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MBC와 SBS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다.


파업이라면 학을 띠는 국민들이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어쩐지 국민적 분위기가 대환영이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행태가 마치 군사정권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밑도 끝도 없이 힘으로 몰아 부치는 뻔뻔스러움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MBC와 SBS는 최대한 방송에 차질이 없을 정도로 파업에 돌입한다고 하지만, 방송에 차질이 생겨도 상관 없다. 작은 걸 희생해서 큰 걸 얻어낼 수 있다면 그 정도 손해야 감수 못하겠는가. (수구언론인 조중동의 융단폭격이 뻔히 예상 되기는 하지만)



우선 지금까지의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일지를 예전의 포스팅을 통해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이명박은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지 못했던 노무현이 어떤 식으로 몰락하는지 지척에서 목도했던 몇 안 되는 거물 정치인이었다. 거기에 이어 쇠고기 파동이 일어나며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곤두박질치는 지지율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이명박 정권은 끝내 '방송장악' 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이 연출하고 그의 가신들이 출연한 2008년 방송장악은 역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방송과 관련 된 모든 사람들을 인적쇄신 하겠다는 목표 하에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것은 '소통의 논리' 였다.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을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국민과 직접적으로 대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그 소통의 논리는 방송 장악을 위한 하나의 명분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다. 국민들은 여전히 소통의 부재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만의 소통 창구를 만들어 내는데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권의 '행동대장' 혹은 '군기반장' 이라고 불리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방송-언론 관련 인적 쇄신에 총대를 맨 인물이었다. 장관으로 취임 하자마자 "노무현 정권 때 일하던 사람들 모두 나가라." 며 반 협박을 시작했던 유장관은 올림픽 전후로 연예인 응원단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MB의 강력히 비호 아래 문화 예술계를 손 쉽게 장악했다. 방송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문화예술계가 반(反)정권적 성향을 띄지 못하도록 유 장관의 움직임은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최근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의 퇴진이 문화부 감사관실의 갑작스런 특별 조사와 그에 따른 유 장관의 직권 해임으로 이뤄진 것은 "문화 예술계를 장악하겠다." 는 유인촌의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게다가 유 장관은 국립 오페라단 사무국장에 청와대 대변인실 출신 김모 행정관을 임명하며 문화 예술계 전반을 MB 세력으로 확장시켰다. 재밌는 것은 "사무국장에 취임한 김모 행정관은 오페라나 공연분야 근무 경력이 전혀 없을 뿐더라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업무 부적응과 근무태만 등의 이유로 퇴출 된 인사" (민주당 논평 中) 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강모씨를 임명하면서 문화 예술 위원회, 국립 오페라단, 국립 박물관 등 문화 예술계 내로라하는 자리들은 모두 친 MB 성향의 인사들이 장악했다. 방송 장악을 위한 첫 번째 토대가 완성된 셈이다. 어차피 방송과 문화예술이 함께 보조를 맞춰 걸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문화예술계가 유인촌의 손아귀 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청와대 쪽에서 보자면 상당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계가 약 1년 여만에 유인촌의 손아귀 속에 들어간 것처럼 방송계 역시 MB 정권의 서슬퍼런 숙청 논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다. 사실 문화예술계 장악과 방송 장악은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천천히, 그러나 용의주도하게 함께 진행 되었다. 이는 방송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몇 몇 인물들의 정치적 성향과 과거의 행적만 살펴 보아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일이다.


2008년,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은 KBS 정연주 사장 '배임죄 논란' 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임명권만을 갖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임면권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냐 하는 법적 문제도 화젯거리로 떠 올랐다. 정연주 사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며 퇴진하라는 정부에 강력히 반발했고 KBS 내부는 친 정연주 세력과 반 정연주 세력, 확대하자면 반 이명박 세력과 친 이명박 세력으로 양분 되어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정연주의 반발에 눈 하나 깜짝할 정권이 아니다. MB 정권은 끝끝내 '노무현의 남자' 라고 불리던 정연주 사장에게 '배임죄' 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 KBS 사장직에서 강제 사퇴시켰다. 이른바 KBS 사태에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깊숙히 관여했고, 최시중 방통위 회장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권과 방통위의 합작품이 바로 'KBS 사태'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기에 이어 '쇠고기 파동' 의 주범이라고 불리던 [PD수첩] 역시 철퇴를 맞았다. 명목 상으로는 잘못 된 보도를 한 언론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지만 내면에는 당연히 [PD수첩] 을 내보낸 MBC에 대한 압박용 공세였다. 노무현 탄핵 사건 때부터 반 한나라당 성향을 띄고 있는 MBC가 존재하는 한 MB 정권의 방송 장악은 미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MB 정권은 한나라당을 동원해 [PD수첩] 과 MBC에 대대적인 책임을 물으며 프로그램을 난도질 했다. 검찰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수사 끝에 청와대는 끝내 [PD수첩] 의 배후로 지목 된 조능희 CP와 송일준 PD를 보직해임시키고 MBC 민영화 논란을 함께 공론화 시키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얻어낸다.


재밌는 것은 KBS 파문과 MBC 파문의 중심에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누구인가? 최시중 방통위회장은 MB 시대와 함께 혜성 같이 등장한 '이명박의 남자' 다. 항간에서는 '대통령의 연인'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최시중 방통위 회장과 MB 시대의 노선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명박 취임 전부터 이명박 캠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명박의 '정치적 스승' 을 자처할 정도로 MB 정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그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방송가에 등장했다는 것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MB 정권의 방송 장악에 상당한 영향력을 펼쳐 보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KBS 이사진 추천 및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명, EBS 사장 임명, 방송-통신 및 인터넷 사업 인허가와 같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그의 움직임은 정연주 해임논란, [PD 수첩] 파문과 맞물려 노골적인 정치색을 띠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PD 수첩] 파문 때에는 MBC 엄기영 사장을 만나 "MBC가 사과를 해야 하는거 아니냐" 며 엄사장을 압박해 논란을 낳았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는 당시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 속에서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겠다." 며 당당히 말했던 최시중이지만 취임 8개월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이명박의 남자' 임을 완전히 확인시켜준 것 밖엔 없다.


KBS와 MBC 등 공중파 방송이 연달아 '철퇴' 를 맞는 와중에 케이블 방송사 역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케이블 방송 장악은 더더욱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바로 YTN 방송 사장 임명 논란이다.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연합방송 YTN에 이명박의 방송특보를 지낸 구본홍이 임명 되면서 YTN 노조는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라며 강력한 투쟁에 나섰다. 서로 치고 받는 투쟁 속에 YTN 사태는 끝내 청와대의 승리로 종결 지어졌다.


