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새>는 금요일 심야 시간대 예능으로 10%의 벽을 깨는 기염을 토했다. 몇 년 새, 공중파 예능의 시청률 파이가 작아지고  10%의 벽을 SBS가 가족예능으로 깨고야 만 것이다. 벌써 29주 연속 동시간대 1위를 기록 중이다. 경쟁 프로그램은 상대도 안 되는 성적을 낸 것이다. 이런 성과는 관찰 예능을 비트는 ‘가족’의 출연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미우새>는 엄마와 아들, 모자 관계에 놓인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들끼리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꾸려나가지 않는다. <미우새>는 ‘이미 다 큰’ 노총각들의 일상을 화면으로 내보내고 스튜디오에서 그 일상을 관찰하는 어머니들의 반응을 캐치한다. ‘어머’ ‘쟤가 왜 저럴까’ ‘쟤가 미쳤나’같은 반응이 날것으로 드러날 때, 시청자들이 얻는 재미도 따라서 상승한다.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모자가 한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 있다면 숨겼을 아들의 사생활이 아들 혼자 집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사실적으로 공개되고 그런 사생활을 보면서 ‘몰랐던’ 아들의 생활 방식을 보는 어머니들의 충격은 더할 수밖에 없다.   

 

 

 


사실 초반부터 허지웅의 결벽증이나 김건모의 술 냉장고, 박수홍의 클러빙같은 특이한 행동들에 방점을 찍어 영상이 제작된 것역시 그 장면을 보는 엄마들의 시선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엄마들의 추임새는 이 프로그램이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화면속의 아들은 더 이상 그들이 알고 있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따로 만들었고,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정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자신이 생각한 기준에서 ‘잘 되게’ 만들고 싶은 어머니들의 심리는 묘한 상충작용을 일으키며 예능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화면속의 아들의 일상에 엄마는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엄마의 심리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아들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정한 기준을 놓지 못하는 이중적인 엄마의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알지만 때로는 간섭이 버거운 자녀들의 마음에 대한 공감대가 한국사회에는 깔려있다. 그 공감대를 이용해 엄마들의 반응을 잡아낸 것은 훌륭한 전략이었다고 할만했다.

 

 


그러나 문제는 ‘방송에서 허용하는’ 아들의 민낯이 벗겨진 지금이다. 이미 결벽증, 클럽, 술, 결혼 등 엄마들이 걱정하는 아들들의 생활이 그대로 공개된 터다. 이미 카메라 앞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다 나왔다고 봐야 한다. 한 두 번 보면 충격적인 장면도 익숙해지면 충격적일 수 없다. 그건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우새>가 택한 방식은 더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건모가 ‘술병 트리’를 만들거나 김밥 재료를 몇 겹으로 쌓은 ‘대형 김밥’을 만들거나 하는 식이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출연자에게는 러브라인을 부각시켜 맞선을 보게 하거나 한다. 단 하루의 단식원 체험등도 설정한 느낌이 가득하다. 특히나 엄마가 싫어한다는 박수홍의 왁싱이야기는 24일 방송분에서 수차례나 등장한다. 

 

 

 


