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제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대종상이 파행으로 치닫은 가운데 청룡영화제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종상의 파국이 얼마 안 있어 열린 청룡상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일단 수상 후보 대부분이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청룡영화제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당연히 배우들이 참석하는 줄 알았던 시상식에 주요 후보들이 대거 참석하지 않았고, 시상식의 백미라고 할 있는 남우·여우주연상 배우들 조차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촌극이었다. 대리 수상조차 수상자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올라가서 친분은 없지만 잘 전해드리겠다’ ‘민망하다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시상식을 여는 의미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참가자에게만 상을 주겠다는 그들의 아집은 철회되었지만, 철회되지 않았더라면 더욱 우스운 꼴이 나고 말았을 것이었다. 주연상 시상은 아예 할 수 조차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청룡 영화상에 대부분의 스타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종상과는 다르게 청룡이 배우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위를 획득했다는 뜻에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청룡상은 조선일보라는 거대 스폰서에 의해 운영된다. 대종상이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서로간의 이익분쟁으로 치닫았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청룡상은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이라는 구심점이 존재했다. 이 안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는 존재하겠지만, 거대 자본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훨씬 더 탄탄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청룡은 그런 장점을 살려 청룡영화제의 이미지 메이킹에 집중한다. 수상후보들을 선정하고 가장 공정한 상을 수여한다는 이미지는 청룡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다. 그들은 이런 이미지를 의외의 수상을 통해 만들어냈다. 작년 영화 독립영화 <한공주>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의 눈물이 감동적이었던 까닭은 천우희가 유명배우도 아니었고 <한공주>가 엄청난 흥행을 한 영화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흥행성이나 유명세에 흔들리지 않고 상을 수여한다는 이미지를 청룡영화제는 은연중에 획득했다.

 

 

 

이 밖에도 황정민의 숟가락 소감은 화제가 되며 각종 패러디와 광고에까지 활용되었고 2000년 이미연, 2001년 장진영, 2004년 이나영등 신선하고 파격적이지만 흥행성적이나 인기에 상관없는 수상 결과를 발표하여 화제몰이를 했다. 그만큼 시상식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청룡영화상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상을 준다는 자체보다도 그 상이 얼마나 공정성 있는 결과로 결정되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어떤 파급력이 있는지에 관한 지점을 짚어낸 것이다. 실제로 공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훌륭한 역할을 해낸 것이 바로 김혜수였다. 김혜수는 청룡영화제의 진행을 22년간이나 맡았다. 이제 청룡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예전부터 김혜수가 청룡영화제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등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였고 안정적이고 재치 있는 진행은 늘 호평을 받았다.

 

 

 

천우희가 수상을 하고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여 같이 눈물을 흘리거나 영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등은 그에 대한 호감도로 이어졌고 나아가 청룡영화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혜수와 함께 청룡영화제의 진행을 맡았던 정준호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김혜수는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다 본다며 그의 준비성과 성실함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청룡영화제 역시 이정현이라는 의외의 수상결과가 있었다.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인 유아인의 남우 주연상 역시 공감이 갔지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한 이정현의 수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심지어 이정현은 가수로서 더 성공했던 배우다. 역대 영화제들은 유독 가수 출신 후보들에게 박한 평가를 내렸다. 가수 출신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엄정화의 상복이 유독 시상식에서만큼은 꽤 오랫동안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보면 그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정현의 수상은 독립영화와 가수 출신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거스른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파격과 전진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수상 결과가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김혜수가 던진 한마디는 귀에 꽂힌다. “참 상 잘주죠?”. 시청자들이 시상식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상을 잘 주는 시상식. 그래서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는 시상식. 바로 그런 시상식을 원한다. 그 가운데서 22년간 청룡의 안주인 자리를 지켜온 김혜수가 인정한 청룡의 시상법은 대종상과 비교되어 확실한 우위를 점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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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riticid.tistory.com BlogIcon 크리이드 2015.11.27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s://pinkwink.kr BlogIcon PinkWink 2015.11.27 17: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월화드라마 <상류사회>의 메인 줄기는 최준기(성준)와 장윤하(유이)에게 집중되어 있다. 야망을 품은 가난한 남자 준기와 재벌로 태어났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여자 윤하가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한 갈등 관계가 부각되며 드라마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들은 드라마 전반의 스토리에 가담하고 있지만 주연으로서의 매력을 제대로 어필하는데 실패했다. 순수한 사랑보다는 지나치게 야망에 물든 남자 주인공이나 아무리 무시를 받고 자랐다지만 재벌 딸로서 살아가는데 대한 혜택을 제대로 이용할 줄 모르는 답답한 여자 주인공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문제지만 주인공들의 연기력이 드라마를 이끌어 갈만큼 흡입력이 없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주인공 커플의 스토리가 아니라 유창수(박형식 분)와 이지이(임지연 분)의 러브라인이다. 이 러브라인이 흥미로울 수 있었던 것은 유창수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에 비해 가볍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릭터 자체의 매력 보다 더 주목할만한 것은 유창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박형식의 연기력에 있다. 유창수는 싸가지는 없지만 내 여자에게는 다정한 전형적인 재벌 2세다. 수없이 동어반복되어온 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박형식이다. 박형식은 자신만의 개성을 통해 이 배역의 매력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사나이>로 주목 받은 기회를 날려 버리지 않고 아이돌이라는 편견마저 지워버릴 만큼, 그는 안정된 연기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상반기 드라마에는 이렇게 유독 주연보다 눈에 띄는 조연들이 많았다. 주연만큼, 때로는 주연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사랑을 받은 것이다. 드라마의 성공을 이끄는 있는 것은 작가와 연출의 힘이 크지만 주연 배우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평범한 캐릭터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신스틸러가 될 수도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은 한정호(유준상)-최연희(유호정) 부부였지만 이 드라마에서 주목받은 것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존재감은 주연으로써 손색이 없었지만 <풍문>에서는 새로운 얼굴들이 미친 존재감을 뽐냈다. 그들은 바로 비서나 가정부로 등장하는 조연들이다. 보통 비서나 가정부들은 드라마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한 부수적인 역할로 등장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들 하나하나에 캐릭터가 설정되었다. 철저히 감정을 숨기지만 사실상 푼수같은 매력이 있는 이비서(서정연)이나 한정호의 로펌에서 일하는 양비서(길해연), 그들의 비서로 일하면서도 칼을 꽂을 준비를 하고 있는 민주영(정소연)등은 이 드라마에서 각각의 개성적인 연기로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주며 감초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어떤 장면에서는 주연급 배우들 보다 더한 존재감을 뽐낸 것이다.

