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이 본격적으로 '드라마 승부수'를 띄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작품이 바로 드라마 [인수대비]다.


일찌감치 채시라의 차기작으로 주목을 받은 이 드라마는 [왕과 비]의 정하연 작가가 극본을 맡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이태곤 PD가 연출을 맡아 jTBC의 '간판 드라마'로 그 입지를 확고히 굳히는 중이다.


허나 이 드라마의 의도적인 '역사 왜곡'은 불편하다 못해 속이 상할 지경이다. 특히 문종에 대한 지나친 폄하는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까지 든다.


드라마 [인수대비] 속 문종은 철저히 나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그려진다. 양녕대군이 면전에 대고 "효도 빼놓고 한 게 뭐가 있느냐"며 타박할 정도다. 그 스스로도 동생인 수양대군 앞에서 "임금은 나 말고 수양 네가 되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나는 효도 빼곤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야심만만하고 진중한 수양대군과 비교하면 문종의 이미지는 더욱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진다.


허나 이건 명백한 왜곡이다. [인수대비]가 수양대군을 위시한 계유정난 세력 즉, 쿠데타 세력에 더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문종의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형편없이 그리는 건 그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문종이 그토록 무기력하고 무능한 왕이었다면 2년 3개월의 짧은 치세에 백성들이 혀를 깨물고 죽을 정도로 비통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종은 조선 왕조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성군이었다. 아버지 세종대왕의 치세를 지척에서 지켜봤던 그는 왕세자 시절부터 철저한 '군왕교육'을 받으며 임금이 갖춰야 할 기량과 자세를 배워나갔다. 아버지인 세종대왕이 "왕세자가 가히 성군의 자질이 있다"고 칭찬할 정도로 문종의 재능은 비범한데가 있었다.


특히 그는 세종 24년부터 병으로 앓아 누운 세종을 도와 '대리청정' 즉, 왕세자로서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문종의 나이 불과 29살이었다. 세종 18년부터 알게 모르게 세종의 정치 활동을 지원했던 문종이 세종 24년에 이르러 드디어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세종 말년의 그 빛나는 업적들은 실상 세종과 문종이 함께 일궈낸 세종-문종 공동정부의 치적이라 할 만하다.


세종은 이 섭정 기간동안 문종으로 하여금 왕처럼 남쪽으로 향해 앉아 조회를 받게 하는 한편, 일부 국가 중대사를 제외한 모든 서무를 모두 문종에게 일임했다. 약 8년여에 걸친 이 대리청정의 기간동안 문종은 모든 일을 빈틈없이 수행하고 꼼꼼하게 처리하여 대소신료들의 찬사를 받았고,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는 한편 아버지 세종에게도 효도를 다하는 등 완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또한 문종은 아버지인 세종대왕보다 더욱 학문을 좋아했던 '문왕 중의 문왕'이었다. 그는 대소신료들을 모아놓고 토론하기를 좋아했으며, 한 번 손에 잡은 책은 다 읽을 때까지 놓지 않을 정도의 독서광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로운 감시와 비판을 수용하는 등 언관에 관대한 정치를 펴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쓴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숭문적 경향과 친 언론적 자세는 직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6품 이상의 신하들에 대해 돌아가면서 왕을 만나는 것을 허락했고 삼정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 뿐 아니라 벼슬이 낮은 신하들의 의견까지 두루 들으려 애썼다. 문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즉시 이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고, 대리청정 시절에는 이러한 의견을 종합하여 세종에게 건의하는 등 국가 경영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뿐 아니라 그는 직접 측우기 제작에 뛰어들 정도로 천문, 역수 및 산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글씨 또한 명필이었다. <동국병감><고려사절요><고려사><대학연 의주석>등의 편찬도 모두 문종의 치세에 이뤄진 일이며 보다 효율적인 군사 활용이 가능한 12사 군제 개혁안을 출범시킨 것도 그의 업적이다. 말 그대로 문종은 세종만큼이나 문무에 모두 능통한 당대의 명군이었던 셈이다.


다만, 그의 약점 한 가지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세상을 떴다는 점이다. 어린 아들인 단종을 홀로 남기고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는 바람에 조선조는 골육상쟁의 피바람에 휩싸이게 됐고 결국은 계유정난, 단종폐위 같은 역사의 비극 또한 벌어졌다. 문종이 10년만 더 살아 있었더라도 아마 단종은 안정적으로 국가 운영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빨리 세상을 떴다'는 죄목 하나 때문에 문종이 이토록 유약하고 무능하게 그려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문종은 드라마 [인수대비]처럼 무기력한 임금이 아니었을 뿐더러, 큰 아버지인 양녕대군에게 "할 줄 아는 건 효도 밖에 없다"고 꾸지람을 들은 적도 없다. 적어도 문종 치세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안정적인 태평성대였고 학문과 과학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아름다운 시기였다.


드라마 [인수대비]는 문종의 무능력함을 자꾸만 부각시켜 수양대군 세력의 '쿠데타'를 정당화 하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드라마 [인수대비]가 궁극적으로 설파하고자 하는 것은 쿠데타 세력의 유능함과 그 속에서 태어난 걸출한 여성정치인의 존재감이다. 이는 마치 현실정치에서의 쿠데타 세력(박정희 정권)과 여성정치인(박근혜)을 빗댄 듯한 뉘앙스를 자아낸다.


허나 세조의 계유정난은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도 명백한 왕위 찬탈이었으며 국가 체제를 뒤집은 쿠데타였다. [인수대비]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바 아니나 이런 식으로 쿠데타를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더러 하늘에 계신 문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내가 아마 문종대왕이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꾸짖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이제 드라마 [인수대비]가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역사 왜곡은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 드라마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교양은 지키고 있는지, 그대들의 양심에 손을 얹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기대한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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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onzulog.tistory.com BlogIcon 으노야 2011.12.06 0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종편의 횡보가 정말 마음에 안드는데...

    은정씨의 연기는 ㅋㅋ 톡톡튀어서 좋더라구요.

    흐음... 드라마라는게 원래 픽션이 들어가는거니깐 왜곡되는부분도 있겠지만 너무 지나치게 해선 안되겠죠. ㅎㅎ

  2. 2011.12.06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편이야.. 대놓고 왜곡하려 만들어진 방송국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모르고 보시기 시작하셨나봐요~

  3. 에르자드 2011.12.06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그 부분만큼은 조금 의아했지만 그러러니하고 넘겼는데..그런 숨은 뜻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요..그러는 사이 저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면서 주인공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다음부터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시청하겠습니다..

