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은 참으로 이상하다. 둘다 나를 낳아주신 분인데도 어머니를 부르는 감정과 아버지를 부르는 감정은 참으로 다르다. 엄마는 엄만데 아버지는 아빠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가족인데 왠지 모르게 멀게만 느껴지고 둘이 함께 있으면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임에도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그 이름, 아버지. 

 

 


 

방송에서 그런 ‘아버지’를 소재로 삼은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미 예능에서는 엄마보다 아빠가 육아를 하는 장면이 흥행몰이를 몇 년간 해 온 터다. 엄마는 당연히 육아를 해야 하고 아빠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빠가 육아를 하는 장면은 화제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를 활용한 육아 예능의 포인트는 능숙하고 익숙한 육아를 하는 아빠들에 포인트가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색하고 미숙한 아빠들이 자녀들과의 관계를 다시 형성하는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런 어색한 관계가 아닌, 꽤나 친근한 아빠들인 경우에도 아이들의 매력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면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의 기획단계에서의 의도는 확실히 ‘아빠의 육아’에 의외성을 노린 것만큼은 분명하다.

 


최근에야 아빠의 육아 참여가 당연시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디마프>)의 김석균(신구 분)은 딱 그런 캐릭터다. 부인은 하녀 부리듯 부리고 무시한다. 돈도 잘 쓰지 않고 버럭 버럭 미운 말만 골라서 해댄다. 자식에게는 또 어떠한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딸에게 “그러길래 누가 치마를 입으랬냐”며 오히려 다그친 적이 있을 정도다. 도저히 예뻐할래야 예뻐할 수 없는 캐릭터지만, 왠지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빠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는 역시 ‘아빠’였다. 딸이 남편에게 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사위에게 찾아가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과거 딸을 성추행 했던 사람을 폭행했던 탓에 직장에서 쫒겨나고 말았던 사실이 밝혀진다. 그저 짜증스럽기만 했던 그의 행동들 덕분에 그의 반전은 훨씬 더 아프게 가슴을 울린다. 이어 그는 고백한다. 자식에게 사과하는 법을 몰랐노라고. 그렇대도 그의 행동들을 잘했다고 추켜세울 수는 없다. 자식이 그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관계의 단절을 만든 것도, 부인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게 만든 것도 그다. 그러나 그의 진심만큼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식의 일이라면 앞뒤 돌아보지 않는 그도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아버지 같아서, 그 장면을 보는 사람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다. 

 

 


 

TvN에서 새롭게 방영될 예정인 <아버지와 나>는 그런 아버지라는 존재와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다. 예고편에서 대부분의 출연진들은 “(아버지와의 여행이) 어색하다”며 한숨을 내쉰다. 에릭남처럼 끈끈한 부자관계를 형성해온 관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버지라는 존재와의 단 둘만의 동행이 편안하지 않은 출연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능이 기획될 수가 있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조금만 더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관계였다면 그들의 예능적인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졌을 것이었다. 굳이 일반인인 아버지를 출연시켜 가면서 아들과의 관계를 조명하려는 의도는 명확하다. 그 둘 사이의 장벽에서 오는 어색함과 그 관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도 예능 속에서도 아직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다소 껄끄럽고 어색하게 그려진다. 그런 관계가 더 현실적으로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아버지들이 그런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사이가 극복될 수 없는, 한계를 지녔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을 뿐이라는 그 본질적인 사실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은 표현해야 하고, 말해야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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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서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드라마 캐릭터에 비해 예능의 캐릭터는 좀 더 그 캐릭터의 본성과 맞닿아있다. 리얼버라이어티 뿐 아니라 스튜디오 예능에서도 본인의 이름으로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 내야 하는 것이다. 웃음을 창출하려고 다소 지나친 말을 하면 논란이 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마냥 착한 캐릭터는 재미가 없다. 본인의 매력을 보여주면서도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며 웃음을 창출하는 과정이 제대로 설득력있게 보여야 한다. 그 과정을 살릴 수 있는 포맷과 연출을 잘 하는 PD들이 각광받는 이유다.

