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몸매는 분명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대중에게 끊임없이 회자되어야 살아남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대중이 열광할만한 포인트를 하나 추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몸매를 활용하여 관심을 받은 대표적인 연예인이라고 할만하다. 클라라는 야구경기에서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하며 화제성을 만든 후, 활동영역을 넓혔다. 각종 화보나 예능, 드라마에까지 출연하며 관심의 중심에 섰던 그는, 소속사와의 분쟁을 겪으면서 휴지기에 들어갔다.

 

 

 

 

특이한 것은 소속사 분쟁 자체가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소속사와 클라라의 진실공방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분명히 있었으며 그들이 주고받은 메신져 내용이 공개되는 등, 대중은 그들의 싸움을 즐겼다. 툭하면 불거지는 연예인들의 소속사 문제가 이토록 화제성있는 스토리로 변질된 것은 클라라의 기존 이미지와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방송에서 끊임없이 소비되었지만 그 소비과정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지 못했다. 언제나 화제가 되는 것은 그의 몸매가 얼마나 훌륭한지, 그가 얼마나 섹시한지에 관한 것이었고, 예능에서 예능감을 보여주지도, 드라마에서 연기력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클라라 의 몸이라는 그 자체로만 소비되었다. 더군다나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클라라의 인터뷰 내용 때문에 구라라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그는 성추행이라는 단어로 소속사와의 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누가 잘못했느냐가 쟁점이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딱히 누군가의 편을 들 수 없을 만큼 소속사와 클라라의 분쟁은 그들만의 리그였고 이 과정에서 클라라가 선택한 성추행이라는 단어는 힘을 잃었다. 그런 그에게 비호감 딱지가 붙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파급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클라라가 복귀를 위해 가진 <한밤의 tv 연예>와의 인터뷰가 대중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클라라의 복귀에 기대를 걸만한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역량을 오직 몸매에만 집중시켰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몸매를 이용하여 몸매에 관련된 파급력을 일으키기는 보다는, 몸매라는 강점을 이용하여 예능이나 드라마 등의 출연이라는 성과를 일으켰다면 그 안에서 뭔가의 성과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클라라는 몸매를 뛰어넘는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이다.

 

 

 

클라라 만큼은 아니더라도 몸매에 집중된 마케팅을 펼치는 스타들은 구설수에 많이 오른다. 유승옥은 뛰어난 몸매를 바탕으로 화제를 모은 후, <압구정 백야>에 출연했지만 발연기 논란을 씻어내지 못했고 예정화는 몸매를 보정한 것이 아니냐는 포토샵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 방송 연예 대상에 모습을 드러낸 레이양은 김구라가 대상을 수상하는 순간 자신이 화면에 나오기 위해 현수막을 말아서 공간을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들에게 이런 논란이 유독 많은 것은 클라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몸매를 딛고 일어설만한 뛰어난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매를 이용하여 연예계에 진출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예능이나 드라마등 방송 출연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들이 호감형 연예인으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출연한 방송 분량을 책임질 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예능에서 하는 것도 역시 그런 몸매를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에 집중되어 있고, 드라마에서도 결코 장면을 책임질 만큼의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 그들의 몸매 마케팅이 몸매 그 자체로 끝날 경우, 그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외모는 분명 연예인들의 강력한 무기지만 단순히 외모로 인해 시청자들이 그들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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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몸매는 종종 스타 마케팅의 핵심이 되고는 한다. <스타킹> 단 한 번 출연으로 단숨에 무명을 벗어나 연예계 화제의 인물로 뛰어 올랐다. 2014년 열린 ‘머슬매니아 세계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커머셜 모델 부분 5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은 유승옥의 유명세에 부채질을 한부분이었다.

 

 

 

과연 동양인 체형을 뛰어넘는 육감적인 몸매와 비율은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방송 활동을 이어나가는 유승옥의 행보는 이전 섹시스타들의 행보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레깅스 시구 한 번으로 주목을 받은 클라라나 드라마의 수영복 장면이나 영화 <황제를 위하여>에서 노출 연기가 화제가 된 이태임은 뛰어난 몸매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도 몸매를 강조한 의상이나 비키니 이상의 화제성을 끌어 모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의 논란으로 너무도 쉽게 세력이 약해졌다.

 

 

 

섹시스타의 한계는 명확하다. 몸매를 위시한 수많은 기사나 화보가 쏟아지지만 그만큼 그들의 인기도 사상누각이었다. 몸매를 제외하면 다른 화제성은 현격히 떨어졌고 그들이 엔터테이너로서의 가치는 단순히 ‘몸매 감상 용’ 이상이 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몸매만이 강조되는 경우, 수많은 루머가 따라붙고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태임 역시 이런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작은 뛰어난 신체적 조건이었지만 그들은 그 시작을 발판삼아 연예계에서 자신의 독보적인 커리어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몸매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그 몸매에 쏟아진 관심을 뛰어넘어 조금 더 확장된 형태의 매력을 발현시키는 것은 그만큼 쉽지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승옥이 소비되는 방식역시 이런 화제성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압구정 백야>에서는 뜬금없이 유승옥이 등장해 남자 주인공을 유혹했다. 노래를 부르며 대사를 날리는 유승옥은, 그러나, 어색한 대사처리와 표정연기로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압구정 백야>가 워낙에 논란이 많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장면 자체는 유승옥이 소비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몸매로 화제를 모은 유승옥이 단 한 장면을 위해 등장해 드라마를 채우지만 유승옥이 보여주는 세계는 여전히 몸매에 갇혀있다. 단순한 1회성 화젯거리로 사용되지만 그에게 연기력이나 특별한 매력, 혹은 신스틸러로서의 활약은 기대되지 않는다. 단순히 화제의 인물이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그 하나의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유승옥에게는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 현재는 방송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최종꿈이 배우인지, 모델인지, 피트니스 강사인지 확실치 않다. “언젠가는 빅토리아 시크릿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방송에 나와 자신의 몸매를 만든 운동법을 열심히 설파하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천생연분>같은 예능에 출연하는가 하면 <압구정 백야>에 까메오로 등장한다.

