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흥행작들의 속편 제작이 가시화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장금2>에서부터 <별에서 온 그대2>까지, 흥행작의 이름값을 활용한 속편제작을 타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속편 제작은 전작만 못한 속편으로 남을 확률도 크다. 일단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의 섭외가 어렵고, 전작에서 보여준 신선함이나 분위기를 재현해내는 것도 녹록치 않다. 한국 콘텐츠는 시즌제나 속편을 염두해 두고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미 완결된 서사 속에서 시청자나 관객들의 감정도 함께 마무리 된다. 그 감정을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은 흥행작을 활용한 속편이 아니라 더 나은 콘텐츠로 승부를 보려는 노력이다.
<엽기적인 그녀 2>는 속편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국인 빅토리아와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 역을 맡았던 차태현까지 가세했지만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전지현이 비구니가 되었다는 설정은 황당했고, 빅토리아의 매력은 전지현 의 분위기를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엽기적인 그녀>의 재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제 ‘사극’으로 리바이벌 된다. 이미 공개 오디션을 통해 ‘그녀’를 뽑았고, 남자 주인공으로는 주원이 출연을 확정지었다. <엽기적인 그녀>는 분명 매력적인 콘텐츠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녀’의 역할을 맡아 <엽기적인 그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던 전지현만큼의 매력을 다른 배우가 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엽기적인 그녀>는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로 흘러가는 가는 이야기다. 16부작 드라마로 늘일 경우, 스토리의 힘이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녀의 매력은 아직 검증되지도 않았다.
또한 사극으로 바뀐 설정에 시청자들이 얼마나 반응할지도 의문이다. 이정도로 달라졌다면 굳이 <엽기적인 그녀>라는 타이틀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이미 수차례 반복되어 온 <엽기적인 그녀>의 콘텐츠를 식상하지 않게, 더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흥행작의 이름값에 기대려는 욕심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래시계>의 리메이크 프로젝트도 가동되었다. <모래시계>는 시청률 50%를 넘기며 SBS의 개국공신 같은 드라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당시 <모래시계>방영 시간에는 길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였다. “나 지금 떨고 있니?”같은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사 현무엔터프라이즈는 <모래시계>의 원작자 송지나 작가와 손을 잡고, 전작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를 구상중이다. 그러나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는 힘들다. <모래시계> 집필 당시만 해도 송지나 작가에게는 패기 넘치는 젊음이 있었다. 이후 <여명의 눈동자>까지 송지나 작가의 전성기는 그 시절 불타올랐다. 현재 송지나 작가의 파워는 그때보다 약해졌다. 그 이후 <대망> <로즈마리> <태왕사신기> <신의> <힐러>등을 집필했지만 <모래시계>와 <여명의 눈동자> 같은 기지가 발휘되지는 않았다. 송지나 작가가 다시 집필한다고 하여도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작과 비슷한 스토리로 간다고 해도 문제다. 이미 20년 이상이 흐른 콘텐츠다. 그 콘텐츠가 현대인들이 함께 공감할만한 재미를 담보하고 있느냐도 문제다.
과거의 영광은 때로는 과거로 남겨둘 때가 가장 아름답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다보면 과거에 발목잡히게 될 가능성도 높다. 물론 속편 제작으로 더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드물다. 아예 새로운 스토리를 사용하든, 그 작품을 리메이크 하든 상관 없이 이미 한 번 경험한 설정이나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을 끌어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못된 리메이크는 오히려 추억에 흠집을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리메이크에 대한 섬세한 터치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대중역시 리메이크에도 박수를 쳐 줄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