 

 

 

 

<앵그리 맘>의 고복동(지수 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신스틸러였다. 그는 문제아지만 가슴속에 상처를 숨기고 있는 반전의 주인공이었다. 안동칠(김희원 분)의 말에 복종하며 그가 시키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주인공 조강자(김희선 분)을 좋아하게 되며 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입체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주인공인 박노아(지현우 분)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지수는 거의 대중앞에 처음으로 눈도장을 찍는 것이었음에도 불구, 주목할만한 신예로 단숨에 뛰어 올랐다.

 

 

 

<냄새를 보는 소녀(이하 <냄보소>)의 권재희(남궁민 분)역시, 이런 신스틸러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해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사이코 패스 역할을 맡아 섬뜩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민은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내며 찬탄을 이끌었다. 어떤 면에서는 주인공 최무각(박유천)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궁민의 연기력만은 이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재평가되었고 그는 연기의 자신의 연기의 스팩트럼을 넘기는데 성공했다.

 

 

 

이뿐이 아니다. <식샤를 합시다(이하 <식샤>)>의 이주승(이주승 분)은 분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드라마의 미스터리 요소를 담당하며 확 눈에 띄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주승은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고 연기함으로써 그에게 쏟아지는 주목도를 높였다. 그는 나중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비밀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가 그 비밀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효과적인 전달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 만큼, 그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역시 주연배우다. 그러나 때로는 주연배우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극을 살리거나, 제 역할을 다한 주연배우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조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치며 대중을 사로잡는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연기자는 연기를 잘 할 때, 가장 돋보인다는 진리다. 좋은 연기자가 좋은 캐릭터를 만날 때, 주연이든 조연이든 할 것 없이 시청자는 언제든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그들이 증명해 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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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은 처음부터 블랙 코미디를 내세우며 독특한 분위기로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더불어서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선악구도나 갑을관계로 나누지 않고 그 관계의 전복과 속물근성을 제대로 꼬집어 내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부로 향해 갈수록 <풍문>이 가진 힘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것은 캐릭터에 공감가기 힘든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문>이 초반에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한정호(유준상 분)과 최연희(유호정 분)로 대표되는 절대 갑의 세계를 뻔하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도 갑대로의 사정이 있고 그들 역시 인간적인 속물일 뿐이라는 묘사는 그동안 절대 갑을 절대 악과 동일 선상에 놓은 드라마들과는 명백히 차별화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절대갑에 대항하는 을들의 반란에 초점이 맞춰지며 이야기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삐걱대는 이야기의 시발점은 한정호와 지영라(백지연 분)의 러브라인이었다. 지영라의 유혹에 넘어간 한정호의 이야기가 잘 나가던 드라마에 갑자기 등장한 불륜코드로 신선함보다는 식상한 설정에 가까웠다는 지점은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이후 긴장감을 불어넣고 이야기의 전개를 비틀려는 의도만큼은 인정해 줄만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점은 이후에 생겼다. 한정호의 아들은 한인상(이준 분)과 그이 며느리인 서봄(고아성 분)의 반란에 공감이 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평범하지 않고, 그래서 호응을 얻었다. 드라마의 주제 역시 정의로운 ‘척’ 하는 갑과 그에 반항하는 을들의 모습 속에서 보이는 이율 배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을들은 갑이 제공하는 혜택은 모두 누리고 싶어 하면서도 갑의 부당함에 반기를 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딱딱하고 삭막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모습 속에서 코믹함과 개연성을 모두 잡았던 처음 과는 달리, 이제는 아예 대놓고 결탁하는 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부당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 혹은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 쉽게 그 부당함을 주장하고 그 최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그 공격의 주체가 이제까지 모든 혜택을 입고 또 집에서 쫒겨나지는 않을까 걱정까지 하는 그 집안의 자제라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지점이다.

 

 

 

정의로우려면 정의를 주장하는 만큼의 행동력이 있거나, 편안한 삶을 지향하려거든 그 정의로움을 어느정도는 꺾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물론 부당함에 대항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자신에게 그런 훌륭한 환경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반기를 들고 공격을 감행한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갑의 횡포인가. 아니면 그 횡포를 응징하려는 을의 반란인가.  그러나 을의 반란은 전혀 통쾌하지도, 공감가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동 역시 갑이 제공하는 편안하고 호화로운 생활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집안의 자제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언감생심 꿈꿀 수도 없는 반란인 것이다. 한마디로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에 행해지는 반란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아니,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어서라기 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만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풍문>은 을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래도 <풍문>이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인 상황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행동 양상 때문이었다. 그들은 갑의 위치를 이용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존심은 채우고 싶어했고, 그런 이중적인 마음은 바로 우리 안의 치부를 들키는 것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산 한인상과 권력의 맛에 심취해 가고 있는 서봄이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주체가 된다는 설정은 쉽게 공감하기 힘든 비현실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불륜코드와 유부남을 꼬시는 친구인 장현수(정유진 분), 그리고 장현수를 위해 서봄과 한인상을 이혼시킬 계획을 세우는 지영라의 모습은 베베꼬인 막장 공식으로 흐르는 느낌만 다분했다.

 

 

 

이런 상황속에서 어느새 코미디는 사라졌고 어둡고 음습한 블랙의 향기만 가득 남았다. 블랙 코미디는 어두운 느낌 속에서도 한 방의 웃음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초반의 <풍문>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제 <풍문>속에서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등장인물의 행동 양상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관관계 뿐이다.