 

 

 

이런 중구난방식 출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유승옥은 그런 방송활동을 통해 인지도는 쌓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몸매’로 얻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의 예능감도, 뛰어난 연기력도 유승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단순히 훌륭한 몸매라는 장점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클라라와 이태임이 증명했다. 몸매로 얻은 화제성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하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엔터테이너는 대중과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형적 조건은 연예인에게 있어서 장점임은 확실하지만 외형적 조건으로‘만’ 화제에 오르는 연예인의 매력이 지속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실력을 갖추고 대중과 직면하거나 자신있는 분야로 확실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드는 것, 둘 중 하나의 확실한 선택이 몸매로 뜬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절실한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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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의 오프닝에서는 “SNL은 1975년 미국 NBC에서 시작해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중동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40년 전통의 세계적인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라며 “오직 SNL에서만 볼 수 있는 최고 스타의 코미디, 패러디, 풍자로 시청자 여러분의 즐거운 토요일 밤을 책임지겠다”는 설명이 등장한다.

 

 

 

 

이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 코미디 프로그램으로서의 명성을 일찍부터 이어온 SNL은 풍자와 해학으로 명성이 높은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미국 SNL에서는 IS를 패러디한 개그로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공항까지 딸을 배웅하러 나온 아버지는 딸을 태우러 온 IS트럭을 발견한다. “딸을 잘 돌봐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IS는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말을 남긴다.

 

 

 

 

 

이 패러디는 미국에서도 “지나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런 장면이 논란이 되건 안 되건 알 수 있는 한가지는 미국 SNL에는 그만큼 금기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일단은 논란을 생각하지 않고 코미디의 금기영역을 최대한 확장했다는 것만은 큰 의미가 있다.

 

 

 

 

물론 한국에서라면 수위는 미국보다 높을 수 없다. 국민 정서와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 미국에 비해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 SNL Korea는 SNL에 기대하는 수위를 지나칠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시켰다.

 

 

 

 

SNL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단순한 코미디를 뛰어넘어 각종 사회문와 정치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시청자들의 내밀한 욕구를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한국 코미디가 몸개그나 외모지적등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SNL은 성역을 깬다는 점에서 한국 코미디가 갖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동안에는 다소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던 풍자가 19금이라는 마크와 함께 보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표현도 용인될 수 있었다는 점은 SNL의 존재 이유와도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초반에 펼쳐진 대선시즌 패러디는 SNL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대선후보들의 특징을 그대로 흉내 내 재미와 풍자를 동시에 잡은 SNL은 기존의 단순히 흉내 내기에 그친 정치인 성대모사를 조금 더 명확한 캐릭터와 실제 상황에 빗댄 풍자로 공감대를 증폭 시켰던 것이다. 대놓고 정치인들을 희화하 시킬 수 있는 배짱은 SNL의 색다른 묘미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SNL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더 이상 풍자나 해학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철퇴에 따라 SNL의 19금 꼬리표는 15세로 낮추어졌고 정치권 풍자는 사라진지 오래다. 섹시와 풍자가 SNL의 트레이드 마크나 마찬가지임에도 현재 SNL은 섹시도, 풍자도 없다.

 

 

 

 

이 두가지 요소가 사라진 SNL에 남은 것은 바로 ‘패러디’다. 정치권 패러디는 이제 길이 막힌 탓에 SNL은 드라마나 연예계의 패러디를 주무기로 삼는다. 최근 화제가 된 패러디도 클라라, 이태임 등이 일으킨 사건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패러디는 통쾌하지 않다. 풍자나 패러디는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거나 평소에 망가지기 힘든 인물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그들에게 톡쏘는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 성역처럼 여겨질 경우, 개그라는 소재를 통해 버젓이 방송으로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대한 희열이 배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배우는 성역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죽도록 뭇매를 맞았고 그들에 대한 공식 기사들도 수없이 쏟아졌다. 그들은 이미 짓밟힐대로 짓밟혔고 더 이상 그 일에 대하여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다. 그들이 잘못을 했건 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그들은 이미 방송 출연을 쉽게 이어가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 패러디나 조롱에도 상관없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나오는 권력자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약해진 상대를 또 짓밟는 것은 큰 재미를 선사하지 못한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도 한 두 번 뿐이다. 이런 패턴이 지속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최근 화제가 된 SNL의 <압구정 백야> 패러디 <압구정역 백야>역시 드라마 자체 패러디가 통했다기 보다는 그 뒤에 숨은 임성한작가라는 권력자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연예계에 패러디를 통해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인물은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다.

 

 

 

 

SNL은 스스로 ‘성역’을 지키면서 그 공감대를 잃어버리고 있다. 물론 이는 SNL만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방송에 지나친 압력을 가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 이유야어쨌든 입을 다물고 꽁꽁 몸을 싸맨 SNL이 한국에서 계속 방영될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인가 하는 문제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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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의 사생활이 대중에게 비치는 영향을 생각보다 강력했다. 이병헌은 ‘협박’을 당한 피해자로서 언론에 알려졌지만 그 뒤에 숨은 행간을 읽은 대중의 뭇매를 맞았고 클라라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로 계약 파기를 선언했지만 사건이 진행되어 갈수록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이병헌은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의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사건 속에서 그는 협박을 당한 피해자였지만 대중이 그를 인식하는 방식은 단순한 협박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부남인 그의 문란한 사생활에 대한 것이었고 대중의 관심도 그 쪽으로 흘러갔다. 끝내는 한 매체에 의해 그가 상대 여성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되는 등, 이병헌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견고했던 이병헌 브랜드에 흠집은 물론, 회생이 가능할지도 의문스러운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만한 흥행작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현재 시점으로서는 이병헌이라는 이름이 희화화 되고 있는 상황으로서 결코 전망이 밝지는 못하다.

