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전 MBC 사장이 강원도지사에 당선됐다.
인지도면에서 크게 앞섰던 엄기영 전 MBC 사장과의 맞대결에서 일궈낸 쾌거 중의 쾌거다.
최문순 전 사장 아니, 최문순 강원지사는 MBC 사장일 때나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나 외모만큼이나 수더분하고 넉넉한 인품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 중 한 사례가 바로 故최진실과의 아름다운 인연이다.
최진실과 MBC.
최진실과 MBC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착 관계였다. 그녀는 스타가 방송사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스타 파워가 방송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대스타였다. 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MBC는 최진실이라는 톱스타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해 냈고, 역사에 길이 남는 드라마들을 배출해 왔다. 지금껏 MBC가 최진실을 통해 얻은 수익만 해도 총 1조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MBC 드라마로 첫 브라운관 데뷔를 한 최진실은 대부분의 작품을 MBC와 같이 했다. MBC 전속으로 활약하며 타고난 스타성으로 상대 방송사 경쟁 드라마를 모두 압도했던 최진실은 MBC의 '보배' 와 같은 존재였다.
최수종과 한국 최초로 트렌디 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질투] 를 비롯해, 김희애와 투톱으로 활약했던 [폭풍의 계절], 안재욱과 호흡을 맞춘 [별은 내가슴에], 똑순이 최진실의 이미지와 딱 맞았던 [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 최진실의 스타성을 십분 활용했던 [아파트], [추억], [약속], MBC 일일극의 부활을 알렸던 [나쁜여자 착한여자],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까지 최진실의 드라마그래피는 90% 이상 MBC 작품으로 채워져있다.
최진실은 사실상 전속제가 폐지되었던 90년대 중반 이 후에도 타 방송사에 출연하지 않고 MBC 작품에만 출연하는 '의리' 를 과시했다. 전속이 아니지만 전속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던 그녀는 MBC의 효녀 탤런트였고, 충성스런 배우였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 최진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MBC에게 어쩌면 굉장한 행운이고 영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서 말한 대부분의 드라마는 40~50%대의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한 대박 드라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돈독했던 MBC와 최진실의 관계에 한차례 큰 위기가 닥친 적이 있다. 바로 2005년, 최진실 부활의 신호탄이 됐던 KBS [장밋빛 인생] 출연건이었다. 당시 최진실은 MBC 드라마에 출연 계약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원칙적으로 그녀는 MBC 외 다른 방송사에 출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이혼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려있던 최진실에게 [장밋빛 인생]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결정적 부활의 기회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KBS 출연을 해야만했다.
MBC 드라마국은 당연히 반발했다. 당시 MBC 드라마국장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최진실이 타 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을 막겠다" 고 으름장을 놨다. 이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법적 소송이 들어가면 최진실의 드라마 출연건은 물 건너 갈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최진실은 '마지막 수단'을 강구한다. 바로 당시 MBC 사장이었던 최문순 강원지사와의 면담이었다.
최진실은 최문순 지사와 단독으로 만나 KBS 출연을 허락해달라고 읍소했다. 최진실과 친분이 있었던 것도,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도 아니었지만 최문순 지사는 최진실의 KBS 출연을 그 자리에서 흔쾌히 허락했다. MBC 드라마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대승적 결단이었다. 최문순이 최진실의 KBS 복귀를 허락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당신 같은 여배우가 이런 일로 주저 앉아 있는 것, 너무 안타깝지 않나요. 법이고 계약이고간에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최진실인데 MBC에서 이 정도도 못해주면 너무 매정한 거 아닙니까." 최문순 지사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최진실은 감사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최진실은 최문순 지사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이 말 역시 걸작이다.
"반드시 성공해서 당당하게 돌아오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최진실의 굳은 다짐처럼 그녀는 [장밋빛 인생] 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뒤, 곧장 MBC 일일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 에 출연해 MBC 일일극의 부활을 '선포' 했다. 줄곧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던 MBC 일일드라마를 20% 중후반의 시청률까지 끌어 올렸던 그녀는 [나착녀] 로 MBC와 남은 계약분을 모두 털어냈지만 타 방송사에 출연을 자제하고 MBC와 끝까지 신의와 믿음을 지켜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최진실의 유작이 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최문순 지사와 최진실은 둘도 없는 각별한 사이로 발전한다. 최문순 지사는 여러 인터뷰에서나 강연회에서 항상 '최진실'을 거론하며 그녀와의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타 방송 드라마 제의가 들어오면 최진실은 언제나 최문순 지사에게 "해도 되겠냐?" 고 농담조로 물어봤고, 최문순 지사는 "너무 센 드라마 아니면 어디 한 번 해봐라." 라며 받아쳤다. 이 정도로 최진실과 최문순의 사이는 각별했다.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아는 연예인 최진실, 친한 연예인 최진실, 좋아하는 연예인 최진실, 내가 섭외해 줄 수 있는 연예인 최진실" 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만큼 최문순과 최진실은 단순히 MBC 사장과 연예인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멋진 친구사이였던 셈이다.
이런 돈독한 그들의 우정은 최진실 사후에도 계속됐다. 최문순 지사는 누구보다 최진실의 죽음에 애통해하고 비통해했다. 그리고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다. 당시 최문순 지사는 MBC 사장을 그만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는 "국회의원이 아닌, 그녀를 사랑했던 수많은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데 비통함을 느낀다. 그녀가 하늘에서라도 편할 수 있게 돕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최진실 사후, 국내는 정치권부터 연예계까지 최진실을 둘러 싼 날선 공방과 이야기로 들끓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일명 '최진실법'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이 첨예한 대립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인터넷 악성댓글의 문제점이 최진실의 죽음으로 인해 여실히 드러난만큼 사이버 모욕죄 도입과 인터넷 실명제 확대를 골자로한 '최진실 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고 여기에 민주당이 최진실 자살을 무기로 삼은 언론 장악의 일환이라며 반발함으로써 큰 이슈를 불러 모았다.
이 '최진실 법'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되었는데, 이 시기 최문순 지사는 "법안에 대해서 원천적인 검토를 다시해야 함은 물론 법안의 이름도 '최진실 법'은 아니어야 한다." 며 법안 명칭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최진영을 비롯한 최진실 유족들은 정치권에서 허락없이 최진실의 이름을 따 법안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했다. 결국 최진영은 "법안 명칭을 사용할 때 최진실이라는 실명을 쓰니 고통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라며 최문순 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최문순 지사가 '최진실 법' 법안 명칭에 공식적 반대 의견을 던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권의 배려없음을 질타하는 동시에 최진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최문순 지사의 끈질긴 문제제기 끝에 결국 여야는 법안 이름에 최진실이라는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데 합의했고, 부분적인 본인 확인제 도입으로 최진실 법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진실 사후에도 최문순 지사는 끝까지 그녀와의 우정을 지켜낸 것이다.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진정한 우정은 곤경에 처했을 때 나타난다. 형편이 좋을 때는 별별 친구들이 다 몰려들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했고, 바흐는 "한 사람의 친구는 천 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는 명언을 남겼다. 돈과 인기에 연연해 서로를 헐뜯고 짓밟는 방송 연예계에서 최진실과 최문순 지사의 '신의와 믿음'은 진정한 우정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번에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 낸 최문순 지사는 이처럼 넉넉하고 따뜻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그 넉넉한 품새만큼 강원도민을 넘어서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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