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 시리즈의 히어로 김병욱이 돌아왔다.


시트콤의 제왕, 시트콤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그는 당대 최고의 연출가이자 작가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인기만큼이나 '악명' 높은 것이 바로 김병욱PD 특유의 비극적 결말이다.


그의 역대 시트콤들은 어떤 '비극'으로 끝을 맺었을까. 그리고 이번 [하이킥 3 : 짧은 다리의 역습] 역시 비극적으로 끝을 맺을 것인가.

 


김병욱을 스타 PD로 올려 놓은 시트콤은 단연 [순풍 산부인과] 였다. [오박사네 사람들] 등으로 한국 시트콤의 새 장을 열었던 오지명을 필두로 선우용녀, 박영규, 박미선, 송혜교 등 세대를 아우르는 스타들이 총 출동했던 이 작품은 SBS 시트콤의 전성기를 마련하며 시청자들의 폭 넓은 사랑을 받았다. 박영규는 이 작품을 통해 코믹 이미지로 변신하며 큰 찬사를 받았고, 슬럼프를 겪고 있던 박미선이 재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허나 예상보다 인기가 너무 좋았던 탓일까. 원래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던 [순풍 산부인과]는 방송사의 연장 결정에 따라 무려 3년여간 방송됐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김병욱 PD를 비롯한 연출진과 작가진들 대부분이 교체되는 등 내우외환을 겪었다. 김병욱 PD 스스로도 "연장을 너무 많이해서 후회가 되는 작품" 이라고 평가하는 시트콤이기도 하다.


[순풍 산부인과]의 결말은 김병욱 PD가 직접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출연자 교체가 워낙 빈번했기 때문에 당초 계획했던 커플들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등 스토리텔링에서 큰 헛점을 드러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화려했던 전성기 때와 달리 [순풍 산부인과] 마지막회 시청률은 겨우 12%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낸 이 초라한 퇴장이야말로 [순풍 산부인과]의 진정한 비극적 결말이었던 셈이다.


[순풍 산부인과]에 이어 김병욱 PD가 내놓은 또 하나의 히트작이 바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다. 신구, 노주현, 박정수, 이홍렬, 배종옥 등 화려한 출연진으로 중무장했던 이 작품은 [순풍 산부인과]를 뛰어넘는 양질의 에피소드를 매회 선보이며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을 '김병욱 표 시트콤'에 매료시켰다. 항상 중후한 역할만 도맡아 했던 노주현은 이 작품을 통해 코믹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고, 원로배우 신구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작품에서부터 김병욱 PD 특유의 '허무주의' '비극적 결말'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잘 나가던 [웬만해선 막을 수 없다]의 결말은 박정수가 자궁암으로 사망하고 박정수가 사라진 집에서 남자들끼리 우중충하게 밥을 해 먹는 것으로 끝이 난다. 당시만 해도 박정수의 사망은 너무 뜬금이 없어서 [웬만해선..]을 즐겨보던 시청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김병욱 PD는 이를 두고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 라고 대꾸해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여하튼간에 [웬만해선...]의 박정수의 갑작스런 사망 설정은 향후 김병욱 PD가 연출하는 수 많은 시트콤들의 전형적인 '비극적 결말'의 근간과 토대가 됐고, 김병욱 특유의 허무주의와 비극 신봉주의를 잘 드러내는 단면이 됐다.


[웬만해선...]을 충격적으로 끝마치고 김병욱 PD가 만든 세 번째 히트작은 바로 [똑바로 살아라]다. 노주현, 박영규, 권오중 등 기존 김병욱 사단을 기본으로 이응경, 故안재환, 홍리나, 최정윤, 이동욱, 천정명, 서민정 등이 새롭게 투입됐던 이 작품은 탄탄하고 촘촘한 스토리와 독특한 캐릭터를 결집시켜 김병욱 시트콤의 '교과서적 완성본'을 구축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김병욱 PD 스스로도 "내 생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만큼 완성도가 높았던 [똑바로 살아라]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부딪히고 사랑해 가는 과정을 절묘하게 포착하며 [순풍]-[웬만해선...]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했다. 초반 다소 부진했던 시청률은 중반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거듭했으며 마지막회에 이르기까지 시청률 상승세가 꺾이지 않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뒀다.