 

 

 

 

클라라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속 계약 분쟁은 소속사와 연예인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고는 하는 일이지만 클라라의 경우처럼 크게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애초에 ‘분쟁’은 연예인으로서 그다지 반길만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이슈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클라라 입장에서 쓰여진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대중의 관심에 불을 지폈다. 그 단어를 사용하여 대중에게 각인된 첫 번째 언론보도는 이후의 사건의 쟁점에 대중이 가장 포커스를 맞추게 된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클라라가 소속사 대표로부터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던 데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의 지지도를 끌고 가는 쪽이 결국은 이 싸움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잇었다. 하지만 문자가 모두 공개되는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발언이나 언행이 나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고 클라라는 ‘구라라’ 이미지를 각인 시키게 되며 조롱과 희화화, 그리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둘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이 둘에 대한 대우는 천지차이였다. 클라라는 대중의 신뢰를 져버리는 동시에 광고주로부터 줄 소송을 당하는 것은 물론,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협회로부터 ‘시장질서를 무너뜨린 클라라는 활동이 자제 되어야 한다’는 공식입장마저 발표되는 것을 들어야 했다. 클라라는 한마디로 기댈 곳을 모두 잃었다. 단순히 대중의 지지기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연예활동을 지속할 힘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병헌은 이정도의 물의를 일으킨 것 치고는 아직까지 기회가 남아있다. 자숙은 커녕 출연한 영화 <터미네이터 5>는 롯데에서 배급을 확정지었고 국내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역시 롯데에서 개봉시기를 저울질 하며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배급사가 여전히 이병헌 카드를 버리지 않고 있는데다가 헐리우드 활동은 지속 가능 하다. 결국 이병헌에게는 아직까지 회생 가능성이 훨씬 열려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병헌이 클라라에 비해 그동안 쌓아올린 실적이 막강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러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기력은 명불허전이었고 흥행한 영화와 드라마도 필모그라피에 차곡차곡 쌓여 왔으며 한류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진것은 물론, 헐리우드 진출까지 이뤄내며 이름값을 높였다. 이런 모든 성공 과정은 그의 위치를 견고하고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만약 대중이 그를 끝까지 외면할 경우 그가 받을 타격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할 수 있다. 대중이 모든 것을 과거로 남기고 그를 선택할지 말지가 그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관문이다.

 

 

 

그러나 클라라에게 남은 선택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다. 애초에 ‘노출’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 이상의 파급력을 가지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의 지지가 없으면 그를 선택하는 다른 지지기반을 닦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클라라 사태는 그런 지지기반을 만들기도 전에 너무 일찍 터지고야 말았다.

 

 

 

이제 그들은 대중의 심판을 받은 상황이다. 이후에 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앞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에 달렸다. 여전히 기회가 남은 이병헌과 기회마저 부족한 클라라가 대중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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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 진실공방에 들어갔다. 애초에 언론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클라라 쪽. 클라라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 계약 해지를 주장했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에게는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고 이에 클라라를 향한 동정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클라라가 받았다는 ’너는 다른 연예인과 다르게 신선하다‘ ’나는 부인이 있지만 애인도 있다‘는 식의 문자가 사실이라면 클라라의 억울한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는 지점이었다.

 

 

 

이를 두고 한 방송에서는 변호사가 출연하여 ‘성희롱까지 걸고 넘어지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만약 뉘앙스가 그런 식으로 흐른 것이 사실이라면 법적인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여론이 클라라를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문자가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지점을 두고 아직까지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클라라가 아닌 폴라리스 측이 ‘문자 내역은 교묘한 편집’이라며 ‘클라라 측의 동의가 있다면 전문을 공개하겠다’고 나서며 상황이 반전되었다. 비난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면 폴라리스 측이 먼저 문자 공개를 주장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클라라 측이 여론 몰이를 위해서라도 문자 공개를 강력히 밀어 붙여야 할 시점이었던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 사실의 진위 여부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소송의 핵심이 그 사안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 변호사의 말처럼 이 문자가 사실이라고 해도 성희롱의 성립은 어렵다. 이 소송의 배경에는 폴라리스 측이 클라라에게 계약내용 위반에 대해 전속계약에 대한 내용증명을 보냈고 클라라는 전속계약 해지를 요청했다는 정황이 있었다. 소송관계도 성희롱에 대한 ‘형사고소’가 아니라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민사 소송’이다.