구본홍은 YTN 사장으로 임명되는 즉시, 현 정권에 비판적이던 [돌발영상] 을 폐지하는 등 보수적 인사를 단행했고 말많고 탈많던 조직인사개편까지 보수파 인사로 채워 넣으면서 '대통령의 특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YTN 노조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하려던 앵커의 방송원고를 생방송 도중 갑자기 빼앗은 일과 관련하여 "YTN은 이제 구본홍을 따르는 충실한 개일 뿐" 이라는 노조의 분통도 함께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구본홍 뿐 아니라 지금 대부분의 방송 관계자들은 '친 MB' 인사들로 가득하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리랑 TV 방송 사장에는 대선 당시 한나라당 특보를 지냈던 정국록이, KBS 이사장에는 친 이명박계인 유재천이,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는 이명박의 언론특보 단장을 지냈떤 양휘부가,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 라이프) 사장에는 이명박 캠프 특보였던 이몽룡이, 언론문화재단 이사장에는 이명박 캠프 언론특보를 지냈던 최규철이 임명됐다.


여기에 자산 규모 17조9500억원의 거대 통신기업 KT의 후임 사장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내정되면서 문화예술-방송-통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언론 장악의 틀이 마련되었고, 공기업 뿐 아니라 민영기업까지 MB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됐다. 더 나아가 KBS-MBC가 철퇴를 맞으며 쓰러졌고 SBS에서는 '왕당파' 윤세영 회장이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친 보수, 친 MB' 를 표방하고 있어, 실상 윤세영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역시 청와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여론을 선도하고 움직여야 하는 방송 및 언론이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서게 되자 방송의 중립성과 자율성은 크게 훼손당했다. 오랜 시간동안 정권과는 뗄레야 뗄 수 없었던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노골적인 언론장악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는 15년의 시간 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MB 정권의 '방송 및 언론 장악' 의 또 다른 목표는 누구인가?


그건 바로 지금 마우스를 잡고 있는 "당신" 이다.


방송통신위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개정법률안 중에는 네티즌과 포털사이트의 자유발언을 통제하기 위한 교묘한 법률이 숨겨져 있다. 제119조 '정보의 삭제 요청' 이 바로 MB 정권이 노리는 마지막 여론 통제다. 주요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터넷에 올려진 글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해당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고, 해당사이트는 피해자의 요구를 들어 해당글을 접근 금지조치, 삭제 해야 한다. 얼핏 악플에 의한 희생자를 막아보자는 순수한 의도인 듯 싶지만 이 법률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눈과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이명박의 '절대반지' 다.


MB정권과 한나라당을 불리하게 몰아부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여론 확산이다. 아무리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움직인다고 해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터넷을 통제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즉, MB는 최시중을 앞세운 방통위를 통해 정보통신망 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정권에 비판적인 글이나 이야기, 자유로운 문제제기와 토론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는 길을 터 놓게 된 것이다. 정권 초기부터 "인터넷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 운영하기 참 힘들다." 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온 MB였으니 이런 수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엄청난 방송 장악 프로젝트의 마지막 종착점으로 지금 실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MBC 민영화 논란이다. 그러나 MBC 민영화는 민영화가 아니라 삼성, 현대 또는 조중동의 개 노릇을 하는 사영화 일 뿐이다. 이번 한나라당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공정성 있는 언론, 중립을 지키는 언론의 참모습은 결코 보여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업주, 사주를 위한 방송으로 전락한 것이 과연 대중을 위한 방송인지, 가치있는 언론의 중립성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MBC 민영화 아니, "MBC 사영화" 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완성단계에 다달으면 대기업과 수구언론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질 것이고 그만큼 기득권과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의 저돌적 움직임은 심화되어 갈 수 밖에 없다. 조만간 MBC 뉴스에서 삼성의 비리 관련 뉴스를 보지 못하고, 조중동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지금껏 이들의 언론 장악 형태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MB 정권의 마지막 방송 장악 종착점은 결국 MBC 사영화라는 무시무시한 프로젝트라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MBC와 SBS, KBS 노조의 연대 파업이 코 앞으로 다가온 이 때, 방송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지켜내야 할 것은 지켜내야 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의 손에서 나온다는 헌법의 당연한 법 조항처럼 국민이 지지하고, 국민이 보호하는 파업은 반드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수순을 걷게 될 것이다.


소통의 미덕을 강조했던 이명박식 소통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방송, 언론, 문화예술, 통신, 인터넷을 청와대가 완전히 장악하는 'MB 중심' 의 시대 말이다. 국민들과의 쌍방향적 상호작용을 통해 능동적인 민주사회를 창조하고, 국민들 속에서 호흡하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공약(公約)은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공약(空約)일 뿐이었다. 한 나라의 방송과 언론이 파란 지붕 밑에 사는 "한 남자" 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씁쓸하고 안타깝다.


방송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참고 견딜 수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방송을 지키고, 수호할 수 있다면.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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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잡으면 가장 먼저 장악해야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노무현 정권이 재임기간 동안 끊임없이 구설에 시달려야 했던 것도 바로 언론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으로 대표되는 조중동의 여론 몰이는 한 나라의 정권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조중동을 능가하는 파워를 가지고 있는 TV 방송은 권력자로서는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필수요소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러하듯이 대권이 바뀌고 나면 가장 먼저 착수되는 것은 역시 방송 장악이다.


그러나 2008년 첫 임기를 시작한 MB 정권의 방송 장악 제스추어는 대단히 노골적이라는 면에서 반감을 산다. 순진한건지, 무식한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의 '방송장악' 은 지금도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대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방송 및 언론 장악 일지를 살펴보자.