  4. Favicon of https://ddella.tistory.com BlogIcon 2011.12.06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양대군 세력의 '쿠데타'를 정당화 ㅋㅋㅋ종편답네요 정말

    • 혜림 2011.12.23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수대비 보다가 너무 어이없고 기가막혀서 보지 않고 있네요~ 제발 인수대비 작가분이 이글좀 보셨으면 좋겠네요~~어린 단종이 넘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이네요~ ㅠㅠ

  5. 백번동감합니다 2011.12.06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미화된 부분이 상당히 많죠...
    쿠데타의 명분도 매우 약했을 뿐더러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한 뒤의 역사는 정말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좋았던 점은 별로 없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문종은 제 2의 세종이라 불릴 만큼 현명했던 임금이었고, 그의 아들인 단종도 똑똑했던 데다가 문종의 장자라는 정통성도 더 컸기 때문에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과연 좋게 볼수 있을까 의문이 강하게 드네요

    그런의미에서 전 이 드라마 아예 안 봅니다
    애초에 이럴게 뻔해보였거든요 ㅋ
    더구나 저번에 공주의 남자를 재밌게 본 적이 있어서 말이죠^^

  6. 백번동감합니다 2011.12.06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도 되도록이면 종편 보지 마세요 ㅡㅡ;;;

    종편채널 웬만하면 다 삭제하시고 관심 가져주지 마세요

    왜냐면 종편은 보수라는 미명하에 조중동 이 썩은 찌라시들의 여론몰이를 위한 거니까요

  7. 도미닉 2011.12.06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편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뉴스만 안보면 되지 예능이나 드라마는 괜찮지 않나요 위의 분 참 이상하시네 그리고 글쓴이의 글을 읽어보니 이해가 갑니다만 제목이 인수대비이다 보니 작가가 드라마 내용을 그렇게 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고등학교시정 학교에서 배우기에도 문종은 뛰어난 성군으로 배웠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원래 생각하고 배우는 것에 비해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가더라구요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역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드라마로 너무 불쾌해하지 마세요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사실이 아닙니다.

  8. 위에 도미닉님 2011.12.07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편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뉴스만 안보면 되지 예능이나 드라마는 괜찮지 않나요 < 괜찮지 않아요. 이미 언론이나 인터넷 여론에서 많이 나왔듯 미디어 산업이란게 만만한게 아니잖아요. 언론학을 배우다 보면, 사실 방송사든 신문사든 결국엔 '뉴스'가 목적입니다. 그외 예능이나 교양 등.. 모두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긴 하지만, 결국 언론사에서 가장 신경쓰는 것 뉴스에요. 나머지는 뉴스스로 시청자 혹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자본조달청 혹은 낚시용 떡밥입니다. 종편 프로그램 보다보면, 종편사에서 뉴스를 만들 광고비 등의 미디어운영 자본금을 대주는 꼴이죠. 거기다 드라마나 예능이나, 내용이나 상징적 언어의 활용으로 세뇌하기도 하죠. 대표적인 것이 경찰국가를 미화하는 설정이라든지.. 위의 인수대비도 마찬가지고요.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극의 흐름이나. 알고 보는 사람은 답답해서 안 보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대로 보다보면 그대로 세뇌당하는 거고.

  9. 위에 도미닉님 2011.12.07 0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원래 생각하고 배우는 것에 비해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가더라구요 < 뭔가 이상한 낌채를 님도 눈치채신 거네요. 그런데 그게 무서운 거에요. 원래 배운 사람이 한번 설득 당하면 더 세뇌당하기가 쉽다고 하잖아요. 그게 처음엔 좀 이상하다고 하면서 보다가도, 드라마에서 이런 저런 논리를 대면서 자꾸 얘기하다 보면, '아 그런가' 싶어서 설득당할 위험이 있어요. 다른 재밌는 드라마나 유익한 다큐 많으니, 한번 생각해봐 주시길 바랍니다.

  10. 동감합니다. 2011.12.07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번 동감합니다.. 저도 12.12쿠대타 옹호하려고 나온 들마라는건 눈치는 챘습니다.. 역시 쓰레기들..

  11. 동감합니다. 2011.12.07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의 남자에서 그동안 미화되어온 수양 세조와 한명회의 실체가밝혀졌는데그걸 다시 덮으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입니다.. 하여튼 웃기는놈들임..역사도 지들 멋대로 조작하려고 드는..한나라당의 선관위 공격도 기가 막힌일이지만

  12. 동감합니다. 2011.12.07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진짜 어이가 없는놈들입니다. 문종께서 일찍 돌아가신것이 아쉽지만 세종대왕의 총애를 듬뿍 받고 세종대왕과 가장 많이 닮고 그의 덕망과 지식,학식 모든면에서 가장 많이닮은 뛰어난 군주였습니다. 과학기술,군사 기술 세자시절부터 문종대왕의 업적은 상당히 많습니다. 세종께서 대단히 총애하셨구요..그런 문종대왕을 무능하다니.. 정말 천벌받을자들입니다.

  13. Favicon of http://4321 BlogIcon 의갸갸 2011.12.12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렇구나....그래서 문종의 이름도 문종이야....임금들이름은
    돌아가시고 나서 사후에 그분둘의 행적에 관련하여 이름을 지어주니....
    근데 사실, 수양대군이 위협을 받을수는 있었을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려면 상대를 죽일수밖에 없는 절절함....그리고 정치는 아주
    복잡 다양하게 여러사람이 얽혀있다보니...다들 저 살기위해서 서로에게
    깐죽대고...단종을 키워준 세종 네째부인도, 단종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을테니까 도 그러수밖에...결론은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다 각자가 자신이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데..
    그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니, 어쩔수 없읍니다.

  14. 호호호 2011.12.27 0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 문종 단종 이 삼세대가 꾸준히 이여졌더라면 조선왕조의 역사가 태평성대를 이루었을텐데...ㅠ 세조도 훌륭한 임금이지만 문종의 업적에는 미치지는 못했죠 세종과 문종은 성격과 정치적인 코드가 잘 맞아서 문종이 세종을 도움으로 많은 업적들을 남길수가 있었죠 어릴적부터 집현전학자들과 동고동락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져 있더군요 어진사람을 나약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경솔한 사람이죠 그래서 인수대비는 자신의 손자인 연산군에게 늙어서 학대 받잖아요 그 성정이 어디서 나왔겠어요~ㅋ어진임금에게 충성스런 신하는 존재하는 법이지요 역대 임금중에서 이런 충신이 어디 있을까요? 사육신...혜빈양씨도...지신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도요 하지만 세조는 자신의 할아버지 태종처럼 왕권을 지키기위해 결단을 내린것 뿐입니다

  15. dsds 2011.12.27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인수대비를 종편이랑 연개해서 까는거는 좀 어이가 없는듯합니다.
    인수대비정도의 픽션은 솔직히 역사왜곡이라고 할수도 없는걸요.요즘 지상파 방송사극들을 좀 보시죠.인수대비야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했다고 해도 지상파방송들에서 사극이라고 하는 드라마들은 환타지 찌라시 수준의 스토리를 가지고 사극이라고 우기는 실정입니다.

    오히려 종편에서 하는 인수대비가 정통사극에 더 가깝더군요.이걸 가지고 종편이 왜곡 어쩌구 한다면 지상파 방송들은 무엇이 되나요.아무리 조중동이 싫어도 말도 안되는걸로 걸고 넘어지면 안되죠.

  16. ff 2011.12.28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조는 훌륭한 임금이 아닙니다.. 훌륭한 임금이라면 세종, 정조나 적어도 태종만큼이라도 했어야죠.

  17. dsds님꼐 2012.01.13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수대비가 왜 정통사극에 가까운지 부터 물어봐야겠네요 ㅋㅋ
    조선왕조실록에 어디 대군따위가 세자에게 그런 효도 밖에 못하는 한심한 자 라는 말을 했는지가 궁금 하네요 꼭 찾아서 알려주세요 ㅎㅎ

  18. 요즘 드라마를 2012.01.14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석하면서 보는 이 어이없음...그냥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시죠 이게 역사 교과서도 아니고 역사공부 하려면 책을 보시던가 그리고 그시대에 살다 오지도 않았으면서 위에 적어놓은것이 마치 사실인양 쓴것도 어이없음

  19. ggg 2012.04.27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재방우연히 보다가 의아했던게 ... 단종은 12살에 보위에 올라 어리다는 이유로 수양대군과 그외 사람들이 구데타를 일으킨건데 이번에 보위에 오른 성종도 13살이라면서요?참~아이러니하네요.성종이나 단종이나 그 나이또랜데...단종을 친 이유는 정치욕심때문이라는것 밖에 안되는군요.