 

 

 

그러나 문제는 클라라 측이 처음부터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여론몰이를 한 데 있다. 단순히 계약 내용에 대한 문제라면 그 문제에 관해 소송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 이유가 ‘성희롱’ 때문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했던 것이다. 그 동안 과도한 섹시 이미지로 안티 팬을 많이 만들었던 클라라이기에 이런 선정적인 단어 선택은 의외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 여성으로서 클라라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었고 클라라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클라라에 대한 지지여론이 강력히 형성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클라라는 폴라리스의 문자 공개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껏해야 ‘경찰조사를 12시간 받았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동정에 호소하는 말밖에는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는 섣불리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오히려 클라라가 더 반겨야 할 문자 공개가 폴라리스 측으로부터 제안되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의 맥락에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공개에 대한 동의를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만에 하나라도 성추행 정황이 암시되지 않는 문자 수준이라면 클라라는 결국 거짓말을 한 셈이다. 만약 클라라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클라라가 감당해야 할 타격은 단순히 ‘계약 해지’로 소송을 걸었다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클라라는 그동안 과장된 언변으로 인해 ‘구라라’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얻은 선례가 있다. 사실상 지금도 노출을 제외하면 클라라가 배우로서나 엔터테이너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그가 거짓으로 ‘성희롱’을 이용했다는 의혹만으로도 클라라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마이너스다. 이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뒤집는 길은 그 문자가 법적으로 채택이 되든 안되든 대중이 그 문자를 읽고 성희롱의 뉘앙스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제 클라라에겐 운신의 폭이 좁다. 이 문자를 공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대중에게 ‘성희롱’이라는 입장을 먼저 꺼낸 만큼 그 사안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클라라다. 클라라는 이번 사건의 진위 여부로 연예계에서 완전히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그만큼 대중은 클라라의 말이 거짓일 경우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공개가 늦어질수록 대중은 클라라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는 길은 명명백백한 증거 뿐이다. 그 증거를 보여주고 먼저 대중을 납득시키는 쪽이 이 싸움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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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킹걸>의 제작보고회에서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여배우의 노출이었다. <워킹걸>은 폐업 직전의 성인숍을 일으키는 이야기로 제작 발표회에서는 어김없이 19금 이야기가 쏟아졌다. 두 주인공인 조여정과 클라라에게 ‘서로를 섹시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냐’는 질문부터 김태우와 조여정의 베드신에 관한 이야기도 화제가 되었다.

 

 

 

조여정은 <방자전>에서 파격 노출을 선보인데 이어 <후궁> <인간중독>그리고 <워킹걸>에 이르기까지 19금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며 ‘노출 전문 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특히 <방자전>과 <후궁>에서 보여준 파격 베드신은 여배우로서 최고 수위의 노출 수위였다고 할만하다.

 

 

 

 

<워킹걸>에서도 조여정의 베드신은 영화 홍보를 위한 키워드 중 하나다. 어김없이 베드신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고 상대배우인 김태우에 대한 소감을 말해야 한다. 그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이후 쏟아진 대중의 반응들은 그다지 긍적적이지 않다. 연기력이나 파급력이 아닌 ‘노출’로만 화제가 되는 조여정에 대한 조롱이 대부분이다. ‘노출하면 주연, 하지 않으면 조연’이라는 우스갯 소리마저 나온다. 작품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노출이나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노출은 환영받지만 화제성을 위한 노출은 호감도를 끌어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이미 조여정은 화제성을 위한 노출이라는 카드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그런 그가 또 다시 노출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오면 작품의 이야기 보다 노출이라는 화젯거리에 더 관심이 쏠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조여정에게 있어 노출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배우에게 있어서 자신의 이미지를 연기력이 아닌 노출에 맞추어 진행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설령 노출로 화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노출 이상이 작품안에서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여정은 노출 이상의 화제를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댓글은 낯 뜨거울 정도로 조여정의 노출 관련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런 현상은 <워킹걸>에 함께 출연하는 클라라에게도 역시 똑같이 적용되었다. 클라라는 애초에 연예인으로서 주목받게 된 계기가 ‘시구’다.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한 클라라의 몸매가 화제가 되면서 클라라에게 쏟아지는 것은 ‘몸매’에 대한 관심이었다. 클라라는 연기나 작품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 단순히 ‘외모’로 승부하는 모양새로 흐른 것은 클라라에게 있어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클라라는 예능, 드라마에서 외모 이상의 파급력을 만들지 못하며 연예인으로서의 매력를 확장시키지 못하였다.

 

 

 

그런 클라라의 ‘몸’에 대한 관심은 제작보고회에서도 이어졌다. <워킹걸>의 정범식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ㅓ “어느 날 클라라가 성인용품을 하나 가져가보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클라라가 직접 성인용품을 사용해봤다고 말하며 촬영할 연기에 대해 진중하게 논하더라”며 이어 “또 클라라가 본인이 영화에서 표현할 신음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더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2위에 오른 배우가 내 앞에서 그 소리를 들려주다니 믿기질 않았다. 패닉 상태였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할 당시 클라라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확산이 되며 ‘성희롱 논란’에 시달렸다. 클라라가 신음소리를 들려줬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세계 여성 2위에 오른 여배우가 내 앞에서 소리를 들려주다니 패닉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감상이다. 이 이야기를 두고 클라라가 실제로 기분이 나빴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리 배우라 한들 여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개인적인 감정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였다.

 

 

그런 발언이 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은 클라라가 가지는 이미지가 그만큼 ‘연기’적인 부분 보다는 몸매와 외모등 ‘개인적인’ 부분에 집중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클라라가 소비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적인 판타지로 어필되고 그 판타지를 소비하는 언론과 대중에 의해 살아남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아닌 남으로부터 ‘신음소리를 듣고 패닉상태였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지나치다.

 

 

 

‘홍보’ 라는 명목으로 여배우의 이야기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이끌어 내는 태도를 어떻게 지켜보아야 하는 것일까. 영화의 진정한 홍보는 여배우의 노출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내러티브에 있음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면 이런 ‘노출’ 홍보는 성희롱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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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가 미국의 패션 매거진 ‘Mode(모드)’지가 선정한 ‘2014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2위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2013년 나나가 미국 영화 사이트 TC 캔들러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이후, 두 번 째 보는 ‘세계 미녀’ 2위 타이틀이다.