이명박은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지 못했던 노무현이 어떤 식으로 몰락하는지 지척에서 목도했던 몇 안 되는 거물 정치인이었다. 거기에 이어 쇠고기 파동이 일어나며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곤두박질치는 지지율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이명박 정권은 끝내 '방송장악' 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이 연출하고 그의 가신들이 출연한 2008년 방송장악은 역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방송과 관련 된 모든 사람들을 인적쇄신 하겠다는 목표 하에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것은 '소통의 논리' 였다.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을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국민과 직접적으로 대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그 소통의 논리는 방송 장악을 위한 하나의 명분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다. 국민들은 여전히 소통의 부재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만의 소통 창구를 만들어 내는데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권의 '행동대장' 혹은 '군기반장' 이라고 불리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방송-언론 관련 인적 쇄신에 총대를 맨 인물이었다. 장관으로 취임 하자마자 "노무현 정권 때 일하던 사람들 모두 나가라." 며 반 협박을 시작했던 유장관은 올림픽 전후로 연예인 응원단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MB의 강력히 비호 아래 문화 예술계를 손 쉽게 장악했다. 방송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문화예술계가 반(反)정권적 성향을 띄지 못하도록 유 장관의 움직임은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최근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의 퇴진이 문화부 감사관실의 갑작스런 특별 조사와 그에 따른 유 장관의 직권 해임으로 이뤄진 것은 "문화 예술계를 장악하겠다." 는 유인촌의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게다가 유 장관은 국립 오페라단 사무국장에 청와대 대변인실 출신 김모 행정관을 임명하며 문화 예술계 전반을 MB 세력으로 확장시켰다. 재밌는 것은 "사무국장에 취임한 김모 행정관은 오페라나 공연분야 근무 경력이 전혀 없을 뿐더라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업무 부적응과 근무태만 등의 이유로 퇴출 된 인사" (민주당 논평 中) 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강모씨를 임명하면서 문화 예술 위원회, 국립 오페라단, 국립 박물관 등 문화 예술계 내로라하는 자리들은 모두 친 MB 성향의 인사들이 장악했다. 방송 장악을 위한 첫 번째 토대가 완성된 셈이다. 어차피 방송과 문화예술이 함께 보조를 맞춰 걸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문화예술계가 유인촌의 손아귀 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청와대 쪽에서 보자면 상당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계가 약 1년 여만에 유인촌의 손아귀 속에 들어간 것처럼 방송계 역시 MB 정권의 서슬퍼런 숙청 논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다. 사실 문화예술계 장악과 방송 장악은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천천히, 그러나 용의주도하게 함께 진행 되었다. 이는 방송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몇 몇 인물들의 정치적 성향과 과거의 행적만 살펴 보아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일이다.


2008년,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은 KBS 정연주 사장 '배임죄 논란' 이다. 여기에 대통령이 임명권만을 갖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임면권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냐 하는 법적 문제도 화젯거리로 떠 올랐다. 정연주 사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며 퇴진하라는 정부에 강력히 반발했고 KBS 내부는 친 정연주 세력과 반 정연주 세력, 확대하자면 반 이명박 세력과 친 이명박 세력으로 양분 되어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정연주의 반발에 눈 하나 깜짝할 정권이 아니다. MB 정권은 끝끝내 '노무현의 남자' 라고 불리던 정연주 사장에게 '배임죄' 라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 KBS 사장직에서 강제 사퇴시켰다. 이른바 KBS 사태에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깊숙히 관여했고, 최시중 방통위 회장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권과 방통위의 합작품이 바로 'KBS 사태'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기에 이어 '쇠고기 파동' 의 주범이라고 불리던 [PD수첩] 역시 철퇴를 맞았다. 명목 상으로는 잘못 된 보도를 한 언론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지만 내면에는 당연히 [PD수첩] 을 내보낸 MBC에 대한 압박용 공세였다. 노무현 탄핵 사건 때부터 반 한나라당 성향을 띄고 있는 MBC가 존재하는 한 MB 정권의 방송 장악은 미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MB 정권은 한나라당을 동원해 [PD수첩] 과 MBC에 대대적인 책임을 물으며 프로그램을 난도질 했다. 검찰까지 동원한 대대적인 수사 끝에 청와대는 끝내 [PD수첩] 의 배후로 지목 된 조능희 CP와 송일준 PD를 보직해임시키고 MBC 민영화 논란을 함께 공론화 시키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얻어낸다.


재밌는 것은 KBS 파문과 MBC 파문의 중심에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누구인가? 최시중 방통위회장은 MB 시대와 함께 혜성 같이 등장한 '이명박의 남자' 다. 항간에서는 '대통령의 연인' 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최시중 방통위 회장과 MB 시대의 노선은 거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명박 취임 전부터 이명박 캠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명박의 '정치적 스승' 을 자처할 정도로 MB 정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그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방송가에 등장했다는 것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MB 정권의 방송 장악에 상당한 영향력을 펼쳐 보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KBS 이사진 추천 및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명, EBS 사장 임명, 방송-통신 및 인터넷 사업 인허가와 같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그의 움직임은 정연주 해임논란, [PD 수첩] 파문과 맞물려 노골적인 정치색을 띠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특히 [PD 수첩] 파문 때에는 MBC 엄기영 사장을 만나 "MBC가 사과를 해야 하는거 아니냐" 며 엄사장을 압박해 논란을 낳았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는 당시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 속에서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겠다." 며 당당히 말했던 최시중이지만 취임 8개월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이명박의 남자' 임을 완전히 확인시켜준 것 밖엔 없다.





KBS와 MBC 등 공중파 방송이 연달아 '철퇴' 를 맞는 와중에 케이블 방송사 역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케이블 방송 장악은 더더욱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바로 YTN 방송 사장 임명 논란이다.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할 연합방송 YTN에 이명박의 방송특보를 지낸 구본홍이 임명 되면서 YTN 노조는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라며 강력한 투쟁에 나섰다. 서로 치고 받는 투쟁 속에 YTN 사태는 끝내 청와대의 승리로 종결 지어졌다.


구본홍은 YTN 사장으로 임명되는 즉시, 현 정권에 비판적이던 [돌발영상] 을 폐지하는 등 보수적 인사를 단행했고 말많고 탈많던 조직인사개편까지 보수파 인사로 채워 넣으면서 '대통령의 특사'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YTN 노조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하려던 앵커의 방송원고를 생방송 도중 갑자기 빼앗은 일과 관련하여 "YTN은 이제 구본홍을 따르는 충실한 개일 뿐" 이라는 노조의 분통도 함께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구본홍 뿐 아니라 지금 대부분의 방송 관계자들은 '친 MB' 인사들로 가득하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리랑 TV 방송 사장에는 대선 당시 한나라당 특보를 지냈던 정국록이, KBS 이사장에는 친 이명박계인 유재천이,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에는 이명박의 언론특보 단장을 지냈떤 양휘부가,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 라이프) 사장에는 이명박 캠프 특보였던 이몽룡이, 언론문화재단 이사장에는 이명박 캠프 언론특보를 지냈던 최규철이 임명됐다.