[
공주의 남자]가 본격적으로 수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단종 왕위 찬탈부터 이시애의 난까지 숨 가쁜 역사의 격랑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드라마는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더욱 비극으로 몰고가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태세다
.


그러나 김승유-세령 커플보다 더욱 비극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커플이 있다. 바로 주인공보다 더 빛나는 커플, 경혜공주와 정종이 그들이다
.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수양대군의 계략에 빠져 어수룩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정종과 결혼한다.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결혼을 한 경혜공주는 정종을 냉대하지만, 선한 마음을 가진 정종은 부인인 경혜공주를 끝까지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런 정종에게 경혜공주 역시 점점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침내 서로를 진정한 부부로 인정하는 과정에 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서로를 위하면 위할수록,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비극의 세기는 점점 강렬해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원수의 집안에서 태어나 비극적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김승유-세령 커플과 달리 경혜공주와 정종은 원수도 아니었고, 비극적인 사랑을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역사의 물줄기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다
.

 


유일한 조력자였던 김종서를 잃어버린 뒤 단종과 경혜공주의 정치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수양대군은 경혜공주를 두고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놓고 협박하고 있고, 한명회-신숙주 등은 이미 수양의 왕위 등극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 놓고 있다. 권력을 둘러싼 파워 게임에서 패배한 그들에게 가혹한 보복과 숙청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윤씨부인의 말처럼 정치란 죽여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혹한 운명 앞에 경혜공주와 정종이 서 있다. 한 나라의 공주요, 부마이지만 그들에게는 이 없다. 거대한 역사의 격랑 앞에 기꺼이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없이 투쟁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싸우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비극이다
.


특히 정종이 보여주는 경혜공주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은 단순한 애정이 아닌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사랑으로까지 느껴진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비정한 권력 투쟁과는 상관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풍류를 즐겼던 그는 어쩌면 그저 그런 호색한으로 맘 편히 인생을 즐기고 싶었던 인물이었을터다.


그런데 경혜공주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180도 뒤바뀌어 버렸다. 경혜공주, 더 나아가 단종이 겪어내야 할 정치적 험로를 함께 걸어가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혜공주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비극적 운명에 맞서며 경혜공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다. 정종이야말로 진짜 남자 중의 남자, 로맨티스트 중의 로맨티스트인 셈이다
.


이제 그는 더더욱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의 야욕은 점점 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낼 것이고, 단종과 경혜공주의 정치적 입지 역시 날이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직스런 이유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질 줄 아는 희생정신과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는 당당함을 갖춘 멋진 사나이기 때문이다
.


이쯤에서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배우 이민우의 내공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아역 시절부터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목받았던 이민우는 순진하고 찌질해 보이면서도 진중하고 믿음직스런 정종 캐릭터를 200% 소화해 내고 있다.
하나의 얼굴에 다양한 색깔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를 보노라면 진짜 팔색조 연기가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배우란 역시, 연기로 빛나는 사람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정종은 단종 복위를 위해 힘쓰다 세조에게 덜미를 잡혀 사약을 받았다. 한 나라의 부마로서는 비참한 죽음이었으나, 역사는 그를 충신이라 기록했다. [공주의 남자] 속 정종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인인 경혜공주와 처남인 단종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던지면서도 한 점 후회를 남기지 않는 멋지고 당당한 일국의 '부마'의 삶 말이다.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이 남자 '정종'. 때론 주인공보다 더 멋진 그에게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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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1.08.19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종은 능지처참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열형요.

  2. 쫑이 2011.09.0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넘 공감하고 갑니다 진정한 '공주의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피비린내나는 운명에 당당히 맞선 정종이 아닐까 하네요

  3. Stella 2011.09.01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종처럼 매력적인 인물도 드문 것 같아요 귀엽고 마냥 사람좋아보이다가 진중해질땐 엄청 카리스마 발휘하는 속이 찬 사람... ( 근데 꿈이 호색한은 아닌 것 같아요 가난한 기세에 돈벌려구 노름했구 아직도 숫총각이시니....^^) 정종을 제대로 그려주시는 이민우씨의 연기가 정말 빛이나는 듯합니다

  4. 유리의 성 2011.09.01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이민우 씨 덕분에 팔색조 정종 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듯합니다 글 쓰신대로 역을 200% 소화하고 계시는 듯 해요 공주의 남자 덕분에 이민우씨를 다시 봤습니다

  5. Ail 2011.09.01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꺅!! 다 동감! 김승유보다 빛나는 로맨티스트 정종!

  6. ㅎㅎㅎ 2011.09.02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혜공주와 정종은 원수도 아니었고, 비극적인 사랑을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역사의 물줄기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을 뿐이다 ... 공감가는 글귀네요. 운명앞에 당당히 맞서 끝까지 충신으로 죽은 로맨티스트 정종 ㅠㅠ

  7. 주인공보다빛나 2011.09.02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배우는 연기로 빛나는가 봅니다 분량도 별로 없는 정종과 경혜 공주가 많은 팬들을 양성한 건 실제 역사 속의 비극성과 짧은 대사 와 표정 속에 놀랍도록 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명배우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8. Dragon 2011.09.02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 회 3분 남짓한 분량에도 정종-경혜 커플이 대세가 된 이유는 실제 역사 속의 안타까운 운명과 두분의 신들린 연기 덕분이 아닐까해요 진짜 분량대비 임팩트 갑!




[공주의 남자]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단종시대의 최고 비극인 '계유정난'이 마무리 되며 거목 김종서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17일 방송에선 김종서가 생존해 있단 걸 안 수양대군이 그를 다시 한 번 제거하는 내용이 방송됐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에서도 철퇴를 맞은 김종서는 살아 있었을까? 수양대군은 정녕 김종서를 두 번 죽였을까? 수양대군을 경악케 한 김종서의 생존은 진짜 있었던 일이었을까?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밤,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급박하게 돌아갔다. 김종서의 집에 불시에 찾아간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잠시 방심하던 틈을 타 철퇴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백두산 대호'라 불리던 김종서는 그 자리에 쓰러졌고, 수양대군은 다시 한 번 철퇴로 김종서를 내리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종서 대신 그의 맏아들인 김승규가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김종서 부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것을 확인한 수양대군과 그 일파는 서둘러 궁궐로 향했다. 궁궐로 향한 수양대군은 일거에 권력을 장악했다. 수양대군으로부터 김종서의 죽음을 전해들은 한명회 역시 분주하게 움직엿다. 그는 김종서 일파를 궁궐로 불러들여 살생부에 따라 차례로 살해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었던 영의정 황보인이 제거됐고 민신, 조극관 등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들 또한 모두 목이 날아갔다. 말 그대로 하룻밤 새에 세상이 뒤집어 진 것이다.


수양대군 일파는 승리감에 도취됐다. '금상 위에 좌상'이라 불리던 김종서 가문을 하루 아침에 멸족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단종을 떠받들던 신료집단을 한번에 쓸어낸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수양대군을 경악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김종서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다. 김종서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가 그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홍윤성은 기함할 수 밖에 없었다.