 

 

 

여자연예인으로서 ‘미녀’라는 칭호가 나쁠 리 없다. 특히나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뽑힌 순위라면 ‘세계 미녀’라는 타이틀 까지 붙으니 더욱 인정받는 느낌이다. 해외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스타들은 자랑스럽고 뿌듯한 느낌을 대중에게 선사하기 때문에 이미지 전환도 용이하다. 이른바 '애국심 마케팅'이다. 그런 까닭에 해외에서 인정받은 외모라는 타이틀은 홍보에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나나의 경우, 각종 쇼 오락프로그램에서 ‘세계 미녀 2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기사마다 항상 ‘세계 미녀 2위’타이틀이 따라 붙는다. 본인 역시 “한국인 최초라 들었다. 감사하다.”며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모양새로 흘렀다. 클라라 역시 지난 화보나 패션등이 다시 수면위로 떠 오르며 ‘세계 미녀 2위’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본인의 코멘트도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이와 상반된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연예인들에 대한 호감도는 의례히 증가하기 마련이지만 유독 나나와 클라라가 차지한 ‘세계 미녀 2위’라는 타이틀은 공감을 얻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세계 미녀’라는 타이틀이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지 ‘Mode'나 TC캔들러 라는 사이트는 주류의 언론이라고 볼 수 없다.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기는 하지만 그 순위가 실제로 공신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순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순위는 대중이 뽑은 인기투표도 아니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거친 근거도 없다. 그러니 대중성도 객관성도 떨어진다. 결국 그 순위에 큰 의미를 두기가 힘들어진다.

 

 

 

나름대로 공신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피플지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인’ 정도다. 그러나 피플지는 단순히 외모로 순위를 정하지 않는다. 스타들의 봉사 정신, 영향력, 커리어 등을 종합해 그 분야에서 가장 ‘빛나는’ 행보를 보였던 사람들을 순위로 선정하는 것이다. ‘피플’지 자체가 유명한 주류 매거진인 것도 이 순위에 대한 영향력을 높인다.

 

 

 

그러나 단순히 많은 매체 중 하나에서 클라라나 나나를 세계 미녀로 인정했다 하더라도 그 것이 정말 ‘세계적인 미녀’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만들어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만큼의 화제성이나 대중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외모를 기준으로 뽑는 것은 주관성이 지나치게 개입된다. 실제로 세계 미녀 2위로 선정된 나나나 클라라 역시,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한국에서도 최고의 미녀로서 입에 오르내리는 연예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만큼 미의기준은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한 매체에서 선정된 세계 미녀라 할지라도 한국에서는 그 근거가 빈약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미녀 2위라는 타이틀은 지겹도록 따라다닌다. 마치 강요하듯이 ‘세계 미녀’를 인정하라는 식의 홍보는 인정받기 힘들다. 그들이 ‘세계 미녀’에 이렇게 까지 집착하는 것은 사실상 그 타이틀 밖에는 내세울게 없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섹시 스타로서 노출이 수차례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 이외의 파급력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고 나나는 오랜지 캬라멜의 4차원 콘셉트를 제외하고는 예능에서나 가수로서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세계 미녀 2위’라는 타이틀에만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아름답다는 것은 대중의 호응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하는 이미지다.  단순히 얼굴만 예쁘다고 ‘세계 미녀’라는 타이틀을 주구장창 달고 나오는 것은 ‘아름답다’는 자연스러운 느낌보다는 ‘아름 답다고 인정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되고 만다. 그런 강박 속에서 대중들은 그들이 아무도 해외에서 인정받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아름다운 외모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성과를 진실로 대중이 그들을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연예인으로서의 실력과 실적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 전까지는 그들이 강요하는 ‘세계 미녀’ 타이틀은 유명무실해 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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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의 목적이 8년의 무명시절을 청산하는 것이었다면 그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이제 클라라는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뿐인가. 이제 어느정도의 화제성마저 담보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클라라는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는 거짓말 논란이었다. 클라라가 방송에서 말이 바뀌는 모습을 포착한 누리꾼들의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는 곧 기사화 되었으며 해명이 이어졌다. 클라라에게 쏟아진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분명 클라라는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 시키는데는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거짓말 하는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했다. 클라라는 해명글에서 조차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예능의 재미를 우선한 것 뿐이다. 한국 정서를 이해 못한 것”이라는 그의 변명은 시청자들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일 뿐이었다.

 

 

물론 예능에서는 재미와 웃음을 우선한 과장이 수반된다. 그들의 말이 모두 진실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클라라의 경우, 예능적인 맥락에서 해석될 성질의 발언들이 아니었다. 예능을 위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인지 아닌지를 시청자들이 인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발언들은 다르게 해석된다.

 

 

클라라에게 쏟아진 질문은 클라라의 신상에 관련된 일이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질문들, 이를테면 연예인과 사귄적이 있느냐, 치맥을 좋아하느냐 요가를 배운적이 있느냐 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서 예능의 재미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면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의 말이 아니라 의외성을 던져주어 시청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웃음 포인트를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클라라의 대답은 단순했다. 좋다, 싫다,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는 단순한 대답에서 클라라가 말한 예능의 분위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거짓을 말하려거든 적어도 일관성이 있어야 했다. 같은 질문에 달라지는 대답과 말과 행동이 다른 상황에 놓인 클라라에 황당함을 느끼는 대중들에게 “예능을 이해하지 못한 너희 잘못”이라고 훈계하는 클라라의 해명은 더 큰 파장만을 남겼다.

