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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4 윤복희부터 서태지까지, 연예계 '쇼킹' 이혼의 역사! (3)


서태지-이지아 이혼의 여진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대중의 관심도 여전히 폭발적이다.


이처럼 연예인 커플의 이혼 소식은 예나지금이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다.


그렇다면 서태지-이지아 못지 않은 쇼킹한 연예계 이혼 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윤복희부터 서태지까지. 대한민국을 패닉에 빠뜨렸던 그들의 '쇼킹' 이혼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폭행 루머로 얼룩졌던 남진-윤복희 이혼, 그리고...

1979년 윤복희와 남진의 이혼소식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남진과 윤복희가 75년 동거를 시작해 77년 결혼에 골인했던 이들은 3년 7개월만에 이혼에 합의하면서 다시금 남남으로 돌아갔다. 유주용과의 이혼 이 후, 남진과 두번째 이혼을 선택해야만 했던 윤복희는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앞으로는 음악으로 감동드리는 삶을 살겠다."며 눈물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당시 '선데이 서울'에서는 윤복희의 얼굴 쪽에 든 멍이 남진의 폭행 때문이었다고 기사를 내 또 한번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는데 이에 대해 윤복희는 "절대로 남진이 때린 것이 아니다. 교통사고 때문에 멍이 들었다."고 해명했다. 이 후, 윤복희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남진과의 결혼은 전 남편인 유주용에게 복수하기 위한 반발심 때문이었다고 이야기 해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던 세기의 커플, 최무룡-김지미 이혼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는 60년대를 가장 화려하게 수 놓은 별 중의 별, 스타 중의 스타였다. 화려한 외모와 자신만만한 태도, 여기에 뛰어난 연기력까지 겸비했던 그녀는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고전미와 현대미를 두루 갖춘 세련된 외모와 매너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김지미만의 장점이었고 관객들은 그러한 김지미의 개성을 사랑했다.


최무룡, 나훈아 등과 숱한 염문을 뿌렸던 그녀는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특히 62년 영화배우 최무룡과의 '간통'사건은 김지미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한 사건이었다. 당시 최무룡의 전부인이자 배우 최민수의 어머니인 배우 강효실은 "아이(최민수)를 낳은지 열흘만에 두 사람의 스캔들을 확인했다."며 언론에 폭로했고, 이 스캔들은 대한민국 전체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일대 사건이 됐다.


그러나 김지미는 미안해 하는 기색도, 두려워 하는 기색도 없었다. "내가 범법을 저지른거면 죗값을 치루면 그만" 이라고 쏘아 부쳤던 그녀는 최무룡 대신 강효실에게 위자료 300만원(당시 집 한채 값)을 모두 물어주고 최무룡과 재혼했다. 최무룡과 7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그녀는 최무룡의 사업실패와 3000만원에 이르는 엄청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69년 결국 이혼했다.


당시 최무룡과 김지미는 이혼 기자회견에서 "사랑해서 헤어진다" 는 명언을 남겨 두고두고 이 말이 연예계에 회자가 되기도 했다.



이혼조차 갈라 놓지 못한 운명, 최은희-신상옥 이혼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커플인 신상옥 감독과 여배우 최은희의 사랑과 이혼은 그야말로 질곡의 역사였다. 1948년 스크린에 데뷔해 영화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던 최은희는 당시 영화 촬영기사였던 김학성과 결혼하며 평탄한 배우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예상치 못한 한국 전쟁 속에서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했던 최은희-김학성 부부는 결국 김학성이 포탄을 맞고 장애인이 되면서 극심한 불화를 겪게 된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이었던 신상옥. 신상옥과 최은희는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하면서 사랑에 빠졌고 결국 최은희는 김학성과 이혼하고 54년 신상옥에과 재혼한다. 당시 최은희에게 버림받았던 김학성은 신상옥과 최은희를 간통으로 고소했다가, 곧 취하했다. 이를 두고 신상옥이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사태를 수습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지옥화][성춘향][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등 한국 영화계에 길이 남는 영화들을 대거 배출하며 최고의 부부이자 비지니스 파트너로 이름을 날렸던 신상옥과 최은희는 1976년 돌연 '이혼'을 선언하며 22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유는 신상옥이 신인 여배우 오수미와 바람을 펴 두 명의 자식까지 낳았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 배신감에 치를 떨던 최은희는 "말하기도 싫다" 며 신상옥을 매몰차게 떠나보냈다.


