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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0 [뮤지컬 CATS] 에 대해서 당신도 하고 있을지 모를 오해 (3)

CATS를 관람하기 전, 나의 CATS에 대한 지식은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 설령 그 사람들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평론가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단지 음악을 즐기고 단지 내 귀에 달콤한 노래를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MEMORY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CATS라는,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앞에 그 공연을 관람하기 전 나의 마음은 무던히도 설레고 떨리고 사라 브라이트만의 목소리를 통해 듣던 MEMORY의 감동을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어 상기시키게 했다.




그러했다. CATS는, 이제껏 살아온 얼마 되지 않은 내 삶에서 가장 커다란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 곳에 그 공연장에 선택되어 초대받는 행운이, 나의 가슴을 더 부풀어 오르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력적인 고양이들에게 말을 걸 준비가 되어있는, 뮤지컬 마지막의 충고처럼 정중히 인사를 건낸 후 모자를 벗을 수 있는, 그러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뮤지컬 장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단지 내 지식이 MEMORY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러한 순수한 눈으로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기에 나는, 다른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 감동을 느끼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독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알지 못했다. CATS를 관람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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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CATS에 대해 알고 있었던 다른 사실




아, 내가 CATS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사실이 MEMORY이외의 다른 것이 하나 더 있었다. 1년에 한번 모인 고양이들 중 한명을 뽑아서 천국으로 보내주는 내용의 줄거리를 기본으로 하는 뮤지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설마, 설마! 그것이 줄거리의 다일줄이야! 캐릭터 소개가 끝난 다음에 어떤 우리에게 무언가 긴장감을 줄 수 있을 만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거야, 라는 나의 다소 순진한(?)이 기대감은 처음 신비롭게 디자인된 무대를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릴 때부터 1막이 끝날 때, 그리자벨라가 메모리를 부를 때까지 계속 되었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메모리 보다 왠지 힘이 떨어지는 메모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 노래를 처음 들을 때의 그 감동을 느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강요했다. "이 뮤지컬은 세계 4대 뮤지컬이고 저 배우들은 브로드웨이에서 내한한 배우들이다"라는 이 너무나 위압적인 사실은 캣츠에 다소 지루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문화도 모르는 수준 낮은 시민으로까지 생각하게 했다.



1부가 끝나고서야, 이 공연이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그 가치가 있는 공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캣츠는 그 장면 장면들에게서 얼마나 저 고양이들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지, 마치 형식 없는 발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얼마나 저 고양이들이 유연하게 움직이는지 하는 것들, 그리고 그 귀여운 음악들과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정말 가벼운 동작으로 점프할 때 느끼는 마치 써커스를 보는 것 같은 그 놀라움에 탄식해야 하는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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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는, 그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맞춰서는 안 되는 뮤지컬이다. 단지 그들의 군무가 얼마나 화려한지, 그들의 분장이 얼마나 실감나는지,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흥겨운지 하는 것들에 대한 순간순간의 반짝임을 즐기는 그러한 뮤지컬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영국식 억양으로 노래하고 대사하는 고양이들의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막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내가 놓치면 안 되는 내용이 설사 다음 장면에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공연을 즐기게 된 것은 그런 것들, 아무려면 어때! 라고 생각해 버린 2막에서 부터였다. 물론 1막보다 화려한 2막의 무대들이 내 시선을 잡아끈 탓도 있었지만 CATS의 공연을 온전히 눈으로 즐기고 고양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기 시작하면서 공연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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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신문기사를 보면서 한국에서 한국버젼으로 공연된 캣츠가 실패했다는 기사들을 접한 기억이 있기는 있다. 그때 당시 "왜?"라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CATS가 한국 뮤지컬 배우들을 데리고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그들이 보여줄 그 무언가가 너무나 적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발레수준으로 무용을 하는 외국의 그 훈련된 단원들 보다 훨씬 더 잘 해낼 한국 배우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이 말은 한국 뮤지컬 배우들을 폄하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그 유연성을 따라갈 만큼의 고강도 훈련을 거친 한국 배우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동작은 전문적으로 무용을 배운 사람들만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깊이가 있었다. 스토리가 아닌 그들의 춤에 빠져들게 해야 하는 그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우리나라의 배우층은 좀 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정식 발레단원을 캐스팅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한국인의 정서에 더 부합하려면 그 고양이들의 캐릭터 소개는 20분쯤으로 끝내놓고 그들의 경쟁구도나 극적인 스토리를 훨씬 더 부각시켜야 한다. 그 속에서 그들이 MEMORY를 부르고 춤을 추고 과거를 추억하고 기차를 만들어 냈다면 그 감동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이었다. 적어도 발레 공연이 아닌 뮤지컬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 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배우들의 CATS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이라는 메리트 없이 성공하기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어쨌든, 솔직히 말해서 CATS가 내가 기대한 그 무언가를 가진 뮤지컬은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가 "발상이 기발한 고양이들의 향연"또는 "이야기와 완벽하게 어울어지는 웅장한 음악"과 같은 신문기사 평과 미국의 토니상의 7개 부분 석권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에게 "문화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이 그러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모차르트음악을 들으면서 오케스트라에 대해 평론하고 오페라를 보면서 가수들의 역량에 대해서 논하는 그런 교양은 처음부터 익숙치 못했다. 나는, 설사 길거리의 집시 같은 행색을 한 가수라 할지라도, 대학로의 아마츄어들이 빚어내는 다소 어설픈 조합이라 할지라도 나의 마음을 울리는 그 작은 떨림을 더 좋아한다. 그 작은 떨림들이 CATS의 웅장함과 화려함 속에서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면, 그것 역시 그냥 나만의 속성인 것이다.



CATS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간 중간 탄성을 나오게 하는 그들의 춤과 화려함은 내게 잠시 꿈같은 시간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다만, 처음부터 나는 다른 것을 기대하고 갔기 때문에 내가 얻을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도 CATS를 보러 가는 "나 같은"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 가지 충고를 해주자면, 자막이 아니라 고양이들과 한번 더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단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들이 몸으로 하는 이야기와 그 멜로디에 집중하면, 무리 없이 꿈의 세계로 초청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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