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 이용대가 앙드레 김의 무대에 선다고 한다. 한 해에 가장 각광 받는 스타들이 출연할 수 있는 앙드레 김 무대에 출중한 외모의 이용대가 올라가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과거부터 종종 있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앙드레 김과 이용대의 만남을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대부분 앙드레 김 무대에 이용대가 올라가는 것이 '짜증난다' 절대 반대' 라는 반응이다.


그런 네티즌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왜?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 이용대가 올라가는 것이 어째서 짜증나고 반대할 일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앙드레 김과 이용대의 '만남' 에 있어서 네티즌들의 격렬하기까지 한 반대는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하나는 운동선수인 그가 패션쇼 등에 서면서 괜히 연예계 쪽에 관계를 맺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와 그냥 '앙드레 김' 의 무대니까 싫은 것, 이렇게 두 가지다. 그런데 대부분의 댓글들은 이용대가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패션쇼에 서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이용대와 앙드레 김의 만남이 마음에 안든다는 투다. 한 네티즌은 기사 댓글에 이런 "광폭한" 댓글까지 남기며 앙드레 김을 성토(?)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앙드레 김이 이용대를 패션쇼에 기용했다고 해서 젊은 네티즌에게 이런 '폭언' 까지 들어야 하는가? 그만큼 앙드레 김의 무대에 이용대가 서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젊은이들 등신 만드는 쇼' 에 '우리 영웅들을 민망한 무대에 세우려고 하느냐?' '유명인 세워서 이슈나 만드는 그런 무대' '사교계에 목매는 변태 영감탱이' 등등 차마 읽기도 민망한 글을 보고 있노라니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다.


조금 심한 어투의 댓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댓글도 말만 순화 되었지 거의 비슷한 의견들이었다. "옷도 그옷이그옷 매일 같은옷 지겹다,....스타들 이용한 마케팅 그만해라 추하다" "식상해,,,디자이너란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창조성이 없어,,," "앙드레 김이 왜 유명한지 몰겠다 앙드레 의상은 늘 거기서 거기고 실제 입을수도 없고 입지도 않는디 그냥 이미지 메이킹만 하는 디자이넌가?" 등등....


이 수많은 댓글들을 읽어보다보니 씁쓸함이 묻어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되묻고 싶어졌다.


"당신들이 정녕 '앙드레 김' 을 알기는 아느냐?" 고.


"당신들이 정녕 '앙드레 김' 의 패션을 알기는 아느냐?" 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화평론가 손상익은 앙드레 김의 의상을 두고 "앙드레김이라는 한 특출한 문화인은 한국을 ‘양장 소비국’에서 ‘패션 생산국’의 지위에 올려놓는데 일조했을 뿐 만 아니라, 미국의 LA같은 대표적인 ‘서구도시’에마저 ‘앙드레김의 날’을 선포하게 하는 등 우리 대중문화 가치의 범 지구촌화에도 성공했다." 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폭언에 가까운 댓글 대부분은 앙드레 김의 의상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한결 같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거세 되어 버린 디자인이며 보기 에도 민망한 무대 의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앙드레 김의 충실한 '일관성' 과 '정통성' 은 패션의 차원에서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야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철저히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문화' 의 본질이 결국 동시대 사람들이 폭 넓게 수용 가능한 '일관성' 에 그 거취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앙드레 김의 의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진정한 '패션' 이다. 마치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몇 세기를 뛰어 넘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듯, 앙드레 김의 의상도 실제로 45년이라는 '반세기' 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이러한 특수한 '일관성' 의 개념을 "패션이 아닌 예술" 이라 정의한다.


강명석은 앙드레 김의 의상이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도저히 해석될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인 동시에 일반적인 패션씬 안에서의 비교나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패션 산업 안에서의 옷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지만 앙드레 김의 옷은 트렌드나 취향과 상관 없이 '사고 싶어 하는 사람' 들에게만 개방 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앙드레 김의 옷이 소비되는 방식은 기존의 패션 산업이 받아들이고 있는 '공급과 수요' 의 법칙을 무시해 버린 일종의 예술품 거래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오직' 앙드레 김만이 주목하고 있는 이 예술과 같은 '패션' 은 결국 자신의 옷을 한 번도 상품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앙드레 김의 '철저한 자기애' 와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다. 그의 패션은 대중 문화의 경계를 몇 단계 벗어나 버린 하나의 예술품이며, "식상하고 지겹다, 쓰레기다, 어색하고 보기 싫다" 등의 폭언을 들을 정도로 값어치 없는 물건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용대의 출연으로 다시 한 번 '상업적인' 스타 마케팅 논란에 휩싸인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 대해서도 충분히 변론 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서 말한 것처럼 앙드레 김은 자신의 디자인을 단 한번도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업' 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돈' 이라는 것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물질적이고 수단적인 가치인데 앙드레 김은 바로 이 부분에서 놀랍도록 '자유' 롭다. 권력과 유명세, 브랜드 확장과 상품은 물질 세계의 문명이 베풀어 준 가장 추악한 축복이지만 앙드레 김은 자신의 의상처럼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 한 자기 세계에서 그 축복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건 앙드레 김이 끝끝내 물질 세계와 타협한 듯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자기 존재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앙드레 김은 90년대 후반까지 강남에 자기 소유의 의상실 하나 가지지 못할 정도로 물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 패션쇼가 1700여회, 올림픽 패션쇼 4회, 상류층 사회와 가장 가까운 대중 문화 인사이자 대통령조차 '영웅' 이라 치켜세웠던 앙드레 김이 데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의상실을 전세로 살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사업가' 앙드레 김에 대한 논쟁이 불과 5년도 안 된 짧은 시간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실제 앙드레 김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임에도 사업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는 '특이한 케이스' 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업가' 앙드레김을 살펴보기 이전에 심도 깊게 '디자이너' 앙드레 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한다. 앙드레 김이 가전제품, 신용카드의 디자인 계약을 성사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직접 운영이 아닌 단순한 라이센스 계약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앙드레 김이 브랜드 확장을 통해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중학교 때 부터 앙드레 김이 꿈 꿔왔던 이상이 '세계인' 이자 '샤넬을 능가하는 다양한 영역의 한국적 디자인' 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


