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의 새 영화 <우는 남자>가 생각보다 흥행에 주춤하고 있다. 외화는 물론 이선균 주연의 <끝까지 간다>에도 밀리며 박스오피스 4위로 출발했다. 장동건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아저씨>를 연출한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특장에도 불구하고 관심몰이에 실패한 것이다. 개봉 후 평점 역시 나날이 떨어지고 있어 입소문을 타는데에도 실패했다. 한마디로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놓친 것이다.

 

 

 

장동건은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이후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흥행은 물론,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은 것을 찬기 힘들다. 한마디로 관객이 장동건을 외면한 것이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장동건은 여자 주인공과 뛰어난 캐미스트리를 보여주거나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장동건은 ‘잘생긴’ 외모로 실보다는 득이 많은 케이스다. 한국 최고의 미남으로 십수년동안 군림했으며 지금까지 스타파워는 유효하다. 그러나 <우는 남자>로 장동건의 스타파워에도 물음표가 붙기 시작했다. 영화적 완성도는 차치하고라도 장동건이라는 이름값이 더 이상 대중에게 매력적인 상표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역린>역시 영화적 완성도로 따지면 그다지 성공적인 영화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현빈의 등근육’ 마케팅은 통했고 초반 흥행에는 성공하는 양상을 띄었다.

 

 

 

이번 <우는 남자>역시 비슷한 방식을 따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저씨>로 600만 관객을 넘긴 감독의 차기작에 원빈을 잇는 장동건이라는 미남배우의 캐스팅 조합만으로도 <우는 남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한껏 끌어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는 남자>는 톰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안젤리나 졸리의 <말레피센트>등 헐리우드 영화는 물론 <우는 남자>에 비하면 화제성이 현저히 낮았던 <끝까지 간다>의 공세에도 맥없이 무너졌다. 한국 영화의 자존심은 물론 장동건의 자존심마저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우는 남자>는 서사구조와 그에 따르는 연출의 문제가 극명하다. <아저씨>는 고독한 전직 특수요원이 자신과 마음을 터놓아준 옆집 소녀가 유괴되자 그를 구한다는 간단한 스토리라인이지만 힘있는 연출과 독특한 분위기를 적제 적소에 배치하여 흥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외모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원빈이라는 배우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우는 남자>는 그러나, 전체적으로 연출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혈이 난자하는 잔인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그 장면의 당위성이 부족하다. 냉혹한 킬러 ‘곤’역을 맡은 장동건이 남편과 딸을 잃은 여자 모경(김민희분)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아저씨>역시 아이와 어른 사이의 교감이 충분하게 표현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유괴’라는 범죄와 아이의 순수함이라는 전제가 깔린 까닭에 태식 (원빈분)의 액션에 이의를 가질 여지가 적었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문제는 다르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지만 감정은 있다. 그들의 감정이 무르익지 못하면 그들의 행동에도 당위성이 없다. 현실이 아닌 영화에서는 이런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장치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도 주인공에 동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는 남자는 그들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불친절하다.

 

 

 

더군다나 아쉬운 것은 배우의 존재감이다. 한 때 장동건은 천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배우였지만 이제 스크린에서 매력적인 아우라를 자아내는데 한계를 느끼게 만든다. 여전히 조각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냉혹한 킬러를 제대로 표현해 내는 연기력마저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장동건은 냉혹하고 잔인하다기엔 아직도 <신사의 품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한없이 부드러운 ‘신사’처럼 보인다. 비주얼마저 이제는 압도적이지 않다. 실제로 화면발이 가장 안 받는 스타로 꼽히기도 했지만 영화는 스크린 속에서 펼쳐진다. 실물이 아닌 스크린에서 존재감을 설명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치명타다. 한마디로 장동건 그 자체로 영화를 이끌어갈만한 매력조차 극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층 성장한 연기력으로 대중의 호평을 받았던 김민희마저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모성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살지 않는 것이다. 캐릭터와 스토리 모두를 놓치게 되자 영화는 개연성이 없어졌다. 그런 까닭에 <우는 남자>는 관객이 돈이 아까워서 ‘우는 영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제 ‘미남배우’ 장동건으로는 관객의 집중도를 끌어 올릴 수 없다. 장동건에게 필요한 것은 조각 미남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배우로서의 존재감이다. 스크린에서 매력적일 수 있는 자신만의 요소를 그 숱한 영화를 찍고도 아직 제대로 발견해 내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장동건에게도 비주얼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을 때가 왔다. 비주얼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던 예전의 장동건은 이제 없다. 그가 정말 ‘연기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으려거든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절절한 감정과 표현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동건의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더라도 장동건이라는 연기자 자체로 빛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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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건이 무려 12년 만에 선택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장동건이 무얼 노리는지 여실히 보이는 장르의 로맨틱 코미디다. 신사의 품격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전작, [시크릿 가든]에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켰던 현빈의 캐릭터가 장동건의 선택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음이 틀림없다. 현빈은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역할로 CF수익과 더불어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지금 장동건의 위치를 생각해 봤을 때 현빈의 그런 성공은 그대로 답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직 장동건의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같은 말투를 반복하게 하거나 가슴설레게 하는 장면을 집어넣고 있는 와중에도 시크릿가든에 비해서 여러모로 아쉬운 남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단 2회만이 방영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중요한 문제지만 지금 장동건의 매력은 신사의 품격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요인으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가장 기대되었던 장동건!

 신사의 품격이 시작할 당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이 바로 이 장동건이었다. 그간 영화나 광고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미지를 일면 고급스럽게 포장했던 장동건이기에 그 신비주의라는 껍질을 깨고 이미지 소모가 심한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장동건의 등장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우리가 장동건에게 기대했던 그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간 잘생긴 얼굴과 영화의 흥행으로 주목받던 장동건이기에 기대치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치는 14%가 넘는 첫회 시청률로도 증명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잘생기고 멋있는 장동건이지만 우리가 기대한 장동건은 그곳에 없었다. 그간 조각같은 외모로 우리나라 남자배우의 대표미남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붙었던 그이기에 더 이상 반짝반짝하는 외모를 볼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쉽지만 장동건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매력도가 예상보다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망스러웠던 장동건!

신사의 품격 속에서 장동건은 더이상 신선하지 않다. 여전히 잘생겼지만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듯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과 무너진 턱선은 장동건에게 기대하던 그 완벽한 미모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예전과 같은 스타파워는 사라진지 오래다. 장동건에게는 1000만을 넘은 영화도 있었고 1000만에 가까운 영화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순간 장동건은 그 이름값이 무색하리만치 영화판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장동건은 신사의 품격의 출연결정을 영화 [마이 웨이]의 개봉 이후 한참을 망설였다. 그 전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은 것을 생각해 볼 때 장동건의 이런 결정은 영화의 흥행여부에 따라 드라마 출연을 타진하려는 일종의 저울질 같아 보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다. 장동건이 어떤 행보를 보였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뛰어났다면 대중들은 장동건에 대한 환호성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주연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장동건의 존재감은 아쉬었다. 영화가 망하자 드라마로 돌아왔다는 그 느낌을 전혀 씻어내지 못한 것이다. 더욱 문제는 [신사의 품격]이 장동건의 연기의 전환점이라거나 뛰어난 장동건의 연기를 보여줄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국이래 이렇게 멋진남자가 있었던가?'하는 캐릭터 설명이 증명하듯, 오히려 장동건의 이미지에 상당한 빚을 진 채, 장동건 예전 명성을 찾기위한 드라마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시청률 상관없이 장동건이 빛나는 드라마가 아닌, 시청률이 꼭 나와야 하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장동건은 [신사의 품격]에서 존재감 뿐 아니라 연기력 또한 기대한 수준이하를 보여주었다. 그가 대사를 칠 때 그 중심으로 이목이 집중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장동건이라는 톱스타의 이름값에 전혀 따라오지 못했다. 장동건이 극 전반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장동건의 얼굴조차 더이상 예전만큼 빛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이미지와 외모를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외모가 예전만 못하게 변하자 장동건이 매력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여전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연예인들을 압도했던 예전의 얼굴은 이제 사라졌다. 단지 장동건이라는 이름값만이 쓸쓸히 존재할 뿐이다.  

