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통령' 서태지가 귀환했다. 예상보다 잠잠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서태지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름 하나에 실려져 있는 권위에 부딪히게 되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까지 느껴진다. 한 마디로 문화대통령의 거대한 위용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서태지의 범접할 수 없는 기운보다 언제든지 흥얼거리며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음악이 더 끌린다. 그리고 2008년, '즐겁고 편안한 음악' 을 하는 그들이 돌아왔다.


바로 서태지보다 더 반가운 'COOL' 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에게 있어 서태지가 '우상' 이라면, 쿨은 '친구' 였다. 3~4년에 한 두번 만나기도 힘든 서태지와는 달리 쿨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랜 친구처럼 쿨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쿨이 있었기에 여름이 즐거웠고, 여름이 있었기에 또한 쿨이 있었다. [운명][해변의 여인][애상][점포맘보][진실][결혼을 할거라면][이 여름 SUMMER] 등 줄줄이 쏟아졌던 '명곡' 들은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파도 소리에서 더더욱 빛났다.


어떤 사람들은 쿨의 음악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음악" 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쿨의 음악은 결코 공장에서 찍어내 듯 막 만든 그런 음악은 아니었다. 그들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적어도 '쿨' 만이 간직하고 있는 감성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신나는 댄스음악과 절절한 발라드가 적절하게 섞인 앨범은 어떤 식으로든 평균 이상을 해 내는 '관록' 과 '연륜' 이 녹아있었고, 대중이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 가장 잘 파악하는 '영리함' 또한 간직하고 있었다.


이재훈의 말처럼 많은 혼성그룹들이 쿨 해체 이 후, '쿨 표 음악' 을 표방하며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던 이유는 '쿨 표 음악' 이야말로 쿨만이 소화해 낼 수 있는 고유 장르로 대중에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쿨의 음악은 철저하게 대중적이면서도 놀랍게 독자적인 영역을 간직하고 있었다.


쿨의 음악은 '대중적' 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중가요와는 달리 '일회성' 으로 버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한창 인기를 끌다가 1~2년만 지나면 급격하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것과 달리 쿨의 노래는 '대중가요' 임에도 대중가요의 일회적 성격에서 벗어나 이상스럽게도 오래 불려졌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와우! 여름이다!" 로 시작하는 쿨의 [해변의 여인] 이 거리에서 흘러나오고, 그들의 음악이 마치 '여름' 그 자체인 것처럼 상징됐다.


왜 쿨의 음악은 특별히 '오래' 불려지는걸까.


쿨은 '대중친화적' 인 기본적인 이미지를 간직하면서도 결코 대중의 입맛과 유행을 따라가는 음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쿨 스타일' 에 대중들을 길들였고, 그것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유행을 타지 않는 '쿨 스타일' 이 완성되자 그들의 음악은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절대 촌스럽지 않은 음악이 됐다. 그것이 바로 쿨 음악이 장수할 수 있는 이유였다.


서태지가 걸었던 길은 한국 음악의 외연을 확장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도전과 개척' 의 길이었다면, 쿨은 서태지와는 달리 철저하게 대중의 기대에 영합하는 동시에 대중가요가 어떤 식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대중가요의 교과서' 로서의 역할을 했다.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바로 쿨의 노래였고 대중이 찾는 곳이면 어김없이 그들의 음악이 있었다.


그리고 2008년 올해, 드디어 다시 '쿨' 이 돌아왔다.


3년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결코 '촌스럽지' 않게 다시 부활했다. 그 촌스럽지 않음이 반갑고, 여전히 친근하고 발랄한 그들의 음악이 반갑다. 그리고 유쾌, 발랄, 통쾌한 쿨의 방송 출연 역시 반갑다. 그 반가움이 반가워서 올 여름이 또한 반갑다.


친구같고 연인같은 그들, 쿨! 올 여름에는 서태지의 컴백보다 쿨 컴백이 백만배 더 반갑다!

Posted by 비회원
TAG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