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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2 불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과학자 '퀴리부인' 불륜 사건! (1)



아마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프랑스 역사 상 가장 위대했던 과학자 중 한명인 마리 퀴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퀴리 부인' 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라듐 연구로 인류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파괴력 있는 유명인사이자,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며, 프랑스가 자랑하는 20C 가장 '빛나는' 과학자이다.


허나, 위인전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위대했던 이 여성 과학자에게는 또 다른 칭호가 따라 붙는다.


바로 '프랑스 역사 상 가장 유명한 불륜녀' 라는 수식어다.




마리 퀴리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마리 퀴리만큼 유명하고 위대한 과학자였다. 독학으로 과학자의 위치에 올랐고, 현명하고 영석했던 마리 퀴리와의 '로맨스' 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커플' 의 탄생을 예고했다. 라듐의 발견과 연구가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당대 최고의 과학자로 우뚝 선 피에르-마리 퀴리 커플은 1903년 부부 동반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며 그 업적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피에르 퀴리에 대한 마리 퀴리의 존경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들은 부부 이전에 가장 아름다운 동료였고, 가장 힘이 되는 친구였다. 마리 퀴리는 입버릇처럼 "내가 여성으로서 노벨상을 탈 수 있었던 것은 피에르가 내 곁에 있었기 때문." 이라며 돈독한 부부애를 자랑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지 채 3년이 다 지나지 않은 1906년, 피에르 퀴리가 마차에 치여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편이자 동료였던 피에르를 잃은 마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은 마리의 충격과는 상관없이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 의 또 다른 업적을 기대했다. 당시 39살이었던 젊은 그녀는 남편이 못다 이룬 라듐 연구를 지속하는 동시에 남편의 뒤를 이어 소르본 대학의 강단에 올라서며 역경을 이겨내는 위인다운 대범함을 선 보였다. 불행조차 가로막지 못한 탐구심과 지칠 줄 모르는 그녀의 연구 열정에 사람들은 눈물을 닦으며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허나, 1911년 일간지 '뢰브르' 지에 청천벽력 같은 기사 하나가 세상을 경악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마리 퀴리, 피에르의 제자 폴 랑주벵과 불륜!"



이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랑스가 가장 사랑하는 여성 과학자이자, 프랑스 과학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마리 퀴리가 남편의 제자와 바람을 폈다니!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뢰브르 지는 마리 퀴리와 폴 랑주벵이 주고 받았던 밀애의 편지를 대서 특필하며 그들의 불륜관계가 '사실' 임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다. 피에르 퀴리의 죽음 이 후,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마리 퀴리가 유부남이었던 폴 랑주벵과 불륜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된 마리 퀴리는 폴 랑주벵에게서 피에르 퀴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녀는 폴에게 끊임없이 구애했고, 폴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마리 퀴리는 폴에게 부인과 별거할 것을 종용하는 한편, 폴이 이혼만 한다면 바로 결혼을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리가 폴에게 보냈던 편지에는 이런 충격적인 구절까지 들어가 있었다.


"폴…기다릴게요. 끝까지 기다릴게요. 그러니까 당신이 별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요. 우리 예전처럼 당신 방에서 같이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노력해요. 당신의 결혼생활을 끝장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내게로 돌아와 줘요!"


그러나 마리와 폴의 불륜 관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마리와 폴의 불륜을 폴의 부인이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폴의 부인은 폴에게 "스승의 부인과 사랑을 나누다니, 정말 파렴치한 일이다!" 라며 불같이 화를 냈고 마리에게도 "더 이상 이 관계를 지속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질 것!" 이라는 최후 통첩을 보내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폴에 대한 마리의 구애는 변함이 없었고, 폴의 부인은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의 불륜 관계를 만천하에 까발리며 그녀를 하루 아침에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불륜녀로 탈바꿈 시켜 버렸다.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와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대중은 마리 퀴리를 맹비난했다. "나쁜 년" "거지 같은 년" 이라는 온갖 욕설이 난무했고 그녀의 집 앞에 찾아와 쓰레기 더미를 버리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사람들의 맹렬하고도 원색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마리 퀴리는 폴이 곧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만큼 마리는 폴을 피에르 버금가는 또 한번의 사랑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마리의 생각과는 달리 폴은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희대의 불륜녀로 낙인 찍힌 마리 퀴리에게 돌아올만큼 폴은 그릇이 큰 남자는 되지 못했다. 그는 마리에게 이별을 통보한 뒤 가정으로 돌아갔고 마리는 졸지에 외톨이 신세가 되어 모든 언론의 공격을 한꺼번에 받는 불운한 운명을 겪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그녀의 불륜기사가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었던 1911년에 그녀가 생애 두번째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불륜사건 때문에 과학자로서의 윤리성과 도덕성에 큰 타격을 받았던 그녀는 노벨 화학상 취소 직전까지 갔으나 인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 마리 퀴리를 홀대 할 수 없다는 과학계의 의견이 수렴되어 그녀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전 세계의 자랑거리' 라고 할 수 있는 마리 퀴리의 2번째 노벨상 수상을 프랑스 언론은 "수치스럽고 창피한 날" 이라며 격하시켰고, 화학 아카데미는 마리 퀴리의 불륜 사건을 꼬투리 삼아 그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떠들썩했던 1911년 마리 퀴리 섹스 스캔들 사건은 위대한 과학자였던 '퀴리 부인' 의 인생에 단 하나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어린시절 위인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퀴리 부인은 모든 인생을 과학 연구에 쏟아부은 열정적인 과학자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랬던 그녀의 이면에는 남편을 잃은 괴로움과 슬픔, 그리고 불륜이라는 치명적 관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정도로 사랑에 용감했던 마리 퀴리의 또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열정적이었던 '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그녀는 불륜 사건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하여 1930년 입자 가속기를 개발했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34년 과다한 방사능 노출에 인한 악성 빈혈로 세상을 등졌다. 세상은 이 위대한 과학자의 죽음에 슬퍼했고, 한 때 그녀가 저질렀던 부정한 관계조차도 용서할 만큼 그녀를 애도했다. 그만큼 마리 퀴리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인류를 대표하는 천재 과학자였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존경과 신망, 자신의 업적과 명성마저도 버릴 수 있었던만큼 열정적이었던 여자, 마리 퀴리.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연구 활동과 탐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과학자, 퀴리 부인.


다른 듯 하지만 또한 같은 마리 퀴리와 퀴리 부인의 '삶' 은 어쩌면 지독한 외로움과 투쟁해야만 했던 불운한 여성 과학자의 타고난 운명은 아니었을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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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퀴리는 폴란드 출생입니다. 2008.11.23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리 퀴리의 조국은 프랑스가 아니라 폴란드예요. 프랑스 국적은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결혼 후 얻게 된 거죠. 라듐 외에도 "폴로늄" 연구가 그녀의 업적이고, 폴로늄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으로부터 따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