 

 그동안 장동건의 조각같은 외모는 그의 연기력을 가리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제 조각같은 외모로만 승부를 볼 수 없는 것이 그에 현실이 되었다. 그 조각같은 외모가 없어진 시점에서 그는 오로지 연기력으로 승부를 펼쳐야 했다. 그러나 장동건의 연기는 그 그림자를 거둬내지 못했다.

 

기대를 뛰어넘지 못했다!

 물론 장동건의 연기가 형편없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뛰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장동건이라는 브랜드와 외모에 가려진 연기력이 완벽히 대중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신들린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쯤되면 "외모 때문에 연기가 안 보인다"는 장동건의 불평은 오히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외려 외모 덕분에 연기적인 측면을 용서 받을 수 있었다 하는 것이 옳다. 잘생긴 얼굴로 지금껏 톱스타 자리를 유지했다는  '장동건 허명론'이 고개를 들만 하다.

 

 심지어 [신사의 품격]이 생각보다 엄청난 재미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악재 중 악재다. 시선을 사로잡았던 시크릿 가든의 설정이 무색하리만큼 신사의 품격 1,2회는 뻔한 클리셰를 답습하며 어느정도의 재미만을 만족시키는데 그치고야 말았다.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보이게 만들었던 김은숙 작가의 필력이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이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초반부에 시청자들을 완벽히 집중시키고 '꼭 봐야할 드라마'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외로 닥터진이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를 보였다. 송승헌의 연기력에 의구심이 들지언정 스토리가 굉장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스토리만으로 송승헌에게 거는 기대 이상이었다. 상대적으로 더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던 장동건의 [신사의 품격]은 김은숙 작가의 전작 [시크릿 가든]보다 신선하지 않다. 장동건과 김하늘을 내세우면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지만 지금 그들 앞에 놓인 문제는 의외로 예전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장동건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장동건이 다시 예전만큼 비상할 수 있을 것인가. 기대한 것 이상, 아니 기대한 그만큼이라도 뽑아내는 것이 제작진의 숙제다.  그 문제 하나에 이 드라마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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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의 충무로 컴백작 [마이웨이]가 흥행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이 손을 잡았고 일본 톱스타 오다기리 죠, 중국 톱스타 판빙빙 등이 총출동 했지만 국내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차가울 정도다.


영화 [태풍] 이후로 무려 6년만에 블록버스터로 컴백한 장동건으로선 민망하다 못해 부끄러운 성적표다.


과거 장동건은 충무로 대표가는 '흥행 보증 수표'였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로 8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그는 곧이어 강제규 감독과 함께 한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관객 신화를 쏘아올리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매, 강렬한 카리스마는 장동건이 자랑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기도 했다.


그런 장동건이 흔들리고 있다. 아니, 흔들리다 못해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완전히 흥행에 참패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회생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바로 강제규 감독과 손을 잡고 만든 영화 [마이웨이] 이야기다.


제작비 300억이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들어간 [마이웨이]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고 장동건이 출연을 결정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일본의 톱스타 오다기리 죠가 장동건과 투톱을 맡았고, 중국 미녀배우 판빙빙이 히로인으로 등장해 한-중-일 3국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한 마디로 2011년 충무로 최고의 화제작이자 기대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후의 결과는 보잘 것이 없다. 개봉 첫날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4]에 밀려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한 뒤, 크리스마스 주말 시즌까지 줄곧 [미션 임파서블4]에 선두 자리를 내주며 관객 동원에 애를 먹고 있다. 21일 개봉한 후 벌써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누적 관객수는 채 70만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3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부끄러울 정도의 처참한 흥행 성적인 것이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입소문조차 그리 좋지 못하다. "7광구 이후 최고의 재앙" 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나왔을 뿐 아니라 "역사의식이 무너진 최악의 친일영화" "내러티브는 없고 포장만 그럴싸한 전형적인 상업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오히려 퇴보한 듯한 느낌" 등 인색한 평들이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 영화싸이트 평점은 이미 6점대로 떨어진지 오래고, 관객 점유율도 26.6%로 바닥을 쳤다. 개봉 일주일만에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장동건은 왜 이런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영화의 컨텐츠 부재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장동건 본인에게도 만만찮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마이웨이]를 이끌어 나가야 할 투 톱 주인공인 그가 실질적으로 관객들을 극장에 끌어들이는 힘이 부족하단 것이다. 이 쯤에서 장동건의 흥행파워, 혹은 톱스타로서 그가 제시하는 셀링 포인트의 약점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배우로서 장동건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장동건은 2001년 [친구] 이후로 10년째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연기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매번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고,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동일한 장르에 출연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 대부분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확실한 차별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는 곽경택, 강제규 등 한정된 감독들하고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국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친구][태풍][태극기 휘날리며][마이웨이]는 모두 곽경택, 강제규 감독과 함께 한 작품들이다. 동일한 감독들과 매번 비슷한 캐릭터, 비슷한 장르로 연기하다 보니 관객들은 장동건의 연기톤을 쉽게 예상하고 금방 지루해 한다. '장동건'이라는 브랜드가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로 장동건이 출연한 필모그래피는 흥행은 물론이요, 작품성 면에서도 형편이 없었다. [태풍][무극][워리어스 웨이][마이웨이] 등은 평단의 차가운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도 좋지 않았다. 이 네 작품은 당시로선 모두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 블록버스터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다. 장동건으로선 외양과 포장만 중시하고, 실질적으로 내실은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게 됐다.


장동건이 최근 10여년간 걸어온 불안한 행보를 보노라니 자연스럽게 배우 '원빈'과 비교가 된다. 장동건과 원빈은 대한민국 대표미남으로서 [태극기 휘날리며]에 함께 출연해 천만 신화를 쏘아올린 절친한 영화계 선후배 사이다. 허나 [태극기 휘날리며] 이 후, 장동건이 별 볼일 없는 영화에 연속적으로 출연하며 허우적대고 있을 때 원빈은 착실히 내실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며 충무로 대표 영화인이자 흥행 보증 수표로 각광받고 있다. 커리어 자체에서 현격히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원빈은 장동건처럼 일부러 강한 역할을 선호한다거나, 블록버스터만 골라서 출연한다거나 하는 패착을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캐릭터와 색다른 장르에 도전했고 여러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며 배우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펙트럼을 놀라울 정도로 확장시켰다. 이건 자기만의 영역과 캐릭터에 갇혀있는 장동건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원빈만의 특별한 장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6.25 전쟁 속 스러져 간 학도병을 연기했던 원빈은 [우리 형]에서는 시시껄렁하고 반항적 기질의 고등학생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또한 군 제대 이후에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출연해 지능이 떨어지는 바보 역할을 실감나게 표현해 대배우 김혜자의 극찬을 받았으며, 작년에는 영화 [아저씨]로 전국을 '원빈 신드롬'으로 들썩이게 하는 등 팔색조 같은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줬다. 영화계 데뷔 이래 그는 단 한번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이처럼 변화무쌍한 행보를 걸어왔다.


게다가 원빈은 장진, 강제규, 안권태, 봉준호, 이정범 등 다양한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기성 감독들은 물론이고 가능성 있는 신인감독들과도 과감하게 작업을 함으로써 자신 안에 내재된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뽑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그의 과단성은 작품에 대한 호평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원빈은 흥행 뿐 아니라 작품성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준수한 성적표를 얻을 수 있었다.


장동건과 원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던 장동건은 '변화무쌍한' 원빈의 커리어를 제대로 쫓아갈 수 없었다. '하드웨어'에만 집중했던 장동건은 '소프트웨어'를 중시한 원빈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장동건의 영화'는 관객에게 무색무취하고 지루한 컨텐츠지만 '원빈의 영화'는 구미를 당기게 하고 흥미가 생기는 킬러 컨텐츠다. 이게 바로 배우 장동건이 처한 비참한 현실이다.


