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이 보여주는 세상은 겉으로보면 단순하다.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재벌가의 아들과 평범한 집안의 여자주인공. 그들은 서로에게 아이가 생긴다. 여기서 특별한 점은 그들이 임신하는 시기가 아직 성인이 채 되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언뜻보면 평범한 소재에 막장 요소를 버무린 자극적인 드라마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풍문>이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미성년자의 임신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다.

 

 

 

 

<풍문>의 정성주 작가는 <아내의 자격>과 <밀회>를 통해 드라마의 소재보다 전개 방식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아내의 자격>에서 여주인공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지만 그 과정에서 정성주 작가는 교육의 현실과 엄마라는 위치, 그리고 아내라는 위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단순히 바람을 피우는 유부녀의 막장 스토리에서 다른 곳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수 있었다.

 

 

 

 

<밀회>에서도 이런 필력은 빛이 났다. <밀회>는 무려 극 중 20살 차이가 나는 남자와 바람이 나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공감을 던졌다. 그 이유는 파격적인 설정 뒤에 숨은 권력과 갑과 을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행동양상이 섬세한 터치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 너머에 인간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따듯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탓에, 드라마는 공감을 얻으며 화제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는 쾌거를 이뤄냈다.

 

 

 

 

<풍문>역시 아직 채 20살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들의 성관계와 그로 인한 임신을 다뤘다. 소재만 보면 한국 브라운관에서 방영되기 아직은 낯설고 불편한 소재다. <풍문>이 방송된 이후 쏟아진 기사들 역시 그 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칫 막장이라는 말을 들을만한 전개였다.

 

 

 

 

그러나 정성주 작가에게는 이런 임신을 통해 단순히 자극을 뽑아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대한민국의 속물적인 상류층 생활을 통해 그 위선과 가식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필력을 <풍문>에서도 보여줄 것이라는 암시가 곳곳에 숨어있는 것이다.

 

 

 

<풍문>첫회에서 법률가 집안의 안주인인 최연희(유호정 분)은 재색을 겸비한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들의 미래를 위해 집안 곳곳에 부적을 붙이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등장했고 한정호(유준상 분)역시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는 로펌 대표로 등장했다.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집안의 자제인 한인상(이준 분)은 멋있고 박력있는 백마탄 왕자가 아니라 여자친구의 임신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해 쩔쩔매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한강에 뛰어들며 쇼를 하는 찌질한 캐릭터로 등장했다.

 

 

 

결국 <풍문>은 뻔한 재벌가의 아들과 평범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재벌은 단순히 남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속물 의식으로 똘똘 뭉쳐 사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자란 자녀 역시 건강하고 확고한 자아를 가진 인물은 아니다. 자신들의 특권을 이용해 덜 가진 자에게 상처를 주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솜씨는 30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벌써부터 전개는 빠르게 흐르고 있다. 임신 사실이 알려지는 속도도 빠르다. 2회부터는 이미 한인상의 집에 들어가 구박을 당하는 서봄(고아성 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재벌가에 들어가 고생하는 며느리라는 뻔한 공식에서 탈피해 그 재벌가의 모순과 속물근성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임신이라는 소재보다 묘하게 더 자극적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그들의 모습을 통해 현 시대와 어쩌면 자신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감정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감을 자아낼 줄 아는 것. 그것이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PD가 만들어 내는 그림이다. 19세의 임신을 다룬 <풍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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