 

 

 

 

또한 이 논란은 한국의 정서를 운운할 문제가 아니었다. 클라라는 예능에 출연했지만 꽁트나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토크쇼에 출연한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서건 토크쇼에서 돌출 행동이나 거짓된 행동이 용납되는 경우는 없다. 어느 나라에서건 단순한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스타의 자리다. 단지 예능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해대고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는 것이 용납되는 것이 단순히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대중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서라는 해석은 부적절한 해석이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클라라는 영국과 미국 등의 토크쇼 환경에서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짓이 용납된다고 말한 셈이 됐다. 결국 클라라의 말에 동의는 어려웠다.

 

 

 

클라라는 왜 이렇게 거짓을 말하고, 해명도 자기 위주인 걸까. 그건 클라라가 어떻게든 주목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인에게 있어서 주목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클라라의 방식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클라라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그것이 자만심이 되어 버렸다. 클라라는 언제나 끊임없이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고 자신이 더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와 비교당한 연예인만 해도 이보영, 유이, 박은지 등이다. “난 이보영 보다 남자를 더 잘 유혹할 수 있다” “나한테 달리기 지신 분” “이 사람이 섹시한가?” 등 클라라의 발언에는 항상 클라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건 역설적으로 자신감이 아닌, 자괴감이다. 진정한 자신감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자존감은 나만큼 남들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남들의 매력도 인정하고 받아 주되, 자신의 매력 역시 깎아 내리지 않는 것에서 진정한 매력은 발현된다. 그러나 클라라의 경우, 자신은 톱스타가 집착할 만큼 우월하고, 누구보다도 더 섹시하며, 뛰어난 조건을 지닌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섹시하고 귀여우며 인기있는 이미지에서 조금도 망가지지 않으려는 클라라의 이미지가 거슬리니 그가 한 작은 실수도 사람들은 용납할 수 없다. 거짓을 말했다는 논란이 이렇게까지 확장된 것 역시 그가 한 발언들이 자신을 감싸면서 남을 깎아내리는 불편함을 수반했기 때문이었다.

 

 

클라라는 불안하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지적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린다. 그동안의 무명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 자신이 가진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한다. 그러나 진정한 매력은 그 사람이 알아 달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클라라는 오히려 자신감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렇게 비교하는 매력은 결코 오래 갈 수가 없다.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결국 무너진다.

 

 

그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그 부분을 더 개발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짓말을 하고 남들을 찍어 누르면서 돋보이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클라라의 매력보다 그의 거짓에 더 집중하고 그를 깎아내리려 한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만의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그 부분을 스스로 존중하며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런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배려가 수반되어야 사람들은 불편함을 가중시키지 않을 수 있다.

 

 

클라라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뛰어난 몸매와 외모를 지니고는 있지만 그 밖에 자신의 매력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만한 엔터테이너적 역량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튀고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강박관념은 클라라 본인에게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다. 그런 강박관념을 벗고 진정한 자신의 매력을 찾으려 노력할 때, ‘구라라’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이 아닌 대중들이 호응하는 진정한 클라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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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의 섹시 마케팅은 현재 그 어느 스타보다 강력하다. 그가 케이블 채널에서 노출이 심한 타이즈를 입고 운동을 시작하던 때부터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수준의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시구를 하던 시점을 기점으로 클라라는 친숙한 이름이 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기사는 쏟아졌고 그는 곧 드라마 조연으로, snl의 크루로, 예능의 게스트로 종횡무진 활동을 이어갔다. 예전 그가 여러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도 받지 못했던 관심을 한 번에 끌어 모은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존재감을 끌어 올리는데는 이만한 전략이 없었다.  단순한 섹시나 노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까지 치솟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마케팅의 승리였다. 일단 몸매를 강조해 화제성을 창출한 뒤, 시구에서도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의상을 입고 란제리 화보를 찍는 등, 일관성있는 섹시 전략으로 끊임없는 화젯거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략은 먹혀들었다. 클라라는 지금 '섹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연예인이 되었다. 완벽하게 목적한 바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클라라의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클라라에 대한 반감역시 증가한다. 클라라는 섹시 이미지로 여기까지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호감도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섹시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더욱 그가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그가 노출 전략 말고는 그 어떤 파급력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출이라는 전략만을 무기로 다른 매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는 증거다. 클라라는 드라마에서도 연기보다는 노출을 했고 예능에서도 웃기기보다는 노출 이미지를 굳혔다. 클라라의 몸을 활용한 개그 코드나 역할은 점점 클라라의 이미지를 저평가되게 만들고 있다.

 

 

이는 결국 클라라의 화제성을 점점 좁혔다. 더군다나 클라라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며 스스로 논란을 자초했다. "성형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네티즌들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냈고 "이보영보다 (자신이) 나은 점은 남자를 유혹하는 매력이다"라는 발언에도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섹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겁난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여전히 그는 가슴골을 강조하고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화면에 등장하고 시구 이후 7명의 남자 연예인들에게 대쉬를 받았다거나 시청률 40%가 넘으면 누드를 찍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다분히 그 의도가 뻔히 보이는 노출에도 "평상시 입는 옷"이라거나 "노출을 의도한 적 없다"는 말로 황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직접 올린 비키니 사진이나 한 잡지에서 촬영한 란제리 화보등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모든 초점은 클라라가 강조하는 섹시에 집중되어 있고 본인도 그걸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클라라는 그 노출이 본인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조차 헷갈리고 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속에서 클라라는 매력적일 수 없다.  

 

 

섹시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다. 잘 쓰면 매력이 플러스 되지만 남발하면 금세 식기 마련이다. 클라라의 최종 목표가 누드가 아니라면 좀더 현명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발언이 어떻게 해석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클라라는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자신이 인기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남들보다 더 섹시한 존재인가에 초점을 맞춰 말한다. 이미 행동으로 충분히 보여준 섹시한 매력이 그의 입을 통해서 다시 언급되는 것은 이미지의 보완이 아닌, 이미지의 훼손이란 결과로 나타난다. 