홍윤성은 수양대군 일파의 컨트롤 타워인 한명회에게 김종서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했고, 한명회는 직감적으로 김종서가 생존해 있음을 깨달았다. 용의주도하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계유정난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한명회였으나 이 때만큼은 다소 당황했는지 수양대군과 수양대군의 보디가드격인 임운, 양정에게 "김종서가 죽은 것을 확인하셨소이까?" 라고 몇 번이나 캐물었다 한다.


한명회의 직감처럼 김종서는 철퇴를 맞고 쓰러진 뒤에도 숨이 붙어 있었다. 4군 6진을 개척하며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던 천하장사 김종서였다. 철퇴 한 번으로 제거하기엔 너무나 강한 상대였던 셈이다. 김종서는 급한대로 철퇴를 맞은 부분에 응급처치를 하고 서둘러 입궐하고자 했다. 수양대군이 궁궐을 장악하기 전에 먼저 단종의 신변을 보호해야만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단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김종서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도성의 8대문은 모두 수양대군에게 장악됐고, 김종서가 입궐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차단되었다. 김종서를 태운 가마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돈의문이었다. "환자가 있으니 문을 열어주시오" 라며 간청하는 김종서의 하인에게 돈의문 수문 갑사는 "수양대군의 명이 있을 때까진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는 차가운 답변만을 내놓았다.


돈의문이 차단되었음을 확인한 김종서는 급히 가마를 돌려 서소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환자가 있으니 문을 열어달라는 김종서의 하인에게 "수양대군의 명이 없이는 성문을 열지 못한다" 는 답변만이 되풀이 되었다. 이 때, 김종서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내가 일국의 좌상 김종서니라! 당장 문을 열거라!" 라고 일갈했다. 허나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일이 틀어진 것을 직감한 김종서는 아들 김승벽의 처가에 몸을 숨겼다. 환부를 치료한 뒤 차후의 일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허나 김종서를 가만히 둘 한명회가 아니었다. 김종서의 생존을 확인한 한명회는 도성 전반을 샅샅이 뒤져 김종서의 은신처를 확보했고 양정, 이흥적, 이흥상으로 이뤄진 자객단을 보내 김종서의 주살을 명령했다. 김종서로선 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두 번' 죽게 된 셈이었다.


결국 김종서는 끝끝내 단종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수양대군 일파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세종에게 "육진의 개척은 내가 있어도 종서가 없으면 되지 않았을 일이며, 종서가 있어도 내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야" 라며 총애받았던 인물, 명재상 황희에게 "내 뒤를 이을 인물은 단 하나, 종서 뿐이다" 라고 극찬받았던 인물, 두만강변을 평정하고 육진을 개척하며 고려사를 개수했던, 문무에 모두 능통했던 충신 중의 충신 김종서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절재 김종서.


그의 생애는 장중하면서도 화려했다. 충절, 거목, 원훈 등의 찬사를 받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인품이었다. 그는 고려 왕조가 망하기 2년 전인 공양왕 2년 도총 김제추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조 태종 5년 약관 16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등용된 엘리트였다. 그는 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한 준재였고, 태종-세종-문종-단종 네 임금을 지척에서 모신 명재상이었다.


임금의 비서격인 대언을 비롯하여 내직은 언제나 문반이었고, 함길도 도절제사와 같은 외직으로 나가면 무반으로서의 책무를 완벽히 수행하여 후진들로부터 끊임없는 존경을 받았다. 단종조에 이르러 권력의 정점에 섬으로써 국정을 전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강직한 성품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흔들림 없이 국사를 운영하려던 그의 태도를 오해한 것으로 사료된다.


64세. 백두산 대호 김종서는 그렇게 아들 김승규, 김승벽과 함께 일찍이 그 자신이 노래했던 "삭풍은 나무 끝에서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와 흡사한 늦가을 찬바람 속에서 멸문의 화를 입었다. 그의 부재는 곧 단종시대의 종말을 예고했고, 이로써 조선 왕조는 급격히 난세로 빠져들게 되었다.


임금도 장상도 한번은 죽어야 한다. 생애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했다고 할지라도 그 죽음까지 아름답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죽음은 오로지 비통할 뿐이다. 그러기에 절재 김종서의 죽음이 더더욱 한없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의 퇴장과 함께 '제 2라운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승유와 세령의 사랑은 더욱 비극으로 치달을 것이고, 수양대군 일파의 왕위 찬탈 음모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과연 [공주의 남자]는 이 역사적 비극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 것인가. [공주의 남자]의 내용이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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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788dud 2011.08.18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밌는 드라마 하나 건졌네요. 이렇게 알아 듣기 쉽게 글을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공주의 남자' 정말 궁굼합니다 기다려지네요.

  2. 2011.08.18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종서에 대한 평이 너무 치우쳐져 있네요
    조선왕조실록을 직접 읽어보셔야 할 듯

  3. 와우 2011.09.02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궁금했었는데,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김종서의 최후는 정말 비극적이고 슬프네요 ㅠㅠㅠ

  4. 으갸갸 2012.01.02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역사란 진짜 누구의 입장에서 쓰느냐에 따라 해석이 많이 달라질수 있을듯 하네....
    한 나라의 왕은 가장 큰 힘과 이엄을 갖 춰야 국가가 안정될듯함.
    문종이 가장 큰 잘못, 어리석은 짓을 한것 같다...자기 어린 불쌍한 자식을 위해서라도 욕심을
    버리고 동생에게 정당하게 임금자리를 내주었으면, 조선왕조의 많은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접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한 나라의 권력을 잡는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존권의 문제이니....늬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을수밖에 없는 운명들....이런때는 그저 아주 평범한 가늘고 긴 삶을 살수있는 우리
    민초가 훨씬 낳은것도 같음.



[공주의 남자]의 시청률이 폭등했다.


9~10%대에 맴돌던 시청률이 [시티헌터] 종영과 함께 무려 8%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로써 [공주의 남자]는 [시티헌터] 종영의 최대 수혜자이자, 수목 드라마 전쟁에서 값진 1승을 거두게 됐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를 보다보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띠는데, 그 중 가장 불편한 것이 바로 '깡패두목'처럼 그려지는 한명회의 모습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이희도가 연기하고 있는 '한명회'의 모습은 천박하고 경망스럽기 그지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저잣거리 깡패들을 끌고 가 대신들을 협박하는 건 물론이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면서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고 다닌다. 마치 조폭 집단의 '행동대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수양을 둘러싼 대부분의 인물이 그렇지만 한명회의 모습은 특히나 극악무도한 인간성 상실의 냄새를 뿜어낸다.


그런데 아무리 '작가의 재창조'라고 해도 이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싶다. 이효정이 연기하는 신숙주가 진중하면서도 출세지향적인 양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에 반해, 한명회 캐릭터는 너무 1차원 적인데다가 그에 대한 폄훼가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 수양대군이 "나의 자방" 이라고까지 칭했던 한명회가 이런 식으로 단선적으로 그려지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의 '브레인'을 신숙주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상 수양대군의 최측근이자 최고참모는 누가뭐래도 한명회였다. 절친한 친구였던 권람의 소개로 수양대군과 운명적으로 조우한 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양대군과 그 일족을 지척에서 보필했던 그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도드라진 길을 걸은 대훈신이요, 지략가였다.