여기에 자산 규모 17조9500억원의 거대 통신기업 KT의 후임 사장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내정되면서 문화예술-방송-통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언론 장악의 틀이 마련되었고, 공기업 뿐 아니라 민영기업까지 MB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됐다. 더 나아가 KBS-MBC가 철퇴를 맞으며 쓰러졌고 SBS에서는 '왕당파' 윤세영 회장이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친 보수, 친 MB' 를 표방하고 있어, 실상 윤세영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역시 청와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여론을 선도하고 움직여야 하는 방송 및 언론이 정부의 손아귀에 들어서게 되자 방송의 중립성과 자율성은 크게 훼손당했다. 오랜 시간동안 정권과는 뗄레야 뗄 수 없었던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노골적인 언론장악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는 15년의 시간 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MB 정권의 '방송 및 언론 장악' 의 마지막 종착역은 어디일까?


그건 바로 지금 마우스를 잡고 있는 "당신" 이다.


방송통신위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개정법률안 중에는 네티즌과 포털사이트의 자유발언을 통제하기 위한 교묘한 법률이 숨겨져 있다. 제119조 '정보의 삭제 요청' 이 바로 MB 정권이 노리는 마지막 여론 통제다. 주요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터넷에 올려진 글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해당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고, 해당사이트는 피해자의 요구를 들어 해당글을 접근 금지조치, 삭제 해야 한다. 얼핏 악플에 의한 희생자를 막아보자는 순수한 의도인 듯 싶지만 이 법률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눈과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이명박의 '절대반지' 다.


MB정권과 한나라당을 불리하게 몰아부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여론 확산이다. 아무리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움직인다고 해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터넷을 통제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즉, MB는 최시중을 앞세운 방통위를 통해 정보통신망 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정권에 비판적인 글이나 이야기, 자유로운 문제제기와 토론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는 길을 터 놓게 된 것이다. 정권 초기부터 "인터넷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 운영하기 참 힘들다." 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온 MB였으니 이런 수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은 '대통령' 이라는 상징성 뿐 아니라 2008년 한국 방송가를 가장 정신없게 뒤 흔들었던 인물이다.


노무현 정권의 퇴진과 본격적인 MB 시대의 등장 이래 이명박의 이름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한국 방송가가 주시해야만 하는, 혹은 주시할 수 밖에 없는 태풍의 핵이 됐다. MB 정권은 정권 초창기부터 언론장악과 여론몰이를 정권의 승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파악했다. 촛불시위로 촉발 된 퇴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결국 KBS, MBC, YTN 등 국내 굵직굵직한 방송사들을 하나씩 '처단' 하며 MB 집권의 초석을 다졌다.


언론탄압이라는 무수한 비판 속에서도 끝내 이명박이 방송사를 장악하고, 촛불인사들을 짓밟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일 수 밖에 없었다. 정연주 같은 거물급 인사가 이명박의 퇴진 압박 속에 끝내 사퇴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이명박은 동시대 가장 파워있는 방송가 인사이자, 소리 없이 방송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이다. 무서운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여전히 분주하게 방송가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서히 한국 방송이 MB 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통의 미덕을 강조했던 이명박식 소통은 이런 것이었다. 방송, 언론, 문화예술, 통신, 인터넷을 청와대가 완전히 장악하는 'MB 중심' 의 시대 말이다. 국민들과의 쌍방향적 상호작용을 통해 능동적인 민주사회를 창조하고, 국민들 속에서 호흡하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공약(公約)은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공약(空約)일 뿐이었다. 한 나라의 방송과 언론이 파란 지붕 밑에 사는 "한 남자" 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 씁쓸하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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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부진을 겪고 있는 MBC가 오랜만에 화색이다. 250억을 쏟아 부은 [에덴의 동쪽] 의 1, 2회가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타짜] 라는 막강한 경쟁작이 있지만 송승헌을 필두로 워낙 출연진이 빠방한데다가 중견 배우들에 대한 신뢰감도 커서 잘만 하면 보기 좋은 싸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 을 보다 보면 송승헌보다 더 눈에 띠는 '이름' 하나가 있다.


바로 [에덴의 동쪽] 의 작가 '나연숙'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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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숙 작가는 80년대 김수현 등과 함께 한국 드라마계를 대표했던 '국보급 작가' 였다. 시청률도 워낙 좋고, 드라마에 담는 메시지도 확고해서 자기 색깔이 아주 또렷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그녀가 쓴 드라마 중 가장 유명한 드라마가 유인촌이 주연했던 [야망의 세월] 이다. 한 샐러리맨이 기업 회장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 를 그려냈던 [야망의 세월] 은 89년 방영 당시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올린 인기 드라마였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바로 [야망의 세월] 에서 유인촌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실제 주인공이 당시 현대 건설 회장이었던 이명박이라는 사실이다. [야망의 세월] 의 높은 인기와 더불어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나연숙 작가도, 유인촌도 아닌 '샐러리맨의 신화' 로 급부상 한 이명박 회장이었다.


[야망의 세월] 을 보면 '현대건설' 을 만들고 일으켜 세운 인물이 꼭 이명박처럼 그려진다. 극 중 이명박을 연기했던 유인촌은 특유의 다부지고 똑 소리나는 언어로 무대뽀 사주(정주영)를 설득하는 한편 어떤 위험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현대 건설을 일으켜 세우는 불세출의 영웅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70년대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앞에서도 자신의 줏대와 소신을 꺾어보이지 않는 드라마 속 유인촌의 모습은 입이 쩍 벌어질만큼 소신있고 아름다웠다.


[야망의 세월] 은 더 나아가 현대건설이 깊숙하게 참여했던 소양강 댐 건설을 이명박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그려내기도 했다. 모두가 "불가능 하다" 고 하던 소양강 댐을 유인촌이 밤새 날고 기며 만들어 내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역시 이명박이야!" 라는 감탄사와 함께. 그 뿐인가. 칼을 든 폭도들이 현대건설 금고를 빼앗아가기 위해 난입했을 때 모든 사원이 도망가는 와중에도 유인촌만은 꿋꿋하게 금고를 지키고 있는 장면도 있었다. 그 꼿꼿한 '정신' 을 보면서 당시 사람들이 '이명박 신드롬' 에 심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작 이상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신화' 같은 장면들이 있지만 각설하고 정리하자면 [야망의 세월] 이야말로 '샐러리맨의 신화' 로 불리는 '이명박 신화' 의 진원지가 된 작품이었다. 당시 [야망의 세월] 을 집필했던 나연숙 작가는 "현대건설이 근검하고 절약하는 지금 시대 귀감이 될 만한 기업이라고 생각해서 이 드라마를 쓰게 됐다. 특히 이명박 회장의 일대기를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었다." 며 [야망의 세월] 이 만들어 놓은 '이명박 신드롬' 에 불을 붙이는 기름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나연숙과 이명박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이미 종교적으로도 '통' 해 있는 사이였다.


