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미녀배우 김태희가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옥정>은 기대와 달리 낮은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후에도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며 내홍을 겪었다. ‘새로운 장희빈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했던 <장옥정>은 왜 실패한 것일까. 또한 이 작품이 남긴 의미는 무엇이 있는가.

 

 

 

 

 

연기력 논란에 역사 왜곡까지, 발목 잡힌 장옥정

 

 

<장옥정>은 지금껏 잘 알려진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선악구도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킨 획기적 작품이었다. 숙종과 장희빈을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려낸 이 작품은 그들의 절절한 사랑을 메인 스토리로 끌고 나감으로써 전작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이 때문에 지금껏 성녀로 그려진 인현왕후는 정치적 야망이 있는 명문가 규수로, 최숙빈은 낮은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영리한 여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시청자들에게 너무 낯설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장희빈=악녀라는 선입견을 끝끝내 탈피하지 못했고 결국 사랑에 눈물지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장희빈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장옥정>은 오랜 시간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무르며 동시간대 꼴찌라는 굴욕을 맛봐야 했고, 갈등이 심화되는 중반 이 후에도 제대로 된 상승 동력을 마련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희빈을 최대한 미화하려다 보니 역사 왜곡 논란도 불거졌다. 백성들이 숭덕비까지 세워 줄 정도로 추앙받았던 민유중을 역모를 꾀하는 권신으로 그려내고, 입맛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수명을 무리하게 늘림으로써 사극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었다 항간에서는 주인공만 장희빈 일 , 판타지 사극과 다를 바 없다는 혹평까지 쏟아졌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까지 낳으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최숙빈을 승은조차 입지 못한 정치적 산물로 그려낸다든지, 인현왕후가 자신의 복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여론을 움직인다든지 하는 설정 또한 무리수로 작용했다.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한 과도한 픽션은 오히려 작품의 질을 훼손시키고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보다 철저한 고증이 아쉬웠던 대목이다.

 

 

타이틀롤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들이 연기한 장희빈에 익숙한 대중은 과도한 표정 연기와 어설픈 대사 처리를 용서하지 못했다. 중반을 지나면서 다소 안정되기는 했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론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대 장희빈 중 최고 미모를 자랑했지만, 연기력만큼은 예외였던 셈이다.

 

 

결국 <장옥정>은 당초 기대와 달리 단 한 번도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장하게 됐다.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구가의 서>에 밀렸음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 <직장의 신>에도 승기를 내어주며 역대 장희빈 중 가장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로써 지난 50년간 승승장구하던 장희빈의 흥행불패신화<장옥정>으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됐다.

 

 

 

 

장옥정이 남긴 의의는 무엇?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옥정>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나름의 의미는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스토리를 구현한데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관계를 조강지처와 첩의 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대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보다 다각화 된 접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앞서 방송 된 수많은 장희빈들이 항상 새로운 장희빈을 표방했다가 중반을 지나면 시청률 논리에 매몰 돼 전형적 선악구도로 회귀한 것과 달리 <장옥정>은 뚝심 있게 처음 설정한 스토리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심각한 오류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기획의도를 충실히 지켜나갔다는 점에서 격려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적어도 스스로의 다짐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유부단하게만 그려졌던 숙종을 정치에 능하고 사랑을 지키는 로맨티스트로 그려낸 점도 인상적이다. 단언컨대 역대 장희빈에 등장한 숙종 중 <장옥정>의 숙종이 가장 섹시하고, 정열적이었으며, 멋있었다. 환국을 서슴지 않으며 막강한 왕권을 휘둘렀던 실제 역사 속 숙종을 가장 비슷하게 묘사해 냈다. 적어도 <장옥정>의 숙종은 훗날 등장할 여러 숙종에 교과서적 표본으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

 

 

청춘스타 유아인의 열연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퇴폐적이고 마초적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보여줬던 그는 <장옥정>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력과 훌륭한 캐릭터 소화로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우왕좌왕했던 김태희 대신 극의 무게감을 한층 더한 그의 존재감은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그의 앞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장옥정>이 작품성과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제작 될 장희빈 이야기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장옥정>의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본받을 점은 강화한다면 뻔하디 뻔한 장희빈이 새롭게 탄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장옥정>이 겪은 시행착오와 그들이 남긴 족적은 그리 가볍지 않다 할 것이다.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뜻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패한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지만 <장옥정>이 나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은 인정해주고 싶다. 지난 3개월 간 고생 많았던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심심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새로운 ‘10대 장희빈의 등장을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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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그 유명한 원자 정호 사건이 전개되면서 장희빈(김태희 분)과 인현왕후(홍수현 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숙종(유아인 분)과 민유중(이효정 분)의 치열한 권력 다툼 또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쯤에서 궁금해진다. 실제 역사 속 민유중은 정말 사위인 숙종과 권력을 두고 대립했을까.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그린 민유중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민유중은 왕권을 위협했던 권신이었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속 민유중은 서인당의 당수이자 왕권을 위협하는 조선 최고의 권신(權臣)으로 그려지고 있다. 철저히 서인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는 세자 책봉을 거부해 임금을 길들이고, 임금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반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물론 온갖 권모술수를 꾸며 장희빈을 핍박하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드라마 속 최고의 악역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 민유중은 어땠을까. 우선 민유중이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서인, 그 중에서도 골수 노론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인 세력의 두 거목인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에게 학문을 배웠던 민유중은 스승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노론 세력에 합류했고, 이 후에도 이들과 정치 생명을 함께 했다. 그는 제 2차 예송 논쟁이 벌어지자 적극적으로 송시열을 지지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벼슬길에서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송시열의 문하생인데다가 송준길의 사위라는 화려한 정치적 배경을 무기 삼아 홍문관 대교,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 사간원 정언, 이조참의, 대사간, 전라도·충청도·평안도 관찰사, 성균관 대사성,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병조판서 등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서울 시장을 거쳐 각종 장관까지 두루 경험한 몇 안 되는 엘리트인 셈이다.

 

 

그러나 민유중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처럼 국정을 전횡하고 왕권을 위협한 권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엄격하고 단정하며 점잖은 성품을 지녔던 그는 권력보다 명예를 중히 여긴 인물이었고, 자신의 딸인 인현왕후를 중궁전에 들여보낸 이 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몸가짐을 더욱 조심히 했다. 외척이 국정에 관여한다는 일각의 비난을 받아들여 스스로 두문불출을 선택한 것이다.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민유중은 임금의 장인이면서도 권력과 재물을 탐한 적이 없었고, 죽는 그 날까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참 선비였다. 뛰어난 학문과 정갈한 성품, 빼어난 정무 능력을 모두 갖췄지만 임금의 장인이란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던 그에 대해 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때 민유중이 바야흐로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위계가 보국숭록대부에 올랐으므로 아침 저녁 사이에 정승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국가의 제도에 얽매여 중요한 요직을 모두 내놓고 마침내 등용하지 못하게 되므로 여론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었다.”(숙종실록 13629)

 

 

 

 

실제 민유중은 원자 정호 사건을 알지도 못해

 

 

민유중과 장희빈의 악연또한 작가의 상상에 불과하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민유중은 장희빈을 감금, 폭행하고 그를 궁궐에서 쫓아내기 위한 계획에 몰두하며,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으려는 숙종에게 누구보다 격렬히 저항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날 만큼 명예를 중시했던 민유중이 한낱 임금의 애첩과 기싸움을 한다는 건 실제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민유중으로서도 장희빈의 존재가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중전으로 들어간 자신의 딸은 아들 하나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애첩인 장희빈이 매일 숙종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아비 된 입장에서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감정일 뿐이고 신화 된 입장에서 왕실과 내명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시콜콜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실제 역사 속 민유중은 장희빈이 정 1의 첩지를 받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민유중이 살아 있을 때 장희빈은 종 4숙원에 불과했다. 장희빈이 정 2소의첩지를 받은 것은 민유중이 죽은 지 1년 뒤인 1688년이었고, ‘의 첩지를 받은 것은 경종을 낳은 해인 1689년이었다. , 살아생전 민유중에게 장희빈은 단순히 임금이 총애하는 후궁일 뿐이었지 딸인 인현왕후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위험인물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민유중이 주도하는 원자 정호 사건역시 완벽한 픽션일 수밖에 없다. 원자 정호 사건이란 서인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삼으려는 숙종에게 반발한 일로 서인 정권이 몰락하고 남인이 득세하는 기사환국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한 때 숙종에게 대로(大老)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았던 우암 송시열은 끝까지 원자 정호를 반대하다가 한양으로 압송되던 중 정읍에서 사사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시기 민유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죽은 지도 2년이나 지난 후였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 속 민유중처럼 원자 정호를 앞장서서 반대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처지였던 셈이다.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왜곡이 자칫 망자를 욕보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뒷맛이 씁쓸하다.

 

 

지금껏 살펴봤듯이 민유중은 숙종의 정적도, 왕권을 위협한 권신도 아니었으며 장희빈을 핍박하거나 권모술수를 꾸며 그를 내쫓으려 한 적도 없었다. 한 개인으로 보자면 그는 매우 훌륭한 학자이자 선비였고, 명예를 중시 여기며 위엄을 잃지 않은 품격 있는 인물이었다. 아마 민유중이 하늘에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본다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노라고 매우 억울해 할 지도 모르겠다.

 

 

조정의 주요 대신이 죽으면 사관은 실록에 졸기라는 것을 적게 되어있다. 실록에 써져 있는 민유중의 졸기를 마지막으로 보며, 시청자들이 드라마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곡해하거나 폄하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여양부원군 민유중이 58세의 나이로 졸하였다. 민유중은 성격이 강직하고 방정하며, 총명하고 막힘이 없었는데 형 민정중과 함께 경서에 관한 학문을 가지고 진출하여 선비들이 우러러 믿고 따르는 덕망을 지녔다. 조정에 벼슬하면서는 언론이 준엄하고 단정하여 업적이 융성하게 나타났고, 집에 있을 적에는 품행이 올바르고 정이 독실하여 예법으로 자신을 제어하였으니 임금이 왕비(인현왕후)를 그의 가문에서 정하였음은 대개 그의 집 규율이 올바름을 살폈기 때문이다.

 

(중략) 부고가 오자, 임금께서 하교하시기를, “겨우 광성부원군(김만기, 인경왕후의 아버지)의 상사에 곡하고 나자 또 이 상사에 곡하게 되니, 놀랍고 비통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고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이어 3년 동안 녹봉을 주도록 명하고서 희정당에서 발상했다. 뒤에 시호를 문정이라고 하였다.” (숙종실록 1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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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보다보면 중인 출신의 장희빈(김태희 분)을 시어머니인 왕대비 김씨(김선경 분)가 모질게 구박하는 장면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장희빈의 출신을 조롱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임을 하지 못하도록 약까지 먹이는 왕대비의 모습을 보노라면 조선판 시월드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장희빈은 드라마에서처럼 시어머니에게 모진 구박을 받았을까.

 

 

여걸 중의 여걸이었던 명성왕후 김씨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희빈의 시어머니로 나오는 왕대비는 조선조 18대 왕인 현종의 정비이자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김씨. 손이 귀한 왕실에서 아들인 숙종을 출산하며 일찍이 정궁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한 명성왕후는 시아버지 효종에게 귀한 내 며느리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영리하고 총명한 여성이었다. 훗날 그는 이 비상한 머리로 자신이 지지하는 서인 세력의 집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명성왕후는 철두철미하고 과단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내명부의 기강을 호되게 잡는 것은 물론이고 궁인들이 쉽게 임금 곁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엄히 다스렸다. 후궁 소생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던 명성왕후는 누구보다 철저히 현종의 주변을 관리, 감독했다. 이 때문에 현종은 조선에 재위했던 수많은 왕들 중 유일하게 후궁이 없는 임금이 됐다.

 

 

현종이 승하하고 아들인 숙종이 보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된 명성왕후는 자주 정사에 간섭해 대소신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복선군 삼형제가 궁녀와 내통했다고 무고해 그들을 귀양 보낸 사건인 이른바 홍수의 변은 남인 세력을 궁지로 몰기 위해 명성왕후가 각본 연출한 대표적 사건이었다. 이 시기 명성왕후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 시키고자 편전에 직접 등장해 보란 듯이 대성통곡하는 정치적 쇼를 벌여 대신들을 기함하게 했다.

 

 

서인 집안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명성왕후는 그 스스로 서인의 뒷배를 자처했고, 평생에 걸쳐 자신의 정치력을 총 동원해 서인당의 집권을 도왔다. 명성왕후는 조선의 왕비가 왕실의 일원을 넘어 확실한 정치색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남인들을 한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는 세력으로 간주했으며 이로 인해 남인 세력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홍수의 변 이 후로, 남인들은 줄곧 명성왕후를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에 빗대 조롱했다. 20년간 수렴청정을 단행하며 국정을 전횡한 문정왕후는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켜 조선 사림의 증오의 대상이 된 인물이다. 그와 비교할 만큼 남인 세력에게 명성왕후는 공포와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왕실 세력 중 최우선으로 견제해야 하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명성왕후와 남인의 긴장 관계는 명성왕후가 승하하는 그 날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장희빈이 두려워했던 유일한 여성

 

 

시어머니가 이 정도로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면 밑에 있는 며느리가 고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 명성왕후는 자신이 추천했던 인경왕후와 인현왕후에게는 한없이 자애롭고 관대한 시어머니였지만 대왕대비 장렬왕후 조씨의 비호를 받았던 장희빈에게는 누구보다 모진 시어머니였다. 평생을 무서울 것 없이 살았던 장희빈이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인물이 있다면 그는 다름 아닌 시어머니 명성왕후였을 것이다.