한명회는 수양대군파의 '컨트롤 타워'였다. 김종서 제거, 단종 제거, 세조 즉위 등이 모두 한명회의 머릿속에서 구상됐고 이는 그대로 피 비린내 나는 조선의 역사가 됐다. 수양의 측근 가운데 그는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김종서 제거를 다소 망설이는 수양을 '계유정난' 의 역사 한 복판으로 밀어 넣은 것도 그였고, 살생부를 직접 작성해 김종서와 함께 단종 사수파의 최고 권신이었던 황보인 등을 주살한 것도 그였다. 수양대군이 한명회를 일컬어 "나의 자방" 이라고 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왕위로 옹립하는 데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숙부와 조카 사이였던 세조와 단종 사이에서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이어 사사하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단종을 지지하는 파에서 보면 한명회만한 '역적'이 없었으나, 세조 입장에서 보면 한명회만한 '공신'이 없었다. 훗날 사육신이 된 성삼문이 "모두 다 죽일필요도 없이 한명회만 죽이면 일은 끝나게 되어 있다" 고 이야기 한 것도 한명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 어떤 측근들보다도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한명회는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쉽게 출세할 수 없었던 그는 왕위에 야욕을 가진 수양대군을 보필하며 국가 체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 버렸다. 그는 말년을 제외하곤 언제나 국가 권력의 최정상에 올라가 있었다. 3번의 공신책봉, 2번의 영의정 재임에도 모자라 자신의 딸을 왕비로 올리고, 사돈이었던 정희왕후-인수대비와 결탁해 국정 전반을 총괄했던 그의 존재감은 조선조 어떤 대훈신보다도 묵직한 무게감을 선보이고 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한명회는 대단한 '권력가'였으나, 역사에 길이 남을 '간신'은 아니었다. 특히나 [공주의 남자]에서 보여지듯 악행만을 저지른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단종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명회가 간신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종 이 후, 세조-예종-성종을 보필했던 한명회의 모습은 간신배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명회는 세조 재위 시절 함경도, 평안도 등의 북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방을 전전하는 일이 가장 많은 사람이었다. 희대의 권신이었지만 그가 재물축적에만 열을 올리고, 국정을 전횡하는 등의 간신배는 아니었단 이야기다. 한명회는 자진해서 불안정한 지방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도성을 비우는 일이 잦았고, 또 한 번 맡은 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는 동시에 성삼문 등 사육신들이 일으킨 '단종 복위 계획'을 무산시키고, 반대파를 제거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꾀하는 과단성을 선보였던 그는 예종조와 성종조에는 정승의 자리에 올라 국정 전반에 대해 임금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는 역량있는 원로였다. 특히 성종조에 내탕금이 바닥나는 등 왕실의 재정 상태가 심각해지자 자신의 전 재산을 문서 편찬과 왕실 안정을 위해 바치는 등 조선 왕조와 체제 안정에 대한 한명회의 열망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에서 한명회만큼 극단의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악행만큼 공도 많고, 과실만큼 업적도 많은 그의 행보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흑백논리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그렇기에 [공주의 남자]처럼 한명회를 극단적이면서 단편적인 '악인'으로 몰고가는 건 조금 지양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한명회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실존인물이라면 그 존재감에 맞는 합당한 인물 설명과 성격 묘사를 하는 것이 옳다.


이제 [공주의 남자]는 수양과 김종서의 대결이 격화되며 훨씬 비극적인 상황에 치닫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깡패두목'처럼만 보여졌던 한명회가 어떤 매력으로 극 중에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름의 관전포인트가 될 듯 싶다. [공주의 남자]의 고군분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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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헐... 2011.08.07 0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희도씨 역이 한명회라고요?? 제가 알고 있던 사실과 너무 달라 생각도 못했네요..드라마를 즐겨 보는게 아니고 대충 채널 돌릴때 하면 보는 타입인지라..
    헐... 작가 완전 역사의식 없나봐요 ;;

  3. 역적 때려잡기 2011.08.07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는 자기 딸들를 마치 포주 처럼 이놈저놈주고 자기가 출세한 포주놈 같은 행실도 있다.

    • 어리석기는.. 2011.09.22 0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시절에는 다만 한명회만 딸을 정략결혼했을까?
      이미 당신은 작가가 보여주는 연출의도에 흘러들어간 사람일뿐

  4. 간적한명회 2011.08.09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권강화를 명분으로 거병했으나 정작 유생.학식있는 신하들의 지지를 받지못하고 정권자체가 정통성이 없었기에 능력있는 학자들을 처형한 반역자요 한명회같은 계유정난 꼴통공신들에게 철저히 의지하여 자기 스스로 자기거병의 명분을 배신한 인물이 세조요... 세조사후 계유정난공신들이 판치는 시스템을 물려준게 세조임다 왕권강화? 풉..지나가는 개가 웃을 노릇... 한명회를 부관참시한게 연산군의 유일할 업적아닌가 그생각까지 들게 만드빈다

  5. 2011.08.11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한명회라는 드라마에 주인공이 이덕화씨였었나 인상 깊었는데 말이죠. 그 이미지가 파격적이면서 지략가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으로 다룬거니까 당연하긴 하겠지만 근데 정말 오래 산단 느낌도... 연산군 나오는데에서도 한명회 묘비를 파헤친다던가 이런 식으로 언급됬던 것 같은데..

  6. 시대에 따라 인물을 보는 눈 2011.08.11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가 대단한 지략가로서 역사극에서 멋지게 그려졌던 시대가 바로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였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시대.... 아마 서로 비슷한 점들이 많아서??? 한명회를 마치 대단한 위인처럼 그렸던 것은 아닐지... 님은 그 시선에 너무 동화되어있었던게 아닐까요?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기르셔야할 듯... 개인의 권력욕과 야망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인지? 세조의 반정과 현대의 쿠데타가 과연 국가와 국민의 번영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향한 권력욕의 결과였을까요?

  7. 유현수 2011.08.16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이 글 쓰신 분 한씨신가요? 역사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신듯 보입니다. 다른분들 댓글 내용대로 한명회의 지략이란 것이 깡패와 다를것이 무엇입니까? 상기 드라마에서 작가의 설정이 약간 치우친 점은 인정되나 실망스러울 정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창작의 묘 정도에서 인정되어 보여집니다.

  8. 유현수 2011.08.16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이 글 쓰신 분 한씨신가요? 역사관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신듯 보입니다. 다른분들 댓글 내용대로 한명회의 지략이란 것이 깡패와 다를것이 무엇입니까? 상기 드라마에서 작가의 설정이 약간 치우친 점은 인정되나 실망스러울 정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창작의 묘 정도에서 인정되어 보여집니다.

  9. 역사관이 왜 그따구냐 2011.08.26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는 권신 그 이상 이하도 아님 오늘날로 치면 독재자에게 빌붙어 착취하던 자를 훌륭하다 칭송하는꼴.. 한명회의 공?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도 공이라 봐야하나? 한명회는 그런 공도 얼마 없음. 오히려 훈구척신들을 양성해서 훗날 조선의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게 한 놈인데 얼어죽을.. 역사관이 왜 그따위임 헛공부했네 제대로 좀 하길

    • 역사관? 2011.09.22 0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신이나 똑바로 공부하시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니..
      글쓴이 말대로 정말 1차원적이군요!!!!
      드라마보고 좀 감정잡으시는것같은데. '한명회'라는
      드라마도 한번 보시지요. 드라마보고만 믿는거 같으니까..ㅋㅋ

    • Urchin's Dad 2011.09.30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싸우지 마로.여의도 바보들처럼^.^ 국사공부를 하는 셈치고 사극을 보시라구요. 명태라는 울 가곡은 어떠하오? 그 곡은 한 때 금지곡이었다오.

