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백야>가 엽기적인 스토리를 넘어서 경악스러운 전개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임성한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죽어 나가거나 황당한 대사가 등장하고, 드라마의 내용이 중구난방이 되는 현상은 임상한 표 드라마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임성한식 화법은 <압구정 백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논란의 강도에 비해서 임성한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임성한 작가가 지금까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드라마를 집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청률에 있었다. 임성하는 집필한 모든 드라마에서 20% 이상의 시청률을 이끌어 내며 승승장구하는 저력을 보였던 것이다.

 

 

 

 

 

 

임성한의 작품은 스토리의 맥락에서 오는 희열이 아닌, 순간순간의 집중력에 기반한 인기를 내세운다. 갑자기 사람이 죽거나 빙의가 되고, 사고를 당하며 불치병에 걸리는 식의 스토리는 전체적인 앞뒤 상황과 맥락이 없이 이루어지지만 순간의 시선을 확보하는데는 아주 효율적인 장치다.

 

 

 

그러나 <압구정 백야>는 이런 임성한식 화법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무기였던 시청률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초반 저조한 시청률에서 허덕이다가 백야가 친엄마에게 복수를 하는 설정이 극에 달할 때 쯤 15%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며 다시 15%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있다.

 

 

 

논란만큼은 임성한 작품이라는 전제 하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등장인물은 예사로 죽어 나가고 주인공의 성격도 중구난방이다. 황당한 전개를 해놓고 꿈이었다거나 만우절 거짓말이었다는 결말로 치닫기도 한다. 이제는 교통사고를 이용해 죽냐, 죽지 않느냐로 시청자들에게 낚시질 까지 한다. 이런 전개에 개연성은 전혀 없고 주제도 없다. 그저 닥치는 대로 그날 그날 분량만 써대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막장드라마가 판치는 현실속에서 유독 <압구정 백야>에 대해 방송 통신 위원회가 제제할 정도였다면, 상식 밖의 전개가 어느정도였는지 알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임성한은 이 모든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댓글에 달린 내용을 대사로 인용한다거나 논란이 되는 인물의 분량을 더욱 늘리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압구정 백야>는 전통적으로 시청률이 높은 KBS1의 일일드라마 <당신만이 내사랑>은 물론이고 KBS2의 <오늘부터 사랑해>에도 밀려 일일드라마 시청률 3위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SBS의 <달려라 장미>도 10%를 넘기며 순항중인 것에 비하면 임성한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인 지점이다.

 

 

 

물론 평범한 작가라면 15%정도의 시청률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앞구정 백야>의 전작인 <엄마의 정원>도 15%를 넘기며 종영한 것을 생각해 보면 <앞구정 백야>의 시청률에 임성한 카드가 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임성한에게 있어서 시청률이라는 무기가 없다면 임성한 표 드라마가 가지는 가치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임성한에게는 스토리도, 캐릭터도, 매니아도 없다. 단순히 방송사와의 이익과 상업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일주일에 9000만원에 달하는 고료 역시 그런 상업논리에 따라 책정된 것이다. 그러나 그 상업성이 떨어 졌을 때, 임성한이 감내해야할 것은 생각보다 큰 것일 수 있다. 임성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앞구정 백야>는 숱한 논란을 낳았지만 그 논란이 실질적인 홍보효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논란은 계속 되지만 비호감 지수는 오히려 올라갔고 시청률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라 보기 어렵다. 기존의 임성한 드라마가 가지는 장점이 퇴색된 지점이다.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와 비아냥만이 존재하는 드라마에서 대체 어떤 가치를 발견해야 하는 것일까. <앞구정 백야>의 종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임성한의 위기가 다시 도래했다.

 

 

 

과연 다음 작품으로 다시 ‘시청률의 여왕’ ‘한국형 솝오페라의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시청률이 전부인’ 시청률의 여왕의 행보가 궁금해 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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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몸매는 종종 스타 마케팅의 핵심이 되고는 한다. <스타킹> 단 한 번 출연으로 단숨에 무명을 벗어나 연예계 화제의 인물로 뛰어 올랐다. 2014년 열린 ‘머슬매니아 세계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커머셜 모델 부분 5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은 유승옥의 유명세에 부채질을 한부분이었다.

