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유산(이하<백년>)>과 <오자룡이 간다(이하<오자룡>)>는 각각 시청률이 25%, 18%를 넘기는 인기 드라마다. 대중들이 이들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재미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현실성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감정은 설령 가슴을 내리치게 만드는 답답함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 있을 얘기에 느낄 카타르시스를 생각하며 참을 만큼 굉장히 중독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답답함이 시청을 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된다. 아무리 그 답답함을 참을 만큼의 재미를 담보한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주인공들의 행동은 그들의 매력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드라마의 내용마저 공감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되는 드라마에서 재미가 가장 중요한 요소겠지만 그 재미를 위해 주인공의 성격을 희생양 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인공들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점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런 행동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조연보다도 매력적이지 못하다. <오자룡>에서 오자룡(이장우)은 제목과는 달리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고 <백년>의 포커스는 주인공인 민채원(유진)이 아닌 방영자(박원숙)에게 맞춰져 있다. 그 이유는 이 두 드라마가 착하고 순진한 주인공의 성격을 전혀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자룡>에서 주인공 오자룡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바르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없이 다정한 남자다. 그러나 이 모든 매력 포인트에도 불구하고 오자룡은 칭찬보다는 비난의 중심에 서 있는 캐릭터다. 그 이유는 그는 착한 것과 바보스러움을 자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자룡>에서 위기 상황은 대개 예상한 대로 굴러간다. 예상한 대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설마 저렇게 될까’싶은 부분에서 한 치도 그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후반부에 들어서 드라마의 갈등 상황은 주로 악역인 진용석(진태현)이 계략을 꾸미면서 나타난다. 사실 진태현은 드러내놓고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뒤처리 역시 그다지 신중치 못하다. 완벽하게 용의주도한 악역도 아닌데 그 악역의 악행이 이리도 오래 지속되는 것은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오자룡은 진태현의 외도의 현장을 수차례 목격했으면서도 그걸 단지 자신의 오해로 여길 만큼 순진하다. 그러나 그 순진함은 20대 후반의 남자의 것 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다섯 살 아이의 그것에 더 가깝다. 마땅히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야 할 순간에도 오자룡은 연신 ‘내가 잘 못 본 걸 거야.’라며 자신을 다독인다. 진용석의 말도 안 되는 언변에도 한마디 대꾸하지 못한다. 단순히 ‘착하다’고 묘사하기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이건 착한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욕하게 되는 주요한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갈등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악인이 100회가 넘는 분량 중 95% 이상을 승승장구 하다 결국 5%도 안 되는 분량 안에서 급작스런 사건 해결로 귀결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드라마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시청자와의 밀당에서 이 드라마는 실패 했다. 주인공이 점차적으로 비밀에 접근해 가는 모습을 설득력있게 보여줬다면 이런 비난이 쏟아지진 않았을 터다. 주인공의 매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고도 과연 이 드라마의 타이틀이 <오자룡이 간다>일 수 있을지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백년>의 민채원 역시 결혼에 이혼까지 경험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에도 드라마의 스토리를 위해서 희생당하는 비운의 캐릭터다. 민채원은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둔 시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를 방조한 남편과 이혼을 하고도 그들의 악행에 질질 끌려 다닌다.

 

상식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수모를 겪고 이혼한 남자가 죽느니 사느니 해도 결코 혼자서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채원은 단순히 남자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그곳에 혼자 가는 대범함을 보인다. 간통죄를 뒤집어 쓸 위기에 처하고도 아무 말 못하는 답답함은 시청자들을 지치게 한다. 기껏 말을 한다고 해 봤자 “더 이상 이런 짓 그만하라”는 정도를 지키는 대답이다. 채원에게는 통쾌한 한방이 없다.

 

민채원과 방영자의 관계를 보면 대체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알 수가 없다. 민채원은 방영자를 고소해도 모자를 판에 방영자가 뻔뻔하게 나올 때면 항상 말문이 막히고야 만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이혼까지 한 마당에 방영자에게 예의라도 차리는 것인가. 민채원의 행동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악역이자 연적인 김주리(윤아정)에게 수모를 겪고 남자 주인공인 이세윤(이정진)에게 오해를 살 위기에 처해도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저런 답답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는 매력적이지 않다. 이건 천사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시녀 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극의 중심이 방영자에게 쏠려 있기에 방영자의 천적으로 나온 마홍주(심이영)이 주인공보다 더 주목을 받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인 이세윤 역시 답답하긴 매 한가지다. 최근에야 채원과 로맨스를 시작했지만 그동안 세윤이 채원을 오해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계략에 너무 쉽게 걸려드는 모습은 믿음직한 남자 주인공의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의 로맨스의 초점이 흐려진 데는 그들의 매력도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든 스토리의 흐름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오자룡이나 민채원, 이세윤등, 이들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발휘하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서 그들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자신의 역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하는 주인공이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에 휘둘리는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사실은 부잣집의 백마탄 왕자님이라거나 국수집을 일으킨다고 해서 그들의 매력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재미만 있으면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이 대중의 심리라고 해도 최소한의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드라마는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시청률은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주인공을 놓친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오늘도 답답하게 만들며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변모해 가고 있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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