 

 

 

이것이 정말 초반의 <풍문>의 기획 의도였을까. 갑과 을의 관계의 전복속에서 공감을 이끌어 낸 초반의 스토리에 비해서 지금의 <풍문>에는 공감가는 상황 설정이 사라지고 있다. 그 공감대를 다시금 이끌어 내는 것이 <풍문>후반부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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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에는 악역이 없다. 언뜻 악역처럼 보이는 한정호(유준상 분)-최연희(유호정 분) 커플도 알고 보면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귀족으로 살았기에 귀족의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 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에 공감된다는 것은, <풍문>이 단순한 ‘갑질 비판’이라거나 ‘서민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가 아님을 보여 준다.

 

 

 

오히려 <풍문>이 보여주는 것은 철저히 갑의 위치에 있는 재벌가에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들면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 양상이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을의 입장에 있는 서봄(고아성 분)의 가족들은 갑에게 자존심은 세우고 싶지만, 이익은 포기하기 싫은 을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 대놓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주는 것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서민의 현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갑보다 더 치사하고 치졸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그 옹졸함은 누구도 피해가기 힘든 우리 안의 속물근성이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구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해주지 않는 갑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오히려 서봄의 집안은 갑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에 씁쓸하면서도 섣불리 손가락질을 하기 힘든 이유다.

 

 

 

<풍문>에서 갑은 을과의 신분차이를 항상 강조한다. 이제 막 자신의 세계로 편입한 서봄과 그들도 철저히 분리시켜야 마음이 놓인다. 서봄은 그들의 기대에 점차 부응해 나가면서 그 신분 차이를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알력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용하는 서봄의 모습은 일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비서의 비밀연애사실을 빌미로 조근 조근한 말투로 협박 비슷한 발언을 한다든가 서봄의 재벌 세계 편입을 결혼을 서류 한장의 힘으로 폄하하며 뒷말을 하는 비서에게 "서류가 중요하긴 하다, 선생님과 결혼하면 사모님이라 부를것"이라며 일갈하는 모습은 도저히 20살의 어린 여성의 행동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고 영리하다.

 

 

 

서봄은 자신의 위치를 놀랄 정도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상류 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상류사회를 이룬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발자취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위치에 서는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제 사법고시만 붙는다면 완벽한 재벌가 사람으로 거듭날 상황이다.

 

 

 

여기서 걸림돌은 상류사회 사람들의 노골적인 멸시와 차별이 아니다. 오히려 서봄처럼 현명하게 그 지위를 이용하지 못하는 서봄의 가족들이다. 서봄을 미끼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서봄의 아빠와 서봄 처럼 되고 싶어서 재벌가 자제와의 하룻밤을 결정하는 서봄의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의 모습은 갑의 횡포보다 어쩌면 더욱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한 모습이다.

 

 

 

서봄의 현명한 자기 위치 찾기의 과정조차 통쾌하기 보다는 영악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을들의 삐뚤어진 욕심이 부각되는 것은, 상류사회에 대한 비난과 동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마음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을에게 돈과 권력이 주어졌을 때, 일어나는 일은 어쩌면 갑보다 더한 횡포일 수 있다는 점을 서봄과 서봄의 가족들은 보여준다.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와 언제 이 권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서봄의 변화를 마음 놓고 응원하고 지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봄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용하고 사람들을 조정함으로써 얻는 이익들은 너무나 세속적이고 속물적이다. 자신에게 쏟아진 불합리한 대우를 기억하면서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서봄의 모습 속에서 그 처절함과 동시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서봄이 재벌가에서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의 인정을 획득하는 것 자체가 판타지다. 그러나 그 판타지는 제3자가 동경할 만한 판타지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너무도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가진 저들의 세상에서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풍문>은 못가진자의 청렴함이나 고결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갑과 을의 세계를 연결 짓는 고아성의 변화는 그리하여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닌 그의 어정쩡한 입장으로서 갑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불편한 마음에 되묻는다. 당신이라면 이런 기회를 져버릴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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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로서의 ‘겸업’이나 ‘전업’은 이제 더 이상 희귀한 일이 아니다. 인기가 많은 아이돌 가수는 물론이고 코미디언이나 프리선언한 아나운서들도 드라마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호평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연기자를 병행하거나 전업한 스타들의 상당수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거나 아예 존재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첫 정극 출연에 호평을 얻은 인물들이 있다. 바로 백지연과 리지다.

 

 

 

 

 

백지연과 리지는 각각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와 <앵그리 맘>에 출연중이다. 백지연은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지하 경제를 이용해 부를 축적한 집안 딸인 ‘지영라’ 역을 맡았다. 태생부터 공주였던 최연희(유호정 분)에게는 은근한 경쟁심이 있으며 우아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때때로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최연희를 향한 열등감과 분노가 고개를 드는 인물이다.

 

 

 

백지연은 처음부터 지영라역할을 제 옷을 입은 것 마냥 완벽하게 소화했다. 아나운서 출신 답게 정확한 발음과 억양은 물론, 우아하게 생김새까지 지영라 역할에 딱 어울리며 눈에 띄는 연기력을 선보인 것이다. <풍문>을 감독한 안판석 PD와의 친분으로 출연하게 되었다는 백지연은 이 역할을 맡을 때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판석 PD는 “재벌가 사모님의 모습이 있다”며 백지연의 연기 변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봤고, 이 판단은 적중을 넘어서 의외의 재발견으로 다가왔다. 속물적이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우아해 보이고 싶은 이중성을 제대로 표현해 냈다는 평이다.

 

 

 

<앵그리 맘>에 출연하고 있는 리지 역시 <몽땅 내사랑>등의 시트콤을 제외하면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였다. <앵그리 맘>은 리지의 첫 정극 고정출연임에도 호평을 받고 있다. 리지는 <앵그리 맘>에서 반을 주름 잡는 일진 역할이지만 조강자(김희선 분)이 신분을 속이고 학교에 들어오자 일진 자리를 내어주는 인물이다. 리지는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진의 말투와 행동을 그대로 재현해 내며 호평을 받았다. <앵그리 맘>속 역할에 적역이라는 평이다.

