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7 00:13

[이산] 혜경궁은 정말 '의빈 성씨' 를 구박했을까?



드라마 [이산] 을 보다보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극 중 성송연으로 출연하는 '의빈 성씨' 와의 갈등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견미리가 분하고 있는 혜경궁 홍씨는 사사건건 성송연을 궁지로 몰아 넣으며 정조의 총애를 빼앗아 가려하고 '지체 낮은 도화서 화원' 따위가 자신의 아들을 홀린 것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심각한 고부 갈등 중 하나로 보이는데 과연 실제로도 혜경궁은 의빈 성씨를 구박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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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속 혜경궁 홍씨는 정조와 성송연의 관계를 떼어 놓기 위해 '원빈 홍씨' 와 '화빈 윤씨' 를 궁궐에 들여 놓는다. 명문가의 여식들을 궐 안에 들여 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성송연의 입지를 약화 시키려는 혜경궁의 '전략' 은 [이산] 의 또 다른 갈등축으로 긴장감까지 자아내고 있다. 혜경궁의 계략에 맞서 정조의 총애를 받는 송연의 고군분투와 그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있는 효의왕후의 모습 또한 드라마답게 아주 극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혜경궁은 홍국영의 누이인 '원빈 홍씨' 의 입궐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혜경궁은 <한중록> 에서 "스스로 원빈이라고 칭하는 것부터 요사스럽더니...." 라는 글귀로 홍국영과 누이 원빈 홍씨를 싸잡아 비난한다. 홍국영이 자신의 아비와 숙부인 홍봉한과 홍인한의 제거에 앞장 섰던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혜경궁은 홍국영이 누이를 통해 권세를 누리려 하는 점을 대단히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니 정조와 성송연을 떼어 놓고 홍국영의 뒷배를 봐주기 위해 원빈 홍씨를 스스로 천거하는 [이산] 속 혜경궁의 모습은 '완벽한' 픽션으로 봐야만 한다. 원빈 홍씨의 이른 죽음과 그와 함께 몰락하는 홍국영의 처참한 최후를 보면서 가장 기뻐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혜경궁,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혜경궁에게 마땅히 '제거' 해야 할 대상은 성송연이 아니라 오히려 원빈과 그의 오라비 홍국영이었던 것이다.


이번 주에 송연의 '라이벌' 로 등장한 '화빈 윤씨' 역시 혜경궁에 의해 궐 안으로 들어 온 후궁은 아니었다. 화빈 윤씨는 14년 동안 아들을 낳지 못한 효의왕후 김씨가 직접 천거해 올린 후궁이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상상 임신까지 했었던 효의왕후는 '대통을 이어야 한다' 는 책임을 지기 위해 후궁을 들여야 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서 간택 된 사람이 바로 화빈 윤씨였다.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삼종의 혈맥' 은 효의왕후로서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절대 반지였다. 즉, 화빈 윤씨의 입궐은 혜경궁이 아니라 효의왕후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다.