 

 

 

과연 동양인 체형을 뛰어넘는 육감적인 몸매와 비율은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방송 활동을 이어나가는 유승옥의 행보는 이전 섹시스타들의 행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레깅스 시구 한 번으로 주목을 받은 클라라나 드라마의 수영복 장면이나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 노출 연기가 화제가 된 이태임은 뛰어난 몸매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도 몸매를 강조한 의상이나 비키니 이상의 화제성을 끌어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의 논란으로 너무도 쉽게 세력이 약해졌다.

 

 

 

섹시스타의 한계는 명확하다. 몸매를 위시한 수많은 기사나 화보가 쏟아지지만 그만큼 그들의 인기도 사상누각이었다. 몸매를 제외하면 다른 화제성은 현격히 떨어졌고 그들이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는 단순히 ‘몸매 감상 용’ 이상이 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몸매만이 강조되는 경우, 수많은 루머가 따라붙고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태임 역시 이런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작은 뛰어난 신체적 조건이었지만 그들은 그 시작을 발판삼아 연예계에서 자신의 독보적인 커리어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몸매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그 몸매에 쏟아진 관심을 뛰어넘어 조금 더 확장된 형태의 매력을 발현시키는 것은 그만큼 쉽지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승옥이 소비되는 방식역시 이런 화제성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서는 뜬금없이 유승옥이 등장해 남자 주인공을 유혹했다. 노래를 부르며 대사를 날리는 유승옥은, 그러나, 어색한 대사처리와 표정연기로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압구정 백야>가 워낙에 논란이 많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장면 자체는 유승옥이 소비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몸매로 화제를 모은 유승옥이 단 한 장면을 위해 등장해 드라마를 채우지만 유승옥이 보여주는 세계는 여전히 몸매에 갇혀있다. 단순한 1회성 화젯거리로 사용되지만 그에게 연기력이나 특별한 매력, 혹은 신스틸러로서의 활약은 기대되지 않는다. 단순히 화제의 인물이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그 하나의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유승옥에게는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현재는 방송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최종꿈이 배우인지, 모델인지, 피트니스 강사인지 확실치 않다. “언젠가는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방송에 나와 자신의 몸매를 만든 운동법을 열심히 설파하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천생연분>같은 예능에 출연하는가 하면 <압구정 백야>에 까메오로 등장한다.

 

 

 

이런 중구난방식 출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유승옥은 그런 방송활동을 통해 인지도는 쌓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몸매’로 얻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예능감도, 뛰어난 연기력도 유승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단순히 훌륭한 몸매라는 장점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클라라와 이태임이 증명했다. 몸매로 얻은 화제성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하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엔터테이너는 대중과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형적 조건은 연예인에게 있어서 장점임은 확실하지만 외형적 조건으로‘만’ 화제에 오르는 연예인의 매력이 지속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실력을 갖추고 대중과 직면하거나 자신있는 분야로 확실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드는 것, 둘 중 하나의 확실한 선택이 몸매로 뜬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절실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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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은 노골적이다. 돌리고 순화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 매를 맞는 편을 택한다. ‘암세포는 생명’이라는 대사나 ‘사람 팔자가 정해져 있다’는 식의 운명론은 임성한이 마음대로 등장인물을 죽음이나 이민으로 하차시키는 명분이 되어주었다.

 

 

 

그런 임성한이 작정하고 칭찬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압구정 백야>에 출연중인 육선지(백옥담 분)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며 수많은 기사를 양산해 냈다. 임성한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대단한 논란 거리였다.

 

 

 

육선지를 연기하는 배우 백옥담은 임성한 작가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백옥담은 2007년 <아현동 마님>으로 데뷔한 이래 임성한 작품으로 데뷔한 이래 임성한 작품에만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백옥담의 커리어에서 ‘임성한’이라는 이름을 지우면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특혜였다. 물론 캐스팅 작업이 단순한 오디션이나 실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한 작가의 작품에만 출연하는 연기자에 대한 무조건 적인 신뢰는 그 연기자 스스로 쌓은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혈연 관계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특혜는 <압구정 백야>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작품속에서 임성한은 대놓고 백옥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런 얼굴이 질리지 않는다.’ ‘탕웨이를 닮았다’ ‘몸매가 뛰어나다.’ ‘(육선지가 입은) 웨딩드레스가 어디 것이냐.’ 등등도 모자라 ‘그녀는 예뻤다’나 ‘위 아래’를 배경음악으로 춤까지 추게 만들었다.

 

 

 

임성한 작품의 여성들은 대체로 불행하다. 주인공이면 집안이 망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거나 복수를 꿈꾸는 독기를 품어야 하고 조연이면 사랑을 얻지 못해 불행하다. 그러나 백옥담만은 예외다. <압구정 백야>의 육선지는 모든 것을 가졌다. 사랑도, 미모도, 몸매도, 재력도.