 

 

 

그들이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통해 호평을 얻은 것은 단순히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그들이 처음부터 큰 역할을 맡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조연자리에서 시작했다. 비중이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다. 유명세를 이용하여 처음부터 주연을 꿰차거나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는 경우에는 적지 않은 반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그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드라마 속에서 녹아들 수 있었다.

 

 

 

둘째는 그들이 섣부른 ‘변신’을 하기 보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백지연은 아나운서 출신으로 쌓은 지적인 이미지와 우아한 이미지를 연기에서도 그대로 내보인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를 활용하여 속물적이고 열등감에 어쩔 줄 모르는 색다른 면도 표현한다. 리지 역시 에프터 스쿨과 오렌지 캬라멜 활동으로 쌓은 발랄하고 활동적인 이미지를 역할에 녹여 냈다. 그런 이미지 위에 반을 주름잡는 일진이라는 이미지를 더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큰 키와 짙은 메이크업으로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고 ‘노는 고등학생’ 말투를 제대로 캐치하며 역할에 녹아든 것이다.

 

 

 

그들은 비중이 큰 역할을 맡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것은 연기에 도전하는 다른 스타들 역시 눈여겨 볼만한 시도다. 그들이 하고 싶은 역할 보다는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고 너무 큰 역할을 덥석 맡기 보다는 작은 역할부터 출발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연기자로서의 변신 자체에 반감을 가질 수 있는 시청자들과 타협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드라마 속에 녹아들고 있다. 그들의 연기자 변신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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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이하<풍문>)>이 표면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절대 갑’의 세계다.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인 한정호(유준상 분)과 최연희(유호정 분)은 태생부터 왕자와 공주였고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어그러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일종의 강박증 환자들이다. 겉으로는 “요즘 세상에 귀족이 어디있겠냐.”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간의 급을 나누고 그 급에 맞추어 남들을 조종하려는 성향이 다분한 것이다.

 

 

 

그들 세계에 들어온 이방인 서봄(고아성 분)은 그래서 그들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평균도 안 되는 집안 형편의 막되먹은 아가씨가 그들의 세상을 어그러뜨리려 하는 것을 눈 뜨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서봄네 집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아들의 혼인신고 강행에 어쩔 수 없이 서봄을 받아들인 후에도 결코 그 집안과는 섞이지 않으려는 강경한 의지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스토리다. 재벌가에 시집을 오게 된 여주인공과 그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 둘을 반대하는 시댁. 그러나 <풍문>은 이 스토리를 평범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다. 재벌의 사연에 집중하는 한 편, 그들의 시선을 고깝고 강압적인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 것이다.

 

 

 

‘절대 갑’ 위치에 있는 그들은 언제나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일은 그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격식’과 ‘예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던 한정호가 밥상을 뒤엎는 장면은 그들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한 편, 그들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극명하게 꼬집는다.

 

 

 

 

이상한 것은,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포인트가 이 절대 갑의 시선이라는 점이다. 주로 을의 입장에서 시청하게 되는 여타 드라마들과는 달리, 이 드라마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한정호와 최연희다. 그들은 위선적이지만 그렇다고 패악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들이 스스로 만든 굴레에 갇혀서 적나라한 말을 쏟아 내거나 속에 있는 화를 분출할 수 없는 그들의 입장은 갑들도 갑들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와중에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것은 ‘을’의 태도다. 서봄의 부모인 서형식(장현승 분)과 김진애(윤복인 분)는 철저한 을일 뿐이지만 더 잃을 것이 없기에 오히려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갑의 위치에 있는 한인상(이준)의 부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은근히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생기고야 만다. “서봄의 교육을 책임지겠다” “큰 딸의 취직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 “빚을 갚아 주겠다”는 제안에 얼굴에 화색이 돌며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결국 속에 있는 속물 근성을 내보이고 만다.

 

 

 

그러나 “과수원을 운영하며 전원생활을 하라”는 제안에는 난색을 표한다. 그 말을 엿들은 서봄은 눈물까지 흘린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 원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흘러가 주기를 바란다. 갑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것만이 목표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먼저 요구를 하거나 제안을 꺼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받을 것은 받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은 오히려 ‘을의 갑질’을 떠 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서봄이나 한인상이 아닌, 한정호다.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을 총괄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화가 난 나머지 밥상을 집어 던지고 난간을 넘어가다가 가랑이가 끼이는 우스꽝 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그는 미워할 수 없는 '갑'이다. 존재감과 연기력은 물론, 코미디까지 책임지고 있는 그의 활약에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바라보게 된다.

 

 

 

 

이 드라마가 무서운 것은 철저히 갑의 입장을 그리면서도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마냥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사정과 생각이 있고 그로인해 나타나는 행동들은 처절하리만큼 인간적이다. 그 인간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이 발견하는 것은 자신 안의 속물근성이다. 어느 순간 시청자들은 ‘갑’이 주겠다고 한 수많은 이익들과 ‘을’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 저울질을 시작한다. 현실적인 손해와 이익이 얼마만큼 계산기를 두드린 후, 오히려 을의 철없음을 개탄하게 된다.

 

 

 

이런 손익 계산 자체가 내 안의 속물근성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행동이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과 우리 모두 본질은 ‘인간’일 뿐이고 그 안의 위선도 속물근성도 모두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은 클리셰의 전복이다. 그 안에서 갑과 을의 관계도 전복된다. 이 모든 전복들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웃음들은 그만큼의 쾌감을 동반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범상치 않은 드라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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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이 보여주는 세상은 겉으로보면 단순하다.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재벌가의 아들과 평범한 집안의 여자주인공. 그들은 서로에게 아이가 생긴다. 여기서 특별한 점은 그들이 임신하는 시기가 아직 성인이 채 되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언뜻보면 평범한 소재에 막장 요소를 버무린 자극적인 드라마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풍문>이 기대되는 이유는 단순히 미성년자의 임신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다.

