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갈등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물간의 대립은 드라마에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속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관계가 나온다. 형제자매간의 갈등, 부모와의 갈등, 연인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갈등 등, 뜯어보면 모든 관계는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모든 갈등 중, 가장 비중있게 다뤄지는 갈등 중 하나는 바로 변미영(정소민 분)과 김유주(이미도 분)의 갈등이다. 그들의 악연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유주는 학창시절 변미영의 뚱뚱한 몸을 약점 삼아 괴롭혔던 학교폭력 가해자다. 변미영은 소심한 성격 탓에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 시절은 고스란히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동창회에서 김유주의 모습을 보고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쪽은 변미영이다.

 

 

 

 

 

 

동창회 정도로 끝이 난다면 다행이지만 악연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변미영이 힘겹게 취직한 회사에 바로 김유주가 있었기 때문. 직속 상사는 아니지만, 김유주는 이미 팀장이다. 인턴으로 겨우 회사 생활을 시작한 변미영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김유주는 여전히 변미영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고 피해자지만 피해야 하는 쪽은 또다시 변미영이다. 살을 뺀 변미영을 못알아 보던 김유주가 변미영을 알아보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김유주는 여전히 뚜렷한 이유 없이 변미영을 못마땅해 하며 변미영 앞에서 대놓고 신경을 긁거나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하며 변미영을 괴롭힌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과거, '사이다'를 위해서라기엔 가혹하다

 

 

 


학창시절 이후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변미영은 여전히 김유주의 발아래 놓여있다. 단순히 사회적 위치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그 때 당했던 일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재도 영향을 미친다. 변미영은 김유주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 당한 건 변미영이지만 피하는 쪽도 변미영이다. 그것은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기엔 지나치게 가혹하다. 

 

 

 


 

드라마는 이런 상황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바로 변미영의 오빠 변준영(민진웅 분)을 통해서다. 김유주는 변준영과 사귀고 있는 상태고, 급기야 임신까지 한다. 중간에 변준영의 거짓말로 인해 사이가 위태로워지지만 뱃속의 아이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매개채로 사용되고 김유주와 변준영은 결국 결혼을 결심한다. 변미영과 김유주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런 전개는 나중에 김유주에게 변미영 측이 던질 통쾌한 한방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변미영의 언니인 변혜영(이유리 분)은 변미영과 다르게 당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줄 알며,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독설을 내뱉는 캐릭터다. 막내 동생 변라영(류화영 분) 역시 천방지축에 할 말 다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변미영의 상황을 알면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키는 느낌의 통쾌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런 통쾌함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학교 폭력 희생자에 대한 드라마의 시선은 안타깝다. 김유주가 변미영의 집으로 인사를 온 날,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지만 변미영은 가족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변준영이 김유주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유주가 임신했기 때문인 탓이 더 크다. 작가는 김유주의 임신으로 두 사람이 앞으로 가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복선을 깐다. 그것이 바로 한국 가족 드라마의 정서고, <아버지가 이상해>는 바로 그 정서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 가족극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고통받는 피해자, 극복은 개인의 몫인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김유주를 받아들이면 앞으로 변미영은 끊임없이 고통받을 것이다. 김유주를 마주쳐야 할 때마다 오는 떠올리기 싫어도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고통의 시간들을 변미영에게 감당케 하는 것은 지나친 폭력이다. 물론 드라마는 이 둘의 분위기를 점점 화해 모드로 변모시켜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용서라는 것은 그리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무리 김유주가 후에 개과천선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해도 가족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상황이 억지로 형성되는 것만큼 불편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용서했다는 뜻이 곧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용서와 관계는 별개의 문제다. 용서를 했다고 하여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다 잊자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과거고, 사과를 해도 저질렀던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김유주가 오빠와 결혼을 원하면서 칼자루를 쥔 쪽은 변미영이 되었지만, 변미영은 여전히 피해자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고 얼마나 힘들어야 했는지 가족에게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억울하다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피해자는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만다.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사과를 하는 쪽이 희생을 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억지로 하는 사과는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다. 김유주가 그렇다. 변준영과 변미영의 관계를 알기 바로 몇 시간 전만해도 김유주는 변미영을 부당하게 괴롭히며 ‘갑질’을 서슴치 않았다. 관계를 알고 나서 바로 돌변한 김유주의 친절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끼칠 뿐이다. 진정어린 사과를 할 거라면 변미영이 원하는 사과를 해야 한다. 변미영은 “원하는 것이 뭐냐”는 김유주의 질문에 “너랑 가족이 되지 않는 거.”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 뜻을 존중해 줘야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있다. “그건 못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해”라고 얘기해 봤자 목적을 위한 사과가 될 뿐이다.