그러나 아들의 일상생활이 아닌, 다분히 만들어진 것 같은 그런 장면들은 때로는 너무 억지스럽다. 문제는 억지스러운 장면이 아니고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아들의 일상 속에서 이제 엄마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동생과의 관계 회복이나 자신의 행동패턴 변화에 초점을 맞춘 허지웅의 이야기는 뭔가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문제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에서 이런식의 이야기로만 채워진다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자극과 엄마들의 캐릭터라는 두가지 요소를 잡지 못하면 <미우새>의 예능적 가치는 떨어진다. 그러나 ‘일상생활’이라는 한정된 소재에서 계속된 자극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런 식의 전개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긍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딱히 돌파구가 없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자신만의 기벽奇癖이 있기 마련이지만, 대체적으로는 일상에서 그리 특별한 일을 벌이며 살지는 않는다. 집에 있거나 밖에 나갔을 때, 항상 이벤트처럼 어떤 일을 벌이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구멍을 채우기 위해 다소 난감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설정에서 엄마들의 반응을 지켜보게 만드는 일을 언제까지고 계속할 수 있을까. 29주 연속 1위라는 빛나는 성과속에서 피어나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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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가족을 활용한 예능은 가장 훌륭한 소재거리라고 할 수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슈돌>)류의 육아예능부터 2009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기야>까지, 연예인들의 인지도를 기반으로 삼아 그 가족들까지 캐릭터로 활용하는 예능은 언제나 잘만 활용하면 통하는 소재였다. 그 중에서도 육아예능은 한동안 붐이 일 정도로 독보적인 파워를 자랑했다. <아빠 어디가>를 시작으로 <슈돌> <오 마이 베이비> 등 방송 삼사 모두 경쟁적으로 육아 예능을 쏟아냈던 것이다. 이 중 살아남은 것은 <슈돌> 정도지만 <슈돌>조차 전성기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가족 예능에 새로운 강자가 탄생했다. 바로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가 그 주인공이다. <미우새>는 파일럿 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내뿜더니 정규 편성이 된 이후 무려 10%가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금요일 심야 시간대 예능으로서 엄청난 성과다. 이런 성과는 근 몇 년 간 공중파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의 10%의 벽을 SBS가 가족예능으로 깨고야 만 것이다. 이런 성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자식을 놓지 못하는 엄마의 관음증에 대한 욕구 충족

 

 

 

 


<미우새>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끼리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가족 예능에서는 아빠와 자녀가 만나거나, 장모와 사이가 만나거나, 엄마와 아들이 만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의 일상생활이 관찰하듯 그려지면서 그들 사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를 노리는 것이다. 특히 육아 예능에서는 좀처럼 미워하기 힘든 아이들의 순수한 매력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우새>는 이제 ‘사랑스럽기’는 좀 힘든 40대 이상, 혹은 곧 40대가 되는 나이의 성인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엄마는 그들과 한 공간에 없다. 멀리 화면으로 그들의 일상을 지켜볼 뿐이다. 혼자 사는 40대 남자들의 일상이 뭐가 그리 재밌을까 싶지만 (이미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경쟁작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어머니들의 스튜디오에 나오면서 분위기는 달라진다.


 

 

 

 

포인트는 허지웅의 결벽증이나 김건모의 술 냉장고, 박수홍의 클러빙같은 특이사항 들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시선이 훨씬 더 중요한 포인트다. 추임새를 넣으며 자신의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이 예능에서 가장 훌륭한 자극제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면속의 아들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거나 황당해 한다. 그들이 키웠지만, 화면속 아들은 새로운 존재다. 자신의 아이지만 더 이상 터치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 성인을 엄마들은 여전히 지켜보고 싶어하고 간섭하고 싶어한다. 화면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는 그들의 일상은 엄마들에게는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게 만드는 소재다.

 

 

 

 


<미우새>는 이미 능력도 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지만,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아들들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장면이다. 개인의 선택과 의견이 존중되기 보다는 여전히 자신들이 정한 가치를 따라주기를 원하는 기성세대들의 염원. 아들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행복해 지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엄마와 아들, 그 가깝고도 먼 사이에 대한 공감

 

 

 

 