 

 

 

 

<풍문>의 정성주 작가는 <아내의 자격>과 <밀회>를 통해 드라마의 소재보다 전개 방식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아내의 자격>에서 여주인공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지만 그 과정에서 정성주 작가는 교육의 현실과 엄마라는 위치, 그리고 아내라는 위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단순히 바람을 피우는 유부녀의 막장 스토리에서 다른 곳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수 있었다.

 

 

 

 

<밀회>에서도 이런 필력은 빛이 났다. <밀회>는 무려 극 중 20살 차이가 나는 남자와 바람이 나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공감을 던졌다. 그 이유는 파격적인 설정 뒤에 숨은 권력과 갑과 을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행동양상이 섬세한 터치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 너머에 인간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따듯한 시선을 놓치지 않은 탓에, 드라마는 공감을 얻으며 화제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는 쾌거를 이뤄냈다.

 

 

 

 

<풍문>역시 아직 채 20살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들의 성관계와 그로 인한 임신을 다뤘다. 소재만 보면 한국 브라운관에서 방영되기 아직은 낯설고 불편한 소재다. <풍문>이 방송된 이후 쏟아진 기사들 역시 그 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칫 막장이라는 말을 들을만한 전개였다.

 

 

 

 

그러나 정성주 작가에게는 이런 임신을 통해 단순히 자극을 뽑아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대한민국의 속물적인 상류층 생활을 통해 그 위선과 가식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필력을 <풍문>에서도 보여줄 것이라는 암시가 곳곳에 숨어있는 것이다.

 

 

 

<풍문>첫회에서 법률가 집안의 안주인인 최연희(유호정 분)은 재색을 겸비한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아들의 미래를 위해 집안 곳곳에 부적을 붙이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등장했고 한정호(유준상 분)역시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는 로펌 대표로 등장했다.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집안의 자제인 한인상(이준 분)은 멋있고 박력있는 백마탄 왕자가 아니라 여자친구의 임신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해 쩔쩔매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한강에 뛰어들며 쇼를 하는 찌질한 캐릭터로 등장했다.

 

 

 

결국 <풍문>은 뻔한 재벌가의 아들과 평범한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재벌은 단순히 남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속물 의식으로 똘똘 뭉쳐 사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자란 자녀 역시 건강하고 확고한 자아를 가진 인물은 아니다. 자신들의 특권을 이용해 덜 가진 자에게 상처를 주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솜씨는 30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다.

 

 

 

 

벌써부터 전개는 빠르게 흐르고 있다. 임신 사실이 알려지는 속도도 빠르다. 2회부터는 이미 한인상의 집에 들어가 구박을 당하는 서봄(고아성 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재벌가에 들어가 고생하는 며느리라는 뻔한 공식에서 탈피해 그 재벌가의 모순과 속물근성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임신이라는 소재보다 묘하게 더 자극적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그들의 모습을 통해 현 시대와 어쩌면 자신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감정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감을 자아낼 줄 아는 것. 그것이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PD가 만들어 내는 그림이다. 19세의 임신을 다룬 <풍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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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은 진부하고 뻔하게 느껴지는 제목을 배반하듯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를 펼친다. 기억상실과 출생의 비밀이라는 소재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 소재가 단순하고 뜬금없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비밀을 풀어가는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며 이 드라마를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포인트로 잡은 부분은 ‘출생’이라기보다는 ‘비밀’에 가깝다. 비밀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신선한 충격과 반전을 던져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너무나도 진부한 제목을 사용한 것만은 실수처럼 느껴진다. 제목부터 편견을 갖기 시작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실수가 있다. 그리고 그 실수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나왔다.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국민남편으로 칭송받았던 유준상의 연기에 있었다. 유준상은 극중에서 순박하고 가난한 홍경두역을 맡았다. 그의 캐릭터를 나타내기 위해 그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의 첫 번째 실수가 보였다. 첫째로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청주는 그다지 사투리가 심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충청도라고 해서 무조건 사투리를 구사할 거라는 편견은 오히려 리얼리티를 떨어뜨렸다. 더군다나 그의 사투리는 사투리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뭔가 혼자서만 튀는 말투 덕분에 그의 연기력에 까지 논란이 일었다. 사투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과장된 면면이 부각되었다. 순박함을 표현하려고 한 것 치고는 말투에서부터 행동까지 지나치게 오버스럽다 보니 그의 캐릭터는 순박하기 보다는 바보스러워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남자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반감되기까지 했다. 아무리 순수하다고는 하지만 연장자에게 주먹질을 한다거나 집 한 칸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는 모습은 책임감이 결여된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이는 유준상의 한껏 과장된 연기와 더불어 남자주인공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차라리 꾸준한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성유리가 오히려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그동안 노력한 데 대한 결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은 칭찬해 줄만 하다. 물론 성유리와 유준상에 거는 연기력의 기대치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유준상과 제작진이 분석한 홍경두 캐릭터는 조금 분위기를 다운 시킬 필요가 있다. 연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너무 과한 캐릭터 설정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유준상은 캐릭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드라마 전반적인 내용이 가라앉으며 유준상의 캐릭터 역시 마냥 오버스러울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유준상의 캐릭터가 변모되어 보인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딸을 사랑하는 부성과 딸을 빼앗겨야 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심정을 표현한 유준상의 연기는 호연에 가까웠다. 딸을 데려가겠다는 윤희(성유리)의 이기적인 행동에 분노하며 그동안 붕 떠 있던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끌어 당겼다. 이런 연기가 가능한 연기자가 그동안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는 것은 크나큰 실책이다.

 

문제는 유준상의 홍경두 캐릭터가 조금씩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와중에 성유리 캐릭터에 대한 원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홍경두가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위해 성유리가 다소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부분은 여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감소시킬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이 드라마가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과거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성유리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계속 진행 되며 자연스럽게 이미지의 전환을 맞을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캐릭터의 해석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유준상의 경우는 다르다. 단순 무식하고 바보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면 과장을 해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아야 할 부분의 구분은 확실히 되어야 한다. 아직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은 느껴질지언정 성유리와의 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려면 홍경두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기억의 조각을 하나 둘 씩 맞춰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점차 흥미로워 지고 있다. 바로 이 때 캐릭터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캐릭터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제대로 된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캐릭터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하여 이 드라마가 좀 더 흡입력 있는 전개를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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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재미 중 하나라면 뭐니뭐니해도 커플들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에 있다. 

