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미녀배우 김태희가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 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장옥정>은 기대와 달리 낮은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 후에도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며 내홍을 겪었다. ‘새로운 장희빈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했던 <장옥정>은 왜 실패한 것일까. 또한 이 작품이 남긴 의미는 무엇이 있는가.

 

 

 

 

 

연기력 논란에 역사 왜곡까지, 발목 잡힌 장옥정

 

 

<장옥정>은 지금껏 잘 알려진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선악구도 문법을 완전히 전복시킨 획기적 작품이었다. 숙종과 장희빈을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려낸 이 작품은 그들의 절절한 사랑을 메인 스토리로 끌고 나감으로써 전작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꾀했다. 이 때문에 지금껏 성녀로 그려진 인현왕후는 정치적 야망이 있는 명문가 규수로, 최숙빈은 낮은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는 영리한 여성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시청자들에게 너무 낯설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장희빈=악녀라는 선입견을 끝끝내 탈피하지 못했고 결국 사랑에 눈물지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장희빈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장옥정>은 오랜 시간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무르며 동시간대 꼴찌라는 굴욕을 맛봐야 했고, 갈등이 심화되는 중반 이 후에도 제대로 된 상승 동력을 마련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장희빈을 최대한 미화하려다 보니 역사 왜곡 논란도 불거졌다. 백성들이 숭덕비까지 세워 줄 정도로 추앙받았던 민유중을 역모를 꾀하는 권신으로 그려내고, 입맛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수명을 무리하게 늘림으로써 사극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었다 항간에서는 주인공만 장희빈 일 , 판타지 사극과 다를 바 없다는 혹평까지 쏟아졌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까지 낳으며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최숙빈을 승은조차 입지 못한 정치적 산물로 그려낸다든지, 인현왕후가 자신의 복위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여론을 움직인다든지 하는 설정 또한 무리수로 작용했다.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 못한 과도한 픽션은 오히려 작품의 질을 훼손시키고 몰입을 방해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보다 철저한 고증이 아쉬웠던 대목이다.

 

 

타이틀롤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들이 연기한 장희빈에 익숙한 대중은 과도한 표정 연기와 어설픈 대사 처리를 용서하지 못했다. 중반을 지나면서 다소 안정되기는 했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여론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대 장희빈 중 최고 미모를 자랑했지만, 연기력만큼은 예외였던 셈이다.

 

 

결국 <장옥정>은 당초 기대와 달리 단 한 번도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퇴장하게 됐다.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구가의 서>에 밀렸음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 <직장의 신>에도 승기를 내어주며 역대 장희빈 중 가장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로써 지난 50년간 승승장구하던 장희빈의 흥행불패신화<장옥정>으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됐다.

 

 

 

 

장옥정이 남긴 의의는 무엇?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옥정>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나름의 의미는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의 문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스토리를 구현한데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관계를 조강지처와 첩의 관계가 아니라 정치적 대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보다 다각화 된 접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앞서 방송 된 수많은 장희빈들이 항상 새로운 장희빈을 표방했다가 중반을 지나면 시청률 논리에 매몰 돼 전형적 선악구도로 회귀한 것과 달리 <장옥정>은 뚝심 있게 처음 설정한 스토리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심각한 오류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기획의도를 충실히 지켜나갔다는 점에서 격려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적어도 스스로의 다짐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유부단하게만 그려졌던 숙종을 정치에 능하고 사랑을 지키는 로맨티스트로 그려낸 점도 인상적이다. 단언컨대 역대 장희빈에 등장한 숙종 중 <장옥정>의 숙종이 가장 섹시하고, 정열적이었으며, 멋있었다. 환국을 서슴지 않으며 막강한 왕권을 휘둘렀던 실제 역사 속 숙종을 가장 비슷하게 묘사해 냈다. 적어도 <장옥정>의 숙종은 훗날 등장할 여러 숙종에 교과서적 표본으로 자리매김하기 충분하다.

 

 

청춘스타 유아인의 열연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퇴폐적이고 마초적인 캐릭터를 실감나게 보여줬던 그는 <장옥정>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력과 훌륭한 캐릭터 소화로 대중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우왕좌왕했던 김태희 대신 극의 무게감을 한층 더한 그의 존재감은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약 중인 그의 앞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장옥정>이 작품성과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제작 될 장희빈 이야기에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장옥정>의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본받을 점은 강화한다면 뻔하디 뻔한 장희빈이 새롭게 탄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장옥정>이 겪은 시행착오와 그들이 남긴 족적은 그리 가볍지 않다 할 것이다.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뜻 깊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패한 것도 있고, 성공한 것도 있지만 <장옥정>이 나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은 인정해주고 싶다. 지난 3개월 간 고생 많았던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심심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새로운 ‘10대 장희빈의 등장을 내심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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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톱스타 김태희를 ‘9대 장희빈으로 캐스팅하며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손 꼽혔지만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혹평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청자들은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앞길을 방해하는 악녀로 묘사 되고 있다는 점에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인현왕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성녀에 가까운 인물이었을까.