 

 

 

 


용서와 화해의 강요, 제 3자가 아닌 당사자에게는 폭력이다.

 

 


용서도 좋고 화해도 좋다. 그러나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데 모아두고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친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도 끊길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결국에는 화해할 수밖에 없는 뉘앙스로 몰고 간다. 그것이 과연 학교 폭력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변미영이 극복해야 할 과제처럼 몰고간다. 가족들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혼자 갈등하며 김유주를 상대해야 하는 쪽은 변미영이다. 김유주를 마주칠 때마다 혼자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도 물론 변미영이고 반격을 한 번 할 때마다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도 변미영이다.

 

 

 


이런 일이 있다면 당연히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변미영과 김유주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무관심 나아가 학교의 잘못된 시스템과 분위기가 만든 사회적인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것은 변미영 개인이고, 결국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변미영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누가 치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드라마는 용서를 납득할만한 계기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용서해야만 하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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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여자들(이하 <착않녀>)>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착하지 않은’이라는 수식어다. ‘나쁜’ 여자들이 아니다. ‘착하지 않다’는 것은 착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여자들이 아니라, 맞서 싸운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단순히 앉아서 착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인물들은 이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후자가 아니라 전자인, 그러니까 착하게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 역시 이 드라마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인물들이다. 나말년(서이숙 분)은 겉으로는 존경받는 교사였고, 우아한 사모님이지만 속은 편견과 오만, 그리고 독선에 가득 찬 인물이다. 그리고 드라마 후반부에 가서야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낸 박은실(이미도 분)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나쁜 짓을 한다. 나말년이 단순히 도덕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이라면 박은실은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허위 사실 유포와 절도 행위까지 저지르고야 만다.

 

 

 

그러나 박은실은 단순히 악을 위한 악녀가 아니다. 그는 불우한 가장 환경을 배경으로 성장하여 12년간 강순옥(김혜자)의 제자로 살아왔다. 항상 친절하고 따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김현숙(채시라 분)가 요리에 재능을 보이자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인물이다.

 

 

 

 

그는 김현숙이 들깨 찜 요리를 맛보아 주지 않자 “김현숙이 재수없다!” 며 소리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는 강순옥의 요리 노트를 훔친 것은 물론, 장부를 조작하여 횡령까지 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화를 참지 못했다. 그러나 강순옥은 달랐다. 강순옥은 확실한 증거를 보고도 “박은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박은실이 만들어 간 요리를 맛보며 “머위 들깨찜 합격이다. 바로 이맛이야”라고 문자를 보내고 “요리 노트는 내가 주는 선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요리 힘나는 요리 만들도록 해. 새 메뉴 돌아오면 언제든지 돌아오구. 넌 아주 훌륭한 제자였다.” 라며 음성 메시지까지 남겼다. 악행을 저지른 박은실마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강순옥은 앓아 누운 상황에서 신고하겠다는 현숙의 친구 안종미(김혜은 분)에게 “종미야, 너 은실이한테 왜 너네 집 옷 하나도 안 줬니? 걔 그거 예쁘다는 말 여러번 했는데. 하나 사줘야지 생각만 하고 여태 못한 나도 잘못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박은실은 그냥 제자가 아니었다. 설령 자신을 배신해도 그 아픔을 끌어안고 용서할 수 있는 자신의 딸이었고 가족이었다. 모든 질책과 엄격한 기준은 그를 위한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졌다. 종미는 자신의 가게에서 박은실에게 줄 옷을 따로 챙겨 놨고, 김현숙 역시 한층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김현숙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인물이었다. 퇴학당했던 과거에 사로잡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돈을 날리고 도박까지 손을 댔다. 그러나 그에게는 엄마도 있고, 그를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그의 일이라면 두 팔을 걷고 나서는 믿음직한 친구도 있고 결정적으로 요리에 대한 재능까지 있었다. 그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포기하지 않고 앞을 향하는 불굴의 정신까지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박은실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불안했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자신의 불행을 딛고 일어선 김현숙과 그는 대비되는 인물이지만, 김현숙과 그에게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요할 수는 없는 이유다.

 

 

 

그를 울린 것은 ‘전화좀 받으라’는 다그침이나 ‘고소하겠다’는 협박이 아니었다. 들깨찜이 합격이라는 애정어린 한마디였다. 자신의 곁에 있던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그 아픔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고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 안은 강순옥의 행동은 시청자들에게도 같은 무게로 전해졌다.

 

 

 

타이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역설적이다. 드라마 타이틀에서 주인공들이 착하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그들은 사실 착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보스러운 무능함이 아니다. 그저 다른 이를 품을 수 있는 바다같은 넓은 마음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변화 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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