 

 

클라라는 예전 트위터에서 공지영의 섹시한 연예인에 대한 씁쓸한 심경글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본인이 '뜨끔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이라는 글로 답변을 한 것처럼 클라라만을 지칭하는 글이 아니었음에도 본인 역시 찔리는 게 있었을 터다. 그 글에서 클라라는 '관심은 월급과 같다'며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연예인에게 관심이란 그 연예인의 생명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클라라 역시 8년의 무명의 설움이 있었다. 그 8년동안의 활동보다 시구 한 번이 더 주목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가 그 글에서 썼던 것처럼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클라라의 연기는 별로 주목할 성질의 것이 못된다. 섹시로 촉발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만한 파급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비록 섹시로 시작했지만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클라라는 여전히 몸매를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변명한다. 관심을 얻는 것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자신도 그런 식으로 관심을 얻었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는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클라라에게 섹시 말고 무엇이 있을까. 그 말이 사실이려거든 클라라가 섹시 이미지 말고 다른 승부수로도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클라라가 섹시 이미지로 주목을 받자 그 면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섹시말고는 클라라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런 매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대쉬받은 횟수나 성형수술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의 전략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

 

 

8년의 무명을 씻어준 클라라의 섹시이지만 8년 동안 클라라는 연기력도, 예능감도, 혹은 또 다른 매력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과연 그 무명기간이 단순히 운이 없어서였을까.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것이 바로 클라라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냉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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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미는 한 인터뷰에서 <결혼의 여신>의 여주인공을 선택하면서 욕먹을 각오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남상미가 맡은 송지혜 역할은 과연 시청자들의 원성을 들을만한 캐릭터였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는 우유부단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비호감의 그늘에 갇혀 버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가 하나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상미가 비난 받을 것을 알면서도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비난을 받더라도 그 비난이 나중을 위한 이유있는 캐릭터의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라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 전개를 보이는 것도 아닐 뿐더러 단지 갈등 상황을 위해 캐릭터의 행동을 공감가지 않도록 만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2000년 방영된 <불꽃>과 그 이야기 구조가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크나큰 약점이다. 

 

 

<불꽃>은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작가 김수현의 작품으로, 이영애가 주인공 김지현역을 맡아 시청률 40%를 넘긴 작품이다. 먼저 <불꽃>의 내용을 살펴보자. 김지현은 평범한 집안 출신의 미모의 드라마 작가로 외적인 조건은 물론, 재력까지 갖춘 집안 출신인 최종혁(차인표)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다. 지현은 종혁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 못하지만 적극적인 그의 구애에 약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다정다감한 성격의 이강옥(이경영)을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만 지현과 강옥은 각각 약혼자가 있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고 지현은 결국 재벌남인 종혁과 결혼을 하지만 불행한 결혼 생활은 시작된다.

 

 

<결혼의 여신>역시  평범한 집안 출신의 매력적인 라디오작가인 송지혜(남상미)가 재벌남이며 외모까지 수려한 강태욱(김지훈)의 적극적인 구애로 약혼하지만 지혜는 태욱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찾은 여행지에서 ...김현우(이상우)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그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재벌남인 태욱과 결혼을 해 불행한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얼핏 놓고 봐도 이 두 드라마는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물론 이야기의 줄기가 되는 내용이 거의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표절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드라마 스토리는 유사해도 구조와 대사, 장면까지 유사하지 않는다면 표절 판결을 받아내기란 힘들다. 스토리는 한 작가의 독점적인 권리일 수 없다. 스토리는 얼마든지 변형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과거의 수많은 명작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드라마와 영화 산업이 풍성해졌듯이 말이다. 드라마에서도 수없이 신데렐라 스토리와 불륜 드라마가 리바이벌 되는 이유다. 그렇다 해도 기본 설정이 저정도로 유사한 것은 법적으로 표절 문제를 가리기는 힘들지라도 양심상의 문제다. 누가 보더라도 두 드라마의 유사성은 쉽사리 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 문제는 없다 할지라도 심리적인 불편함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물론 <결혼의 여신>은 <뿔꽃>과는 다른 구성도 추가했다. 그러나 그 구성은 거의 대부분 자극적이고 적나라하다.  여주인공인 지혜가 현우와 하룻밤을 지내는 장면은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되었고 또 다른 불륜커플인 신시아 정(클라라)과 노승수(장현승)은 부인인 권은정(장영남)에게 당당하고 뻔뻔하다. 신시아 정은 급기야 '오피스 와이프' 이야기까지 꺼내며 권은정의 말문을 막았다. 문제는 이런 설정이 재밌고 흥미롭게 흘러가기 보다는 거북하고 불편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잡기 보다는 진부하다는 것도 문제다. 한마디로 불편하면서도 흥미롭지도 않다.

 

 

 <결혼의 여신>의 문제점은 앞으로의 전개 과정이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뻔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라도 그 과정을 설득력있고 흥미롭게 풀어야 하지만 <결혼의 여신>은 그 지점에서 실패했다. <불꽃>의 이영애는 사랑하는 남자였던 이경영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서로의 약혼자와 맞딱드린 현실이라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의 여신>의 남상미는 단순히 우유부단할 뿐이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는 있지만 그 과정이 전혀 설득력있게 펼쳐지고 있지 않다. 결국 여주인공이 비호감으로 전락했고 드라마의 전체적인 스토리마저 답답해지고 말았다.