  10. 주동현 2011.08.31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도 잘 읽었고 덧글도 더더욱 잘 읽었네요.나름대로의 균형잡힌 사고를 하게 되었지만 한명회가 벌인 피바람을 그이후에 약간의 치적으로 덮을순 없다고 생각되네요

  11. 시리우스 2011.09.09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의 남자를 매번 보지는 않아서 이희도씨가 한명회역이었다는 건 몰랐지만요. 님의 역사관은 좀 더 성숙해져야 할 것 같네요.
    역사관이 주관적이신 것 같아요. 위의 유현수님 말씀처럼 혹시 글 쓰신 분이 청주 한씨인게 아닌지 궁금하군요...- -

  12. 윤아름 2011.09.15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같은분이 조선시대에 태어나셨다면 신숙주 한명회 김질 이되는거임ㅋ

  13. 한기영 2011.09.15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회사에서 요즘 공주의 남자 때문에 핍박 당하고 있었는데..ㅜ,ㅜ

  14. 한명회는 역적 맞습니다 2011.09.18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객관적으로 역사공부를 한다면 한명회는 조선 최악의 패륜적인 인물입니다
    지략가? 책략가? 말도안됩니다. 공주의남자가 픽션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역사인물에 대한 묘사는 잘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 Urchin's Dad 2011.09.30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목이란 울 가곡을 아시오? 초연이 쓸고간 깊은 계곡~
      그러면 그네라는 울 가곡은?

  15. 박종건 2011.09.19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대 안 살아본분들 아갈 다물^^
    저도 다물고 있으니^^

  16. 2011.09.30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Urchin's Dad 2011.09.30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트롤 타워가 아니고 쉽게, 우리말로, 책사, 안평대군의 책사는 이현로임.
    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보시고. 공명, 제갈공명은 죽어서도 사마중달을 혼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뭔말인줄 아시죠? 책과 벗하기 좋은 철입니다.

  18. 에휴 2011.10.07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Urchin's dad 꼭 어딜가나 이런사람들이 있죠 남들보다 그까지거 좀 더안다고 깝죽대고 자기랑 다른의견이면 개무시하고 비꼬고 딱봐도 친구없을타입 그깟 습자지식 별것도 아닌거가지고 대단한거 안다는냥 나대지마세요 ㅋ

  19. 만약 당신이라면? 2011.10.28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명회이든.. 사육신의 성삼문이든..

    그 누구던간에.. 당신이 바로 그였다면...

    누구나 시대적인 상황이 있는것이고.. 그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했을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하다 보면.. 명확히 밝힐수 있는것도 있지만..

    더욱 더 혼란스러워지는것도 있지요...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물을 평가하세요..

    만약 당신이 그들이였다면....????

  20. 나도1500억원 2011.11.20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500억원만 투척하면 자연스레 대통령직에 다가설텐데.
    수양처럼 한명회처럼 피뿌리지않고...
    1천500억원만 뿌릴 수 있다면...정치에 문외한이고 도와주는 정치인들 주변에 별로 없어도...대통령으로 뽑아줄 10대 20대 30대 많으니 될 수 있을텐데.
    인상도 선하고 말도 제법 잘 하고 은근히 신뢰감도 가는 타입인데...사회에 환원할 1500억원이 없네 ㅠ.ㅠ

    아니 그럼 암에 걸렸어도 의사한테 가지말고 인상도 선하고 말도 잘하며 기부도 잘하는 김장훈에게 가서 수술해달라고하지 왜...

    나라경영같은 중차대한 일도 인상선하고 생각참신할것같은 정치초보자에게 맡길거면...
    그나저나 난 황금어장보고 황금을 돌같이 보며 참신하고 진취적인 사고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좋아했더니...
    하기야 3천억원이 넘는 돈을 가지고 이자와 배당금만으로 사회1%의 삶을 살고 있으니 그렇게 여유로웠겠지 ㅠ.ㅠ

    그것도 대선의 유혹이 현실에 가까워지니 반 뚝떼서 투척하는 과감함도 가진 야망인이었네 ㅠ.ㅠ

    아 진짜 실망아닌 실망이다.

  21. 안티 Urchin's Dad 2011.12.23 0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Urchin's Dad 이분.. 글쓰는거 정신분열증 환자같다.. ㄷㄷ
    지 정신세계를 표현하기전에 남들한테 말하는 화법부터 고쳐야할듯.. 졸라 유식한척하면서 실상 별것도 없는 빛좋은 개살구일뿐인데 유식한척만 쩌는 사람임..




최근 드라마 [대왕세종] 가 본격적인 세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 계승권이 충녕에게 넘어가면서 권력 구도가 재편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셋째 아들이었던 충녕대군이 조선조 4대 임금으로 조선 최고의 '성군' 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버림을 받고 왕위 계승권을 박탈 당했던 첫째 아들 '양녕대군' 은 어떻게 됐을까. 왕위 계승권을 빼앗긴 형과 본의 아니게 빼앗을 수 밖에 없었던 동생 사이에는 조금의 갈등도 없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사에서는 태종의 첫째 아들이었던 세자가 태종의 마음이 충녕 대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광증' 을 보여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자에게 '광증' 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이고, 태종 역시 그런 아들을 탐탁치 않아 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태종에게 있어서 세자에게 왕위를 넘기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였고 결국 일종의 탄핵 처분을 통해 세자를 폐위하고 셋째 아들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녕대군' 이고, '세종대왕' 이다.


양녕대군은 처음부터 원자이자 세자의 위치에 줄곧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양녕대군' 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그가 양녕대군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세자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부터인데 양녕의 뜻이 사양할 양 (讓), 편안할 녕(寧) 즉, "(세자의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편안하다." 는 뜻임을 살펴 볼 때 '양녕대군' 이라는 호칭은 그의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칭호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는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 했을지언정 '편안' 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폐위' 된 세자의 앞날이 가시밭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광증에 시달리면서 전국을 전전해야 했고, 아버지 태종의 시퍼런 서슬에 질려 왕실의 '맏어른' 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을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의 감시와 관리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성군' 세종의 형이 걸을 수 밖에 없는 잿빛 운명이었다.


양녕대군의 운명은 성군으로서 찬란한 영광의 길을 걸었던 세종의 그것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철저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통해 동생의 '조선' 을 밝게 빛냈다. 세자에서 대군으로 강등 되며 모든 것이 부정되어 버린 상황에서 그에게는 어떠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다. 양녕대군에게는 왕실 종친으로서의 '권위' 도 '명예' 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토록 원하던 '자유' 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살아가는 것', 그 뿐이었다.


이렇듯 상왕인 아버지와 임금인 동생을 둔 '조선' 이라는 나라에서 양녕대군은 홀로 희대의 불운아로 전락했다.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산 양녕대군이 불운의 원인 제공자인 세종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비록 그와 세종의 우애가 깊었다고는 하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권력 구도' 재편 과정에서 파생된 희생자와 쟁취자로 구분 지어졌다. 그것이 우애 깊은 형제가 겪어버린 권력의 비정함이라면 비정함이었다.