 

 차윤희(김남주)와 방귀남(유준상)의 결혼한 커플이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결혼생활의 모습도 흥미롭고 윤빈(김원준)과 방일숙(양정아)가 보여주는 스타와 팬의 사랑이야기도 시선을 끄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천재용(이희준)과 방이숙(조윤희)의 사랑이야기가 시청자들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의 남성과 순진한 여자라는 구도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앞으로도 드라마의 중심 축이 될만한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점점 비중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사랑 이야기 중 가장 답답한 부분이 바로 방말숙(오연서)과 차세광(강민혁)이 이끌어가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작가가 처음부터 캐릭터 설정을 비호감으로 하면서 생긴 가장 큰 딜레마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비호감, 끝가지 비호감

 방말숙은 처음부터 비호감 시누이를 자처하면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에서 가장 악역이라 하면 방귀남을 버린 작은엄마역의 나영희일텐데도 시청자들을 가장 분노케 하고 화가나게 하는 캐릭터는 바로 이 방말숙인 것이다.

 

 이 방말숙 캐릭터는 우리사회에 현존하는 시누이의 얄미운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하며 현실감을 주었다. "우리 부모님께 잘하라"고 말하거나 "오빠를 채갔으면 그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형적인 못된 시누이 역할을 맡으면서 비호감 캐릭터로 낙인찍힌 것이다.

 

 이 장치는 아마도 차세광과 연결될 커플이기 때문에 나중에 당한만큼 돌려 받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차윤희의 통쾌한 복수(?)가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한 축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작가가 실수한 부분은 차세광과 방말숙 커플이 전혀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넝굴당을 보는 시청자들은 커플들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방귀남이 버려진 이유나 나영희의 비밀은 사실 큰 흥미거리가 아니다. 천재용과 방이숙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윤빈과 방일숙은 점점 사랑의 싹을 틔워나갈 것인가. 차윤희는 시월드를 남편과 함께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시댁과 어떻게 친해져 갈 것인가하는 요소들이 이 드라마를 보게 하는 주된 이유다.

 

차세광도 비호감, 사랑이야기가 기대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방말숙과 차세광의 사랑이야기에도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집어넣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비호감으로 낙인 찍힌 방말숙은 차세광에게 너무도 모자란 여자다. 아니, 차세광보다는 차윤희의 시누이로 너무 모자르다. 벌써 부터 "저런 여자가 들어오면 집안은 풍지박산난다" 는 식의 의견이 이 커플에 대해 주를 이루고 있다." 절대 저런 여자와는 결혼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냐"는 웃지못할 의견까지 등장했다.

 

 사실 차세광의 캐릭터 역시 그다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을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차세광은 항상 방말숙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러있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툭하면 방말숙에게 "우리 헤어지자"는 발언을 하면서 멋있는 남자 캐릭터와는 동떨어진 행보를 걸었다. 여자의 적극적인 구애만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다소 찌질해 보이기까지 한다.

 

 

 "진짜 좋아하면 그런 게 문제가 되냐. 네 인생인데!"라는 차윤희의 한마디는 그래서 공감이 간다. 그러나 "좋아하긴 해!"라는 차세광의 발언은 아쉽다. "누나 때문에 헤어졌다"는 식의 말도 어린애 같다. 단지 그정도라면 이 커플은 굳이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현실에서 그렇게 절절한 사랑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라면 서로의 커져버린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당위성을 만들어야 시청자들이 흥미를 갖는다. 이 커플은 그 과정을 실패했다. 굳이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 같은 느낌을 주면서 흥미의 레이더망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다.

 

잘못된 방말숙 캐릭터의 본질

  방말숙이 못된 시누이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캐릭터 자체의 본질을 비호감으로 만들지는 말았어야 했다. 물론 드라마의 인물이 모두 긍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단순히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과 '캐릭터 자체가 비호감이다'하는 문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방말숙이 '이유없이' 차윤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차윤희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미워할만 했다'는 전제를 더 깔아두고 서로 친해져가는 과정을 잘 묘사하여 나갔다면 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 역시 기대되는 한 에피소드로서 충실히 역할을 해 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없는 방말숙의 시누이 괴롭히기와 명품을 좋아하고 남자 뜯어먹고 다니는 된장녀 설정은 그녀의 캐릭터에 부정적인 기운을 너무나 짙게 불어넣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비호감이 된 방말숙은 결국 시청자들에게도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철이 있고 조금만 더 합리적이었다면 시청자들의 방말숙 증오는 지금처럼 짙게 드리우진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제작진은 방말숙 , 차세광 커플의 러브라인이 단순히 나중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희생양으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사안을 극복하고  확실한 호감으로 돌아설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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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2.07.16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전 이 커플 풋풋해서 좋던데ㅋㅋ 말숙이 캐릭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 왜이렇게 차윤희가 얄미울까요. 너무 이기적인것 같아요.

  2. ~ 2012.07.16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전 이 커플 풋풋해서 좋던데ㅋㅋ 말숙이 캐릭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 왜이렇게 차윤희가 얄미울까요. 너무 이기적인것 같아요.

  3. ㅁㅁㅁㅁㄹ 2012.07.24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단년 뭐야? 지가 된장녀라고 광고하고 다니는구만 ㅋ 차윤희가 이기적? ㅋㅋ 주변에 그런 선배한테 당하고 사나보네? 그리고 말숙이가 좋아보이는건 지 하는 꼬라지가 된장녀라서 그런가보구나 인터넷이니까 거짓말할필욘 없단다 ㅋ


 [넝쿨째 굴러들어온 당신]의 차윤희(김남주)가 드디어 폭발을 하고 말았다.