 

 

명성왕후가 장희빈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장희빈이 남인 세력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희빈의 숙부는 남인세력의 돈줄로 활약했던 장현이었고, 장희빈을 숙종에게 소재시켜 준 사람은 남인 계열의 장렬왕후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인이라면 치를 떠는 명성왕후에게 장희빈은 며느리가 아니라 남인의 간자일 뿐이었다. ,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인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게다가 명성왕후는 당시 한낱 침방나인에 불과했던 장희빈이 숙종의 곁에 머무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명문가의 여식으로 자라 중전과 대비라는 초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중궁 시절에는 그 흔한 후궁조차 경험하지 않았던 명성왕후로선 아들인 숙종이 얼굴만 반반한 침방나인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명성왕후가 장희빈 축출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명성왕후는 장희빈이 중전이었던 인경왕후를 저주하고 모함했으며, 행실이 매우 거칠고 방자하다는 죄목을 들어 그를 궁궐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임금의 승은을 입은 궁인이 특출한 죄목 없이 쫓겨나는 일은 전례가 없는 희귀한 일이었기에 숙종과 장렬왕후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명성왕후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장희빈을 두둔하던 시할머니 장렬왕후를 거칠게 타박해 무안을 줄 정도였다.

 

 

이와 같은 명성왕후의 서슬 퍼런 기세에 장희빈은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하고 무려 6년 여간 궐 밖에서 숨죽이며 살 수밖에 없었다. ,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희빈이 명성왕후에게 소리 지르고 대드는 장면들은 사실상 완전한 허구인 셈이다. 만약 실제로 장희빈이 드라마에서처럼 명성왕후에게 대들었다면 그의 성격상 당장 사약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밌는 점은 장희빈을 퇴출한 이 후에도 그에 대한 명성왕후의 견제는 끝도 없이 계속됐단 사실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숙종실록 12년에 기록되어 있는 일화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이 숙종의 승은을 입은 궁인이므로 환궁시키는 것이 맞다고 간청하자 명성왕후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현왕후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다.

 

 

내전(인현왕후)이 그 사람(장희빈)을 아직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그 사람은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오. 주상이 평일에도 희로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데 만약 꾐을 받게 되면 국가에 화가 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니 내전은 후일에도 마땅히 나의 말을 생각해야 할 것이오.”(숙종실록 12, 1210)

 

훗날 인현왕후는 시어머니의 이러한 충고를 무시하고 장희빈을 다시 궐로 불러 들였다가 더할 나위 없는 고초를 겪게 된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만약 명성왕후가 42살의 나이에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장희빈이 궁궐에 다시 들어오는 일도, 그의 아들이 숙종의 대를 이어 보위에 오르는 일도, 인현왕후가 그토록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도, 서인 세력이 속수무책으로 남인에게 밀려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명성왕후는 왕실과 내명부를 대표하는 최고 권력자였던 셈이다.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천하의 장희빈조차 고양의 앞의 생쥐꼴로 만들었던 명성왕후 김씨. 뚜렷한 정치색과 강력한 권력욕으로 숙종 집권 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현재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안에 있는 숭릉에 남편인 현종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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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톱스타 김태희를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하며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손 꼽혔지만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혹평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청자들은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앞길을 방해하는 악녀로 묘사 되고 있다는 점에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인현왕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성녀에 가까운 인물이었을까.

 

 

 

 

서인세력과 운명 같이한 인현왕후 민씨

 

 

인현왕후 민씨가 중전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세력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었다. 민씨가 서인 중에서도 명망 있는 가문을 자랑하는 여흥부원군 민유중의 딸이었던데다가 외척으로 서인의 거두 우암 송시열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인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던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 역시 이 점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사실상 민씨의 중궁전 입성은 단순한 왕비 간택이 아니라 민감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 고도의 정치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숙종과 민씨의 관계가 생각만큼 원만치 못했고, 그녀가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 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인세력이 후원하고 있던 소의 장씨가 숙종의 총애를 독차지한데 이어 1688(숙종 14) 왕자까지 생산하게 되면서 민씨와 서인세력의 불안감은 날로 커져 가게 된다. 이듬해 1, 소의 장씨는 왕자 생산의 공을 인정받아 정 1()’의 칭호를 받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희빈의 탄생이었다.

 

 

1689(숙종 15), 숙종은 장씨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며 본격적인 후계 구도 정리 작업에 들어선다. 원자 책봉에 반대한 서인 세력을 모조리 쫓아내는 한편, 남인 세력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정권 교체를 시도한 것이다. 서인의 상징과도 같던 송시열의 사사를 시작으로 숙종의 서인 숙청 작업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자행됐다. 이것이 바로 기사년 2월에 일어 난 기사환국이다.

 

 

서인세력이 일거에 실각하는 와중에 민씨 역시 무사할리 없었다. 민씨는 그 해 7, 폐비가 되어 안국동 사가인 감고당으로 쫓겨난다. 이듬해 장씨는 남인세력의 적극적 지지를 등에 업고 중전으로 책봉된다. 눈 깜짝할 새에 운명이 뒤바뀐 것이다. 민씨의 사가 생활은 1694(숙종 20) 서인세력이 다시 재집권하는 갑술환국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5년 여간 지속됐다. 양갓집 규수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초를 겪은 것이다.

 

 

16944월에 민씨가 중전으로 복위함에 따라 장씨는 다시 빈으로 강등되어 처소인 취선당으로 내려갔고,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1701(숙종 27) 민씨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서른 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장씨 역시 같은 해 중궁을 무고(巫蠱)했다는 죄목으로 서인세력에게 탄핵 받아 사사 당했다는 사실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모두 죽는 그 순간까지 정치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인현왕후는 어떻게 성녀로 만들어졌나.

 

 

사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정쟁에 희생당한 불행한 인물들일 뿐이다. 각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여성으로서 극과 극의 인생을 강요받았고, 이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차례 힘든 고난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인현왕후가 인내와 희생으로 모든 것을 감내한 성모라면, 장희빈은 출세를 위해 악독한 짓도 서슴지 않는 악녀로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러한 이미지는 인현왕후 쪽 사람들이었던 서인 세력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인현왕후를 얌전하고 후덕한 조강지처로 표현하고, 장희빈을 욕심 많고 심술 사나운 첩으로 규정함으로써 일반 백성들의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이다. 김만중이 집필한 대중소설 <사씨남정기>로 시작 된 서인세력의 이 같은 치밀한 여론전에 상대방인 남인 측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인세력은 소설과 함께 미나리는 사철이요/장다리는 한철이라로 시작하는 노래 또한 골목골목 퍼뜨렸다. 여기서 미나리는 인현왕후 민씨를, 장다리는 희빈 장씨를 뜻한다. , 장희빈과 남인 세력의 권세는 한 철일 뿐이고 사철 푸르게 살아남는 쪽은 인현왕후와 자신들이란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네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이 노래는 조선 팔도 모르는 이가 없는 유행가가 되어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민심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처럼 당시의 서인세력은 소설, 노래 등 이른바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밑바닥 여론을 훑는데 주력했다. 어렵고 복잡한 정치수사 대신 착한 조강지처를 내쫓은 못된 첩실을 응징하자는 단순한 메시지로 일반 백성을 공략했고, 민심을 서서히 변화시켜 이를 재집권의 명분으로 삼았다. 권력을 잡고 있는 쪽은 남인세력이었지만 여론전만큼은 절대적으로 서인세력이 앞서는 형국이 지속된 것이다. 끝내 남인이 서인에게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현왕후에 대한 서인세력의 이미지 메이킹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특히 궁인이 쓴 것으로 알려진 한글 소설 <인현왕후전>은 필사본만 20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장희빈을 더욱 요사스러운 계집으로 묘사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서인 중에서도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에 비협조적이었던 노론 측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경종의 정통성에 끊임없이 흠집을 냈고, 종국에는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을 후대 왕으로 옹립하는데 성공했다. 이가 바로 조선 26대 왕 영조다.

 

 

재밌는 것은 영조 또한 인현왕후 미화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출신성분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영조는 이를 만회하고자 인현왕후와 최씨의 인연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쳤다. 착하고 아름다운 인현왕후를 자신의 어머니가 성심성의껏 도운만큼 자신의 정통성에도 전혀 문제가 없음을 은연 중 과시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1694년 인현왕후가 폐출된 이래 무려 100여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여론전에서 승리한 인현왕후, 결국 성녀로 남다

 

 

이 시기 성녀인현왕후와 악녀장희빈으로 고착화 된 이미지는 놀랍게도 21세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여전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1961년 정창화 감독의 영화 <장희빈>을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 진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일대기는 뚜렷한 선악구도와 확실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인현왕후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기존의 구도를 완전히 전복해 버린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착한 여자나쁜 여자의 대명사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한 번 굳어진 여론은 쉽게 돌아서기 힘들고, 한 번 생성된 이미지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300년 전 인현왕후 성모 만들기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서인들이 이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소름이 돋는다. 여론과 언론을 움직이며 명분을 쌓는 것이 정치의 본질임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승리자 편에 섰던 인현왕후 역시 이 정도 호사는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좋든 싫든, 그녀는 여론전에서 이긴 그 시대의 승자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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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인현왕후가 중궁전에 입성하면서 장옥정의 악녀 본색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희빈의 흥행 포인트인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궁중암투가 본격화됨에 따라 시청률 상승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기존의 장희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희생과 인고의 상징인 인현왕후가 매우 정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 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인현왕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담담히 인내하고 받아들였던 후덕한 여인이었을까, 아니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중전의 자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야심있는 여성이었을까.

 

 

 

 

엘리트 코스밟았던 인현왕후의 자존심

 

 

인현왕후는 당시 조선 시대 여성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었다. 서인세력 중에서도 뼈대 있는 가문을 자랑하던 여흥 민씨 집안의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서인의 거두 송준길이었으며 외척으로는 우암 송시열을 곁에 두고 있었다. 그가 숙종의 계비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그를 왕비로 적극 추천한 이는 송시열과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였다. 한 마디로 집권세력과 왕실세력의 비호를 한 몸에 받은 셈이다.

 

 

이렇듯 날 때부터 최고의 양갓집 규수가 열다섯 어린 나이에 지존의 짝인 왕비가 되었으니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음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인현왕후 특유의 자신감은 궁 밖에 쫓겨나 있던 장희빈의 환궁 과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장희빈은 명성왕후에게 남인의 간자로 찍혀 궐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그러나 명성왕후가 승하하자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다시 숙종의 곁으로 불러들인다. 한 마디로 남편의 첩을 제 손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인현왕후가 이런 선택을 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는 숙종이 장희빈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남인세력이었던 시할머니 장렬왕후 조씨가 장희빈의 환궁을 은근히 부추겼다는 것, 셋째는 인현왕후 스스로 장희빈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현왕후는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한미한 가문 출신의 장희빈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양갓집 규수로서 그것은 해서도, 할 수도 없는 생각이었다.

 

 

인현왕후에게 장희빈은 숙종을 거쳐 가는 여러 여자 중 한명일 뿐이었다. 중전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평생을 걸쳐 두고두고 신경 쓸 라이벌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셈이다. 그러나 인현왕후의 안일한 생각과 달리 장희빈은 훨씬 영리했고 정치적이었으며 숙종의 사랑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날이 갈수록 기세등등해 지는 장희빈의 위세는 인현왕후로선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도 투기를 했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이 생활화 된데다가 왕비의 체면과 체통을 중시했던 인현왕후는 대놓고 장희빈을 구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숙원의 첩지를 내리고, 다과를 함께 하는 등 후덕한 조강지처의 품격을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인현왕후 또한 중전 이전에 여자이니 어찌 투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장희빈이 매우 교만하다는 이유를 들어 회초리를 때리기도 했는데, 장희빈으로선 아무리 윗전이긴 하지만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끌려가 매를 맞는 것이 보통 고욕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현왕후는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총애가 너무 지나치자 서인의 거목 중 한 명인 김수항의 증손녀를 후궁으로 들여 장희빈을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재밌는 것은 김수항의 증손녀는 명문세가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궁에 들어오자마자 당시 숙원이었던 장희빈보다 윗전인 소의의 첩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소의 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 바로 아래 단계인 귀인 김씨에 책봉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미천한 출신을 환기시키며 내심 그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귀인 김씨의 존재와 상관없이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사랑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에 초조해 진 인현왕후는 직접 숙종을 찾아가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현종과 명성왕후가 나타나 민씨와 장씨는 본래 원수지간으로 현재 장씨가 복수하려하며, 경신환국 후 원한을 품은 이들과 결탁하여 나라에 화를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장씨 팔자에는 아들이 없고 민씨에게는 자손이 많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직접적으로 장희빈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현왕후는 장씨는 전생에 숙종의 활을 맞고 죽은 짐승의 화신이라는 험담까지 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숙하고 어진 인현왕후의 이미지와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다. 인현왕후의 위와 같은 발언은 장희빈의 숙종의 첫 아들인 경종을 낳으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비시키면서 아들도 낳지 못한데다가 체통을 잃고 투기까지 한 죄목을 함께 물었다. 몇몇 사료에서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연산군의 친모인 폐비 윤씨 보다 못한 죄인이라고 일갈했다고 전한다.