세종은 양녕대군을 '형' 으로 각별하게 모셨지만 단 한번도 '왕실의 어른' 으로 우대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기행을 일삼았던 양녕에게도 원인이 있었지만 한 때 권력의 중심부였던 그를 견제하는 왕실, 조정 세력과 그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세종의 영향도 있었다. 세종에게 양녕대군은 언제나 보살펴 드려야 하는 형님이었지 왕실의 대표하는 종친은 아니었다. 이것이 또한 양녕대군의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양녕대군은 자신의 명예 회복과 복권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세종의 죽음' 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있었다. 세종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올랐던 문종이 오래지 않아 승하하고 12살 어린 임금인 단종이 즉위했을 때, 양녕대군은 비로소 자신의 '복권' 을 희망할 수 있게 됐다. 태종도, 세종도, 대비도, 대왕대비도 없는 왕실에서 '왕실의 최고 어른' 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쟁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의 명예 회복을 위해 양녕대군의 움직임은 대단히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전개됐다.


양녕대군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인물로 어린 임금 단종이 아닌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으로 점찍었다. 양녕대군은 수양에게서 젊은 시절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좌절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수양대군을 임금의 자리로 밀기 시작했다. 계유정난으로 시작 된 수양대군의 권력 장악 과정 속에서 양녕대군은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양녕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영의정' 의 자리에 오른 수양대군에게 '즉위' 할 것을 간접적으로 종용했다. 양녕대군은 수양대군을 제외한 나머지 종친들, 특히 수양대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안평대군의 사살에 동조했고 더 나아가 세종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단종의 제거에도 앞장 섰다. 가깝기로 따지면 단종과 양녕만한 관계도 없었지만 '명예회복' 을 향한 복권의 한(恨)은 그렇게 세종의 손자에게 칼날을 겨누었다. 복수로 따지자면 한없이 잔인한 복수였다.


세종이 무릎에 올려 놓고 성삼문과 신숙주 등에게 친히 "내가 죽더라도 잘 부탁한다." 며 어여뻐 했던 단종은 불과 10여년의 세월 만에 '큰 할아버지' 양녕대군의 '공세' 속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게 된다. 물론 단종을 폐위시키고 영월에서 죽이고 만 것은 세조(수양대군)와 그의 장자방이었던 한명회, 그리고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신숙주였지만 뒷배경에는 그 모든 것에 침묵했던 왕실 종친과 그를 위시한 양녕대군이 존재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한 금성대군, 혜빈 양씨와 같은 왕실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양녕대군은 세종의 세 아들과 손자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회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세조에게 묵묵히 뒷배를 봐주며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 양녕대군은 큰아버지의 이상의 존재였고 비로소 양녕대군은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 권위와 존경을 회복했다. 세자였던 형의 자리를 대신해 왕위에 올랐던 동생과 그런 동생을 바라보며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었던 형의 운명은 40여년 만에 그 후손들의 '죽음' 을 제물로 제자리를 찾게됐다.


이것이 바로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 과 그의 형 '양녕대군' 이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비극이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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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균 2008.05.19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종폐위에 앞장섯던사람은 성삼문이 아니라 신숙주겠지요

  2. ㅡㅡ;; 2008.05.19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알기로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과 양녕대군은 지극히 우애가 깊어서 심지어 세종이 몰래 궁을 나가서 함께 술을 마실 정도였고 수십번의 양녕에 대한 탄핵이 있었지만 세종은 한번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보기엔 님은 역사적 근거 보다는 상황을 보고 혼자 생각하시는 듯...

  3. 강원희 2008.05.19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은 아니죠 애들이 보면 어쩌시려구 ^^

  4. JEN 2008.05.19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볼때는 누구나 상황-fact-를 보고 유추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구요. 단, 당사자에게 확인을 못할 뿐.. 저도 글쓴 분과 비슷한 견해이긴 합니다. 아무리 양녕과 충녕이 사이가 좋았기로서니,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폐위되었다면 울분이 컸겠지요. 물론 세종에게 복수를 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윗글처럼 종친으로서의 대접이 없었다면 그럴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세조를 즉위시키는데 힘을 쓴 이유는 복수라기보다는 조선을 위하는 마음이 더 컸을거라 봅니다. ㅎㅎㅎ

  5. 강철 2008.05.19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왕이라고해서 모든걸 할수 있는 조선시대가 아니였기에 수십번의 탄핵을 거부한것만도 그당시엔 정적에게 베풀수있는 아량이 아니지요. 게다가 세조시대엔 단종이 너무어려 왕권약화를 염려한 양녕의 행보가 세종에 대한 반감이라고 해석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왕실 최고의 어른으로써 그만한 정치적 결정은 당연하다고 보는데요. 다른성씨가 왕이되는것 보다는 그당시 가장 정치적입지가 탄탄했던 세조를 선택해서 왕권을 강화시키는건이 시급했던 거겠죠.

  6. 수양대군이나 단종이나 2008.05.19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깝기로치면 수양대군이 더 가까운데요
    수양대군도 '대군' 이듯이 세종의 아들인데...

  7. 그닥... 2008.05.19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녕대군이 계유정란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건 사실이지만, 그건 힘없는 어린 단종을 앞세워 정권을 휘두르려는 김종서랑...음...생각이 안나네요...힘있는 대신들한테 정권이 휘둘려 왕권이 유명무실해져서 였다고 알고있습니다..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해서라도 일으킨 조선왕조인데 그렇게서라도 지키고 싶었겠죠...후에 수양대군(세조)는 단종을 죽인 일때문에 많이 괴로워했다고 하네요..자꾸 꿈에 단종이 나타나고 해서...물론 이것도 야사겠죠^^...그래서 일시적으로 불교를 중흥시켰다 하기도 합니다...암튼 양녕대군은 무척 똑똑했던 사람인것 같아요

  8. 치우 2008.05.19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분히 가능한 가설입니다.



    단종을 사사시키라 강력하게 주장한사람이 양녕대군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말하면 글쓰신분의 펙트가 야사에 나오는 미담보다 더 역사적인사실에 더 맞을수도 있습니다.

    양녕의 양위미담은는 실록에 나오지 않고 후대의 야사에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것 이므로 승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부풀려지기 마련입니다. 단종 폐위사건이 그렇고 여러번의 사화와 광해군 폐위사건이 그렇습니다.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권자들이 잘못했다거나 도전하는 세력이 역도였다고 기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이 실권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으로 세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극적인 정통성 부풀리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세종대는 아직 성리학이 제대로 정착되어진 시기가 아닙니다.

    이제서야 중국에서 성리학이 들어와 조선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려한 시기입니다. 신권에 의해서 왕권이 좌지우지한 시기가 아닙니다. 후대인 조광조가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중종때 비로소 성리학의 나라로서 시작일 뿐입니다. 사대부의 대표가 왕이다라는 의식은 조광조 이후 좀더 성리학이 뿌리를 확실하게 내린 후대였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명종의 후사를 직계가 아닌 중종대왕의 방계(직계는 왕비소생의 왕자들, 방계는 후궁소생을 일컬음.)인 영양군의 셋째아들인 하성군을 왕위에 올리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수 있었습니다. 말그대로 왕을 선택하여 옹립한 모양세이기 때문입니다.

