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교수 김난도의 수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100만권 이상이 팔려나가며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그만큼 의지할 데 없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성과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책으로라도 위로받고 싶은 청춘들의 삶이 안쓰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반감을 많이 불러 온 말이기도 하다. 팍팍한 삶 속에서 “청춘은 왜 아파야만 하냐”는 볼 멘 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 그만큼 ‘아픔’은 청춘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른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서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7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속에서 삶이란 꽃놀이가 아니다. 그 아픔 속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위로라기 보다는 비아냥에 가깝다. 왜냐하면 아픔은 현실이고 더 이상 아프기 싫기 때문에.

 

 

 


청춘을 위로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청춘의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제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내용은 ‘그러니까 그대로 아파야 정상’ 이라는 전개로 이어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런 충고 따위, 이미 아픈 사람들 귀에 그대로 먹혀들 리 만무하다.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의 주인공 은호원(고아성 분)의 삶도 참으로 아프다. 죽도록 뛰어다녀도 대한민국 평균이하라 취업 안되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시한부란다. 죽음을 선고받고 나서야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호원. 잘하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차피 죽을 거지만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할 말 다하며 한 번 부딪쳐보자 결심하고 회사에 들어가는데 까지가 이야기의 초반부다.

 

 

 


 

그러나 그런 주인공의 의욕은 이미 잡혀진 체계 속에서 허무하게 망가진다. 의욕적으로 하려는 일들은 오히려 ‘사고뭉치’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려 하는데 그 모습을 우연히 본 팀장 서우진(하석진 분)은 “3개월 단기 계약직이 무슨 사직서야. 관두고 싶으면 그냥 가방 싸서 나가. 술 퍼마시고 감히 사무실에 들어와? 죽을 각오는 해봤어? 사는 게 장난 같아?"라며 은호원을 조롱한다.

 

 

 


‘죽을 각오는 해봤냐’고 묻는 서우진의 말이 그렇게 아프게 다가온 것은, 아픔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죽을 각오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이 너무나도 버겁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죽을 각오를 하고 다녀야 하는 유대인 수용소나 노예 시장은 더더욱 아니다. 왜 죽을 각오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죽을 각오’로 덤비는 것은 다른 문제다. 퇴근 후의 여유로운 시간도, 끝까지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도 없는데 죽을 힘까지 내야 한다면 그만큼 불합리한 일이 또 어디있을까.

 

 

 


“네가 노력을 안해서 그래.” “더 열심히 해봐.”같은 단어들은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이미 더 이상 힘을 낼 여력조차 없을 수도 있다. 이미 힘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실패는 네탓’이라고 비난해 봐야 그 사람은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더 빠져들 뿐이다. 지치고 힘든 상황속에서 그런 말을 듣고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은호원은 "다 아는 것처럼 말씀하지 마세요. 부장님 같은 사람은 아실 수가 없어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요. 저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또 부장님이 모르시는 제 내일을요.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됐지만요" 라고 외치며 오열하지만 이는 오히려 충분하지 못한 외침같이 느껴진다. 이미 죽음을 선고받았는데 죽을 각오를 하라는 팀장에게 겨우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니.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이 시대의 청춘은 여전히 그렇게 착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누구나 사는게 장난은 아니다. 그러나 설령 좀 장난처럼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좀 어떨까. 누구든 맘만 먹으면 조금 가볍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잘못된 세상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죽을 각오를 하고 노력해야 뭐든 될 수 있다면,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체발광 오피스>속에서 주인공은 회사의 부조리에도 입을 다물어야 하고, 실수로 부조리를 발설하기라도 하면 외려 피해는 그 부조리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발설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견뎌야 한다. 그토록 염원하던 취업 후에도 삶은 어쩐 일인지 더욱 피폐해진다. 그럼 대체 언제 편해질까. 은퇴까지는 자식키우고 노후자금을 모아야 하니 발을 동동 굴러야 하고 은퇴하고 나서도 모은 돈이 충분치 못한다면 또 걱정을 해야 한다. 결국 죽을 때까지 ‘죽을 각오’를 하고 살지 않으면 답은 없는 것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든,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라’든 참으로 허무한 메아리다.

 

 

 


3%대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자체발광 오피스>. 시청률은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드라마 속에서 만큼은 ‘이시대의 흙수저’ 주인공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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