 

 

 

 

서인세력과 운명 같이한 인현왕후 민씨

 

 

인현왕후 민씨가 중전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세력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었다. 민씨가 서인 중에서도 명망 있는 가문을 자랑하는 여흥부원군 민유중의 딸이었던데다가 외척으로 서인의 거두 우암 송시열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인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던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 역시 이 점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사실상 민씨의 중궁전 입성은 단순한 왕비 간택이 아니라 민감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 고도의 정치 전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숙종과 민씨의 관계가 생각만큼 원만치 못했고, 그녀가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후계 구도가 불안정해 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인세력이 후원하고 있던 소의 장씨가 숙종의 총애를 독차지한데 이어 1688(숙종 14) 왕자까지 생산하게 되면서 민씨와 서인세력의 불안감은 날로 커져 가게 된다. 이듬해 1, 소의 장씨는 왕자 생산의 공을 인정받아 정 1()’의 칭호를 받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희빈의 탄생이었다.

 

 

1689(숙종 15), 숙종은 장씨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며 본격적인 후계 구도 정리 작업에 들어선다. 원자 책봉에 반대한 서인 세력을 모조리 쫓아내는 한편, 남인 세력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정권 교체를 시도한 것이다. 서인의 상징과도 같던 송시열의 사사를 시작으로 숙종의 서인 숙청 작업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자행됐다. 이것이 바로 기사년 2월에 일어 난 기사환국이다.

 

 

서인세력이 일거에 실각하는 와중에 민씨 역시 무사할리 없었다. 민씨는 그 해 7, 폐비가 되어 안국동 사가인 감고당으로 쫓겨난다. 이듬해 장씨는 남인세력의 적극적 지지를 등에 업고 중전으로 책봉된다. 눈 깜짝할 새에 운명이 뒤바뀐 것이다. 민씨의 사가 생활은 1694(숙종 20) 서인세력이 다시 재집권하는 갑술환국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5년 여간 지속됐다. 양갓집 규수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초를 겪은 것이다.

 

 

16944월에 민씨가 중전으로 복위함에 따라 장씨는 다시 빈으로 강등되어 처소인 취선당으로 내려갔고,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난 1701(숙종 27) 민씨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서른 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장씨 역시 같은 해 중궁을 무고(巫蠱)했다는 죄목으로 서인세력에게 탄핵 받아 사사 당했다는 사실이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모두 죽는 그 순간까지 정치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인현왕후는 어떻게 성녀로 만들어졌나.

 

 

사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정쟁에 희생당한 불행한 인물들일 뿐이다. 각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여성으로서 극과 극의 인생을 강요받았고, 이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차례 힘든 고난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인현왕후가 인내와 희생으로 모든 것을 감내한 성모라면, 장희빈은 출세를 위해 악독한 짓도 서슴지 않는 악녀로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러한 이미지는 인현왕후 쪽 사람들이었던 서인 세력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졌다. 인현왕후를 얌전하고 후덕한 조강지처로 표현하고, 장희빈을 욕심 많고 심술 사나운 첩으로 규정함으로써 일반 백성들의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이다. 김만중이 집필한 대중소설 <사씨남정기>로 시작 된 서인세력의 이 같은 치밀한 여론전에 상대방인 남인 측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인세력은 소설과 함께 미나리는 사철이요/장다리는 한철이라로 시작하는 노래 또한 골목골목 퍼뜨렸다. 여기서 미나리는 인현왕후 민씨를, 장다리는 희빈 장씨를 뜻한다. , 장희빈과 남인 세력의 권세는 한 철일 뿐이고 사철 푸르게 살아남는 쪽은 인현왕후와 자신들이란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네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이 노래는 조선 팔도 모르는 이가 없는 유행가가 되어 폭발적 인기를 누리며 민심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처럼 당시의 서인세력은 소설, 노래 등 이른바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밑바닥 여론을 훑는데 주력했다. 어렵고 복잡한 정치수사 대신 착한 조강지처를 내쫓은 못된 첩실을 응징하자는 단순한 메시지로 일반 백성을 공략했고, 민심을 서서히 변화시켜 이를 재집권의 명분으로 삼았다. 권력을 잡고 있는 쪽은 남인세력이었지만 여론전만큼은 절대적으로 서인세력이 앞서는 형국이 지속된 것이다. 끝내 남인이 서인에게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현왕후에 대한 서인세력의 이미지 메이킹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특히 궁인이 쓴 것으로 알려진 한글 소설 <인현왕후전>은 필사본만 20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장희빈을 더욱 요사스러운 계집으로 묘사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서인 중에서도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에 비협조적이었던 노론 측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경종의 정통성에 끊임없이 흠집을 냈고, 종국에는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을 후대 왕으로 옹립하는데 성공했다. 이가 바로 조선 26대 왕 영조다.

