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녀와 야수>는 원작을 재현하는데 주력한 만큼,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이야기의 방향이 틀어지는 부분은 없다. 새로운 노래 세 곡과 왕자의 어린시절, 벨의 어머니 이야기 등이 추가 되었지만 큰 줄기는 옛날 애니메이션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동화적인 판타지를 추구하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상당히 전형적인 이야기 속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해석의 여지도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선악구도가 뚜렷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흐르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해석 역시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악역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악해야 하고 주인공은 다소 괴팍하더라도 착하고 따듯하며 정의로운 심성을 가져야 하는 동화의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착하고 똑똑한 주인공 벨(엠마 왓슨 분)의 연기 역시 해석의 여지가 크지 않다. 여기에 엠마왓슨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모는 '미녀' 타이틀에 다른 캐스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맞는다. 그러나 엠마왓슨은 이 전형적인 연기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 이를테면 성에 처음 들어가서 야수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그렇다. 야수의 무서운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야 하는 장면임에도 엠마왓슨은 지나치게 감정을 자제한다. 야수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표현되어야 하는 장면에서 엠마왓슨은 그 감정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에서 첫 식사를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법같이 펼쳐지는 디너파티를 놀랍고 신기한 표정으로 즐겨야 하는 장면임에도 엠마왓슨의 표정은 입가에 웃음만 띈 채, 무미건조하다.

 

 

 



마지막 야수가 악역인 게스톤(루크 에반스)이 쏜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장면에서 엠마왓슨의 이런 부족한 감정 표현이 절정에 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표정을 연기해야 하는 여배우의 얼굴에서 안타깝고 슬픔에 가득 찬 느낌을 받기란 불가능하다. 눈물은 흘러내리지만 입가에는 묘한 웃음기를 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엠마왓슨의 감정전달은 '전형적인' 영화에서 조차 실패하고 만다. 그동안 미국 현지에서 조차 연기력 논란이 있었던 엠마왓슨이기에 여전히 성장이 요원한 연기력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엠마왓슨은 <미녀와 야수> 이전에 영화 <라라랜드>에 출연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케줄상 출연을 고사한 여주인공 역할은 엠마스톤에게 돌아갔고 엠마스톤은 <라라랜드>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오스카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라라랜드>를 거절했던 엠마왓슨으로서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쇼비지니스계에서 캐스팅의 뒤얽힘은 흔한 일이다. <미녀와 야수>의 벨 역 조차 제작단계에서는 엠마왓슨이 아닌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염두 해 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기에 이미 제작된 영화의 캐스팅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엠마스톤이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간 만큼 한 번쯤은 궁금해질 수 있다. 과연 엠마왓슨의 <라라랜드>는 어땠을까.

 

 

 


 
<라라랜드>는 확실히 엠마스톤이 장악하는 영화는 아니다. 독특한 스타일과 유려한 음악이 어우러져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드는 영화다. 영화가 특별한 까닭은 연기자들의 연기보다는 심혈을 기울인 듯한 새로운 연출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엠마스톤은 그 특유의 분위기에 녹아들며 이야기를 집중하게 만드는데 무리없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엄청나게 눈에 띄는 연기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작품 안에서 그 작품의 결을 살리며, 혼자 튀기 보다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 베니스 영화제의 트로피를 거머쥔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영화에서 그는 충분히 제 몫을 해냈다. 풍부한 표정과 표현은 다소 과하게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모자른 것 보다는 낫다.

 

 

 

 