 

 

 

 

죽는 순간까지 장희빈을 궁지로 몰아

 

 

장희빈에게 중전의 자리를 빼앗긴 인현왕후는 5년간 안국동 본가인 감고당으로 돌아가 폐출 생활을 감내했다.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조차 없었던 이 시기에 인현왕후의 몸과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손상됐다. 인현왕후가 서른 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유도 바로 폐비 때 얻은 여러 가지 병증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불결한 환경과 지속적인 굶주림은 부족함을 모르고 산 양갓집 규수에겐 버티기 힘든 악조건이었을 것이다.

 

 

1964년 서인 세력이 재집권한 갑술환국이 일어나면서 중전으로 복위한 인현왕후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7년이 넘는 세월동안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는 장희빈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과거의 악연을 떨쳐 버리지 못한데다가 세자의 친모이기도 한 장희빈은 인현왕후가 살아 있는 그 날까지 가만 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만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인현왕후는 승하하기 얼마 전부터 자신의 건강이 악화된 이유는 모두 희빈의 저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는데, 이 빌미란 것이 바로 장희빈의 저주를 뜻한다. 인현왕후의 이 같은 말은 차후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무고했다는 죄목으로 인현왕후 승하 2개월 만에 사약을 받고 사사 당했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역사 속의 인현왕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린 것과 다른 두 얼굴의 인물이었다. 그는 명문세가의 딸로 태어나 깍듯한 예의와 품격이 몸에 밴 사람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애첩에게 질투를 하는 평범한 여성이기도 했다. 불행히도 인현왕후 궁인 출신의 장희빈이 자신의 라이벌이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평생을 장희빈에 대한 콤플렉스와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인현왕후의 진짜 맨 얼굴이다.

 

 

숙종과 함께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에 묻혀 있는 인현왕후는 지금쯤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끝끝내 역사의 승리자로 남아 연적이었던 장희빈을 희대의 악녀이자 요부로 전락시킨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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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송사의 자존심을 건 4월 월화 드라마 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월화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교체되면서 치열한 격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MBC <마의>SBS <야왕>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한 만큼 후속작들간의 기싸움도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할 전망이다.

 

 

배우, 작가, 연출자 너나 할 것 없이 당대의 거물급들이 총 출동하는 4월 드라마 대전에서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MBC <구가의 서>, 월화 드라마 최고 기대작

 

 

48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MBC <구가의 서>는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찬란한 유산><더킹 투하츠>국민 남동생이승기와 <드림하이><건축학개론>국민 첫사랑수지가 주연을 맡은 것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이성재, 정혜영, 조성하, 이연희 등 탄탄한 배우진이 포진해 뒤를 받친다. 대어급 배우들이 총 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고 있다.

 

 

제작진의 면면 역시 뒤쳐지지 않는다. <유리구두><호텔리어><오필승 봉순영><제빵왕 김탁구><영광의 재인> 등으로 유명한 강은경 작가와 <파리의 연인><온에어><시크릿 가든><신사의 품격> 등으로 흥행 신화를 써온 신우철 PD가 손을 잡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매번 최선의 결과를 뽑아낸 베테랑들인 만큼 이번에도 탄탄한 호흡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생소한 판타지 사극장르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작년 <아랑사또전><전우치> 등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던 대부분의 작품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초라하게 퇴장한 바 있다. 복잡한 세계관과 유치한 CG, 진부한 관계설정 등이 시청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구가의 서>는 이를 타산지석 삼아 판타지 사극의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고 쉽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전작인 <마의>가 마지막 회를 동시간대 2위로 마쳤다는 것 또한 부담스럽다. <마의>가 동시간대 1위를 지킨 상태에서 바통을 넘겼다면 훨씬 수월한 싸움이 됐을 텐데 막판에 역전을 당하는 바람에 <구가의 서>로선 전작의 후광을 기대하기가 사실상 힘들어졌다. <마의>가 지난 6개월 동안 방송되며 MBC 월화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진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장희빈 흥행신화 잇는다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구가의 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소설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악독하게만 그려졌던 지금까지의 장희빈과 차별화 된 설정으로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보염서(조선시대 화장품 생산을 전담하던 곳)를 배경으로 인간 장옥정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 매력을 최대한으로 발현시키는 한편, 연적 인현왕후와 대립하며 숙종과의 절절한 러브스토리 또한 그려낼 예정이다. 익숙한 소재에 신선한 접근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주인공 장옥정 역에는 당대의 미녀배우 김태희가 캐스팅 됐다. 김지미, 윤여정, 이미숙 등 최고의 여배우들이 역대 장희빈을 연기한 전례에 비춰볼 때 김태희 정도의 대스타라면 충분히 장희빈을 연기할 자격이 있다. 그녀는 데뷔 이래 첫 사극도전이라는 점에서도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청춘스타 유아인과 빼어난 연기력과 미모를 자랑하는 홍수현이 맡았고 이 외에도 재희, 한승연, 성동일 등이 힘을 보탠다. <구가의 서> 못지 않는 위용을 자랑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제작진의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로비스트><스타의 연인><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의 방용철 PD가 메가폰을 잡았고, 원작의 저자인 최정미 작가가 극본을 담당한다. 첫 드라마 집필에 나선 최정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얼마나 잘 드라마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제 페이스를 빨리 찾아야 전작 <야왕>에 이어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

 

 

주인공 김태희 또한 연기력 논란이 불거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껏 장희빈을 연기한 여배우들 대부분은 뛰어난 미모만큼이나 출중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이들과 달리 김태희가 예전과 다름없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면 작품 자체가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여배우들이 모두 연기하고 싶어 하는 장희빈을 맡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다.

 

 

 

 

KBS 2TV <직장의 신>, 김혜수의 저력을 믿는다

 

 

지난 2개월간 시청률 3%대에서 허우적댄 <광고천재 이태백> 때문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KBS<직장의 신>으로 대역전극을 노린다. 일본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둔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우리집 여자들>의 전창근 PD가 연출을, <꽃미남 라면가게>의 윤난중 작가가 극본을 맡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당초 <직장의 신>은 월화 드라마 최약체로 평가 받았지만 연기파 배우 김혜수가 합류를 결정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 된 상황이다. 충무로와 여의도를 오가며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김혜수는 그동안 <><국희><장희빈><스타일>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온 전천후 스타다. 연기대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출중한 연기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의 등판은 월화 드라마 시장의 최대 변수라 할 만 하다.

 

 

월화 드라마 중 유일한 현대극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사극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시청자를 고정층으로 포섭하는 한편, 세련되고 스피디한 전개로 승부를 본다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경쟁작들에 비해 한 주 먼저 시작하기 때문에 입소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원작의 탄탄한 내용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차별화 된 각색을 시도함으로써 초반 시선몰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4월 월화 드라마 시장은 스타급 배우들과 역량 있는 제작진의 격돌로 흥미로운 한 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각 방송사가 사활을 걸고 편성한 기대작들이 과연 어떤 성과를 얻게 될지, 먼저 승기를 잡는 쪽과 마지막에 웃는 쪽이 누가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4월에도 안방극장은 변함없이 뜨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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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연예가 섹션이 준비한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100선' 2편이다.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100선' 1편에 이어 <한밤의 연예가 섹션>이 선정한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100선' 2편에는 어떤 드라마들이 있을까?



여러분들이 생각한 드라마가 있는지 확인하시면서 읽어보시길.



11. 별은 내 가슴에


1997년 3월 10일부터 1997년 4월 29일까지 방영. 이진석 연출, 김기호-이선미 극본. 최진실, 안재욱, 차인표 주연.


열한 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MBC [별은 내 가슴에] 다. 5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MBC 미니시리즈의 상징이 됐던 [별은 내 가슴에] 는 최진실 표 트렌디 드라마의 정점을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그 해 최진실은 이 작품으로 인해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MBC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최진실 뿐 아니라 드라마 자체가 워낙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테리우스' 안재욱이 스타덤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캔디형 드라마가 봇물 터지듯 제작, 기획 되는 기현상도 일어났었다. 아직까지도 최진실과 안재욱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별은 내 가슴에] 가 나올 정도인 것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높은 인기를 얻었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12. 미스터 Q



 
1998년 5월 20일부터 1998년 7월 16일까지 방영. 장기홍 연출, 이희명 극본. 김희선, 김민종 주연.


열두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SBS [미스터 Q] 다. [컬러][프로포즈] 등으로 최진실에 이어 대한민국 신세대의 상징이 됐던 김희선이 터뜨린 초 대박작으로 5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김희선은 이 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김희선 시대' 를 개막했다. 향후 3~4년간 대한민국 연예계는 'Only 김희선' 으로 점철된다.


[미스터 Q] 는 개발과 사람들이 고군분투 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을 절묘하게 포착했다는 호평을 들었다. 단순한 선악구도와 극명한 인간군상의 대립이 비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트렌디 드라마의 특성 상 이 정도면 아주 잘 만들어 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3. 목욕탕집 남자들




1995년 11월 18일부터 1996년 9월 1일까지 방영. 정을영 연출, 김수현 극본. 이순재, 강부자 주연.


열 세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KBS [목욕탕집 남자들] 이다. [사랑이 뭐길래] 로 대발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수현의 KBS 진출작으로서 초반 [사랑이 뭐길래] 와 구성이 비슷하다는 비판을 극복하고 KBS 주말드라마의 전성시대를 연 작품이다. 이순재, 강부자를 비롯한 중견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김희선, 김호진 등 신세대 스타들의 신선함이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강부자는 이 드라마로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 드라마에서 둘째 며느리로 출연했던 윤여정은 왕비병 걸린 아줌마 캐릭터를 절묘하게 소화해내며 제 2의 전성기를 열었고, 장용이 쓸쓸할 때마다 불렀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는 각종 가요 프로그램 순위권 차트를 휩쓸며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우리집에 놀러와요~우리 집~" 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의 메인 OST 역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14. 그대 그리고 나




1997년 10월 11일부터 1998년 4월 26일까지 방영. 최종수 연출, 김정수 극본. 최불암, 최진실 주연.


열 네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MBC [그대 그리고 나] 다. 최고 시청률 62.4%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몰이를 했던 [그대 그리고 나] 는 MBC 주말드라마의 건재함을 알리는 동시에 MBC 사단이라고 불리는 최불암, 김혜자, 양택조, 박원숙, 이경진,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 김지영, 송승헌 등이 총출동 해 화제를 모았다. 최진실은 이 작품으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그대 그리고 나] 는 훈훈한 가족애와 서로를 보다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막장 요소' 하나 없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점에서 수작 중의 수작이라 평가할만 한 작품이다. 최불암-박원숙-이경진-양택조가 이뤄낸 사각관계는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대가족에 시집간 며느리 최진실의 모습은 당시 여성들의 삶을 절묘하게 포착하며 공감대를 얻어내기도 했다.


15. 장희빈




1995년 2월 20일부터 1995년 9월 26일까지 방영. 이종수 연출, 임충 극본. 정선경, 김원희, 임호 주연.


열 다섯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SBS [장희빈] 이다. SBS가 개국 이후에 처음으로 만든 사극으로, 당시 '엉덩이가 예쁜 여자' 로 이름을 날리던 정선경이 처음으로 TV에 진출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털털하고 선머슴 같았던 김원희가 인현왕후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했고 임호 역시 좋은 연기를 펼치며 지금까지 '왕 전문 배우' 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장희빈은 아직까지도 매력적인 사극 소재로 남아있는데 최근 이병훈 감독이 숙빈 최씨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 [동이] 를 만든다고 하여 장희빈을 누가 연기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왕조 실록에서는 장희빈을 두고 "장희빈(嬪). 아명은 옥정, 본관은 인동. 효종 10년인 기해년 9월 19일, 한미한 중인이며 역관인 장형의 딸로 태어났다. 보잘것 없는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만민의 어미요, 지존의 짝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으나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 숙종 27년 10월 10일 왕비를 저주한 죄로 자진하여 죽으니 그 때 장희빈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라고 적고 있다.


16. 여인천하




2001년 2월 5일부터 2002년 7월 22일까지 방영. 김재형 연출, 유동윤 극본. 강수연, 전인화, 도지원 주연.


열 여섯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SBS [여인천하] 다. 50%가 넘는 높은 시청률 뿐 아니라 "뭬야?" "니년이 정녕 단매에 죽고 싶은 것이더냐?" 같은 유행어도 만들어 낸 작품이다. 워낙 높은 인기탓에 패러디도 많았고, 화제성도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수연과 전인화는 이 드라마로 그 해 SBS 연기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허나 이 작품에서 더욱 빛났던 사람은 강수연과 전인화가 아니라 '경빈 박씨' 를 소름끼치게 연기했던 도지원이라고 할 것이다. 지나치게 연장 방송을 하는 탓에 경쟁작에게 뒷덜미를 잡힐뻔한 위기 상황도 있었지만 도지원이 연기했던 경빈 박씨의 죽음으로 인해 시청자 층을 결집했던 [여인천하] 는 끝날때까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고수하며 순항했다.



17. 다모




2003년 7월 28일부터 2003년 9월 9일까지 방영. 이재규 연출, 정형수 극본. 하지원, 이서진 주연.