지금 현재 장동건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길은 원빈이 걸어갔던 길이다. 만약 앞으로도 그가 원빈처럼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지 못한다면 '장동건' 이라는 배우의 네임밸류는 일말의 브랜드 가치조차 따질 수 없는 형편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장동건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방향설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


장동건이 자존심 다 버리고 원빈을 롤모델 삼아 '배우'로서 변화하고자 할 때, 관객 역시 그의 영화를 다시 찾을 것이란 걸 그가 반드시 명심하길 바란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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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다기리 죠는 한국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일본의 톱스타 중 한 명이다. 강제규감독이 영화 [마이웨이]에 선뜻 오다기리죠의 캐스팅에 동의한 것만봐도 그가 한국에서 가지는 호감도를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오다기리죠는 남들과는 좀 다른, 특이한 영화에 출연하는 연기파 배우 이미지다. 일본에서도 오다기리죠는 주류이지만 주류로 인식되지 않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그것이 오다기리죠라는 배우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본인의 취향처럼 매니악한 팬층을 형성해 내며 인기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일 양국에서 인기있는 배우를 섭외한 것은 한국과 중국의 톱스타들- 이를테면 장동건이나 판빙빙같은-과 견주어 힘이 빠지지 않는 구도를 형성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의 톱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라는 홍보 역시 그들을 통해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한한 오다기리죠의 행동은 구설수에 오르고야 말았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다. 물론 오다기리죠의 독특한 위치만큼이나 독특한 성격탓에 벌어진것일 수 있다. 역시 그런 해명이 홍보사측으로 부터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다른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오다기리죠는 첫째로 그가 해 준 사인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한국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사인을 부탁하는 주인장에게 자신의 이름 대신 '고타쿠미'라는 일본의 유명 가수 이름을 써 놓았던 것. 오다기리조의 사차원 성격탓에 벌어진 일이고 오다기리조 역시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지만 이건 단순히 사차원의 성격 탓으로 몰아갈 일이 아니다.


 물론 장난치기 좋아하는 그의 성향이 갑자기 발현되어 벌어진 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장난이란 상대방도 장난이라는 것을 알 때야 비로소 성립될 수 있다. 오다기리죠가 일본어 표기로 고타쿠미라고 쓰든 '이 식당 맛없어'라고 쓰든 일본어를 모르는 식당 주인은 그 의미를 알 길이 없다. 단지 사인을 부탁했으니 당연히 오다기리죠의 이름이 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 식당에서는 오다기리죠의 사진을 붙여서 식당에 '고타쿠미'라고 써진 사인을 전시해 놓았다. 한 사람, 아니,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우습게 만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일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웃을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인들은 고타쿠미라는 사인이 거짓임을 안다. 그럼 톱스타의 장난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다. 허나, 일본에서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무시한다 느낄 수 있는 황당한 장난이 될 수 있다. 사인을 부탁했더니 거절도 아니고 다른 사람 이름을 써 주는 스타의 행동에서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뜻을 아는 사람들에게도 때때로는 모욕이 될 수 있는 일을 다른 나라에서 뜻도 모르는 사람에게 행했다는 것은 이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오다기리죠는 사인을 해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인이 싫었다면 사인을 거절했으면 될 일이다. 본인의 손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써서 주는 행동을, 그것도 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이 뿐이 아니었다. 오다기리죠는 판빙빙의 인사에 관한 발언으로 다시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난 항상 판빙빙 다음에 인사를 하게 돼있었는데, 그녀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객석에서는 '와~'하고 함성이 터져나온다. 그런 모습이 왠지 '나 한국 너무 좋아해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걸 조금 비틀어서 중국어로 인사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 방문했을 때 스타들이나 정치인들이 그나라의 언어를 한 두마디씩 하는 것은 친근함의 표현이고 어떻게 보면 그 나라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나 한국 좋아해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중국어로 인사하는 행동은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다. 한국인들이 한국어로 인사를 할 때 함성을 터뜨리는 것은 자신의 모국어도 아닌 언어를 열심히 연습했을 그들의 노력이 가상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의 언어를 조금 사용했기로서니 그것이 뭐가 그리 문제인가. 더군다나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대중들의 사랑을 녹으로 먹는 톱스타들이 그 정도 못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을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서 일종의 매너고 팬서비스다. 그런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일본어도 아니고 중국어로 인사하는 행동은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이상한 유머다. 한국에서 오다기리죠가 유명하다고는 하나 아직 그의 성격까지 친숙한 것은 아니다. 그의 성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 한국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중국어 인사를 사람들이 유머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가 과연 미국에 가서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미국에 가서 일본인이 갑자기 중국어나 한국어로 인사한다면 미국인들 역시 의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영어를 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시 된다. 물론 한국어가 영어처럼 세계적인 언어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는 것이 단지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란 얘기다.



 일본에서 한류스타들이 갑자기 영어도 일어도 아닌 태국어로 인사하면 그것 역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일본어로 인사하면 일본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비틀었다"고 말하면 그것도 욕먹을 행동이다. 일본에 가서 일본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상황이면 일본어가 당연히 자연스럽다. 같은 맥락으로 한국에서도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얼마전 미션임파서블4 홍보차 방한한 탐크루즈역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만큼 세계적인 톱스타도 한국에 있는 팬들을 위해 그런 말을 준비할 정도로 열성을 보인 것이다. 그것이 톰크루즈를 더 빛나 보이게 하고 멋져보이게 했다. 물론 모두 다 이런 말을 준비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색하게 불어나 독어를 사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혹여나 사용했다 하더라도 "한국말을 하면 한국에 아부하는 것 같아서"라는 식의 변명을 내놓지는 말았어야 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히 알고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스타들에게는 필요하다. 괜한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다면 대중들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내 성격이 이러니까 너희는 받아들여"같은 태도는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자신의 성격이 어떻든 특정한 자리에서는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맥락과 상황에 맞는 개그는 유머지만 뭔가 핀트가 어긋나있는 개성은 무개념일 수 있다. 유머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렇게 생각없는 비틀어진 유머를 던지는 오다기리죠는 한국을 우습게 생각한다고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일이다.


 졸지에 예의 없는 스타가 된 오다기리죠. 자신의 행동을 한 번 쯤 돌아보고 왜 한국인들이 그의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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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0회 [청룡영화상]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에도 김혜수의 적절한 진행은 돋보였고 이범수의 차분한 진행역시 나쁘지 않았다. 


 [청룡영화상]은 3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오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시상식이 되었다. 물론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종상]도 있고 또 [대한민국 영화대상]같은 시상식도 있지만 사실 [청룡영화상]이 영화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간에 작은 음향문제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면서 '볼만한' 시상식을 만든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연상은 이전의 청룡에 비해서 너무나 '식상'했다. 





  수상 결과는 뻔했다. 


 제 30회 남우주연상은 [내사랑 내곁에]의 김명민에게 여우주연상은 역시 [내사랑 내곁에]의 하지원에게 돌아갔다. 청룡영화상을 끝까지 시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상자가 '의외의' 인물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상자가 선정되면 한동안 말도 많지만 수긍하는 이유는 그만큼 [청룡]측이 깜짝쇼로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기력을 무시한 채, 깜짝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청룡은 현재 상황보다는 '가능성'을 염두해 둔 수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 출연자의 경우, 각축이 예상되었다. 김명민, 김윤석, 하정우, 장동건, 송강호. 일단 이 중에서 가장 큰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그 누가 뭐래도 '김명민'이었다. 사실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송강호도 강력한 라이벌이겠으나 송강호는 이미 수상 경력이 있는데다가(물론 한 번 더 주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박쥐가 해외 영화제에서 '의외의'성공을 하지는 못했다는 점이 약점이었다. 물론 좋은 성과를 냈지만 박쥐에게 기대된 성과에는 약간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올드보이]등으로 이미 기대감이 극에 달한 와중에 박찬욱이 전력을 다했다는 작품에는 당연히 엄청난 성공을 예상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솔직히 말해 '기대감을 뛰어넘은' 혹은 '기대를 충족시키는' 결과는 아니었다. 뭐, 애초에 대상이라는 결과만을 바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김명민은 가장 '화제성'있는 캐릭터였다. 무려 20kg정도를 감량하며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 덕분에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부터 엄청난 화제성을 낳았다. '저런 배우가 진정한 배우!'라는 찬사까지 들을 정도의 열정을 보인 그에게 남우 주연상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가장 변수는 국가대표의 '하정우'였고 그보다 더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선택은 청룡의 수상경력은 있으나 화제성만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장동건'의 수상 결과 여부였다. 하정우의 [국가대표]는 [해운대]가 훨씬 더 대작이라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그 흥행성 만으로 [해운대] 못지않은 성과를 냈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 하정우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장동건의 경우에는  물론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아직 그 스타파워는 저 다섯명 중 누구도 따라올 수 없고 앞으로도 기대되는 배우라 할 수 있기에 수상 여부가 기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가면서 연기열정을 불태운 김명민에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수상의 영광이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김명민의 이런 수상은 그의 열정에 대한 보상이라 여겨질만큼 수긍이 갔다. 하지만 '여우 주연상'은 의외로 식상한 선택을 했다고 할만하다. 