그러나 이혼조차 그들의 질긴 운명은 갈라놓지 못했다. 이혼 2년 뒤인 1978년 1월, 그 유명한 '최은희 납북 사건' 이 벌어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7월에는 전 남편 신상옥이 북한에 납치되면서 아이러니하게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북한에서 재회하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서 마주치게 된 이 부부는 다시 재결합 해 1986년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 남한 언론의 대대적 관심을 받았다. 한 때 신상옥의 불륜 상대였던 배우 오수미는 1992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하여 비참한 운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의 삶은 한편의 극적인 영화였다. '여성 영화인 사전'에서는 여배우 최은희의 삶을 가리켜 "그의 영화인생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납북사건의 미스테리까지 더해져 깨뜨려지지 않은 신화 저 편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신화는 점차 역사 저편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라고 기록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평생을 영화계에 몸바쳤던 신상옥 감독은 2006년 4월 11일 타계했고, 최은희는 그 뜻을 기려 2010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시절, 세시봉은 잔인했네. 조영남-윤여정 이혼


1975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결혼한 뒤 1987년, 12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조영남-윤여정 부부의 이혼도 당시에는 세간의 큰 화제가 된 사건이었다. [새엄마][장희빈] 등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배우 윤여정과 '딜라일라' 등의 히트곡으로 화제를 모은 톱가수 조영남은 세시봉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다. "재주 좋은 사람이 좋았다" 던 윤여정은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김수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해 조영남과 도미하여 결혼했다.


그러나 백은실과 '바람'이 났던 조영남은 결국 윤여정에게 이혼을 강요했고, 그들의 12년 결혼생활은 윤여정의 말처럼 '장렬하게' 끝이났다. "전 재산을 위자료로 다 줬다"던 조영남의 언론 플레이와 달리 윤여정이 수중에 받은 위자료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겨운 생활을 지속해야만 했다. 훗날 조영남은 SBS 예능 프로그램 [밤이면 밤마다]에 출연해 "말 한마디로 내 모든 걸 빼앗아 갈 수도 있었지만 침묵을 지켜줘서 고맙다. 과연 나는 진짜 멋진 여자와 살았구나 싶다." 고 회고했다.


이혼 뒤,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의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조영남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힘들었죠, 뭐." 라고 담담히 이야기 하면서도 "오랫동안 부부 관계가 없어서 왜 그러냐 했더니 내가 못 생겨서 나 같은 여자랑 살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때 그 이야기가 딴 여자 생겼다는 이야기인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내가 얼마나 미련한 여자예요!" 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지금 윤여정은 당대 가장 재능있는 여배우로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작년 한 해 영화 [하녀]로 대한민국 모든 영화제의 여우 조연상을 모두 수상했다.



부부에서 친구로, 김승우-이미연 이혼


1995년 3월,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리며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이미연이 결혼을 발표한다. 그녀의 나이 불과 26살의 어린 나이였다. 게다가 상대는 [장군의 아들] 등에 출연했던 무명배우 김승우여서 더욱 연예가에 화제를 모았다. 이미연과 결혼한 김승우는 '이미연의 남편'으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으며 일약 스타가 됐고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어 톱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 잉꼬커플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은 불과 5년여만의 결혼 생활 끝에 2000년 돌연 이혼을 발표해 대중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혼 사유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었고, 성격 차이가 있었다는 것. 이미연의 이혼 사유 발표에도 불구하고 김승우-이미연의 이혼은 이혼 기자회견이 김승우가 미국으로 나간 상태에서 이미연 혼자 진행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소문과 루머를 양산해 내기도 했다.


그 해, 이미연은 영화 [물고기 자리]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이 상을 받았다면 더 행복했을텐데" 라며 울먹였다. 2003년에는 김승우 주연의 영화 [라이터를 켜라] 시사회에 이미연이 등장해 재결합설이 강력히 대두되어 김승우가 "우리는 영원한 친구로 남을 것" 이라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이 후, 이미연은 패키지 앨범 '연가'의 대박과 드라마 [명성황후]의 흥행으로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고 김승우는 김남주와 재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순수한 사랑이 진흙탕 싸움으로, 편승엽-故 길은정 이혼


가수 편승엽과 길은정의 결혼과 이혼도 참 드라마틱 했다. 당시 대장암을 앓고 있던 길은정과 전격적으로 결혼을 발표하며 순수한 사랑의 주인공이 됐던 편승엽은 불과 7개월만에 이혼을 발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몇 년 뒤, 길은정이 편승엽과의 결혼생활은 지옥이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그들의 결혼 스토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길은정은 편승엽이 당시 대장암 수술을 받고 뒤뚱거리던 자신에게 모욕적인 말과 상스러운 욕을 서슴지 않았다고 폭로하며 "편승엽은 나를 이용해 자기 이름을 알린 것 뿐이다. 그건 지옥이었다. 철저한 계약 결혼에 치가 떨린다." 고 말했고 결국 편승엽은 길은정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원은 길은정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징역 7월을 판결했으나, 편승엽은 "내 무고함이 밝혀진걸로 만족한다."며 소를 취하했다. 허나 남은 것은 무려 2년여간의 지루한 법적과 끊임없는 폭로전이 낳은 상처뿐이었다.