열 일곱번째로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MBC [다모]] 다. 본격적인 드라마 '폐인' 시대를 만들었던 [다모] 는 서정적인 스토리 라인과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 작품으로 기억된다. 상당히 독특한 감성을 지닌 작품이라 세상이 뒤집어 질 만한 시청률을 내지는 못했지만 탄탄한 매니아 층을 중심으로 그 해 MBC 드라마 중 [대장금] 과 함께 가장 후한 평가를 받았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대사는 아직까지도 명 대사로 손 꼽힐 정도로 [다모] 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이명세의 영화 [형사] 는 이 드라마에서 모티브를 따 제작됐다. 시청률과 상관 없이 매니아 층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인지 DVD 판매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갖가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8. 네 멋대로 해라




2002년 7월 3일부터 2002년 9월 5일까지 방영. 박성수 연출, 인정옥 극본. 양동근, 이나영 주연.


열 여덟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MBC [네 멋대로 해라] 다. 오랜 기간 히트작을 배출했던 박성수 감독과 독특한 감수성으로 무장한 작가 인정옥이 만들어 낸 걸작으로 탄탄한 마니아 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아주 괜찮은 작품으로 꼽힐 정도로 작품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네 멋대로 해라] 에서 박성수 PD는 기존 양동근, 이나영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킴으로써 그들을 진정한 배우로 완성시켰다. 코믹했던 양동근에게는 진지함과 우울함이라는 극단적 감정을 뽑아냈고, CF로 형상화 되어있던 이나영에게는 지극히 인간미 있는 캐릭터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 가 지금까지도 걸출한 작품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데에는 배우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박성수의 창조성과 그 이면을 제대로 살려낸 노련함에 힘입은 바 컸다.


 
19. 꽃보다 아름다워




2004년 1월 1일부터 2004년 4월 14일까지 방영.
 김철규 연출, 노희경 극본. 고두심, 주현, 배종옥 주연.


열 아홈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KBS [꽃보다 아름다워] 다. 고두심의 명품 연기가 빛을 발했던 이 작품은 시청률로 재단할 수 없을만큼 가슴 뭉클한 감동과 훈훈한 인간미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결을 절묘하게 포착하며 TV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네 삶' 을 이야기 했던 [꽃보다 아름다워] 는 진정 이 시대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보여준 작품이다.


특히 이 드라마로 KBS 연기대상을 받은 고두심의 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빠의 학업일을 돕는다는 핑계로 제주도에서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온 한 소녀는 이제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로,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전원일기] 에서 김혜자를 끔찍이도 모시던 고두심은 세월이 지나 [목욕탕집 남자들] 에서 세 딸을 거느린 어머니가 됐고, 결국엔 [꽃 보다 아름다워] 에서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는 희생과 인고의 어머니가 됐다. 마치 한 여성의 성장기를 보는 것처럼 고두심은 그렇게 진짜 엄마가 됐다.


방송 3사에서 모두 연기대상을 받은 유일무이한 배우이자 [한강수 타령] 과 [꽃 보다 아름다워] 로 두 방송사에서 동시에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켰던 고두심의 업적은 그대로 한국에서 여배우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가 됐다. 고두심은 '배우 고두심' 이기 때문에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끝끝내 배우로 남아있었기에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것은 몇 몇 작품의 실패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고두심의 존재감이다.



20. 그들이 사는 세상




2008년 10월 27일부터 2008년 12월 16일까지 방영. 표민수 연출, 노희경 극본. 송혜교, 현빈 주연.


스무번째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KBS [그들이 사는 세상] 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은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하게 기억되는 작품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은 끝날 때까지 5~6%의 시청률만을 맴돈, 전형적으로 '실패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드라마를 둘러 싼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마치 공식같다. 아니, 편견이라고 해야할까. '노희경 드라마는 재미 없는 드라마, 노희경 드라마는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 하지만 노희경 드라마는 정말 잘 만든 드라마' 라는 것이.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이야기 진행이 다소 빨랐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 돌아갔긴 했지만 중심은 제대로 잡혀있었다. 배경과 캐릭터가 확실하고 스토리의 생동가도 박수 칠 만 하다. 여기에 인간의 성장과 사랑이 동시에 담겨있으며, 갈등과 눈물조차도 한 순간 지나가는 고뇌까지도 이야기한다. 첫사랑의 달콤함과 농익은 사랑의 완숙함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는 드라마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은.


그러나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예사 트렌디 드라마가 품어내는 보편성, 드라마 얼개가 지니고 있는 상투성과 통속성을 배반했다. "통속, 신파, 유치찬란" 한 트렌디 드라마의 '트렌디함' 을 부정한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사실 겉으로만 트렌디 드라마였을 뿐, 속으로는 여전히 삶을 관조하는 노희경 특유의 색깔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사는 세상] 이 이만큼 잘 만들어진 것도 노희경 덕택이지만, 이만큼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것도 노희경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사실 예사 작가들이 썼다면 훨씬 시청률이 잘 나왔을 작품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도가 텄다시피한 송혜교에게 [풀하우스] 만큼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만 주었어도 기본이 20~30%은 금방일테니까. 다만, 그러했다면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삶의 결을 녹여내는 드라마로 남아 있지는 못했을 것읻. 그래서 [그들이 사는 세상] 은 '저주 받은 걸작' 이다. 노희경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명품과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결코 그에 상응하는 시청률은 기록하지 못하는, '노희경 드라마' 라는 이름의 걸작말이다. 


노희경 같은 작가는 한국 드라마계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다. 그녀의 존재야말로 시청률로 가늠되지 않는 드라마적 감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상징적 표상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사세] 로 시작 되었을 법한 '노희경' 과 '대중' 과의 화해는 어서 빨리 이루어졌으면 한다. 무거운 주제의식과 삶에 대한 관망을 그대로 드라마에 드러내기 보다는 에둘러 표현하는 영악함을 노희경에게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 "고지식한 사람" 이라는 그녀에게 너무 과한 부탁일까.


아울러 현빈-송혜교 커플의 열애설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재평가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재미난 작가인지를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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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9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억의 드라마들... 다 생각나네요. 케이블채널같은 곳에서 이런 것들 다시 방영 안해주나요? 다음 드라마들도 궁금해요~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그만큼 여자의 독한 마음이 무섭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흥행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악녀' 들이다. 착한 여자들보다 확고한 개성과 색깔로 드라마를 휘어잡는 악녀들의 모습은 밉긴 하지만 결코 싫진 않다.


때로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때로는 시청자들을 소름돋게 한 드라마 속 악녀들. 그녀들의 '악녀 열전' 속으로 들어가보자.




[엄뿔] 의 장미희 : '악녀지수' ★


2008년 [엄마가 뿔났다] 신드롬의 중심에는 '장미희' 가 있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캐릭터인 고은아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외동딸로 자랐고, 남부러울 것 없는 외모와 재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속물이자 천것으로 생각하는 마나님이다. 스스로를 귀족이라 칭하고, 며느리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 며 대놓고 구박을 하는 그녀는 [엄뿔] 의 대표적 악역이었다.


그러나 따박따박 따지는 며느리에게 말싸움에서 지기도 하고,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녀의 모습은 악녀라기 보다는 철없는 재벌집 마나님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 남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갖은 애교를 다 떨고, 사돈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이탈리아 컴퍼니에 컴플레인을 걸어야겠다며 당황해 하던 그녀의 모습을 어찌 악녀라고만 칭할 수 있을까. 밉기보다는 귀여운 그녀 덕분에 [엄마가 뿔났다] 가 빛났던 것 같다.



[인어아가씨] 장서희 : 악녀지수 ★★☆


장서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은 드라마 [인어아가씨]. MBC 연기대상 통산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던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은아리영' 은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자아낼 정도로 파괴력 있는 캐릭터였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는 좌우명 아래 아버지와 바람난 한혜숙에게 온갖 망신을 다 주는 그녀의 모습은 비록 복수라는 미명 하에 행해졌지만 악독하고 무서웠던 것이 사실.


아버지에게 뺨을 맞자, 아버지의 처에게 그대로 복수를 하고 병을 깨 자해까지 하는 모습은 '독한 여자' 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허나 바람 난 아버지때문에 처절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눈까지 먼 엄마를 모시고 살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살펴보자면 그녀의 악행조차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장희빈] 의 정선경 : 악녀지수 ★★★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 장희빈. 지나가던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그 악명은 지금까지 대대로 이어지며 '드라마' 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정적이자 연적이었던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모함과 누명을 다 씌웠던 그녀의 처절한 인생은 그 어떤 악녀들보다 지독한 느낌까지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낱 역관의 딸로 태어나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야만 했던 그녀의 몸부림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악행은 곤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가 택했던 투쟁의 역사로 일변된다. 훗날 사관은 장희빈을 두고 "장희빈(嬪). 아명은 옥정, 본관은 인동. 효종 10년인 기해년 9월 19일, 한미한 중인이며 역관인 장형의 딸로 태어났다. 보잘것 없는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만민의 어미요, 지존의 짝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으나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 숙종 27년 10월 10일 왕비를 저주한 죄로 자진하여 죽으니 그 때 장희빈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라고 적고 있다.


지금 그녀의 시신은 숙종, 인현왕후와 함께 서오릉에 묻혀 있고, 위패는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 함께 칠궁에 모셔져 있다.




[아내의 유혹] 의 김서형 : 악녀지수 ★★★☆


2009년 상반기 화제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인공은 김서형이라 할 만 하다. 친구의 남편을 빼앗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친구의 죽음조차 묵인해 버리는 그녀의 악행은 드라마가 진행되어 갈수록 심해져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시어머니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하고, 자신의 앞날에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진짜 악녀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몸싸움도 서슴지 않고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장렬한 죽음을 선택했던 그녀의 모습은 처절하다 못해 추하기까지 했다. 아! 이 징그러운 악녀, 신애리!



[별은 내 가슴에] 의 박원숙 : 악녀지수 ★★★☆


故 최진실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는 [별은 내 가슴에]. [질투] 와 함께 한국 트렌디물의 역사를 바꿔 놓은 작품으로 회자되는 이 작품에서 최진실에 대적하는 악역으로 나온 인물이 바로 박원숙이다. 당시에 박원숙, 조미령, 박철은 [별은 내 가슴에] 에서 가장 꼴보기 싫은 캐릭터 1, 2, 3위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그들의 악행이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원숙과 최진실이 치고 받고 싸웠던 '엘레베이터 씬' 은 두고두고 회자 될 명장면으로 긴박하지만 코믹했던 이 장면으로 그녀는 당대 가장 재미있고 귀여운 악녀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문이 닫힌지도 모르고 나가려다 문에 부딪히는 장면은 박원숙 캐릭터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코믹하지만 그만큼 꼴보기 싫었던 '악녀' 박원숙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할 것이다.



[토마토] 의 김지영 : 악녀지수 ★★★★


[토마토] 의 김지영. 당시 '착한여자' 캐릭터는 도맡아 했던 김희선의 상대역을 하려 한다면 무조건 '악녀' 타이틀은 달고 시작해야 했다. 김지영 역시 김희선에게 맞서기 위해 스스로 악녀 캐릭터를 선택한 케이스로 [전원일기] 에서 푸근하고 순박했던 복길이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데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됐다. 5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 덕택에 세련된 도시여성 이미지를 회복하는데도 성공했고 말이다.


김지영은 [토마토] 뿐 아니라 [전설의 고향] '구미호' 에서 구미호 역을 소화하며 악녀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러한 자기 변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김지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에서 열연을 펼쳐 각종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미스터 Q] 의 송윤아 : 악녀지수 ★★★★


[미스터 Q] 의 송윤아. 송윤아 역시 김지영과 같은 케이스로 '김희선' 과 맞서기 위해 악역을 선택한 배우 중 한명이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데다가 이미지 자체가 세련되고 깔끔해서 지적이면서도 교묘한 악녀 캐릭터를 절묘하게 소화해 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 김희선은 한 토크쇼에서 "송윤아 언니가 너무 착하고 이쁜 언닌데, 연기를 할 땐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하는지 놀랍다." 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미스터 Q] 의 대성공 이후에 송윤아는 연기자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며 톱스타로서 확고한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2008년에는 김하늘과 함께 주연으로 나섰던 드라마 [온에어] 가 히트하면서 다시 한 번 송윤아라는 배우의 이름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대장금] 의 최상궁 : 악녀지수 ★★★★


[대장금] 을 이끈 것은 비단 이영애 뿐이 아니었다. 이영애의 뒤를 받쳐 준 한상궁 양미경과 최상궁 견미리가 없었다면 [대장금] 의 대성공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한 악행들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최상궁 견미리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어서 [대장금] 을 논할 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상궁이 아름다운 스승상으로 이름을 날렸다면 최상궁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악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장금] 이전만 해도 너무 선한 이미지 덕분에 본의 아니게 제한적인 캐릭터만을 소화해 냈던 견미리는 [대장금] 에서의 최상궁 연기를 계기로 악녀 대표 연기자가 되며 [주몽][이산] 등에서도 악역을 연기해야 했다. 이제는 "악역말고 착한 연기 하고 싶다." 며 투정을 부리는 견미리를 보며 정말 팔색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 의 김미숙 : 악녀지수 ★★★★

 
요즘 '국민 드라마' 급 대우를 받고 있는 [찬란한 유산] 에 김미숙이 빠지면 섭섭하다. 천사 같은 은성이가 있다면 악마 같은 백성희도 있어야 제맛이다. 매번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막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위기에 몰리면 사실을 털어 놓기 보다는 오히려 정면 돌파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아주 얄미운 캐릭터인 백성희는 김미숙을 만나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악녀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최근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백성희의 불안한 심리를 미묘하게 포착하며 악녀의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김미숙은 본인 스스로의 말처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연기 변신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브의 모든것] 의 김소연 : 악행지수 ★★★★☆


[이브의 모든것] 의 '허영미' 김소연. 이름만큼 허영과 욕심에 가득찬 아나운서 '허영미' 캐릭터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악녀 대표다. 세련되고 지적인 외모 뒤에 숨겨져 있는 추악한 인간미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차지하고자 하는 그녀의 악행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던 것이 사실. 당시에 김소연이 이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했냐하면 [이브의 모든것] 이 방송되는 날에는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불통을 이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한 착한여자 '진선미' 채림보다 차라리 자기 주장 확고하고 개성 뚜렷한 허영미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채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김소연' 중심의 드라마로 흘러갈 정도로 김소연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작품이었다. 김소연은 [이브의 모든것] 이 후, 악녀 이미지를 깨부수기 위해 절치부심 했다고 알려졌다.