<스파이더 맨>의 여자친구 역으로 알려진 엠마스톤이 오스카를 타기까지는 긴 여정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엠마스톤은 <매직 인 더 문라이트>와 <이레이셔널 맨>으로 천재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우디 앨런의 뮤즈가 되기도 하고, <버드맨>처럼 작품의 색이 짙은 영화에서 깊은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화 <헬프>에서도 피부색 차별이 당연하던 시절, 흑인들의 편에 서서 책을 집필하는 캐릭터를 맡아서 눈에 띄기 보다는 어우러지는 잔잔한 연기를 해낸다. 코미디, 로맨스, 생활연기에 이르기까지 엠마스톤은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해 낼 줄 아는 배우다. 물론 모두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연기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지만, 특유의 스타일을 설득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해리포터>에서 <미녀와 야수>로 이어지는 엠마왓슨의 행보는 확실히 흥행성이 있지만, 그의 화려한 외모에 비해서 역할이 전형적이라는 느낌은 지워버릴 수가 없다. 엠마스톤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엠마왓슨의 연기력은 전형적인 흐름에서조차 어딘가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다. <라라랜드>에 엠마왓슨이 출연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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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꼽은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를 노린 출품작은 김지운 감독의 <밀정>으로 결정되었다. 영진위측은 홈페이지에 "전반적으로 연출력이 돋보이는 감독들의 영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각각의 개성과 장단점이 뚜렷해 심사위원들간의 토론이 치열했다. 그 결과 심사기준과 배점기준에 근거해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밀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히며 “‘밀정'은 작품의 미학적 성취도뿐 아니라 감독 및 배우의 인지도, 해외 배급 및 마케팅 능력 부분에서 두루 높은 점수를 얻었다. 부디 이번엔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며 탈락한 작품의 관계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밀정>을 아카데미 출품작으로 선정한 영진위의 결정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는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 쉽다. <밀정>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흥행작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제외하고 영화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밀정>의 기승전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뻔한 신파나 통쾌한 복수극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 일제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타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그 색다름이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제시대라는 한국인 공통의 공감대와 톱스타들의 출연이 없었다면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스토리 라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송강호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지만 그가 출연한 타 작품에 비교해서 더 독특하고 신선한 개성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일제시대를 제외하고 캐릭터 구성이나 스토리 구성만 놓고 보자면 해외에서 그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이런 후보선정이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선전 때문이다. <아가씨>는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은 것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4대 비평가 상 중 하나인 ‘LA 비평가 협회’의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과 미술상, 두 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영화 최초의 성과다.

 

 

 

 


 

작년만해도 LA 비평가 협회가 외국어 영화상으로 선정한 헝가리의 <사울의 아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로 오른 것은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작년 우리나라가 출품한 작품인 <해무>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시에도 <해무>가 왜 출품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번에 출품한 <밀정>역시 후보 선정단계에서 탈락하며 영진위의 출품작 선정 능력에 있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동안 한국 영화의 질적·양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로 한국영화가 선정된 적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아가씨>같은 작품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작품들은 거의 거장의 작품이 아니다. <사울의 아들>을 연출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만 해도 <사울의 아들>이 그의 첫 장편 영화였을 정도. 군더더기는 떼고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은 물론 거장이라 불릴만 하지만 <아가씨>는 상업주의, 동성애, 이후에 터진 스캔들등으로 영진위의 입맛에 맞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런 요소들을 떼고 생각할 수 있는 혜안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옆나라인 일본은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애니메션 부문을 수상하고 일본에서만 1500만명 이상의 흥행을 이뤄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하여 후보 선정이 통과되었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상과 외국어 영화상을 동시에 노려보겠다는 포부다. (이미 일본은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장편 에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밀정>을 선택한 영진위의 의도는 추측해 볼 수 있다. 한국 역사를 주제로 일제시대를 조명하고 그들이 말했듯  호감도가 높은 배우들이 출연했다. 흥행작을 다수 배출한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그런 요소들 따위를 고려할리 만무하다. <아가씨>는 반면에, 일제시대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일제시대의 만행이나 폭력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아가씨>에 출연해 인생 연기를 보여준 김민희는 파격적인 노출로 동성애 연기를 선보이고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한국 대표작’으로써 껄끄럽게 느꼈을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해외에서 좋은 평가는 <밀정>이 아닌 <아가씨>에게 쏟아졌다. <아가씨>가 출품되었다면 후보작 등록은 물론, 수상까지 점쳐볼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는다.

 

 

 

 


영진위는 나름대로의 이유로 <밀정>을 선택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작품을 선정해야 했다. 해외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것 또한 일종의 직무유기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위는 작품 선정에 있어서만큼은 권위의식을 버리고 철저히 실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 가능성을 높여 한국영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영진위의 목표요 존재이유기 때문이다. 후보작 출품에 대한 아쉬움 속에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후보작, 혹은 수상작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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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 인종은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무시해야할 때다"

미국 유명 흑인 배우인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메시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영화 <컨커션(concussion)>에서 열연하고도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윌스미스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오는 2월 28일로 예정된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다.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역시 "백합처럼 흰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지할 수 없다. 2년 연속으로 후보 40명 중에 유색인종이 하나도 없는 건 말이 안된다"며 불만을 표출했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행을 맡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조차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오스카는 백인들의 잔치"라며 비판에 동참했다.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두고 비난을 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비판에도 불구, 그는 진행자로 출연할 계획이다.