 

 

 

단순히 이런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앞뒤 없이 죽어가거나 갑작스러운 하차 압박에 시달릴 때도 백옥담만은 이런 맥락에서 자유롭다는 것에 있다. 작가의 ‘데스노트’를 유일하게 피해가는 백옥담에게 주어진 것은 일종의 편애다. 자신의 드라마의 맥락을 고려해 적절하게 백옥담에게 맞는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에 의해 백옥담을 무조건적으로 행복해야만 하는 캐릭터로 변모시킨 것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 자체가 부자연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도 이 캐릭터는 모든 부자연 스러움의 역풍을 피해가기에 더욱 부자연스러움이 부각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백옥담에게 주어진 칭찬 역시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탕웨이를 닮았다’거나 ‘질리지 않는 얼굴’이라는 찬사는 백옥담 자체에 쏟아지는 칭찬이다. 이런 칭찬이 캐릭터 설명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그 연기자 자체를 띄우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이런 장면을 두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백옥담이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을만한 연기나 외모를 두루 갖춘 배우였다면 이런 임성한식 칭찬들이 유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청자들의 뇌리속에 백옥담은 단순히 임성한 조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배우에게 쏟아진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심리 전문가들은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고난 외모나 두뇌에 대한 칭찬은 오히려 아이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도 있고 너무 지나친 극찬은 일종의 강요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성한의 조카사랑은 시청자들에게 하는 일종의 강요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강요된 칭찬으로 실소를 내뱉는 시청자들이 언제까지 임성한 드라마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 대답이 궁금해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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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에게 복수의 이유는 무엇일까. 버림받은 상처 때문에 받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자신의 오빠를 외면하여 사고가나는 원인을 제공하고도 뻔뻔하게 그 사실을 부인한 엄마에 대한 배신감? 아니면 그 둘 다 일까?

 

 

 

어느 쪽이든 백야(박하나 분)의 복수는 참으로 쩨쩨하고 옹졸하기 그지없다. 엄마는 자식을 버렸고, 오빠가 죽고, 결혼을 약속한 남편마저 목숨을 잃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이런 큼직한 사건들 속에서 백야의 복수는 오로지 음식 지적 뿐이다.

 

 

 

 

조미료가 음식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나름의 논리를 펴지만 그것은 등장인물의 목소리 라기 보다는 작가의 목소리에 가까워 소름이 끼친다. 철분제를 부작용 때문에 복용하지 않는다는 등장인물의 목소리에는 근거도 논리도 없다. 다분히 작가 개인적인 상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이 ‘조미료’ 하나 만으로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그동안 조미료를 넣으면서 음식을 해 온 것이냐”며 그동안 잉꼬부부의 금술을 자랑해 온 부인에게 화를 내는 조장훈(한진희 분)의 발언에는 실소가 터진다. 그렇다면 그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조미료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도 몰랐다는 것일까. 요리실력이 마음에 안 든다면 도우미를 불러 요리를 시키면 될 일이다. 그 정도의 재력에 그 정도의 연륜에도 조미료 하나 넣었냐 안넣었냐, 출장 뷔페를 불렀느냐 안 불렀냐로 볼썽사납게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는 공감이 하나도 가지를 않는다.

 

 

 

이 와중에 주인공인 백야는 점점 밉상이 되어간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도 시댁에 붙어 있겠다는 황당한 설정도 설정이지만 어느 순간 백야의 복수에 대한 당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죽어나가는 큼지막한 사건들 속에서 백야의 복수는 그깟 ‘조미료’를 넣었냐 안넣었냐로 서은하(이보희)를 쥐어짜는 일일 뿐이다. 남편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그까짓 조미료 운운하는 백야는 너무나도 한심스럽기만 하다.