 후보는 김옥빈, 김혜자, 최강희, 하지원, 김하늘. 여기서 가장 수상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단연코 하지원이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의 여주인공이었데다가 [내사랑 내곁에]의 김명민의 상대역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원의 유일한 경쟁자로는 연기력만 따지면 따라올자가 없으며 초청작이었음에도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마더]의 김혜자 정도였다. 물론 청룡이 의외의 선택을 할 거였다면 다른 세 후보속에서도 주연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최대 경쟁자가 나오지 않은 마당에 하지원의 수상을 점쳐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청룡은 이번에는 너무 '예상되는' 선택을 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동안 [청룡]은 의외의 선택을 해 왔다. 22회 [소름]의 故 장진영이 그랬고  24회에서 장진영을 한 번 더 선택함으로써 충격을 안겨 주었다. 25회에서는 [아는여자]의 이나영을 선택하며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선택을 증명했다.  물론 더 이상 할말이 없을 정도의 연기력을 펼치며 해외 시상식에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낸 인물, 이를테면 송강호나 전도연에게도 그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지만 [청룡]의 특징은 자주 의외성을 만들어 내며 또다른 주목할 점을 시사한다는 것이었다.'남우주연상'은 대체로 가장 화제되었거나 연기력이 좋았던 배우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겼으나 '여우 주연상'만큼은 신경쓰는 태도가 역력했다는 것이다.


 하지원은 '할말 없을 정도'의 완벽한 연기력을 겸비한 여우주연상은 아니고 그렇다고 '의외의 선택'도 아니다. 물론 하지원은 수상의 영광을 누릴만 했지만 [청룡]의 선택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나 뻔한 결과에 다소 지루했다면 그것은 과장일까. 어쨌든 수상은 축하 하는 바이지만 이런 시상식도 하나의 쇼라고 생각하면 수상결과가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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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동이 가장 섭외하고 싶어하는 게스트는 누구일까. 말 할 필요도 없이 바로 '장동건'일 것이다. 그간 여러번의 섭외 요청을 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지만 장동건-고소영 열애설이 터진 이후 이제는 노골적으로 그 연인에 대한 섭외욕심마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박중훈 쇼]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예능에서도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장동건-물론 이것은 장동건이 영화배우로 입지를 굳히며 신비주의식의 행보를 보인 이후로 한정된다-을 섭외하는 것은 정말 [무릎팍 도사]뿐 아니라 강호동 개인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목표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과연 장동건을 꼭 섭외할 필요가 있을까?


 

무릎팍 도사의 강점은 '연예인'이 아니다.
 



 그동안 무릎팍 도사에는 많은 유명인이 다녀갔다. [무릎팍 도사]는 그동안에 쌓였던 루머나 사생활등을 다른 프로그램보다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통쾌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통쾌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새 [무릎팍 도사]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뻔해 짐에 따라 오히려 '자기 변명식' 토크로 변질되어 가는 듯한 느낌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차라리 이후에 방송되는 [라디오 스타]가 직설적인 면에서 볼 때 훨씬 더 그 파워를 발휘하는 듯한 느낌마져 주었다. 


 그러나 그렇대도 [무릎팍 도사]가 아직까지 그 빛을 잃지 않은 것은 오히려 평소에 보기 힘든 '유명인'들이 많이 출연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의 출연은 어느새 그 유명세를 뛰어넘는 희열을 줄 수 없게 된지 오래다. 차라리 바람의 딸 '한비야'나 '안철수' 연구소장이 나왔을 때 그 감동은 배가되었다. 이 외에도 발레리나 강수진, 소프라노 조수미, 산악인 엄홍길등 엄청난 노력으로 정상에 선 사람들이 훨씬 더 마음을 울렸다는 것이다. 


  이런 신선한 게스트들을 참여시키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무릎팍 도사]는 아직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제껏 유명 연예인으로만 일관했다면 [무릎팍 도사]는 진즉에 그 빛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장동건'이라는 거대 게스트는 [무릎팍]에 있어서  결코 마이너스라고는 할 수 없다. 연예인이라는 점을 떠나서 그는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될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예능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는 그이기에 일단 게스트 섭외가 확정되면 그들의 성취감도 충족시킬 수 있으려니와 거기에 따라오는 대중의 관심, 그리고 시청률까지 한큐에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도 '연예인'이다.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그의 사생활이나 스캔들 따위의 이야기로 채워질 [무릎팍 도사]가 '거대 게스트'라는 의미 이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것이 상관 없을 만큼 장동건은 매력적인 콘텐츠다. 어쨌든 '장동건'이라는 이름 석자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성공'이란 이름과 그 뜻을 같이하니까 말이다. 섭외만 된다면 굳이 안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동건' 자신이 그 프로에 나올 생각이 전혀 없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아무리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아직까지 장동건이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장동건의 출연은 요원하기만 한 상황. 


 그런데 굳이 꼭 '장동건이어야'만 하는 이유도 없는 것이다. 장동건도 물론 훌륭한 게스트지만 다른 훌륭한 게스트들로 인해서 시청자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 장동건은 물론 재미야 있겠고 신선하겠지만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게스트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무릎팍 도사]도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물론 장동건이 나온다면 좋지만 지금껏 섭외를 열망하는 것은 '집착'에 가깝다. 시청자들은 [무릎팍 도사]에 장동건이 나왔다는 사실에 잠시 놀라겠지만 그 뿐이다. [무릎팍 도사]의 위치가 격상되거나 장동건이 말한 것 처럼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릎팍 도사]여, 강호동이여! 대형 게스트에 대한 욕심을 이젠 버려라. 장동건이 아니라도 [무릎팍 도사]는 이제까지 '잘' 해 왔다. 장동건에 집착할 시간에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감동적인' 사람들을 찾아내는 편이 훨씬 더 그 프로를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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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은 분명 멋있다. 그는 키가 크고, 패션리더 이미지가 있으며 미소년이기까지 하다. 그렇다. 강동원은 톱스타다.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의 모습은 주인공을 뛰어넘는 어떠한 '느낌'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동원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어찌보면 당연했다. [늑대의 유혹]의 중박 이상의 성공이 '의외성'이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그 속에서 가장 빛났던 것이 바로 강동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동원은 지금껏 '이미지'는 잘 만들어 왔을지 몰라도 아직까지 '배우'가 되지는 못했다. '배우'가 아닌 '스타'라 불릴만한 흥행작도 딱히 없다. 그런 강동원의 이미지, 과연 긍정적인가?