허나 그 때 사람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야망의 세월] 의 유인촌은 '이명박' 이 맞았지만, 유인촌이 한 일이 모두 '이명박이 한 일' 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야망의 세월] 스토리의 대부분은 이명박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나연숙 작가의 90% '뻥튀기' 였다는 것이다.


우선 '이명박 신화' 의 근원이 됐던 '소양감 댐 건설' 이야기는 사실 나연숙 작가가 만들어 낸 '100% 허구' 였다. 소양강 댐 건설에 있어 박정희 대통령과 담판을 짓고 댐 건설을 들었다 놨다 했던 것은 이명박이 아니라 현대건설의 실질적 오너였던 정주영 회장이었다. 거기에 정주영 회장을 보필하고 있던 서울 공대 출신 간부들이 총력을 다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소양강 댐 신화' 였다. 이명박은 소양강 댐 건설 당시에 현대건설 간부도 아니었고, 참여에도 배제되어 있었다.


그런 사실관계를 완벽히 무시하고 나연숙 작가가 [야망의 세월] 에서 소양강 댐 건설과 유인촌을 한 몸으로 묶어버리니 현실에서도 '소양강 댐' 하면 '이명박' 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를 재밌게 쓰려고 해도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다면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켰어야 했는데 그 선을 넘어서 버리니 픽션과 팩트과 완전히 뒤엉켜 버리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여기에 대해 작가는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유인촌은 이명박이다." 라고 못을 박아 버렸으니 이거야 말로 책임 의식 부재라 할만 하다.


또한 금고를 빼앗으려는 폭도들에 맞서 '홀로' 금고를 지켰다는 '이명박 신화' 역시 [야망의 세월] 이 엄청나게 부풀린 이야기 중 하나다.


정주영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그 당시 이명박 씨가 금고를 지킨 건 맞는 말인데 혼자 지킨 건 아니었다. 이명박 씨는 금고를 지키던 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며,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이명박 씨 혼자 다 한 것처럼 만들어 놔서 회사에서 여러모로 위화감이 많이 조성됐다. 드라마를 보면 조선소니 자동차니 다 이명박 씨 업적으로 나오는데 그거 다 드라마 작가의 장난, 조작이다." 라고 증언해 [야망의 세월] 이 만들어 낸 '이명박 신화' 를 정면에서 반박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현대건설' 을 나홀로 일으켜 세웠던 '영웅담' 에 대해서도 평가는 냉혹하다. 현대건설을 일으켜 세운 것은 전적으로 정주영 회장의 공이지 이명박 회장의 공이 아니며, 이명박 회장 취임 이후에 현대건설은 오히려 적자폭이 커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주장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샐러리맨의 신화' '현대건설의 영웅' 이명박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되는 이야기다.


당시 이명박과 현대건설에 함께 입사해 동고동락했던 이상백 전 벡텔 부사장은 [야망의 세월] 나연숙 작가가 '장난' 쳐 놓은 이명박 신화를 이렇게 고쳐 놓는다.


"나는 이명박 신화에 대해서 생각이 좀 다른데, 사실 현대건설에 ‘이명박 신화’ 는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나 내가 입사할 때 이미 현대건설은 국내 5대 건설사였습니다. 현대건설의 성장은 전적으로 사주인 정주영 회장의 덕으로 봐야 해요.


모든 아이디어, 전략, 결단은 정 회장에게서 나왔죠. 오너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전세계 기업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의 사람은 스태프에 불과해요. 정 회장이 현대건설의 리더십 그 자체였고 이 대통령은 스태프 중의 수장이었다고 할 수 있죠.


[야망의 세월] 이 방송되고 나서 현대건설 출신자들 사이에서 그 드라마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이 나왔죠. 아까 말했듯이 현대의 임원들은 일종의 ‘정주영 복제인’ 입니다. 주역은 누가 뭐래도 정 회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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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이명박의 '자서전' 제목처럼 정말 '신화는 없었다'. 이명박 신화를 만든 것은 [야망의 세월] 이라는 드라마 한 편이었고, 그 신화는 그저 드라마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야망의 세월] 나연숙 작가가 튀겨놓은 수많은 '뻥' 들과 신화 같은 영웅담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풀려 지고 과장되어 결국 '샐러리맨의 신화' 를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어 놨다. 드라마 한 편으로 시작 된 잘못된 사실들이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는 것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슬프게도 이명박 신화는 나연숙 작가의 손 끝에서 조작 된 철저한 '픽션' 에 불과했고, 지금 우리는 그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부딪혀가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야망의 세월] 에서 이명박을 연기했던 유인촌은 지금 문화부 장관이 되어 있고, 14년 동안이나 방송 작가 일을 그만 뒀던 나연숙 작가는 'MB의 시대' 에 TV 드라마에 복귀했으며, 그간 방송사에 묻혀 있던 드라마 [야망의 세월] 은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케이블에서 재방송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야망의 세월] 의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야망의 세월] 을 만들어 냈던 세명의 '주인공' 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역사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작가가 드라마를 재밌게 쓰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도를 넘어선 '이명박 위인전' 드라마는 어째 지금에 이르러서 돌이켜 보면 껄쩍찌근하기 짝이 없는 느낌이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 이상하고도 야릇한, 20년 동안 깜빡 속아온 것 같은 이 느낌을.


아! 그냥 다섯 글자로 정리해야겠다.


"신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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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가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그동안 지적인 이미지와 똑 부러진 말솜씨로 사랑 받던 정선희 이기에 이번 논란은 상당히 의외다.



정선희가 보여주었던 그 능력은 정오의 희망곡을 청취율 1위에 등극시키는 등의 파워를 발휘해 왔다. 지금 정선희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 역시 케이블 포함 4개에 달하는 등 정선희는 여자 MC로서 그 진가를 인정 받고 있는 프로다.



비록 폭발적이진 않지만 그동안 정선희가 보여주었던 꾸준함을 생각해 보면, 정선희가 여자 진행자로서 현재 할 수 있는 최대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정선희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고 있다.



물론 부적절한 발언이었지만 정선희가 감당해야 할 화살에는 독이 묻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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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발언, 잘못이지만 뜻을 제대로 파악해야



정선희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나라물건 훔쳐가지고 자꾸 팔아넘기는 분들은 그거요, 우리가..아무리 뭐 광우병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 해두요, 이런 사소한 거, 환경오염 시키고 이렇게 맨홀 뚜껑 퍼가고, 이게 사실 굉장히 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되는 범죄거든요. 그러니까 큰일 있으면 흥분하고 같이 막 하는 분들 중에 이런 분이 없으리라고 누가 압니까. 나 하나부터 지켜 나가면 그래도 조금 더 단속을 하게 되지 않을까, 작은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큰 것만 자꾸 생각하는 것도 사실 모순인것 같아요.”