 

 

재밌는 것은 영조 또한 인현왕후 미화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출신성분에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영조는 이를 만회하고자 인현왕후와 최씨의 인연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쳤다. 착하고 아름다운 인현왕후를 자신의 어머니가 성심성의껏 도운만큼 자신의 정통성에도 전혀 문제가 없음을 은연 중 과시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1694년 인현왕후가 폐출된 이래 무려 100여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여론전에서 승리한 인현왕후, 결국 성녀로 남다

 

 

이 시기 성녀인현왕후와 악녀장희빈으로 고착화 된 이미지는 놀랍게도 21세기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여전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1961년 정창화 감독의 영화 <장희빈>을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 진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일대기는 뚜렷한 선악구도와 확실한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인현왕후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기존의 구도를 완전히 전복해 버린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착한 여자나쁜 여자의 대명사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한 번 굳어진 여론은 쉽게 돌아서기 힘들고, 한 번 생성된 이미지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300년 전 인현왕후 성모 만들기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서인들이 이 평범하고도 무서운 진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소름이 돋는다. 여론과 언론을 움직이며 명분을 쌓는 것이 정치의 본질임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승리자 편에 섰던 인현왕후 역시 이 정도 호사는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좋든 싫든, 그녀는 여론전에서 이긴 그 시대의 승자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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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인현왕후가 중궁전에 입성하면서 장옥정의 악녀 본색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희빈의 흥행 포인트인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궁중암투가 본격화됨에 따라 시청률 상승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기존의 장희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희생과 인고의 상징인 인현왕후가 매우 정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 쯤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인현왕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담담히 인내하고 받아들였던 후덕한 여인이었을까, 아니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중전의 자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야심있는 여성이었을까.

 

 

 

 

엘리트 코스밟았던 인현왕후의 자존심

 

 

인현왕후는 당시 조선 시대 여성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었다. 서인세력 중에서도 뼈대 있는 가문을 자랑하던 여흥 민씨 집안의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서인의 거두 송준길이었으며 외척으로는 우암 송시열을 곁에 두고 있었다. 그가 숙종의 계비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그를 왕비로 적극 추천한 이는 송시열과 숙종의 모후 명성왕후 김씨였다. 한 마디로 집권세력과 왕실세력의 비호를 한 몸에 받은 셈이다.

 

 

이렇듯 날 때부터 최고의 양갓집 규수가 열다섯 어린 나이에 지존의 짝인 왕비가 되었으니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음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인현왕후 특유의 자신감은 궁 밖에 쫓겨나 있던 장희빈의 환궁 과정을 통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장희빈은 명성왕후에게 남인의 간자로 찍혀 궐 밖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그러나 명성왕후가 승하하자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다시 숙종의 곁으로 불러들인다. 한 마디로 남편의 첩을 제 손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인현왕후가 이런 선택을 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는 숙종이 장희빈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남인세력이었던 시할머니 장렬왕후 조씨가 장희빈의 환궁을 은근히 부추겼다는 것, 셋째는 인현왕후 스스로 장희빈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현왕후는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많고 한미한 가문 출신의 장희빈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양갓집 규수로서 그것은 해서도, 할 수도 없는 생각이었다.

 

 

인현왕후에게 장희빈은 숙종을 거쳐 가는 여러 여자 중 한명일 뿐이었다. 중전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평생을 걸쳐 두고두고 신경 쓸 라이벌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셈이다. 그러나 인현왕후의 안일한 생각과 달리 장희빈은 훨씬 영리했고 정치적이었으며 숙종의 사랑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여성이었다.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날이 갈수록 기세등등해 지는 장희빈의 위세는 인현왕후로선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이다.