자신의 아들 뿐 아니라 다른 아들의 화면을 지켜볼 때도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 엄마들은 충격의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힘들어 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아파한다. 그것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묘한 공감대 형성이다. 자신들의 아들은 물론 남의 아들 역시 자신이 생각한 ‘정상적 기준’에 부합하느냐 아니냐 하는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공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대한 존중보다는 여전히 ‘엄마의 아들’로서 남아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큰 것이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내 자식이 낫다’는 식으로 아들끼리의 묘한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여전히 ‘엄마’로서의 자신을 포기할 수 없는 아들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은 일면 기성세대들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프로그램이 살 수 있는 이유다. 엄마라서 자식들을 놓지 못하는 마음은 불편하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따갑지만, 막상 엄마를 볼 수 없으면 엄마가 한 없이 그리운 자식의 마음처럼, 엄마도 자식을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화면으로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예능 속 상황처럼, 이제 아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시기에 와 있다. 그러나 사실 여전히 아들이 자기 마음처럼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충분히 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놀랄 정도로 아들은 이제 엄마에게 모든 것을 터놓지 않지만, 엄마는 아들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캐릭터 때문에 채널을 고정하지 않는다. 물론, 엄마와 아들의 처음보는 캐릭터가 생기는 재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관계가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의 공감대 형성이다. 서로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짐이되는 관계. 서로 누구보다 가깝지만, 서로의 생각이 너무나도 다른 그 이율배반. 끝까지 내 곁에 두고 싶지만 또 너무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은 그런 마음들이 합쳐져 엄마들은 아들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자녀들은 엄마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시청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이 <미우새>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포인트다. 가족이 만나지 않는 가족 예능은 그렇게 또 다른 판도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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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본인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그 사람의 방식을 인정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때때로 연예인들의 삶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평가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관찰카메라' 형식의 예능이 유행하면서 연예인들의 생활 방식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사례가 많아졌고, 그에 대한 화제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삶의 전부가 공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가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고는 한다.

 

 

 

 

 



<미운 우리새끼> 역시 그런 관찰 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미운 우리새끼>는 관찰 카메라에 진행자들은 물론, 관찰카메라 속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어머니들까지 스튜디오에 불러 그 모습을 함께 관찰한다는 점으로 차이점을 두었다.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는 노총각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결혼이다. 시청자 이전에 아들의 삶은 어머니의 눈으로 평가를 당한다. 물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계 지어진 그들의 눈은 객관적일 수 없다. 그러나 결혼을 못한 아들들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걱정과 탄식을 동반한다. 이런 장면들은 유효했고, 결국 동시간대 1위라는 시청률이 결과로 나타났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결혼이라는 문제가 시청자들의 공감과 호기심을 불러왔기 때문일터다.
 

 

 

 

 

 

<미운 우리새끼>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모두 나름의 위치에서 성공을 거머쥔 이들이다. 그런 성공을 이루고도 결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머니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게 만드는 것이 어머니들의 지상 최대 과제처럼 느껴진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야만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나 자신의 자식에 관한 문제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미 40살을 훨씬 넘긴 나이들이지만, 어머니들의 아들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 사랑의 방식에 동의를 하기에는 그들의 생각이 지나치게 답답하다. 일단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여기는 것도 그렇지만 그 부분을 넘어서도 여전히 아들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점이 있다.

 

 

 

 



그들은 아들의 삶이 아들의 행복 자체 보다는 그들이 봤을 때 이상적인 방향으로 흐르기를 원한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들은 충분히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나이다. 그 행동이 범법행위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면 그 행동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삶역시, 실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아들을 대하는 방식이 실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어떤 어머니들은 모범답안을 정해놓고 그 답안에 아들을 끼워 맞추려 한다. 아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아님에도 여전히 아들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립을 한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머니들은 '품안의 자식'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들이 아들의 결혼을 대하는 방식은 한국이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결혼에 대한 고루한 편견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며느리들은 아들보다 젊어야 하고, 여전히 아이를 낳기 좋은 가임기의 여성이어야 하며, 부모들의 말에 순종적이고 인물도 뛰어나야 한다. 이런 기준이 대체 아들을 위한 기준인지 본인 자신을 위한 기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불혹을 넘긴 아들들의 현재 상황을 외면하고 며느리의 조건만을 따지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본인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닌, 부모의 입맛에 맞는 며느리를 들이는 것이 우선시 되는 것 자체로 그들의 결혼에는 빨간 불이 켜진다.

