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알파고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질문이 대화의 주제가 된다. 사실 굳이 알필요 없는 질문이지만 궁금한, 누군가가 속시원히 대답해 주면 좋겠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그러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에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이가 있다.

 

 

 


전 장관이자 작가 유시민, 소설가 김영하, 뇌과학자 정재승,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여기에 작곡가이자 방송인 유희열까지 뭉친 <알쓸신잡> 출연진들의 대화 주제는 변화무쌍하다. 분명 대화를 하다가 한 번쯤은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는 더욱 풍성해진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종종 자칫 전문적이고 딱딱할 수 있는 이야기로 흐른다. 그러나 주목할점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의 주제는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동시에 흥미롭다는 지점이다.

 

 

 


생소한 개념까지 예능으로 승화시킨 <알쓸신잡>

 

 

 


방송은 커녕, 일반적인 대화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는 힘들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능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마도 <알쓸신잡>이 최초일 것이다. 대부분은 용어조차 생소한 개념을 <알쓸신잡>은 이해시키고야 만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어디까지나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수다’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다를지언정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술자리나 친구를 만나 밥을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모르는 개념이나 용어, 그리고 생각의 방향이 등장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의 대화는 다양한 주제와 분야를 아우르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생소할지라도 그 안의 이야기는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들어 부동산 가격이 들쑥날쑥 한다거나, 제주도에 중국자본이 들어와 땅값 상승 같은 결과가 보인 것과 같이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주제다. 그들의 지식 덕분에 이야기가 확장되었을 뿐,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관심분야를 건드린다. 그리고 보통사람이라면 대부분 호기심으로  끝나는 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설명과 해설이 가능한 수준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나누는 수다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알쓸신잡>, 주제는 교양인데 예능이 될 수 있는 이유

 

 


<알쓸신잡>은 다큐멘터리나 교양처럼 우리가 몰랐던 세상을 자세하게 파헤치고,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저 서로 나누는 대화들이 뒤엉키고 다시 다른 주제로 옮겨가는 ‘수다’의 과정을 포착해내며 그 이야기의 주제에 대한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 다양성은 우리가 보통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묘한 긴장감마저 있다.

 

 

 


만약 <알쓸신잡>이 어떤 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면 <알쓸신잡>은 <백분토론>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알쓸신잡>은 출연진들을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서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때로는 주제가 던져지긴 하지만 대회가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 자유로움이 바로 예능의 분위기를 만든다. 상대방은 적이 아니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풀어놓기는 하지만 그 지식에 자만하여 상대방을 무시하지도, 자신의 이야기가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알고 있는 사실이나 느끼는 감정을 풀어놓고, 그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인정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둘러앉은 그들의 대화는 더욱 재미가 있을 수 있다. 마치 어떤 날,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끊임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존댓말 호칭’에 대한 토론에 ‘꼰대 문화’가 등장하고, ‘멍때리는 시간’이 오히려 뇌에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들은 멀리 떨어진 과학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 생활에 관련된 문제들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인문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은 분명 똑똑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 생각이 좀 더 구체화되고 정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대화 주제는 결국은 ‘일상’인 것이다.

 

 

 


 

쓸데없지만 왠지모르게 재미있다.

 

 


그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쓸데없는 지식을 알려주는 예능. 그러나 그 지식들은 알아두면 쓸데없을지는 몰라도 알아두면 재미있고 왠지 모르게 똑똑해진 느낌까지 들게 만들어 준다. 분명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지식인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들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만드는 친구들과의 수다 자리에서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현장. 그 자체 만으로 예능이 될 수 있다니. 예능인들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스운 소리를 하지도 않는데, 어느순간 몰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알쓸신잡>. 정말 신기한 예능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