이 말을 잘못 오해 하면, 광우병 촛불 집회 하는 사람들 중, 범죄자도 있을 수 있으니 큰일 할 바엔 조그만 착한 일이나 더해라 라는 뜻이 된다.



물론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광우병 때문에 온국민이 불안에 떨어야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탄핵 이야기 까지 오가는 마당에 비유를 들어도 꼭 그런 비유를 들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발언의 요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발언의 정말 중요한 요지는 “작은 것부터 지키고 큰일을 도모해야 한다. 작은 일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큰일 있다고 나서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그러므로 일단 작은 것부터 지켜나가자”라는 발언이다. 그 뜻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정선희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사회 정의에 어긋나는 발언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정선희의 이런 발언이 일부 사람에게라도, 아니 많은 사람에게 거부감을 들게 했다면 그것은 정선희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부디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도의 사과와 앞으로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뿐이다. 그러나 정선희가 정오의 희망곡에서 한 이 발언 때문에 정선희가 진행하는 다른 프로그램 홈페이지에도 항의 글이 쇄도하고 광고 스폰서들 에게까지 철회 압력이 넣어져서 결국엔 방송 보류와 광고 철회까지 당하게 되었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이 정선희가 광고하는 제품의 불매운동으로 까지 번져나갈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정선희에게 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정선희의 비유가 적절치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선희가 남에게 피해를 줄만큼의 거짓말을 했다거나 남을 비하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좀 힘들다.



정선희가 광우병이 아니라 다른 예, 만약에 2002년 월드컵을 예로 들어서 “2002 월드컵 거리 응원도 중요했지만, 그런 분들 중에 질서 안지키시는 분들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큰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작은 일부터 지켜야 하는 것이겠죠” 라고 말했더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전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소재를 사용한 것 뿐, 그 의미를 이상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정선희의 발언은 정선희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도 아니고, 광우병 집회를 비하하는 의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선희가 그 비유를 들었다고 해서 모든 활동을 중단 시키러려 하는 것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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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러한 공포심을 심어준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투표한 혹은 될 대로 되라 식으로 투표를 하지 않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그리고 현 정권이 광우병 집회에 모였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연행하게 한 것 역시,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정선희라고 광우병 사태가 안타깝지 않았을까? 정선희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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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발언 중에 “광우병”은 딱 한번 나왔다. 그 후에는 “큰일에 흥분 하시는 분들 중에”라고 말했고 그 발언이 광우병 촛불집회 쓸모없다는 뜻으로 비약 돼서는 안 된다.



물론 정선희는 잘못 했다. 민감한 사안을 끌어들여 오해 할만한 뉘앙스로 말하는 것, 그것은 좋은 진행자로서 마땅히 자제해야할 부분이다.



그러나 정선희도 인간이다. 정선희도 한 번쯤 실수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고 이번 한 번 만큼은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것이, 더 멋지지 않을까?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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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이명박. 세종 이래 가장 '명군' 으로 불리는 정조와 광우병 파동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이명박의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정조와 이명박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정조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과 정치적 상황은 이명박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정조는 끝끝내 '성공한 군주' 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 이 시대 이명박은 정조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할 것인가. 정조와 이명박,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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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를 키운 '왕' 영조 vs 이명박 키운 '왕회장' 정주영.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함께 사도세자의 '아들' 이었던 정조는 노론과는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노론의 탄핵을 받았고, 모함과 핍박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가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데에는 할아버지 영조의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였음에도 손자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정조는 영조가 포기할 수 없는 '삼종의 혈맥' 의 유일한 종손이었다.


영조는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들이는 한편 노론의 탄핵과 핍박에서 구해낸 1등 공신이었다. 조선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만인지상의 비호가 있는 한 노론의 공격은 '헛방' 에 불과한 쓸데 없는 일이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정조에게서 이루려 했다. 영조가 정조에게서 본 것은 조선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80살이 넘어선 그 순간까지도 영조는 단 한번도 정조를 의심하거나 멀리하지 않았다. "너는 나라의 흥복이다." 라는 말로서 영조는 정조를 '선택' 했고 '성장' 시켰으며 무한히 신뢰했다. 영조가 있었기에 정조가 있었고, 정조가 있었기에 영조는 건재할 수 있었다.


영조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정조가 성장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명박 역시 '왕회장' 정주영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지금까지의 성장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이명박이 '샐러리맨의 신화' 로 추앙 받을 때까지 정주영과 이명박은 일심동체라 할 만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명박이 성공적인 샐러리맨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정주영은 이명박을 두고 "젊은 시절 나를 보는 것 같다." 는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영조와 정조가 죽는 그 순간까지 변치 않는 '믿음' 과 '애정' 을 과시했던 것에 반해 정주영과 이명박은 그렇지 못했다. 이명박은 정주영의 대통령 출마를 극구 반대하다 결국 김영삼을 도와 정주영의 '저격수' 로 돌변했다. 정주영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배신이었을테고, 이명박의 입장에서 보자면 '권력의 비정함' 을 손수 실현한 것이었을테다. 이 후, 정주영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명박을 이렇게 평가했다.


"절대 이명박 같은 사람과는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영조는 정조를 버리지 않았고, 정조는 영조의 유지를 끝끝내 받들었던 것에 반해 '현대가' 의 두 거물이었던 '왕회장' 정주영과 '샐러리맨의 신화' 이명박의 끝은 이토록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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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를 극복하고 대권 차지했던 정조와 이명박



정조는 조선의 역대 임금 중 가장 즉위가 힘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아버지 '사도세자' 의 원죄를 그대로 대물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노론의 정치적 파상공세는 그를 수세로 몰기 충분했고 조금의 빈틈만 보여도 노론의 공격이 가해졌다. 아마 영조나 혜경궁 홍씨가 정조의 뒷배를 봐주지 않았다면 정조는 노론의 입김에 사지로 몰리고 말았을 것이다.