재밌는 것은 실제 역사 속에서는 화빈 윤씨의 나인으로 들어간 것이 바로 '성송연' 이고, 정조는 화빈의 처소에 들락거리다 성씨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산] 에서는 화빈과 송연이 정조를 사이에 둔 라이벌로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송연이 화빈의 침방 나인이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간에 송연을 '제거' 하기 위해 화빈 윤씨를 일부러 소개하는 혜경궁의 모습 또한 작가가 만들어 낸 완전한 '허구' 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명문가 출신의 두 후궁과 달리 일개 나인 출신이었던 의빈 성씨에게 '출신 컴플렉스' 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확인된 바 없으나 혜경궁은 화빈 윤씨만큼이나 의빈 성씨를 사랑했다. 오히려 의빈 성씨의 미천한 신분은 '외척의 발호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는 평가를 받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고 이것에 대해 혜경궁 역시 공감했다. 의빈 성씨가 아들을 낳았을 때, 혜경궁은 정조와 효의왕후 만큼이나 기뻐했다. "왕실의 흥복" 이라며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던 혜경궁이 의빈 성씨를 구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의빈 성씨는 '투기' 하지 않음으로 하여 효의왕후와 혜경궁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나인 출신의 태생적 배경 때문인지 검소하고 겸손했던 의빈 성씨는 아들을 낳고서도 모든 공을 효의왕후에게 돌리는 미덕을 발휘했다. 혜경궁이 의빈 성씨의 온화한 성품에 감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 후 의빈이 죽은 뒤에도 "하늘도 무심하시도다." 라고 한탄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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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 성씨의 자애로운 성품 덕에 혜경궁이 그녀를 '미워할 이유' 도 없었겠지만 더욱 깊숙이 들어가보면 효의왕후와 의빈성씨, 그리고 혜경궁은 지금의 시각처럼 '고부 관계' 로 바라볼 수 없는 관계이기도 했다. 혜경궁은 정조의 어머니이자 효의왕후의 시어머니인 것은 확실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대비' 가 아니었다. 즉, 대비와 같은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위치에 처해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내명부 수장은 누가 뭐래도 중궁인 효의왕후 김씨였다. 성품이 온화하고 강직하여 '내유외강' 의 기품을 품고 있던 효의왕후 김씨는 내명부의 수장으로 흔들리지 않는 '중심' 으로 자리했다.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의빈 성씨의 입궐 또한 '승인' 하고 '결제'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효의왕후 김씨, 단 한사람 뿐이었다.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도, 정조의 모후인 혜경궁도 실질적 위계 권력 관계로 따지자면 효의왕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임금이 총애하고 중궁이 '승인' 한 후궁의 일에 대해서 궐 내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례를 따져봐도 대비가 임금의 후궁을 내치거나 벌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숙종조에 명성대비 김씨가 장희빈을 궐 밖으로 내친 일이 있기는 하나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며 대부분은 중전의 손에서 '즉결 심판' 식으로 처결 되는 것이 '원칙' 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혜경궁은 '사도세자를 죽인' 풍산 홍씨 가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이었다. 남편이 죽음으로 몰릴 때까지 침묵하고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것은 혜경궁 그 자신이었고 자신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한 그 날부터 그녀는 그 '원죄' 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혜경궁이 실질적인 발언권이나 영향력을 거세게 행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정조에게나, 효의왕후에게나 혜경궁은 도의적으로 '섬겨야' 할 인물이었지 명을 받들고 따라야 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명부의 수장으로 모든 일을 관장하는 효의왕후에게 더더욱 중요시 되는 원칙이었다. 효의왕후는 혜경궁과 정순왕후 모두에게 성심을 다함으로써 '효부' 소리까지 들었으나 내명부의 일만큼은 자신이 관장하며 혜경궁과 정순왕후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양보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효의왕후가 중궁으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였고 자존심이었다.


그러니 [이산] 에서 '성송연' 을 구박하는 혜경궁의 모습은 실제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다. 혜경궁은 품성 고운 의빈 성씨를 미워할 정도로 모난 인물이 아니었고, 실제로 미웠다고 해도 며느리인 효의왕후의 강력한 비호가 있는 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기도 힘들었다. 만약 혜경궁이 다시 살아 돌아와 [이산]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난 저럴 이유도 없었고, 저럴 수도 없었어요." 하며 억울해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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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한미동맹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애용해야 합니다!

    Tracked from veritashq 2008/05/07 09:18 delete

    한미동맹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애용해야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그동안 우리가 명성만으로 접해오던 LA갈비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이명박 대통령님의 업적중 하나로서,그리고 한미FTA와 천년넘게 지속될 굳건한 한미동맹의 반석으로 길이 청사에 남을 것입니다.이제 서민들도 값싼 쇠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고,쇠고기가 노동귀족 등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지금 우리 사회에는 광우병 광풍이...

  1. 이래서... 2008/05/07 09:46 address edit & del reply

    사극을 그닥 좋아하지않게되었음...다른건 몰라도 사극만큼은 실제역사에 최대한 근접시켜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함. 요즘은 너무 자극적이고 충격적인소재에 목숨거는것같음....