 강동원, 남자 전지현? 돌파구를 찾아라


 강동원이 송강호와 함께 [의형제]라는 영화를 선택한 것은 강동원측의 실패를 극복하려는 전략이라고 할만하다. 연기파 배우이면서 흥행배우인 송강호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성공하면 옆에서 잘생긴 얼굴을 보이는 것 만으로도 강동원은 송강호와 대비되는 매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 가치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똑똑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영화가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강동원의 위치는 이전보다 훨씬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 영화의 실패는 이미 그 위치를 공고히 한 송강호보다 강동원의 탓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강동원 역시 흥행작이라 불릴만한 영화가 있다. 바로 [그놈 목소리]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300만 이상의 관객수를 동원했으니 흥행작이라 불릴만 하다. 여기서 [그놈 목소리]는 목소리 출연 뿐이었으므로 강동원 영화라 불릴 수 없고 [우행시]정도가 강동원의 히트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강동원'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는 아쉬운 성적이다. 전지현이 [엽기적인 그녀]라는 히트작 이외에는 그럴듯한 히트작을 보유하지 못한 것과도 같은 모양세다. 허나 전지현 보다 더 아쉬운 것은[우행시]가 강동원을 상승시켜주는 역할을 한 결정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려 200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늑대의 유혹]에 강동원의 현재 위치는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행시]의 강동원은 무난했지만 강렬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흥행작은 있으되 아직까지 [늑대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우행시]에서 머리를 짧게 깍고 이미지 변신을 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전지현도 [슈퍼맨이 된 사나이]같은 작품에서는 연기변신을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강동원도 솔직히 말해 '머리를 잘라놓고 죄수복을 입혀놔도 잘생겼네' 하는 정도만 [우행시]에서의 변신이 평가 받았다. 그의 '꽃미남'을 뛰어넘을 만한 그 무언가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전지현 만큼은 아니라도 강동원 역시 휴대폰, 소주, 커피, 의류등 굵직한 브랜드의 광고모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전지현 만큼 이미지를 소비하지 안은 것은 칭찬해 줄 만한 일이지만 이런 브랜드의 이미지를 이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강동원의 스타일리시한 꽃미남 이미지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강동원의 한 부분으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지만 꽃미남 이상의 어떤 파급효과를 아직까지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그다지 긍정적인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전지현 역시,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쳤으나 아직까지 그 연기력과 흥행력에서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 처럼 강동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지만 아직까지 연기력에는 의문부호가 붙고 '강동원이 나온다' 하면 무언가 호기심이 생기며 꼭 보러가고 싶은 '신뢰도'도 적다.


  같은 꽃미남이지만 장동건은 확실한 스타성과 흥행력만은 보장되는 배우다. 그의 영화 [태풍]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00만이라는 성적을 동원하게 하는 힘. 그것은 강동원이 보고 배워야만 할 성질의 것이다. 물론 장동건은 900만 1000만이라는 흥행작에 출연할 수 있었던 행운을 거머쥔것이 주효했다. 허나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쨌든 강동원에게 이런 파워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강동원이 관객들에게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매력이나 이름값이 그다지 높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강동원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은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확실한 흥행 성적을 보장받거나 엄청나게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확실한 연기력을 선보이거나하는 것이다. [의형제]에서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을만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또 그가 출연한다는 [전우치]에서 [형사]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 이상의 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강동원이 꼭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어쨌든 강동원은 아직까지 신비스러운 톱스타의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것이 계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하다. 강동원이 이번 기회들을 통해 단지 '꽃미남 스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그가 어떤 커리어를 쌓고 또 자신에게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기대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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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류스타' 장동건이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가 크랭크업 했다.


이 작품을 끝내면서 그는 "대통령 퇴임하는 기분" 이라는 인상 깊은 말을 남겼다. 장진과 장동건의 첫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킬지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장동건과 함께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또 다른 '한류스타' 류시원도 오랜만에 TV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김혜수, 이지아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드라마 [스타일] 이다.


그런데 어째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김혜수에게 쏟아지는 호평과는 달리 류시원에게는 '연기력 논란' 이라는 딱지까지 붙고 있다.


동갑내기 장동건에 대한 대중의 호의적 반응과 비교하면 류시원의 현재는 더더욱 안쓰럽다. 왜 두 '한류스타' 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류시원의 변함없는 '스타일', 식상해


류시원은 1992년 드라마 [느낌] 으로 데뷔한 뒤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린 스타다.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진정한 '히어로' 였던 그는 김희선, 최지우, 명세빈, 하지원, 김하늘 등 당대 최고의 미녀들과 호흡을 맞췄다. 쇼 프로그램 MC, 가수로서도 활약하며 만능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뽐냈던 그는 90년대 가장 '핫' 한 남성스타이자 흥행 보증 수표이기도 했다.


그는 조각 같은 미남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신사다운 남성상을 잃지 않았던 그는 반쯤 걷어올린 소매와 단정한 헤어 스타일을 내세우며 '류시원' 이라는 이름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창조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드라마 속에서나, 쇼 프로그램에서나 변함없이 류시원이었다. 세련된 매너, 부드러운 웃음, 귀공자 스타일로 대변되는 류시원의 브랜드는 그래서 고급스러웠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먹힐 수 있었다.


90년대 초중반을 완전히 관통했던 류시원 스타일은 그의 작품세계 속에서 방대하게 드러났다. [프로포즈][종이학][세상끝까지][순수][비밀][진실][아름다운 날들][웨딩][스타일] 에 이르기까지 그의 스타일은 단 한번도 변함없이 굳건히 지속됐다. 무슨 일이 있든지 그의 귀공자 스타일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작품과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상관없이 이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드라마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를 '류시원 化' 시키면서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류시원 스타일' 은 90년대만큼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도 지속되는 평이한 연기와 변함없는 패션-헤어 스타일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트렌드가 바뀌는 21세기와는 다소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한 마디로 90년대를 좌지우지 했던 그의 매력이 21세기에 들어 다소 고루한 것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 [그대를 알고부터] 이 후 계속된 드라마 흥행 실패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류시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미지로 승부를 보는 대중스타였다. 그러나 그 이미지 자체가 근본적으로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순간이 도래하자 그의 브랜드는 끝없는 하락세를 치기 시작했다. 이 하락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하는 모험을 하든지, 농익은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든지 하는 정면돌파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나 류시원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련된 귀공자였던 류시원에게 있어 이미지를 전복하는 것은 90년대 자신을 떠받치고 있던 대중적 기반을 부정하는, 대단히 위험한 모험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고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는 2000년대에도 90년대 자신이 만들어 놓은 류시원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데 그쳤다. 그가 어느순간 대한민국 대중문화계에서 '그저 그런' 스타로 머물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에 김혜수와 함께 야심차게 컴백한 드라마 [스타일] 에서 류시원의 출연 자체에 대해 사람들이 시큰둥 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스타일은 이미 낡아버렸고, 그의 개성은 이미 고루해졌으며, 그의 연기력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는 평범한 것이다. 그의 '변함없음' 은 어느 순간 '발전 없음' 이 되어버렸고 류시원 특유의 개성은 한물 간 스타의 아집과 고집이 됐다. 이러니 어찌 대중이 류시원에게 예전과 같은 열광을 할 수 있을까.


류시원은 변해야만 했다. 스타일은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트렌드를 따라가 자신의 영역을 진부하고 식상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스타로서도, 연기자로서도 자신의 비전을 대중에게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 그는 사람들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평범한 스타이자 연기자로 정체되어 있다. 마치 90년대에 계속 머물러 있는 '류시원 스타일' 처럼. 그는 이것이 그에게 엄청난 불행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장동건의 진화하는 '스타일', 매력적


장동건은 류시원과 같은 해인 1992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뒤, [우리들의 천국][마지막 승부] 를 통해 류시원 등과 함께 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한 연기자다. 류시원이 부드러운 외모와 세련된 매너를 자랑했다면 장동건을 상징하는 수식어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 '꽃미남 스타' '조각 같은 외모' 였다. 그만큼 그의 외모는 TV를 트는 누구든지 잡아 끌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이 TV 드라마 주인공을 꿰찰 수 있었던 그는 [아이싱][의가형제][모델][사랑][고스트][이브의 모든 것] 등 여러 히트 드라마에 출연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90년대 장동건은 그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었지만 대중은 개의치 않았다. 대중은 장동건의 얼굴을 TV에서 보는 것 자체로 만족감을 느꼈다. 장동건이 대사를 잘 치든 말든, 감정 표현을 실감나게 하든 말든 장동건의 모든 것은 그의 외모에 가려졌다. 그만큼 그는 철저히 '잘생긴 스타' 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졌다.