    이시기는 4번의 사화를 거치면서 사림의 세력이 중앙정계까지 진출한 시기입니다. 슬슬 붕당이 생겨나기 위한 토대도 마련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미 왕의 혈통이 직계가 한번 끊긴 상황이고 왕인 선조조차도 자신의 방계혈통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결과가 변덕스러운 정치적 결정으로 나타났고요.


    이처럼 후대상황에서야 신권이 강화된 시기 이지만 세종조시대는 왕권이 신권에 압선 시기입니다. 그리고 세자의 자리에서 물러난이후 양녕대군은 정치와, 권력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엇습니다. 태종의 사후전이기에 태종의 의도적인 상황연출일수도 있습니다.

    후대의 세조의 종친의 등용에서 보더라도 철저한 외면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성씨가 왕이 되려는 움직임은 세종의 업적에 의해서 시도차제가 불가능했습니다. 왕조가 성이 바뀌는가장 큰 이유가 민심을 잃고 실정을 해야 가능한 상황에서 세종이 죽은지 겨우 5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문종이 세종의 치세말년 중 10년 가까이 대리청정을 했고 임금의 역활을 잘 수행했습니다. 또한 세종의 많은 업적중에 문종의 세자시절 이룩한것도 많았습니다. 단지 몸이 병약하여 세종의 근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단종도 어려서부터 영특하기 이를데 없어서 세종이 많이 아꼈다고 합니다. 이런상황에서 다른 성씨의 반란은 생각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시도자체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미친짓에 지나지 않을 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세종의 형제들에 대한 지극 정성은 단지 양녕대군뿐 아니라 경녕군에게 까지 미쳐있습니다. 경녕군에 대한 세종의 극진함은 양녕대군보다 더하면 더해지 모자르지 않앗습니다. 임종전에는 특별히 경녕군 사후 대한 장례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후에 경녕군이 사망하면 대군에 버금가는 후한 장례를 치러주라는 유지까지 내렸을 정도입니다. 단지 우애가 아니라 부왕의 즉위과정에서 숙부들의 죽음을 접해왔고 왕권강화를 위해 외척을 모두 쓸어버리는 독한 모습 또한 보였기에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세종의 외가인 민씨일가 외숙부들이 모두 귀양가거나 사사되어 죽었고 세종자신의 처가 또한 부왕에 의해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습니다.

    굳이 병약한 맏아들을 세자로 앉힌거에 대해서는 자신이 겪었던 상황과 오버랩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 전 세자의 교체에 있어서 조정이 분열되는 모습과 나라의 기틀이 잡힌 이상 이것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엇을 겁니다.

    더욱이 세자의 능력의 출중함이 병약함을 덮어버릴 정도였기에 뒤어나기도 했고, 문종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떠날줄은 상상도 못했을거라 봅니다. 둘째아들이 첫째아들에 뒤지지 않게 가지고 있는 왕제로써의 자질까지 생각한다면 우려스러운 부분이지만 둘째아들의 기질이 부왕인 태종의 기질에 닮아 있어서 혼란스러운 나라상황에서는 나라의 혼란을 정리할수 있을지 언정 안정된 나라에서는 혼란을 부추길수 있다는 측면도 고려되었을 겁니다.


    게다가 손자인 단종이 어려서 영특함을 보였기에 문종이 단종이 정치를 직접할 수 있는 나이(18세정도의 연령대)까지는 무난하게 자리를 보존할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문치중심의 정치적 안정과 장자로 연결되는 왕의 정통성등으로 충분히 왕권의 강화로 연결되는 것은 눈감고도 알수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부왕인 아버지가 장자에게 왕위계승을 하려던 목적과도 부합되는 일이기도 하구요.



    단지 문종의 병약함이 세종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둘째아들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자신의 예상보다는 훨씬 위였다는 점. 그리고 문종이 관과한 사실은 왕권강화를 위해서는 왕실의 근간인 종친들의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그것을 사전에 신경쓰고 조정하지 못한 결과가 세조의 왕위찬탈이 아닌가 합니다.


    더불어 생각해보자면 세조가 단종의 완제로서의 능력의 표출을 기다리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휘들리는 모습만을 보고 섣불리 양녕대군의 말만을 듣고 양위를 받은게 하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양녕대군이 복수하려고 한것은 아니겠지만 당시의 실권자들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폐위때 젊은 관료들로 적극 찬동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자극을 받지 않았나 합니다.

  9. 작은인연 2008.05.19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에 대한 코멘트가 자꾸 달리는데.. 내용을 제대로 읽어 보세요..
    단종을 무릎에 앉히고 부탁했던 신하가 성삼문, 신숙주고..
    배신했던게 신숙주죠..
    성삼문은 나중에 세조를 죽이려고 했던 사육신에 포함된 분이구요..

    글 쓰신분이 제대로 적으신거 맞습니다..

    성삼문..
    5살때인가 똑똑하다고 소문나서 세종이 불렀는데..
    상으로 무거운 비단을 주면서 어찌하나 보았는데..
    허리춤에 감고 끌고 갔다죠..
    엄청난 천재로 소문이 자자 했다는..
    삼문이라는 이름은..
    태어날때, 하늘이 낳았느냐, 낳았느냐, 낳았느냐 3번 물었다고 해서 삼문이랍니다...

    어릴때 읽었던 위인전이 생생하네요....

    • 나그네 2008.05.19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시습이 어릴때 세종에게 불려가서 테스트 받았습니다. 성삼문은 아니예요,^^;;

  10. 지나가다 2008.05.19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종이 양녕대군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을 또 일으킬까봐 걱정해서 물러나게 했다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같은 집안사람끼리 또 피를 불렀죠...
    뭐 양녕대군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의 하나는 신하들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즉위하고 양녕대군이 야인 생활을 할때 신하들이 양녕대군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여러번 건의 했다는 겁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걸 안 양녕대군이 신하들을 무지 미워했고 너무 신하들에게 왕권이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그래서 왕실을 강하게 만들 사람으로 수양대군을 생각해서 밀었다는 이야기인데 자신의 성격과도 비슷한데가 있어서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 하죠.

  11. 글세요 2008.05.19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깝기로 따지면 단종과 양녕만한 관계도 없었지만 '명예회복' 을 향한 복권의 한(恨)은 그렇게 세종의 손자에게 칼날을 겨누었다. 복수로 따지자면 한없이 잔인한 복수였다."
    는 표현에 동의하기 어렵군요

    가깝기로 따지면(촌수로 따져봐도) 수양이 더 가깝지, 결코 단종이 가까울수는 없구요
    왕실의 어른역할은 양녕보다 더 어른이 생존하지 않았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왕실의 최고어른이 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복권을 노려 결국 왕실의 어른 역할을 하게되었다는 논리는 넘 비약인 것 같습니다.

  12. 2008.05.19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계유정난 뒤에 양녕이있었다는 건 어느정도 사실이기도

    하구요.. 자기 명예회복이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양녕대군이 가장 사랑한 조카는 자기와

    거의 흡사한(다른게 말하자면 자기 아버지 태종과 흡사한) 수양대군이였다고 하죠. 단종

    즉위와 신권의 강성화로 인한 혼란을 보고 아마 수양대군을 뒤에서 밀었겠죠.... 복수라고

    하긴 뭐하지만 가장사랑한 조카에게 왕위를 주고 싶은 마음이였을지도 모르죠

  13. 멍멍 2011.08.12 0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건 모르겠으나 우선 세조실록에 양녕이 단종을 처단하라고 세 번이나 건의한 항목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