 

 

 

 



그 전에 일단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너무나도 답답하다. 누군가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이다. 결혼을 해서 더 불행해 진다면 그 결혼 생활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부모들은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좀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까지 결혼을 원한다면 자녀들이 원하는 방식의 결혼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결국 자식의 행복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한 결혼을 원한다. 진정으로 아들의 행복을 바란다면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줄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삶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정해놓은 잣대를 벗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부모들의 태도는 자녀들의 행복한 결혼에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어느쪽도 포기하지 못하는 어머니들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여전히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고 집안과 집안끼리의 문제가 된다. 어느 정도는 따질 수밖에 없지만, 결격사유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문제다. 본인들의 의사가 최대한 존중될 수 있는 결혼.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인식. 한국사회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져야 할 태도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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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은 성역과 금기 없는 입담을 가진 패널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시각을 한 차원 끌어 올리겠다는 계획으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김구라, 허지웅등 직설화법과 독설로 유명한 패널들을 배치해 미디어에 대한 직설적인 비평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썰전>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 <썰전>이 가지는 한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썰전>의 독설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패널들의 독설이 공감을 자아낸다거나 사회적인 함의를 포함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썰전에서 하는 이야기는 ‘이 프로그램은 이러이러해서 문제다’는 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이야기가 전문적이고 분석적인 날카로운 시선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술자리나 사석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이상이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썰전>에 출연하는 인물들 역시 마음을 놓고 적나라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는 것 또한 한계다. 그들도 방송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하는 비판은 그대로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은 그들이 지적하는 비판의 강도를 높이기 힘들게 만든다. 더군다나 김구라등의 패널은 때때로 비판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습득하지 않고 비평에 임하는 모습으로 실망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결국 <썰전>에 출연하는 예능인들이 다른 예능인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신선하기보다는 점차적으로 묘한 거부감을 자아내는 그림이 되어가고 말았다. 초창기 고정 패널이었던 김희철 또한 “내가 아이돌을 비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썰전에서 물러날 정도였다. 한마디로 강도 높은 비판을 해도 문제, 하지 않아도 문제인 프로그램이 되고 만 것이다.

 

 

 

 

실제로 이번 회차 <썰전>에서도 김구라는 자신이 출연하는 <매직아이>에 대한 비판 보다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결국 그가 꺼내는 말들은 <매직아이>에 대한 옹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매직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것 자체가 <썰전>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그런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졌다.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 하겠다’는 취지의 ‘예능 심판자’코너에서 한주간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안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연예인들의 탈세와 폭행사건이었다. 송혜교와 김현중이 일으킨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아이스 버킷’이라는 이슈만이 대신 그 자리를 채웠다. 

 

 

 

연예계 사건 중 가장 크게 터진 두 사건을 이야기 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썰전>의 본질을 뒤흔드는 일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모든 부분을 짚어내겠다는 기획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에서 어떤 이야기는 숨겨지고 어떤 이야기는 드러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일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소재에서부터 몸을 사린다면 누가 정말 적나라한 비판을 기대할 수 있을까. 패널들의 비판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시점에서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썰전>의 한계다. 적나라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지만 ‘잃을 것이 없는 예능계의 아나키스트들’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그 곳에 앉아있는 패널들은 잃을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은 다른 동료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하는 예능인들이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지나칠 경우 그 관계를 해칠 수 있음을 염두해 두어야 할만큼의 위치에 있다. 더군다나 프로그램 자체내서도 어떤 이야기는 나오고 어떤 이야기는 금기가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썰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단순한 독설만으로 시청자를 사로잡기 힘들어졌다. 독설이 아닌 그 이상을 보여야 다시 주목받는 프로그램으로 바로설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의 한계는 명확하다. 강도가 약해지면 프로그램의 차별성이 없고 강도가 강해지면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힘들어진다. 그들이 다른 프로그램에 하는 비판을 <썰전>에 그대로 적용시켜 본다면 답은 확실하다. <썰전>은 점차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줄어들고 있다. <썰전>의 고민이 깊어질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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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말해서 유재석이 선보인 파일럿 프로그램, <나는 남자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유재석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했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나는 남자다>에서 특별한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다. 남자들의 토크쇼라는 콘셉트도 그다지 특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위기만 칙칙해졌다. 수지의 등장으로도 그 분위기는 해결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배려심 넘치는 유재석의 진행은 분명 장점이지만 ‘남자’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꺼내는 자리에서라면 보다 독살맞고 익살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결국 시청률은 4%대로 그다지 주목할 만한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유재석이라는 걸출한 진행자를 데려다 놓고 제작진의 안일한 구성 방식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JTBC썰전에서 강용석, 김구라, 허지웅이 강도높게 이 프로그램을 비판하자 오히려 <니는 남자다>에 대한 옹호론이 대두되었다. 물론 그들이 유느님이라고까지 불리우는 국민 MC 유재석을 비판했다는 것도 한 몫 했겠지만 그 안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썰전>은 주로 방송 프로그램과 연예 전반에 대해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사실상 <썰전>에는 전문가적인 분석이나 시청자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예리한 시선이 존재한다기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TV를 보면서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며 한 마디씩 내뱉는 수준의 이야기만 오고 간다.