 

 

 

이런 사태는 왜 생겨난 것일까. 작가의 전작 <인어아가씨>를 보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인어아가씨>와 <압구정 백야>는 너무도 닮아있다. 단지 복수의 대상이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바뀌었다고 해서 이 두 드라마의 유사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나마 <인어아가씨>는 복수를 하는 과정만큼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이해 할만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낳은 딸의 남자를 빼앗는 것은 전형적이기는 해도 그럴듯한 이야기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복수를 하고 나서부터였다.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복수를 마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결혼하여 만들어간 이야기는 오로지 다음 밥 반찬으로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인어아가씨>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 ‘아리영의 요리교실’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인어아가씨>가 종영한 후 13년이 지난 후, 작가의 작품에는 복수를 마치기도 전에 ‘백야의 요리교실’이 등장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것은 단순히 작가의 오기와 아집으로 이루어진 결과다. 오로지 요리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백야의 일장연설은 백야의 캐릭터만 훼손하고 있다. 처음부터 호감형 캐릭터는 아니었던 까닭에 백야가 여주인공으로서 가지는 가치는 추락했다. 대체 백야가 왜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지에 관한 설정이나 설명은 없다. 단순히 ‘여주인공이니까’ 가능한 설정이다. 작가의 세계관은 더욱 확실해졌지만 그만큼 문제점은 증가했다.

 

 

 

이런 문제점은 앞 뒤 없이 그날 눈이 가는 장면만 방영되는 임성한 스타일 때문이다. 그날 그날 눈길이 가는 소재를 쓰다보니 작가 스스로도 등장인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조나단이 살아있는 편이 나았다. 조나단이 죽음으로써 백야의 시댁 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어그러지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사라진다.

 

 

 

임성한 드라마는 앞뒤가 없고 치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생긴다. 그 순간의 몰입력 만큼은 인정할만 하지만 과연 백야의 복수는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대답은 작가를 제외한 그 누구나 알고 있다. 단지, 시청률을 무기삼은 작가의 권력에 눈과 귀를 닫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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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백야>의 주인공 조나단(김민수)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임성한의 이른바 데스노트가 시작되었다. 주연급이었던 그의 죽음에 시청자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압구정 백야>에서는 그동안 숱하게 장화엄(강은탁 분)과 백야(박하나 분)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며 서로가 운명적 상대임을 암시해왔다. 그러나 복수를 포기할 수 없는 백야는 조나단과의 결혼을 강행했고 결국 결과는 조나단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문제는 이 죽음의 과정이었다. 장화엄과 백야를 연결하려는 작가의 욕심에 죽음은 다소 황당한 형태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백야의 친어머니이자 조나단의 양어머니인 서은하(이보희 분)가 병원에 입원하자 병원으로 향한 백야와 조나단은 갑자기 심기가 불편한 조직 폭력배와 시비가 붙는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조직 폭력배는 이전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고 단순히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등장했다. 그들에게 시비를 거는 과정역시 전혀 개연성이 없었다.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는 전형적인 대사로 신혼부부에게 시비를 걸던 폭력배들은 결국 주인공을 죽이면서 자신의 역할을 모두 해낸다.

 

 

 

 

이 장면에 대한 앞뒤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죽음을 위한 죽음’에 지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CCTV까지 구비되어있을 대형병원 주차장에서 아무리 조폭이라도 저런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걸까 하는 의구심은 뒷전이다. 백번 양보해서 현실에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쳐도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이해될만한 앞뒤 정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런 개연성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임성한 작가는 그동안도 이런 말도 안되는 죽음으로 시청자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임성한 작가의 이른바 ‘데스노트’가 그 맹위를 떨친 것은 2005년 <하늘이시여>부터다. <하늘이시여>의 소피아(이숙 분)은 무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고 웃다가 갑자기 숨이 넘어가 죽음을 맞이하며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했다. 나중에야 ‘뇌암’으로 죽은 것이라는 해명이 등장했지만 그 전후 상황을 고려해 보아도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소피아가 죽은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여주인공이 시어머니의 친딸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 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작가는 이 캐릭터를 ‘웃다가 죽게’ 만든다.

 

 

 

이후에도 <아현동 마님>에서는 여주인공의 결혼식 당시 아버지가 신부입장을 하다가 죽거나 <보석비빔밥>에서는 택시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와중에 치매에 걸렸던 어머니가 죽는 등, 황당한 죽음은 이어져왔다.

 

 

 

<오로라 공주>에서 ‘데스노트’라는 말은 본격적으로 작가를 비아냥 거리기 위해 등장했다. 그간의 죽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들이 죽거나 하차했다. 작가는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모자랐는지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들이 필요없어지자 갑자기 해외로 쫒아내는 등 황당한 전개를 일삼는다. 이에 갑작스럽게 하차를 통보받은 출연배우들은 ‘스케줄 조정까지 했는데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성토에 나서기도 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주인공 중 하나인 설설희(서하준 분)이 뜬금없이 암에 걸린 것도 모자라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말도 안되는 대사가 등장한 것이다. 종종 문학작품이나 대체 의학에서 암세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이 있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대사가 맥락과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대사였다는 점이다. 문학적이지도, 의학적이지도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대사는 작가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대사가 논란이 된 것은 암세포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있어 마치 암세포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옹호하는 발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된다.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들은 그만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모든 개연성을 깡그리 무시한채 제 고집을 내세운다.