허나 [똑바로 살아라]의 엔딩 역시 김병욱 표 '비극'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들 형욱을 유학보내고 쓸쓸해진 주현, 직장에서 쫓겨난 영규, 정명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정윤, 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민정, 직장 이전 문제로 고민하는 흥수, 유산 가능성이 있단 말에 걱정하는 리나 등 마지막회에서 각자 인생의 큰 고민을 안은 캐릭터들이 함께 기차여행을 떠나면서 시트콤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 회에서 갈등이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라 더욱 심화되고 복잡하게 꼬여 버린 것이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기차 여행을 시작하는 그들의 뒷모습은 "인생이란 다 그런 것" 이라는 김병욱의 냉소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똑살]의 엔딩은 후에 해피엔딩이다, 비극이다 말이 많았는데 김병욱은 이 논란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해피엔딩은 없다. 그들은 또 다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것이다."


[똑바로 살아라]의 대성공 이 후, 김병욱이 야심차게 만든 작품이 바로 [귀엽거나 미치거나]다.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박경림이 선택한 복귀작이기도 했던 이 시트콤은 안타깝게도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아 SBS 측에서 '조기종영' 결정을 내리며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결말이고 뭐고 방송사의 조기종영 결정 자체가 비극이 된 작품이다.


SBS의 조기종영 결정으로 크게 상심했던 김병욱은 SBS를 떠나 MBC에 새로운 둥지를 튼다. 그리고 만든 작품이 바로 '하이킥 시리즈의 원조'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야동순재, 애교문희 등 각종 화제를 낳았던 이 시트콤은 한동안 침체기를 걸었던 시트콤의 부활을 선포한 동시에 김병욱 PD의 건재함을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이순재, 나문희, 정준하, 박해미, 최민용, 서민정, 정일우, 김범, 박민영 등 출연진 전원이 스타덤에 올랐고 시청률도 20%를 상회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허나 그럼에도 김병욱 특유의 찝찝한 결말은 어쩔 수가 없는 법. [거침없이 하이킥]의 결말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열린 결말'을 지향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주식 대박으로 돈방석에 앉은 정준하를 제외하고는 이민을 떠난 범,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한 민호와 유미, 엇갈린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민용과 민정 등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엇갈리거나 뿔뿔이 흩어지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다만, 윤호와 민정의 재회를 통해 그들의 사랑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 것은 그 중 가장 희망적인 결말.


하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에도 캐릭터가 죽는 설정은 빠지지 않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순재. 마지막 회에 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갔다온 이순재는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자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체체파리에 물려 수면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수면병에 걸리면 초기엔 잠을 자다가 치매 증상을 보이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순재가 보여준 증상이 바로 이 수면병의 초기 증세인 것. 결국 죽음에 임박한 캐릭터가 또 다시 등장한 셈이니 김병욱 특유의 '허무주의'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작으로 김병욱이 연출한 두 번째 하이킥 시리즈는 바로 [지붕뚫고 하이킥]. 두말하면 잔소리라 할 정도로 이 작품 역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이순재, 김자옥, 정보석, 오현경 등 중견 연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세경, 최다니엘, 황정음, 윤시윤, 유인나, 이광수, 이기광, 진지희 등 신인 배우들이 모조리 유명세를 타며 김병욱 시트콤의 명성을 입증시켰다.


하지만 이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지뚫킥]의 '엔딩'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기며 최악의 결말이라는 비판을 받고 말았다. 바로 신세경과 최다니엘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는 설정을 집어넣었기 때문. [지뚫킥]의 마지막 회는 빗 속을 뜷고 최다니엘이 신세경을 공항까지 데려다주다가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라는 신세경의 한 마디와 함께 교통사고가 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1년 뒤, 황정음과 윤시윤은 세상을 떠난 그들을 그리워하며 대학에서 재회한다.


[파리의 연인]의 "이건 다 꿈이었다!" 결말 이 후, 가장 충격적인 결말이라고 손꼽힌 [지붕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은 지금까지도 시청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비극적 엔딩으로 기록됐다. 논란과 뒷말이 어찌나 많았는지 이번 [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 제작발표회 때 김병욱 PD가 "전작의 비극적 결말은 죄송하다" 며 운을 뗐을 정도다. 하여튼 김병욱 시트콤 역사를 모두 통틀어 봐도 신세경-최다니엘의 동반 사망만큼 쇼킹한 결말도 드물다 할 것이다.