  2. 2008/05/07 10:27 address edit & del reply

    드라마보다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완전 정독.. 짝짝짝!!

  3. 하늘아래 2008/05/07 11:45 address edit & del reply

    저두 너무 흥미있게 읽었어요..ㄳㄳ

  4. 이산 2008/05/07 12:50 address edit & del reply

    흥행에 눈이 멀어 역사를 왜곡하는 드라마 작가들은 각성하시오....

  5. 한심의 극치... 2008/05/07 12:59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과 중국보고 역사외곡 어쩌구 저쩌구 맨날 하지말고 본국부터 먼저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드라마의 이야기를 역사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만데, 이런거 보고 애들교육은 어떻게 하구. 한심한 인간들. 지 멋대로 역사를 바꾸고 지랄이야.

  6. 쿠키 2008/05/07 13:02 address edit & del reply

    적극 공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산을 보면서 말이 안된다고 여겼던 부분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많이 연구하신 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던 제가 보기에도, 대비도 아니고 오랜 세월 쥐죽은 듯 죄인으로 살던 혜경궁 홍씨가 저렇게 당당하고 도도하게 말이 안되는 행위들을 하는게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중록 첫부분에도 그런식으로 표현됐던 것 같은데...
    요즘 그런식으로 하는 혜경궁을 보면서, 드라마 초반에 견미리가 안어울리는데 왜 혜경궁으로 나올까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저렇게, 저런 성격으로 풀어쓸려고 견미리를 등장시켰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많이 억지스러워요.

  7. ㅇㅇ 2008/05/07 13:04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데 제가 알기론 정순왕후가 내명부의 수장일텐데요

    정조의 후궁 간택도 정순왕후가 '후사를 보는 것이 급하다'고 하여 간택하라는 명을 내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세자르 2008/05/07 13:50 address edit & del

      정순왕후가 아니라 효의왕후가 맞습니다. 다만 내명부의 가장 큰어른이라고 하면 정순왕후죠..실제적으로 내명부의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중전입니다. 조선조 역사상에서 대비가 큰 힘을 발휘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특수한 경우

  8. ^^ 2008/05/07 13:14 address edit & del reply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아.~

  9. 초위시 2008/05/07 13:21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역사를 그닥좋아하지않아(이런-_- 죄지은 것 같아..) 사극드라마는 잘 보지 않습니다. 게다가 허구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싫어하는데 얼마전부터 이산을 보기 시작했는데 님이 아니었다면 전 또 드라마 그대로 믿어버렸겠지요...혜경궁이 효의왕후 의견을 여러번 무시하는데서 진짜 저럴 수 있나 싶기는 했지만..이제서야 답을 알아가네요_^^감사해요...잼있네요

  10. 너무 잘 봤어요.드라마보다 실제가 더 잼난다. 2008/05/07 14:02 address edit & del reply

    재밋어요.

  11. ares97 2008/05/07 14:02 address edit & del reply

    원추~ 재미있는 역사의 진실이었습니다. 잘모르고 있던 허구에 대해 이렇게 속시원하게 풀어주시니... 드라마에서 속았다 생각하니까 혹시 이글도 허구?

  12. 옛날의 복잡한 상황을 알고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2008/05/07 15:41 address edit & del reply

    지금 드라마처럼 풀어가는 게 시청자 입장에서 쉽게 다가가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혜경궁의 그런 입지를 이해시키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중간에 티비를 시청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이해안가는 부분이 많았을껍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용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다 이해시키려면 너무나 긴 역사를 방영해야했을꺼예요.

  13. 구경꾼 2008/05/13 11:49 address edit & del reply

    홋..안그래도 이산 보면서 혜경궁홍씨 역할에 고개가 갸우뚱할때가 많았는데..
    이글 보니 이해가 되네요.. 역시 사극도 그냥 허구드라마일뿐이네요

  14. 발해 2008/08/20 15:09 address edit & del reply

    엄청난 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