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게도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하<월계수>)의 네러티브를 책임지는 것은 주인공인 이동진(이동건 분)-나연실(조윤희 분) 커플이 아니다. 초반에는 코믹함을 담당한 복선녀(라미란 분)-배삼도(차인표 분) 커플이 드라마의 중심을 잡았고 중반 이후에는 테마곡의 제목을 따서 ‘아츄커플’이라는 애칭이라는 이름이 붙은 민효원(이세영 분)-강태양(현우 분)의 인기가 드라마를 견인하는 축이었다.

 

 

 


드라마 메인을 담당해야 할 커플인 이동진-나연실 커플의 이야기는 사실 시청자들에게 그리 궁금한 요소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연실의 답답한 캐릭터는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요소였다. 결혼식을 하던 도중 감옥에 잡혀 들어간 남편과는 아직 혼인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지만, 시어머니의 갖은 부당한 요구에 속수무책이었던 그는, 어쩐 일인지 자신을 도와주려는 이동진에게는 뻔뻔하게 할 말을 다하는 캐릭터였다. 정작 말을 해야 할 곳에서는 눈물만 뚝뚝 흘리는 답답한 모습을 보이다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날이 선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은 지나치게 진부하여 마치 90년대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시대가 변했고, 시청자들은 더 이상 답답함과 착함을 동일선상에 놓지 않는다. 오죽하면 ‘고구마’와 ‘사이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을까. 답답하고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고구마’를 먹을 때처럼 꽉 막힌 느낌을 선사할 뿐이다. 이동진과 나연실 커플이 바로 그 ‘고구마 커플’이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의 사랑은 드라마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드라마의 기둥인 주인공 커플 캐릭터의 붕괴다. 

 

 

 


그들의 자리를 대신 채우는 첫 번째 커플이 바로 복선녀-배삼도 커플이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이 커플의 캐릭터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양복점을 운영하고 싶어하는 배삼도와 그를 반대하다가 결국 그를 따라 나서는 복선녀라는 설정으로 갈등을 전개시키고, 이 과정에서 다소 억척스러운 복선녀와 그런 아내에게 쩔쩔매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못하는 배삼도라는 캐릭터를 활용하여 코믹하고 개성적인 커플을 완성시켰지만 후부가 되자 이동진-나연실 커플과 마찬가지로 ‘고구마 커플’이 되었다.

 

 

 


 

배삼도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첫사랑은 일단 배삼도의 캐릭터를 비호감으로 만들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바람을 피웠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내를 두고 자신의 첫사랑의 일을 도와준다거나, 몰래 만난다거나 하는 행위는 치졸하고 비겁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복선녀에게 먼저 이혼서류를 건네는 배삼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아무리 진심이 아닌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아내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남편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이 커플에게서 더 이상 코믹함을 느낄 수 없었다.

 

 

 

 


복선녀의 캐릭터도 ‘불치병’ 설정을 너무 지나치게 끌어 답답함을 선사했다. 자신이 불치병이라 생각한 복선녀는 수회에 걸쳐 고민하고 방황하다 끝내 영정사진을 찍고 오열하고 만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 장면에서 복선녀를 불쌍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너무 지나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복선녀는 불치병 확진을 받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 첫 번째 문제다. 아무리 자신에게 중증의 병이 의심된다 하여도 병원에서 검사도 제대로 받아보지 않은 성이 여성이 무턱대고 영정사진부터 찍는다는 설정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이는 작가가 불치병이라는 소재를 임신 등, 다른 방향으로 틀기 위해 쌓아두는 포석처럼 보인다. 다소 뻔한 설정을 하나의 해프닝이나 에피소드가 아닌, 몇회에 걸친 주요 사건으로 다루는 작가의 치밀하지 못한 전개 때문에 복선녀는 불쌍하기 보단 성급하고 궁상맞은 캐릭터로 변모하고 말았다.