 

 차윤희는 결국 얄미운 시누이 방말술(오연서)에게 "야! 방말숙!"이라며 소리를 치는 사단이 난 것이다. 그렇다. 사단. 시댁에서는 가히 하극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감히 아가씨에게. 이런 분위기가 있다는 것. 그것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었다.

 

  차윤희는 "왜 시댁 식구들만 높여야 하고 처가 식구들은 낮추는 거냐. 12살이나 어리면 반말을 해도 된다고 하더라"며 설득하려 하지만 고지식한 옛날어른인 전막례(강부자)는 논리도 없이 "그래도 그게 아니다"라는 말로만 예의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방말숙 비호감 이미지를 플러스하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시댁만 높이는 불편한 진실, 과연 정당한가?

사실 생각해 볼 문제다. 왜 똑같은 동생인데 누구는 처남, 처제이고 누구는 아가씨인가. 처남에는 높이는 분위기가 전혀 없지만 아가씨는 누가 들어도 높이는 분위기의 단어다.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차윤희의 말처럼 차윤희는 자신보다 12년 어린 시누이 방말숙에게 꼬박 꼬박 '아가씨'라 부르며 존댓말을 쓰지만 방귀남(유준상)은 차윤희의 동생 차세광(강민혁)에게 처남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반말을 한다.

 

 이는 사실 아무도 꼬집지 않았던 문제다. 왜 시댁의 아가씨는 높이는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처가의 처남은 동생처럼, 친구처럼 대해도 상관없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사실상 시댁 중심의 우리 결혼 문화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작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방말숙이 아무리 그래도 나이도 많고 자신의 손윗 사람인 새언니에게 "내가 좀 가르쳐야 겠다"라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좀 웃기는 일이다. 서로 존중한 상태에서 조용히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새언니가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김남주의 캐릭터상 절대 혼자서 핏대를 세울 성격은 아니다. 

 

 

현실과 동일시되는 방말숙의 캐릭터, 비호감 더해

 그러나 방말숙의 태도는 자신이 관계의 우위를 점하고 '나는 새언니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깐 채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는 무작정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무대포 정신의 태도로 시청자들의 날카로운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비호감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시월드'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우리나라 시댁 문화에 결혼한 여성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데 있다. 방말숙이 드라마 캐릭터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결부되는 접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새언니를 무시하는 아가씨 캐릭터가 우리 사회에 그리 드물지 않다는 것이 방말숙의 이미지를 더욱 비호감으로 치닫게 만든다. 아가씨라는 '높임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전재가 깔린 호칭속에 그들의 권리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범위까지 휘두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여성들의 분노를 배가시킨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그 아가씨라는 호칭을 듣는 여성조차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새언니가 될 수도 있는 운명이거늘, 어째서 그런 문제점을 짚어내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그런 권력을 휘두려는 여성들이 남아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아직도 속시원히 내릴 수는 없지만, 인간이란 참 우스운 동물이라서 그런 이중성에도 그런 여성들은 "자신은 그러지 않는다"는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방말숙은 비운의 캐릭터다. 방말숙은 나중에 차윤희의 동생인 차세광과 커플이 될 운명에 놓여있다. 방말숙이 얄미운만큼, 차윤희가 방말숙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를 때의 희열이 배가 될 것이기에 만들어진 캐릭터다. 사실상 나쁜 시누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누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사실상 넝굴당의 첫째 방일숙이나 둘째 방이숙의 캐릭터는 차윤희에게 상식 이하의 일을 권하지 않는 형태로 그려진다.

 

 

갈등구조를 위해 희생된 비운의 캐릭터!

 이런 상황에서 방말숙의 캐릭터마저 순하고 고분고분하다면 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가 약해질 수밖에 없고 방말숙은 차윤희에게 사사건건 대들며 스스로 비호감을 자처하는 인물이 되는 편이 재밌기에 희생된 캐릭터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주인공 차윤희가 상당히 합리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비, 방말숙의 '진상짓'은 더욱 더 얄밉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방말숙 얼굴만 봐도 싫다'는 드라마의 내용에 상관없이 배우를 비난하는 댓글이 늘고 있다. 방말숙의 막무가내 행동+차윤희의 합리적인 성격+현실세계의 시월드 이미지가 합쳐져 만들어 낸 방말숙 캐릭터의 필요이상의 비호감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방말숙 캐릭터는 손해보는 캐릭터다. 차라리 현실에 있을법 하지 않은 악역이라면 연기 잘한다는 호평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인데 너무 현실세계와 흡사하게 그려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현실과 혼동하여 방말숙의 배역을 맡은 오연서의 이미지를 방말숙 캐릭터와 혼동하게 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동일시 하여 방말숙의 이미지를 실제화 시키기 때문이다.

 

 

 차윤희의 통쾌한 복수를 위해 철저히 비호감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어린 시절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다"라는 눈물섞인 말숙의 고백에도 사람들은 "철이 없어 저러는 것"이라면서 매정한 잣대를 그 캐릭터에 들이대고 있다.

 

 앞으로 그가 차윤희에게 당한다고 해서 그동안 쌓였던 비호감이미지가 사라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저건 더 당해봐야 한다"며 차윤희의 복수를 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윤희는 사실상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진짜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응원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시댁역시 막장드라마처럼 막가자는 플레이를 하지 않고 어느정도 상식선에서 움직이려는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고질적인 한국 시댁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런 현실감속에서 시댁이 적이 아닌,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작가와 배우의 역량에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를 위해 지나치게 훼손된 방말숙의 이미지마져 살려낼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지 싶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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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un5166.blog.me BlogIcon 2012.06.14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태클 아닙니다) 굳이 방말숙의 이미지를 회복시켜야 될까요.. 시청자들의 묵은 분을 대신해서 풀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하기위해서 조금 비현실적으로 나쁜 면모를 강조시킨 캐릭터가 나올수 있는것이 드라마가 꾸민 가상의 매력이 아닐까요. 올케의 동생과 러브라인을 엮으므로써 아마 굴곡 좀 있어도 차세광과 결혼할 듯 싶고, 입장이 뒤바뀌게 되겠죠. 방말숙은 나중에 자신의 비호감 행동을 돌아보게될거고요. 그러면서 시청자들은 '쌤통이다'싶은 희열도 느끼고 역지사지의 자세를 생각해볼 기회도 될거같습니다. 굳이 방말숙을 호감으로 다시 돌려놓자라고 마음먹을 필요는 없을거같은데요, 이러한 부분(앞으로의 전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2. 말쑤기화팅 2012.06.17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말숙이 지지합니다. 좀 까불고 그러지만 아주 틀린말은 안하자나여 솔직히 다른 식구들 맘에 안들어도 암말 안하고 속 썩히느니 차라리 말숙이 처럼 하는것도 낫다고 봅니다.
    며느리 입장에서만 드라마를 보지말고 시댁 식구 입장에서 보면 김남주 그리 이쁜 며느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기회에 양쪽의 문제를 다 보자구여~