[진실] 의 박선영 : 악녀지수 ★★★★☆


[진실] 의 박선영. 박선영의 연기인생은 [진실]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진실] 이전만 해도 어정쩡한 이미지였던 그녀는 [진실] 이후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젊은 나이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악녀 캐릭터를 확실하게 소화해 냈던 그녀는 톱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최지우, 류시원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혼신을 다한 연기를 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친구에게 수능을 대신 보게 하고, 자동차 사고 죄목까지 뒤집어 씌우는 박선영의 악행은 지금까지 악녀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해봐야(?)하는 행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천국의 계단] 의 이휘향 : 악녀지수 ★★★★★


[천국의 계단] 의 이휘향을 이야기하면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넌 빠져!!" 라는 명대사 하나만 말해도 이휘향의 악명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중국, 베트남까지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 그만큼 악녀하면 이휘향이 생각날 정도로 이휘향은 독기와 서슬 가득한 악녀 역할을 가장 제대로 소화해 내는 배우다. 이 또한 출중한 이휘향의 연기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휘향은 [천국의 계단] 뿐 아니라 [봄날] 에서도 면도칼을 휘두르며 비열한 웃음을 짓는 악녀 또한 소화해 냈고, 작년에는 [행복합니다] 에서 허영많고 독살맞은 재벌집 마나님을 연기하며 특유의 '악녀연기' 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녀는 역시 수많은 악녀들 중에서도 레전드 오브 레전드, 전설 중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멋진 '못된 배우' 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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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의 컴백작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선덕여왕] 이 처음부터 대박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1회에서 보여준 진흥왕의 죽음과 여걸 미실의 등장 등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상황.


1회에서 미실은 진흥왕을 독살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에 내몰리며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이지 않게 한 것에 감사하다." 라고 읊조린다.


그렇다면 과연 이 나라 역사에서 미실과 같이 '임금' 을 독살하고자 했던 여성이 있었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임금을 독살하고자 하는 시도는 삼국시대, 고려왕조 뿐 아니라 조선왕조에서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여성성이 억압되어 있던 조선왕조에서 권력을 차지하고자 몸부림쳤던 여걸들의 임금 독살은 대단히 주도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역사 속 임금을 '죽이고자' 했던 역사 속 여인들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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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가 되기 위해 시동생의 죽음을 기도한 여인, 소혜왕후 한씨



순종적인 며느리, 엄격한 어머니, 잔인한 할머니라는 세 가지 운명을 타고 난 소혜왕후 한씨는 성종조 '윤비 폐출 사건' 으로 연산군의 비극을 만들어 낸 격랑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여성이다. 우리에게는 '인수대비' 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그녀는 젊은 나이에 중전의 자리를 목전에 두고 세자였던 남편의 죽음 때문에 궐 밖으로 쫒겨 나와야만 했던 비운의 삶을 산 여인이기도 하다.


사실상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남편을 잃은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궐 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둘째 아들을 임금의 자리에 올리고, 스스로 대비의 자리를 쟁취함으로써 궐 밖으로 나간지 불과 10여년 만에 화려하게 정치적 일선에 복귀했다. 그리고 그 험난한 '정치적 복귀' 의 뒷면에는 시동생 예종의 죽음을 싸늘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냉정하고 섬뜩한 정치적 함수관계가 숨겨져 있었다.


세조의 죽음 뒤, 당시 수빈이었던 인수대비는 자력으로 자신이 정치 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불가' 하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못 되어도 대비는 되고자 했던"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바로 병약한 시동생 예종의 요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했던 예종을 오랜 시간 지켜 본 그녀는 예종의 장수를 빌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죽음을 기도하고 재촉했다. 예종의 죽음이 곧 자신의 '부활' 임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빈(인수대비)는 사돈이었던 한명회, 대훈신 신숙주와 결탁해 예종을 정치적으로 압박했다. 그 결과 '세조 능묘 파문' (세조의 능묘를 석실로 하자는 수빈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사건)이 일어났고 이것이 수빈에게는 결정적으로 정치적 일선에 복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수빈의 부활은 곧 예종의 추락이었다. 예종의 왕권은 궐 밖에 나가있는 형수에게조차 무시당하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추락했고, 이런 정치적 타격은 그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건강이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달았던 예종은 크고 작은 정치적 상처들 속에 큰 소리 한 번 내보지도 못하고 재위 1년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예종의 모후였던 정희왕후조차 "주상의 병이 이토록 심했는지 감히 짐작조차 못했다." 고 할 정도로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김인호 교수는 예종의 죽음에 대해 "결국 예종의 세력은 훈구 세력을 등에 업은 수빈(인수대비)의 세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하여 예종은 '암살' 이라는 여운을 남기며 요절하였고, 자신의 아들이 아닌 수빈의 둘째 아들에게 왕위를 넘길 수 밖에는 없었다." 고 평가했다.


어쨌든 예종의 죽음은 수빈의 부활이었고, 곧 '궁궐의 제왕' 인수대비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훈구세력을 등에 업고 시동생 예종의 죽음을 재촉했으며, 암살이라는 여운까지 남기며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렸던 그녀의 정치적 결단은 이렇게 시어머니 정희왕후의 권력욕과 사돈 한명회의 정치적 야심과 결탁하여 최선의 선택으로 자리했다.


'충효' 가 강요되던 조선 왕조에서 시동생이자 한 나라의 임금인 예종의 죽음을 바라보며 어쩌면 인수대비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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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정한 계모, 문정왕후 윤씨



조선 왕조 두번째로 수렴청정을 하면서 그 어떤 왕실 여인들보다 막강한 위세를 누렸던 문정왕후 윤씨의 그 대단한 '권력' 의 이면에는 아들을 죽이고 권력을 쟁취해야만 했던 어머니의 무서운 야욕이 숨겨져 있다. 물론 문정왕후에게 죽임을 당한 인종은 문정왕후의 '친아들' 은 아니었지만 법적 관계로만 따지자면 인종과 문정왕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없었기에 문정왕후에 의한 '인종 독살' 은 더더욱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 들여진다.



중종의 죽음과 함께 인종이 즉위하고, 인종을 위시한 '대윤' 이 정치판을 장악하자 대비였던 문정왕후는 인종을 죽이는 것을 통해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대윤 세력을 일거에 제거했다. 인종이 세자에 있을 때부터 동궁전에 불을 지르는 등 예종 암살에 열을 올렸던 문정왕후는 끝끝내 윤리와 강상이 치도의 근본이었던 조선 왕실의 한 복판에서 임금에게 독이 든 떡을 먹이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인종 독살' 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는 '설' 정도로만 전해지고 있지만 정황 상 문정왕후가 인종을 독살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인종의 죽음은 그녀에게 궐 안에서 대적할 수 없는 왕실 최고의 어른임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수렴청정이라는 막강한 권력까지 안겨다 줄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결국 문정왕후는 무시무시한 독살 계획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스스로 거행함으로써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를 내부적으로 확실하게 매듭지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걸의 자질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그 담대한 자질이 조선 왕조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친아들의 지위 보장을 향한 '그릇된 모정' 에서 시작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천수를 누린 문정왕후의 죽음 뒤에 훗날 사관들은



"문정왕후는 천성이 엄의嚴毅(엄격하여 굳세고 사나움)하여 비록 상(명종)을 대하는 때라도 말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지 않았고 수렴청정한 이래로 무릇 설시設施(임금이 정사를 돌보는것)하는것도 모두 상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 불교에 마음이 고혹되고 환관을 신임하여 나라의 재정을 다 기울게 했고, 승도僧徒(스님들)들을 봉양하고 남의 전지와 노복을 빼앗아..... 게다가 권세가 외척으로 돌아가 정사가 사문私門 에서 나오고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며 기강이 문난해지고 국세가 무너져서 장차 구언하지 못하게 되었다."



라고 혹평했으니 비정하고도 치열했던 권력에의 집착은 결국 이러한 비극만을 나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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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대비가 지목한 '선조 독살' 의 주범, 김개시.



조선 왕조에서 임금의 '수라' 는 언제나 독살의 위험이 천만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임금은 독살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비를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살설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계속 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선조의 독살이다. 변덕 많고 의심 많았던 아버지 선조에게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았던 아들 광해군이 서둘러 왕위에 즉위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살설의 한 가운데에는 선조와 광해의 총애를 동시에 받았던 상궁 김개시(김개똥) 이 존재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에서는 "김개시가 어여쁜 외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의 총애를 독차지 했던 것은 선조의 독살이라는 광해 최대의 약점을 움켜 쥐고 있었기 때문" 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선조의 죽음에는 선조와 김개시, 그리고 광해군의 정치적 함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셈이다. 훗날 광해군에게 폐모 되었다가 복권 되었던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는 광해군과 김개시를 싸잡아서 "부살(父殺)한 것이 과연 광해와 개똥이로다!" 라며 선조 독살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선조의 죽음을 지척에서 바라보았던 인목대비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광해군에 대한 앙갚음의 차원에서 나온 '날조된 사실' 로 치부하기도 한다. 아무리 반정으로 쫒겨 난 왕일지라도 함부로 죽일 수 없었던 조선 왕조의 법도 상 인목대비가 광해를 사지로 몰아 넣기 위해서는 '선조 독살' 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인목대비의 정치적 입장은 광해군을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사안이었고, 김개시 역시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쩌면 '선조 독살' 의 가장 큰 수혜자는 광해군과 김개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을 풀고자 했던 인목대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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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의 아들을 '제거' 하라, 인원왕후 김씨.



조선 왕조의 500년 역사 중 가장 '치열한' 당쟁을 벌였던 숙종 조에 춘몽처럼 지나갔던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삶과 죽음은 그대로 훗날의 아픔이 됐다. 사약을 받고 쓰러지는 어머니 장희빈의 죽음을 눈 앞에서 똑똑하게 지켜봐야 했던 경종과 그런 경종에게서 '연산군' 의 악몽을 뒤늦게 발견한 노론 세력은 이미 화해할래야 화해할 수 없는 정치적 라이벌로 추락했다. 경종은 노론 세력의 강공을 끊임없이 방어해야 했고, 노론은 숙빈 최씨의 소생 연잉군을 내세워 경종을 압박하는 지루한 싸움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경종에게 불행했던 것은 자신의 법적인 '어머니' 인원왕후 김씨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의 편이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소론 당파였으나 지아비 숙종을 따라 노론 당파로 자리를 옮긴 뒤 열렬한 '노론주의자' 로 변신했던 인원왕후 김씨는 연잉군과 노론 세력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경종을 압박해 정치적 활로를 뚫어주는 '왕실의 호랑이' 였다. 장희빈이라는 굴레 속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던 경종에게 인원왕후의 차가운 냉대는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시련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종은 재위 2년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왕권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노론 세력을 침몰시키고 소론을 등용했으며 조정에도 활기를 불어 넣고자 했다. 경종의 이러한 움직임은 연잉군에게나, 노론에게나, 인원왕후에게나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독살' 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원래 몸이 안 좋았던 경종이 환후로 고생하던 때에 연잉군은 평소 경종이 좋아했던 '게장' 을 수라로 올려 기어코 먹게 한다. 경종은 게장을 먹으며 "역시 연잉군이야 말로 내 진정한 형제로다!" 라며 칭찬했다지만 문제는 게장이 그의 환후와는 상극인 '치명적 음식' 이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소론 세력은 연잉군의 '왕권 찬탈' 을 우려하여 연잉군의 대전 출입을 엄격히 감시할 때였지만 왕실의 큰어른이었던 인원왕후는 이러한 소론 세력의 견제 속에서도 연잉군이 올린 문제의 '게장' 을 무사히 경종 앞에 대령할 수 있도록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원왕후가 게장과 경종의 환후가 상극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 역시 경종의 독살에 일조한 주범 중 한명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각본, 연출이 인원왕후였다면 주연은 연잉군이었다.