정신 분석가 정혜신은 "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탐구" 라는 글 속에서 "앙드레김은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의 출연을 두 번씩이나 거절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성공의 잣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아직 자신의 빌딩조차 없는데 성공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밝히는 그의 재산은 의상실이 세든 건물의 전세금, 자신의 아파트, 연구소 설립을 위해 마련해 둔 교외의 작은 땅이 전부란다. 국위선양을 위해 해외 패션쇼에 쏟아부은 에너지나 비용을 아껴서 국내에서 의상실을 여러 개 내고 고객수를 늘리는 데 몰두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 썼던 적이 있다.


앙드레 김의 '사업' 은 사업의 가면을 쓴 '꿈의 실현' 이다. 물질세계의 세속적 성향에서 따지자면 그는 성공한 사업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짜 앙드레 김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로는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앙드레 김만이 꿈꿔온 평생의 사업이다. 앙드레 김은 상업화의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상업화의 추악한 이면에는 동조하지 않았고, 상업화의 약점을 세계화와 꿈의 실현이란 대의적 명분으로 초월했다. 70이 넘은 '늙은 사업가' 의 이면에는 여전히 판타스틱한 꿈을 꾸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의 생생한 감성이 펄떡이고 있다.


『 현대의 대중문화는 상업화를 근간으로 하지 않으면 그 어떤 형태도  확산이 쉽지 않으며 세계화는 더더욱 난감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트랜드(trend)나 문화코드는 “얼마나 상업화에 성공했는가”라는 기준이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다. 현재 세계 각국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문화 바람도 따지고 보면, 텔레비전 드라마라거나 영화, 가요, 심지어는 태권도 같은 스포츠의 ‘상업기반’이 대중문화산업형태로 성공적인 뿌리를 내린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앙드레김은 미국의 팝아트 창시자라 불리는 엔디워홀(Andrew Warhola)의 문화정신과 어떤 면에서는 아주 닮아있음을 느낀다. 』


라는 손상익의 평가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평가인지 새삼 와 닿는 이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이용대보다 '앙드레 김' 이 더 소중하다.


어느 올림픽 스타보다 훨씬 잘생긴 외모로 누나들의 완소남이 된 이용대를 네티즌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앙드레 김의 무대에 서는 이용대의 모습은 결코 부끄러워 하거나 민망해 할 일이 아니다. 앙드레 김이 한국 문화계에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 공고히 쌓아 놓고 있는 명성은 오히려 이용대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대보다 더욱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네티즌들이 '쓰레기 운운' 하는 앙드레 김의 무대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로지 '한 길' 만을 걸어왔던 장인의 모습은 기존의 차원을 뛰어 넘는 성스러운 것이다. 1966년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던 사람. 한국을 양장 소비국에서 생산국의 위치에 올려 놓았던 사람. 세계적인 팝가수 마이클 잭슨의 전속 디자이너 제의를 거절했던 사람. 대부분의 수익금을 기아와 가난에 굶주리는 세계인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 서양의 옷감으로는 한국의 미를 살릴 수 없기에 언제나 한국 옷감만을 사용한다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네티즌들이 "변태 영감" 운운하는 앙드레 김의 실체다.


나는 이용대가 딴 올림픽 금메달보다 앙드레 김이 40년 동안 획득한 '문화 금메달' 이 더욱 소중하다. 앙드레 김이 쟁취한 '문화 금메달' 은 우리가 감히 패션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에 만들어 낸 개척과 창조의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 창조의 역사를, 개척의 무대를, 한국 패션의 상징을 부끄러워 하고, 창피해 하고, 회피하는 우리는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앙드레 김의 무대를 부끄러워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 '완소남' 이용대가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는다는 자체를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앙드레김 이란 우리시대의 아이콘(icon)은, 아무나 무참하게 '씹어도 될만한' 만만한 문화코드(cultural code)가 아니다.


앙드레김 만큼, 밖으로 내보이는 외양(하드웨어)에 못지않게 충실한 소프트웨어를 구비한 문화인도 우리나라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화계에서 앙드레김 만큼 자신의 일생을 자신만의 ‘문화코드’로 무장할 줄 알며, 수미일관(首尾一貫)의 정체성으로 오롯하게 버틴 대중문화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