이처럼 김병욱 표 시트콤의 결말은 모두 '비극'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웬만해선...][거침없이 하이킥][지붕뚫고 하이킥]에선 출연 캐릭터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똑바로 살아라]처럼 인생의 큰 십자가를 짊어진 캐릭터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등 대부분 그가 맺은 결말은 시청자의 바람대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인생은 즐겁지 않은 것" 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김병욱 PD의 철학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은 어떤 엔딩을 맺게 될 것인가. 안내상, 윤유선, 윤계상 등 좋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 시트콤은 '인생에 실패한 사람들'이 아웅다웅 모여 사는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라고 한다. 김병욱은 이번 작품에서도 예전 시트콤들처럼 '인생의 쓴맛'을 엔딩에 가미할까, 아니면 조금은 유해진 모습으로 해피엔딩을 추구하게 될까.


어찌되었든 확실한 것 한가지는 김병욱 표 시트콤이 무수한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 그리고 시청자는 김병욱의 '비극'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시트콤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단 사실일 것이다. [하이킥3 : 짧은 다리의 역습]의 첫 방이 자못 기다려진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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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ㄴㅇㄹ 2012.01.14 0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119화를 보면 이순재는 2017년에도 살아있는데 이순재 죽는 건 아닌 듯

  2. ㅇㅇ 2012.03.21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바로살아라에는 권오중이 안나왔구요
    지붕킥에서 사고후 정음-준혁은 대학에서 재회한 게 아니라 정음이 회사 앞에서 만납니당. 별 건 아니지만...^^ 암튼 잘보고가용

  3. 기타 2012.03.24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병욱PD의 작품이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 ...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극 구성 때문에 한회..한회가 재미 있어서 인기가 있는거랍니다. 한집에서 가족 구성원이 한꺼번에 비극이 되는 집..?? 현실에서도 극히 드뭅니다.

  4. 기타 2012.03.24 0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병욱PD의 작품이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 ...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극 구성 때문에 한회..한회가 재미 있어서 인기가 있는거랍니다. 한집에서 가족 구성원이 한꺼번에 비극이 되는 집..?? 현실에서도 극히 드뭅니다.

  5. 나그네 2012.03.29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뭐 매일매일 하니깐
    시간대도 좋고 그러니깐 보는거지 뭐..

  6. Favicon of http://wdf BlogIcon szdv 2012.03.29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은 진짜 비극이다..
    시청자들에게 비극을 안겨줌,.,



배우 조민기가 트윗에 올린 글이 화제다.


"이상한 나라에서 탈출했다. 반성도 없고 위선만 있는 악령들로부터 탈출!"이라며 "이 세상 단 한 사람은 그것을 '완벽한 대본'이라며 녹화 당일 날 배우들에게 던져주며 그 완벽함을 배우들이 제대로 못해 준다고... 끝까지 하더이다. 봐주시느라 고생 많았다" 라는 글을 써 출연작 [욕망의 불꽃]의 정하연 작가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에 정하연 작가는 명예훼손 등의 죄목을 물어 법적 대응을 고려하겠다며 "조민기가 얼마나 유명한 배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정신병자에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덜 떨어진 아이" 라고 독설을 내뿜었다.


[욕망의 불꽃] 제작 과정에서 간간히 터져나오던 '불화설'이 곪고 곪다가 터져나온 셈이다.


이처럼 작가와 배우는 가깝우면서도 가장 먼 사이다. 일이 잘 되면 든든한 동료이지만, 조금만 틀어져도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적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와 배우. 배우와 작가. 그 치열한 '전쟁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깐깐 '김수현' vs 말괄량이 '김희선'


현역 최고의 작가와 말괄량이 신인배우가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아마 작가는 작가 나름대로, 신인배우는 신인배우 나름대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날텐데 그 유명한 [목욕탕집 남자들]에서의 김수현 작가와 김희선이 그랬다. 실수로 선배 강부자의 의자에 앉았다가 강부자에게 한 소리를 듣자 "세상에 니 의자 내 의자가 어딨냐. 앉으면 내 의자지."라고 대꾸했다던 겁없는 19살 김희선은 현역 최고 작가인 김수현조차 컨트롤 하기 쉽지 않은 말괄량이였다.