결국 경종은 4년여의 재위 기간을 끝으로 연잉군과 어머니 인원왕후에게 '불의의 타격' 하나를 얻어 맞고 그대로 하늘로 떠나고 말았다. 경종의 죽음을 끝으로 연잉군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왕좌를 얻게 됐고, 인원왕후는 자신이 지지한 당파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조선의 르네상스' 라고 불리며 일대 부흥기를 열었던 조선의 영-정조 시대는 사실 법적인 아들을 버려야만 했던 어머니의 비정함을 거름으로 자라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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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위해 남편을 버리다, 혜경궁 홍씨.



영조 20년 1월 9일. 열살의 '세자빈' 을 앞에 두고 장차 임금의 장인이 되는 홍봉한이 입을 열었다. "궁중에 들어가면 3전 섬김을 삼가고 조심해 효성으로 힘쓰고 동궁 섬김을 반드시 옳을 일로 돕고, 말씀을 더욱 삼가해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소서." 어린 세자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과 나라에 복을 닦으라." 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가슴 깊이 새기고 어린 세자빈은 구중궁궐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 사람이 영조와 정조, 순조의 시대를 관통한 여인, 혜경궁 홍씨였다.


이렇게 '집의 복을 닦으라.' 는 아버지 홍봉한의 말 한마디는 혜경궁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백두의 처지였던 홍봉한이 하루 아침에 세자의 장인이 되고, 숙부인 홍인한이 세도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혜경궁은 자신의 가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노론 명가로 일어나기 시작한 풍산 홍씨 가문을 위해 혜경궁은 나라와 남편과 자신을 모두 갖다 바쳐야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성공이자, 숙부의 성공이었고 곧 자신의 성공이기도 했다.


'삼종(효종-현종-숙종)의 혈맥' 을 잇는 단 하나의 혈육, 그리고 장차 왕통을 이어나가야 할 사도세자와 세자빈 홍씨는 겉으로 보기엔 '최고의 결합' 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결합은 조선 최고의 비극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모순된 결합이었다. '소론' 을 지지하는 세자와 '노론' 명가의 세자빈은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혜경궁은 남편을 버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 에서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사도세자의 정신병이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불편한 몸을 치유하러 나간 온양 행궁에서조차 백성들의 찬사를 받을 정도로 '멀쩡한' 인물이었다. 사도세자가 혜경궁의 말처럼 그저 '미치광이' 에 불과한 정신병자였다면 영조가 10여년 동안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길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허나 혜경궁은 이상하게도 '일관되게' 사도세자 정신병자설을 고집했다.


혜경궁은 남편의 원대한 꿈을 가장 지척에서 지켜보았다. 사도세자의 꿈은 '노론정권' 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소론정권' 을 세우는 것이었다. 썩을대로 썩어버린 노론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소론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 역학구도를 구상하는 사도세자의 꿈은 혜경궁에게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위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결국 그녀는 사도세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노론의 '스파이' 로 활약하기로 결심했다. 사도세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혜경궁의 입을 통해 궐 밖으로 빠져나갔고 노론은 혜경궁의 도움에 힘입어 사도세자 제거라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아무렇지도 않게 꾸밀 수 있었다.


사도세자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부인이 자신이 아닌 가문을 택했다는 처참한 상황에 영조의 어린 부인인 정순왕후 김씨가 가세하면서 사도세자의 입지는 더더욱 궁색해졌다. 사도세자는 노론이라는 강적이 밖에서 둘러 싸고 있는 위급한 형국에서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아들까지 낳은 부인 혜경궁과 법적인 어머니 정순왕후, 생모인 영빈 이씨 모두 바깥에서 이뤄지는 '사도세자 제거 음모' 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베겟머리 송사가 송사 중에 으뜸' 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사도세자는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바깥과 안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공격에 영조와 사도세자는 돌이킬 수 밖에 없는 강을 건넜다. 이것은 혜경궁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명의 그날, 사도세자는 혜경궁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내 목숨이 그 날 마칠 것도 스스로 염려하여 세손을 경계 부탁하고 왔었는데 동궁(사도세자)께서는 생각과 다르게 나더러 하시는 말씀이 '아무래도 이상하니 자네는 잘 살게 하겠네. 그 뜻들이 무서워." 하시기에 내가 눈물이 드리워 말없이 허황해서 손을 비비고 앉았더니, 이 때 대조(영조)께서 휘령전으로 오셔서 동궁을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더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혜경궁을 향한 사도세자의 원망어린 발언이다. 지금의 말로 풀자면 "나는 죽는데 이상하게도 너는 살 것 같으니 너의 뜻이 참 무섭다." 는 한탄이었다. 이어서 사도세자는 혜경궁에게 이런 말까지 남긴다. "자네가 참으로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 하기에 오늘 내가 나가서 죽겠기로 그것을 꺼려 휘향을 내게 안 씌우려는 그 심술을 알겠네."


'나는 죽는데 너는 안 죽으니 이상하다.' '참으로 무섭고 흉하다' '내 아들을 데리고 혼자 오래 사려고 한다' '심술이 가득하다' 는 폭언은 10여년 넘게 자신과 함께 살아 온 부인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서슴없이 혜경궁에게 그런말을 퍼부었다. 운명의 그 날, 사도세자도 혜경궁도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제거할 수 밖에 없는 혜경궁과 부인의 가문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사도세자,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비극적 결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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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죽음을 지켰던 단 한명의 여자, 정순왕후 김씨



'경종의 독살' 이라는 혐의와 함께 일어섰던 영조의 업보였을까. 그의 손자였던 정조는 즉위하는 그 순간부터 독살과 암살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임금이었다. 정조 이전에도 여러 임금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의혹에 시달렸지만 정조만큼 생명을 걸고 왕좌를 지킨 임금도 드물었다. 게다가 정조는 그 어떤 임금도 겪지 못했던 '자객의 침입' 까지 받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조가 더욱 두려워 했던 것은 보이는 '자객' 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독살' 이었다. 갑작스러운 정조의 죽음과 함께 "임금이 독살 당하였다." 는 말이 떠돌고 경상도 인동시 장시경, 장현경 부자가 정조 독살의 배후를 밝히겠다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정조의 죽음 배후에는 거대 당파였던 노론 벽파 세력과 독살을 직접 진두 지휘했던 정순왕후가 존재했다.


놀라운 것은 1800년 정조 24년 6월 28일, 종기로 투병 중이던 정조를 둘러싸고 치료상의 난맥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정조 스스로 의학 지식이 뛰어난 군주였고 궁중 의원들이 즐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치료는 쉽사리 이뤄지지 못했다. 바로 정조의 최대 정적 중 한명이었던 정순왕후 김씨가 정조의 치료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기 대문이다. 궁중의 한낱 아녀자로서 임금의 치료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불경에 가까운 파격이었으나 노론 대신들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병세가 선조 병술년의 증세와 비슷하니 성향정기산이라는 탕약을 올려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더욱 우스운 것은 정순왕후의 하달을 당시 도제조 이시수가 그대로 따랐다는 것이다. 의학 지식이 없는 아녀자의 말 한마디에 임금의 치료가 우왕좌왕 하는 우스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정순왕후는 내시를 데리고 정조의 안색을 살피겠다며 직접 대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고 싶으니 경들은 잠시 물러가시오." 라는 명과 함께 방 안에는 정조와 정순왕후, 단 둘이 자리잡았다. 투병 중인 임금과 그 임금을 죽여야만 사는 대비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지어졌다. 잠시 뒤 방안에서는 정순왕후의 곡소리가 들렸고 정조의 임종을 지켜본 것은 정조를 낳은 혜경궁도, 부인인 효의왕후도 아닌 정조의 최대 정적, 정순왕후였다. 이것으로 정조의 시대는 끝이났고 '수렴청정' 의 위세를 누리던 정순왕후의 시대가 열렸다.



조선 왕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사건은 바로 이렇게 '허망하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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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한복판에서 조선의 역사를 움직인 여성들



철저한 '남녀차별' 과 '남존여비' 의 사상으로 가득했던 조선 왕조는 누가 뭐래도 '남성들의 사회' 였다. 그러나 구중궁궐 한 복판에서 역사를 움직이고 창조한 것은 여성의 몫이기도 했다. 그들은 소리 없이 조용하게 한 나라의 군주이자 만인지상인 임금의 죽음을 목도하고, 재촉하고, 움직였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정치적 함수 관계에 따라, 권력 투쟁의 일상 속에서 임금의 목숨줄을 가장 쉽게 움켜 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임금 바로 옆에 앉아있는 왕실의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왕실 여성들이 존재하는 이상 조선 왕조는 일정부분 여성들의 치맛폭 속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었다. 그 운명이 결국 조선의 역사를 움직였고, 왕실 여성들을 움직이게 했다. 임금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을 통해 인수대비나 인원왕후처럼 '역사적 성공' 을 거둔 인물도 있는 반면, 문정왕후나 정순왕후처럼 혹평을 받는 인물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정치적 선택' 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어쩌면 그녀들의 '선택' 역시 역사가 강요했던 어쩔 수 없는 '선택' 은 아니었을까.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저 역사 그 자체일테니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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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궁금@정말.ㅜㅅ BlogIcon 어디서 돈받고 해요? 2009.05.2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오버하는지 정확히 집어낸건지... 확신은 못하겠다.
    노대통령의 서거 원인은 현정부의 망신주기에 있다는 것이 여론이다.(여기까지 팩트)
    그런데... 은근히 꼬면서..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다른곳에서 찾아볼려는 꼼수같은 황당한 뉘앙스를 풍기고 잇는 블로그다.

  2. Favicon of http://궁금@정말.ㅜㅅ BlogIcon 그렇게 살고 싶은가? 2009.05.27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받으면.. 이런글도 써주고.. 얼마주면.. 댓글하나 없는데 대문에 표지로 나오죠?

  3. Favicon of http://궁금@정말.ㅜㅅ BlogIcon 연예가섹션님 2009.05.27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히 가십시오.^^
    전 이만 ...

  4. 글쎄요... 2009.05.27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내용에서 보면 정사로 확실하게 인정받은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부분이 많더군요.
    그런 부분을 그냥 역사적 사실인것처럼 인용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닐지... 실하게 보자면 역사왜곡입니다.
    요사이 사극들처럼...

  5. 혜경궁 2009.05.27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혜경궁은 좀 그렇네요. 남편이 멀쩡했다고 주장하면 그 멀쩡한 남편을 죽인 시아비를 욕보이는 셈이 됩니다. 시아비를 욕 안보이면서 남편을 멀쩡하게 만드려면 남편이 실로 모반을 꾀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죠. 그럼 아들이 문제가 됩니다. 모반자의 아들이 왕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당연 남편이 정신이상이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거죠.

  6. 음... 2009.05.27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수대비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인데... 성종 치세가 워낙 태평천하였다고 평을 받아 그런지 약하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그만큼 여자의 독한 마음이 무섭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흥행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악녀' 들이다. 착한 여자들보다 확고한 개성과 색깔로 드라마를 휘어잡는 악녀들의 모습은 밉긴 하지만 결코 싫진 않다.


때로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때로는 시청자들을 소름돋게 한 드라마 속 악녀들. 그녀들의 '악녀 열전' 속으로 들어가보자.




[엄뿔] 의 장미희 : '악녀지수' ★★


2008년 [엄마가 뿔났다] 신드롬의 중심에는 '장미희' 가 있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캐릭터인 고은아다.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외동딸로 자랐고, 남부러울 것 없는 외모와 재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속물이자 천것으로 생각하는 마나님이다. 스스로를 귀족이라 칭하고, 며느리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 며 대놓고 구박을 하는 그녀는 [엄뿔] 의 대표적 악역이었다.


그러나 따박따박 따지는 며느리에게 말싸움에서 지기도 하고,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녀의 모습은 악녀라기 보다는 철없는 재벌집 마나님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 남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갖은 애교를 다 떨고, 사돈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이탈리아 컴퍼니에 컴플레인을 걸어야겠다며 당황해 하던 그녀의 모습을 어찌 악녀라고만 칭할 수 있을까. 밉기보다는 귀여운 그녀 덕분에 [엄마가 뿔났다] 가 빛났던 것 같다.



[인어아가씨] 장서희 : 악녀지수 ★★☆


장서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은 드라마 [인어아가씨]. MBC 연기대상 통산 5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던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은아리영' 은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자아낼 정도로 파괴력 있는 캐릭터였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는 좌우명 아래 아버지와 바람난 한혜숙에게 온갖 망신을 다 주는 그녀의 모습은 비록 복수라는 미명 하에 행해졌지만 악독하고 무서웠던 것이 사실.


아버지에게 뺨을 맞자, 아버지의 처에게 그대로 복수를 하고 병을 깨 자해까지 하는 모습은 '독한 여자' 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허나 바람 난 아버지때문에 처절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눈까지 먼 엄마를 모시고 살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살펴보자면 그녀의 악행조차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장희빈] 의 정선경 : 악녀지수 ★★★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 장희빈. 지나가던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그 악명은 지금까지 대대로 이어지며 '드라마' 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정적이자 연적이었던 인현왕후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모함과 누명을 다 씌웠던 그녀의 처절한 인생은 그 어떤 악녀들보다 지독한 느낌까지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낱 역관의 딸로 태어나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야만 했던 그녀의 몸부림이 안쓰러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악행은 곤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가 택했던 투쟁의 역사로 일변된다. 훗날 사관은 장희빈을 두고 "장희빈(嬪). 아명은 옥정, 본관은 인동. 효종 10년인 기해년 9월 19일, 한미한 중인이며 역관인 장형의 딸로 태어났다. 보잘것 없는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만민의 어미요, 지존의 짝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으나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 숙종 27년 10월 10일 왕비를 저주한 죄로 자진하여 죽으니 그 때 장희빈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라고 적고 있다.


