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방영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무한도전>(이하<무도>)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한국 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 1위에 24개월 연속으로 랭크될 정도로 영향력도 높다 그 순위에서 가끔 1위를 놓쳐도 언제나 상위권에 <무도>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무도>는 항상 트렌드를 이끄는 예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무도>의 뛰어난 아이디어들은 타 예능에서 벤치마킹 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0년동안 그 자리에서 10%를 넘기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무도>에 시청자들은 경외심을 보낸다. 그만큼 <무도>의 팬덤은 강력하다.
<무도>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 방송으로 예능 이상의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송된 ‘칭찬합시다’ 역시 묵직한 감동을 안기는 기획이었다. 특별한 영웅이 아닌, 우리 주변의 영웅을 찾아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무도>의 따듯함은 시청자들이 <무도>를 사랑하는 이유중 하나였다. 그러나 <무도>의 최근 동향이 ‘의미’나 ‘감동’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은 무작정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환경문제에서 역사에 이르기까지 <무도>는 ‘의미있는’ 기획을 선보이며 올해도 호평을 받았다. 물론 올해 선보였던 ‘우주여행 특집’ ‘LA컨피덴셜’ ‘북극곰의 눈물’ '위대한 유산' 같은 기획들은 <무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독보적인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있는 기획이 진행되는 동안 <무도>가 10년간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웃음’은 다소 부족했다.
<무도>의 본질은 예능이다. 초반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할 당시에는 실제로 ‘무모한 도전’을 모티브로 하여 불가능할 것 같은 미션에 몸 사리지 않고 무조건 부딪치며 웃음을 창출해 냈다. 지금의 <무도>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러워졌지만, 독보적인 예능으로서의 지나친 책임감에 짓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도>의 선봉장에 선 김태호pd 역시 <무도>에 대한 고충을 토해냈다. 김태호 PD는 이번달 13일 오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달의 점검기간과 두 달의 준비기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으며 크리스마스 소원을 빌었다. 이어 "열심히 고민해도 시간을 빚진 것 같고, 쫓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고"라는 말을 통해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드러냈다. 또한 "에라 모르겠다. 방송국 놈들아. 우리도 살자. 이러다 뭔 일 나겠다"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현재의 상황이 심각한 상태에 달했음을 토로했다.
사실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던 김태호pd의 입에서 불만이 섞인 목소리가 나온 것은 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시즌제 의견 역시 2015년 11월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새로운 도전' 특별강연에서 처음 흘러나왔다. 김태호는 해당 강연에서 "2008년부터 TV 플랫폼을 벗어나 영화, 인터넷 등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건의를 많이 했다"며 "하지만 문제는 '무한도전'의 시즌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아이템을 해결할 수 없더라"고 말했다. 또한 "사실 '무한도전'이 토요일 저녁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2009년까지 웬만한 건 다 했다"며 "그때부터 (TV)플랫폼 밖으로의 도전이 필요했던 상황인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한도전'이 시즌제가 되는 게 제일 좋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고 시즌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할 정도라면, 그런 의견이 흘러나온 것은 훨씬 이전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한 멤버들이 연달아 구설수등으로 빠져나가면서 김태호pd는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춘계 세미나에서 "출연자가 5명, 혹은 4.5명라고 할 만큼 버거운 형태"라면서 "우리 상황에서는 새 식구가 빨리 생기는 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세형등의 투입과 광희가 처음보다 자리를 잡아가면서 캐릭터의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해도 <무도>는 전성기 시절보다 멤버들의 캐릭터 구성이 여전히 풍성하다고 볼 수 없다. 캐릭터를 소비시키며 <무도>를 이끌어 온 멤버들 역시 재충전의 시기가 필요하다. 정형돈은 복귀를 한 이후에도 <무도> 출연을 고사할 만큼, <무도>라는 프로그램의 체력과 정신력 소모는 상당하다. 그러나 여전히 <무도>에 최고의 퀄리티를 기대하면서도 최고의 환경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무도>은 10년간 이어오면서 언제나 ‘위기’가 아니냐는 평가가 따라붙었고 이에 ‘무도는 항상 위기’라는 우스갯 소리마저 등장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콘텐츠나 멤버 구성에 대한 어려움이 터져나왔다면 그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킨 <무도>의 진정한 위기라고 볼 수도 있다. MBC측은 이런 <무도> 제작진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에 굳이 휴지기를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능은 유독 박수칠 때 쉴 수 없는 장르다. 투자대비 시청률이 잘 나오는 영역이기도 하고, 한 번 시작하면 시청자들의 관심이 사라지기 전까지 쉴 수도 없다.
그러나 <무도>가 10년이 넘도록 쌓아올린 것은 단순히 ‘뽕을 뽑아야 하는’ 예능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다. <무도>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그 브랜드에 시청자들이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만들었다. 어떤 프로그램도 10년 동안 이런 커리어를 쌓은 역사는 없었다. 그 역사를 초라하게 끝내는 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무도>가 앞으로 10년을 더 이어나가려면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휴식과 시즌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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