 

 

 <결혼의 여신>이 그 드라마 고유의 매력과 시청포인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이 드라마가 시청률도 호평도 제대로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너무 안일한 설정과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의 실수는 드라마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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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교 사상의 뿌리가 남아있는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들의 섹시 이미지란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득이 되지만 때때로 이미지의 고착화를 불러오고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최근 섹시 이미지로 주목 받은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강예빈, 박은지, 클라라가 눈에 띈다. 강예빈은 섹시한 이미지로 게임 모델로 데뷔한 이래, 그 이미지를 앞세워 옥타곤 걸에 발탁되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고 박은지는 기상 캐스터에서 MC, 배우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을 꾀하며 섹시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으며 클라라 역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만회하기 위해 케이블 프로그램 <싱글즈>에 출연하여 노출로 화제가 되었으며 각종 행사에서 파격적인 의상으로 주목 받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노출은 다소 인지도가 약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더할 수 없는 한 방을 선사했다. 강예빈의 정체성은 뚜렷하지 못하지만 강예빈이 가진 섹시 이미지는 그의 인지도를 높였다. 박은지 역시 정체성은 모호하지만 케이블과 공중파를 막론하고 예능에서 드라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섹시화보까지 촬영하며 인지도를 쌓아나갔다. 클라라도 마찬가지다. 그의 섹시 이미지는 그가 그동안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를 합친 것 보다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오르내리게 했다. 클라라는 오히려 예전의 드라마 출연 경력을 깊게 파인 민소매 상의로 가슴을 강조하고 짧고 달라붙은 운동복으로 몸매를 드러내면서 대중들에게 알렸다.

 

클라라의 노출은 단지 TV프로그램에서 멈추지 않았다. 야구 시구를 할 때도, 라디오에 출연할 때도 클라라는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다소 민망한 의상을 서슴없이 입으며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섹시를 의도한 적 없다”는 다소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섹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인지도를 쌓아온 연예인들이다. 그들은 섹시함을 내세우지 않는 많은 여성 연예인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주목도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출에 대한 반응은 달갑지만은 않다. 인지도는 쌓았지만 그들의 노출이 계속 될수록 호감이 증가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편함이 가중된다.

 

물론 그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려는 남성들의 지지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더 광범위한 대중친화적 인기를 그들이 얻는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들이 인지도는 확보했을지언정 대중적인 호감도를 증폭시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김혜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김혜수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섹시 아이콘이다. 김혜수는 최근 한 업체가 조사한 ‘시민들이 뽑은 글래머 스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종일관 노출을 감행하고 섹시 이미지를 강조한 이들보다 이제는 중견배우에 들어선 김혜수가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섹시한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김혜수라는 배우에 대한 국민적인 호감도가 없다면 불가능한 결과다. 김혜수는 동시에 ‘아침마다 신문을 정독할 것 같은 스타’ 1위에도 랭크됐다. 글래머와 신문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에서 김혜수에게 느끼는 대중들의 감정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지적이면서도 자신의 일을 정확하게 할 줄 알고 동시에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는 배우. 그것이 바로 김혜수가 가진 이미지인 것이다. 물론 이는 최근 종영한 <직장의 신>에서의 김혜수의 호연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혜수가 쌓아올린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김혜수의 섹시함은 시상식이나 작품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상식에서 파격적인 드레스로 이목을 끌거나 영화속에서의 과감한 노출로 화제가 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김혜수의 노출을 천박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김혜수의 노출에는 항상 이유와 단서가 따라 붙었기 때문이었다. 시상식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의 과감함은 대중들이 어느정도 이해할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김혜수라는 배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에 있었다. 김혜수는 김혜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연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먼저 설득시켰다. 단순히 노출이나 잡음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끌려는 얕은 수작이 아닌, 뛰어난 연기를 통해 그가 맡은 몫을 제대로 해 냈던 것이다.

 

<타짜>의 정마담은 김혜수가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고 <직장의 신>의 미스김역시 김혜수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주목받는 역할에만 출연했을 것 같지만 김혜수는 <열 한 번째 엄마>, <좋지 아니한가>등 소시민의 역할 역시 제대로 표현해 내는 배우였다. 그의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을지언정 그의 연기는 언제나 변신을 시도했고 또 그만큼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불평이 없는 배우라는 것. 이것이 김혜수가 가진 섹시 이미지보다 그의 위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러나 강예빈, 박은지, 클라라는 어떠한가. 그들에게 섹시를 거두어 간다면 과연 그들이 다른 매력과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을까. 비록 시작은 섹시였을지 몰라도 그 기반까지 섹시여서는 안 된다. 그건 결코 고급스러운 전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섹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오로지 섹시로만 승부하려고 하는 모습은 그들의 모습에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기 힘들게 만든다. 섹시함이 그들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인양 느껴지는 것은 에로비디오의 바로 전 단계를 공중파에서 보는 것 같은 불편함 역시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섹시함을 이용하더라도 그들이 정말 그 이미지를 뛰어넘어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연예계에는 그들이 아니라도 섹시를 활용한 연예인들이 넘쳐난다. 그들만의 섹시함은 단순히 노출이어서는 안된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섹시함을 연출할 능력이 없는 연예인의 수명은 결코 길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섹시 이미지를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데 실패했다. 섹시함 자체는 그들을 확실히 주목하게 만들었지만 그 섹시함을 활용하는 법 역시 다른 노출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본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섹시는 나쁘지 않다. 잘만 활용하면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섹시함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그들에게 대중들이 기대하는 범위를 좁혀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섹시한 것도 좋지만 지나친 노출로 대중들이 그들이 보여준 그들의 매력보다 그들의 노출 부위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띄운 동시에 그들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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