  3. 진짜 무섭다 2012.06.17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말쑤기화팅이라고 쓴 사람.. 시댁 식구 입장에서 김남주 그리 이쁜 며느리는 아니다..? 그럼 이쁜 며느리는?.. 애나 낳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그런 며느리? 저 사람 무섭다. 나중에 분명 고지식한 시어머니 될 사람같다. 아니면 이미 고지식한 시어머니던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KBS 주말극의 자존심을 톡톡히 세워주고 있다.


방송 첫 회 부터 30%대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넝굴당]은 박지은 작가의 센스있는 필력과 김남주의 호연에 힘입어 흔들림 없이 순항하고 있다.


특히 '둘째 며느리' 방숙희 역의 나영희가 윤여정의 아들찾기를 철저히 방해함으로써 갈등 역시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넝굴당] 스토리의 가장 큰 줄기는 역시 윤여정의 '아들찾기'에 있다. 바로 앞 집에 사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고, 잃어버린 아들 때문에 한 시도 편할 날 없는 윤여정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묘한 긴장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 고부관계인지 모르는 윤여정과 김남주가 티격 태격하며 오해와 갈등을 겪는 상황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전형적인 홈 드라마의 관계를 한 번 꼬아내면서 스토리는 풍성해지고, 캐릭터 역시 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윤여정의 '아들찾기'를 철저하게 방해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강부자의 둘째 며느리이자 윤여정의 동서인 '방숙희' 나영희다. 사실 나영희는 윤여정의 아들찾기를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시어머니인 강부자가 잃어버린 손자 때문에 평생을 속 태우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윤여정이 그 때문에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며느리로서, 동서로서, 또한 숙모로서 윤여정 가족의 아들찾기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나영희의 악행은 가차없이 실행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유준상이 윤여정의 친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 나영희는 어떻게든 유준상과 윤여정을 떼어 놓으려고 벼라별 수를 다 쓰고 있다. 우선 유준상의 어린시절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증거를 없앤데다가 김남주를 '미국유학' 으로 꼬셔 유준상-김남주 부부를 미국으로 보내려 기를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찰서에 찾아가 아들찾기의 기초 자료가 되는 윤여정 부부의 DNA 기록 등 각종 신상기록까지 지우고 있다. 아무리 양보해도 상식 밖의 행동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나영희는 이런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세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그녀에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자식 컴플렉스'다. 나영희는 사회적 평가기준으로 봤을 때 대단히 성공한 축에 드는 여성이다. 학벌, 인맥, 재산 모두 탑 클래스에 들 정도고, 평소에도 각종 문화생활을 즐길 정도로 엘리트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다. 겉으로 내색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준상까지 포함해 네 명의 자식을 두고 있는 윤여정에 대한 묘한 질투심과 열등감마저 갖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나영희가 위안 삼을 수 있는 단 한가지는 강부자와 윤여정이 애지중지 했던 '아들' 유준상이 실종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윤여정은 평생 강부자의 눈총을 받아야 했고, 말없이 속앓이를 해야 했다. 윤여정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나영희로선 차라리 유준상을 찾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윤여정의 불행을 목도하며 자식없는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는 나영희가 어린시절 유준상의 실종에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직 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유준상이 시장 바닥에서 홀로 길을 헤메다 실종까지 되는데 나영희의 적극적인 가담 혹은 방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영희가 이토록 유준상과 윤여정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기를 쓸 이유가 없다. 특히 시장에서 길을 잃은 유준상이 고아원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추론해 볼 때 나영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은 두가지로 추론 가능하다. 하나는 윤여정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나영희가 우발적으로 유준상을 꾀어내 찾아올 수 없는 먼 곳에 버리고 왔다는 것, 또 하나는 길을 잃고 시장바닥을 헤메던 유준상을 보고도 못 본체 해 유준상의 실종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가족의 입장으로서, 숙모의 입장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법적-도덕적 책임 역시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나영희로선 자신의 악행과 죄책감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윤여정과 유준상을 반드시 떼어 놓아야만 한다.


세번째는 그녀가 이미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는 사실이다. 유준상의 어린 시절 사진을 봤을 때만이라도 나영희가 마음을 고쳐먹고 윤여정에게 모든 걸 털어놨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남주의 미국 유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경찰서 기록까지 모두 삭제함으로써 악행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스스로 돌이키기에는 악행의 크기가 너무 깊고 넓다. 이제는 앞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다. 수습책과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악행은 파멸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지금 나영희의 꼴이 딱 그 짝이다.


이렇듯 나영희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넝굴당]의 아들찾기 프로젝트는 될 듯 말 듯 하며 계속 삐딱선을 타며 나가고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넝굴당] 제작발표회 때 제작진이 입맞춰 "초반에 많은 걸 터뜨리고 갈 예정" 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되새겨 본다면 곧 윤여정이 유준상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이후에는 김남주와의 고부갈등, 그리고 나영희가 숨겨 놓은 여러 비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기존 홈드라마의 갈등 구조를 한 단계 더 비틀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있는 [넝굴당]이 시청자들의 진을 너무 빼놓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하고 묘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 스토리를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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