 

 

 


 

이런 캐릭터의 붕괴 속에 그나마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아츄커플’이다. 그러나 이 커플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끊임없이 들이대는 민효원과 점잖기만한 강태양이라는 설정의 반복은 피해갈 수 없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느껴지는 피로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매력적이어야 할 캐릭터를 매력적이지 못하게 그리고, 매력적이던 캐릭터들 조차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월계수>의 후반부는 위태롭다.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해피엔딩이겠지만, 그들이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이 ‘해피’하기보다는 짜증스럽다면 그 이야기에 문제점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좋은 배우들과 캐릭터를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야기의 흐름이 아쉽다.  그리고 끝으로 의문이 하나 남는다. 양복은 대체 언제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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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DJ DOC가 발표하고 무료 배포한 음악 ‘수취인 분명’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며 박근혜 대통령 하야관련 시위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류에 동참하는 연예인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광화문에서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는 등, 시국에 대한 심각함을 느낀 유명인들도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호흡한 것이다. DJ DOC의 음악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나 난데 없는 ‘여혐(여성혐오)’ 논란이 일었다. 가사중 ‘잘가요 Miss 박 쎄뇨리땅/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이라는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데 여성단체 페미당당이 “ 박 대통령의 공적 잘못이 아닌 대통령의 여성성을 지목해 공격하는 것은 여성혐오적 발언”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미스’는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직급이 낮은 여성을 하대할 때 쓰인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에 ‘강남역 10번출구’ 등 다른 단체들 역시 “국내 힙합 가수들은 여성혐오를 끌어오지 않고서는 가사 한 줄 못 쓰나 봅니다”며 동조했다. 24일 래퍼 산이가 발표한 ‘나쁜X’도 “병신년아 빨리 끝나 제발” “그와 넌 입을 맞추고 돌아와/ 더러운 혀로 핑계를 대” 등의 가사로 논란이 되었지만, DJ DOC의 경우는 더욱 파장이 컸다.

 

 

 

 

 

 

DJ DOC측은 ‘미스’는 ‘mistake'를 상징하고, 세뇨리땅 역시 아가씨가 아닌 새누리당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지만 중요한 것은 공연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며 그들이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공연은 취소한다고 밝혔다.

 

 

 

 


사회의 화두가 된 여혐논란이 일었지만 이 같은  일부의 반응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미스’라는 단어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나타낸다는 이유로 외국에서도 쓰임이 줄어드는 추세긴 하지만 여성혐오와 관련이 없다. 단지 결혼 유무같은 개인적 정보가 드러나는 단어에 대한 자정 노력일 뿐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미스가 하대하는 표현이라는 것 또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나이어리고 직급이 낮은 여성을 주로 ‘미스’라 지칭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김양’같은 표현보다 ‘미스 김’이 더 완곡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탓이지 여성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단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혐논란이 일면서 많은 시민들은 DJ DOC의 공연이 취소 된 것을 안타까워했고 지나친 기준 속에 말도 안되는 프레임을 씌우는 여성 단체에 대한 반감마저 증가했다. 결국 문제를 제기했으나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SNL의 남성 아이돌 성추행 논란은 엄청난 대중의 비난에 직면했다. 문제는 SNL이 측이 호스트였던 B1A4의 비하인드 영상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다. 여성 출연진들이 남성 아이돌 들의 중요 부위를 더듬는듯한 제스쳐를 취했고 ‘다 만졌다’며 만세를 부르기도 한다. 이에 팬들이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 문제가 기사화 되면서 대중의 반감을 산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분명히 약자다. 그러나 그 ‘약자’의 위치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이를테면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기 때문에 가해자는 남성이다.’라는 식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에게 거리낌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한국 tv에서도 그런 모습은 자주 목격이 되는데 여성 코미디언이라든지 패널이 본인의 동의 없이 근육질의 남성의 몸을 더듬거나, 남성 출연자의 엉덩이를 만지며 심지어는  입맞춤을 하려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만약 남성이 그 장면에서 예민한 모습을 보이면 ‘쿨’하지 못한 게 되고 여성의 행위는 오히려 웃어넘길 일로 넘어가는 식이다.