 

 

 

더군다나 김구라는 말할 것도 없고 허지웅 역시 이제는 기자의 신분이라 할 수 없다. <마녀사냥>이나 <썰전>으로 이미 예능인의 이미지를 갖게 되고 자신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프로그램에 이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들은 방송인이고 연예인이며 예능인으로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비판하는 이들과 별다를 바 없는 예능인이라면 그들에 대한 평가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평론가들도 대중의 의견과 상반되는 자신만의 의견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는 경우에 입을 수 있는 타격이 크다. 더군다나 예능인이라면 단순히 대중들의 날 선 비판에 직면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근간, 즉,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까지 비난의 목소리가 미칠 수 있다.

 

 

 

그들도 완벽한 예능인이 아니다. <썰전>역시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놓고 비난을 내쏟는 것은 누구나 한다. 그에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통한 비판이라면 시청자들은 공감할 수 있지만 단순히 ‘재미없었다. 유재석이라서 못 건드리는 것이냐.’는 식의 비판은 비판이 아닌 비난에 가깝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 자체에서도 동일한 비판은 언제든지 쏟아질 수 있다.

 

 

 

김구라는 여기에 대고 ‘경쟁프로그램인데 시청률 보고 안심했다.’는 식의 사심까지 드러내며 화룡점정을 찍는다. 비판을 위한 비판에 가까운 것이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보여줄 걸 다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제 변해야 한다’는 비판 역시 김구라 본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비판이다.

 

아직도 유재석 강호동은 등장만으로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김구라는 비난의 수위를 높였을 때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예능인이다. 자신의 브랜드 자체가 아니라 독설로만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김구라가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김구라는 ‘김성주 보다는 (시청률이)잘 나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오히려 시청률이 떨어진 것만 봐도 김구라라는 브랜드 자체에 사람들이 관심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구라는 시청자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능인으로서 대중성을 확보한 유재석 강호동보다 김구라가 변해야 할 시점이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강점과 무기가 있다. 게다가 어느 예능인이든지 정점을 찍은 후 내려 올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강호동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은 것만 봐도 그것은 증명되는 것이다. 그들의 스타일을 버리고 다른 스타일을 무리하게 시도했다가 얻을 수 있는 단점들은 무시한 채, 무조건 변화만을 외치는 것 또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김구라는 전혀 변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능인들이 같은 예능인을 비판할 때는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자신들이 하는 비판에 자유로운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김구라의 <라디오스타>나 허지웅의 <마녀사냥>은 단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프로그램인가. 그들은 왜 그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놓고 평가하지는 못하는가. 그리고 그들과 같이 진행하는 신동엽이나 윤종신에 대한 평가는 왜 마음놓고 늘어놓지 못하는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생업이 걸린 프로그램들의 제작진을 함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딜레마다. 모든 프로그램을 놓고 이렇게 다른 잣대를 들이 대는 것 자체가 이미 <썰전>의 존재가치에 의문이 드는 지점인 것이다. 그들이 정녕 그렇게 똑똑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단점과 장점을 제대로 분석할 줄 안다면 <썰전>부터 분석하여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볼 일이다. 평론가의 입장도 아니고,  지나가는 일반인의 입장도 아닌, 이미 예능인이 되어버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판들은 모두 다 그들에게 되돌아가고 있다. 과연 <썰전>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들이 같은 예능인들에게 하는 날 선 비난들이 거세질수록 <썰전>에 흥미를 잃는 시청자들이 많아질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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