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터널>은 시작부터 tvN의 히트작 <시그널>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사들의 수사물이라는 점,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며 사건이 해결된다는 판타지적인 설정. <시그널>에서는 과거로부터 무전이 오는 무전기가 존재했다면, <터널>에는 아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터널’이 존재한다. 단순히 전파를 주고받았던 <시그널>과는 달리, 아예 물리적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터널>은 분명 똑같은 설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터널>은 제작 발표회에서부터 <시그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들과 PD는 <시그널>을 보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시그널>과는 다른 작품임을 분명히 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시그널>이 화두가 된 것 자체가 <시그널>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설정은 변화했지만 ‘진화’했다고 볼 수는 없었고,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울 수 없었다.
로맨스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이 새로운 것을 찾게 되자 특별한 소재로 호평을 얻을 수 있는 수사물은 제작 붐이 일었다. 타임 슬립 역시 다수의 드라마에 사용된 설정으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니었다. 설정을 어떻게 바꾸든, 이전에 반복된 형태를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터널>은 타임슬립과 수사물이라는 장르가 합쳐져 얼마 전 히트했던 <시그널>을 떠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반복되어 온 소재, <터널>이 <시그널>을 극복하는 법
<터널>은 수사물의 흐름을 굳이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쇄살인’이라는 사건을 30년의 세월에 녹이면서 이야기를 긴밀하게 구성하여 긴장감을 증폭시킴으로서 이야기 구조를 촘촘하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과거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과 살인범의 정체에 대한 반전등은 꽤 유려한 흐름으로 짜여있고, <시그널>의 그림자를 벗어던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터널>이 <터널>의 이야기 만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유기적인 구성과 흐름이다. 기존의 수사물과 완전히 흐름을 달리 하는 구성은 아니지만, <터널>이 가진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은 강력하다.
여기에 <터널>만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사건 발생으로 인해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고, 그로인해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여타 수사물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터널>의 주인공들은 사건과 아주 긴밀한 접점에 놓여 있다. 이를테면 김선재(윤현민 분)는 연쇄 살인사건 피해자의 가족이고 신재이(이유영 분)는 연쇄 살인마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는 존재가 되는 식이다.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아픔들은 주인공들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사건이 일어난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건이 잊혀질 때 조차, 피해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들의 아픔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이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다.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순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또 다른 분노와 아픔을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 만으로도 <터널>의 장점은 유효하다.
초반부의 완성도에 비해 힘이 달리는 후반부는 다소 아쉽다.
그러나 <터널>의 후반부는 초반부의 긴장감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터널>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진행이 된다. 과거로부터 30년을 타임슬립한 형사 박광호(최진혁 분)은 이 드라마의 핵심요소지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존재로서 활용되었었을 뿐,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의 본질에 다가서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작가는 30년의 터울이 있지만, 미래와 과거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것으로 설정을 해놓는다. 이를테면 30년 후에서 5개월이 흐르면, 30년 전에서도 5개월이 흘러있는 것이다. 이 설정은 두 세계를 긴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에서 무언가를 바꾸면 미래에서도 바뀌게 된다는 설정은 그동안 타임슬립 물에서 수차례 이용되어왔던 설정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가장 주요한 설정 중 하나인 이런 설정이 마지막회에서도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끝을 맺어버린다. 과거에서 연쇄살인범 목진우(김민상 분)을 검거하면 수많은 살인을 막을 수 있음에도 그런 뉘앙스조차 풍기지 않고 드라마는 마무리 된다.
또한 신비로운 터널에 대한 이야기 역시 너무나 빈약했다. 어떻게 해야 과거로 돌아오고 어떻게 해야 현재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조건조차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사건이 해결되자 당연히 과거로 돌아가는 박광호의 뒷모습은 그동안 과거로 돌아가고자 해도 돌아갈 수 없었던 터널의 비밀을 다 풀어 낸 모습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드라마 안에서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었다. 또한 박광호가 과거로 돌아가면서 2017년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마무리도 없었다. 해피엔딩이라고 넘어가기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았다.
또다시 성공한 웰메이드 수사물, 시청자들은 <터널>을 인정했다.
그러나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정과 가족,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견지한 <터널>은 타임슬립과 수사물이라는 클리셰를 사용하고도 <터널>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웰메이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터널>이 보여준 것이다. 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은 이 드라마의 재미를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터널>만의 <터널>다운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 또 수사물에, 또 타임슬립이라는 핸디캡을 딛고도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모이게 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작품임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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