 

 

 


물론 대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다거나, 여성은 남성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두 성性의 관계가 평등할수록,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행동이 용납되어서도 안된다는 당연한 인식이 부족할 때, 문제는 불거진다. 이것은 남성역시 여성 차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사건이 일어나 논란이 인 직후, SNL의 제작진은 이 사건을 단 다섯 줄의 사과로 끝내려 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그만큼 와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의 예민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대처였다. 논란이 점점 더 거세지자 개그우면 이세영에 대한 퇴출 논란까지 일었고, 이세영은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이에 SNL측은 다시 ‘퇴출이 논의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으며 ‘이는 개인의 책임이 아닌 SNL전체의 책임’이라고 밝히며 다시 한 번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비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이세영이 이 일을 혼자서 책임지는 것 또한 합리적인 처사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영상에는 이세영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SNL도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B1A4뿐 아니라 인피니트, 김민석등 이전에도 반복되어 왔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 자체가 얼마나 해이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여혐’이든 ‘남혐’이든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단순한 남녀 차별의 범위를 넘어서 상황과 맥락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판단해야 한다. 그 안에서 심각한 잘못이 있다면 집고 넘어가야하지만, 그 맥락에서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만약 SNL이 꽁트 속에서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이런 상황극을 벌였고, 그 이야기에 맥락이 있었다면 논란은 이렇게까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고식’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성추행에 가까운 불합리한 행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논란은 커졌다. 이런 상황이 여성 아이돌에게 자행되었다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DJ DOC의 ‘수취인 분명’은 맥락상 대중이 이해할만한 가사였기에 여혐 논란은 오히려 황당한 지적이 되었다. 이런 시국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대중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성추행이나 여혐, 남혐은 단순히 단어 하나의 문제나 행동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잘 풀어낸 단어나 행동은 박수를 받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문제다. 그 문제를 대면했을 때 느끼는 대중의 온도차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이런 문제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방송이나 음악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되지 않을 때, 결국 대중은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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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의 <삼시세끼>는 또다시 10%가 넘는 시청률로 성공적인 귀환을 알렸다. 나PD의 전작 <꽃보다 청춘-아프리카 편>이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것을 두고 <삼시세끼>의 흥행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또다시 <삼시세끼>를 선택했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동성임에도 묘하게 부부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손호준과 남주혁은 형제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예능에 적용해 밥을 먹고 그 삼시세끼를 때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고즈넉한 분위기로 잡아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삼시세끼>에는 웃음 포인트가 없다. 다만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속에서 주고 받는 감정과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모이면 생겨나는 관계망을 가족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내고 그 가족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낸 것만으로도 <삼시세끼>는 흥행에 성공했다. 물론 이전의 <삼시세끼> 시리즈를 통해 차줌마, 참바다 등의 캐릭터를 이미 만들어 놓은 차승원과 유해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그러나 독설도 자극도 없는 <삼시세끼>가 또다시 성공이라는 이름을 거머쥔 것은 단순히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빚어내는 ‘편안한’ 분위 때문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차승원에게 손석희는 이런 말을 한다. “<삼시세끼> 속 차승원은 좋은 사람 같다.”. ‘좋은 사람’은 <삼시세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메뉴를 선정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차승원과 그 과정을 묵묵히 돕는 유해진.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손호준과 남주혁은 모두 ‘좋은사람’으로 묘사된다. 어느 누구 하나 반항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좋은 사람들의 끼니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예능에는 의미가 생겼다. 바로 ‘힐링’이라는 의미다.

 

 

 

현대인의 각박하고 바쁜 삶 속에서 힐링은 꽤 영향력 있는 화두가 되었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돌아가는 예능 역시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조용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예능역시 그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TVN이 새롭게 선보인 예능인 <내 귀의 캔디> 역시 힐링이라는 화두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중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성과의 통화를 통해 설레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얼핏 그동안 답습해 왔던 가상 연애 프로그램의 변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생각보다 진솔하게 와 닿는다. 서장훈의 ‘캔디’였던 윤세아가 흘린 눈물은 그들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주고받는 대화가 오히려 더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그들이 진정으로 감정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화면상에는 그런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사실이다. 삶이란 생각보다 간단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참으로 복잡해 보인다. 마음 속에 상처와 아픔이 있어도 섣불리 내보일 수가 없다. 핸드폰 전화번호 목록을 아무리 뒤적여 봐도 내 마음을 토로할 사람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친한 사람들은 있지만,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어색하고 민망한 나의 진짜 속마음은 오히려 상대방의 정체를 모를 때, 더 쉽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마음을 연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를 구하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그런 상황에서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이 따듯한 위로를 건네고 자신의 아픔도 이야기 해 주며 나에게 공감해 준다. 그것은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설렘보단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에게 받는 위로. 그런 위로가 때로는 더 따듯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따듯한 위로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 것만으로도 예능의 가치가 생겨난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예능은 이제 단순히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따듯한 위로를 건네는 방식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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