정조가 즉위하던 당시 조선은 더 이상 '임금의 나라' 가 아니었다. 조선 중기부터 중전을 통해 왕실을 장악하던 서인은 이제 노론으로 변모해 임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바로 '택군의 정치' 였다. 사도세자를 제거하던 그 순간부터 노론에게 정조는 더 이상 임금도, 택군의 대상도 아니었다. "세손(정조)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 판서나 병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 알 필요가 없으며, 더욱이 국사나 조사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라던 홍인한의 '삼불지론' 은 당시 정조가 노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론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영조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 입어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노론 입장에서 보자면 정조의 즉위는 아마 대단한 좌절이었을 것이다. 엄청난 '반대' 를 극복하고 대권을 차지한 정조처럼 이명박 역시 경선 기간 동안 엄청난 구설수와 반대에 부딪히며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정조만큼이나 이명박 역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구설' 과 '의혹' 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여러 구설들이 산적했지만 그 중 대미를 장식한 것은 역시 김경준의 'BBK 사건' 이었다. 김경준의 입국과 BBK 검찰 수사를 통해 이명박은 정치적인 수세에 몰리며 대통령 선거를 치룰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명박을 둘러싼 수 많은 의혹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파상공세를 펼친 것은 당시 여당이었던 정동영 측이었다. BBK 사건을 둘러싼 정동영과 이명박의 설전은 노론과 정조가 벌인 '삼불지론' 에 필적하는 치열함을 자아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것처럼 이명박 또한 대통령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당시 거대 당파였던 노론의 공세를 뚫고 즉위했던 정조와 의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에 당선 된 이명박의 모습은 어쩐지 묘한 공통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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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 당한 2인자들의 운명, 홍국영 vs 이재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가장 큰 '공' 을 얻게 된 것은 당연히 정조의 '수족' 이었던 홍국영이었다. 홍국영은 정조의 즉위와 함께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권신이 됐다. 만인지상 정조를 제외하고 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 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홍국영, 그 뿐이었다. 초기 정조 시대는 거부할 수 없는 정조와 홍국영의 공동정권이었다. 그만큼 정조 시대의 첫 출발은 홍국영의 입김이 상당했다.


홍국영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던 정조를 택군하는 것으로서 철저한 '킹메이커' 를 자처했다. 노론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는 정조를 보호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끝끝내 정조를 조선의 왕으로 만들어 냈다. 정조가 임금이 되는 동시에 그가 '2인자' 로서의 최대 권력을 얻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대통령' 이명박을 만든 이재오 역시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는 당내 비주류였던 이명박을 주류로 끌어 올리면서 이명박의 청와대 입성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스스로 '대운하 홍보 도우미' 를 자처했던 그는 물심양면으로 이명박을 도우면서 당내 2인자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동시에 이재오의 입김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권력 역학관계로 보자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바로 이 '2인자' 들의 운명이다. 정조 시대의 완벽한 '2인자' 였던 홍국영의 권세는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몰락의 길을 걸었고, 이명박의 오른팔이었던 이재오 역시 총선에서 낙선하며 정치적 타격과 상처를 받았다. 비정한 권력의 속성상 2인자들에게 펼쳐진 미래가 대부분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었다는 점에서 살펴볼 때 홍국영의 몰락도, 이재오의 낙선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두 명 모두 '정치적 실수' 로 인해 '제거' 당하는 운명을 걸었지만 홍국영은 자신이 선택했던 군주 정조에게 직접 제거 당한 반면, 이재오는 국민에 의해 간접적으로 제거 당했다. 주군에 의해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홍국영은 끝끝내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할 수 없었지만 이재오는 총선 낙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명박의 수족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당내 주류계의 중심으로 서서히 복귀하고 있다.


홍국영이 젊은 나이에 죽는 그 순간까지 정조를 그렸던 것에 비하면 이재오의 '컴백' 은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2인자' 로 제거 당했던 이재오는 다시금 '2인자' 로 당내 복귀를 서두르며 다시 한 번 권력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불행하게도 달라진 시대의 변화 앞에 2인자들의 운명 역시 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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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정적은 남성 아닌 '여성', 정순왕후 vs 박근혜



정조는 재위 내내 노론과 힘겨루기를 하며 정치를 했던 임금이었다. 그러나 정조의 진짜 '정적' 은 노론이 아니라 노론을 움직이고 있는 '할머니' 정순왕후였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던 정순왕후와 정조는 치열한 정치적 투쟁을 통해 서로를 수세에 몰아넣었다. '조선'의 임금이었던 정조와 '노론'의 임금이었던 정순왕후는 사실상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상극의 입장이었다.


관계로만 따지면 정순왕후와 정조는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다. 비록 법적인 관계이지만 왕실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묶여져 있는데다가 할머니와 손자라는 상징적 연결고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순왕후에게도, 정조에게도 이런 관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정순왕후는 세손 시절부터 정조를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인물이었고, 정조가 즉위한 뒤에도 은언군 사건을 일으키며 정조를 압박했던 정조의 최대 '정적' 이자 '난적' 이었다.


같은 궁궐, 같은 왕실 속에서 정순왕후는 정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괴롭혔다. 오라버니인 '김귀주' 의 복권을 요청하며 단식 한 것을 시작으로 정조의 배다른 동생인 은언군을 사지로 몰아 넣으며 정조의 약점을 건드렸다. 정조 역시 이런 정순왕후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때에 따라 적절한 방법으로 정순왕후의 공세를 방어했다. 정조는 노론의 '수장' 격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던 정순왕후를 포용할 수도, 배척할 수도 없는 아주 애매한 위치에 자리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이명박과 박근혜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되고 난 후에도 이명박의 가장 큰 정적은 상대 후보나 야당 당수가 아니라 같은 당에서 동거동락하고 있는 '박근혜' 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의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까발리며 야당의 공세보다 더욱 날선 공격을 했고,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이명박을 정치적 수세로 몰아 넣었다.


게다가 정순왕후가 오라비였던 김귀주의 복권에 사력을 다했던 것처럼 박근혜 역시 자신의 계파인 '친박연대' 의 한나라당 복귀를 최대의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이명박은 이런 박근혜의 행보를 바라보며 정조가 그랬던 것처럼 포용할수도, 배척할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다. 박근혜를 포용하기엔 그녀의 정치적 입지가 너무 크고, 배척하기엔 박근혜의 '독자노선' 이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는 정순왕후가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의 '당선' 을 끝까지 반대한 인물은 아니다. "이회창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대선 판도를 뒤 바꿔 놨던 박근혜는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순간을 제외하고 나면 이명박의 최대 정적이자 난적, 포용할수도 몰아낼수도 없는 정치인이 박근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명박은 정조와 마찬가지로 동시대 가장 막강한 여성 정치인과 권력 투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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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건설' 정책, 화성과 대운하.



정조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조선' 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지만 그 중 가장 백미였던 것은 단연 수원 화성의 건축이었다. 정조는 수원 화성의 건축을 통해 조선의 미래와 희망을 읽었다. 노론의 반대와 최대 건설 정책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정조는 수원 화성의 건축을 밀어 부쳤다. 정조에게 있어서 화성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생명력' 이었다.