 

 

 

드라마에서 죽음만큼 한 캐릭터를 없애기 용이한 장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드라마속에 그려지는 것은 그만한 이유와 개연성을 수반해야 한다. 단순히 캐릭터를 없애기 용이하기 위해 ‘이용’되는 죽음은 작가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줄줄이 죽거나 하차하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 죽음이라는 문제를 가볍고 제멋대로 다루는 작가의 황당한 세계관이 그대로 그려져 보는 시청자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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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백야>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초반에는 저조한 시청률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제 <압구정 백야>는 14%를 돌파하며 15%를 향해 가고 있다. 아직 임성한 드라마의 시청률 치고는 시청률이 호쾌하게 좋지는 못하지만 착실히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며 20%의 고지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65회로 120부작 드라마의 중반에 와있는 시점에서 시청률은 임성한 작가의 역량으로 미루어 볼 때 더 상승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임성한의 권력을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이 ‘시청률’이다. <압구정 백야>만 해도 등장만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만한 스타 캐스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임성한은 그동안 스타 캐스팅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인이나 조연급 연기자를 캐스팅 하여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는 했다. 물론 그 시청률을 올리는 방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귀신이 등장하고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뜬금없는 대사를 치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장르변경도 서슴지 않았다.

 

 

 

 

<압구정 백야>만 해도 임작가의 전작 <인어아가씨>와 유사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아직까지 임성한 작가의 작품 치고는 얌전(?)한 편이지만 언제 또 뒷통수를 후려 칠 반전같은 전개가 등장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압구정 백야 65회는 임성한의 저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회차라 말하기에 충분하다. 인터폰 화면에 백야(박하나 분)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65회는 문을 열어준 백은하(이보희 분)이 백야를 맞으며 본격적인 진행을 이룬다. 이 후 장면 전환은 식사를 하러 향한 부엌, 그리고 회상을 위한 인써트,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기 위한 집 외경 단 세장면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거실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등장인물은 단 두명. 백야와 백은하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임성한의 마법은 시작된다. 임성한은 무려 30분이 넘는 한 회차 동안 단 두명의 대화로 극을 진행시키는데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는 사람조차도 몰입이 가능한 수준의 내용설명은 물론, 둘 사이의 기싸움과 변화무쌍한 감정을 시청자들이 놓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65화에서는 백야가 백은하에게 자신의 딸임을 밝히게 되는 회차다. 물론 이 조차도 임성한의 전개 방식 속에서 아직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보통 이렇게 감정을 다 쏟아내는 장면이 상상이기 쉽지 않지만 임성한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은 존재한다. 다만 이 장면이 극중에서 현실이라는 전제하에 이 회차는 앞으로 전개에 터닝 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회차다. 그런 회차를 다른 등장인물 없이 두 인물의 대화로만 이끌어 냈는데도 불구, 30분을 1분 같이 쓴 것은 작가의 시청자를 몰입 시키는 능력이 그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그동안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어도 시청률 만큼은 휘어잡았던 임성한 식 화법이 통한다는 것이 그대로 증명되는 한회였다. 이 회차에서는 단 둘 뿐이지만 많은 일이 일어난다. 백야는 백은하를 도발하여 자신에게 물을 뿌리게 만들고 백야는 참지 않고 물컵을 집어 던져 깨뜨린다. 자신의 따귀를 날리는 백은하에게 ‘치시지!’라는 말로 긴장감을 만들고 자신을 후려치고 씩씩대는 백은하를 향해 ‘청첩장 왜 안 만들었는지 아냐’ 며 ‘신랑 신부 엄마 이름이 같으면 대략 난감아니냐.’며 자신이 백은하의 버려진 딸임을 고백한다.

 

 

 

막장드라마에 등장하는 흔한 장면이지만 순간의 몰입도 만큼은 최절정에 오른다. 그 이유는 임성한 드라마의 전개 방식에 있다. 이런 장면이 등장할 것은 예상된 일이지만 이렇게 빨리 이 장면을 사용할 줄 생각한 시청자는 많지 않았다. 한마디로 기적절한 타이밍에 폭풍 전개였다. 딸임을 고백한 이후에도 거짓으로 일관하며 눈물을 흘리는 백은하에게 백야는 백은하와 죽은 오빠가 했던 대사를 줄줄 읊으며 조소를 날린다. 이 때 적절히 들어가는 회상장면은 백야의 대사와 오버랩되며 몰입도를 더욱 증가시킨다. 결국 끝까지 이 둘이 오열하는 장면에서 엔딩 컷이 나오지만 시청자들이 느끼는 재미는 65화중 단연 최고였다.