이 때에 장동건이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심취해 발전하기를 게을리 했다면 그 역시 그저 그런 스타로 정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중이 자신을 잘생긴 미남스타로 인식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가졌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외모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엄청난 좌절감을 맛보게 됐다. [이브의 모든것] 에 출연했을 때에 장동건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다" 는 말을 한 것은 그 스스로 자신이 정체되어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에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만나며 배우로서 일생일대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박중훈의 말처럼 "스타와 배우의 과도기에 서 있던" 그는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본격적으로 배우 장동건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장동건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대중이 2000년대에 들어서 그를 배우로 보기 시작 했던 데에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았던 장동건의 겸손함과 영민함에 힘 입은 바 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 후, [아나키스트][2009 로스트 메모리즈][해안선][친구][태극기 휘날리며][태풍] 에 이르기까지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외모를 망가뜨리고 작품 속 캐릭터에 녹아들어 가는 방식으로 대중을 상대했다. 그 스스로 스타 장동건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장점, 바로 '잘생긴 얼굴' 을 땅바닥에 내려 놓자 대중은 그에게서 배우의 얼굴을 보았다. 스타의 얼굴을 버리자 그 속에 가려져 있던 배우의 얼굴이 드러났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금 장동건은 여전히 대중 소구력 있는 스타이자 영리한 배우로 관객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전형적인 '진화형 스타' 인 그는 자신의 외모와 매력에 만족하지 않음으로서 2000년대 가장 '핫' 한 아이콘으로 대중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손 꼽히지만,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매력있는 배우로도 자리하고 있는 '장동건 브랜드' 의 원천은 끊임없이 대중과 타협하고 트렌드를 리드했던 변신과 진화에 있었던 셈이다.





류시원과 장동건, 운명을 가른 결정적 차이


류시원과 장동건은 참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다. 1972년 동갑내기라는 점부터 시작해 1992년 데뷔했다는 것, 90년대 트렌디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렸다는 것, 주로 여성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 2000년대에 한류스타로 각광받았고 심지어 2009년 각각 드라마와 영화로 4년만에 컴백하는 것까지 똑같다.


그러나 현재 류시원과 장동건이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내 대중스타로서의 위상은 사뭇 다르다. 류시원이 하락세라면, 여전히 장동건은 매력적이다.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던 사람과 자신의 스타일을 진화시켰던 사람의 차이다. 변화와 변신은 스타에겐 미덕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임을 류시원은 몰랐고, 장동건은 알았다.


류시원은 이번 드라마 [스타일] 에서 연기력 논란, 캐릭터 부조화 등의 혹평을 받으며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 혹평의 시간이 그에게 대중이 주는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스타일을 바꿔 매력적인 이미지로 진화하든, 18년차 연기자답게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든 그 스스로 양단간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자신의 스타일에 만족하지 않고 훌륭한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동갑내기 장동건을 바라보며 류시원 역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다시 한 번 '점검' 해 보길 바란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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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천으로 쇼 윈도를 뒤 덮으려 한 듯 파격적이고 세련된 디자인, 주변의 많은 의상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한 패션샵에 미모의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한참동안 의상실의 이름을 쳐다 보던 이 여성은 한숨을 한번 푹 쉬고 의상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치 꿈나라에 온 듯 하얀색으로 가득 한 의상실 내부를 보고 여성은 짧은 감탄을 내 질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접하지도 입어보지도 못 한 순백의 옷들, 그리고 그 옷들 사이에 서 있는 젊은 남성의 디자이너.


한동안 옷들을 매만지며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했던 젊은 남성은 이내 여성을 알아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걸어왔다. 얼핏 봐도 180cm가 넘는 듯한 키, 뚜렷한 이목구비와 상대방을 제압하는 카리스마에 여성은 묘한 흥분을 느꼈다.


"이 곳, 의상실 디자이너신가요?" 여성이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젊은 남성이 은은한 미소로 대꾸했다.


그 은은한 미소에 여성 역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수줍게 이야기했다.


"저 엄앵란인데요, 여기 있는 옷들을 입고 싶어서요."


그렇게 소공동의 작은 의상실, '살롱 앙드레' 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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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假縫을 거쳐 모든 바느질과 손질을 마치고 着衣室의 커튼 뒤에서 그 옷의 임자에 의해 처음으로 몸에 걸쳐지는 순간 의상은 生命性을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막 피어날 듯하면서도 그 꽃잎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봉오리를 들여다볼 때와 같이 期待와 不安이 뒤섞인 야릇한 설레임이 가슴에 술렁대는 것도 이런 때의 일이다. 디자인의 意圖가 충분히 살아 있을까. 옷감의 質과 色의 뉴앙스가 그 임자의 개성에 잘 조화돼 있을까 등등….’』


1966년 [신동아] 2월 호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위와 같다. 소설의 한 토막처럼 여배우 엄앵란을 만났고,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패션쇼를 한 앙드레 김은 60년대 한국 패션계에 파란을 일으킨 희대의 기린아였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문화권력' 이었다. 앙드레 김을 설명하기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냈다' 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앙드레 김은 선망과 경의의 대상이었다.

 
신문과 잡지, 극히 제한 된 뉴스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60년대의 앙드레 김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45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로 앙드레 김을 떠올리고, '가장 친숙한 디자이너' 로 앙드레김을 받아 들인다. 제한 된 미디어의 통제가 사라진 21세기의 최첨단 시대에 4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사랑 받은 대중문화인은, 문화평론가 손상익의 말처럼 "앙드레김 밖에는 없다."


그러나 40여년을 디자이너로 살아 온 앙드레 김의 뒷면에는 또한 무수한 '그림자' 가 존재한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의 지적처럼 "앙드레김의 성공은 패션계 내부가 아니라 연예계에서 이루어졌고", 앙드레 김을 범접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로 만든 것 역시 극히 제한되고 통제 된 상태에서 강력한 권력을 향유했던 한국 언론의 '힘' 이었다. 그래서 앙드레 김의 성공에는 한국 대표 디자이너의 자랑스러움 뿐 아니라 스타를 만들어내고 죽이는 언론의 음흉스러움이 함께 공존한다.


앙드레 김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 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 쪽에서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게 경탄과 찬사, 존경과 경외를 보내고 한 쪽에서는 그를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 연예인, 무대 의상 디자이너라며 폄하하고 지탄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렬해지는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 들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고 섞이면 잿빛이 되어 버리는 흑과 백이다. 그러나 앙드레 김은 그 가운데에 살아있다. 선망과 증오, 찬탄과 폄하의 양면성에서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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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다 vs '디자이너' 가 아니다


"앙드레김이라는 한 특출한 문화인은 한국을 ‘양장 소비국’에서 ‘패션 생산국’의 지위에 올려놓는데 일조했을 뿐 만 아니라, 미국의 LA같은 대표적인 ‘서구도시’에마저 ‘앙드레김의 날’을 선포하게 하는 등 우리 대중문화 가치의 범 지구촌화에도 성공했다." 는 손상익의 평가와 청문회 직후 한 비평가가 휘갈리 듯 독설을 내뿜은 "봉남킴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라는 평가는 모순적이게도 동전의 양면인 동시에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앙드레 김은 한국 대표 디자이너였다. 부정할 수 없는 이 '법칙' 에 '아니다' 라고 반기를 드는 이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엄앵란의 드레스나 김희선의 드레스나 변함 없이 한결 같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거세 되어 버린 디자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년 전 인터넷 상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질 정도로 격렬했던 '앙드레 김 논쟁' 의 본질은 앙드레 김이 고수하고 있는 패션 디자인이 큰 변화 없이 지겨울 정도로 일관 되는데에서 파생된 문제였다.


사실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는 것은 극소수의 모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대단한 영광' 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류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로 손 꼽히는 가브리엘 샤넬이나 크리스찬 디올의 옷은 돈만 있다면 누구나 입고 다닐 수 있다. 앙드레 김의 의상이 무대 위 모델들만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아주 특수한 의상이라면 샤넬 디자인의 의상은 말 그대로 그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 을 충실히 반영한 시대적 트렌드다. '앙드레 김은 패션 디자이너다.' 라는 명제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의 시각도 바로 여기에 머물러 있다. 앙드레 김의 패션은 한 마디로 '무대의상' 에 가까운 극대화 된 과장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남킴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라는 비평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온다.