[목욕탕집 남자들] 첫 대본 리딩날 김희선의 연기를 보고 "쟤가 이 드라마 출연하면 난 이 드라마 안 쓴다."며 노발대발했다던 김수현은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얌전하고 참한 '수경' 캐릭터를 김희선의 성격에 맞춰 어른 무서워할 줄 모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X세대의 전형으로 바꾸는 고역을 치뤄야 했다. 그 후에도 배우통제에 엄격한 김수현과 자유분방한 김희선은 리딩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혔고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까지 김수현은 김수현 나름대로, 김희선은 김희선 나름대로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목욕탕집 남자들]이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스타작가 김수현의 체면을 세워줬을 뿐 아니라, 김희선을 당대 최고의 스타로 성장시켰다는 사실. 고생은 했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작가와 배우 모두 손해를 본 건 아닌 셈이다. 하지만 김희선을 만나 생각도 않던 고생을 한 김수현은 2000년 드라마 [불꽃]에서 작가를 연기한 이영애의 입을 빌려 그녀를 이렇게 평한다.


"아가씨, 아가씨는 김희선 안 써요? 난 김희선 이쁘고 좋던데." / "난 그렇게 세상에서 지 잘난 맛에 사는 애는 안 써요."


하여튼 대단한 작가에 대단한 배우다.


"재수없어" 김은숙 vs "내맘대로" 박신양


이와는 반대로 갓 등단한 신인 드라마작가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상황도 만만치가 않다. 2004년 최고의 화제작인 [파리의 연인]의 작가 김은숙과 배우 박신양이 그랬다.


지금은 [연인]시리즈와 [온에어][시크릿 가든] 등으로 회당 3000~4000을 받는 인기 작가지만 당시 김은숙은 데뷔작인 [태양의 남쪽]을 신나게 말아 먹고 [파리의 연인] 시놉시스로 방송국을 전전하다 신우철 PD의 도움을 받아 겨우 드라마를 쓰게 된 처지였다. 이에 비해 박신양은 영화 [범죄의 재구성]으로 흥행 파워를 입증시키는 등 예나 지금이나 굳건한 톱스타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기 개성 강하기로 유명한 박신양이 새파란 신인인 김은숙의 대본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박신양이 즉석에서 대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기도 하고, 마음에 안드는 장면은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바람에 김은숙은 대본을 쓸 때마다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그러나 김은숙이 당하고만 있을 수 있나. 고재열의 독설닷컴에 따르면, 그녀는 매번 박신양이 나오는 장면마다 "뙤약볕 아래서" 라는 지문을 넣어 그를 골탕먹였는데 결과는 언제나 대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 대본을 받아든 박신양이 지문을 지워버리거나 촬영을 거부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촬영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라고. 


이 때의 악연 때문인지 세상이 다 알아주는 스타작가로 성장한 김은숙은 지금도 박신양 이야기만 나오면 "세상에서 젤 재수없는 배우" 라고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참고로 [온에어]에서 김하늘이 연기했던 '오승아' 캐릭터의 대부분은 김은숙이 박신양에게서 영감을 얻은 거라는 재밌는 이야기도 들린다.


'멱살'로 맺은 우정


김은숙과 박신양이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인 경우라면 실제로 육탄전을 벌인 작가와 배우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로 열혈 매니아들을 양산한 드라마 [거짓말]의 노희경과 배종옥이다. 당시 노희경은 꼬장꼬장하고 자기 색깔 뚜렷한 배종옥이 어찌나 미웠던지 그녀가 나오는 장면 장면마다 어려운 대사를 집어 넣거나 표민수 PD에게 부탁해 카메라 앵글을 이상하게 잡게 하는 등의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고 한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하루는 윤여정, 배종옥과 우연찮게 엘레베이터를 같이 타게 된 노희경이 다짜고짜 배종옥의 멱살을 잡으며 "연기 좀 똑바로 하고 작가 말 좀 들어! 이 여자야!" 라고 고함을 쳤다고. 재밌는 것은 뜬금없이 작가에게 멱살을 잡힌 배종옥이 화를 내기는 커녕 깔깔 대고 웃으면서 "알았어요, 작가님. 연기 잘 할게요." 라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이 이후로 배종옥에 대한 노희경의 분노는 신기하게도 말끔히 사라졌고 지금까지 [바보 같은 사랑][꽃보다 아름다워][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그들이 사는 세상] 등에서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자랑하고 있다.그렇다면 이들과 같이 엘레베이터를 탔던 윤여정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노희경이가 갑자기 확 달려들어서 배종옥이 목을 조르더라구.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놓고 하는 말이 연기 좀 잘해라니 얼마나 기막혀. 내가 나중에 노희경이한테 한 마디 했지. 연기 못하는 애들만 데려놓고 니 드라마 시키면 연쇄 살인나겠다고. 그 이후로 난 노희경이랑 드라마 하면 걔랑 같이 엘레베이터 안 타. 하하."