이 후, 길은정은 2005년 결국 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신데렐라는 없었다, 고현정-정용진 이혼


1995년 [모래시계]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 고현정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인 삼성가에 시집을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신데렐라'라고 표현했다. 평범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미스코리아가 됐고, 김종학의 눈에 띄어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로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의 아내가 된다는 건 누가뭐래도 눈부신 신데렐라의 삶과 꼭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10년여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2005년 드라마 [봄날]로 다시 연예계에 돌아왔다. 무수한 소문과 루머들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나와 그 사람이 진정으로 열렬히 사랑했다는 것" 이라던 그녀는 [여우야 뭐하니][히트] 등의 작품을 거쳐 [선덕여왕]의 미실 역으로 MBC 연기대상, [대물]의 서혜림 역으로 SBS 연기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여배우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기의 결혼-세기의 이혼, 故 최진실-조성민 이혼


최진실과 조성민의 이혼은 대한민국 연예계 이혼 역사 중 가장 충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의남매로 시작해 행복한 결혼에 골인했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은 조성민의 불륜으로 산산조각 났다. 조성민의 이혼 요구 기자 회견을 시작으로 진흙탕 싸움에 들어선 이들 부부는 결국 법적다툼과 폭행사건으로까지 비화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훗날, 최진실은 조성민이 재혼하기 직전에 끝까지 밝히지 않은 "어떤 계기"로 인해 그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진실은 조성민과의 이혼 공방과 나락으로 떨어진 인기 속에서도 오히려 두 아이와 살아 남기 위해 재기의 날개짓을 했던 그런 배우였다. 스타 이전에, 배우이기 이전에 엄마였던 그녀는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살아야 한다." 는 말을 언제나 주문처럼 되뇌이곤 했다. "나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키우고자 하는 생계형 연기자일 뿐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며 다짐하던 것이 엊그제의 일 같이 생생하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 사고 과정 속에서 결국 그녀는 그 절절했던 모성조차도 가로 막지 못한 죽음이라는 독배를 들이켰다. 20여년 동안 끊임없는 루머에 시달렸지만 '인간' 최진실 자체를 부정하고 폄하했던 이번 악성 루머는 결국 최진실을 지탱하고 있던 자존감과 인간성을 완전히 붕괴시켰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 세상 어떤 어머니보다 강인하고 처절한 모성을 보여줬던 '엄마' 최진실이었기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더더욱 배가 된다.


환희, 수민이 이야기를 하면 쓸쓸하던 표정이 한 순간 사라지고 환한 웃음만을 보였던 그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구구절절 이야기 하면서도 걱정보다는 행복과 희망에 가득찼던 그녀. 환희가 문자를 보냈다며 까르르 웃고, 수민이가 재밌는 그림을 그렸다며 미소 지어보였던 그녀. 그녀의 이름, '엄마' 최진실.


한때는 미워하고 증오했던 전 남편에게도 "아이들을 위해 멋지게 살자." 라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녀. 조성민이 재혼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아이들에게 무심하지 않은 아빠가 되주길 바란다." 며 쓸쓸하게 돌아섰던 그녀. "하늘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준대." 라며 열심히 살기를 다짐했던 아름답던 그녀 최진실은,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곁을 떠나 영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우리는, 조성민은, 그렇게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던 '사랑스런 그녀'를 잃었다.


윤복희부터 서태지까지. 연예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쇼킹' 이혼의 역사를 잘 살펴보셨는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혼이 아니라 이혼 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갔느냐다. 이번 서태지-이지아 역시 이번 이혼 사건으로 좌절하지 말고 가수로서, 배우로서 새로운 삶을 건실하게 살아가길 바라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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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빠졌군요 2011.04.24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봉조와 현미 - 이봉조가 유부남이었고 아이가 2명 있었죠. 불륜사이에서 결혼과 이혼을 하게됐죠. 패티김과 길옥윤의 이혼도 있구요 ...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2012.05.26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윤복희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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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atala.tistory.com BlogIcon 아딸라 2011.05.28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잘 적으셨는데요? ^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