 

 

 

그러나 때때로 예능 출연은  비호감 딱지를 떼는 결과로 이루어진다. 특히나 이름값이 높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 그 비난의 강도는 거세진다. 광희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미 틀이 잡힌 예능에의 적응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이미 합이 맞는 기존 멤버들 사이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과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너무 큰 이름값에 광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회생의 기회는 언제든지 있지만 그 기회를 언제 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새 멤버로서 빈자리를 확실하게 채우며 호평을 들은 ‘젊은 피’들이 존재한다. <1박 2일>의 윤시윤, <신서유기>의 안재현, <우리 결혼했어요>(<우결>)의 에릭남등이 그들이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캐릭터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착한 남자’ 캐릭터라는 것이 그것. 그들은 착한 캐릭터로서 어떻게 예능에 적응했을까.

 

 

 


 

예능에서 악마 캐릭터 보다는 천사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기 용이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 최고의 진행자로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유재석의 경우만 보아도 그 사실은 반박 불가해 보인다. 그러나 유재석은 착한 캐릭터 뿐 아니라 예능감과 진행능력에 있어서 독보적이다. 단순히 착하기만 했다면 치열한 예능 환경에서 살아남기는 힘들다. ‘착함’이 장점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확실한 활약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단 <1박 2일> <신서유기> <우결> 모두 프로그램 자체가 <무한도전>처럼 새로운 멤버 영입에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다는 점은 새 멤버들에게 있어서는 호재였다. 그러나 그 기회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그들에게 달려있었다. 

 

 

 


윤시윤은 예능으로 주목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능 출연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1박 2일> 첫 출연부터 활력 넘치는 에너지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해병대를 전역했다는 점과 독서를 즐긴다는 점 등, 바른 이미지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캐릭터, 패션 테러리스트 캐릭터 등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켰다. 벌칙을 당하면서도 긍정적인 그의 모습으로 의도치 않게 멤버들을 당황시키는 장면은 프로그램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것이었다.  캐릭터를 확실하게 설명하며 앞으로의 활약에 있어 기대감을 낳은 것이다.

 

 

안재현 역시 <신서유기>에서 과연 이승기보다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이승기의 후임이라는 부담 따위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큰 활약을 보였다. 구혜선과의 결혼으로 ‘사랑꾼’ 이미지를 획득한 안재현은 평소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호감도를 증폭시켰고, 게임을 할 때는 다소 상식이 부족한 모습으로 웃음을 안겼다. 그리고 미션이 주어지면 확실한 전략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은 안재현을 예능계의 새로운 얼굴로 만든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 <신서유기2>의 화제성의 지분은 안재현이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결>의 에릭남은 앞에 설명한 둘 과는 다르게 프로그램 포맷에 적응했다기 보다는 에릭남이라는 캐릭터를 대중에게 설득시킨 사례다. 에릭남은 똑똑하고 예의바른 이미지로 ‘1가정 1 에릭남을 보급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이성의 호감을 얻은 캐릭터다. 그간 해외 스타들의 인터뷰등을 진행하면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화법과 자연스러운 ‘배려 진행’은 그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이후 <나 혼자 산다>나 파일럿 예능 <갖고 싶은 남자>등을 통하여 평소에도 바르고 친절한 성품을 가졌음이 드러나자 에릭남의 캐릭터는 더욱 분명해졌다. 그런 그의 <우결> 출연은 그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한 여성과의 커플이 된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렸지만, 에릭남의 재치 넘치는 성격이나 여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배려심등이 부각되며 에릭남의 인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릭남이 프로그램 자체에 큰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에릭남의 이미지를 더욱 좋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플러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캐릭터를 예능에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이 성과는 의미가 있다.

 

 

 


 