 

 

 

단 둘이 나오는 장면으로 30분을 끌고, 이를 단순히 시간 때우기용 장면이 아니라 확실한 전개를 보여주며 그 안에서 인물간의 긴장감을 조율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과연 능력이었다. 임성한이 시청률을 올릴 타이밍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회차였다. 임성한은 확실히 포인트를 알고 있다. 과연 그 포인트를 이 드라마에서도 확실히 사용하여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 번 가져갈 수 있을까.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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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의 신작 <압구정 백야>가 10%를 넘지 못하며 고전하자 위기론이 등장했다. 그동안 많은 히트작을 냈던 임성한 작가이기에 저조한 시청률에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압구정 백야>는 아직 20여회가 방영되었을 뿐이다. 120부작인 드라마 분량을 감안해 볼 때, 초반의 시청률이 어떻게 뒤집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초반부터 <압구정 백야>는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임성한 작품의 성공공식 때문이다.

 

 

 

일단 <압구정 백야>는 이야기 구조의 문제점이 극명한 드라마다. 일단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이 잘못되었다. 백야(박하나)는 처음부터 시누이를 구박하고 이해할 수 없는 트집을 잡는 모습은 주인공으로서대중의 공감을 자아낼 책임을 외면한 설정이었다. 주인공에게 비호감이 허용되는 경우는 나중의 캐릭터 변화의 반전을 위한 포석으로 사용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백야는 단순한 비호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 캐릭터가 호감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백야의 복수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친엄마에게 복수를 한다는 설정 또한 설득력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 오빠에 대한 사랑과 친엄마에 대한 원망은 있을 수 있지만 혈육에게 복수를 감행할 만큼의 엄청난 분노나 한이 느껴진다고 보기 어렵다. 스토리는 마치 작가의 전작 <인어아가씨>를 연상시키지만 <인어아가씨>보다 독기가 빠지고 공감대는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압구정 백야>에 대한 기대는 시들지 않고 있다. 시청률이 오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화두가 되는 것 자체가 그 기대에 대한 반증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임성한 작품이 의례히 그렇듯, <압구정 백야>역시 이야기 구조로 돌아가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임성한은 이야기를 무시하고 장면 장면의 폭발력과 연출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는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체적으로는 개연성도 없고 앞뒤도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다.

 

 

 

<압구정 백야>역시 초반인 만큼 임성한의 이런 파급력이 모두 사라졌다 말하기는 이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성한 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위기론’이 등장했다. 그 이유는 임성한에게 기대하는 것이 단순히 ‘시청률’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임성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작품성으로 훌륭한 평가를 작품은 없다. 드라마가 시청률이 잘나오려고 하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주먹구구식의 스토리, 뜬금없는 대사와 갑작스러운 캐릭터의 죽음이나 하차, 거기다가 때때로는 귀신까지 출연시키며 작품의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순간 순간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드라마 전반에 걸쳐서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임성한이 원고료로 회당 수천만원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높은 시청률’ 때문이었다. 톱스타 마케팅을 통하거나 스타 연출가와 일하지 않고도 임성한의 모든 드라마는 20%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더군다나 임성한은 대작을 쓰는 스타일도 아니라 방송국 입장에서는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 저비용 고효율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임성한인 것이다.

 

 

 

그런 높은 시청률은 그에게 캐스팅 권한과 대본 집필의 자유라는 권력을 선사했다. 주인공을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대본의 질과는 상관없이 임성한 작품이 버젓이 방영될 수 있는 모든 이유가 바로 ‘시청률’이라는 절대적인 척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임성한 드라마가 시청률이라는 싸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임성한의 이름값마저 폄훼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단순히 시청률이 장점이었던 작가에게 기대하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때, 여론은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없다.

 

 

 

임성한이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나다. 앞으로 남은 100여회 동안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아직 임성한 월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어떤 시청률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비판을 해도 임성한의 파워는 이제부터 시작일 확률이 높다. 다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할 경우 임성한이 떠안아야 할 짐은 크다. 그것이 시청률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작가가 가지는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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