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원티드>가 던진 메시지는 강렬했다. 끝까지 명백한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고, 피해자만 남았지만 그 사과는 정작 그 사건의 주도자가 아닌 방관자, 또한 그 때문에 피해를 입기도 한 여주인공 정혜인(김아중 분)이 대신 하게 되었다. 지독히도 현실적인 결말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환호했다. 어쭙잖은 권선징악보다 훨씬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결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원티드>는 애초에 시청률이 높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다는 설정은 이미 <신의 선물-14일>에서도 활용되었다. 그 작품 역시 매니아층은 있었으나 시청률이 높지는 못했다. <원티드>는 범인이 누굴까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사회 문제를 전반에 배치했다. 아동학대, 모방범죄, 불법 임상 실험등, 이야기 안에서 펼쳐지는 사건은 실제 사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실제적이었다. 여기에 자극만 좇는 미디어의 폐혜 까지 버무려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주제들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런 구성은 다수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이야기의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간유입이 힘든 것은 물론, 러브라인이나 코믹요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티드>는 용감했고, 그 용감함에는 박수를 보낼만 하다.
그 중심에 선 김아중이라는 여배우 역시 용감했다. 미혼의 미녀배우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김아중은 또다시 장르물을 선택했다. 더군다나 아이가 있는 역할이었다. <미녀는 괴로워>로 스타덤에 오른 김아중은 코미디로 시작했지만 이후의 행보는 스타성에 방향키를 돌리지 않고, 장르물을 위주로 실험적인 작품을 택했다.
<시그널>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의 <싸인>은 김아중의 대표작이 되었다. 장르물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20%의 시청률을 넘긴 이 작품에서 김아중은 신참 법의학자 고다경역을 맡았다. 동생의 겪은 사고의 범인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고, 의욕이 넘치는 캐릭터로 박신양과 호흡을 맞췄다. 이 드라마에서도 김아중과 박신양은 선후배 관계로 남는다. 둘 사이의 케미스트리 때문에 러브라인을 희망한 시청자들도 많았지만, 끝까지 러브라인 뉘앙스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이후 선택한 드라마 <펀치>에서는 무려 이혼녀 역할을 맡았다. <펀치>는 드라마 <추적자> <황금의 제국>등을 집필한 박경수 작가의 작품이었다. 작가의 스타일만 봐도 사회 문제나 권력싸움 같은 장르에 특화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김아중은 강력부 검사 역할을 맡았다. 김래원과의 러브라인이 있지만, 그 러브라인은 스토리의 양념으로 활용될 뿐인데다가 일반적이지도 않다. 이혼한 후에도 아직 감정이 남아있다는 설정으로, 그 둘 사이에는 7살 딸까지 있다. 알콩 달콩 감정을 쌓아나가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선택한 <원티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김아중은 다소 뻔한 작품보다는 확실한 캐릭터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며 자신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사실 장르물은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표현되는 로맨틱 코미디가 여배우들에는 훨씬 더 스타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장르다. 그러나 <싸인> <펀치> <원티드>에 이르기까지 김아중의 선택은 한결같았다. 자신이 혼자 빛나지 않아도, 아이가 있는 엄마거나 이혼녀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해 나가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선택한 것이다.
김아중이 선택한 드라마 속에서 드라에서 김아중의 캐릭터는 한결같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황 속에 휩쓸리고 그 상황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형처럼 기다리거나 남성의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캐릭터를 맡으면서 김아중이 보여주고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은 넓어졌다. 그가 ‘장르물 전문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그 도전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다. 시청률이 낮고 화제성이 없어도 김아중의 선택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