이는 이명박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을 만든것이 '청계천' 과 '대운하' 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은 '청계천 신화' 위에 '대운하' 이슈를 던져 놓음으로써 대선 판도를 완전히 이명박 천하로 바꿔놨다. 그리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운하는 이명박의 1등 공약으로 손 꼽히며 지금까지 변함없는 위상을 떨치고 있다. 정조의 수원 화성 건축과 마찬가지로 이명박의 대운하 역시 당대에서 보기 드문 최대 건설 정책이자 이명박의 정치적 생명력이다.


그러나 정조의 수원 화성은 국민의 불같은 반대와 안 좋은 여론에 "안 할지도 모른다" 고 하면서 뒤에서는 몰래 하는 '대운하' 따위의 초라한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정조는 화성을 건축하면서 당시 조선이 투자할 수 있는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모두 실험했다. 그리고 이런 정조의 비전 속에서 정약용의 과학기술과 채제공의 꼼꼼한 관리는 빛을 발해 '10년 계획' 으로 짜여졌던 수원 화성을 3년 만에 완성시키며 조선 최고의 '건축물' 로 성장시켰다.


게다가 정조는 수원 화성을 짓는 순간 동안 단 한 번도백성들을 강제 노역시키지 않았다. 채제공조차 "백성들의 부역은 법적으로 허용된 것입니다." 라고 간언할 정도였지만 정조는 끝까지 백성들에게 월급을 주며 화성을 완성시켰다. 화성의 건설과 함께 몰락했던 농민들은 월급을 받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고 재기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수원 화성은 조선 최대의 '건설 사업' 이었던 동시에 최대의 '복지 사업' 의 모습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조는 화성 건설 동안 단 한번도 백성의 뜻을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즉시 화성 건설을 중지하게 하고 백성들을 위로했다. 정조에게 있어서 화성 건설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백성들의 삶과 안위였다. 천재지변을 무릅쓰고 화성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임을 정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런 군주의 배려에 백성들은 더욱 감동했다.


그러나 대운하는 어떤가. 200년 전 '만인지상' 이었던 정조조차 화성을 건설하는 일에 백성들의 뜻과 마음을 거스르지 않았거늘, 2008년 지금 추진되고 있는 '대운하' 는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특유의 '마이웨이' 로만 변질되고 있다. 정조의 수원 화성에는 건설과 복지, 과학과 학문, 미래와 희망이 가득했던 당대 최고의 '이슈' 였으나 이명박의 대운하에는 걱정과 근심, 파괴와 불안만이 가득한 '불행' 이다.


이명박은 정조의 수원 화성을 배워야 한다. 정조는 화성 건축을 둘러싼 걱정과 근심을 스스로 해명하고 증명하는 것으로 환희와 기쁨으로 바꿔 놨다. 이명박이 그토록 추진하고 싶어하는 대운하가 국민의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순항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국민과 서슴없이 토론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 비전이 하잘 것 없다고 보여질 때는 과감히 '포기' 할 줄 아는 미덕도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정조와 이명박의 '차이점' 만큼이나 조선 최대의 건설 정책이었던 '수원 화성' 과 대한민국 최대의 건설 정책인 '대운하' 는 참 많이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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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의 '역습', 천주교와 광우병.



정조 시대의 '정치적 혼란' 은 내부에서도 계속됐지만 바깥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바로 '천주교' 의 유입이 그것인데 왕조 국가였던 조선에 있어서 천주교의 유입은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악질 중 악질이었다. 노론은 천주교 사건을 빌미삼아 천주교를 많이 믿고 있던 남인 세력을 일거에 몰아내려는 정치적 음모를 세웠고 정조는 이런 정치적 움직임 속에서 꼼짝없이 '천주교' 에 발목을 잡혀버리는 형국이 되었다.


이명박은 또 어떤가. 이명박의 위기는 친박 계열과의 권력 투쟁 속에서도 비롯됐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광우병' 유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때 80% 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이명박은 광우병 파동과 함께 20%대의 지지율로 내려 앉았고 정부 여당인 한나라당 역시 50%대의 지지율에서 30%대의 지지율의 정당으로 폭락했다. 취임 2개월 동안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광우병 만큼 이명박의 발목을 잡은 사건도 드물다.


질병보다 무서운 '천주교 사건' 과 진짜 무서운 질병인 '광우병 파동' 은 정조나 이명박이 의도한 것이라기 보다는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정치적 역습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정조는 어떻게 천주교 사건을 해결했을까. 재밌게도 정조는 천주교 사건을 '문체반정' 을 통해 노론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남인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천주교인까지 보호하는 정치적 유려함을 선보였다.


"천주교가 날뛰는 것은 무엇때문이냐, 바로 잘못된 문체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문체는 누구 때문이냐. 바로 너희 노론 때문이 아니냐." 는 것이 바로 정조의 논리였고 이 논리에 노론은 뒷통수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정조는 천주교 사건을 문체반정으로 극복하면서 오히려 조선의 문화를 다문화, 다양화, 개별화 시켰다. 이러한 정치적 전략은 정조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는 동시에 사회 혼란을 안정시키는 명군다운 해결책이었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바깥에서의 역습' 을 당한 것은 이명박이나 정조나 마찬가지지만 이명박은 '광우병 파동' 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촛불 집회에 나간 청소년들을 핍박하는 정치적 행패부터 시작해 제대로 된 해명도, 확실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정신 없어하는 정부의 모습은 광우병 파동보다 더욱 어둡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진짜 '리더쉽' 은 바로 위기 속에서 발휘된다. 정조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을 통해 조선 최고의 명군임을 스스로 입증했지만 이명박은 여전히 안개 속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봤던 이명박의 '불도저' 리더십은 지금쯤 나사 하나가 빠진 '망가진' 불도저로 변모해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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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시대에 '정조' 를 논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명박과 정조는 닮은 것만큼 참 많이 다르다. 정조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의 시대 역시 혼란스럽다. 정조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의 시대도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있다. 그러나 정조는 그 혼란과 변화의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비전을 관철하는 것을 통해 조선의 미래와 희망을 제시했다. 정조에 비교해 봤을 때, 지금 이명박은 어디로 가고 있나.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명박이 '실패한 대통령' 이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조의 성공이 곧 조선의 성공이었듯,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임을 우리 국민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이명박의 시대에 '정조' 의 업적과 발자취를 살펴보며 새삼 이명박 정부가 지금의 위기를 뚫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과연 이명박은 끝끝내 '정조' 와 같은 명군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아직은 먼 나라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명박이 결국은 '성공한 대통령' 으로 반드시 남게 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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