 

 

 

인현왕후도 투기를 했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이 생활화 된데다가 왕비의 체면과 체통을 중시했던 인현왕후는 대놓고 장희빈을 구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숙원의 첩지를 내리고, 다과를 함께 하는 등 후덕한 조강지처의 품격을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인현왕후 또한 중전 이전에 여자이니 어찌 투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는 장희빈이 매우 교만하다는 이유를 들어 회초리를 때리기도 했는데, 장희빈으로선 아무리 윗전이긴 하지만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끌려가 매를 맞는 것이 보통 고욕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현왕후는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총애가 너무 지나치자 서인의 거목 중 한 명인 김수항의 증손녀를 후궁으로 들여 장희빈을 견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재밌는 것은 김수항의 증손녀는 명문세가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궁에 들어오자마자 당시 숙원이었던 장희빈보다 윗전인 소의의 첩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소의 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 바로 아래 단계인 귀인 김씨에 책봉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미천한 출신을 환기시키며 내심 그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귀인 김씨의 존재와 상관없이 장희빈에 대한 숙종의 사랑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에 초조해 진 인현왕후는 직접 숙종을 찾아가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현종과 명성왕후가 나타나 민씨와 장씨는 본래 원수지간으로 현재 장씨가 복수하려하며, 경신환국 후 원한을 품은 이들과 결탁하여 나라에 화를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장씨 팔자에는 아들이 없고 민씨에게는 자손이 많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직접적으로 장희빈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현왕후는 장씨는 전생에 숙종의 활을 맞고 죽은 짐승의 화신이라는 험담까지 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숙하고 어진 인현왕후의 이미지와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다. 인현왕후의 위와 같은 발언은 장희빈의 숙종의 첫 아들인 경종을 낳으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비시키면서 아들도 낳지 못한데다가 체통을 잃고 투기까지 한 죄목을 함께 물었다. 몇몇 사료에서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연산군의 친모인 폐비 윤씨 보다 못한 죄인이라고 일갈했다고 전한다.

 

 

 

 

죽는 순간까지 장희빈을 궁지로 몰아

 

 

장희빈에게 중전의 자리를 빼앗긴 인현왕후는 5년간 안국동 본가인 감고당으로 돌아가 폐출 생활을 감내했다.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조차 없었던 이 시기에 인현왕후의 몸과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손상됐다. 인현왕후가 서른 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유도 바로 폐비 때 얻은 여러 가지 병증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불결한 환경과 지속적인 굶주림은 부족함을 모르고 산 양갓집 규수에겐 버티기 힘든 악조건이었을 것이다.

 

 

1964년 서인 세력이 재집권한 갑술환국이 일어나면서 중전으로 복위한 인현왕후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7년이 넘는 세월동안 병마와 싸웠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는 장희빈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했다. 과거의 악연을 떨쳐 버리지 못한데다가 세자의 친모이기도 한 장희빈은 인현왕후가 살아 있는 그 날까지 가만 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만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인현왕후는 승하하기 얼마 전부터 자신의 건강이 악화된 이유는 모두 희빈의 저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말했는데, 이 빌미란 것이 바로 장희빈의 저주를 뜻한다. 인현왕후의 이 같은 말은 차후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무고했다는 죄목으로 인현왕후 승하 2개월 만에 사약을 받고 사사 당했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역사 속의 인현왕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린 것과 다른 두 얼굴의 인물이었다. 그는 명문세가의 딸로 태어나 깍듯한 예의와 품격이 몸에 밴 사람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애첩에게 질투를 하는 평범한 여성이기도 했다. 불행히도 인현왕후 궁인 출신의 장희빈이 자신의 라이벌이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평생을 장희빈에 대한 콤플렉스와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인현왕후의 진짜 맨 얼굴이다.

 

 

숙종과 함께 서오릉 중 하나인 명릉에 묻혀 있는 인현왕후는 지금쯤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끝끝내 역사의 승리자로 남아 연적이었던 장희빈을 희대의 악녀이자 요부로 전락시킨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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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송사의 자존심을 건 4월 월화 드라마 대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월화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교체되면서 치열한 격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MBC <마의>SBS <야왕>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동시간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한 만큼 후속작들간의 기싸움도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할 전망이다.

 

 

배우, 작가, 연출자 너나 할 것 없이 당대의 거물급들이 총 출동하는 4월 드라마 대전에서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MBC <구가의 서>, 월화 드라마 최고 기대작

 

 

48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MBC <구가의 서>는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찬란한 유산><더킹 투하츠>국민 남동생이승기와 <드림하이><건축학개론>국민 첫사랑수지가 주연을 맡은 것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이성재, 정혜영, 조성하, 이연희 등 탄탄한 배우진이 포진해 뒤를 받친다. 대어급 배우들이 총 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고 있다.