 

 

 

 

 

 

이처럼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후보작들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아카데미가 2년 연속 유색인종을 철저히 배제한 채, 백인 위주의 후보작을 선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후보작 면면을 살펴보면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다. 남우주연상 후보, 여우주연상 후보는 물론이고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전부 백인 위주로 선정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LA타임스는 후보 선정단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LA타임스는 지난 2012년 자료를 분석하여 오스카상 후보 선정단의 94%가 백인이며, 77%가 남성이고 흑인은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양성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80년이 넘는 아카데미 상의 유구한 역사중 수여된 2900여개 트로피 중 흑인이 가져간 건 존 레전드까지 32번에 불과하다. 2006년 포레스트 휘태거가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이래 흑인 주연상은 10년째 탄생하지 않았다.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2001년 할리 베리가 유일하다. 과연 백인들 위주라는 비난이 일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비난 아카데미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좀더 심도있는 숙고가 필요하다. 일단 2015년의 영화 흥행순위를 보자. <쥬라기 월드>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어벤져스><마션><분노의 질주><007스펙터>등 흥행 상위 10위권 영화 중 2개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8개의 영화의 주연이 거의 백인이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에서 핀역을 맡은 존 보예가 정도가 흑인이지만 <스타워즈>자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반길만한 소재는 아니다. 연기력보다는 판타지에 내용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 시리즈 물로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소재라는 점 또한 시상식에서는 마이너스다. 실제로 <스타워즈>는 음악상, 시각효과상, 편집상, 음향상, 음향효과상 등 5개 부문에서 후보가 되었을 뿐, 작품상등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같은 작품에 나온 배우들도 흥행성에도 불구, 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그보다는 작품성과 연기력에 치중한 후보 선정이 이뤄졌는데, 그 와중에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 자체가 많지 않았다.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엘바, <컨커션>의 윌 스미스, <헤이트풀8>의 새뮤얼 잭슨 등 흑인 배우는 모두 제외되었다는 점 역시 흥행성적과 화제성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연기력을 중심으로 보아도 후보가 된 작품들이 결코 빠지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작년에는 <나를 찾아줘>등이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며 논란이 되었는데 <나를 찾아줘>의 주연은 모두 백인이다.

 

 

 


인종차별로 따진다면 흑인이 아니라 동양인의 문제가 더 깊다. 역대 아카데미 수상자 중 주연상/ 조연상을 수상한 동양인은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가 유일하다. 외국어 영화상이나 장편 애니메이션 상 등에서 일본인등이 수상한 적은 있지만 동양인들은 후보에 오르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다. 영화 <유스>의 주제가상이 후보에 오르며 주제가를 부른 조수미가 한국인 최초의 후보라고 화제가 된 것만 봐도 아카데미 상의 보수성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밝히는 유색인종은 '흑인'에 집중되어 있지만 아카데미 상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탄생한 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콘텐츠 자체가 백인 중심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후보에 오른 스타들이 단순히 '백인'이라서 논란이 되었지만 그들이 후보가 된 배경에 연기력과 화제성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후보작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 의도적으로 흑인이 배제되었느냐 하는 점은 알 수 없지만 지금 후보에 오른 인물들을 빼고 흑인 배우를 넣는 것 역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인종차별은 아카데미 시상식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 제작 자체에 있다. 실제로 2014년 <노예 12년>은 흑인들의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하여 3관왕에 올랐다. 콘텐츠가 제대로 갖춰진 좋은 영화들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흑인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제작편수가 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 자체가 문제점이다. 인종차별이 있다면 제작환경 자체에 비판을 가해야 한다. 더군다나 단순히 흑인의 문제가 아니다. 흑인은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큼의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에서 동양인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단순히 '인종차별'이 아니라 '흑인차별'을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도 나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도 흑인이다. 게다가 흑인들은 흑인들만의 시상식을 열 정도로 배타적인 면이 있다. 만약 백인만의 시상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비판의 대상일 터다. 그러나 흑인만의 시상식이 열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모순일 수 있다. 약자의 입장에 있다고 하여 배타성이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별이 있었다면 콘텐츠 제작 자체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백인 중심의 시상식이 아니라 백인 중심의 영화 제작 환경부터 고쳐 나갈 때, 시상식은 자연히 그 중심이 이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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