그동안 나영석pd의 예능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로 스튜디오 형 예능이 아니라는 점이다. 주로 ‘여행’을 모티브로 삼는 나영석 예능은 좀 더 여유롭고 신선한 공간에서 한 숨 돌릴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각각의 예능의 템포는 다르다. <꽃보다 할배>를 위시한 ‘꽃보다 시리즈’나 <삼시세끼>보다 <신서유기>같은 프로그램은 훨씬 더 템포가 빠르다. 여기서 두 번째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젊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능은 젊음의 영역이라는 편견은 <신서유기>정도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꽃보다 할배>등은 아예 일흔이 넘은 노인들의 여행을 이야기 하고 최근 종영한 <윤식당>에 등장하는 윤여정이나 신구 역시 일흔이 넘었다. <삼시세끼>의 연령대는 훨씬 낮지만, 오히려 관계나 흐름에 집중하며 젊음을 과시하는 성격의 예능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세 번째 특징은 가장 중요한데, 예능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의 캐릭터를 가장 효과적으로 예능에 적합한 인물로 만든다는 점이 그것이다. <꽃보다 할배>의 배우들이라든지, 짐꾼으로 등장하는 이서진, <삼시세끼>의 차승원, 에릭 <윤식당>의 윤여정, 정유미 등, 예능에서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은 나영석의 손을 통해 예능에 최적화 된 인물로 재 탄생된다.

 

 

 


'상황'이 아닌 '말'에 집중된 <알쓸신잡>, 나pd의 새로운 도전

 

 

 

    

나영석의 예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자연스럽다. 굳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하지 않지만, 던져놓은 상황속에서 그리고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강요되지 않은 캐릭터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전반적인 상황만 던져주고 천천히 사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특징을 극대화 해 예능의 캐릭터로 만드는 능력은 나영석pd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 역시 여행이라는 기본 전제를 파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목에 들어가는 ‘잡학사전’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그동안 여행을 가거나, 밥을 짓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형식의 나영석표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의 ‘말’이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차승원이나 에릭이 <삼시세끼>에서 차줌마나 에셰프의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특별한 예능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의외로 뛰어난 요리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에릭은 보통 예능에 출연하는 사람들 보다도 더 과묵한 느낌을 자아내는 캐릭터다.

 

 

 


말하자면 나영석의 예능에 출연하는 캐릭터들은 화술이 아닌, 그들의 본연의 행동이나 성격에 의해 훨씬 더 높은 주목도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알쓸신잡>에서 마지막에 붙는 ‘잡학사전’ 이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출연진들의 지식에 대한 ‘말’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알아두면 쓸데없다’라고 예능이라는 밑밥을 깔기는 하지만, ‘잡학사전’이라는 단어를 통해 출연진들의 지식의 깊이에 대한 호기심을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친화적이지 않은 인물들, 신선함을 넘어서 캐릭터화 될 수 있을까

 

 

 


 

출연진 역시 도저히 예능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인물들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많은 프로그램에서 예능감을 뽐낸 유희열을 제외하면 전 장관이었던 유시민, 미식박사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카이스트 교수 정재승 등 나름 유명하지만 대단히 대중친화적이라고 하기는 힘든 인물들이 주로 구성되었다. 심지어 유희열 역시 ‘서울대 작곡과 출신’ 이라는 간판과, 천재 작곡가라는 이미지가 있는 인물. 유시민은 예능 <썰전>의 패널로 활약하고 있으나, 그가 정치 얘기가 아닌 좀 더 가벼운 소재의 예능에 등장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신선한 일이다.

 

 

 

 

 

 

이름만 들어도 나름의 가치관과 지식들로 중무장한 캐릭터들이다.   심지어 유희열은 <알쓸신잡>의 제작 발표회에서 “나는 바보를 맡고 있다. 나pd가 신의 한수를 던진 것. 내가 잘생겨서 캐스팅한 것이다.”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였으니 이들이 어떤 수준의 대화를 주고 받을지에 대한 호기심은 굉장하다. 그러나 그 호기심을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대중 친화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이미 캐릭터 분석에 능한 나영석pd가 그들을 어떻게 요리할지에 더 큰 호기심이 인다.

 

 


그들 모두 화술이라면 뒤지지 않겠지만, 유희열을 제외하고는 예능 화법에 익숙한 인물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무작정 지식을 토론하는 자리라면 백분 토론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대중이 호감을 느끼고 귀를 귀울일만한 내용이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러나 우려보다는 기대가 되는 것은 나영석pd가 “틀을 깨는 예능이고 뇌가 즐거워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는 지점이다. 그동안 촬영을 하고 나서 항상 “망한 것 같다”며 앓는 소리를 했던 나영석pd가 자신감을 나타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예능을 한 번쯤은 보고 싶어질 이유는 충분하다.

 

 

 


틀을 깨는 인물들과 틀을 벗어난 이야기 구조 속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지, 그들이 하게 될 ‘말’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