지금 그녀의 시신은 숙종, 인현왕후와 함께 서오릉에 묻혀 있고, 위패는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 함께 칠궁에 모셔져 있다.




[아내의 유혹] 의 김서형 : 악녀지수 ★★★☆


요즘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 여기서 악녀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김서형의 인기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친구의 남편을 빼앗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친구의 죽음조차 묵인해 버리는 그녀의 악행은 드라마가 진행되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 여기에 시어머니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하고, 자신의 앞날에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제거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진짜 악녀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러나 최근 장서희의 복수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면서 그녀의 악행도 점점 '허당' 으로 변신해가고 있다. 사사건건 장서희에게 휘둘리는 것은 물론이고,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간호사의 일격까지 받으면서 악녀로서 자존심이 옴팡 구겨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변우민의 바람기를 잠재우기 위해 다시 한번 악녀지수를 높여가고 있는 그녀가 장서희를 어떤 식으로 궁지에 몰아 넣을 지 사뭇 궁금해진다.



[별은 내 가슴에] 의 박원숙 : 악녀지수 ★★★☆


故 최진실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는 [별은 내 가슴에]. [질투] 와 함께 한국 트렌디물의 역사를 바꿔 놓은 작품으로 회자되는 이 작품에서 최진실에 대적하는 악역으로 나온 인물이 바로 박원숙이다. 당시에 박원숙, 조미령, 박철은 [별은 내 가슴에] 에서 가장 꼴보기 싫은 캐릭터 1, 2, 3위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그들의 악행이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원숙과 최진실이 치고 받고 싸웠던 '엘레베이터 씬' 은 두고두고 회자 될 명장면으로 긴박하지만 코믹했던 이 장면으로 그녀는 당대 가장 재미있고 귀여운 악녀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문이 닫힌지도 모르고 나가려다 문에 부딪히는 장면은 박원숙 캐릭터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코믹하지만 그만큼 꼴보기 싫었던 '악녀' 박원숙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할 것이다.



[토마토] 의 김지영 : 악녀지수 ★★★★


[토마토] 의 김지영. 당시 '착한여자' 캐릭터는 도맡아 했던 김희선의 상대역을 하려 한다면 무조건 '악녀' 타이틀은 달고 시작해야 했다. 김지영 역시 김희선에게 맞서기 위해 스스로 악녀 캐릭터를 선택한 케이스로 [전원일기] 에서 푸근하고 순박했던 복길이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데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됐다. 5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 덕택에 세련된 도시여성 이미지를 회복하는데도 성공했고 말이다.


김지영은 [토마토] 뿐 아니라 [전설의 고향] '구미호' 에서 구미호 역을 소화하며 악녀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러한 자기 변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김지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에서 열연을 펼쳐 각종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미스터 Q] 의 송윤아 : 악녀지수 ★★★★


[미스터 Q] 의 송윤아. 송윤아 역시 김지영과 같은 케이스로 '김희선' 과 맞서기 위해 악역을 선택한 배우 중 한명이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데다가 이미지 자체가 세련되고 깔끔해서 지적이면서도 교묘한 악녀 캐릭터를 절묘하게 소화해 냈다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 김희선은 한 토크쇼에서 "송윤아 언니가 너무 착하고 이쁜 언닌데, 연기를 할 땐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하는지 놀랍다." 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


[미스터 Q] 의 대성공 이후에 송윤아는 연기자로서 자신의 이름값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며 톱스타로서 확고한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2008년에는 김하늘과 함께 주연으로 나섰던 드라마 [온에어] 가 히트하면서 다시 한 번 송윤아라는 배우의 이름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대장금] 의 최상궁 : 악녀지수 ★★★★


[대장금] 을 이끈 것은 비단 이영애 뿐이 아니었다. 이영애의 뒤를 받쳐 준 한상궁 양미경과 최상궁 견미리가 없었다면 [대장금] 의 대성공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한 악행들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최상궁 견미리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어서 [대장금] 을 논할 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상궁이 아름다운 스승상으로 이름을 날렸다면 최상궁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악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장금] 이전만 해도 너무 선한 이미지 덕분에 본의 아니게 제한적인 캐릭터만을 소화해 냈던 견미리는 [대장금] 에서의 최상궁 연기를 계기로 악녀 대표 연기자가 되며 [주몽][이산] 등에서도 악역을 연기해야 했다. 이제는 "악역말고 착한 연기 하고 싶다." 며 투정을 부리는 견미리를 보며 정말 팔색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브의 모든것] 의 김소연 : 악행지수 ★★★★☆


[이브의 모든것] 의 '허영미' 김소연. 이름만큼 허영과 욕심에 가득찬 아나운서 '허영미' 캐릭터는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악녀 대표다. 세련되고 지적인 외모 뒤에 숨겨져 있는 추악한 인간미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차지하고자 하는 그녀의 악행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던 것이 사실. 당시에 김소연이 이 캐릭터를 얼마나 잘 소화했냐하면 [이브의 모든것] 이 방송되는 날에는 방송국에 항의 전화가 불통을 이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어정쩡하고 우유부단한 착한여자 '진선미' 채림보다 차라리 자기 주장 확고하고 개성 뚜렷한 허영미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채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김소연' 중심의 드라마로 흘러갈 정도로 김소연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작품이었다. 김소연은 [이브의 모든것] 이 후, 악녀 이미지를 깨부수기 위해 절치부심 했다고 알려졌다.



[진실] 의 박선영 : 악녀지수 ★★★★☆


[진실] 의 박선영. 박선영의 연기인생은 [진실]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진실] 이전만 해도 어정쩡한 이미지였던 그녀는 [진실] 이후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젊은 나이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악녀 캐릭터를 확실하게 소화해 냈던 그녀는 톱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최지우, 류시원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혼신을 다한 연기를 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친구에게 수능을 대신 보게 하고, 자동차 사고 죄목까지 뒤집어 씌우는 박선영의 악행은 지금까지 악녀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해봐야(?)하는 행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천국의 계단] 의 이휘향 : 악녀지수 ★★★★★


[천국의 계단] 의 이휘향을 이야기하면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넌 빠져!!" 라는 명대사 하나만 말해도 이휘향의 악명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중국, 베트남까지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 그만큼 악녀하면 이휘향이 생각날 정도로 이휘향은 독기와 서슬 가득한 악녀 역할을 가장 제대로 소화해 내는 배우다. 이 또한 출중한 이휘향의 연기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휘향은 [천국의 계단] 뿐 아니라 [봄날] 에서도 면도칼을 휘두르며 비열한 웃음을 짓는 악녀 또한 소화해 냈고, 작년에는 [행복합니다] 에서 허영많고 독살맞은 재벌집 마나님을 연기하며 특유의 '악녀연기' 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녀는 역시 수많은 악녀들 중에서도 레전드 오브 레전드, 전설 중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멋진 '못된 배우' 에게 박수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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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 2009.01.19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얀거짓말에 나오는 김해숙씨가 요즘 정말 무섭던데 빠져있어서 아쉽네요~

  2. 백곰 2009.01.19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양의 여자가 빠져있네요..

  3. 2009.01.19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태양의여자 기대했는데 없네요 ㅋㅋ

  4. Favicon of http://regime-rapide.be BlogIcon maigrir vite 2012.04.22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입니다 아주 보기 . I 지금은 보내기 에 친구 .


최근 '뜸' 하더니 [바람의 나라][바람의 화원] 등 다시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에야 소재도 많고, 기획력도 좋아져서 여러가지 사극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예전에는 '사극' 하면 몇 몇 소재와 인물들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조선 숙종조에 바람같이 살다 간 숙종의 총희 '장희빈' 에 관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1대 장희빈 윤여정을 시작으로,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등 당대 가장 뛰어난 연기력과 미모를 갖춘 여배우만 출연할 수 있다는 '장희빈' 은 그 자체로 흥행이 보장되어 있는 흥행 보증 수표라고 할 만 했다.


특히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사약을 받고 처절하게 죽는 마지막 '사약씬' 은 장희빈을 이야기 할 때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손 꼽힌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약' 하면 장희빈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장희빈이 억지로 사약을 먹고 숙종 앞에서 죽었다.' 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정작 실제 장희빈은 사약을 앞에 두고 그렇게 패악을 떨며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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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승하 후에 인현왕후를 무고한 죄가 밝혀져 취선당 상궁 나인과 무당 오례, 장희빈의 올케인 숙정이 엄벌을 받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장희빈의 죽음 역시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죄목과 관계 되었음은 분명한 일이다. 허나 지금껏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장희빈이 끝까지 온갖 패악을 떨다가 억지로 사약을 들이키며 죽어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숙종 앞에서 발악을 하다가 세자(훗날 경종)의 고환을 뜯어 냈다는 이야기 또한 당시 백성들의 입과 입으로 떠돌던 야사의 한 토막일 뿐 정사(正史)는 아니다. 조선 왕조 실록에 쓰여져 있는 장희빈의 죽음은 우리가 누누이 봐 오던 장희빈의 죽음과는 상반 되게 적혀 있다. 숙종이 장희빈을 죽음의 문턱으로 끌고 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생명줄을 직접 끊은 것은 숙종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 자신이었다.


숙종 35년, 9월 25일 밤. 숙종은 조정 대소신료들에게 이런 비망기를 내린다.


"옛날에 한(漢)나라 의 무제가 구익 부인(鉤弋夫人)을 죽였으니, 결단할 것은 결단하였으나 그래도 진선(盡善)하지 못한 바가 있었다. 만약 장씨(張氏)가 제가첩이라는 운명을 알아 그와 같지 아니하였다면 첩을 정실(正室)로 삼지 말라는 《춘추(春秋)》의 대의(大義)를 밝히고 법령(法令)으로 만들어 족히 미리 화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구익 부인 에게 한 것과 같이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죄가 이미 밝게 드러났으므로 만약 선처하지 아니한다면 후일의 염려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니, 실로 국가를 위하고 세자(世子)를 위한 데서 나온 것이다. 장씨로 하여금 자진(自盡)하도록 하라."



한 마디로 장희빈에게 내린 숙종의 첫 번째 "자살 권유" 였다. 이 때 이미 장희빈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던 때였다. 인현왕후를 저주한 사건이 발각 되어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고, 숙종의 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희빈은 숙종의 첫 번째 자살 권유를 '가볍게' 무시했다. 아직 그 죄가 완전히 밝혀진 것이 아닌데다가 저주에 가담했던 올케 숙정과 무당 오례가 자백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장희빈은 숙정과 오례만 '입' 을 다물어 준다면 아들인 세자를 핑계로 정면 돌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장희빈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철썩 같이 믿었던 취선당 상궁나인들과 올케 숙정, 무당 오례가 "모두 장희빈이 시킨 일이었다." 며 자백을 해 버린 것이다. 장희빈으로서는 청천 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인현왕후 저주사건에 대한 모든 증거를 확보한 숙종은 첫 번째 자살 권유를 한 지 일주일만에 다시 장희빈에게 '두 번째 자살' 을 권유한다.


"희빈(禧嬪) 장씨(張氏) 가 내전(內殿)을 질투하고 원망하여 몰래 모해하려고 도모하여, 신당(神堂)을 궁궐의 안팎에 설치하고 밤낮으로 기축(祈祝)하며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두 대궐에다 묻은 것이 낭자할 뿐만 아니라 그 정상이 죄다 드러났으니, 신인(神人)이 함께 분개하는 바이다.
 

이것을 그대로 둔다면, 후일에 뜻을 얻게 되었을 때, 국가의 근심이 실로 형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전대 역사에 보더라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나는 종사(宗社)를 위하고 세자를 위하여 이처럼 부득이한 일을 하니, 어찌 즐겨 하는 일이겠는가?
장씨
는 전의 비망기(備忘記)에 의하여 하여금 자진(自盡)하게 하라.


아! 세자의 사정을 내가 어찌 생각하지 아니하였겠는가? 만약 최석정(崔錫鼎) 의 차자의 글과 같이 도리에 어긋나고 끌어다가 비유한 것에 윤기(倫紀)가 없는 경우는 진실로 족히 논할 것이 없겠지만, 대신과 여러 신하들의 춘궁을 위하여 애쓰는 정성을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또 다시 충분히 생각한 결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처분을 버려두고는 실로 다른 도리가 없다. 이에 나의 뜻을 가지고 좌우의 신하들에게 유시하는 바이다."


숙종의 '최후 통첩' 이었다. 이제 장희빈에게 믿을 거라곤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인 세자가 전부였다. 세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조정 대신들에게 구명 요청을 하는 것 밖에는 딱히 대안이 없었다. 숙종의 '자살 권유' 가 떨어진지 바로 그 날 부교리 권상유 등이 "세자를 보전" 하자는 이유로 장희빈의 구명에 나섰으나 숙종은 "어림 없는 일" 이라며 허락치 않았다. 천길 낭떠러지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장희빈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장희빈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구중 궁궐에 살아 오면서 정치의 요체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던 그녀였다. 세자라는 '무기' 가 있는 이상 숙종도, 조정 대신들도 감히 그녀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버틸 수 있을만큼 버텨보고, 정 안 되면 다시 한 번 조정 대신들을 움직여 봐야 한다는 것이 장희빈의 계산이었다.