작가에게 직격탄 날린 김정은의 '한마디'

노희경과 배종옥처럼 싸우고 난 뒤 오히려 좋은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더 많다. [루루공주]의 김정은과 권소연-이혜선 작가의 경우가 그렇다. [루루공주]를 찍을 당시 김정은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와 상황 전개로 도무지 연기를 할 수 없는 지경" 이라며 "시청자들에게 부끄럽다" 는 요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루루공주]에 대한 공개 비판 뒤 김정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이기 때문에 출연한다."고 말해 김정은의 작가 비판을 둘러 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배에 탄 식구를 매몰차게 비판할 수 있느냐는 반대의견부터 드라마가 산으로 가니 주인공으로서 할 말을 한 것 뿐 이라는 찬성의견까지 여러 의견이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되었건 이 드라마는 20%가 넘는 시청률로 시작해 한 자릿수로 끝난 '유례없이' 망한 드라마가 됐고, 김정은에게는 지우고 싶은 드라마 그래피 중 하나로 자리매김 했다.


"내 캐릭터 돌려놔!" 고현정 vs 유동윤


김정은과는 결과가 다르긴 하지만 [대물]의 고현정과 유동윤 작가 역시 드라마 제작과정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중간에 교체 투입된 유동윤 작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고현정은 '서혜림' 캐릭터가 초반 설정과 다르게 흘러가자 시정을 요구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여 제작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비록 [대물]은 20% 후반대의 높은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그 과정에서 일어난 파열음은 고현정과 유동윤 작가 모두에게 대단한 스트레스였다.


그래서였을까. 그 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 고현정은 유동윤 작가에게 이러한 말을 남긴다.


"작가님, 진짜 당신이 미워서 욕을 했겠습니까? 처음에 드라마 반응이 좋았는데, 갈수록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서 그랬습니다. 아시죠?" 과연 대통령다운 쿨한 사과다.
 


작가와 배우의 사이가 언제나 좋을 수는 없다. '드라마'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다보면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밖엔 없고, 때때로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의견 충돌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어야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민기와 정하연 작가의 반목은 아쉬운 마음이 크다.


[욕망의 불꽃]이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유종의 미를 거둔 마당에 이런 식의 소모적인 논쟁은 오히려 드라마를 즐겁게 시청한 시청자들에 대한 모독이고 결례다. 모쪼록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방향에서 수습되길 바란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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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으음 2011.03.31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씁쓸하네요..

  2. Favicon of https://cultpd.com BlogIcon EUN^^B 2011.03.31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피디로서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작가와 피디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ㅎㅎ

  3. 누노 2011.03.31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 블로거들 보면 그저 방송보고 리뷰쓰거나 뭔 사안에 대해 비난하기 바쁜데 이 포스팅은 사건을 계기로 몰랐던 사실을 재기사화 했네요...참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잘봤습니다..

  4.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1.03.31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와 배우간의 관계가 참 미묘하면서도 서로 대립될 소지가 많겠군요. 쪽대본이나 일주일에 두 편씩 방영되어야 하는 한국드라마의 현실이 녹록하지 만은 안은 듯 싶어요. 촬영관련 현장 인프라가 조금씩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5. hmm 2011.04.01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미나게 잘 읽었어요 노희경&배종옥 이야기는 재밌으면서도 왠지 멋진(?)사람들이군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호감도 쭉쭉 올라가네요 (원래 두분다 좋아해서 더 좋게 보인건가?)
    욕불은 방영초기에 저런얘기가 있었죠
    그때 작가가 '전혀 그런일없다 오해다'이런 반박기사 도 냈었던거 같은데(그 반박기사이후에 불화기사는 쏙들어갔었죠)
    그 변명은 거짓이었네요 정말 불화가 있긴 있었던듯하네요
    이미 끝난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는 조민기씨가 모양새가 안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괜한 얘기를 한 것 같진 않아요

  6. 앨리 2011.04.12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참 재밌고 알차네요^^
    잘 읽었어요. 작가와 배우와의 관계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