 

 

제작진의 면면 역시 뒤쳐지지 않는다. <유리구두><호텔리어><오필승 봉순영><제빵왕 김탁구><영광의 재인> 등으로 유명한 강은경 작가와 <파리의 연인><온에어><시크릿 가든><신사의 품격> 등으로 흥행 신화를 써온 신우철 PD가 손을 잡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매번 최선의 결과를 뽑아낸 베테랑들인 만큼 이번에도 탄탄한 호흡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생소한 판타지 사극장르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작년 <아랑사또전><전우치> 등 판타지 사극을 표방했던 대부분의 작품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초라하게 퇴장한 바 있다. 복잡한 세계관과 유치한 CG, 진부한 관계설정 등이 시청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구가의 서>는 이를 타산지석 삼아 판타지 사극의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고 쉽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전작인 <마의>가 마지막 회를 동시간대 2위로 마쳤다는 것 또한 부담스럽다. <마의>가 동시간대 1위를 지킨 상태에서 바통을 넘겼다면 훨씬 수월한 싸움이 됐을 텐데 막판에 역전을 당하는 바람에 <구가의 서>로선 전작의 후광을 기대하기가 사실상 힘들어졌다. <마의>가 지난 6개월 동안 방송되며 MBC 월화 사극에 대한 시청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진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장희빈 흥행신화 잇는다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구가의 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소설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악독하게만 그려졌던 지금까지의 장희빈과 차별화 된 설정으로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보염서(조선시대 화장품 생산을 전담하던 곳)를 배경으로 인간 장옥정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 매력을 최대한으로 발현시키는 한편, 연적 인현왕후와 대립하며 숙종과의 절절한 러브스토리 또한 그려낼 예정이다. 익숙한 소재에 신선한 접근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주인공 장옥정 역에는 당대의 미녀배우 김태희가 캐스팅 됐다. 김지미, 윤여정, 이미숙 등 최고의 여배우들이 역대 장희빈을 연기한 전례에 비춰볼 때 김태희 정도의 대스타라면 충분히 장희빈을 연기할 자격이 있다. 그녀는 데뷔 이래 첫 사극도전이라는 점에서도 안팎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청춘스타 유아인과 빼어난 연기력과 미모를 자랑하는 홍수현이 맡았고 이 외에도 재희, 한승연, 성동일 등이 힘을 보탠다. <구가의 서> 못지 않는 위용을 자랑하는 셈이다.

 

 

이에 비해 제작진의 무게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로비스트><스타의 연인><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의 방용철 PD가 메가폰을 잡았고, 원작의 저자인 최정미 작가가 극본을 담당한다. 첫 드라마 집필에 나선 최정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얼마나 잘 드라마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제 페이스를 빨리 찾아야 전작 <야왕>에 이어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

 

 

주인공 김태희 또한 연기력 논란이 불거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껏 장희빈을 연기한 여배우들 대부분은 뛰어난 미모만큼이나 출중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이들과 달리 김태희가 예전과 다름없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면 작품 자체가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여배우들이 모두 연기하고 싶어 하는 장희빈을 맡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다.

 

 

 

 

KBS 2TV <직장의 신>, 김혜수의 저력을 믿는다

 

 

지난 2개월간 시청률 3%대에서 허우적댄 <광고천재 이태백> 때문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KBS<직장의 신>으로 대역전극을 노린다. 일본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둔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우리집 여자들>의 전창근 PD가 연출을, <꽃미남 라면가게>의 윤난중 작가가 극본을 맡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당초 <직장의 신>은 월화 드라마 최약체로 평가 받았지만 연기파 배우 김혜수가 합류를 결정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 된 상황이다. 충무로와 여의도를 오가며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김혜수는 그동안 <><국희><장희빈><스타일>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온 전천후 스타다. 연기대상을 두 번이나 받을 정도로 출중한 연기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의 등판은 월화 드라마 시장의 최대 변수라 할 만 하다.

 

 

월화 드라마 중 유일한 현대극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사극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시청자를 고정층으로 포섭하는 한편, 세련되고 스피디한 전개로 승부를 본다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경쟁작들에 비해 한 주 먼저 시작하기 때문에 입소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원작의 탄탄한 내용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차별화 된 각색을 시도함으로써 초반 시선몰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4월 월화 드라마 시장은 스타급 배우들과 역량 있는 제작진의 격돌로 흥미로운 한 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각 방송사가 사활을 걸고 편성한 기대작들이 과연 어떤 성과를 얻게 될지, 먼저 승기를 잡는 쪽과 마지막에 웃는 쪽이 누가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4월에도 안방극장은 변함없이 뜨거울 것 같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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