숙종의 자살 권유에도 꿈쩍 하지 않는 장희빈을 보며 조정 대신들은 다시 한 번 그녀의 구명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연산군 시절 연산의 어미인 폐비 윤씨를 구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 많은 대신들의 목이 날아간 것을 그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훗날 살아 남기 위해서 장희빈을 '구하는 척' 이라도 해야 했다. 권상유의 상소가 불허 된 바로 직후에 판중추부사 서문중 등이 숙종을 청대하여 다시 한 번 장희빈의 구명을 권유했으나 숙종은 또 다시 '불허' 했다.


"잔말 말고 어서 빨리 죽으라." 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숙종의 뜻이 "장희빈의 죽음" 으로 확실히 기운 것을 확인한 조정 대신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세자의 보복이 두렵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조선의 임금은 숙종이었다. 미래의 권력을 위해 현재의 권력에게 등을 돌리는 일 따위를 할 조정 대신들이 아니었다. 숙종의 완강한 뜻과 요지부동인 조정 대신들의 공론을 확인한 장희빈은 더 이상 일을 돌이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러 방면으로 자신의 구명을 요청했으나 취선당에 갇혀 있는 버려진 후궁 따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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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역관의 딸로 궁에 들어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 했던 30년 세월의 허망함을 장희빈은 그 순간 깨닫게 됐다. 숙원, 숙의, 소의의 자리를 거쳐 중전 다음 자리인 '빈(嬪)' 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고, 인현왕후를 모함하여 결국 만인지상의 짝인 '중전' 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녀지만 죽음을 앞둔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삼척동자도 안다는 장희빈의 위세도 임금의 불호령 앞에서는 별 것 아닌 허명이었던 셈이다.


결국 숙종의 '두 번째 자살 권유' 를 받아든지 이틀 만에 장희빈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때 가장 사랑했던 지아비의 협박과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자신의 목숨줄을 잘라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장희빈이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
 

장희빈의 '자살'은 숙종실록 숙종 27년 10월 10일 2번째 기사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임금이 하교하기를 "장씨(張氏) 가 이미 자진(自盡)하였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상장(喪葬)의 제수(祭需)를 참작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라고 적혀있으니 숙종 자신의 입으로 장희빈의 자살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셈이다. 젊은 날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을 죽음으로 몰고갈 정도의 비정함은 '당쟁 군주' 숙종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비록 장희빈은 드라마에서처럼 숙종 앞에서 사약을 들이키며 죽어가진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 보자면 드라마보다 더욱 쓸쓸하고 처절하게 죽은 듯 하다. 평생을 은혜했던 지아비의 입에서 떨어진 두 번의 "자살 권유" 를 이기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취선당 골방에서 죽음으로서 죗값을 치뤄야만 했던 장희빈의 생애는 투쟁으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만큼이나 파란만장했고 허무했다.


훗날 사관은 장희빈을 두고 "장희빈(嬪). 아명은 옥정, 본관은 인동. 효종 10년인 기해년 9월 19일, 한미한 중인이며 역관인 장형의 딸로 태어났다. 보잘것 없는 신분에서 몸을 일으켜 만민의 어미요, 지존의 짝인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었으나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해, 숙종 27년 10월 10일 왕비를 저주한 죄로 자진하여 죽으니 그 때 장희빈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라고 적고 있다.


지금 그녀의 시신은 숙종, 인현왕후와 함께 서오릉에 묻혀 있고, 위패는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와 함께 칠궁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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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산소맨 2008.09.03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살로 죽었다??? 자살했다겠지요...^^

  3. ㅂㅂ 2008.09.03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진의 의미를 오늘날 자살과 같게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임금이 내린 약을 먹고 죽든 하사한 칼로 죽든 기록은 "자진케 한 것"으로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강제로 사약을 먹여 죽여도 자진하였다고 실록에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실록또한 주관이 개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항을 하며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 사극의 재미를 위해서 결정적이고 이것이 실록에 나와있지 않은 기록이라고 해서 사극과 실록이 완전히 배치된다고 할 수 없을것 같습니다.

  4. 글쎄요... 2008.09.03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사약을 내리는 건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인을 존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의미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실제 장희빈이 사약을 거부하고 궁인들이 사약을 먹여 죽였다고 하더라도, 임금이 내린 사약을 먹고 죽은 것이므로 실록은 당연히 이를 자진이라고 기록했을 거 같은데요...실록은 공적인 기록이잖아요.

  5. 일언재길 2008.09.03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 잘 보았습니다. 다만, "평생을 은혜했던"이 걸리네요. 사랑하다의 옛 표현은 "은애"로 알고 있습니다만. 은근하게 사랑(애)하다~

  6. 지나가다... 2008.09.03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한마디 합니다. 조선실록은,,, 당대 왕은 스스로 자신의 기록을 볼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후대에 수정이 불가능하도록 법으로 규정 되어 있습니다. 조선은 법치국가입니다. 다만 단종실록은 세조대에 수정된 의혹이 있고 일제시대 쓰여진 고종실록은 명백한 날조일 뿐, 대부분의 기록은 진실입니다.

  7. 지나던이 2008.09.03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는 야사를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나본데.. 야사가 있어야 실록을 해석하는거다. 글쓴이의 논리라면 현재 국사편찬위원회가 아닌 곳에서 기술한 역사는 모두 역사가 아닌 것이다.
    경종이 후궁도 후사도 없었고 장희빈 사사 당일 약방에서 경종에게 약을 수차례 지어올린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잡아 '뜯은건' 아니다.
    영조 때의 화재로 인조~경종대의 승정원일기가 불에 타 많은 부분이 소실됐다. 실록에 없다고 역사가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장희빈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상소는 수도 없이 많다. 숙종은 사사를 강행했다. 자기 아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던말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장희빈을 죽이고 남인을 제거하면 자기 아들 목숨은 파리목숨이 되는건 자명한 일이었지만 숙종은 서인 편이었기에 자신이 죽고나면 남인이 아닌 서인이 정권을 잡아주길 바랬다.(정책성향으로 보면 '남인'이 서인보다 훨씬 나라에 도움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장희빈을 죽인 것이다.
    자진을 명한 것을 '자살권유'로 엉뚱하게 해석하면 곤란하다. 왕족과 양반을 사약으로 죽이는 것은 오늘날 미국에서 약물주사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왕이 고상하게 '자진'이라고 표현하더라도 실제는 사사다. 왕이 스스로 '내가 사약을 직접 먹인'이라고 굳이 거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경종실록 등 다른 기록엔 모두 '사사'로 적혀있다.
    그리고 세자의 보복이 두려워 사사를 반대한게 아니고 남인들이 반대한 것이다. 후에 그들은 숙종에 의해 처단됐다.

    • 지나가다... 2008.09.03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야사를 정사로 인용하나요? ㅎㅎ

    • 지나던이 2008.09.03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 해석이 잘 안되시나 본데.. '사관'이 아닌 '역사학자'들이 쓴 기록도 야사이자 역사입니다. 사관들의 기록만 해도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학계에서 야史를 야史라고 하는건 역사성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단고기 같은건 위서이므로 위서라고 합니다. 구분을 잘 하셔야겠죠.

  8. 어이구 2008.09.03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숙종이 사약과 함께 장희빈에게 서신을 내렸는데 서신을 펴보니 거기에 "원샷"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하는데 ... 이것도 진정 거짓말 ? 역시 한국인들은 역사왜곡에 천재네요

    • 그렇치 2008.09.0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로 그부분입니다
      그 당시 숙종이 한글이 아닌 영어로 원샷을 적었습니다
      (장씨는 배움이 적어계속 이해를 못하고 사약을 거부했지요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지요
      당시 숙종이 좀더 어진 임금이고 장씨를 배려하였다면
      살작 사약을 커피잔에 담아 원샷이라 한글로 적어 주었다면 ... 흠..
      또다른 야사에는 원샷을 한글로 적어 사약과 같이 내려보냈는데
      사약이 너무 뜨거워 원샷을 할수가 없었다는 썰도 있다 하는데 ... 사약은 차게 마셔야 넘기기가 좋을텐데 쯧쯧

      쯧쯧쯧

  9. 참내 2008.09.03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당해서 글 올립니다. 경종 성기를 잡아당겼다는 이야기, 그로 인해 불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백성들 사이에 떠돌던 야사의 한토막?이 아니고 유생 이문정이 쓴 <수문록>에 기록된 역사입니다. 수문록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0. 신보옹승 2008.09.03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문록은 노론의 입장에서 서술한 당쟁사입니다. 장희빈이 경종의 고환을 잡아당겼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는 아주 고약한 자들에 의하여 지어진 얘기임이 틀림없습니다. 장희빈이 죽음을 맞이할 때 숙종은 세자(경종)과의 접촉을 엄금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을 풀어줄 유일한 한 점 혈육이 세자인데 그걸 모를만큼 장희빈은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 행인 2008.09.03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희빈이 죽으면 어차피 경종도 죽은 목숨이었죠. 장희빈이 그걸 몰랐을리가 없고, 어떻게든 죽지않고 살아서 아들을 보호하려고 했던거죠. 잡아당겨서 불임이 된건지 단지 아이가 잘 안생겼던 것 뿐인지 잡아당긴것과 상관없이 불임이 된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부인이 불임이었을 수도 있구요. 수문록에서도 단지 혹시 장희빈 사사 사건 때 있었던 불미스런 일로 인해서 불임이 된 것은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지요. 수문록의 저자는 숙종~영조 때의 사람이고 수문록은 영조 초년에 쓰여진 기록입니다. 장희빈의 사사 사건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므로 '고약한 사람'으로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지요.

  11. 잘봤습니다! 2008.09.03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네요.
    저도 언젠가 장희빈이 자진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다시 읽게 되니 더욱 재밌군요.

  12. --;;; 2008.09.03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진의 의미를 모르시는 듯....칼 던져주고 죽어라, 사약내리고 죽어라...그게 자진입니다.
    그런데 장희빈은 자진을 거부해서 억지로 먹였습니다. 당근 숙종이 직접 먹인건 아니구요--;;;
    밑에 애들 시켜야죠~

  13. 쩝쩝 2008.09.03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인쪽에서 기록을 대부분 했으니 장희빈에 관해 좋을리가 없죠. 그리고 잡아뜯었다는건 난 솔직히 안믿음. 그만큼 어리석은 여자가 아닐거 같네요. -_-; 오히려 이복형제인 영조가 어케 했다는 소문도 있지요. 어차피 죽고없어진 장희빈탓으로 경종이 후사도 없이 일찍 죽었다라고 씌운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들던데..? 어디까진 인현왕후편에 있던 사람이고 실제 기록에도 그쪽 사람들이 참여헀으니... 뭐 사실 그 시대로 안가보고선 모를일이지만... 적어도 그자리까지 올라갔던 여자라면 끝에 권력에 눈먼 여자라 해도 자기 유일한 후사인 경종을 그케 끊었을리가 없지싶네요.

  14. 글쎄a 2008.09.03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관한 거에 관심이 많은 1인으로써, 자진이라는 ..님의 글은 이해하기 어렵네요..실록이나 인현왕후전을 자주 본 저인데..자진이란건 제가 여태 못본거같은데 말이죠..

  15. 청산 2008.09.03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살해 죽든 사약마셔 죽든 뭐가 그리 중하냐 죽은게 중요하지.
    조선=이조다 이씨조선 개판인 나라에 이조 창시자인 이성계 조상이 중국인라고 하던디 뭐가 좋다고 울나라는 경상도 신라와 이조가 망해 먹었다 이들이후 떼국놈치하, 쪽바리 식민지로 됐잤나

  16. 장희빈 영혼 2008.09.03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그들과 같이 누워 있고 싶지 않아... 제발 이장해줘... 그럴것같다. 세분 다 서로서로.

  17. 재밌긴한데.. 2008.09.03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에 어떻게 (은장도인지..사약인지. 목을 매었는지)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없네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죠. 사약이라면 자살은 아닌듯..은장도라면 모를까...역시 낚인글인듯...

  18. 김전일 2008.09.03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금이 자진케 하라 명하였는데..., 반항하며 패악을 부리다 억지로 사약을 들이켜 죽은 후, 전해올리기를 "이미 자진하였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미 임금이 내린 사약을 먹구 죽은 것을 자살이라고 하지는 않음... 여튼...잘 보았습니다.

  19. 자살이라뇨? 2008.09.04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이 죽으라고 약 내린 것을 자기손으로 마시면 자살인가요? -_-;;; 일단 사형선고는 내려졌고, 집행의 최종단계만 직접 한 것일 뿐인데, 이게 자살인가요? 그럼 조선시대 왕이 내린 사약받고 자기 손으로 마셔서 죽은 사람들은 다 '자살'인가요? 그런 걸 자살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20. 또 띄엄띄엄보고 소설쓴다.. 2008.09.08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자진하라고 명을 내린 자체가 사형선고죠.. 그걸가지고 자살이라고 하면 억지밖에 안되죠.. 또 실록상에는 사약을 내린 후 신하들이 그를 반대하였으나, 끝까지 사약을 내리는 것으로 밀어붙였었는데.. 뭔놈의 자살??

  21.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10.04.22 0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명이 저주라는건 좀 지금보면 죽기까지 할 죄정도는 아닌 듯 싶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