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라는 단어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문화 대통령으로 까지 칭송받는 이 뮤지션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수식어들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인간 ‘서태지’로서의 의미라기 보다는 그가 이제껏 쌓아온 수많은 음악적 성과들과 그가 서른 중반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도 그가 유지하고 있는 ‘최고’ 스러운 음반 판매량과 뮤직비디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최고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듯한 사생활에 관한 의미였다.



서태지를 ‘감히’ 과소평가 할 수는 없다. 그를 모르고 자란 세대들이 “서태지가 뭐가 그리 대단해”라고 그를 평가 절하하고 관심 없어 할지도 모르지만 서태지는 컴백했고 오로지 서태지를 위해 편성된 1시간이 넘는 특집 방송에서 증명 되었다. 그가 아직도 최고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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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방송, 뻔한 질문도 신선했던 이유-오로지 서태지



사실 특집 방송에서 서태지에게 쏟아진 수많은 질문들은 그간 수많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뤄 졌던 질문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의 가족에 관해서, 사랑에 관해서 또 그가 쉬는 기간동안 했던 일들에 대해서 다뤄진 1시간 동안의 방송이 대단했던 이유는 오로지 그가 ‘서태지’였기 때문이었다.



서태지에게도 가족이란 것이 있을까? 서태지에게도 연인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그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까? 하는 ‘인간’서태지에 관한 질문은 그동안 철저히 부정되어왔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서태지는 평범한 인간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팬들이 그에게서 보는 것은 언제나 ‘인간’ 정현철에 관한 소소한 것들 보다는 그가 쌓아 올린 그 거대한 상아탑이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한가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서태지에게 유세윤이 무릎팍 도사의 컨셉을 그대로 가지고 서태지에게 들이댈때 그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과연 서태지 한테 저래도 되나?”하는 작은 충격. 서태지가 개그 콘서트를 본다는 데에서 오는 더한 충격. 사랑의 카운셀러나 닥터피쉬를 서태지가 알고 있다는 또 다른 충격. 그것은 그가 서태지 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어느 연예인이라도 유세윤을 알기보단 모르기가 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서태지가 아닌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그의 사생활에 ‘개그콘서트’가 들어있을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서태지에 대한 오해요 편견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편견과 오해 덕에 서태지에게 쏟아진 그 ‘평범한’질문들은 신선했다. 서태지였기에, 서태지이기에 말이다.



사실 서태지가 우리가 궁금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거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지는 못했다. 서태지 골수 팬이 아니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은퇴에 관한 이야기도 다소 뻔했고 “어느 동네 사세요?”라는 질문에도 “우리 동”이라며 즉답을 회피하고 사랑에 관한 질문은 “그런 질문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받아 넘기는 등 여전히 비밀스러운 서태지를 유지했다. 가족에 대한 부분도 그냥 저냥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은데 시간을 많이 만들지 못한다.”라는 식의 평범한 대답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식상한 질문들과 대답들이 신선했던 이유는 이제까지 한번도 서태지의 입을 통해서 그 뻔하디 뻔한 대답들 조차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뭄에 콩나듯 앨범을 내서 팬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그는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신비스러운 서태지였다. 그 신비스러움 조차 서태지가 서태지 일 수 있는 이유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그가 의도적으로 흉내내는 마케팅 같은 느낌이 아니라 서태지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방송에서 ‘자신의’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을 들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그것은 정말 신선하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도 인간이었다. 그도 시간이 나면 개그콘서트도 보고 6집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스타일을 치욕이라 느끼기도 하고 작업할 때면 일주일 동안 씻지도 않을 때도 있는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사실이 서태지라는 인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했던가? 그냥 ‘서태지’니까 그런 것들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이번 서태지 컴백 스페셜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태지의 팬들에게는 그를 좀 더 오래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서태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데 대한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서태지, 걔가 뭐가 그리 대단해?”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1시간의 특집방송으로 그의 존재감을 증명 시켰다.



어쩌면 서태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창력도 아니고 최고의 비쥬얼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라도 그는 ‘서태지’다. 이 단어 하나 만으로도 그는 ‘최고’다. 다른 조잡한 설명들은 이 단어 앞에서 모두 빛을 잃고야 만다. 그의 청량감있는 노래의 멜로디와 함께 말이다.

Posted by 한밤의연예가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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