『 패션 디자이너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입고 다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며, 봉남이 형처럼 연예인과 일부 사모님들을 위해 파티옷, 결혼식옷과 같은 조명발받는 공주옷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의상디자이너라 해야 옳다.』


그러나 이 앙드레 김의 충실한 '일관성' 은 다른 쪽에서는 완전히 상반 되게 해석된다. 철저히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문화' 의 본질이 결국 동시대 사람들이 폭 넓게 수용 가능한 '일관성' 에 그 거취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진정한 '패션' 이다. 마치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몇 세기를 뛰어 넘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듯, 앙드레 김의 의상도 실제로 45년이라는 '반세기' 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이러한 특수한 '일관성' 의 개념을 "패션이 아닌 예술" 이라 정의한다.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의상이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저히 해석될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인 동시에 일반적인 패션씬 안에서의 비교나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패션 산업 안에서의 옷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만 앙드레 김의 옷은 트렌드나 취향과 상관 없이 '사고 싶어 하는 사람' 들에게만 개방 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앙드레 김의 옷이 소비되는 방식은 기존의 패션 산업이 받아들이고 있는 '공급과 수요' 의 법칙을 무시해 버린 일종의 예술품 거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재밌게도 앙드레김이 디자이너냐 아니냐 하는 격렬한 논의는 각자의 논점에서 보자면 모두 틀리지 않다. 앙드레 김을 디자이너로 보지 않는 쪽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수 있는 옷, 그것이 바로 패션이다' 라는 기준을 들이미는 것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시대를 초월해 거래되고 인정할 수 있는 옷, 그것이 바로 패션이다' 라는 잣대를 세워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은 결국 자신의 옷을 한 번도 상품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앙드레 김과 거대한 시장 속에서 숨 가쁘게 움직이는 패션 산업의 현실이 부딪히는 어쩔 수 없는 파열음이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은 자신을 둘러 싼 수많은 논쟁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신동아> 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에 대한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어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 하지만 앙드레김의 의상은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비싼 옷 아닙니까? 그래서 앙드레김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도 앙드레김 옷을 보거나 입어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예술가,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입는 옷을 만드는 사람은 무대의상 디자이너지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하지만요, 무대의상이라는 게 나쁜가요? 조수미씨 정경화씨도 콘서트장에서 저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지요. 조수미씨가 입은 옷 기억하세요? 물론 그것은 제가 협찬해 드린 거구요. 그 옷을 입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이탈리아·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의 큰 무대들에 안 서본 곳이 없어요.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섰다면 그것이 곧 문화 아닌가요?


제가요, 화가 중에 운보 김기창, 천경자 선생님 정말 너무너무 존경하는데요, 돈이 없어서 아직 작품은 구입하지 못했지만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돈을 벌어서 꼭 그분들 작품 한점씩 사서 집에 걸어놓는 거에요. 저처럼 그분들 그림을 직접 갖지는 못해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의상도 마찬가지에요. 제 작품을 입지는 못하지만 쇼윈도에서, 패션쇼에서 그것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런 옷을 입어보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화 아닌가요?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해요. 왜 꼭 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연예인들이나 입는 옷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송승헌씨 장동건씨 이런 분이 제 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것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그처럼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타들이 제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이 잘못됐나요?”


앙드레김과의 대화는 이 대목에서 잠시 중단됐다. 그는 대답 도중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는 듯 목소리가 떨리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도저히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37년 동안 디자이너로 살아왔는데 또다시 이런 대답을 해야 하다니 지겹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지나치리만큼 예의바르고 손짓 하나하나까지 조심하던 태도와는 180도 달랐다. 검은 마스카라로 강조한 눈은 이글이글 분노에 겨웠고 “지겨워! 지겨워”를 외치며 자신의 의상실 안을 서성이는 그는 흡사 성난 황소처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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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 야.


이야기를 확장해 보자. 앙드레 김을 둘러싼 '디자이너 논쟁' 을 벗어나면 그의 '정체' 에 대한 논의는 더더욱 격렬해 진다. 일부에서 앙드레 김을 보는 시각 중 하나는 바로 앙드레 김이 '디자이너' 라기 보다는 '성공한 사업가' 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앙드레 김의 브랜드가 런칭되고, 삼성전자와 가전제품 디자인 계약을 성사시키는 등 앙드레 김의 움직임에선 사업가와 같은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앙드레 김을 '사업가' 의 영역에 넣어 생각해 보면 그가 누구보다 상류층 인사와 가까운 문화 권력이고 올림픽 패션쇼를 4번이나 치뤄 낸 전형적 사교계 인사이며 일년에 두세번씩 치뤄지는 세계 패션쇼 역시 '사업' 의 한 부분으로 평가될 수 있다. 앙드레 김의 패션쇼가 일종의 브랜드 마케팅으로 철저하게 진행되는 전략적 사업이라면 앙드레김이 가지고 있는 사업적 감식안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을 뛰어 넘는 영악하고 영리한 상술에 불과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앙드레 김은 자신의 디자인을 단 한번도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은 지금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사람들에게 소비 된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이다. 상업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상품' 이고 '돈' 이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바로 '사업가' 앙드레김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종결된다.


그렇다면 앙드레 김은 스스로의 '주관' 을 포기해 버리고 패션 사업 시장의 노회한 사업가로 진정 변신을 꾀한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싱겁게 튀어 나온다. '사업' 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돈' 이라는 것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수단적인 가치인데 앙드레 김은 바로 이 부분에서 놀랍도록 '자유' 롭다. 권력과 유명세, 브랜드 확장과 상품은 물질 세계의 문명이 베풀어 준 가장 추악한 축복이지만 앙드레 김은 자신의 의상처럼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 한 자기 세계에서 그 축복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건 앙드레 김이 끝끝내 물질 세계와 타협한 듯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자기 존재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앙드레 김은 90년대 후반까지 강남에 자기 소유의 의상실 하나 가지지 못할 정도로 물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 패션쇼가 1700여회, 올림픽 패션쇼 4회, 상류층 사회와 가장 가까운 대중 문화 인사이자 대통령조차 '영웅' 이라 치켜세웠던 앙드레 김이 데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상실을 전세로 살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한 논쟁이 불과 5년도 안 된 짧은 시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실제 앙드레 김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임에도 사업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특이한 케이스' 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업가' 앙드레김을 살펴보기 이전에 심도 깊게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한다. 앙드레 김이 가전제품, 신용카드의 디자인 계약을 성사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직접 운영이 아닌 단순한 라이센스 계약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앙드레 김이 브랜드 확장을 통해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중학교 때 부터 앙드레 김이 꿈 꿔왔던 이상이 '세계인' 이자 '샤넬을 능가하는 다양한 영역의 한국적 디자인' 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


정신 분석가 정혜신은 "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탐구" 라는 글 속에서 "앙드레김은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의 출연을 두 번씩이나 거절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성공의 잣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아직 자신의 빌딩조차 없는데 성공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밝히는 그의 재산은 의상실이 세든 건물의 전세금, 자신의 아파트, 연구소 설립을 위해 마련해 둔 교외의 작은 땅이 전부란다. 국위선양을 위해 해외 패션쇼에 쏟아부은 에너지나 비용을 아껴서 국내에서 의상실을 여러 개 내고 고객수를 늘리는 데 몰두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 썼던 적이 있다.


앙드레 김의 '사업' 은 사업의 가면을 쓴 '꿈의 실현' 이다. 물질세계의 세속적 성향에서 따지자면 그는 성공한 사업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짜 앙드레 김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로는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앙드레 김만이 꿈꿔온 평생의 사업이다. 앙드레 김은 상업화의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상업화의 추악한 이면에는 동조하지 않았고, 상업화의 약점을 세계화와 꿈의 실현이란 대의적 명분으로 초월했다. 70이 넘은 '늙은 사업가' 의 이면에는 여전히 판타스틱한 꿈을 꾸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의 생생한 감성이 펄떡이고 있다.