예능에서도 ‘착한 남자’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성과 성품이 훌륭하고, 자신이 가진 매력을 당당하게 보여주면서 확실한 센스를 갖춘 남자들에게 시청자들이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매력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프로그램을 살린 그들의 주가가 더욱 올라갈 것임은 당연하다. 예능을 기회로 만든 ‘착한 남자들’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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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서 홍철아 장가가자프로젝트가 중단되었던 것은, 왜 노홍철의 기준에서 여성이 평가에 대상이 되어야 하냐는 이유로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노홍철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키가 크고, 나이가 어리며, 뛰어난 외모를 지닌 여성을 원했다. 이에 여성을 상품으로 본다는 시선, 그리고 외모 지상주의라는 비판이 함께 나타나며 해당 프로젝트는 결국 사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취향은 있다는 측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홍철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상대적으로 키가 큰 여성을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한다고 하여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표현들을 정제되지 못한 예능화법으로 조금 거칠게 다룬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예능적인 재미 측면에서 보자면, 해당 특집은 상당히 호기심을 자아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여성만이 가치 있는 여성이라는 방송을 제작했다면 비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노홍철의 개인 취향을 부각시켰다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이 논란 자체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TV가 여성 뿐 아니라 남성의 외모나 신체조건, 혹은 능력등을 가지고 함부로 재단하며 비교를 하는 행위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칭송받고 그렇지 못하면 무시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는 행위는 마땅히 지양해야 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여성에게 쏟아지는 시선 자체에는 문제의식이라도 있지만 남성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도 사실이다. <갖고싶은 남자(이하 <가싶남>)>는 그런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황당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홍철아 장가가자프로젝트와 비교해 봐도 한 개인의 취향을 부각시킨 것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인 (사실은 지독히도 편파적인) 기준을 가지고 남성들을 평가했기 때문에 그 문제성은 더욱 크다.

 

 

 

<가싶남>에 출연하는 연예인들, 이를테면 에릭남이나 헨리 등은 여성의 호응도가 높은 멤버들이다. 이 뿐이 아닌 외모나 능력등에 상당히 두각을 나타내는 일반인들도 다수 출연한다. 그들은 첫 회부터 여성들이 둘러싸인 방에 들어가 그들이 쏟아내는 압박면접 식질문을 대면한다. 그들이 시키는 일은 춤이든 노래든 해야 하며 그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최선의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뿐이 아니다. 그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제작진이 만든 수학문제를 풀며 증명해야 하고 그들이 얼마나 일상생활에서 매너가 좋은지는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실험을 당한다’. 커뮤니 케이션 능력을 측정한다는 명목하에 그들은 여성의 구미에 맞는 문자 보내기 테스트를 해야 하고,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하는지를 평가 당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에게 전제되는 것은 첫 째, 둘 째, 셋 째도 비교, 비교, 비교다. 상대방 출연자보다 더 여성을 만족시키는 행동을 해야 하고 적절한 대답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진출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TV<가싶남>은 외모는 물론 매너도 좋아야 하고, 여성의 심리를 잘 헤아려야 하며 요리도 잘해야 하고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런 완벽한 남자를 찾는 과정이 <가싶남>의 목적이요, 존재의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가싶남>이 아닌 <가싶녀>였다면, 이 프로그램이 과연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설령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과연 비난의 목소리를 피해갈 수 있었을 거라 보기 힘들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예쁜 연예인들이나 능력있는 일반인 여성들이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요리도 잘해야 하고, 똑똑해야 하며, 그러나 동시에 착하고 인성이 좋아야 한다. 남성을 짓눌러서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이고 소심하면 마이너스. 남성의 기를 살려주는 것은 물론, 요리와 살림을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얼굴이 예쁘면 호감은 훨씬 더 증가. 그들은 상대방보다 더 위에 열거한 요인들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순위까지 정해진다. 최종 1위는 갖고 싶은 여자가 된다. 지금 설명한 예시 속에서 뭔가 불쾌함을 느낄 여성들은 분명 많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소유물이나 노예냐는 볼멘소리까지 터져나올만 하다. 그러나 단순히 성별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을 함부로 평가하고 단정짓는 행위가 용인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의 모든 것이 경쟁이라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기타 경연 프로그램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그들의 특정한 능력, 이를테면 노래나 요리같은 재능을 평가한다. 그 재능은 그들이 프로의 세계로 가기 위한 필요 요건이다. 그들의 능력으로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일을 벌이는 것과, 그 사람 자체, 그 사람의 타고난 외모나 성격, 혹은 개개인의 고유 특성등으로 그 사람이 이를테면 남편이나 남자친구 감으로 적당한지 재는 행위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실무 능력을 평가받는 것이지만 후자는 사람 자체에 대한 평가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했듯 분명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취향을 강요하고 이러 이러한 사람이 갖고 싶은 남자다혹은 완벽한 남자다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공개적으로 사람에 대한 순위를 매기는 것일까. 그들의 기준은 결혼정보 회사의 점수표만큼이나 사람을 단지 상품으로 소비하려는 비참한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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