윤석호 계절드라마 1편으로 화제리에 방송되며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빅히트 드라마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얼마면 돼?" 등 숫한 명장면과 명대사로 점철 된 작품이다. 이 드라마 한편으로 송승헌과 송혜교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톱스타이자 한류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서로의 작품을 무너뜨려야 하는 묘한 입장에 놓여있다.
후발주자 송혜교의 입장으로서는 송승헌을 반드시 '넘어뜨려야'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처지다. [가을동화] 이 후, 줄곧 송승헌보다 훨씬 뛰어난 흥행감각을 펼쳐 왔고, 송승헌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때도 [올인][풀하우스] 의 연속 히트로 TV 브라운관의 여제로 자리매김한 그녀였다. 맞대결을 펼친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객관적 수치에서 보자면 송혜교는 송승헌의 그것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이번 맞대결에서 패하게 되면 '흥행불패' 자존심에 금이 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KBS 쪽에서도 송승헌을 무너뜨릴 수 있는 빅카드는 송혜교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타짜]가 [에덴의 동쪽] 에 밀린 요인에는 송승헌 급의 빅스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 못한 [타짜] 는 처음부터 [에덴의 동쪽] 보다는 함량미달로 시작했다. 허나 [그들이 사는 세상] 은 헐리우드 진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빅스타 송혜교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송승헌과 비교해 봐도 역대 전적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가을동화][풀하우스] 로 이미 KBS 와는 환상의 호흡을 맞췄던 그녀이기에 "잘하면 월화 드라마 판도가 역전될 수 있지 않겠느냐?" 는 기대까지 낳고 있다.
송승헌 쪽에서 보자면 송혜교와의 맞대결은 부담스럽다. 먼저 시작했다는 메리트가 있지만 전체적인 얼개가 짜임새 있게 진행되지 못하다보니 새로운 시청자 층을 형성하지 못하며 '중박' 수준에서 지지부진 멈춰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시청자층이 넓어지지 않아 애가 타는 마당에 송혜교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송승헌의 경계대상 1호가 [타짜]의 장혁이 아니라 [그사세] 의 송혜교라는 사실은 어쩌면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놀라운 드라마 한 편을 보여드리겠다." 는 송혜교의 호언장담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 의 작가와 연출을 맡은 이들이 노희경과 표민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로 마니아 드라마를 써 오던 노희경이지만 사실 [화려한 시절] 이나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빅히트 작도 무수히 남긴 그녀다. "작정하고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 한 편 쓸 생각." 이라는 노희경의 다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여기에 노희경 드라마와 함께 10여년을 함께 했고, 송혜교와는 [풀하우스] 로 인연을 맺은 표민수 PD 역시 "노희경-표민수 작품이라는 걸 모르게 할만큼 잘 만들어 볼 생각" 이라며 송혜교에 힘을 더했다.
그 뿐이 아니다. [에덴의 동쪽] 에 이미숙, 조민기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 에는 원조 노희경 사단이 즐비하다. 이제는 노희경 드라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똑소리나는 여배우 배종옥이 합류했고, [이산] 에서 정순왕후 역을 열연했던 김여진도 발을 들여 놨다. 기대되는 것은 바로 김자옥과 윤여정의 등장인데 방송국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에서 김자옥은 20대부터 주인공만 했던 여배우로, 윤여정은 평생 조연을 했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여배우로 등장해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펼칠 예정이라 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연기파 배우의 격돌은 송혜교의 출연만큼이나 기대가 되는 요소다.
어쨌든 [에덴의 동쪽] 이 '독주'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송혜교를 내세운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어떠한 식으로든 [에덴의 동쪽] 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불과 1년 전, 25%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던 [왕과 나] 가 후발주자였던 [이산] 에 한판승으로 패배했던 사실을 반추해 볼 때, [에덴의 동쪽] 이 지금처럼 낡은 드라마 구조로 멈춰서 있다면 언제든지 역전의 기회를 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피말리는 월화드라마 시장을 장악할 사람은 송혜교가 될까, 송승헌이 될까. 과거의 연인에서 이제는 서로를 저격해야 하는 라이벌로 변신한 두 톱스타의 자존심 대결이 밋밋했던 월화드라마 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