자, 이제 문화평론가 손상익의 말을 빌려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해 정리해보자.


『 현대의 대중문화는 상업화를 근간으로 하지 않으면 그 어떤 형태도  확산이 쉽지 않으며 세계화는 더더욱 난감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랜드(trend)나 문화코드는 “얼마나 상업화에 성공했는가”라는 기준이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다. 현재 세계 각국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문화 바람도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라거나 영화, 가요, 심지어는 태권도 같은 스포츠의 ‘상업기반’이 대중문화산업형태로 성공적인 뿌리를 내린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앙드레김은 미국의 팝아트 창시자라 불리는 엔디워홀(Andrew Warhola)의 문화정신과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닮아있음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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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은 '연예인' 이야. 그러니까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상관없어.


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한가지는 바로 '연예인' 앙드레 김이다. 그 어떤 시상식에도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는 특유의 대중적 성향, 하얀 옷에 체크 목도리를 두르고 만면에 웃음을 띄며 레드카펫을 당당히 걸어가는 쇼맨쉽, 유명 뮤지컬이나 쇼가 개최되면 항상 앞자리에 앉아 우아하게 박수를 치는 앙드레 김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 이전에 유명인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연예인의 이미지를 투영시켰다. 10대의 어린 소녀들이 앙드레 김을 보고 환호를 내지르는 것은 그가 유명 디자이너 때문이 아니라 TV에서 많이 본 '낯 익은' 유명인사이기 때문이다.


60년대 데뷔 이래 앙드레 김은 그 어떤 디자이너 보다도 연예계와 밀착 관계를 유지한 디자이너였다.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는 이야기는 앙드레 김이 일군 신화의 일부분이었으며 장미희부터 김태희까지 시대를 주름잡았던 톱스타들이 앙드레 김 패션쇼에 문전성시를 이루다 못해 넘칠 지경이라는 것도 앙드레 김이 연예계와 떨어질래야 떨어 질 수 없는 대표적 아이콘임을 보여준다. 소위 '문화계 인사' 라는 사람들 중 앙드레 김만큼 연예계의 본성에 근접해 있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유명세' 와 더불어 연예인 같은 앙드레 김의 외모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다. 25년 전부터 화장을 시작했다는 앙드레 김은 70 이 넘는 지금도 짙은 화장과 립스틱을 바르고 번쩍거리는 염색 물감으로 머리를 꽉 채운다. 언제나 하얀 옷을 고집하는 앙드레 김만의 고집은 '환타스틱함, 엘레강스함, 센세이셔널하고 뷰티풀' 을 지향하는 듯 변함 없이 그대로다. 간간히 영어를 섞어가며 느릿느릿 던지는 말투는 줄곧 연예인들의 성대모사 대상이 됐고 그는 유명인이자 연예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희화화 되고 웃어야 하는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변질 되기도 했다.


'연예인' 앙드레 김을 말하면 떠 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1999년 청문회다. 나는 그 때의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 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조소와 조롱을 섬뜩하리만큼 경험했다.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 이라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회자 되면서 앙드레 김은 한순간 촌스러운 이름을 숨기고 살아 온 가식과 위선의 대상이 됐고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에서 처참하게 발가 벗겨 졌다. 당시 <서세원 쇼> 에서 홍석천이 했던 앙드레김 4행시의 폭발적인 반응은 문화적 권력을 해체하고 스스로 그 위에 올라서려 했던 사람들과 그것에 호응한 대중문화의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의 모습은 청문회 자체를 압도할 정도의 화젯거리였다. 앙드레 김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앙드레 김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앙드레 김이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가 사람들에게는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와 함께 앙드레 김의 인기도 동시에 치솟았다. 그러나 앙드레 김도, 사람들도 모두 그 폭발적 관심과 인기가 존경이나 경외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조롱에 불과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 청문회 때부터 앙드레 김은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와 벌거 벗은 임금님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자신의 미의식을 탓해야했던 앙드레 김의 감수성과 스타일이 권위가 무너지자 누구나 놀릴 수 있는 대상이 됐다. 그 청문회를 통해 앙드레 김이 김봉남이 된 것은 단지 다소 촌스러운 그의 본명을 확인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때 대중들은 수천만원어치 옷을 사는 우아한 마나님들의 뒤에 감춰진 구린 속을 들여다 봤고, 김봉남이 된 앙드레 김은 바로 그 우아한 그들의 세계의 이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동경의 대상이던 상류사회는 순식간에 비아냥의 대상이 됐고, 그들을 위해 옷을 만든 디자이너는 더 이상 엘레강스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 반대로 손상익은 이런 앙드레 김에 대한 조롱과 조소에 단호히 반대의 의견을 던진다.


『'앙드레김'이란 우리시대의 아이콘(icon)은, 아무나 무참하게 ‘씹어도 될만한’ 만만한 문화코드(cultural code)가 아니다. 앙드레김 만큼, 밖으로 내보이는 외양(하드웨어)에 못지않게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구비한 문화인도 우리나라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계에서 앙드레김 만큼 자신의 일생을 자신만의 ‘문화코드’로 무장(武裝)할 줄 알며, 수미일관(首尾一貫)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오롯하게 버틴 대중문화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제로 앙드레 김은 자신을 둘러싼 희화화와 조롱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한 바 있다. 신동아의 김현미 기자는 앙드레 김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그러한 조롱까지도 무시해 버리는 듯한 강한 거부의식과 상대조차 하지 않겠다는 꼿꼿한 자존심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저 '연예인' 또는 '연예인 같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앙드레 김이 자신에 관한 세속적 잣대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에 놀란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앙드레 김의 인터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던 찰나 "특유의 화장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 라는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앙드레 김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 듯한 기세로 날카롭게 대꾸했다. "세계적 디자이너를 인터뷰한 기사 어디에도 그렇게 세련되지 않은 질문은 나와 있지 않다." 라고. 이 한 마디로 앙드레 김은 연예 사업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 인사일 뿐 뼛 속까지 연예인이거나, 연예인化를 지향하고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확인 시켜줬다.


'연예인' 앙드레 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연예 사업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끊임없이 스타들을 출연 시키는 앙드레 김의 쇼 접근법에서 국한 되어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그것을 앙드레 김의 연예인화로 확대 해석하거나 더 나아가 조롱과 조소의 대상으로 짓 밟아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조영남이 말하지 않았던가. "앙드레 김은 그 누구보다 공연을 사랑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진짜 대중문화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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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을 바라보는 '존경과 조롱'


『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손에 나 있는 검버섯 뿐이었다. 그건 평생 우아함과 세련함을 강조한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 맞고 투박한 생활인의 손이었다. 소공동의 작은 의상실에서 국내 굴지의 디자이너가 된 지금, 그는 행복할까. 한 손에는 신문을, 한 손에는 따뜻한 차를 준비해 조용히 의자에 앉은 그는 TV 속 자신을 흉내내는 개그맨들의 모습을 보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자신에 관련해 "파리에서 대규모 자선 패션쇼 열어. 전 세계 찬사." 라는 제목이 큼지막히 적힌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쪽에서는 조롱을, 한 쪽에서는 존경을. 한 쪽에서는 희화를, 한 쪽에서는 경외를. 그 두 가지가 모두 양립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 빼곡히 걸려 있는 자신의 옷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평생 자신의 이름이 되고 상징이 됐던 자신만의 옷들, 자신만의 디자인. 그 속에서 그는 마치 40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세기의 대 스타 엄앵란을 만나 우정을 속삭이고 성공을 꿈 꿨던 젊은 날의 초상을. 파리 패션쇼에 처음 자신의 모델들을 올려 보냈던 가슴 떨리는 열정을.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했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꿈과 열정을 펼쳐 보일 수 있었음을,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려 노력했음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 됐어. 난 아직 '젊은 디자이너' 야."


평생을 옷 하나에 매달려 온 늙은 디자이너의 입에선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혼잣말이 튀어 나왔다. '젊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라고.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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